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라틴어: Marcus Arrecinus Clemens | |
전체이름 |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Marcus Arrecinus Clemens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지위 | 원로원 의원,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장, 프라이펙투스 우르비 |
계급 | 노부스 호모(신참자)→귀족 |
국가 | 로마 제국 |
고향 | 로마제국 본국 이탈리아[1] |
부모 | 아레키누스 클레멘스(아버지) 율리아(어머니) |
아내 | 코르넬리아 오켈리나 |
가족 | 아케키나 클레멘티나(고모) 아레키아 테르툴라(여동생)[2] 플라비우스 사비누스(고모부) 티투스(매부) 율리아 플라비아(조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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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네 황제의 해, 플라비우스 왕조의 프라이토리아니 장교, 원로원 의원, 근위대장, 프라이펙투스 우르비.티투스 황제의 처남이자 최측근이다. 그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형 플라비우스 사비누스의 처조카로 3대 황제 칼리굴라,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근위대장 아레키누스 클레멘스의 아들이다.
티투스 사후, 도미티아누스에게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일가와 함께 누명을 쓰고, "악랄한 친구"이자 "비열한 인척"이라고 조롱받은 뒤 정당한 재판 없이 유죄판결을 통보받고 살해됐다고 동시대 사가 수에토니우스가 주장한 근위대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대에 발굴된 루디아이 비문을 통해, 도미티아누스에게 모종의 일로 누명을 뒤집어 쓰고, 유죄판결을 받은 뒤 유배지에서 쓸쓸히 사망했다고 밝혀졌다.
2. 생애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이름이 똑같다. 피사우룸에 기반을 둔 기사계급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가이우스(칼리굴라) 황제의 근위대장, 클라우디우스 1세의 근위대장인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어머니는 칼리굴라 황제를 배신하고 암살에 가담했다가 반역자로 유죄선고를 받고 자살한 율리우스 루푸스의 여동생 율리아이다. 그의 여동생 아레키아 테르툴라는 후일 황제가 되는 티투스와 결혼했고, 사이에 티투스의 유일한 혈육인 율리아 플라비아(율리아 티티)를 낳았다. 고모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형 플라비우스 사비누스의 아내로,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형제의 큰어머니이자 사실상 양모 역할을 한 아케키나 클레멘티나이다.아버지, 고모부, 처남 모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두 황제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의 최측근이자 충신인 까닭에 아주 일찍 프라이토리아니 장교를 시작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클라우디우스 황제 즉위에 아버지가 결정적으로 기여한 까닭에 원로원 의원이 되고 그 일가가 귀족이 됐다.
네 황제의 해 이후, 고모부의 동생이자 여동생의 시아버지인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된 뒤 프라이토리아니를 처남 티투스와 함께 장악했다. 이때 그는 원로원 의원이었는데, 서기 70년 당시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의 정치적 동맹자들을 견제할 이유에서 근위대장이 됐다고 한다. 타키투스는 이때의 일에 대해, 클레멘스가 티투스의 복심과 같은 사람으로 아버지 클레멘스가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에게 배신없이 성실히 그 책임을 완수하며 프라이토라이니를 그 목적에 맞게 지휘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베스파시아누스 시대 내내 그와 함께 근위대장으로 부임해 플라비우스 왕조의 세습을 완성시켰다. 이때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는 아레키누스 클레멘스에게 집정관 직을 내리고, 이후의 두 번의 집정관 직, 프라이펙투스 우르비를 포함한 고위직을 연달아 약속할 만큼 중용하고 아꼈다. 그는 티투스가 다시 근위대장에 오르기 전까지인 71년 6월까지 프라이토리아니를 이끌었고,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73년 보결 집정관이 됐다. 이후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속주 총독에 부임했다. 그러다가 도미티아누스 즉위 후에는 85년 두번째 집정관이 됐으며, 86년 프라이펙투스 우르비에 올랐다.
티투스의 처남이자 복심이었고, 플라비우스 왕조와 도미티아누스에게도 처음부터 진심으로 헌신했지만 결국 숙청됐다. 이때의 일에 대해 수에토니우스는 클레멘스가 도미티아누스에게 누구보다 비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쓰고 처형됐다고 적고 있다. 도미티아누스는 클레멘스를 여행에 동행하자고 초대해, 함께 여행을 간 다음 클레멘스에게 "내일 그 비열한 친구의 말을 들어볼까요?"라고 묻곤, 다음날 자신이 말한 그 악랄한 친구가 클레멘스를 고소한 사람들임을 공개하면서, 클레멘스를 악랄한 친구이자 비열한 인척이라고 하며 모욕을 준 뒤 제대로 된 재판 없이 유죄를 그 자리에서 선고하고 로마에서 처형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20세기 고전사가로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의 금석문 해석으로 유명한 개빈 타운엔드는 수에토니우스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한다. 타운엔드는 이탈리아에서 발굴된 루디아이 비문을 통해, 이를 밝혔다. 이 비문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가 아내 코르넬리아 오르켈리나에게 기념된 일이 적혀 있고, 그가 수에토니우스 주장과 달리 추방된 다음 유배지에서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 사가들은 그가 도미티아누스에게 견제 차원에서 추방됐다가 유배지에서 자연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