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라틴어: Lucius Nonius Asprenas | |
생몰년도 | 기원전 30년경 ~ 20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조부)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아버지) 퀸크틸리아(어머니)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형제) 칼푸르니아(아내)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아들) 푸블리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아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아들)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6년 |
전임 |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
동기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
후임 |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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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가문인 노니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조부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는 기원전 36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아버지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절친한 친구였다. 기원전 9년 아버지 아스프레나스는 자기 집에서 열린 만찬 파티에서 130명이 중독사하는 사건의 범인으로 고발당했지만, 아우구스투스가 법정에 참여해 몇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있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 배심원들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 일로 기존에 맡았던 에풀론(Epulon: 로마 다신교 사제단 일원)에서 배제되었고, 집정관에 도전할 기회도 잃었다. 어머니 퀸크틸리아는 재무관 섹스투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의 딸이다.[1] 형제로 서기 8년 집정관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가 있었다.아스프레나스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수에토니우스가 설명한 아래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우구스투스는 나이 많은 소년과 어린 소년이 참여한 트로이 목마 게임을 조직하여 영광스러운 고대 관습에 따라 고귀한 조상에게 합당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가 이 게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가 쓰러져서 골절상을 입었을 때, 아우구스투스는 그에게 황금 목걸이를 주고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토르콰티(Torquati)라고 불리도록 허락했다.
기원전 4년, 아스프레나스는 삼촌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휘하에서 시리아 속주의 트리부누스 밀리툼으로 근무했다. 서기 6년 7월 1일, 루키우스 아룬티우스를 대신해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어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집정관 임기를 수행했다. 7~9년에 레가투스로 발탁되어 게르마니아 총독이었던 바루스의 휘하에서 복무했다. 바루스가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패사했을 때, 그는 1군단 게르마니아와 5군단 5군단 알라우다에와 함께 모군티아쿰에 있었다. 그는 바루스가 패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겨울 숙영지를 보호하고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생존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두 군단을 이끌고 라인강을 따라 내려갔으며, 벨기카 속주에 대한 게르만족의 습격을 저지했다. 이후 희생자들의 재산을 횡령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14~15년, 아스프레나스는 아프리카 총독으로 부임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이 시기 대 율리아와 오랫동안 간통한 혐의로 고발된 뒤 추방되어 케르케나 섬에 망명 생활하던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가 그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타키투스는 군인들이 티베리우스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고 암시하지만, 그는 이야기의 다른 버전에서 그들이 "살인의 악명이 아스프레나스에게 전가되기를 헛되이 바랐던 티베리우스의 권위에 의해" 아스프레나스에 의해 파견되었다고 밝혔다.
20년, 게르마니쿠스를 독살한 혐의로 기소된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의 재판이 끝난 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는 게르마니쿠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처벌에 대해 그의 가족인 티베리우스 , 리비아 드루실라 , 소 안토니아, 대 아그리피나, 소 드루수스에게 감사를 표할 것을 제안했다. 이때 아스프레나스는 어째서 클라우디우스의 이름이 생략되었냐며, 이건 의도적으로 그런 거냐고 물었다. 그 후 원로원은 클라우디우스 역시 감사 목록에 포함하기로 결의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기원전 1년 집정관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의 딸 칼푸르니아와 결혼해 38년 집정관 아스프레나스 칼푸르니우스 세라누스, 29년 보결 집정관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그리고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를 낳았다.
[1]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의 누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