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세이우스 투베로 라틴어: Lucius Seius Tubero | |
생몰년도 | 미상 ~ 24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제국 미상 |
사망지 | 로마 제국 미상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친부?) 유니아(어머니 또는 이모) 루키우스 세이우스 스트라보(아버지 또는 양부) 세야누스(형제)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18년 |
전임 | 티베리우스 게르마니쿠스 |
동기 | 리비네이우스 레굴루스 |
후임 | 가이우스 루벨리우스 블란두스 마르쿠스 빕스타누스 갈루스 |
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루키우스 세이우스 투베로의 기원은 불명확하다. 일단 마르쿠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가 언급한 세야누스의 두 형제 중 한 명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이 형제 관계를 정의하는 이론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19세기 라틴어 비문 연구가이자 화폐학자 바르톨로메오 보르게시(Bartolomeo Borghesi, 1781 ~ 1860)는 세야누스의 아버지인 루키우스 세이우스 스트라보가 그의 친부라고 주장했다. 반면 로널드 사임은 기원전 11년 집정관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와 유니아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유니아가 루키우스 세이우스 스트라보와 재혼한 뒤 스트라보의 양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투베로가 유니아의 조카이며, 유니아가 스트라보와 결혼한 뒤 스트라보의 양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16년 게르마니쿠스 휘하의 기병대 사령관으로서 베저 강 중류에 거주한 앙그리바리족과의 전쟁에 참여했다. 18년 2월부터 7월까지 라비네이우스 레굴루스와 함께 보결 집정관을 역임했다. 24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누메리우스 비비우스 세레누스,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코르누투스와 함께 티베리우스 암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렌툴루스는 티베리우스가 "친구인 렌툴루스도 나를 나는 살 가치가 없다"라고 밝히며 풀어줬다. 코르누투스 역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세레누스는 라벤나로 도망쳤다가 체포되어 원로원으로 압송된 뒤 재판을 받고 추방형에 처해졌다.
이후 투베로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타키투스는 31년 세야누스가 몰락한 뒤 세야누스와 관련된 모든 사람 중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만이 무사했다고 밝혔다. 이로 볼 때 투베로는 세야누스 몰락 직후에 피살되었거나 그 전에 사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