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크라신스키 Zygmunt Krasiński | ||
<colbgcolor=#f2eadb><colcolor=#2790c8> 이름 | <colbgcolor=#f2eadb><colcolor=#2790c8> 폴란드어 | Napoleon Stanisław Adam Feliks Zygmunt Krasiński |
한국어 | 나폴레옹 스타니스와프 아담 펠릭스 지그문트 크라신스키 | |
출생 | 1812년 2월 19일 | |
프랑스 제국 파리 | ||
사망 | 1859년 2월 23일 (47세) | |
프랑스 제국 파리 | ||
국적 | [[폴란드|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제네바 대학교 | |
직업 | 시인, 작가 | |
가족 | 부모 | 빈첸티 크라신스키 (아버지) 마리아 우르술라 라지비오 (어머니) |
배우자 | 엘리자 브라니카 (1843년 결혼) | |
자녀 | 브와디스와프 크라신스키 (아들) 지그문트 크라신스키 (아들) 마리아 베아트릭스 크라신스카 (딸) 엘즈비에타 크라신스카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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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시인.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 율리우시 스워바츠키(Juliusz Słowacki)와 함께 폴란드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국민 시인인 3대 음유시인(Trzej Wieszcze) 중 하나다.
2. 생애
지그문트 크라신스키는 폴란드의 유명한 귀족 가문 중 하나인 크라신스키 일가 사람이다. 그는 1812년 2월 19일 그의 아버지 빈첸티 크라신스키 백작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 우르술라 크라신스카 백작부인이 프랑스 제국 파리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크라신스키는 사실상 유일한 가족과 다를 바 없었던 아버지와 사이가 각별해졌다.1827년 당시 중등교육기관인 바르샤바 리세움(Liceum Warszawskie)을 졸업하고 크라신스키는 곧바로 바르샤바 제국대학교에 법학과 행정학으로 입학했으나 1829년 퇴학을 당했다. 이후 그는 폴란드를 떠나 스위스로 건너가 제네바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를 만났고 미츠키에비치로부터 지대한 문학적 영향을 받았고, 이를 기점으로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 세계에 뛰어들었다.
1833년 대학을 졸업한 크라신스키는 스위스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기나긴 여행 동안 그는 여러 작품들을 집필했는데, 그중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비신곡(非神曲, Nie-Boska komedia)이라는 연극이 있다.
1840년 크라신스키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신붓감을 찾아 그에게 소개했다. 상대는 폴란드의 또 다른 유력 귀족 가문인 브라니키 일가의 영애 엘리자 브라니카였다. 브라니카는 그보다 8살 어렸다. 이 둘은 여러 차례 만남 끝에 1843년 7월 프로이센 왕국 드레스덴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두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낳았다.
크라신스키는 이어서 자신의 유럽 여행을 이어갔고, 1850년대에 접어들자 크라신스키의 건강은 악화되었지만 그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에게 여러 정신적 시련들이 닥치는데, 1856년 그의 친구인 아담 미츠키에비치가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1857년 그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 둘을 파리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이후 크라신스키도 파리에서 1859년 눈을 감았다. 그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파리에서 장례식을 치른 다음 폴란드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