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정치에서 어느 한쪽 정당 혹은 진영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지형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거나, 그러한 정치적 구도가 지속되는 현상을 축구 경기에서 유래된 용어인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 말.정치학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인데, 정치체제 상 민주주의 체제이나 정치주권자의 의지로 특정 당이 독재에 가까운 수준의 우위를 점하는 걸 지칭하는 이론은 Dominant Party theory(우세정당론)이라고 한다. 캐나다 정치에서의 자유당(Liberal Party / Parti libéral)이나 일본의 자민당(自民党)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연구된다. 특히 캐나다 정치 맥락에서는 Natural Governing Party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우세정당이나 NGP가 출현하게되는 이론은 흔히 되물림(feeding-back)을 통한 주권자의 정치적 고착화를 든다. 즉, 교육이나 언론의 자유가 제약된 사회에서 특정 정당이 주류를 점한 후 오랜기간동안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해당 정당의 이념적 선전이 주권자들에게 가해지는 시나리오에서, 새로운 주권자 세대는 '당연하게' 해당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NGP에 대한 되물림 이론을 추종하는 학자들은 이를 교육과 언론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 우세정당 혹은 NGP인지는 정치학계에서 합의된 결론은 없다.
단순히 특정 정당/진영에게 유리한 선거 국면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리한 지형'이란 선거에서 아무런 변수(이슈, 인물론 등) 없이도 특정 정당/진영이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표 때문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 경우 불리한 쪽의 정당/진영은 시작부터 기울어진 지형 위에서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상대보다 논란을 최소화하고 후보자의 능력, 도덕성을 강조해 인물론에서도 앞서야 겨우 승리할 수 있는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1948~1997년) 동안 보수정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유리한 쪽에 서 있었고,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요인들로 구성되어있다. 다만 2016년 총선 이후로는 이런 요인들이 상당부분 희석되어 보수정당에 유리한 지형이 뚜렷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고, 2020년대부터는 오히려 민주당계 정당이 유리한 역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의견이 나올 만큼 상황이 많이 변화했다.
2. 발생 요인
지금 한국 정치 지형도를 봤을 때, 민주계열 정당은 축구에 비유하자면 0:3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걸 감안하셔야 합니다.
유시민, 2010년 MBC 100분 토론에서
군사정권 시절은 차치하고 제6공화국 시기만 봐도 1987년 민주화 이후 한동안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전라도, 충청도 4자 지역정당 구도로 나눠졌던 한국의 정치 구도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TK와 PK, 충청도가 대연합해 거대 보수정당 민주자유당이 출범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뒤틀렸다. 때문에 김대중을 위시한 민주당계 정당은 전라도에 고립되는 처지에 놓였고, 보수정당은 지역주의 등을 앞세워 선거 때마다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민주당을 상대해왔다.유시민, 2010년 MBC 100분 토론에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7년 15대 대선에서 비록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긴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이 연루된 한보 사태와 1997년 외환 위기에서 비롯된 한 자릿수대 국정 지지율,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보수 표 갈라 먹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 등 김대중 입장에서 온갖 호재가 따라줬고 DJP연합으로 충청도 표까지 끌어왔음에도 불과 1.53%p차로 신승했다는 사실은 당시 한국 정치가 얼마나 보수 진영에게 유리했는지 잘 보여준다. 만약 앞서 말한 조건들 중 단 하나라도 빠졌다면 김대중의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2016년까지 민주당이 그나마 대선에서는 두 차례(김대중-노무현) 집권에 성공해봤지만,[1] 총선에서는 1990년 3당 합당 이래 2016년 20대 총선 전까지 현직 대통령 탄핵 시도에 따른 전국민적 역풍이 불었던 단 한 번을 제외하면 원내 1당을 차지해본 적도 없는 만년 원내 2당이었다는 사실도 보수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의 증거다.
2.1. 권력 구조의 보수 과점
근대 이후 국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 구조는 전근대 국가에 비해서 매우 세밀하게 분화된 형태로 운영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인 삼권분립만 봐도, 입법권(국회)과 행정권(정부), 사법권(법원)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누군가 독점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또한 행정권을 쥔 정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사법권을 쥔 법원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말단까지 모든 구성원이 관료제로 묶여있는 거대한 관료 조직이기도 하다. 여기에 여론을 움직일 힘이 있는 언론과 비영리 단체도 각각 제4, 제5의 권력으로 불리며, 비록 정경유착으로 연결될 여지는 크지만 재벌도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가질 만큼 오늘날 민주 국가의 권력 구조는 매우 촘촘하게 나눠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차지한다 해서 국가권력을 완전히 독점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한데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참정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것이 1987년에야 가능해진 탓에 국가의 초창기에 기득권을 차지한 이들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한 것이 현실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30년 가까이 군부가 권력을 독점했고, 이 시기 형성된 기득권층이 정(政), 관(官), 경(經), 언론까지 장악해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의 핵심 세력으로서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 해서, 총선에서 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한다 해서 단기간에 권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긴 어렵고, 압도적인 국민 여론을 등에 업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2.2. 북풍과 색깔론
한반도는 1945년 8.15 광복으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자마자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남북으로 분단됐고, 1950년엔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라는 참극을 겪은 바 있었다. 휴전 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 북한의 대남 도발, 과거 군사정권에 의해 국가적 모토 수준으로 우선시됐던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때문에 감정적으로는 강경한 대북 정책을 고수하는 보수가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우선시하는 진보보다 지지를 얻기 쉽다. 특히 전쟁과 무장공비 침투, 반공과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노인 세대에게 호소력이 크다.
실제로 보수 진영에서는 오래 전부터 북한 관련 이슈로 재미를 많이 봐왔고, 심지어는 이것을 조장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해 '북풍'이라고 비난받기 일쑤다. 예를 들어 1997년 15대 대선 직전에 비록 한나라당이나 이회창 캠프 차원에서 저지른 일이 아닌 몇몇 인사들의 일탈 행위이긴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이 북측 인사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처벌된 총풍 사건이 유명하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김대중 등 민주 인사를 '빨갱이'로 규정해 정치적 탄압의 근거로 삼았고, 민주화 이후에도 대북 유화책을 주장하는 진보 세력을 무조건 친북 또는 종북으로 매도하는 일이 잦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선거를 보름 앞두고 "더 이상 나라를 범죄자들과 종북세력에게 내주지 맙시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전국에 걸려다가 수도권 출마자들의 반발에 철회한 적이 있을 정도로 최근에도 보수 진영이 애용하는 선거 전략 중 하나다.
2.3. 영남 지역주의와 호남 고립
| |
3당 합당으로 인한 호남 고립[2] |
1990년 3당 합당으로 경상도가 지역주의를 매개로 단합하면서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 기반인 전라도가 정치적으로 고립된 것도 기울어진 운동장의 큰 요인이다.
3당 합당 이전까지는 경상도에서 대구경북(TK)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 세력을 지지한 반면 부산경남(PK)은 김영삼을 위시한 상도동계를 지지했고, 전라도는 김대중의 동교동계를, 충청도는 김종필의 청구동계를 지지하는 4자 구도였다. 이러한 구도가 두드러진 선거가 1987년 13대 대선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의 여소야대 국면 타개와 김영삼의 대권 도전이라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리면서 3당 합당으로 경상도 전역이 단합했고, 여기에 군부 세력의 일원인 김종필의 충청도까지 합류하면서 삼남 지방 중 전라도만이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남게 됐다.
3당 합당 이후 첫 대선이었던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지역주의를 선거에 노골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발각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이다. 당시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부산에 내려가 지역의 주요 정부기관장들과 모인 자리에서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지역감정이 유치할진 몰라도 고향 발전엔 도움이 돼",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등의 발언을 하며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통해 경상도의 단결을 호소하는 선거 전략을 모의한 것이다.
충청도는 오래 지나지 않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제3지대로 이탈했고 김종필의 정계 은퇴와 충청권 보수정당의 몰락 이후엔 경합지역으로 변모했지만, 그럼에도 영남과 호남의 인구수 차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민주당에게 불리한 지역 구도는 계속됐다. 예를 들어 총선에서는 (22대 총선을 기준으로) 민주당이 전라도 전체를 싹쓸이해도 28석에 불과하지만, 보수정당이 경상도 전체를 싹쓸이하면 65석까지 얻을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도 경상도의 광역자치단체장은 5명이지만 전라도는 3명인 탓에 시작부터 5:3의 스코어로 보수에게 유리한 게임인 셈이다.
2.4. 언론 환경의 보수 강세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정보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언론의 경우, 언론사별로 각자의 정치색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신문 매체에서는 일명 '조중동'이라 불리는 3대 일간지 모두 보수 색채가 짙고, 양대 경제신문으로 꼽히는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제신문도 친재벌 보수 성향을 띤다. 이들은 기업의 광고 및 판촉 행사에서 얻는 수입과 많은 독자 수 덕에 자금력이 넉넉하고 사회적 영향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반면 3대 진보 언론이라는 '한경오'는 '조중동'에 비하여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언론들이다. 발행 부수에서 진보 일간지 중 1위, 전체 4위라는 한겨레도 3위 동아일보와 격차가 3배 정도나 벌어져 있다. 그마저도 한겨레는 진보정당에 조금 더 우호적이고 민주당계 정당은 차악으로 여기며 비판적 지지를 하는 편이기에 민주당 입장에서는 한겨레를 우군으로 여기지 않는 지지자들이 생각보다 많다.[3] 경향신문은 반(反)민주당에 가까운 언론으로,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범진보'로 묶는 한겨레와 달리 민주당을 '보수 양당제'의 한 축으로 보는 관점을 갖고 있어 민주당에 상당히 비판적이다.[4] 그나마 오마이뉴스가 친민주당 성향을 띠긴 하나, 인터넷 신문의 한계 때문에 한겨레와 경향신문보다도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조중동'과 한겨레 및 경향신문 외에도 한국에서 종합 일간지에 포함되는 나머지 5개 신문들도 전반적으로 보수에 우호적인 성향을 보인다. 애초에 운영 주체부터 기업 또는 종교인지라 보수에 우호적이기 쉽다. 서울신문은 과거에는 기획재정부가 대주주로 있어 주로 친정권 성향의 언론이었고 2021년부로 호반건설에 인수되었으며, 한국일보는 동화그룹이 운영하고, 문화일보는 현대중공업의 입김이 매우 강하다. 국민일보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사실상 최대주주로 있고, 세계일보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 지분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통해 송출되는 뉴스에서도 보수 성향이 매우 두드러진다. 지상파 방송은 정권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지만, 종편 방송의 경우 TV CHOSUN, 채널A, MBN 모두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매일경제신문에서 소유하고 있기에 보수 성향이 우세하며, 그나마 JTBC 하나만이 신문과는 다르게 중도좌파 성향을 띠고 있긴 하나, 여기도 현 정세를 보수 양당제로 보는 경향신문에 가깝다.
2.5. 보수정당의 조직력 우세
위의 요인들에 힘입은 보수정당은 지방선거에서도 자주 승리하면서 정당의 조직력을 결정짓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도 민주당계 정당보다 많이 확보해왔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1991년 지방선거 이후 2018년 7회 지방선거 전까지 광역 및 기초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보수 진영을 앞선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3. 역으로 기울어졌다는 의견
모든 것이 다 무너진 것이죠. 탄핵으로 우파 진영이 붕괴가 되었습니다. 정권 교체기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국정 파탄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홍준표, 2017년 7월 25일 KBS2 냄비받침에서
2016년 말, JTBC 뉴스룸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역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거론되기도 했다.홍준표, 2017년 7월 25일 KBS2 냄비받침에서
당장 박근혜 탄핵을 사유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구경북과 경남을 제외한 전 지역을 차지하면서 2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17.05%p차로 크게 누르고 압승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 즈음하여 치러진 7회 지방선거에서도 대구경북과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싹쓸이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수도권에서만 100석 넘게 가져가면서 의석 수 180석에 도달했다.
하지만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보수 우위 구도의 붕괴가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태에서 6개월 전에 있었던 4월 20대 총선에서 이미 시작됐다 보기도 한다. 보수 진영은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각각 42.8%, 51.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격이었던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도 47.1%를 얻었지만, 2016년 20대 총선의 33.5%를 시작으로 2017년 19대 대선(30.8%), 2018년 7회 지방선거(34.8%), 2020년 21대 총선(33.8%)에 이르기까지 득표율이 계속 30%대에서 맴돌고 있는 게 확인된 것이다. 이는 2016년 이전까지 40~50%에 달하던 보수의 지형이 30%대로 크게 내려앉았고, 2019년 이후 조국 사태 등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지형을 회복하지 못해 보수가 소수파로 쪼그라들었다는 뜻이다.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어필하는 모습을 보면 유권자들이 정당을 '쇼핑하듯이' 고르는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러한 유형의 유권자는 드문 편이고 대부분의 유권자는 마치 프로 스포츠 팀을 응원하듯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애착과 일체감을 가지면서 지지 정당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매번 결과가 다른 것은 지지 정당이 투표하고 싶게 만들면 투표소에 나오고, 그렇지 않다면 나오지 않는 유권자들의 특성 때문이다. 이것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 맺음이고 정치학자들은 이를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정렬'이라 부른다. 이러한 정렬이 흔들리는 순간이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데, 이것은 '재정렬'(Realignment)라 불리며 재정렬이 시작되는 선거를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라 부른다.
그 재정렬의 징후가 나타난 중대선거가 바로 2016년 20대 총선이었다. 보수의 투표연합이 구조적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의미인데, 보수정당 입장에서의 문제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정치적 지형 변화가 일단 발생하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유불리를 만든다는 데 있다. #
3.1. 지역 구도 약화
경상도는 1990년 3당 합당 이래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지역주의 아래 대구경북과 부울경이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타 왔지만, 경상도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는 부울경에서 과거보다 점차 보수정당의 세가 약해지고 민주당의 세가 강해지면서 단일 대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거제시, 울산 북구 및 동구, 창원시 성산구 등 공단 지대와 낙동강 벨트 일대는 경합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로 보수세가 많이 약해졌고, 해당 지역 인근에서도 경합지역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역이 여럿 나타나는 등[5]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사실 부울경은 3당 합당으로 보수 진영에 합류한 이후에도, 지역의 맹주 김영삼이 출마한 1992년 14대 대선을 제외하면 선거마다 보수정당 득표율이 대구경북보다 낮은 경향을 보여왔다. 본래 부울경은 공업과 해운업이 발달한 특성상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 타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많아 대구경북보다 주민 구성이 다양한 편인 데다가, 3당 합당 이후 문민정부 시기를 제외하면 대구경북이 민자당계 보수정당의 주도권을 쥐고 '성골' 노릇을 하면서 부울경은 상대적으로 낮은 '진골' 대우를 받았었고, 2002년 16대 대선에서 김해시 출신 노무현이 집권하면서 부울경 기반 민주당계 세력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이곳에서 30%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었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14대 대선과 15대 대선에서 10%대 초반의 득표율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나 뛰어오른 현저한 변화다. 이때 부울경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민주당은 친노를 중심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왔다. 그 결과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30%대 후반까지 올라와 40% 돌파를 눈앞에 뒀고, 2016년 20대 총선에선 40석 중 8석을 가져가는 성과를 거뒀다.
보수 진영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자멸한 상태에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3당 합당 이후 민주당계 대선후보로서 처음으로 부울경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선 민주당이 부울경 세 곳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싹쓸이하는 결과까지 나타났으며 재보궐선거에서 2석을 더 얻어서 40석 중 10석을 점유하는 초유의 성과까지 나타났다.[6] 그리고 그 이후 21대 총선에선 40석 중 7석으로 지역구 의석은 줄었들었지만, 지역구의 평균 득표율이 40%를 넘겼고, 20대 대선에선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고, 22대 총선에선 40석 중 6석으로 줄었지만 동부경남, 부산, 울산 전역에서 40%를 넘기는 성과를 거뒀다.[7]
한편 3당 합당을 통해 한동안 민주자유당에서 영남과 함께했다가 자유민주연합으로 이탈한 충청도의 경우, 1997년 15대 대선에서 DJP연합에 따라 김대중 후보를 밀어줬고 2002년 16대 대선에선 충청도로의 수도 이전을 공약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등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충청권 보수정당이 선전했던 것과는 별개로 대선에선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충청 지역 맹주인 김종필이 정계에서 은퇴하고 충청권 보수정당까지 맥이 끊긴 이후로는 보수정당과 민주당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는 정석적인 경합지역이 된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 충청도에서의 불리함도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TK는 여전히 민주당에게 사지에 가깝지만, PK는 해볼만한 수준까지 올렸고, 충청도도 경합지역이 됐기에 지역 구도상의 불리함이 사라졌다 봐도 무방하다.
3.2. 언론 환경의 변화
언론 환경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도 상당히 희석된 상태다. 이미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부터 당시 청년층은 보수 우위의 기성 언론이 아닌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도 정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21세기 들어선 정보통신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팟캐스트 등 신형 미디어가 출현했다. 특히 2010년대 중반(2014년)부터 전국민적인 스마트폰 보급으로 유튜브의 생활화가 이뤄지면서 일방적인 정보 전달의 한계를 가진 기성 언론의 권위가 많이 추락한 상태다. 또한 친민주당 성향의 언론도 기성 언론이든 대안 언론이든 간에 적지만 생긴 것도 있다.3.3. 변화된 인구 구조와 약한 연령효과
2025년 기준 세대별로 봤을 때 국민의힘은 60대 중반 이상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0대~50대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 이전에 태어난 현 60대 중반 이상은 점차 고령으로 수가 줄어드는 반면 2024년부터 더불어민주당이 우위인 1960년대 중반생 이후가 차츰 60대에 진입하기 시작하고 2040년대 초반에는 현재 40대인 1980년대 초반생까지 60대가 되어 매우 유리해진다. 민주당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보수정당에겐 재앙으로 작용할 수 있다.[8]
자세히 기술하자면, 일명 '산업화 세대'(~1960년생)의 인구는 4년에 한 번씩 총선을 치를 때마다 인구가 약 100만 명씩 자연 감소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1,388만 명이었던 인구가 2016년 20대 총선 1,294만 명, 2020년 21대 총선 1,196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다시 4년이 지난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1,087만 명으로 감소했다.[9] 23대 총선이 치러지는 2028년에는 967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 이유는 사망자 대부분이 1960년생 이상이기 때문.
전체 유권자에서 산업화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2년 34.8%에서 2024년 24.3%로 이미 3분의 1 가까이 감소했고 2028년에는 21.4%까지 줄어든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기반으로 꼽히는 1961~1980년생은 2012년 1,698만 명에서 2024년 1,666만 명으로 4년마다 10만 명씩 줄어드는 데 그쳐 2028년 유권자 중 차지하는 비중은 36.4%에 달할 전망이다.
여기에 '나이가 들면 보수화한다'는 연령 효과의 통념도 깨지고 있다. 산업화 세대가 50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2012년에는 50대의 43%가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이들이 60대 이상으로 넘어간 2024년에는 50대의 53%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지지한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지방 소멸도 보수정당에게 큰 타격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전국 인구감소지역 시군구는 총 89곳인데, 양당의 지역구 중 인구감소지역 비율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161곳 중 16곳으로 10% 정도에 불과한 반면 국민의힘은 90곳 중 27곳으로 3분의 1에 육박한다. 이는 당연한 결과인데, 지난 2020년 21대 총선과 2024년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두 번 연속 수도권에서 100석 이상을 가져갔지만 국민의힘은 20석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당장 지방의 지역구를 빠르게 통폐합하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초당적인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소멸은 막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보수정당 입장에선 결코 안일하게 바라봐선 안될 문제다. 결국 보수 언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중앙일보 한국경제
3.4. 민주당의 조직력 향상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기초의원의 56.03%, 광역의원의 78.65%를 싹쓸이하면서 민주당계 정당이 사실상 처음으로 보수정당 이상의 지방 조직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그동안 민주당 조직력이 약했던 부울경과 강원도에서도 광역 및 기초의원을 쓸어 담은 것이 고무적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허니문 선거였던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비록 자치단체장은 크게 빼앗겼지만, 기초의원은 국민의힘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4. 관련 문서
[1] 그마저도 김대중과 노무현 모두 지지층 확장을 위해 안간힘을 써서 1~2%p차로 겨우 승리한 것이었다. 김대중은 DJP연합으로 충청도 표심을 끌어오고 박태준 등 일부 민정계까지 포섭해 자신에게 씌워진 '빨갱이' 프레임을 깨뜨렸으며, 노무현도 영남후보론으로 경상도 표심도 어느 정도 이끌어내고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도 표심을 다시 한번 공략할 뿐만 아니라 출신과 성향이 이질적인 정몽준과의 단일화까지 시도해야 했다.[2] 왼쪽은 1987년 13대 대선, 오른쪽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첫 대선이었던 1992년 14대 대선. 1987년에는 부산경남과 대전충남이 각각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의 텃밭이었으나 3당 합당을 거쳐 모두 거대 보수정당 민주자유당의 지지 기반으로 바뀌었음을 14대 대선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중도층, 무당층이 보기에는 친민주당 언론으로 보일 수 있다.[4] 2024년 이후 노녹정이 민주당을 바라보는 관점과 매우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5]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창원시 진해구가 대표적이다.[6] 3당 합당 이후로 민주당계 정당이 해당 지역에서 두 자릿수까지 들고 간 건 2018년이 처음이였다.[7] 민주당의 의석 수가 줄어든 건, 수도권에 비해 미비한 일자리 등으로 인한 고령화와 2010년대 중반 이후 두드러지던 1990년대생 남성의 우경화가 한몫했다.[8] 수도권은 물론이고, 근소한 격차로 가까스로 앞서는 PK 지역에서도 치명타다.[9] 2025년 3월 기준 약 1,060만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