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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30 05:20:00

접대의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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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
2.1. 각자의 안전 보장2.2. 은혜를 베푼 것에 대한 명예2.3. 정보 교환 및 반가움
3. 손님을 정말 접대하고 싶지 않다면4. 손님의 입장이라면?
4.1. 선물
5. 의의6. 문화권별 양상
6.1. 동양6.2. 서양6.3. 이슬람6.4. 북극권6.5. 유대교/기독교6.6. 아메리카 원주민6.7. 아프리카
7. 사례
7.1. 유명 사례7.2. 어긴 예
7.2.1. 주인이 손님을 공격한 사례7.2.2. 손님이 주인을 공격한 사례
8. 대중 매체
8.1. 나니아 연대기8.2. 늑대와 향신료8.3.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8.4. 로미오와 줄리엣8.5. 맥베스8.6. 몽테크리스토 백작8.7. 미녀와 야수8.8. 뱀파이어 헌터 D(Bloodlust)8.9. 북유럽 신화8.10. 신곡 지옥편8.11. 아메리칸 스나이퍼8.12. 아일랜드 신화8.13. 언어의 주인이란8.14. 얼음과 불의 노래8.15. 원피스8.16. 제9중대8.17. 춘향전8.18. 코라의 전설8.19.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9. 관련 문서10. 외부 링크

1. 개요

접대의 관습(Hospitality customs)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접대에 관한 전통을 말하는 것으로 주인은 찾아온 손님을 예우하고 손님은 주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고도의 사교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문명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제각기 환경과 문화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다.

현대에는 개인주의 때문에 이런 관습이 다소 약화되었으나, 가정에서의 손님 환대, 국제사회에서의 망명자 보호 관습 등의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 중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외교관 면책특권.

2. 원인

2.1. 각자의 안전 보장

현대의 여행도 기본적으로 밖에서 뭘 하든 돈이 들고 위험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해서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1] 이런 와중에 다른 마을에 이르러도 안심하고 묵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접대의 관습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류 공통의 문화이다. 외부인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이들을 항상 적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전략이다. 원수에게는 복수하는 관습 때문에 다른 집단의 인사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쌍방 간에 피를 보게 되고, 언제나 복수는 복수를 부르게 마련이므로 한 번의 복수로 스노우볼이 굴러 수많은 적을 만들게 되는 등 손해가 막심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놓고 싸우기 꺼려지는 상대는 손님으로 받고 후하게 대접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접대의 관습으로 정착되었다.

이는 매-비둘기 게임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매는 강경한 태도, 비둘기는 유화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만약 자신이 매의 태도를 취한다면 비둘기를 만났을 때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매가 되는 것이 이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매가 이득을 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사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도 매의 태도를 취하기 시작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아무도 이득을 볼 수 없게 되며[2], 이 상황에서 돌연변이 전략으로 비둘기의 태도를 취하는 이가 나오면 그가 상대적인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에서는 ESS, 즉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또는 안정된 상태)를 상정한다. 이는 모든 구성원이 그 전략을 취할 경우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피할 수 있고, 그것에서 일탈한 돌연변이 전략을 사용할 경우 이득을 보지 못하거나 손해를 보는 상황을 의미한다. 부족 사회에서 이러한 ESS에 해당하는 균형이 바로 팃포탯으로 '손님으로 온 이는 그가 적대하지 않는 한 공격하지 않고 환대한다, 이 규범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응징하거나 배척한다' 였던 것이다.

결국 접대의 관습이 성립되기 시작한 고대 부족 사회는 현대와 같이 엄밀한 법 질서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는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그 나름대로 고도화된 관습에 기반한 질서로 유지되는 사회였으며, 접대의 관습 역시 그러한 사회에서 각 구성원 간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였던 것.

몽골인들은 음주를 자주 하는데, 이는 우연히 마주친 처음 만난 목동들끼리 술을 진탕 마시고 편하게 자던 관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질펀하게 취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든다면, 혹시 상대방이 밤에 몰래 일어나 자기 가축을 훔쳐 도망갈까봐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는 걸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손님에게 왕창 밥을 먹여 배를 불리고 술까지 먹여 취하게 만들면 몸이 무거워져 내부에서 적대 행위를 벌이지 못할 것이니 주인도 안심하고 잘 수 있다. 게다가 고대나 현대나 타인과 술자리를 가진다는 건 그 사람을 신뢰하고 호의를 베푼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낯선 사람과 선뜻 술자리를 함께 할 정도로 외지인에게 대접을 많이 하고 무사히 돌려보낸 관대함을 어필할 수 있다.

타타르족칭기즈 칸의 아버지 예수게이를 암살한 것에 대해 칭기즈 칸이 처절하게 복수를 했어도[3] 비난받지 않았던 이유가 타타르족이 예수게이를 손님으로 받아놓고 독을 탄 술을 줘서 죽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손님이 기꺼이 술을 받아마셨다는 건 그 술을 제공한 주인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그 집에 있던 음식을 받아먹었다는 행위 자체가 서로 적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4] 그래서 그러한 믿음을 저버린 행위는, 그보다 더 비겁한 행각이 있을 수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칭기즈 칸이 후에 앙갚음으로 타타르족을 대량학살했지만 다른 부족으로부터 크게 비난받지 않았다. 타타르족같이 신용할 수 없는 집단과 같은 초원을 공유하는 것은 다른 부족들에게도 잠재적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2.2. 은혜를 베푼 것에 대한 명예

사회의 평판이라는 개념이 생기면 명예 때문에라도 접대의 관습은 지켜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들였다가 피해를 입을 위험을 감수하느니 아예 손님을 받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지만, 이는 자신의 평판을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손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배짱이 없는 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자신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자로 여겨져 마치 '친지의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는 쫄보'와 마찬가지의 취급을 받았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건 요즘 세상에서나 통하는 말이고 과거 수많은 문화권에서 명예는 목숨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다. 물론 목숨은 중요하지만 도시화 이전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자기 목숨만 생각하고 명예를 내던졌다간 자기 이익을 위해 집단을 버릴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잠재적 배신자로 간주할 수밖에 없고, 공동체 내에서 배척당해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손 대대로 살아가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5] 법 질서와 같은 사회적 규범이 상대적으로 미비하던 전근대 사회에서, 명예란 단순한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상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가문 등)이 가지는 사회적 지위나 위상과 직결된 것이었다. 즉, '명예롭다'는 평판을 받는 이는 다른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에서 신뢰받고 좋은 대우를 받는 반면, '명예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는 불신의 대상으로써 박대당하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6]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신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신용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자라면 '돈 빌린 뒤에 안 갚고 버티거나 도망치면 이득인데 왜 갚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했다간 단번에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그 짧은 이득 이상의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신용이란 신뢰의 일종이다. 신뢰를 저버린다면 당장에는 이득이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저 자는 믿을 수 없으므로 다음 약속, 거래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거나 이뤄지더라도 불리한 조건에서 이뤄지게 된다.[7]거짓말을 안 좋게 여기는지 생각해보면 쉽다. 즉, 명예 역시 마찬가지로 한 번 명예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면 그 순간에는 이득을 볼 수 있겠지만 이후부터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더욱이 그 시절은 보편적인 인권 개념도 없고 법, 공권력과 같은 상위의 질서체계도 미비한 시대였기에 직접적인 폭력에 의한 보복을 당하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등 오늘날 신용을 잃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접대의 관습'이 주요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은 이상 손님을 극진하게 대하는 것, 하다못해 찾아온 손님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숙식을 제공해 은혜를 베푸는 것은 다름 아닌 주인의 명예와 직결된 일이었다. 마을에 터 잡고 사는 주인 입장에서 무조건 빈객이나 여행객을 배척하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가문에게 불명예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구두쇠라도 일단 기본적인 식사와 잠자리는 베풀었다. 오늘날에도 문명국끼리 외교관에게 면책 특권보장하는 것도 각 국가의 명예를 지켜주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전근대시기 국민국가와 법 질서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던 적자생존의 무법지대인 유목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유목집단 모두가 지키고 넘지 않았던 선이라 할 수 있다.

2.3. 정보 교환 및 반가움

애초에 손님이 무기를 든 강도거나[8] 마을에 식량 자체가 부족하여 대접할 형편이 못되는게 아닌 다음에야 딱히 적대할 이유도 없었다. 여행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소식들은 전근대 시기에는 매우 값진 것이었다. 옛날엔 인터넷은커녕 신문도 없었기에 정보들을 접할 수단이 매우 빈약했다.[9] 이런 때 이방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지역 정세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정보들이었다. 특히 귀족이나 상인, 그리고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부농층은 정보를 통하여 혹시 모를 위기에 대처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기도 하였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10] 그중에서도 상인들은 만약 그 지역에서 장사를 하게 될 경우에는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반대로 손님인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현지인으로부터 여행에 도움이 되는 현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11]

설사 이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도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경험은 자극이 부족해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을 옛 사람들에게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여행 프로를 보는 듯한 만족감을 선사하였다. 설령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여행자의 색다른 행색이나 옷차림만으로도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잘 안 다니는 오지라면 일단 여행자도 묵을 곳을 찾았으니 다행이겠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외로움 속에서 지내다가 말동무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값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집주인이 여행객에게 '식사도 드리고 잠자리도 내드릴 테니 오신 김에 하룻밤 쉬어 가시라'며 붙잡기도 한다. 여행객 입장에서도 그 정도의 오지라면 하루쯤 쉬고 가지 않으면 탈진해 조난까지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 고맙게 받아들이는 일이 많았다.

3. 손님을 정말 접대하고 싶지 않다면

거주지는 주인의 소유물이기에 손님을 거부하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전근대 사회에서도 주인이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물론 자주 거절한다면 야박하고 인색하다는 평판을 받게 될 것이고, 특히 합당한 이유 없이 손님을 거절하는 것은 주인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행위로 여겨지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일단 손님으로 받아준 뒤에 그를 해치는 것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최악의 범죄행위로 여겨진 것에 비하면 비교적 사소한 흉거리에 불과했다.

조선 시대의 암행어사 일기라든지 여러 여행 기록들을 보면, 그 지방에 흉작이 들었을 경우 당연히 손님 접대를 하지 않고 문전박대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 손님 접대를 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런 경우는 크게 흠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툴툴대고 대접이 시원찮지 않아서 손님이 불만을 표하기는 하나 어쨌든 일단 방이라도 내주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12]

합당한 이유 중 하나로는 '집안에 우환이 있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손님을 대접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명분으로 약간 부족한 것이, 가난하거나 바빠서 제대로 된 대접을 할 여유가 없다면 초라한 대접이라도 해주면 되고, 대접의 초라함을 불평하는 것은 오히려 손님의 큰 흉거리가 되기 때문이다.[13] 그보다 이미 찾아온 손님을 거절할 명분으로 적절한 것은 집안의 걱정거리나 흉사로 손님에게까지 피해를 끼칠까 두렵다는 것으로, 이것은 '손님을 위한 거절'이 되는 것이니 충분히 정당한 명분이 된다. 특히 한국의 전래 민담을 보면 의외로 손님을 거절하는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들이 대부분 이 유형에 해당한다. 지나가던 길손이 하룻밤 유숙할 것을 청하는데 "집안에 큰 우환이 있어 되려 손님께서도 변을 당하실까 두려우니 죄송하지만 다른 집에 머물러주시라"라며 정중히 사과하며 거절하는 것이다.[14]

대표적인 접대의 관습 위반 사례인 타타르족의 예수게이 독살을 살펴보자. 일단 예수게이의 키야트 씨족과 타타르족은 이미 예수게이의 할아버지인 카불 칸 시절부터 싸워 온 명백한 적이었다. 이런 인물이 손님으로 찾아온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는 평소에는 적이지만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지금은 손님이라고 인정하고 대접한 뒤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것으로, 이는 타타르족을 관대하고 명예로운 씨족으로 널리 알려 그 평판과 명예를 크게 높일 만한 행동이 된다.

하지만 숙적을 두고 그렇게까지 사람 좋게 굴 수는 없다면, 예수게이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방법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손님을 문전박대하는 이들은 구두쇠라며 경멸받았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손님을 거절하는 것은 주인의 권리이다. 마침 찾아온 이가 오랜 시간 동안 싸워온 숙적이었다면 손님으로서 받아들이길 거부할 명분으로선 충분히 차고 넘친다. 이 경우 '쫓겨날 것이 뻔한 자리에 뭣하러 찾아가서 비웃음을 자초하느냐' 내지는 '신분을 숨기고 온 수상한 사람이 대접받는 걸 기대하냐' 같은 식으로 오히려 예수게이에게 비웃음을 덮어씌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타타르족을 야박하다고 비난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

만약 타타르족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게이를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더라면 그를 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전사들을 모아서 싸움을 거는 방법이 있었다. 이 역시 당시 초원의 부족사회에서 별다른 은원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을 다짜고짜 해치는 이들은 크게 경멸받았지만, 이미 적대관계인 이상 적대 부족의 영역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예수게이 자신의 책임이며, 타타르족으로서는 무슨 이유로든 자기네 앞마당에 스스로 들어온 적을 가만히 놔둘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예수게이 역시 타타르족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는지 가짜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겼는데, 이는 '주인을 속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접대의 관습에서 손님의 책임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즉, 타타르족 입장에서 예수게이는 본래부터 적이었고 신분까지 속이고 들어왔으니 손님으로 맞아들일 이유가 없다. "자기 이름과 정체를 숨기고 우리 부족에 들어오려고 했으니 염탐하러 왔거나 밤중에 몰래 죽이려는 게 아니냐?"라며 자신들이 정당하게 예수게이를 죽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예수게이의 씨족, 예를 들어 자식인 테무진에게는 예수게이의 죽음에 대해 복수할 권리가 생기고, 타타르 족의 평판에 있어서도 명예를 실추시킬 만한 행태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타타르족은 그 행태가 가차없고 자비심이 없다"라는 부정적 인식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전쟁을 거듭하며 계속 원한을 쌓아가던 관계에서 또 한번의 원한이 더 쌓인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고[15][16] 평판 문제 역시 공적 및 객관적 기준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여 불명예스러운 이들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좋고 나쁜 평판이란 단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즉, 제3자인 다른 부족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적이라지만 손님으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데 그 자리에서 쳐죽이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신분까지 속이고 숨어든 적에게는 가차없이 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라고 여겨 평가가 갈릴 수 있는 문제인 것. 물론 이런 평가가 나쁜 쪽으로 크게 쏠리게 되면 그것 역시 타타르족의 평판을 떨어트리고 입장을 나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받아들인 손님을 해친다는 최악의 행위를 저지르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만약 예수게이가 이렇게 살해당했다면 제3자인 다른 부족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것은 단지 타타르 부족과 키야트 씨족 사이의 문제일 뿐 공적 윤리로 잘잘못을 가릴 문제가 아니게 되어 굳이 한쪽 편을 단죄하고 비난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양 부족 사이의 문제에서 갈등이 격화될 경우 평판이 더 좋은 부족이 동맹 세력을 확보하기 쉽다는 등의 장점은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르게 보면 적에게는 가차없이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쪽이 동맹으로는 더 든든하다고 여기고 타타르족의 편에 서는 쪽을 선호할 수도 있으니 평판이란 결국 상대적 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예수게이 문서에서도 설명된 것처럼 예수게이는 전형적인 유목민 전사-전쟁지도자로써 자수성가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기에 항상 적이 많았고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는 행적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만약 타타르족이 이 방식대로 예수게이를 만나자마자 죽였으면 주변 유목 세력들에게도 '저러다가 어디 가서 비명횡사할 줄 알았다' 정도로 넘어가고 말았을 일이고, 예수게이의 죽음 때문에 타타르족을 단죄해야 한다고 여기는 부족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타타르족이 저지른 행동의 문제는 바로 그를 모르는 척하고 손님으로 받아들인 후 대접한 음식으로 독살한 것이었다. 예수게이 역시 자신의 정체를 속이는 잘못을 먼저 저질렀으나 어쨌든 손님으로 받아들인 후에[17] 해친 타타르족의 잘못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예수게이의 잘못은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예수게이의 아들 테무진의 복수는 단순히 '혈족의 죽음에 대한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공적 윤리를 저버린 자들에 대한 응징'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고, 결국 타타르족이 키가 수레바퀴보다 큰 성인은 처형당하고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갈 정도로 처참한 보복을 당했음에도 칭기즈 칸의 적들마저 그들을 동정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4. 손님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손님도 자신에게 숙식을 제공한 주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18]

보통 자기 본거지를 떠나 여행 중인 손님보다는 본거지에 머무르고 있는 주인이 더 강자인 경우가 훨씬 많기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긴 하지만, 대부분의 접대 관습에서 '자신을 받아준 주인을 해치지 않을 의무'는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을 해치지 않을 의무'와 동등한 것이었다. 즉, 손님으로 들어와 주인을 해치는 것은 손님으로 위장하고 남의 집에 들어온 비열한 범죄로 간주되었으로 그 자리에서 때려죽여도 정당하다 여겼다.

게다가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 주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듯 손님 역시 찾아간 곳에서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 명예를 지키는 일이었다. 손님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속 집단을 대표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님이 주인에게 해 되는 일을 했다가는 작게는 같은 집안의 일원부터 크게는 같은 나라 사람까지 '그놈과 같은 집단 소속이라니 저자도 신뢰할 수 없다'라고 평가받는 피해를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 추태를 부린 자국민을 보고 나라 망신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유교의 시초인 공자의 일대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방랑하는 중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노부부가 사는 움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집이 너무 가난해서 음식은 이가 빠진 국그릇에 약간의 좁쌀죽이 전부고 잠자리는 짚으로 된 돗자리가 전부였다. 며칠 전 제후의 성에서 진수성찬과 좋은 잠자리를 제공받은 기억이 있는 제자들이 불평을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너희는 없는 형편에 자신의 식량을 대주고 잠자리를 제공한 노부부의 고마움을 모르고 이가 빠진 그릇과 좁쌀죽만 보았구나, 무릇 상대방을 정중히 대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정중히 대접한 주인에게 고마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제자들을 가르치니 제자들이 모두 얼굴이 빨개져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파리스가 자신을 환대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를 배신하고 헬레네와 불륜을 저지르는 바람에 트로이가 망했으며, 오이디푸스의 친부 라이오스도 자신에게 안전장소를 마련해 주고 환대한 이웃 왕 펠롭스의 아들 크뤼십포스를 겁탈하여 죽게 만든 일 때문에 신들에게 저주를 받아 친아들에게 죽는 최후를 맞이했다는 전승이 있다.[19]

신과 관련된 전설 뿐만 아니라 괴물과 관련된 전설에서도 접대의 관습의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흡혈귀의 전설이다. 흡혈귀는 집주인이 초대하지 않으면 함부로 집에 들어갈 수 없으며 들어간 후에도 초대한 집주인을 함부로 해치지 못한다고 한다.[20]

현대 창작물 중에서는 얼음과 불의 노래에 등장하는 크래스터밤의 경비대 사이의 갈등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데 좋은 예시가 된다. 크래스터가 워낙 비호감 악당캐인데다 그의 집에 방문한 밤의 경비대를 후하게 대접한 것도 아니었기에 현대인 독자의 감성에서는 "크래스터도 별로 잘한 것 없지 않으냐?"거나, "제오 모르몬트도 부하들의 불만을 다독일 생각은 하지 않고 너무 융통성없이 행동한 것 아니냐"는 감상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접대의 관습에 따라 보면 자기 사정에 따라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건 박하게 대접하건 그것은 주인의 권리이고, 손님으로 받아들여진 자리에서 집 주인을 공격한 것은 전적으로 아무 변명의 여지도 없는 밤의 경비대 대원들의 잘못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오 모르몬트 역시 자기 부하들의 행실을 두고 "저주받을 짓을 했다"고 격분한 것.

만약 손님이 고의성이 전혀 없는 실수로 인해 주인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 즉시 주인에게 깊이 사죄하고 주인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 책임을 져서 배상을 해 주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다.

4.1. 선물

손님은 주인에게 받을 대접에 대비하여 미리 성심성의껏 선물 등을 준비해서 가져가는 것이 관례다. 이는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절로 한국에서도 '타인의 집을 방문할 경우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으며, 이는 현대에도 유효해서 '집들이 선물'로 정착했다. 주로 주는 선물은 주스나 과자 같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 혹은 휴지 등과 같은 생활용품이 가장 보편적이다. 몽골에서도 방문할 경우 선물을 들고 간다. 일본에서도 타인의 집을 방문할 경우 선물을 들고 간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미국, 유럽 등 서구권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예절이라서 남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을 경우 같이 곁들일 수 있는 와인 등을 선물로 가져가는 게 예의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한 문화권에선 선물로 적합한 것이 다른 문화권에선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음식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21] 만국 공통 호의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접대의 관습에 호응하여 부족 사회 시대부터 내려온 중요한 관습 중 하나가 '선물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물은 상대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자 서로를 친구로 대하자는 제안을 전달하는 매개이므로 이를 거절한다는 것은 곧 "나는 너를 친구로 보지 않는다"와 "너와 나는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는 관계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손님이 들고 간 선물을 주인이 거절한다면 이는 손님 입장에서도 상대가 자신을 우호적인 손님으로 보지 않고 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으므로, 좀 아양을 떨어봐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내빼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 것. 예의란 언제나 상호적이므로, 러시아 등 동유럽에서 주인이 내온 빵과 소금을 손님이 거절하는 것은 곧 손님으로서 주인을 존중하지 않고 상대를 해칠 뜻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과 마찬가지이다.[22]

5. 의의

사학, 인류학계에서는 이러한 접객과 상호신뢰의 관습을 인류가 타 동물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 차이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동물은 거처를 옮겨다니는 철새가 아닌 이상 무리생활의 여부를 막론하고 자신의 구역을 침범한 타 개체를 적대시하며 내쫓으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만은 자신의 구역에 들어온 다른 개체를 무작정 공격하지 않고 상호간 기본적 신뢰를 바탕으로 숙식을 제공하여 환송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더 나은 문물과 문화를 공유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접대의 관습은 에티켓 등의 관습은 물론이고 여관, 식당, 역참 같은 서비스업의 모태가 되었으며[28] 국가적인 규모에서는 외교관례라는 개념을 발생시켰다. 현대에 타국 정상이 방문하면 의장대를 불러 환영하고 만찬을 베푸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6. 문화권별 양상

6.1.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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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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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이슬람

사막에서 길을 잃은 채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그네
밤중에 어둠의 문과 장막이 주변에 도사리네
나는 그를 위해 불을 밝혀 그가 길을 찾아오게 했고
사나운 나의 개들이 으르렁거리지 못하게 했다
그대여 나의 천성에 관해서는 물을 필요도 없소
내게서 냄비를 빌려간 자는 그 안에 음식을 담아 돌려주지
그들은 냄비 주변에 앉아 요리가 될 때까지 기다렸고
마을의 처녀가 불을 지폈다
그대여 보시오. 나의 냄비는 추위에 떨면서
먹을 것을 달라며 찾아오는 자에게는 마치 어머니와 같소
그 불 주변에는 장막을 치지 않았지
다른 불들이 꺼지더라도 그 불빛은 훤히 보였다
젖이 돌지 않는 암낙타가 방목지에서 돌아왔을 때
그 불임 낙타는 칼날을 맛보았다.
자힐리야 시대[29] 아라비아 시인 아우프 이븐 알아흐와쓰의 시.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풀며 음식을[30] 제공하는 부족의 모습을 담았다. <무알라까트> 29-30p에서 발췌.
이슬람에서는 손님이 방문했을 때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무슬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31] 이것은 아랍 유목민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으로, 유목민들의 손님에 대한 환대는 숭고한 덕목으로 간주되며 극진한 환대를 베푸는 것이 자신의 품격과 위신과 명예를 높인다고 생각한다. 환대의 관습은 사막이라는 절박한 환경에서 누구나 길을 잃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해 길 잃은 자에게 환대를 베풀어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재앙을 피해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

환대의 규율에 따라 도망자라 할지라도 손님이 되면 주인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를 지켜 주어야 한다. 주인은 객을 맞이하여 그의 체력 회복을 돕고 보호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아랍인들의 집이나 가게 앞에는 물이 가득 든 항아리와 컵을 놓아두어 목마른 자들로 하여금 마시게 하는데, 이는 이러한 손님 접대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환대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통으로 유지돼 친지나 친구 간의 상호방문이 매우 빈번하고 정해진 약속 없이도 비교적 자유로이 이루어진다. 찾아온 손님에게 주인은 최선을 다해 환대하며 자신이 급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손님에게 불쾌한 기분을 주지 않기 위해 손님과의 시간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이러한 손님 환대에 대한 관습은 집의 구조에서도 잘 나타난다. 무슬림 가정의 대부분은 커다란 홀을 가지고 있다. 이 홀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것으로써 가족들의 방보다 우선하여 비중을 두고 있다.
요르단 대한민국 대사관 문화정보 중
이슬람권에 속한 중앙아시아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빵과 소금'의 관습이 존재하며,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손님이 방문했을 때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무슬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민족들이 많았던 만큼 자신들도 누군가의 손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32]

아라비안 나이트 중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도적 두목이 상인으로 변장하고 복수하고자 알리바바의 초대에 응했을 때 음식을 주문할 때 소금을 빼달라고 한다. 알리바바는 이를 몰랐는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마르자나는 그의 정체가 손님이 아닌 복수자임을 의미한다고 언급한다.[33] 소금을 알리바바에게서 받아버리면 알리바바의 손님이 되므로 알리바바를 해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34] 달리 보면 한낱 도적조차도 접대의 관습을 대놓고 어기지 않으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영역본을 쓴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은 이에 대해 유럽의 접대의 관습과 성격이 같다고 주석으로 언급하였다.[35] 결국 도적 두목은 칼춤을 추며 접근한 마르자나에게 죽는데, 두목이 손님으로서 접대의 관습을 지키지 않으려 했으니 마르자나가 그를 죽인 것 역시 알리바바가 주인으로서 접대의 관습을 어긴 것이 아니게 된다.

요르단 왕국에서 반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은 모르는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일 동안은 융숭하게 먹여주고 재워주는 전통이 있다. 반드시 촌장이 대접해야 하며 식사는 손님이 먹은 다음에야 먹으며 손님에게 차 혹은 술을 3번 따라주고 노래를 틀고 데헤이에[36]라는 전통춤을 추며 노는데 첫 잔은 손님에게, 두 번째 잔은 손님의 명예로운 칼[37]에게, 세 번째 잔은 손님을 기분 좋게 해주는 잔이며 몽골의 유목민과 마찬가지로 허튼 수작부리지 말고 취해서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다 가라는 뜻이 있어보이지만 치안이 옛날보단 괜찮아진 요즘은 그런 뜻은 사문화가 된 듯 아주 작은 술잔이나 취하지 않게 차를 대접해준다. 밤에 신나게 춤추는 건 그대로다.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복무한 적이 있었던 한스 폰 루크는 그의 저서 '롬멜과 함께 전선에서'에서 그와 부하들이 베두인에게 후한 접대를 받은 바 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던 도중 한 부하가 과일을 담은 은쟁반을 보고 정말 아름답다고 칭찬하자, 촌장이 그 자리에서 그 은쟁반을 선물했다고 한다. 손님이 집안의 어떤 물건을 보고 칭찬하면 그게 뭐가 되었든 선물해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거절했다간 독일군과 베두인 사이의 관계가 틀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감사히 받고 나서 며칠 뒤 독일군 진지에 베두인을 초대해 성대하게 접대하는 것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이런 관습은 현대에도 꽤 남아있는지, 여러 사례들이 계속 기록되고 있다.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어느 소련군 정찰대가 작전 수행 도중 여자들만 있던 민가에 들어갔다. 원래 폐쇄적인 아프간 전통상 여성들은 남편 없이 외간 남자를 만날 수 없었지만 집에 찾아 온 손님을 제대로 대접해야 하는 또 다른 전통도 있어서 이 여성들은 소련군들에게 먹을 것을 대접했다.[38]

이라크 전쟁 이후 도시에 숨어든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러 미군 저격수를 민간인 가정에 매복시켰는데, 이라크 국민들이 미군을 사실상 적으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저격수들에게 성대한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39]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레드 윙스 작전의 생존자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이 근처 마을로 내려가서 주민 모하마드 굴랍 칸(Mohammad Gulab Khan)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모하마드는 접대의 관습에 따라 미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러트렐을 치료해주고 보호해주었다. 심지어 러트렐은 잡으러 온 탈레반들조차도 모하마드가 '이슬람 율법에 나온대로 저 사람을 보호하겠다'라고 말하자 그를 존중하며 군말없이 물러갔다.

현재도 이슬람의 성지로 유명한 메카를 방문하면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나 물을 공짜로 얻어먹을 수가 있다고 한다. 이는 멀리서 메카를 방문하는 무슬림에 대한 오래된 관습이라고 한다.

2012년에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역사의 땅 이스라엘'에서도 네게브 사막에서 노숙을 할 뻔했던 취재진이 베두인을 만나 하룻밤 식사와 숙박을 제공받는 장면이 나왔다. #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인구 조사를 하러 온 조사원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말자'는 공익 캠페인도 있다. 인구 조사원을 손님으로 인식하는 건 좋은데 손님이라고 성대하게 음료와 식사를 대접하고 있으면 업무에 지장이 생길 테니까 나오는 말이다. 조사원을 들이는 집에서야 조사원 한 명에게만 대접을 하면 되는 일이지만 조사원 입장에서는 가는 집마다 뭘 계속 받아먹자니 위장이 못 버틴다. 게다가 본 문서에서도 여러번 설명되었듯 접대의 관습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에서는 주인이 대접하는 음식을 손님이 거절하는 것은 큰 무례가 되기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해당 캠페인과 접대 문화는 2022년 전세계 인터넷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스웨덴게이트에서 반대 사례로 재조명받기도 했다.

심지어는 전쟁 중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사람조차도 "구 소련과 전쟁 중일 때도 나지불라 정부군, 탈레반과 내전 중일 때도 집에 먹을 것이 오래된 빵과 요거트밖에 없을 때에도, 손님 접대는 제대로 했다."라면서 "스웨덴은 척박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생겼을 거다."라는 스웨덴 사람의 주장에 대한 반박 댓글을 올려서 더욱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기서 "오래된 빵과 요거트밖에 없다"는 말은 한국식으로 치환하면 "쉰 밥에 김치밖에 없다"와 거의 동급이다.

6.4. 북극권

이 지역은 인구 밀도가 워낙 낮은 데다 한번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하면 운이 나쁘면 2~3개월은 머물러야 하니 당연히 접대가 중요하다.

6.5. 유대교/기독교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3:2
고대 유대인들에게도 이와 같은 풍습이 있는데, 성경에도 손님에 대한 접대 묘사가 많은 편이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나 이 나그네로 변장한 천사들을 극진히 접대하고 나그네의 안전을 자기 가족을 희생해서라도 보장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인간의 모습으로 온 하느님과 천사들에게 송아지 요리와 치즈를 대접했으며,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 확인차 천사들이 의 집에 찾아오자, 소돔의 폭도들이 천사들을 겁탈하기 위해 롯의 집에 몰려들어 손님들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자 롯은 손님들 대신 이미 약혼한 상태였던 자신의 딸들을 내주려고 했다.

현대 기준으로는 워낙 터무니없는 방법이라 종종 롯도 소돔 물이 들었다고 여기는 의견도 있지만 이걸 단순히 '롯이 딸들을 팔아넘겼다'라고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 아무리 고대 근동에서 여성 인권이 낮았다고 한들 가장이 집안 여성을 지키는 것은 중대한 의무였고, 집안 여성이 모욕당하면 복수할 권리와 책임을 지게 되는 것 역시 당연시되는 일이었다.

가족들을 지켜야 하는 가장의 의무와 손님들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접대의 관습 중 양자택일로 후자를 고른 것, 즉 후자가 더 무겁고 중요한 책임이라고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롯 역시 소돔에 정착하면서 기반이 생겼기 때문에 주변 주민들과 완전히 척을 지긴 힘든 상황이긴 했던 것이며 한편으로 주민들에게 보내는 경고로 볼 수도 있다. 롯의 집안은 상당히 부유하고 소돔 내에서는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손님을 건드리면 나하고 척질 각오해라"를 돌려 말한 것이다. 게다가 그런 롯의 딸들이면 역시 상당한 지위와 재산을 가진 집안과 약혼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니, 소돔 폭도들이 정말 롯의 딸을 강간한다면 롯의 집안 뿐 아니라 그 약혼자의 집안과도 적대관계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대형사고 내기 싫으면 허튼 수작 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의미가 된다는 것.

사실 소돔고모라는 바로 멸망할 운명이었지만 롯의 숙부 아브라함의 구명으로 한 차례 구원받을 기회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이전에 소돔 지역이 전쟁에 휘말려 롯을 포함한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가자 사병들을 동원해 이들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소돔 왕에게 감사의 표현 없이 "우리 사람들 이리 데려오고 전리품은 알아서 가져가쇼"라는 식으로 푸대접을 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소돔을 방문했을 테니 이들의 싹수가 노란 것을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브라함이 "하느님, 잠깐 고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그 큰 성에 의인들은 있을 텐데 악인들이 많다고 그 의인들까지 죽이시는 건 과하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하느님에게 애원하여 10명의 의인이라도 있으면[40] 구원받을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손님을 범하려는 폭도들의 행태에 이 도시는 그 10명의 의인조차 없다는 걸 확인한 천사들은 본모습을 드러내 몰려온 폭도들을 일시적으로 장님으로 만든 뒤 롯과 그의 식솔만 빼내고 두 도시는 떨어지는 불길에 싹 지워졌다.

참고로 창세기에는 롯 이후 등장하는 야곱 일가를 다룬 34장을 보더라도 여동생인 디나가 인근 부족의 족장의 가족 세겜(스켐)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 청혼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누이가 모욕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보복으로 성읍의 부족들을 몰살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 언급했던 당시 중동이 집안 여성의 명예에 대한 복수를 한 셈인데 문제는 이 둘이 반대로 일종의 관습을 무시한 행위라 볼 수 있었다. 디나가 성폭행을 당한 것은 물론 큰 문제였으나 적어도 세겜 쪽이 먼저 디나를 정식으로 혼인해 이를 수습하려 했으며 야곱 입장에서도 유력 부족과의 혼인을 맺음으로서 소란을 수습하기 좋은 방법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시므온과 레위가 가장인 자신을 무시하고 대형사고를 쳤으니 이로 인해 '야곱 집안은 남의 호의를 무시하고 비열한 방법으로[41] 뒷통수나 치는 위험분자들'이라는 인식이 생겨도 이상할 것이 없다. 결국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큰 분노를 품고, 죽기 직전에는 대부분의 자식들에게 크고 작은 축복을 내려준 반면 시므온과 레위는 장남 르우벤과 함께[42] 저주를 퍼부었을 정도였다.

이후, 판관기에서도 롯 때와 마찬가지로 첩과 길을 가던 레위인이 밤이 깊어 한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동네 불량배들이 그를 겁탈하기 위해 요구하자 집주인이 그를 내보내는 대신 자신의 딸을 넘겨주겠다고 제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이후 그 레위인은 자신 대신 자신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넘겨주고 밤새 강간당한 첩은 시체로 발견되어 이스라엘 전역으로 토막쳐서 보내지게 된다. 이 집이 베냐민 지파 세력권에 있었기 때문에 진상요구를 거부하는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와의 갈등이 타져 내전이 일어나고 만다.

다윗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때, 나발이라는 한 지주의 잔치에 손님으로 찾아갔다 문전박대를 당한 바 있다. 다윗은 이전에 나발의 양치기들을 아무 대가 없이 지켜준 적도 있었으나, 나발은 친사울파였기에 관습을 무시한 채 그를 쫓아낸다. 사실 친사울파가 아니었다고 해도 당시 다윗의 처지를 보면 비호하는 건 당시 큰 위험이었다. 이전에 다윗에게 우호적인 친아들 요나단을 죽이려 들거나 다윗을 도와줬던 야훼의 제사장들이 사울에게 학살당한 전례도 있었고, 다윗도 어느 정도 관용이 있었기 때문에 나발이 적당히 거절했더라도 이해해줄 터였다.

그런데 나발이 대놓고 다윗을 모욕하는 바람에 분노한 다윗이 무리를 이끌고 나발의 영지를 공격하려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먼저 다윗을 만나 달래면서 보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아비가일이 이 사실을 알리자 충격을 받은 나발은 쓰러지고, 하느님의 천벌을 받아 얼마 후 병으로 사망하며, 이후 나발의 아내는 다윗에게 재가한다.

사무엘상에서 사울 역시 무녀를 찾아가 손님으로서 송아지 요리를 대접받았다. 사울은 예전에 무당처럼 귀신을 영접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내쫓았지만 사울은 당시 하느님에게 버림받아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아무 예언을 들을 수 없었기에 정체를 숨기고는 무녀를 찾아갔다. 이로 인해 무녀는 사울에게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했으나, 영매를 통해 나온 사무엘의 저주에 정신이 붕괴된 사울을 보자 마음이 바뀌어 빵과 송아지를 잡아 대접하게 된다.

기도와 관련한[43]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밤중에 찾아온 친구' 이야기도 이 접대의 관습을 배경으로 한다.

구약의 이러한 일화들 덕분에 기독교에서도 손님을 환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는 기독교 단체의 기부, 봉사 정신에도 영향을 주었다.

6.6.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접대의 관습이 있었다. 메이플라워 호의 영국인들은 왐파노아그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모조리 굶어 죽었을 것이다. 원주민 부족에 온 이방인이 원주민들과 서로 통성명을 하고 파이프 담배를 나눠 피며 친구가 되는 장면은 클리셰.

또한 남부의 환대(Southern hospitality)라고 하여 미국 남부 지역은 손님 대접이 친절하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주로 메뉴는 옥수수빵과 문샤인으로 대표되며, 팀 포트리스 2엔지니어의 근접무기 '남부의 환영방식(Southern Hospitality)'도 여기서 이름을 따 왔다.

타이노인들도 콜럼버스 일행을 반기며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려고 했을 정도였고, 다른 스페인인들도 함께 친구가 되는 의식을 하기도 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 마을에 가면 감자와 옥수수를 푸짐하게 내어주고 라마나 알파카를 잡아 요리해서 대접하기도 한다.

6.7.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치안이 위험하기로 소문난 소말리아, 말라위[44], 부룬디, 그래도 가난하지만 위 세 나라들보다 국가 사정이 훨씬 좋은 르완다 등지에서도 접대의 관습이 있다고 안내되거나 실제 접대에 대한 자국민 및 외국인 관광객들의 경험담이 존재한다.

부룬디는 2022년 IMF 통계 기준 세계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나라인데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친밀함을 중시하는 관념에서 우갈리염소고기 등으로 접대를 하며, 동아프리카 전체에서 이런 관습이 있다고 한다.

7. 사례

7.1. 유명 사례

7.2. 어긴 예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똑같을 순 없는 것처럼 접대의 관습은 전세계를 막론하고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동시에 역사적으로 대놓고 어기거나, 철저하게 지켜진 건 아니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관습을 어긴 자는 도덕적 규탄이나 비난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보복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상대가 이런 식으로 유인하여 제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사악하거나 위험분자인 경우도 있어서 어긴 것을 두고 반드시 나쁘다고 하기 뭣한 경우도 의외로 꽤 있었다.

7.2.1. 주인이 손님을 공격한 사례


7.2.2. 손님이 주인을 공격한 사례

아래의 사례는 위의 사례들과는 다르게 손님이 해당 지역의 주인에게 대접을 받았음에도 주인을 공격한 사례다.

8. 대중 매체

접대의 관습을 확실하게 언급하거나, 적어도 그걸 지키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 등재.

8.1. 나니아 연대기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 편에서 캐스피언 왕자가 의식을 잃은 후 예전 나니아인들의 집에서 깨어났을 때 어떻게 할지를 논할 때 검은 난쟁이 니카브릭이 "지금 당장 죽여버리자"고 하자, 붉은 난쟁이 트럼프킨은 "죽이려면 그 자리에서 죽였어야 했어. 아니면 거기에 내버려두거나. 지금 죽이면 손님을 해치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8.2. 늑대와 향신료

중세 유럽 고증으로 유명한 일본의 라이트 노벨 늑대와 향신료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된다. 늑대와 향신료 14권에서 "이 마을의 관습상 여행객은 촌장이 혼자 대접하는 것이 예의인지."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8.3.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본편에서는 언급이 없지만, 확장팩인 블러드 앤 와인에서 이 관습을 지키지 않았다가 저주를 받아 망령(Wight)으로 변해버린 인물이 등장한다.

본래 이름은 마를렌 드 트라스타마라로 백여 년 전의 사람이다. 장원을 물려받을 부자였는데, 어느 날 친구들을 불러서 연회를 열었다. 이 때 어떤 거지가 숟가락과 그릇 하나를 가지고 구걸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구걸을 하러 온 거지도 엄연한 손님이므로 접대의 관습에 따라 당연히 대접을 해줘야 했다. 하지만 마를렌은 옛 풍습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던 사람이었고 남은 음식을 거지한테 주느니 차라리 개들에게 주겠다며 문전박대를 해버렸다. 그러자 그 거지는 분노하여 숟가락을 부러뜨리면서 이런 내용의 저주를 걸었다. "연회를 하고 있었으니 '그 누구도 당신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며, 외모가 아름다웠으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게 될 것'이며, 빵부스러기조차도 주지 않았으니 '어떤 숟가락도 굶주림을 채워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반점망령으로 변해버린 마를렌은 저주를 풀기 위해 약 100년 간 많은 숟가락을 훔쳤고 사람들을 납치해 강제로 자신과 식사하도록 했지만 저주를 풀지 못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나중에 밝혀지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의지로 함께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쓰지 않고 식사를 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거울이 아닌 물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게임에서 리비아의 게롤트의 선택에 따라 저주를 풀 수 있다. 인간으로 돌아온 마를렌은 저주 그 자체보다 지인들이 수명을 다해 죽어가는 걸 보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이후엔 게롤트의 저택에서 요리사로 취직한다.[65]

정황상 이 거지는 하츠 오브 스톤에 등장하는 군터 오딤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저주 내용을 설명할 때 흘러나오는 하츠 오브 스톤 메인 테마곡으로 반쯤 확인사살했다.

8.4.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가 적대 가문인 줄리엣의 집 무도회에 가면을 쓰고 몰래 숨어들어갔다가 줄리엣을 처음 만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때 로미오를 알아챈 줄리엣의 친척 오빠 티볼트는 저 몬테규 가문 놈이 우리 잔치에 오다니 가만 둬선 안 된다며 펄펄 뛰지만, 줄리엣의 아버지 캐퓰릿 가주는 오히려 티볼트를 꾸짖으며 로미오를 못 알아본 척 그냥 두었다.

물론 작중 초반부에 베로나의 영주가 캐퓰릿과 몬테규 가문에게 한 번만 더 분쟁을 일으키면 엄벌하겠다는 명을 내린 것도 있지만, 이 장면에서 캐퓰릿 가주는 "영주님 명령 잊었느냐, 분쟁을 일으키지 마라"라고 한 게 아니라 "진정 좀 해라. 비록 몬테규지만 저 녀석은 사리분별 잘 하고 예의를 아는 청년이라 들었다. 내 집에서 망신을 시키다니 안 될 말이다"라고 한다. 젊은 티볼트보다 사회생활 오래 해봤을 캐퓰릿 가주가 법 대신 '저 녀석도 명예를 안다면 조용히 놀다 갈 테니, 저놈이 먼저 허튼 짓만 않으면 우리도 곱게 두는 게 명예로운 일이다'라는 접대의 관습을 내세운 것. 현실 역사에서 예수게이가 타타르족 마을에 방문했을 때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다만 또 여기에는 가주가 개인적으론 로미오를 좋게 본 것도 한몫했다.

결국 티볼트도 그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었지만, 무도회가 끝나고 얼마 후 거리에서 제 성미를 못 이기고 달려들어서 시비를 걸고 로미오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지 마세요."라고 점잖게 말리는데도 "거짓말 마라, 지난번에 염탐하러 온 거지? 싸우자."라고 악을 쓰는 일로 영주의 조카이자 로미오의 절친 머큐시오가 화가 나서 "이것 봐! 내 친구는 싸울 마음이 없는데, 계속 달려든다 이거지? 오냐, 그 고약한 성질머리를 고쳐주어야겠군."이라고 나서서 대결하고 이로 인해 머큐시오가 티볼트의 손에 살해당하자 친구를 잃은 로미오는 티볼트를 죽여버린다. 물론 이것도 충분히 문제가 될 일이고 결국 로미오가 추방되는 결과를 낳지만 무도회가 아닌 거리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접대의 관습을 어기진 않았다는 게 포인트.

8.5. 맥베스

맥베스에서는 위의 캐퓰럿 가주와는 반대로 주인으로서 접대의 관습을 깬 사례가 나온다. 맥베스는 자신이 왕이 되리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는 자기 집에 온 스코틀랜드 왕이자 사촌형제인 던컨을 암살한 뒤 왕위를 찬탈한다. 하지만 암살을 실행할 때까지도 꺼림칙해하는데 이때 이유로 든 것이 '왕은 친척이자 신하인 나를 믿고 있고, 집주인이 제 집에 든 손님에게 칼을 겨누는 법은 없다'이다. 결국 암살을 실행하고 나서도 자신은 죄책감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으리라고 괴로워하는데, 이때 말하는 대사가 그 유명한 "다시는 잠들지 못한다, 맥베스는 을 죽였다!"이다.

8.6. 몽테크리스토 백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에도 이를 간접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에드몽 당테스가 백작의 신분을 가지고 파리 사교계에 나타난 뒤, 원수인 페르낭 드 모르세르의 집에서 연 무도회에 참석한다. 이때 메르세데스는 아들인 알베르를 시켜서 백작에게 음료나 음식을 꾸준히 권했다.

이는 단순히 집주인으로서 손님에게 대접하려 한 게 아니다. 메르세데스는 이미 백작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백작의 복수를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백작이 음식을 받아들인다면 메르세데스로선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손님으로서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주인, 즉 페르낭과 메르세데스에게 적대심이 없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중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백작은 끝까지 음식을 거부했다. 메르세데스가 온실에서 함께 산책하겠다는 백작과 단 둘이 있을 때 메르세데스가 직접 온실의 과일을 권유했지만 이 역시 거절하고 오히려 모르세르 가에 대한 적대를 에둘러 표현한다.

메르세데스가 백작의 과거에 대해 묻자, 백작은 '나는 몰타 출신으로 고향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전쟁에 참전하러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니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더라'라고 자신의 과거를 각색해 말해준다. 이 말에 메르세데스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백작님을 괴롭게 한 것에 대해 용서하셨나요?"라고 물으니 백작의 대답은 "그녀는 용서했습니다." 즉 메르세데스는 용서했지만[66] 페르낭을 포함한 자신의 원수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 메르세데스도 총명한 사람이라 이 뜻을 한번에 알아들었다. 결국 메르세데스는 백작의 복수심을 확인하고 절망한다.[67] 마침 이 부분이 나오는 챕터의 제목이 '빵과 소금'이다. 작중에서도 동양[68]의 빵과 소금 풍습을 언급한다.

이 장면 이전에 백작이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도 백작은 (자신의 원수들인 빌포르와 당글라르를 포함한) 손님들에게만 음식을 먹게 하고 자신은 먹지 않았는데, 접대의 관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원수들과는 물 한 모금도 같이 마시고 싶지 않았던 듯.[69] 나중에 모종의 사유로 백작에게 의심을 품게 된 빌포르와 당글라르 부인[70]의 대화에서, 빌포르가 "백작은 정말이지 음식을 한입도 하지 않았소. 누가 보면 그가 우리를 전부 독살하려고 했다고 오해했을 거요."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물론 백작의 복수 계획은 독살로 목숨을 빼앗아 끝내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치밀했지만.

다만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접대의 관습과 같이 전근대로부터 이어져온 규범이 가지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 근대 이후의 작품이기 때문에, 본작에서 묘사되는 '접대의 관습'은 주인공의 이국적이고 신기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에 더 가깝다. 작중 언급처럼 '동양의 신기한 관습'과 '그런 관습을 따르는 신비한 인물인 백작'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접대의 관습에 대한 작중 묘사는, 정말 해당 관습이 유의미한 사회(예를 들어 부족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엉터리로 느껴질 만한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일단 상대방을 초대하거나 상대방에게 초대받았으면 이미 손님-주인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초대는 했지만 밥은 같이 안 먹었다' 같은 핑계로 자신이 접대의 관습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알리바바 이야기의 비열한 악역이 '주는 음식은 먹었지만 소금을 뺀 음식이었으니 빵과 소금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핑계를 대는 것과 비슷한 유치한 속임수다. 접대의 관습을 진정으로 지키고자 했다면 아예 초대를 거절하거나, '지난번에 함께 식사했을 때는 손님과 주인으로 만난 것이니, 나도 너희를 해치지 않았다. 하지만 너희는 본래 내 적이니, 그 자리가 끝나고 내가 너희를 공격하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주장하는 쪽이 더 그럴싸할 것이다. 왜냐하면 접대의 관습이란 그 자리에서 주인과 손님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약속이지 양자간의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데 부족사회의 동맹관계도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니 한때의 동맹이 이후에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한때 손님으로 방문했던 부족과 이후 적이 되어 맞서 싸운다고 해서 그것이 접대의 관습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접대의 관습에서 가장 멋있고 명예로운 행동으로 여겨질 법한 태도 중 하나가 (예수게이의 일화에서도 소개된 것처럼) "너는 본래 우리의 적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손님으로 왔으니 손님으로 대우하겠다", 즉 어제까지 싸워왔고 내일도 싸울 상대라도 손님으로 찾이온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안전을 보장하고 후하게 대접하는 것인 만큼 주인과 손님으로 만난 그 자리에서 그 관계를 이용해 상대를 직접 해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접대의 관습에 어긋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백작의 복수 방법 자체가 어차피 친구로 위장하여 상대를 속이고 함정에 빠트리는 것인데, 고작 밥 한 끼 먹는 자리에서 같이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몽테크리스토 백작 입장에서는 당글라르나 페르낭 등이 이것을 문제 삼더라도 충분히 반박할 근거가 있다. 에드몽 당테스가 체포되어 이프성 감옥으로 끌려간 것은 바로 메르세데스와의 약혼식 피로연 자리에서였고, 그를 음해하여 함정에 빠트린 장본인이던 당글라르와 페르낭은 이 자리에 하객으로 참석해 있었던 것이다.[71] 즉 상대를 해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을 숨기고 주인과 손님으로 한 자리에 있는 것 역시 넓게 보아 접대의 관습 위반이라 한다면, 이를 먼저 범한 쪽은 당글라르와 페르낭이다. 그리고 접대의 관습과 같은 상호적 규범이 대부분의 경우 먼저 범한 자의 책임이 훨씬 무겁고, 그에 대한 보복을 가한 자의 책임은 훨씬 가볍다.

결국 작중에서 접대의 관습이 다소 괴상한 형태로 등장한 것은, 작품 외적으로는 전통적인 접대의 관습을 생경하게 느끼게 된 당대(근세 말~근대 초) 유럽의 독자들에게 백작의 이국적이고 신비한 풍모를 연출하려는 목적, 작품 내적으로는 백작이 적을 대하면서 보이는 각오와 의지를 표현하는 장치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8.7. 미녀와 야수

유럽의 유명한 동화인 미녀와 야수도 접대의 관습에 관한 이야기다. 원판과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디즈니판의 내용이 좀 다른데, 원판에서는 한 상인(여주인공의 아버지)이 집에 돌아가던 중 어떤 성에 들렀는데 성 안에 아무도 없었지만 잘 차려진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야수가 손님 접대는 해야겠는데 자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저녁만 준비한 것. 상인이 식사하고 잠을 청한 뒤 다음날 아침 길을 떠나려는데 정원에 예쁜 장미[72]가 있어 막내딸에게 주기 위해 이를 꺾었다. 그러자 화가 난 야수가 나타나서 장미를 가져가는 대신 딸을 데려오라고 한다. 즉, 원판에서는 야수가 접대를 잘했는데 손님 쪽이 룰을 깨고 주인의 장미를 훔친 것. 실제로 여러 판본 중에는 야수가 "나는 너를 잘 대접해 주었는데, 네놈은 도둑질로 갚았구나!"라고 화를 내는 버전도 있다.

현대에는 원작보다 디즈니 버전이 더 유명한데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는 한 노파가 성에 찾아와서 하룻밤 묵게 해 줄 것을 청했지만 왕자가 노파를 비웃으며 이를 거절했다. 사실 마법사(Enchantress)였던 노파는 이에 변장을 풀고 본모습을 드러낸 후 마법을 걸어 왕자를 야수로 바꾸고, 성 전체에도 저주를 걸어 성 안 사람들도 가구로 바꾸어 버린다. 여기서는 왕자가 손님 접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 손님 접대 안 한 대가치고는 너무 심한 것 같지만(이 때문에 너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기는 하다[73]) 작중 신하들을 포함한 등장인물들도 왕자의 자업자득으로 본다는 것에서 미국에서도 손님 접대가 엉망이면 문제 있는 행동으로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녀와 야수 실사영화판에서는 두 가지 내용이 모두 나온다. 왕자가 저주를 받은 이유는 원작 애니 내용대로 노파로 변장하고 찾아온 요정을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야수의 분노를 산 이유는 야수의 성에서 대접받고 나가는 길에 장미를 꺾었기 때문.

8.8. 뱀파이어 헌터 D(Bloodlust)

2000년작 뱀파이어 헌터 D의 OVA에서는 접대의 관습이 어겨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귀족(뱀파이어)인 마이어가 연인인 샬롯과 함께 자신의 후원자이자 체이트 성의 주인인 뱀파이어 여왕 카밀라의 성에 손님으로서 방문했지만 부활을 위해 인간 처녀의 피가 필요했던 카밀라는 손님으로 찾아온 마이어와 샬롯을 환영으로 속여 마이어는 기절시키고, 샬롯의 피를 흡혈해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손님을 접대하지 않고 배신한 주인의 대가를 치른 건지 결국 찾아온 주인공인 D와 회복한 마이어의 협공에 결국 사망한다.

그 외에도 주인공 D가 기계말을 사기 위해 인간 마을에 손님으로 방문했지만 귀족(뱀파이어)과 그 혼혈인 담피르를 두려워한 인간들에 의해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8.9. 북유럽 신화

로카센나 이전의 신들과 요툰 사이의 일화에서 접대의 관습은 전반적으로 준수된다.

단적인 예로 오딘을 쫓아 아스가르드로 들어온 거인 흐룽그니르를 오딘이 손님 자격으로 초청하자, 흐룽그니르가 주사를 부리며 행패를 부리는데도 아무도 흐룽그니르를 해치지 않았고, 토르가 돌아와서 흐룽그니르를 위협하자 무장하지 않은 자신을 해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니 결투를 통해 승부를 가리자고 하고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74]

또한 로키를 사로잡고 토르를 꾀어내고서 해코지를 하려고 들었던 요툰 게이로드는 자신과 딸들이 모두 비참하게 죽는 최후를 맞이했고, 요툰 히미르도 손님으로 찾아온 토르와 티르를 직접 해하지는 못하고 이들이 집을 나서고서야 이들을 공격했으나 역시 토르에게 사망했다.

북유럽 신화에서 로키와 신들이 돌이킬 수 없는 적대관계가 되는 계기인 로카센나는 신들의 잔치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한 번 쫓겨난 로키가 접대의 관습을 들먹이며 억지로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 데서 시작한다.

8.10. 신곡 지옥편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안전을 보장한 손님들을 해하는 자들은 얼음호수 코퀴토스가 있는 지옥 마지막 9층인 배신지옥의 제3원 프톨로메아에서 다른 배신자들과 함께 얼음속에서 얼굴 바로 밑까지 갇혀 고통받는다고 묘사된다. 배은망덕 다음으로 끔찍한 배신이라고 한다.

적어도 죽은 이후에 끌려와서 고통받는 다른 죄인들과는 달리 손님을 해한 자들은 그 즉시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고, 지상에 남은 육신은 남은 일생동안 악마가 차지해 살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영혼이 산 채로 지옥에 가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여하간 제 집에 든 손님을 해친다면 그 순간부터 "저놈은 악마나 다름없는 놈이다"라고 보는 인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8.11. 아메리칸 스나이퍼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이라크에 파병된 크리스 카일SEAL 동료들이 '도살자'가 은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관측에 용이한 지점을 확보하기 위해 어느 민가를 급습하게 되는데, 그 집주인은 순순히 미군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오늘은 이슬람의 큰 명절이라며 미군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다들 별다른 의심 없이 식사를 하는데 크리스는 집주인의 팔꿈치에 굳은살이 박혀있는 걸 보고[75]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안방을 수색, 바닥에 은닉된 대량의 무기를 발견한다. 집주인은 반군의 일원이었으며 식사 대접은 흉계였던 것.

빡친 크리스는 집주인을 추궁해 그가 '도살자'의 부하라는 것을 알고 그를 이용해 '도살자'의 은신처를 급습하고 '도살자'를 폭사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그 과정에서 접대의 관습을 어긴 집주인은 미군에게 총을 쏘다가 죽는다.

8.12. 아일랜드 신화

아일랜드 신화의 신화 설화군에서는 브레스 왕이 손님으로 찾아온 음유시인 카르브러를 박대했다가 마법이 걸린 풍자시를 읽고 부정 축재한 재산과 명예, 그리고 왕위를 잃게 된다. 또한 브레스가 통치하던 시기, 그에게 빌붙어 다그다 모르를 협박해 손님이랍시고 밥을 뜯어내던 포모르족의 장님 음유시인 크리덴벨(Cridenbél)이 있었는데, 다그다의 집에 눌러앉아 좋은 요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러다가 다그다가 '가장 좋은 것'이랍시고 금화를 먹여서 목이 막혀 죽었다.

얼스터 설화군에서는 코나흐트인 브레프너의 벨후가 중상을 입은 적국 울라의 영웅 코널 케르너흐를 구조하여 치료하다가 딴마음을 먹고 죽이려고 한다. 이를 엿들은 코널은 벨후를 자기 침대에 눕게 하여 그를 죽이라는 명을 받은 벨후의 아들들이 벨후를 죽이게 한다.

8.13. 언어의 주인이란

언어의 주인이란에서는 작중 접대의 관습이 마술사들 간의 싸움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동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진다. 같은 수준의 마술사라도 자신의 성 안에 있는 마술사는 본래 수준보다 한 수준 높은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며, 접대의 관습으로 인해 손님으로 인정된 마술사도 본래의 수준보다 한 수준 높은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관습이 깨진 유일한 사례는 주인공 활동 시점보다 머나먼 과거, 일종의 네크로맨서들의 세력인 엠버밍 학계가 서로를 향해 접대의 관습을 무시한 채 내전을 벌인 것 뿐이고, 결국 엠버밍 학계는 몰락하여 그 이름이 역사에 기록되지도 못하게 되었다.

8.14. 얼음과 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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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원피스

알라바스타 편 위스키피크 에피소드에서 해적을 환영한다는 구실로 밀짚모자 일당에게 온갖 연회를 베풀어 주지만, 실은 이들 전원 바로크 워크스 소속 현상금 사냥꾼들이었다. 이들은 일행이 자는 틈을 노려 일당 전원을 살해하려 했으나, 낌새를 눈치챈 조로 한 명에게 전원이 당한다.

주목할 것은 그들이 적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깨어난 루피가 그들을 쓰러뜨린 조로에게 격노했다는 점. 즉, 원피스 세계관에도 접대의 관습 문화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루피가 개인적으로 먹는 것과 관련해서 진심인 것도 있겠지만 조로더러 은혜도 모른다며 씩씩대고, 적이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겠냐고 반박하는 모습을 보면 개인적인 성격을 떠나서 보편적 관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보면 바로크 워크스는 밀짚모자 일당을 손님이라고 접대해주고 해치려고 했으니 관습을 어긴 게 되는데, 애초에 이들이 에피소드의 악역임을 감안하면 적절하다.

8.16. 제9중대

제9중대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될 소련군 병사들을 교육하는 장면에서 일종의 정훈교육을 진행하던 장교가 유사한 사례를 언급한다. 마을에 들어온 소련군을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받아들여주고 차도 대접했지만, 소련군이 마을을 떠나자 무자헤딘으로 돌변해 등 뒤에서 총을 쏘아댔다고. 소련군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암살한다는 쉬운 선택지는 피한 것을 보아 접대의 관습은 이 와중에도 지켰음을 알 수 있다.

8.17. 춘향전

춘향전에서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걸인으로 변장하고 변학도의 생일 잔치에 나타나 "좋은 잔치인 듯한데 술 한 잔만 얻어먹자"고 억지를 쓰는 것으로 작중 클라이막스가 시작된다. 이에 변 사또와 그에게 아첨하는 손님들은 잔치 자리에 어찌 저런 걸인을 들이느냐며 내쫓으려 하지만 그나마 성격 좋은 손님인 운봉 영장이 그래도 한 상 주어 보내자고 하며 앉힌다. 여기서 진행된 시 짓기 내기 중에 이몽룡은 그 유명한 '금준미주천인혈 / 옥반가효만성고 / 촉루낙시민루낙 / 가성고처원성고'를 쓰고, 유일하게 이 뜻을 알아본 운봉 영장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 화를 면하지만 변 사또는 그 직후 이몽룡의 어사출두에 결국 패가망신한다. '변학도가 접대의 관습을 어겼기 때문에 패가망신했다'는 전개는 아니지만, '탐관오리 변학도는 접대의 관습조차 지키지 않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8.18. 코라의 전설

코라의 전설 공기의 장에서 텐진과 코라가 식사를 하려고 할 때 탈록이 와서는 꼽사리를 끼려고 할 때 공기의 유목민은 굶주린 손님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텐진과 탈록은 정적관계나 다름없었지만 텐진은 공기의 유목민인 관계로 어쩔 수 없이 탈록을 식사 자리에 끼워넣어준다.

8.19.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에서 순학자들의 호위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일부 몽골인들이 아파치 부족에게 손님으로 접대받다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이에 분노한 몽골인들이 대거 이주한다. 사실 단순히 복수 때문만은 아니고, 기후변화로 몽골에 추위가 찾아오자 좀 더 좋은 땅을 찾아나서겠다는 속셈도 어느 정도 있다. 이렇게 건너간 몽골인들은 미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아파치 부족에 대한 복수를 위해 준비를 하였고, 때가 되자 카우보이와 바토르를 이끌고 예수게이를 독살한 타타르족이 당했던 것처럼 수레바퀴를 굴리며 아파치란 아파치는 모조리 싹쓸이해 버렸다. 이 모습에 나름 학살에 일가견이 있는 미국인들조차도 경악했을 정도였다.

9. 관련 문서

10. 외부 링크



[1] 우선 기본적으로 돈이 없거나 부족하면 걸어야 했고, 개중 여건이 좋아 말이라도 타고 다닌다 해도 말을 먹이는 비용이 든다. 가는 길에는 도처에 도적이나 맹수가 많았다. 심하면 황무지에서 길 잃고 헤매다가 아사하거나 동사할 위험도 있었다.[2] 매-비둘기 이론에서 비둘기는 매를 만나든 비둘기를 만나든 손해도 이익도 작다. 반면 매는 비둘기를 만나면 큰 이득을 보지만 매를 만나면 서로 대판 싸우게 되어 진 쪽은 큰 손해를 보고 이긴 쪽도 이득을 보지 못하거나 소소한 손해를 보게 된다.[3] 수레바퀴보다 큰 자들을 전부 처형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거의 씨를 말린 수준이다.[4] 그래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백작은 모르세르 집안의 음식에 단 하나도 손대지 않았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도적 두목은 알리바바에게 자신의 음식에 소금을 넣지 말라고 했다. 즉, 자신은 이 집안의 손님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5] 스위스 용병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벤데타, 카눈 등으로 대표되는 복수의 관습도 결국 전근대에는 가문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자기 가족이 타인에게 위해를 당했는데 지키지 못하거나 갚아주지 못하는 공동체를 누가 의지하겠는가?[6] 법과 제도가 확고해지면서 명예에 기반한 관습이 쇠퇴하거나 불법화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명예살인같은 것은 어지간한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사라졌으며, 법이 명예에 관한 죄를 처벌하는 것이 명예훼손에 대한 사적제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7] 이러한 좋은 예시가 바로 북한으로, 북한의 국채 문서에서 보듯 북한은 신용불량자에 거짓말쟁이 국가다. 당연히 이 나라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는 전혀 없다시피하며 이에 따라 국가의 운신에 있어 불이익을 많이 받지만 다 자업자득이다.[8] 물론 시대상 강도와 여행자가 그리 엄격히 구별가능한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하듯 여행이라는게 엄청 위험하다 보니 여행자라면 당연히 무장하고 다녔을 것이고, 그 무기를 주인에게 겨누면 강도요, 사용 안 하면 그저 손님일 뿐이다. 하지만 본 문서에서 설명하듯 전근대의 사회상에서 대부분의 경우 여행자는 약자이고 집주인쪽은 강자이다. 현대의 핵가족도 아니고 대가족, 또는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함꼐 지내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에 아무리 무장한들 소수인 여행자는 주인에 비해 약한 입장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본거지에 머무는 주인보다 더 강한 세력이 돌아다니는 거라면 그건 거의 무장집단이다.) 그러니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상대를 보면 강도도 돌변할 준비를 하고 다니는 자라도 남의 집에 방문할 때는 손님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9] 그래서 신문의 도입은 사회를 크게 변혁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써 근대화의 척도가 되곤 한다. 신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이방인이나 지인 교류, 한정적인 정부의 공문 등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반면 신문을 활용하면 불특정 대중 역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10] 창작물의 사례에서는 중세의 사회상과 생활상에 대한 묘사가 꽤 섬세한 늑대와 향신료에서 흥미로운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극초반 (호로와 만난 직후) 지나치던 마을의 교회에서 유숙하면서 로렌스와 포도원을 가진 초로의 농장주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사실 당시의 로렌스는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한 젊은 행상인에 불과했던 반면 상대는 농장중에서도 특히 값진 포도원을 가진 어엿한 농장주이니 잘하면 귀족(영주), 못해도 최소한 향사(지역유지)급은 되는 인물이다. (작중에서도 '나중에 자신이 사는 페렌초 마을 근처에 오면 꼭 방문하라'고 로렌스를 초대하면서 자신의 이름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모습이 나온다. 왜냐하면 페렌초 마을에 가서 '포도원을 가진 영주님(또는 지주님)'을 찾으면 당연히 이 인물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작중 세계, 그리고 현실 역사의 중세 사회규범에서 둘은 도저히 동등한 신분이 아닌 것.(역시 작중 로렌스 자신이 그 페렌초 마을 근처에서라면 그렇게 쉽게 말을 붙여 볼 상대가 아니리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둘 다 여행자의 입장인 다른 마을의 숙소에서는 그런 지위와 신분의 영향을 적게 받아 격의없이 교류할 수 있고, 또 이곳저곳 돌아디나며 견문을 넓힌 행상인인 로렌스는 죽 자기 마을에만 머물러 살던 지주가 잘 모르는 새로운 문물이나 정보도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작중에서 그런 유용한 정보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어음 거래이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거래해야 하는 행상인들이 대량의 현금을 들고다니지 않고 어음을 통해 결제하는 기술은 중세 시골마을의 농장주로서는 들어보기도 처음이고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신기한 개념인 것. 이에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 농장주는 자신이 포도를 팔 때도 그런 방법을 써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하게 된다. (다만 로렌스는 '굳이 어음거래 할 필요 없다'고 대답해준다. 가만히 앉아서 귀한 상품인 포도를 파는 지주라면 상인에게 돈을 가져와서 포도를 사가라고 하면 되기 때문.)[11] 한국의 보부상만 하더라도 한 번 찾아오기만 하면 온 마을의 관심이 쏠리는 대상이었다고 한다. 일반 백성들이 외부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보부상뿐이었기 때문이다.[12] 앞 내용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접대의 관습이 이상적이고 매끄럽게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특히 식량 등 물자가 넉넉하지 않았던 전근대 사회에서 손님은 형편이 어려운 집에는 들르지 않는 것이 예의임을 알지만 다른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할 수 없이 들르고, 주인은 자기 사정도 힘든 판에 손님까지 접대하려니 부담스러워 죽을 맛이지만 차마 대놓고 문전박대는 할 수 없어 받아들인 상황이면 서로 표정이 좋을 리 없고, 평소라면 무례하다고 여길 법한 태도를 서로 보이게 되는 일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또 역으로 보면 그런 상황에서조차 손님을 대놓고 거절하지는 못할 정도로 접대의 관습이 가지는 영향력이 강해서 어려울 때는 어려우나마 되는 데까지라도 지키려고 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13] 물론 손님 역시 상대의 사정을 짐작하여 손님을 대접할만한 여유가 없을 만한 집에는 방문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한 예의이다. 그런 배려가 부족하면 후술하듯이 "지나친 선물을 줬다가 맞아 죽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14] 한국 전래민담 중 이런 구조의 이야기는 보통 손님이 "이 근처에 집이라고는 당신네 집뿐인데 어디로 가란 말이오?"라고 따지고 들면 주인은 할 수 없이 "그러면 오늘 밤만 머무시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속히 떠나시오. 오래 머물다가는 당신까지 변을 당하실까 걱정되오"라며 손님의 유숙을 허락하고, 그 손님은 그날 밤에 자기가 나서서 그 우환이라는 것을 해결해버린 뒤 다음날 보답으로 다음 목적지까지 갈 길양식과 노자를 두둑히 받아내거나, 심지어 그 집안의 사위가 되어 나그네 생활을 청산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즉 "손님을 잘 모시면 집안이 우환을 면하고 복을 받는다. 그러니 손님은 좋은 것이다"라는 교훈을 한 바퀴 꼬아서 전달하는 우화이다. 그렇지 않고 정말로 손님을 박대하는 인물은 옹고집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짤 없이 천벌을 받게 된다. 물론 '손님을 (정당한 이유 없이) 푸대접하면 천벌을 받는다' 라는 이야기 패턴은 옹고집전 뿐 아니라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신화, 전설, 설화등에서 아주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돔고모라가 천벌을 받아 멸망한 것도 결국은 접대의 관습을 지키지 않고 손님을 해치려고 해서였다.[15] 게다가 타타르는 이미 금나라 앞잡이 짓을 하며 초원 내 부족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16] 그 예수게이의 아들이 세계 최강의 군사지도자 중 하나인 칭기즈 칸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길을 선택했어도 어차피 나중에 작살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싶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결과론으로, 예수게이를 독살한 그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약탈과 전쟁이 산업이나 다름없는 유목민의 입장에서 '미래의 강력한 원수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될지도 모르니 지금의 적을 건드리지 말자' 식으로 살기는 어차피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테무진에게 보복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해도, 접대의 관습을 어기고 독살한 것과 같은 범죄가 아니라 그냥 싸움을 걸여 쳐죽인 것이었다면 테무진이 그리 가혹한 보복을 할 명분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17] 보통 음식을 대접하는 것 자체가 손님으로 대우하겠다는 뜻이므로 이후로는 설령 적이라고 해도 함부로 해칠 수 없었다.[18] 위의 타타르족과 예수게이 일화로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타타르족이 예수게이를 접대해줬다고 가정하면 예수게이는 머무는 동안 타타르족을 적대하는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칭기즈 칸의 백부뻘 부족인 주르킨 부족으로, 칭기즈 칸이 연 축제에서 행패부렸다가 찍혀서 칭기즈 칸에게 멸망당했다.[19] 다만 라이오스는 이쪽 전승이 유명한 편이긴 하지만, 크뤼십포스 살해는 펠롭스의 집안에서 따로 벌어진 사건이었고 라이오스는 다른 이유로 저주를 받았다거나 애초에 팔자가 그랬다는 전승도 있기는 하다.[20] 현대 매체에서는 이걸 한번 더 꼬아서 흡혈귀들은 대체로 옛날 사람이라 초대받지 않았는데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들어갈 뿐이지 물리적으로 못들어가는건 아니라는 설정을 넣기도 한다.[21] 이슬람 문화권에서 하람 푸드를 준비해간다든지 등. 물론 이런 경우도 손님이 정말 뭘 몰라서 그런 게 확실할 때는 주인 쪽도 바로 화내거나 적대하기보다는 한 번 정도는 점잖게 알려주곤 한다. 애초에 하디스에도 '손님으로 갔을 때 주인이 내온 음식이 할랄인지 하람인지 불분명하면 반찬투정 하지 말고 그냥 먹어라' 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어쨌건 아랍 부족 문화를 배경으로 탄생한 이슬람 율법이기에 음식 관련 금기보다 손님과 주인 사이의 예의(접대의 관습 포함)를 더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 것.[22] 고구려 해명태자 전설에 의하면 유리명왕은 자신의 아들인 해명태자를 죽였는데 이는 해명태자가 자신의 용력만 믿고 근처의 황룡국에서 보낸 활을 꺾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유리명왕이 자기 아들을 죽이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대의 선물에 이런 모욕을 하는 것은 즉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당시 부여의 위협이 있었던 고구려로서는 주변 국가들까지 적으로 돌리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더구나 고구려는 외부에서 온 세력인지라 근처 국가들을 함부로 적대시할 수 없었다.[23] 해명태자가 황룡국의 사신이 준 활을 힘으로 부러뜨린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활이 부러진 건 나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사신이 선물한 활이 약해서라며 어그로를 끌었는데, 이는 사신의 모국이 고구려보다 약하다고 돌려 조롱한 것이다.[24] 사실 엄밀히 말하면 황룡국의 왕이 고구려를 굴복시키기 위해 과도한 선물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고구려는 설령 황룡국이 그런 짓을 했어도 이에 저항할 힘이 부족했고 애시당초 고구려가 자리잡는데 도움을 준 나라가 황룡국이었으므로 활을 부러뜨린 해명의 행위는 당장은 사이다였을지는 몰라도 황룡국이나 기타 주변 국가들의 적대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해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25] 특히나 옹 칸은 재위기간 내내 매우 불안정한 치세를 보냈는데 복위만 3번이나 했을 정도로 자리를 자주자주 잃곤 했다. 이러니 약점이 될만한 일을 안 만드는게 최선일 수 밖에... 심지어 나중에는 그 테무친 덕에 자리를 되찾은 적도 있었을 지경이다.[26]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옹 칸이 '테무진 때문에 적이 좀 더 생기는 것'보다 '체면을 잃는 것'이 더 큰 타격이라고 판단했음을 의미한다.[27] 물론 선물을 일단 거절하면 그 상대와는 십중팔구 적이 되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상대의 선물이라면 (명분이 있든 없든) 함부로 거절해서는 안된다.[28] 즉, 당사자가 보유한 재산 일부를 접대 전용 공간으로 바꾼 다음에 거길 찾아온 타인에게 돈을 받고 접대를 해준다면 공짜로 먹이고 재워주는 것보다는 명예가 떨어질지 몰라도 그걸 만회할 수 있는 물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시작된 행동이 점차 발전해어 하나의 업종으로 자리를 잡은 것. 이는 손님 입장에서도 남의 사유지에서 공짜로 먹고자는 것보다 더한 손해를 보는 것은 맞지만, 온갖 위협(굶주림, 강도, 맹수, 날씨 등)을 무릅쓴 채로 노숙하는 것보단 나았던 데다(특히 당사자가 사는 시대가 전근대이거나 오지를 통과 중인 경우라면 더더욱.) 성향에 따라서는 공짜로 숙식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던 만큼(예를 들어 돈이나 현물을 지불하면 빈손으로 머물 때보다 더욱 대접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느끼거나, 당사자가 빈손으로 남의 집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일 경우 등) 돈과 현물을 받고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여행객에게 터무니없는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큰 흠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숙박비나 식비 등을 통하여 (비록 상대가 동의를 했을지언정)손님으로 온 사람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끼친다고 하더라도 주인 쪽에서 그만큼(혹은 받은 것 보다 더) 대접한다면 해당 손님은 당사자가 묶은 곳을 떠난 이후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데다 주인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해준다면 명예(긍정적인 평판)와 실리(당사자의 말을 듣고 찾아온 새로운 고객과 그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돈이나 현물)를 동시에 챙길 수도 있다. 이후 현대에서는 호텔 등과 같이 상당히 고급스럽고 큰 서비스업이 생기게 되었다."내 집"에 들어온 사람을 접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처음부터 접대를 목적으로 생겨난 산업이지만.[29] '무지의 시대'라는 뜻으로, 이슬람 도래 이전 아랍 역사 시대를 의미한다.[30] 이 나그네를 위해 낙타 한 마리를 잡았다.[31] 무슬림들에게 무슬림의 의무란 저버렸을 때 따로 속죄해야 할 죄악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상당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32] 오죽하면 이슬람 율법서 하디스에도 "손님으로 갔을 때는 주인이 내놓은 음식이 할랄인지 하람인지 모르는 경우라도 반찬투정 하지 말고 걍 먹어라"라고 적혀 있다. 그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이라도 원칙적으로는 접대의 관습을 포함한 손님과 주인간의 예의가 음식물 관련 금기보다 훨씬 중요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실적으로도 유목민이자 상인 민족에서 출발한 이슬람교상 무슬림 중 많은 이들이 유목이나 상업에 종사했을텐데 그러려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비무슬림 영역을 방문할 때도 있을텐데 그 때에도 할랄, 하람을 따질 순 없다.[33] 알리바바는 가난한 인물이라 손님을 대접할 일이 없었는지 소금을 빼달라는 말을 듣자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다는 반응만 보이고 말았지만, 부자인 카심의 노예였던(판본에 따라 원래 알리바바의 하녀로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카심의 하녀였다가 카심 사후 주인의 동생 알리바바 집에서 일했다는 버전이 메이저다) 마르자나는 잔치에서 손님 대접할 일이 상대적으로 많았을 테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34] 접대의 관습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에 "주인이 주는 음식은 먹었지만 소금은 빼달라고 했으니 대접받은 것이 아니다"와 같은 꼼수를 실제로 쓰는 자가 있었다면 과연 소금 안 치고 요리하는 게 가능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주변 사회로부터 "우와~ 흉악한 개새끼인줄만 알았는데 치사한 십새끼이기까지 하네?"라고 인정받았을 것이다. 빵과 소금은 '상징'일 뿐이고, 아무리 전근대인이라도 상징을 가지고 말장난이나 치면서 본질을 어지럽히는 행위에 속아넘어갈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해당 에피소드는 도적 두목이 가지는 악역으로써의 속성, 즉 정당하게 신의를 지키지 않고 얕은 속임수로 속이려 드는 비열한 성격을 보여주는 장치로 보는 쪽이 더 적절할 것이다.[35] 단 이 이야기는 복수를 하려는 자가 그 복수를 완성할 때까지 강한 의지로 쉬지도 멈추지도 않음을 상징하는 '복수자는 복수를 완성할 때까지 소금을 먹지 않는다'는 일화를 모태로 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는 상징이자 비유적 표현이지 진짜 안 먹은 것은 아니겠지만(사람은 소금을 안 먹으면 금방 죽는다). 여기서는 그냥 소금을 먹지 않는다기보다는 적의 집에서 소금을 대접받지 않겠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하다.[36] 결혼식같은 기쁜 일이 있을 때 추는 손뼉춤.[37] 칼을 차고 있지 않아도 준다. 태생부터가 전투민족인 베두인과는 다르게 요즘 세상에 칼을 차고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가지고 다니는 칼은 사무라이 같은 장검이 아닌 실생활에 용도가 많은 화려하게 장식된 단검으로 잡아먹을 짐승의 숨통을 고통없이 단숨에 끊을 때 사용한다. 그러니까 현대적 의미로는 손님이 기자라면 카메라,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스마트폰처럼 '평소에 자주 쓰는 요긴한 도구'를 위한 건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38] 여기까지만 들으면 꽤 훈훈한 이야기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직후 소련군이 방문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마을 남자들이 몰려와 소련군과 얼굴을 마주했던 여성들을 죽여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소련군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 한편, 만약에 그 여성들이 자신들을 푸대접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죄를 물어 죽였을 거라고 탄식했다.[39] 문제는 이라크 음식이 너무 기름졌는지(의도적으로 그랬다는 설도 있다. 명백한 적이니까), 배탈이 나서 임무에 지장이 생기는 사태가 생기자 앞으로는 식사 대접받기를 정중하게 사양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도 마시라고 대접했다고 한다.[40] 처음에는 50명이었다. 45…40…30…20…하다가 10명까지 줄어든 것. 여기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급격히 낮춰가면서 간절히 애원하는 묘사를 볼 수 있다.[41] 세겜의 부족은 민족 전통에 따라 부족의 남성들이 할례 의식을 받아야 혼인을 치룰 수 있다는 시므온과 레위의 말에 속아 그대로 할례를 받았는데 성기의 고통이 절정에 달할 때를 노린 두 명의 군대가 쳐들어와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한 채 학살당했다.[42] 르우벤은 야곱의 첩과 동침해 관계를 맺는 바람에 장남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43] 9절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가 유명하다.[44] 이쪽은 그런대로 치안은 좋은 편이다.[45]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도 그런 소문이 돌긴 했다고 한다.[46] 부관이 검을 건넸으나 받지 않고 단검을 썼는데, 아랍권에서 단검은 동물을 잡을 때 쓰는 도구로 간주하므로 이것은 르노를 인간이 아니라 금수로 취급했다는 의미이다.[47] 지니고 있던 단검이 아닌 측근이 건넸던 검을 뽑아서 처형했다.[48] 당시 조선인들은 서양인을 귀신에 빗대어 양귀자라 했다.[49] 무언가를 요청한다는 것은 주인이 손님을 제대로 접대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어 주인의 명예가 손상되었다.[50] 창작물이긴 하지만 아래 소개된 얼불노의 크레스터를 보자. 손님으로 온 나이트워치들이 자신을 모욕하자 크레스터가 보인 반응은 "나를 모욕하는 놈들은 내 손님이 아니다. 꺼져라."라고 쫓아내는 것이었다. 손님이 주인을 모욕하는 것은 그 손님을 내쫓을 명분으로는 충분하지만 계속 손님으로 받아주는 척 속여서 해치는 것을 정당화할 근거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51] 아니면 시대관을 감안하는 것도 있는데 당시 시대는 뭐만 하면 칼침이 들어오기 쉬운 시대였다. 당장에 사울의 재위기간을 감안하면 판관기는 기원전 1400 ~ 기원전 1000년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보다 겨우 300년 정도 전에 동해보복의 원칙인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함무라비 법전은 가혹하지만 당시로서는 오히려 지나친 복수를 동해보복으로 제한하는 취지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이 시대는 지금보다도 뭐만 했다 하면 칼부림으로 이어지기 쉬운 시대라는 의미고 결국 그런 시대이니 접대의 관습에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칼이 날아오기 쉬웠다고 설명하면 그럭저럭 가능할 수는 있다. 이것도 정말 그 시대가 그 정도로 칼부림 날아올 시대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52] 당대인 춘추전국시대에 공자가 유교를 창시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인데, 이 시절이 워낙 무법이 판치던 세상이라 이를 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었고, 이를 위해 과거 이상적인 왕국을 건설했다던 요왕과 순왕, 그리고 실제 교화에 성공한 적이 있던 주공 단을 성인으로 여기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53] 종5위 벼슬로 당시 벼슬은 거의 철저히 가문의 격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요시토모는 무려 천황의 자손인 겐지 가였고 그런 사람도 종 5위인데 하물며 별볼것 없는 집안 출신 배신자 따위가 종5위를 할 순 없는 바였다.[54] 여기는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기름진 곳인 데다가 바로 옆에 교토가 있어서 지리적으로도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곳이다. 역시 이런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땅은 아니었다.[55] 이에 타다무네는 열받아서 겐페이 전쟁에서 자기가 죽인 요시토모의 아들 요리토모에게 붙었는데 요리토모는 언어유희로 열심히 싸운다면 미노, 오와리를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전쟁 후 그를 잔혹하게 처형함으로서 진짜로 미노, 오와리를 주었다.(미노, 오와리는 일본어로 일신의 끝장과 같은 음이다.)[56] 애당초 아바스 왕조의 중심과는 북아프리카를 빙 둘러 가야했기에, 멀어도 너무 멀었다.[57] 유목민들은 정주민들보다 훨씬 더 접대의 관습에 엄중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58] 당연히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가 아니다.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는 스코틀랜드 기준으로는 제임스 7세라고 할 수 있다.[59] 칼마르 연합 와해 이후 평소 상공업 진흥 정책을 펼쳐 덴마크인 귀족들과 사이가 나빴던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 독립을 빌미로 덴마크 귀족들에게 폐위되었고 노르웨이 왕위에서도 연달아 폐위당해 처가가 있는 합스부르크 네덜란드로 망명했다.[60] 문신들이 무신들의 녹봉인 영업전을 강탈하여 들고 일어난 사건.[61] 조조는 아들 조앙을 죽게 했다는 일로(비록 조앙이 시앗의 소생이긴 했어도 친자가 없었던 정부인은 일찍이 친모를 잃은 조앙을 친자처럼 여겼다고 한다.) 본처인 정부인과 일방적인 이혼을 당한다. 정확히는 조조가 정부인을 친가로 돌려보냈다. 이후에 조조가 정부인에게 찾아가 싹싹 빌면서 매달리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속 베만 짰다. 결국 조조는 끝내 정부인에게 용서받지 못한 채, 부인이 재혼해서 잘 살길 바란다는 말만 친정 사람들 편에 전해 놓고 돌아가야 했다.[62] 정사에서는 생포되어 조조에게 인계되었다고 전한다. 어차피 그게 그거지만...[63] 원소의 장남이자, 후계자 자리를 놓고 원상과 싸웠던 원담은 이미 조조에게 패사한 뒤였다.[64] 정사에서는 단순히 조조의 예상이라고만 언급되나, 연의에서는 관도대전 중 병사한 곽가가 생전에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유서를 통해 조조에게 계책을 남긴 것으로 설정된다.[65]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게롤트의 저택에 머무는 며칠 동안 계속 먹는 모습만 보여준다. 저주로 100년 간 굶주린 상태였으니 그럴만도 하다.[66] 이 당시 메르세데스는 안 그래도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못한 형편에, 약혼자는 악명 높은 감옥에 끌려가 소식도 끊긴 데다 서로 의지하던 예비 시아버지(즉 에드몽의 아버지 루이 당테스)는 병이 들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었고, 그렇게 가족도 친구도 없이 절망에 찬 18개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차에 에드몽이 감옥에 가도록 신고한 장본인인 페르낭이 시치미 뚝 떼고 손을 내밀자 그의 악행을 꿈에도 모르고 결국 그와 결혼한 것. 탈옥 후 이 사연을 옛 이웃 가스파르 카드루스에게서 들은 에드몽은 매우 씁쓸해하면서도 이해는 했다. (다만 부친의 죽음만은 절대 용서를 못했다. 변장 와중에 분노했을 정도.)[67] 사실 메르세데스도 자기 남편이 한 짓에 대해서는 복수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복수 대상에 바로 그녀의 아들인 알베르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 아무리 그래도 알베르는 백작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데 페르낭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복수의 대상에 포함되었으니 메르세데스로서도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 운명이 꼬이지만 않았어도 알베르는 에드몽 당테스의 아들이었을 수도 있었다.[68] 작중에서는 '동양'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서 나오는 동양은 동아시아보다는 중동 지역에 가깝다.[69] 어떤 면에서는 이 역시 접대의 관습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상대에게만 음식을 먹이고 자신은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너희가 내 집에서 밥을 먹은 거지 내가 너희와 함께 식사하며 너희를 대접한 것은 아니다'라는 핑계를 댈 수 있는 것. 이 점은 칭기즈 칸 역시 몽골 통일 후 '주인이 손님을 대접할 때는 손님 앞에서 자신이 내놓은 음료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법령을 반포했을 정도이니 접대의 관습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70] 당글라르 부인이 당글라르와 결혼하기 전, 그녀는 빌포르와 불륜 관계로 사생아까지 있었다. 원수들에게 복수할 정보를 수집하던 백작이 이것을 알게 되었고 이 파티에서 그에 관한 말을 슬쩍 흘려 둘을 겁에 질리게 한 것이다.[71] 사실 두 사람 모두 에드몽과 껄끄러운 면이 있는 상대였지만 아직 젊고 순진하던 에드몽은 그들의 적의를 눈치채지 못하고 친구로 믿었기에 자신의 가장 기쁜 날에 친구로 잔치에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속마음을 숨기고 이 초대에 응했으니 둘은 분명 에드몽의 손님이다.[72] 판본에 따라 장미가 아닌 다른 꽃이나 종달새 등으로 나올 때도 있다. 어쨌거나 '야수의 소유인 물건'에 손을 댔다는 전개는 동일하다.[73] 그런데 사실 다른 신화나 전래동화에 나오는 것보다는 관대한 편이다. 접대의 관습 어겼다고 대대손손 저주를 받거나, 아예 집안이 망하고 모두 길거리로 내몰리거나 가족이 전멸하는 극단적인 내용들도 있다.[74] 물론 엄밀히 따지면 흐룽그니르는 초대받은 손님인 주제에 주인인 아스 신족들을 모욕하고 나중에 죽일거라며 위협하는 등 손님으로서의 자격을 잃을 행위를 했기 때문에 피가 흘러서는 안되는 아스가르드가 아니었다면 토르에게 그 자리에서 죽었어도 접대의 관습을 어긴다고 보기는 어려웠다.[75] 손이나 발에 보통 박힐 굳은살이 팔꿈치에 있다는 점에서(포복 훈련 시 주로 긁히는 부위는 무릎과 특히 팔꿈치다.) 그가 단순한 민간인이 아니라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임을 눈치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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