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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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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각종 매체에서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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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납치혼()은 결혼 상대를 납치해 결혼하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 강제성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말로 약탈혼()이 있다. 현대 사회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선 납치혼이 범죄이기 때문에 납치혼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의 이민자 커뮤니티나 도시에서는 납치혼의 형식만을 차용하여 합의하에 결혼한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사에는 보쌈이라고 불리는 밤중에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여자를 보자기에 싸서 납치하는 행위도 존재했는데 과부의 재혼을 위해 먼저 약속을 한 뒤 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고려까지는 과부의 재혼이 큰 문제 없이 행해졌지만 조선부터는 유교의 확산, 정착으로 인해 과부의 재혼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결국 조선 초(1477년(성종 8)) 법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당연히 범죄다(법적인 내용은 상위 항목으로). 구 형법에서는 본죄를 영리목적약취유인죄와 같이 규정하고 있었지만 새로 형법이 제정될 때 '결혼목적약취유인죄'로 이를 분리하여 그 형을 감경하였고 2013년 형법을 고치면서 다시 추행목적약취유인죄에 들어갔다. 일본 형법(=구 형법)에서는 한국에서 결혼목적약취유인죄가 존재하던 시절에도 계속 영리목적약취유인죄에 이를 규정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다시 구 형법 시절로 돌아간 셈이다. 다만 일본의 그것과의 차이점은 일본에는 결혼목적약취유인죄는 친고죄가 적용되나 대한민국은 추행목적약취유인죄로 다시 합치면서 친고죄 조항을 삭제하였다는 점이다.

2. 상세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38dc5cd3401d3d33a0eaf7ee50065386.jpg

본 그림을 잘 보면 아래에 붙잡힌 남자는 스키타이인 경기병이고 납치한 쪽은 초기 사르마티아[1]들이다. 올가미를 들고 있는 쪽이 여자이다. 즉, 아마존의 모티브가 된 여전사다. 이 상황은 아마존 설화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듯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가멤논네오프톨레모스인데 아가멤논은 탄탈로스 2세와 그의 아들을 죽이고 그의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아내로 삼았으며[2] 네오프톨레모스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트로이의 왕태자비 안드로마케와 결혼했다. 이 같은 행위는 주로 자신이 해당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자를 굴복시켰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납치혼은 연려실기술에서도 언급된다. 조선 초기 왕족인 이백온(?~1425)이 하륜을 보쌈하려고 했다. 하륜태종이 한낱 왕자에서 왕이 되기까지 태종 본인 다음으로 역할이 컸던 사람이었다. 즉, 킹 메이커이자 1등 개국공신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하륜이었으니 아무리 왕족이라도 미친 짓이었다. 이백온이 하륜의 첩을 보쌈하고자 수하들을 보냈다가 들킨 뒤 다 같이 유배되어 그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백온은 온갖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여색을 극도로 밝히는 것으로 악명 높았는데 여종을 겁간하다가 이에 분개하는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유배를 당한 일도 있었다. 아무리 종이었다지만 원칙적으로 살인은 당연히 중죄인 데다 살해 과정과 그 손속이 너무 잔인하여 말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가해자가 왕족이라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갖 사건과 사고를 일으켜 왔던 이백온이지만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세종대왕조차 참지 못하고 격분했다고 한다.

약탈혼이라고 하여 신부를 납치하여 결혼하는 풍습이 일반적인 문화권도 있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서는 남녀의 혼전 성관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도 하고 일반적인 결혼을 하려면 거액의 지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과거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크림 타타르 등 유목 문화권을 중심으로 약탈혼이 성행한 국가들도 있었지만 현재는 엄격한 중죄로 지정되어 있어서 키르기스스탄의 시골에서나 가끔 볼 수 있으며 현지법으로도 중범죄다. 키르기스스탄의 알라 카추는 납치혼의 가장 심한 케이스다.[3]

고대부터 중세 몽골에서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납치혼이 이루어졌는데 신랑과 함께 시집에 가던 중인 신부를 납치해 결혼하거나 이미 결혼한 사람을 납치하기도 했으며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으면 신부가 직접 아버지와 함께 신랑을 납치해 오기도 했다. 칭기즈 칸의 어머니 호엘룬도 결혼하기 위해 신랑과 함께 이동하다가 예수게이에게 납치당해 칭기즈 칸을 낳았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호엘룬의 원래 정혼자 쪽에서는 칭기즈 칸의 아내였던 보르테 우진을 납치했다. 이때 보르테강간당했다는 말도 있고 납치혼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보르테 입장에서는 다 똑같겠지만. 이 납치혼 때문에 보르테가 낳은 첫째 아들 주치칭기즈 칸의 아들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았다. 하여튼 2대에 걸친 수난 때문인지 칭기즈 칸은 납치혼을 금지했다. 다만 통일 이후에 제정한 원칙인지라 정작 본인의 처첩 중에는 납치혼한 이들이 많았다.

과거엔 과부의 재혼[4]을 돕기 위해 납치혼의 형식을 빌려오기도 했다. 한국사에서는 고대부터 고려조선시대 까지 여성과 남성의 상속과 재가에 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권력자였던 최우도 주변 눈치 안 보고 과부였던 대씨 부인과 당당히 재혼했을 정도다. 다만 조선 성종 때 과부재가금지법이 만들어져 사대부 가문에 한해서 재혼이 금지되자 재혼이 아닌 강제성을 띤 납치혼의 형식만 흉내낸 사실상의 재혼이 이루어졌다. 과부의 재가 금지는 풍토처럼 굳어져 오다가 21세기에야 인식이 바뀌었으나 아직도 보수적인 지역이나 세대에는 재혼을 꺼리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1935년 출간된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도 재혼한 여성을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재혼 금지 풍토가 잘 나타나 있다. 한편 짜고 치는 납치혼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혼약 관계인 상대가 양가의 합의 하에 날을 잡아 시늉만 하는 경우부터 갑작스레 들이닥쳐 혼례를 치르는 경우까지 다양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하후씨[5], 손책주유강동이교를 납치혼했다.

김춘삼 역시 조선대학교 대학생이던 남윤자를 무등산으로 강제로 끌고 가 보름 동안 움막에서 강간한 후 납치혼을 저질렀다. 김춘삼의 사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생각보다 흔했으며 심지어 이상해를 비롯한 원로배우들 중에도 납치혼으로 결혼한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이후로는 법으로 정한 범죄행위가 되었으나 풍토와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1990년대까지만 해도 피해자를 강간한 뒤 결혼을 강요하거나[6][7] 강간죄로 재판이 이루어지던 법정에서 판사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결혼하면 해결될 일이라며 양가 부모를 설득하여 그 자리에서 혼약을 맺고 결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강간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결혼 생각이 없는데도 양가 부모들이 가해자한테 네가 강간했으니 책임도 네가 져야 한다며 강제로 결혼시키는 일도 있었다.[8][9] 특히 그 시절 여자대학교 앞을 서성거리던 남자들 중에는 아예 납치혼을 염두에 두는 인간들도 많았기 때문에[10] 여대 캠퍼스가 금남의 구역으로 통하며 경비가 삼엄했던 것은 괜한 유난이 아니었다.

3. 각종 매체에서

가끔 아침마당과 같은 아침 교양 프로에 한물 간 연예인들이 나와 자기들 인생썰을 푸는데 일부 남자 출연자가 이런 식의 납치혼을 마치 자랑처럼 이야기하여 논란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이상해, 서세원, 양원경 등이 있다. 문제는 그들의 행위가 범죄라는 것이다. 참고로 예시로 나온 저 3명 중 이상해를 제외하고 모두 이후 문제가 되면서 결혼 생활이 파탄났고 최소한 사회적으로 욕들을 대차게 먹었다. 나이 든 세대를 겨냥한 데다 화제성도 그냥저냥인 프로그램 특성상 "저 시절에는 다들 그랬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나 피해자들이 대부분 미래가 창창하던 배우였고 납치강간 뒤 이어진 결혼 생활에서 온갖 종류의 학대가정폭력을 겪으며 고통 받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공분을 샀다. 일례로 양원경은 짝사랑하던 신예 배우가 기대작에 캐스팅되자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서세원 등[11] 주변의 부추김과 조직적 가담을 받아 납치하여 성폭행한 뒤 업계에 소문을 내 캐스팅을 취소하고 협박하여 결혼했다. 당연히 이런 결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고 서세원과 양원경 둘 다 가정폭력 등 문제가 끊임없이 터진 끝에 이혼했다.

이물교구설화에 이런 내용이 많다.

상업지, 동인지를 통하여 주로 히로인들을 유인하여 강간 혹은 유도 성관계를 통하여 임신 엔딩으로 가는 스토리들이 주축이다.

4. 관련 문서



[1]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 존재한 유목민족으로 본디 스카타이의 하위부족 중 하나였지만 스키타이가 쇠퇴하자 스키타이를 멸망시켰다. 즉, 스키타이가 차지하던 자리를 대체한 이들이다.[2] 다만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재혼한다.[3] 다만 이 경우에도 '가짜 납치'와 '진짜 납치'가 있어서 전자는 형식적인 절차라 문제가 안 되고 진짜 문제가 되는 건 후자다.[4] 엄밀히 말하면 정식 혼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혼에 해당한다.[5] 다만 장비와 하후씨는 정략혼이라는 설도 있다. 하후씨 문서 참조.[6] 당시에는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이 (화간으로써든 강간으로써든) 순결을 잃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만연했는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등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은장도를 누가 누구에게 찌르는 것으로 묘사되는지 생각해보자.) 전근대시대부터 이어진 성차별로 인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았던 터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여성의 삶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강간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고발하거나 가해자에 의해 강간 사실이 폭로될 경우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추후 혼처를 구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가해자 본인이 자신의 강간 범죄사실을 떠벌리는 것은 현대의 정서로는 자폭밖에 되지 않지만,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런 경악할 사회분위기가 있었다.) 따라서 납치한 뒤 이어지는 강간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약점을 만들고 이를 빌미로 결혼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7] 당장 1997년에 실제로 MBC 뉴스데스크에서 강간 피해자의 자살에 대해 기자가 정조관념 운운하는 미친 소리를 해서 시청자들이 항의한 데다 시민단체들과 대학생들이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기도 했고 해당 기자는 공개사과와 함께 징계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8] 사실 강간 가해자와 피해자를 혼약시키는 악습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본보기로 강간을 막겠다는 차원이였는데 원하는 여성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악용하는 남자들이 늘어났다.[9] 다만 이 시절이라고 무조건 결혼시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는 폭력도 관대했으므로 그냥 집안 남자들이 찾아가서 강간범을 구타하고 끝내는 경우도 있었으며 특히 좀 사는 집일수록 더 그랬다. 성공률이 높았으면 어지간한 남자들이 미녀를 강간하려고 엄청 노력했겠지만 그런 사례보다는 정상적인 루트로 결혼하고 나서 잠자리를 가지는 경우가 더 많았음을 생각해 볼 때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10] 박해미도 이런 사례의 피해자 중 하나다.[11] 서세원 본인도 여배우 서정희를 고의로 성폭행한 후 협박해 강제로 결혼한 범죄자다.[12] 배신자로 상대편을 꽉 채워서 시작하자마자 이기는 것이 발케네인들의 꿈이란다. 하지만 상대방도 그걸 바라기에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13] 신방에 결혼하기 힘든 결함이 있는 여자를 넣어놓고 대신 데려가게 하기. 여기에 항의하면 속아 넘어갔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도둑의 치욕이기에 얄짤없이 데리고 살아야 한다.[14] 정우 규리하에게 청혼한 것은 사기였고 스카리의 원래 목표는 부냐 헨로를 차지하는 것이었다.[15] 이 내용은 게임프리크 대규모 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공개된 대규모 미공개 자료 중 신오신화 초안으로 나온 내용 중 하나이다. 당연히 채택되지 못하고 폐기된 내용이므로 공식 설정이 아니다. 따라서 취소선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