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 1123~1160)는 헤이안 시대 말기의 무장이며, 명문 무가(武家) 카와치 겐지의 제6대 수장으로, 카마쿠라 아쿠겐타(鎌倉悪源太)라는 이명을 가진 용장이었던 장남 미나모토노 요시히라, 훗날 카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되는 3남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일본사의 대표적인 비운의 영웅으로 유명한 9남[1]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등의 아버지였다. 호겐의 난(1156)때의 공신이었으나, 머지않아 후지와라노 노부요리와 함께 헤이지의 난(1159)을 일으켜 역적이 되었고, 경쟁 무가인 헤이케와 대립하다가 가신인 오사다 타다무네(長田忠致), 카게무네(影致) 부자의 배신으로 살해되었다.그의 아버지는 카와치 겐지의 제5대 수장이었던 미나모토노 타메요시[2]였으며, 이복동생으로 일본 제일의 강궁(强弓)으로 칭송받은 미나모토노 타메토모가 있었다.
2. 역사와 문학에서
그 활약상은 군기 모노가타리인 《호겐모노가타리》, 《헤이지모노가타리》등에서 주로 묘사되는데, 비록 그 자신 역시 내적 갈등이 없지 않았으나, 결국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정하게 참살하고서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그릇된 선택을 내리고, 그 자신과 일가 전체의 몰락도 자초하고 만다는 부정적 묘사가 주가 된다. 특히나 《호겐모노가타리》에서는 동생인 미나모토노 타메토모[3]에 비해 무용이나 마음가짐 면에서 용렬하게 묘사되며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호겐의 난 때는 헤이케와 협력하여 조정을 수호했으나, 이후
[1] 8남이라는 설도 있다.[2] 행실이 영 좋지 못해 경쟁 무가 헤이케의 수장인 타이라노 타다모리(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아버지)와 달리 조정의 신임을 받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비교적 한직에 머무르게 되어 불만을 품다가, 스토쿠 상황 측의 회유를 받고 그의 복위 기도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호겐의 난을 촉발시켰다. 이 때문에 조정의 방위를 담당하던 요시토모가 아버지를 진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3] '형이 아버지와 대립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한쪽이 패하면 다른 한쪽이 주군에게 자신의 무공을 호소하여 서로 살려주려는 약속을 한 게 아닐까?' 하며 형을 죽일 각오로 싸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