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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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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진행된 선거에 대한 내용은 2012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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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대한민국의 주요 선거·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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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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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출구조사 발표 영상
{{{#!wiki style="margin: -7px -12px" 2008년 4월 9일
18대 총선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
투표율 54.2% ▲ 8.1%p
선거 결과
파일: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svg
{{{#!wiki style="margin: -16px -12px; letter-spacing: 0px"새누리당 152석
127석 민주통합당}}}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총합 비율
[[새누리당|
새누리당
]]
127석 25석 152석 50.66%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
106석 21석 127석 42.33%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
]]
7석 6석 13석 4.33%
[[자유선진당|
자유선진당
]]
3석 2석 5석 1.66%
[[무소속(정치)|
무소속
]]
3석 - 3석 1.00%
1. 개요2. 배경
2.1. 여소야대를 노린 야권연대2.2.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의 쇄신2.3. 선거구 획정2.4. 부재자 투표2.5. 재외국민선거
3. 출구조사
3.1. 연령별 정당 득표율
4. 투표 결과
4.1. 연령대별 투표율
5. 개표 결과
5.1. 지역구
5.1.1. 정당별 지역구 득표율
5.2. 비례대표
6. 결과 분석
6.1. 정당별 분석6.2. 지역별 분석6.3. 종합적 원인 분석
6.3.1. 김용민 막말 파문6.3.2.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공개 파문의 역풍6.3.3. 결집한 여당과 사분오열 민주당6.3.4. 통합진보당과의 연대 논란 및 차별화 실패
7. 국회의원 목록8. 화젯거리
8.1. 여성당대표, 여성사무총장 시대8.2. 지역 구도의 완화8.3. 선거구 관련8.4. 박빙 선거구8.5. 인물 관련
8.5.1. 특이인물
8.6. 투표/개표 관련 사건/통계8.7. 개표 방송 - SBS의 와신상담
9. 여담
9.1. 투표 독려 운동9.2. 통합진보당 관악구 을 선거 경선 부정개입 파문9.3. 손수조 후보 선거법 위반 논란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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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참여 독려영상
2012년 4월 11일에 시행한 제19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이다. 투표율은 54.2%를 기록했으며 보수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마지막 선거이다.

총선 6개월 전,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의 사퇴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 심판론으로 인해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됐다. 그러나 차기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가 전면으로 나와 10년 넘게 쓰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며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비교적 진보적인 아젠다를 띄운 반면, 민주통합당에서는 각종 악재가 발생하면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예상을 뒤엎고 단독 과반으로 승리했다. 이로 인해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대선 행보에 청신호가 켜졌다.[1]

2. 배경

2.1. 여소야대를 노린 야권연대

야권은 MB정부 심판론을 내세우며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야5당 연대로 서울특별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이후 2011년 11월 이명박 정부한나라당이 국회에서 한미 FTA를 다수결처리 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야권 지지층의 결집이 더욱 거세지게 되었고, 이에 야권은 총선 승리를 다짐하며 여소야대를 노리게 된다. 그해 12월, 민주당은 원외 친노/시민 세력(시민통합당)과 민주통합당을 창당했으며, 민주노동당 - 국민참여당 - 진보신당 탈당파(새진보통합연대)는 2012년 1월 통합진보당을 결성했다. 범야권 정당이 5개 정당에서 2개 정도로 감소하면서 야권연대 및 후보 단일화는 활발해졌다. 결국 3월 19일, 야권연대 후보가 결정되었다. 주요 선출된 후보는 민주통합당 인재근 후보[2]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공동 대표 등이었다.

2.2.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의 쇄신

이명박 정부레임덕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은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박근혜는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최구식에 대한 자진 탈당 권유, 당 소속 국회의원의 회기내 불체포 특권 포기, 비대위 산하 디도스 검찰수사 국민검증위원회 설치를 추진했다. 또 비대위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관련된 정치권 부패 수사는 국민의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성역없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아 이명박 정부와의 선긋기에 나섰다. 4개의 분과위원회로 구성되어, 1분과는 '정치개혁과제 정리와 공천제도', 2분과는 '새로운 정당정치와 총선공약', 3분과는 '온ㆍ오프라인 여론수렴 및 국민소통', 4분과는 '인재영입'을 각각 담당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민행복국가'를 비전과 목표로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복지와 일자리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내세웠다. 경제민주화 실현은 경제정책 방향으로 제시했으며,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국민 행복을 위한 평생 맞춤형 복지사회적 약자소수자 존중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청년ㆍ노인ㆍ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적극 추진하도록 했다. #

특히 경제민주화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김종인[3]을 비대위원으로 영입하여, 당의 강령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경제세력의 불공정거래를 엄단하여 공정한 경쟁풍토를 조성'하며, '성장의 혜택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고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실효성 있는 복지제도를 확립'하여 '평생맞춤형 복지체계를 구축'할 것을 명시했다. # 총선 공약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금액 하향 조정 및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과세표준 1000억 원 초과 기업에 대한 최저한세율 인상, 불필요한 비과세·감면제도 대폭 정비, 고소득 자영업자 소득파악 제고 및 체납 추징 강화, 기업진단에 대한 정기적인 내부거래 정기 직권조사 등을 포함했다. # 이로서 박근혜 비대위는 경제민주화를 새누리당의 어젠다로 전면에 내걸며 당의 이념적 쇄신을 이끌어냈다.

앞서 언급한 김종인과 함께, 보수 인사이기는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이상돈 교수와 26살 청년 벤처기업인 이준석을 비대위원으로 영입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부정적인 중도층과 청년층의 지지를 끌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2012년 2월을 기해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당의 이미지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국회의원 공천 또한 상당수의 친이계들을 낙천시키고 친박계들로 대체했다.

이후 새누리당의 친이계 의원들이 공천 반발로 탈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대부분 불출마로 끝났다. # 사실 전직 친박계로 18대 총선에서 이미 공천 보복을 당한 김무성[4]이 복수심에 다시 친이계 의원들과 국민생각, 자유선진당까지 크게 뭉쳐서 3번으로 4~50여개 지역구에서 출마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마지막 순간에 실현이 어렵고 탈당이 소신과 어긋난다는 생각에 중단하였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야권으로서는 아쉬운 시나리오였다.

2.3. 선거구 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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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지루한 협상 끝에 여야는 전라남도경상남도에서 각각 1개의 선거구를 줄이고 경기도 파주시와 강원도 원주시를 분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외에 이천시·여주군, 양평군·가평군을 이천시를 단독선거구으로 여주군·양평군·가평군으로 구역조정한다. 한편 경기도 수원시, 용인시 그리고 충청남도 천안시일반구 경계를 깨는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게리맨더링 논란이 일기도 하였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국회 입법권 안에 있다고 판결내렸다.

한편 2012년 7월 1일부로 출범할 광역자치단체세종특별자치시에 대한 선거도 치러지는데[5], 원래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자체적인 지역구 의원이 배분될 예정이었으나 역시 여야의 밥그릇 나눠갖기의 협상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지역구 의원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비례대표는 줄이지 않았으므로 전체 국회의원 의석수는 300석이 되었다.[6]

2.4. 부재자 투표

부재자 신고 기간은 3월 23일~3월 27일이고, 부재자 투표기간은 4월 5일~4월 6일이다. 부재자 투표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개방되었다. 부재자 투표소의 개소 시각에 대해서는 2012년 2월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지만, 일단 19대 총선에서는 기존 기준을 유지한 것이다. 한편 부재자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는 4월 11일에 서류를 들고 지정된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할 수 있었다.

2.5. 재외국민선거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으로 재외국민 선거권이 인정되어 치러진 선거이다. 다만 재외국민 선거는 비례대표제 선거에 한정되었다.[7] 재외국민 투표기간은 3월 28일~4월 2일이었다. 1967년1971년 대선과 총선에 재외국민 선거가 잠깐 시행되었던 적이 있지만 1972년 10월 유신으로 금지된 뒤 40년만에 재외국민 선거가 부활했다. 그 당시에는 우편 투표 방식이었지만 19대 총선에서는 재외 공관[8]에 직접 가서 투표를 하도록 바뀌었다.

그러나 지역과 인구에 비해 투표소가 너무 적어서 문제다. 중국에는 각 공관마다 9곳, 미국 또한 12곳만 지정되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아주 적은 숫자이다. 중국 하얼빈에 사는 사람은 그 근처에 가장 가까운 투표소가 선양에 설치되므로 약 이틀은 잡고 투표를 하러 가야 한다.

수교국 공관에만 투표소가 지정된 것이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대만에는 타이베이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가 있지만 대만과 한국은 수교국이 아니거니와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는 일종의 영사업무, 경제업무, 문화업무만 하는 곳이므로 공관으로 인정하지 않아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았다.[9] 그러므로 대만에 사는 한국교포나 유학생들은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까지 비행기타고 날아가서 투표해야 했다. 그 후, 문제가 된 법 조항은 여러차례 논의 끝에 2017년 3월부터 완전히 개선되어, 제19대 대통령 선거 시점부터는 타이베이 대표부에서도 재외투표가 가능하게 되었다.

3. 출구조사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555555><tablewidth=440>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방송 3사 공동 출구조사
}}}
정당별 예상 의석수
정당 파일:KBS 로고.svg 파일:MBC 로고.svg 파일:SBS 로고.svg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131 ~ 147 130 ~ 153 126 ~ 151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131 ~ 147 128 ~ 148 128 ~ 150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12 ~ 18 11 ~ 17 10 ~ 21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3 ~ 6 3 ~ 6 1 ~ 7
·기타 1 ~ 4 1 ~ 4 기타 : 0~2
무소속 : 0~9
{{{#!wiki style="margin: -16px -11px" 출구조사 개요
의뢰기관 <colbgcolor=#ffffff,#1f2023>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방송사 공동예측조사위원회
(한국방송협회, KBS, MBC, SBS)
수행기관 TNS, 미디어리서치, 코리아리서치
수행기간 2012년 4월 11일 06:00~17:00
조사대상 전국 246개 선거구, 2484개 투표소 유권자 약 70만 명
(매 5번째 투표자 등간격)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 2.2~5.1%p }}}
경합}}} 지역구는 순위를 매길 수 없다.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출구조사 예측 1위 지역구 수
<nopad>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통합진보당 자유선진당 무소속 경합
94 85 4 2 1 60

정권 말 선거가 보통 그렇듯 선거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이 우세를 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올수록 야권내 잡음이나 김용민 막말 파문 등 민주당 쪽에 각종 악재가 터지면서,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은 민주통합당이 약간 우세하나 새누리당과 의석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편, 방송사들은 유난히도 안 맞던 기존 총선 출구조사의 개선을 위해 무려 75억 원을 들여 사상 최초로 246개 모든 지역구에 대해 출구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무려 총 13,000여명의 조사원, 감독관 500명을 투입했다. 각 지역구당 평균 50여명의 조사원과 2명의 감독관이 파견된 셈이었다.

선거일 당일 6시에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는 대체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거의 같은 의석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BS 민주통합당 128~150석, 새누리당 126~151석, KBS 양쪽 다 131~147석, MBC 민주통합당 128~148석, 새누리당 130~153석)[10] 그리고 이런 예측치에 새누리당은 '다소 아쉽다', 민주당은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라고 자평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 야권 단일화를 이뤄내면서 몇몇 지역에 통진당 몫의 후보를 내줬기 때문에 이대로만 간다면 사실상 범진보 승리를 이뤄낸다는 분위기였고, 새누리당도 당초 완패 예상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거금을 들인 출구조사가 이번에도 빗나갔다. 결과는 민주당이 예측 최소치 -1석, 새누리당은 최대치 +1석으로, 상당히 크게 빗나갔다. 출구조사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표본을 선정할때 반드시 투표소에서 나오는 사람 5명마다 1명을 지켜야 한다고 되어있었지만, 선거 당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이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출구조사 결과에 오차가 많았던 걸로 추측된다고 한다. 사실 비례대표에선 원내 정당만으로 치면 범진보 46.75%, 범보수 46.03%로 진보가 약간 더 표를 가져갔지만, 지역구에서 출구조사상 경합으로 나타난 접전지를 거의 모두 새누리당이 가져가며 결과가 반대가 되었고, 결국 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기 쉬운 임기 말 총선임에도 불구하고 여대야소 정국이 탄생한다.[11]

사실 정확도가 비교적 나쁘지 않은 기존 대선과 지방선거 출구조사와 달리, 적은 표본수를 지역구마다 일일이 조사해야 되는 총선 출구조사는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게 방송사들의 전통적 고질병이었다. 15, 16대 총선 출구조사는 여대야소를 예측했다가 여소야대로 나오는 등 다수당 예측마저 틀린 적이 있고, 17대와 18대 총선 출구조사는 다수당은 맞췄으나 의석수 예측이 빗나가서 예상범위에 간신히 걸치는 결과가 나왔다. 그 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15~18대 총선은 여당[12] 의석을 과잉 예측했고, 이번 총선은 야당 의석을 과잉 예측했다는 것 정도다.[13] 이렇게 출구조사가 번번히 틀리는 이유는 각종 선거마다 분석해야 되는 지역구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접전지에서 기존 예측과 갈리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총선은 특히 접전지가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합지가 아님에도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19대 총선에서 출구조사와 실제 당선자가 바뀐 지역은 아래와 같다. 총 17개 지역이다.
(앞쪽이 출구조사 1위, 뒤쪽은 실제 당선자. 영향을 미친 구도가 있으면 별도 기입.)

파일:attachment/37871.png 파일:attachment/38097.png

심지어 경합으로 표시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도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위에 나온 사진의 고양시 덕양구 을이 그 예다. 대체로 여권 후보들은 출구조사에서 나온 지지율보다 2~3% 정도가 더 나왔고, 야권 후보들은 그 반대였다. 서울 서대문구 을의 경우 SBS에서는 접전 표시가 뜨지 않았지만, MBC에서는 경합이 표시되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믿고 나왔던 진보신당도 졸지에 다시 역풍 2010(노회찬)을 실감하고 만다.

출구조사 예측대로라면 이들 지역은 새누리 1, 민주 13, 통진 2, 무소속 1으로 민주통합당이 140석(+ 친야 무소속 2석), 새누리당이 139석(친여 무소속 없음), 통진당 15석, 선진당 4석으로 야권 157, 여권 143의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와야 했다. 그러나 실제 17석의 결과는 새누리 14, 선진 1, 무소속 2[16]으로 뒤바뀌면서, 최종결과는 새누리 152석(+ 친여 무소속 1석), 민주 127석(+ 친야 무소속 2석), 통진 13석, 선진 5석으로 여권 158, 야권 142의 여대야소로 결판났다.

야권(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은 서울에서 2/3정도의 의석인 32석을 가져가는 등 수도권에서 17대 총선과 거의 비슷한[17] 승리를 하였으나, 내용으로 보면 접전으로 분류된 상당수 지역에서 패배 또는 역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수도권(특히 서울)에서는 패했으나 텃밭인 영남권을 거의 석권하였고, 또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당초 예상보다 많이 선전했다. 사실상 선거 승패가 갈린 지역이다. 특히 강원도는 새누리당이 의석 9석을 전부 가져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의외로 19대 총선의 결과는 야권(개혁/민주/진보진영) 입장에서는 1990년 3당 합당이 이뤄진 이후 치러진 6번의 총선(~2012년) 중 2번째로 잘 나온 결과였다는 것이다.[18] 실제 후술되어있듯 비례투표에선 범진보가 앞섰으며, 지역구도 선거 막판 김용민 막말 파문 등으로 수도권에서만 최소 10석이 날라갔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야권 쪽에 악재가 잇따라 터진 것을 감안하면, 물론 실망한 지지층을 추스르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선전한 선거 결과라는 견해도 있었다.

3.1. 연령별 정당 득표율

4. 투표 결과

시간별 투표율
선거인수 : 40,205,055명[19]
시간 누적 투표수[20] 투표율
7시 914,316 2.3%
9시 3,584,231 8.9%
11시 7,871,059 19.6%
12시 10,193,417 25.4%
13시[21] 13,033,771 32.4%
14시 14,966,725 37.2%
15시 16,838,809 41.9%
16시 18,420,189 45.8%
17시 19,834,035 49.3%
18시 21,806,798 54.2%
지역별 투표율
지역 선거인수 투표수[22] 투표율 기권수[23]
서울특별시 8,387,222 4,654,684 55.50% 3,732,538
부산광역시 2,905,969 1,586,681 54.60% 1,319,288
대구광역시 1,979,646 1,035,922 52.33% 943,724
인천광역시 2,208,014 1,135,647 51.43% 1,068,367
광주광역시 1,109,014 584,482 52.70% 524,532
대전광역시 1,172,411 636,132 54.26% 536,279
울산광역시 874,320 490,360 56.08% 383,960
세종특별자치시 80,052 47,418 59.23% 32,634
경기도 9,241,648 4,861,267 52.60% 4,380,381
강원도 1,227,738 684,560 55.76% 543,718
충청북도 1,223,156 667,815 54.60% 555,341
충청남도 1,587,223 831,601 52.39% 755,622
전라북도 1,476,609 791,902 53.63% 684,707
전라남도 1,525,807 867,172 56.83% 658,635
경상북도 2,174,778 1,218,552 56.03% 956,226
경상남도 2,588,168 1,479,692 57.17% 1,078,476
제주특별자치도 443,280 241,533 54.49% 201,747
재외국민[24] 123,571 56,456 45.69% 67,115
합계 40,205,055 21,806,798 54.2% 18,389,635

4.1. 연령대별 투표율

선관위 공식 통계에 근거한다.
(단위는 %)

5. 개표 결과

파일: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svg
파일:19대 총선 결과 지도.png
파일:19대총선권역별.jpg

5.1. 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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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의석 현황
지역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자유선진당 무소속 <colbgcolor=#eeeeee,#2d2f34> 합계
서울 16 30 2 0 0 48
부산 16 2 0 0 0 18
대구 12 0 0 0 0 12
6 6 0 0 0 12
광주 0 6 1 0 1 8
3 3 0 0 0 6
울산 6 0 0 0 0 6
세종 0 1 0 0 0 1
경기 21 29 2 0 0 52
강원 9 0 0 0 0 9
충북 5 3 0 0 0 8
충남 4 3 0 3 0 10
전북 0 9 1 0 1 11
전남 0 10 1 0 0 11
경북 15 0 0 0 0 15
경남 14 1 0 0 1 16
제주 0 3 0 0 0 3
전국 127 106 7 3 3 246

파일:19대총선전체.jpg

5.1.1. 정당별 지역구 득표율

정당별 지역구 득표율
정당 득표 수 의석
득표율
[include(틀:새누리당(2012년))] 9,324,911 127석
43.28%
[include(틀:민주통합당)] 8,156,045 106석
37.85%
[include(틀:무소속)] 2,014,777 3석
9.35%
[include(틀:통합진보당)] 1,291,306 7석
5.99%
[include(틀:자유선진당)] 474,001 3석
2.20%
[include(틀:진보신당)] 101,614 -
0.47%
[include(틀:정통민주당)] 71,867 -
0.33%
[include(틀:국민생각)] 44,379 -
0.21%
[include(틀:친박연합)] 25,302 -
0.12%
[include(틀:국민행복당)] 18,028 -
0.08%
[include(틀:청년당)] 5,569 -
0.03%
[include(틀:미래연합)] 5,403 -
0.03%
[include(틀:녹색당)] 4,843 -
0.02%
[include(틀:창조한국당)] 3,624 -
0.02%
[include(틀:기독자유민주당)] 2,241 -
0.01%
[include(틀:대한국당)] 887 -
0.00%
[include(틀:민주통일당(2011년))] 524 -
0.00%
[include(틀:한나라당(2012년))] 454 -
0.00%
[include(틀:국민의 힘)] 153 -
0.00%
[include(틀:불교정도화합통일연합당)] 68 -
0.00%
선거인 수 40,205,055 투표율
54.24%
투표 수 21,806,798
무효표 수 260,802

5.2.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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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정당 득표수 득표율[25] 당선인 수 비고
1 새누리당 9,129,226 42.80% 25
2 민주통합당 7,775,737 36.45% 21
3 자유선진당 689,843 3.23% 2
4 통합진보당 2,198,082 10.30% 6
총합 21,327,600 100% 54
지역구 없이 전체 300석을 비례대표로만 뽑는다고 가정해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원내 정당만으로 치면 진보정당 10.30%, 범민주 36.45%, 범보수 46.03%로 진보가 아주 약간 앞서긴 하지만 결국 반분된 결과였다. 300석 기준으로 보면 민주계 + 진보 151석(118+33) 대 범보수 149(138+11)석이 되는 실날 승부다.

나머지 7.22%의 지지를 나누어 받은 득표율 2% 이하의 군소 정당들은 전부 득표율 미달로 등록취소 되었다. 득표 순서대로 10번 기독자유민주당(1.20%), 16번 진보신당(1.13%), 20번 한나라당(0.85%), 6번 국민생각(0.73%) 등이었다. 2014년 1월, 헌법재판소가 "총선득표 2% 미만 소수정당 등록취소는 위헌"이란 판결을 내리면서[26], 19대 총선은 2% 이하의 득표를 얻은 정당이 등록취소 된 마지막 선거가 되었다.

6. 결과 분석

6.1. 정당별 분석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가정했을 때의 의회 구도[27]
진보정당 13석 민주당계 129석 보수정당 158석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새누리당
13석 129석 5석 153석

6.1.1. 새누리당

선거 결과 과반을 차지하며[28] 승리하였고 선거를 진두지휘한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는 대선 행보에 청신호가 켜졌다. 사실상 친이의 퇴조와 숨죽여 살던 친박의 전면 등장이 확인된 선거다.

특히 간판급 친이계 현역들 상당수가 공천에서 탈락되었다. 그 중에서도 지난 총선뉴타운 건설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워서 당선된 친이계 소장파들, 소위 타운돌이들이 대거 희생양이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강승규, 신지호, 홍정욱, 유정현, 진성호, 진수희, 권택기, 전여옥 등이 있다. 중진들의 경우 이윤성, 안상수, 김무성[29], 안경률 등이 대표적인 희생양들이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 입장에서도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인 게, 우선 친이계 현역이더라도 친이계 색이 옅거나 지역구 내 지지기반이 탄탄한 인사들은 다시한번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 대표적으로 이재오, 정두언, 정병국, 심재철, 원유철, 김영우, 권성동, 주호영, 정의화, 김정훈, 박민식, 나성린, 김기현, 김태호, 김재경, 이군현 등이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몸담은 인사들 중 상당수도 19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윤진식대통령실 정책실장, 류성걸[30]기획재정부 차관, 김희국[31]국토해양부 차관, 이재균국토해양부 차관, 김종훈[32]통상교섭본부장, 김성찬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김회선국가정보원 2차장, 심윤조외교통상부 차관보, 이강후대한석탄공사 사장, 김희정[33]대통령실 대변인, 정문헌대통령실 통일비서관, 심학봉대통령실 지식경제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이 있다.

이러한 양상에 대해 한겨레진보언론들이명박근혜 공천이라며, '정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이명박 대통령과, 대권 가도에 청와대의 도움이 필요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밀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여하튼 이렇게 생각보다는 친이계들이 많이 당선된 결과는, 이후 김무성과 유승민[34]까지 더해진 비박계들이, 한창 박근혜 정부 중반기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 당대표 경선과 2015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새누리당 전반적으로 볼경우, 원내 과반수 의석을 지키면서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대통령 임기 말에는 대부분의 선거를 야권에서 이겼으나, 이번 19대 총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5년차였음에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이겼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6.1.2. 민주통합당

MB정부 심판론에만 기댄 채 여유롭게 과반을 낙관하다 원내 1당마저 뺏기고 말았다.[35] 사실상 패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대보다 많이 부진했는데, 실제 민주통합당은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패배를 인정하였다.

다만 전체 결과로만 놓고 보면 고작 81석에 그치며 참패한 18대 총선에 비하면 46석이 늘어난 127석을 확보했고, 여기에 야권연대한 통합진보당 의석을 합치면 140석이 되어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규모의 세력은 얻었다. 다만 여당 견제가 목표가 아니라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되는 것이 목표였기에 실질적으로 패배인 건 맞긴 하다.

6.1.3.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로 늘어난 지역구 의석을 통해 결과적으론 13석으로 역대 최다 의석을 확보했으나, 진보진영 자체로는 국민참여당 출신 의원들을 빼고 나면 의석이 늘지 않았고, 당선 가능성이 점쳐지던 울산광역시창원시에선 근소한 차로 전멸하며 내실적으로는 크게 만족스럽진 않은 결과를 보였다. 정당 득표 역시 참여당계 지지성향 득표를 합쳐서도 17대 총선의 13%에 못 미쳤다. 게다가 총선 전의 관악을 야권단일후보 선출 부정경선 파문에 이어,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의 비리가 드러났고 여기에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의 문제까지 엮이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비당권파에서는 조사 결과를 들어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를 요구했으나, 당권파에서는 조사가 편향되었다고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했다. 자세한 내용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항목 참고. 결국 이후 진보정의당(정의당)으로 비당권파들이 탈당함에 따라 당은 둘로 쪼개졌다.

6.1.4. 자유선진당

18대 총선에서 18석을 얻었던 자유선진당은 이 총선에서는 5석에 그치는 등 참패했다. 비례를 건져서 3석은 면한 게 위안일 수준. 이에 따라 원래 대표였던 심대평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회창 전 대표 역시 탈당했다. 대신 이인제가 전면에 떠올라 당명 역시 선진통일당으로 바꾸는 등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실패하고 이후 새누리당과 합당하게 된다.

6.1.5. 진보신당

2009년 재보궐선거 때 원내에 입성을 했지만, 그 뒤 노심조가 탈당을 하면서 위축이 되었고, 지난 총선때와 마찬가지로 독자 생존을 위해 선거를 임했지만, 그나마 3자 구도속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쳤던 김한주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는 선전은 커녕 부진하면서 말 그대로 대참패를 했다. 비례도 1.13%에 그치면서 말 그대로 망했다.

참고로 12년 뒤, 이 상황이 또 재현이 되고야 말았다.[36]

6.1.6. 그 외

선거에서 암묵적으로 반새누리 투표를 호소했던, 당시 '안철수 현상'이란 큰 바람을 일으키며 대권주자로 주목받던 안철수 교수의 대선 출마 가능성도 높아졌는데, 실제 서울대학교 융합대학원 원장이었던 안철수는 이 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이후 새누리당을 막기 위해 자신이 대선 출마를 확고히 굳혔다고 회상하기도 했다.[37]

6.2. 지역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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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종합적 원인 분석

6.3.1. 김용민 막말 파문

6.3.2.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공개 파문의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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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4
토론 - 합의사항45
토론 - 합의사항46
토론 - 합의사항47
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


야권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로 이용하고자 했던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공개에 대해,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홍보수석 최금락이 3월 31일과 4월 1일의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노무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야권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격하였다. # 새누리당 또한 이에 발맞추어 불법사찰에 대한 특검의 필요성과 박근혜야말로 불법사찰의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민주당에 대한 명분적, 도덕적 우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리얼미터 대표 이택수는, 민간인 불법사찰이라고 하는 악재를 오히려 노무현 정부와의 물타기로 위기를 넘긴 새누리당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비교하면, 민주당 지도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여러모로 취약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택수 대표는, 김용민 막말 파문이 야권에 악재였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막말 파문의 여파가 확산되던 3~4일동안에도 리얼미터 일간 지지율의 변동이 눈에 띄지 않았음에 착안하여, 파문 자체보다는 오히려 그 파문을 3~4일동안 공식 대응하지 않고 우왕좌왕했던 민주당 지도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가 더 큰 악재였다고 평가했다.
4월 2일(월)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공개 파문이후, 당초 예상과 달리 야권에 역풍이 불고 있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정체 내지 하락의 상황이었고,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보수층 결집에 의해 상승하고 있었다. 4월 2일 리얼미터 전국 유권자 대상 일간 여론조사에서,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새누리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의견은 37.1%, 민주당 후보는 34.4%로,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은 3월 30일(금) 조사보다 1.1%포인트 올랐고, 민주당은 2.5%포인트 하락, 새누리당이 2.7%포인트 앞서가기 시작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이슈가 야권에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근거였다.
4월 3일(화)
당시 새누리당 조윤선 선대위 대변인은 "지금 상황에서 어디까지 합법적인 감찰이고 불법적인 사찰인지를 속시원하게 풀어줄 것은 특검 뿐”이라며, “민주통합당은 당장 특검을 수용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민간인 사찰 이슈에서 노무현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당시 민주당 박선숙 사무총장은 “4.11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청문회를 즉각 개최하자”고 제안하면서, "청문회에는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도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일:2012총선리얼미터.jpg
그날 밤 10시에 마감된 리얼미터 일간조사 지지율에서, 새누리당 후보 41.0%, 민주당 후보 34.2%로, 양당간 격차는 전 날보다 더 벌어져 6.8%포인트로 벌어졌다. 과거 권력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공격이,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미래 권력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야당의 공격보다 유권자들에게 더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문제의 '김용민 막말 파문'이 인터넷 뉴스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택수 -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전후, 총선 다큐멘터리 10일

6.3.3. 결집한 여당과 사분오열 민주당

새누리당은 이 선거에서 박근혜에게 당권을 몰아주어, 정권 심판론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쉬운 간판급 친이계 현역들을 과감히 잘라냈다. 특히 지난 총선뉴타운 건설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워서 당선된 친이계 소장파들, 소위 타운돌이들이 대거 희생양이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강승규, 신지호, 홍정욱, 유정현, 진성호, 진수희, 권택기, 전여옥 등이 있다. 중진들의 경우 이윤성, 안상수, 김무성[50], 안경률 등이 대표적인 희생양들이다.[51]

이 친이계 현역들을 컷오프한 게 해당 의원들의 지역구 선거에서는 딱히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당의 인적 쇄신이 이뤄졌다는 메세지를 준 덕분에 전국적인 판세에 있어서는 호재였다고 할 수 있다. 또 공천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김무성이 본인도 낙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서서 낙천자들을 설득시켰다. 또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15년간 줄곧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인식[52]하는 대중들의 분노에 대응하여, 보수정당임에도 경제는 좌클릭하는 일명 경제민주화 공약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중도층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53]

민주당의 경우, 2011년 12월 손학규 대표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위해 친노와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시민통합당과의 통합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천천히 합치자고 주장했던 박지원은 손학규에 대한 지지를 접어버렸고, 둘의 통합을 추진하고자 모은 임시 전국대의원 대회에서는 멱살잡이와 욕설이 이어지는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여당과 비교해 야권의 암울한 앞날을 보여주는 불길한 사건이었다. 허나 어찌저찌해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은 합쳐져 민주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한명숙 대표도 선출했다. 하지만 그렇게 출발한 민주통합당은 동교동계친노,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뒤엉킨 막장 계파 싸움이 여전했고, 한명숙은 이들을 묶어나갈 힘이 없었다. 때문에 공천 심사 과정에서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잠시 사퇴하기도 하는 등 당 후보를 내세우는 것조차 영 쉽지 않았다.

그러다 공천 과정에서 낙천된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은 탈당 후 정통민주당을 만들게 되는데[54], 문제는 여기서 나온 후보들이 박빙 지역 5곳(사실은 기사에 누락된 경기도 광주시 포함 6곳)에서 표를 갉아먹어 야권연대 후보들을 떨어뜨리고 새누리당이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거다(...). # 이것 때문에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 자세한 건 정통민주당 항목 참고. 19대 총선에서 정통민주당의 표를 야권후보가 흡수했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야권이 승리했을 지역을 분석해보면, 서울 은평구 을, 서울 서대문구 을, 경기 의정부시 을, 경기 평택시 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갑, 경기 광주시 이렇게 6석으로 야권엔 뼈아픈 지점이 되었다. 다만, 개별 출마자 및 지지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해 볼 때 이들 표가 민주통합당이나 통진당으로 마냥 갔을 표라고 무조건 확신하긴 애매한 점도 있긴 하다.[55]

진보신당 역시 독자 행보로 여전한 위력(?)을 과시했다. 고양시 덕양구 을(現 고양시 을)이 대표적인 경우로, 특히 울산광역시창원시 성산구[56]에서 통합진보당과 표 분열을 일으켜 그 결과 경상남도 쪽에서 진보정당 의석이 아예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리고 비례득표도 1%대 밖에 못 받아 당이 해산되고, 이후 노동당으로 재창당되었다.

한편, 보수 쪽에서도 군소정당이 나타나긴 했는데, 원조 친박이었다가 박근혜에 학을 떼고 탈당한 전여옥과 그녀를 끌어들인 박세일 등이 뭉쳐 창당한 보수계 군소정당 국민생각이 그것. 허나 국민생각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을이원복[57]이 새누리당 후보를 1명 낙선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외엔 성과가 전무해 망했다.

6.3.4. 통합진보당과의 연대 논란 및 차별화 실패

사실 민주당이 사분오열되긴 했어도, 그나마 군소세력이 나간 형태로 끝났다면 (과반은 몰라도) 제1당까지는 노려볼만도 했을 것이다. 허나 통합진보당과의 지리한 단일화 싸움이 결국 승부를 결정지었다.

통합진보당은 우리는 짜장면만 먹고 살 수 있지만 민주당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라고 협박(?)하며 20개가 넘는 지역구를 달라고 하였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전국에 후보를 다 내서 민주당 후보를 떨어트려 버리겠다는 공갈포를 날리기도 했다. 이에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여러차례 만나 담판을 하고 결국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에게 13개 지역구를 양보하며 협상을 맺기는 하였으나, 선거 결과 실효성이 적었다는 평가 역시 받았다. 오히려 NL 성향의 인사들이 섞여 있는[58] 당시 통합진보당과의 연대에 적지 않은 중도층 유권자들이 등을 돌려 손해를 봤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던 중도층 표심의 상당수가 민주당에 희망을 걸었지만, 야권내에서도 종북 관련해 논쟁의 대상이 된 바 있는 NL계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 당시 민주당에 실망한 상당수 중도층은 다시 좌클릭 행보를 보이던 새누리당으로 갔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지역구 협상 뿐만 아니라 정책에서도 통합진보당과 별다른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당의 강령에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정신 계승, 2008년 촛불시위의 정신을 계승, 재벌과 대기업의 근본적 개혁, 원자력 발전소 정책 재검토, 종합편성채널 원점 재검토 등 나름 파격적인 내용을 넣어 통합진보당보다도 좌경화된 것 아니냐는 보수 진영의 색깔론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다만 네거티브성도 다분한게, 애초에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전문'이 없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두 정당의 성향을 1:1로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7. 국회의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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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젯거리

8.1. 여성당대표, 여성사무총장 시대

한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여당과 제1야당, 양당의 대표가 여성이었다. 새누리당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통합당한명숙 대표가 각 정당의 대표 자리로 있었다.[59] 또한 제2야당이 된 통합진보당 또한 심상정, 이정희 같은 여성 정치인들이 공동대표로 자리했다.

뿐만 아니라 19대 총선은 양당의 총선 사령탑들도 전부 여성들이 맡았다. 새누리당은 이혜훈 의원(사무부총장)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고, 민주통합당에서는 박선숙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았다. 박영선, 추미애 의원 등 영향력있고 유명한 여성 정치인들이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활약했다.

또한 이 선거에서 47명(15.7%)이라는 역대 최고로 많은 여성 의원을 배출해냈으며, 이후 치러진 세 차례의 총선에서도 여성 의원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된다.[60]

8.2. 지역 구도의 완화

지역주의의 약화를 보여준 것도 19대 총선의 특징이었다. 새누리당은 호남권(광주광역시 서구, 전주시 완산구), 민주통합당은 PK를 비롯한 대구광역시 수성구, 서울 강남권 등지에서 선전했다.[61]

우선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의 김부겸 후보와 광주광역시 서구 을의 이정현 후보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현재 지역구를 버리고 상대 텃밭(대구, 광주)에 출마했다.[62] 이들은 선거 결과 모두 낙선하긴 했으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득표율을 보이며 선전했다. 그리고 김부겸은 다음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재출마하여 이번에는 당선되었으며, 이정현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와 다음 총선에서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서 연달아 당선에 성공하면서 둘 다 국회 복귀에 성공했다.

김부겸 후보는 득표율 40.4%(대구의 민주통합당 정당득표율 약 16%), 이정현 후보는 득표율 39.7%(광주의 새누리당 정당득표율 약 5.5%)를 기록했다. 특히 김부겸 후보는 출구조사까지 경합으로 나오는 접전을 이뤘다. 광주 서구의 경우에는 야권 연대로 민주당 후보가 아닌 통진당의 오병윤 후보가 나온 덕분에 이정현 후보가 더 득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으나, 어찌됐든 각각 자신의 소속 정당보다 약 3배, 7배 높은 득표를 하며 성과를 거뒀다. 또 상대적으로 묻힌 경향은 있지만, 이들 외에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을(現 전주시 을)의 정운천 후보가 새누리당 소속으로 35.79%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얻으며 선전했다.[63][64]

PK(부울경) 지역에서도 민주-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과의 득표율 차이를 많이 줄였다. 접전패를 당한 지역이 많아 비록 의석 수로는 지난 총선보다 1석이 줄어든 점이 아쉬웠으나, 이때의 다수 접전지 배출은 다음 총선에서 역대급 PK 대선전을 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부산광역시에 출마한 민주당 문성근, 김영춘, 김정길, 최인호 후보들이 낙선하긴 했지만, 새누리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며 선전했고, 거제시에서는 진보신당의 김한주 후보가 분투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참고로 거제 지역구 당선자는 새누리당 후보가 아닌 보수 성향의 무소속 김한표 후보였다. 이후 새누리당 입당. 이름이 헷갈렸을 것 같다. 특히, 김영춘 후보가 나온 부산진구 갑 선거구도 무소속 정근 후보[65]가 나오면서 접전이 된 지역이었으나 결국 낙선하며 표 분열의 효과를 누리진 못했다.

강남권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가 선전했는데, 강남구 을에 나온 정동영 후보가 낙선하긴 했지만 39.2%를 득표했으며[66], 송파구 을의 천정배 후보는 무려 46.0%를 득표했다. 인지도 높은 거물 후보라는 점이 득표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67][68]

8.3. 선거구 관련

8.4. 박빙 선거구

19대 총선에서 1위와 2위 후보들 간의 표차가 1000표 미만이었던 지역구는 총 11곳이다.

8.5. 인물 관련

8.5.1. 특이인물

8.6. 투표/개표 관련 사건/통계

8.7. 개표 방송 - SBS의 와신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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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선거방송국민의 선택약을 빤 방송을 선보였다. 참고로 SBS는 8개월 후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에서 약을 한 번 더 빨았다.

개표방송MBCKBS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사태로 주요 스태프들이 빠짐에 따라 심심했던 반면, SBS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의 MBC를 뛰어넘는 퀄리티의 예능 개표방송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본격 스포츠, 예능보다 재미있는 총선 중계.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예산을 이 쪽에 다 퍼부은 게 아니냐는 농담도 돌 정도였다. 결국 8.3%의 시청률로 KBS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KBS에서는 투표 진행 도중 방송사고를 일으켰다. '투표율'을 '개표율'로 오기하고, '서울 종로구 새누리당 홍사덕 당선'이라는 자막을 투표 진행 중에 내보낸 것. 원인은 전산 시스템의 오류. 사고 후 KBS는 바로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사태와 개표 시작 전 방송사고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고 심층 있는 총선 보도로 13.3%를 기록, 1위를 차지하였다.

반면 MBC는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사태에 더불어 진행자를 사장 김재철의 수하로 불리는 권재홍, 황헌 두 보도국 간부가 맡았고, 역시 KBS처럼 출구조사 때 데이터 오류로 그래프가 뒤바뀌어버리는 방송사고를 저지르면서 부진하였다. MBC도 나름 대항마로 새로 도입한 각 후보들의 3D 아바타를 내놓았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낳고 말았다. # SBS의 옛 타이틀 호러 방송을 계승하며 결국 4.4% 시청률로 지상파 중 꼴찌를 기록하였다. 가히 불쾌한 골짜기 효과가 극대화되는 클레이필의 아바타였다고 한다.

9. 여담

9.1. 투표 독려 운동

9.2. 통합진보당 관악구 을 선거 경선 부정개입 파문

3월 23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측 선거본부에서 3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치러진 야권연대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 경선에 부정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론조사 참여자에게 나이를 속여서 답변하라고 문자메시지로 지시한 것. 이정희 대표는 재경선을 제안했으나, 민주통합당 김희철 후보는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정희 대표는 사퇴를 거절하고 완주하기로 결정했다.[80]

문재인 고문의 중재 끝에 결국 이정희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 문제가 된 지역구를 무공천한 것과 달리 통합진보당은 과거 경기동부연합 출신의 이상규를 바로 공천했다. 게다가 이상규는 관악구 거주민이 아니었고, 관악구와는 전혀 연고도 없었다.[81] 기사 1, 기사 2, 기사 3, 기사 4.

9.3. 손수조 후보 선거법 위반 논란

10. 관련 문서


[1] 결국 이 총선 8개월 후에 치른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어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정권 교체 10년 주기론'이 이 시기 부터 쓰이기 시작했다.[2]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3] 노태우 정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역임했으며, 실제로 노태우 정부는 김종인의 영향력 때문에 역대 보수 정부들 중 경제정책이 가장 좌클릭한 편이다. 하지만 이후 김종인은 민주당계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했기 때문에 박근혜가 영입했을 당시에는 야권 인사였다.[4] 2008년까지는 친박으로 분류될 수 있었으나, 2009년 당시 이명박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행정도시 취소안)을 추진할 때 이에 찬성하였고, 2010년에는 친이계가 제시한 한나라당 원내대표 자리를 수락하면서 박근혜와 사이가 멀어져 19대 총선 당시에는 친박이 아니었다. 이후엔 알다시피 화해와 갈등을 반복하다 결국엔 비박계의 수장이 된다.[5] 세종시장과 세종시 교육감 등을 선출했다. 세종시의원은 일시적으로 연기군 의원이 대행하다가, 2014년 지방선거부턴 정식으로 세종특별자치시의회 의원을 선출했다.[6] 다만 이때만 해도 공직자선거법 조항은 그대로 299명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국회의원 300명 정원은 부칙에 명시되어 19대 국회에만 효력이 있는 한시규정이었으나,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3일자로 개정되어 이후 정식으로 300명이 되었다.[7] 여기서 재외국민이란, 해외에 거주하고 있으나 국적이 한국인 사람을 가리킨다. 즉, 거주 국가의 영주권을 취득한 한국 국적인은 선거권이 있지만, 그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등의 사유로 한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은 재외동포로 분류되고 선거권이 없는 것. 국내 국적법에서는 재외국민이 재외 공관(대사관영사관 등)에 등록을 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그나마 재외국민 파악은 쉬운 편이다.[8] 대사관, 영사관 등.[9] 이 때문에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의 대표는 외교통상부에서 임명함에도 불구하고 외교관이 아니라 민간인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10] 출구조사는 지상파 3사 모두 같이 했으나,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예측 분석은 각 방송사마다 따로 했기 때문에 예상 의석도 조금씩 다르게 나왔다.[11] 다만 후술되어있듯 애초에 이때 여당인 새누리당의 당권 자체가 친이에서 (여당내 야당을 자처하던) 친박계로 넘어간 선거라, MB정부 입장에서는 딱히 여대야소라고 보기도 어려운 정국이긴 했다.[12] 순서대로 신한국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한나라당.[13] 여담으로 20대는 당시 여당, 21대는 당시 야당 과잉 예측이 나왔다. 그래도 2013년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이후, 사전투표는 현행법상 출구조사를 못하기에 더 분석이 까다로워졌음을 감안하면, 정확도 자체는 예전보단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방향에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14] 문대성 의원은 4년 뒤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돌연 김무성 대표의 요구로 인천 남동구 갑에 출마했다.[15] 출구조사에서 2위도 아니고 3위로 예측된 후보가 당선된 것이었다.[16] 한곳은 무소속끼리 접전으로 결과가 바뀌었다.[17] 17대 총선 역시 서울에서 한나라당 16석, 열린우리당 32석을 가져갔다.[18] 16대 총선에서는 DJP연합의 범여권이 범야권(한나라당)을 앞선 적은 있지만, 자민련 같은 보수계 정당의 힘을 보태입은거라, 민주당이나 진보세력만을 따져서 제일 잘나온 선거는 2004년 17대 총선이었다. 당시 총선은 탄핵 역풍에 힘입어 열린우리당 1당만으로 단독과반을 넘겼고, 분열하긴 했지만 새천년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무소속까지 포함한 범진보의석은 172석에 이르렀다. 물론 이 선거 이후 진보진영의 세력 확장이 이뤄지긴 한다. 그래서 거꾸로 2004년 17대 총선부터 치러진 5번의 총선에서는 직전 18대 총선을 제외하곤 두 번째로 못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20대 총선이 123석으로 4석 부족하지만, 이것은 호남을 국민의 당이 가져갔기 때문.[19] 재외선거 포함[20] 재외국민 투표 및 부재자 투표 포함[21] 부재자 투표수 합산 시작. 부재자 투표수는 누적 투표수에 포함됨.[22] 부재자 포함한 숫자이다. 재외국민 투표 중 국외부재자는 각 시도 본수에 포함되어있으나 재외국민 투표만의 투표율은 별도로 표기한다.[23] 투표 하지 않은 사람[24] 국외부재자는 이미 상술한 시도 본수에 포함되어 있으나 투표율 계산을 위해 별도 표기하였다.[25] 선거 기준에 따라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둘째 자리까지.[26] 이 시기에 해산된 녹색당, 진보신당, 청년당 등을 중심으로 이 부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27] 무소속의 경우 민주계 2석, 보수계 1석.[28] 새누리당은 2석 차이로 과반을 지켜냈지만, 제수 성폭행 의혹을 갖고 있는 김형태 당선인과 논문 표절 의혹을 갖고 있는 문대성 당선인이 여론이 좋지 않자 출당성 탈당을 하면서 개원도 하기 전에 과반이 무너지게 되었다. 다만, 이후 선진통일당과 합당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한표 의원이 입당하면서 과반을 다시 확보했다.[29] 원조 친박이지만 친이계의 추대로 원내대표가 되면서 박근혜와 결별했던 만큼 굳이 둘 중에 따지자면 친이라고 봐야한다.[30]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1] 4대강 정비 사업 기획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32] 당시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였던 한미 FTA 실무를 총괄했다.[33] 해당 공천의 경우, 당시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이었던 이달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유야무야 묻혀버렸다. #[34] 다만 유승민의 경우 19대 총선 당시에는 친박계여서, 이처럼 이명박계 인사들 상당수가 공천을 받은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35]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뀌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색채가 사라지고 박근혜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거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MB정부 심판론이 크게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36] 심지어 이 선거에서도 민주당과 협력한 노동계 진보정당이 원내에 입성을 했다(...)[37] 안철수는 이후 2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좀 더 우클릭해 중도 입장에서 새누리당의 후신인 미래통합당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노선을 중도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4대강 정책을 옹호하는 등 일부 보수주의자나 진중권 등도 하지 않는 일을 할 정도로 노선이 완전 바뀌었다. 그리고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의 단일화,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친 후 2022년 4월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을 통해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하였다.[38] 이때의 친분으로 김구라가 김용민 응원 영상 비슷한 것을 보내기도 했었다. 다만 김구라는 원랜 황봉알, 노숙자랑 같이 정치보단 주로 연예계 같은 쪽에 험담을 하는 막말러였고, 김용민과 자주 엮이는 관계는 아니었다. 김구라가 말하기를 당시엔 자신들도 절대 지상파나 양지에 진출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기에 진짜 말도 안 되는 거 알면서 돈(분유값) 벌려고 매니아들 상대로 더 쎈 발언을 하면서 허세를 부렸다고 한다. 허나 이는 결국 모두에게 족쇄가 되었고, 김구라도 방송계 진출 후 과거 자신이 욕했던 연예인(문희준, 이효리 등)들에게 틈만 나면 싹싹 빌고 다녀야만 했다.[39] 그래도 비방 대상이 죄다 국내에 발 들일 없는 외국인들 뿐이라서, 모욕죄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이걸 노리고 그랬던걸지도.[40] 참고로 김용민은 개신교 신자 겸 목사다. 즉, 개신교 자체를 비하했다기보단 보수 기독교계에 대한 욕을 한 것.[41] 다만 이때 총선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졌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42] 예를 들어 이해찬이다. 이해찬의 경우엔 당대표 선출 당시 다른 나꼼수측 멤버가 이해찬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것과 달리 별 언급이 없었다.[43] 김진표, 이인영. 김진표에 대해선 당대표 선출 당시 자유한국당으로 가버리라며 비난했으며, 이인영에 대해선 2019년 원내대표 선출 당시 과거 자신을 씹었다며 대놓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44] 트위터에서 한동안 나돈 김용민 후보 선거사무실에 어버이연합이 무단침입하고 사무실 여성에게 폭언을 가했다는 멘션은 사실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하고 난입하려던 것은 사실이나 경찰에 저지당했다. 그리고 이런 루머를 퍼트린 유저는 "헷갈린거다. 니들은 그걸 믿냐?"라며 정신승리했다.[45] 사실 이런 식의 막말 파문은 선거 당락의 3요소라는 구도, 인물, 이슈 중 이슈 측면에서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에 선거 막판 갈수록 그 위력이 커지기 마련인데, 8년 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나 8년 후 21대 총선 당시 김대호,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 막말 파문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강성 지지층은 이들을 옹호했지만 되레 중도표는 떨어져나가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측면에서 과정이나 결과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46] 즉, 총 유권자수 - 총투표수 = 기권표.[47]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노원구청장을 역임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한다.[48] 성동구, 광진구, 동대문구, 중랑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에 걸려 있던 총 17석노원 갑 1석만 새누리당의 승리였다.[49] 참고로 4년 뒤인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이노근 후보는 고용진 민주당 후보에게 2,000여표차로 패하며 노원구 갑 선거구를 내주게 되는데, 이때 김용민이 '막말 선배 김용민'이라며 이노근에게 낙선 축하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50] 원조 친박이지만 친이계의 추대로 원내대표가 되면서 박근혜와 결별했던 만큼 굳이 둘 중에 따지자면 친이라고 봐야한다.[51] 다만 친이계 소장파나 중진이더라도 친이계 색이 옅거나 지역구 내 지지기반이 탄탄한 현역들은 다시한번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는데, 대표적으로 이재오, 정두언, 정병국, 심재철, 원유철, 김영우, 권성동, 주호영, 정의화, 김정훈, 박민식, 나성린, 김기현, 김태호, 김재경, 이군현 등이 있다.[52] 다만 양극화의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의 경우 2008~09년도를 정점으로 점차 낮아지는 추세였다. #[53] 이처럼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선거 전략은 이후 대권 국면에서도 유용하게 먹혔고 결국 대권도 차지했다.[54] 일단은 정통 야당의 계승과 함께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표어로 내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결국 한화갑평화민주당 시즌 2(...). 꿈은 원대하였으나 현실은 시궁창. 이후 정통민주당 출신 상당수 동교동계 인사들은 앙금을 풀지 못하고 동년 겨울 제18대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민주당 대신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만다. 이후 몇은 다시 탈당하기도 한다만 어쨌든 이때 민주통합당이 탈당을 추스르지 못한 것은 선거에 두고두고 독이 되었다.[55] 당장 이 선거 4년 뒤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분당하게 되면서 야권 표가 나뉘어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의석을 가져가면서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막상 선거 결과는 국민의당을 찍은 표 중에서 민주당 표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표도 적지않게 잠식한 사례가 있다.[56] 권영길의 지역구인 창원시 을 선거구와 동일한 구역이다.[57] 먼나라 이웃나라 작가 이원복과는 동명이인.[58] 물론 심상정, 노회찬, 천호선 등 NL과 거리를 둔 PD 성향의 인사들도 다수를 구성하는 정당이긴 했다. 허나 결국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선거 이후 찢어져 PD 인사들은 진보정의당(이후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기게 된다.[59] 이 둘은 각각 대통령, 국무총리직도 경험하며 한국 여야 정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도 했다. 허나 이후 전부 감옥에 가고, 동일한 날짜에 사면 받는 일도 벌어진다.[60] 51명→57명→60명[61] 이들 지역 중 일부는 다음 총선 때 기어코 주인이 바뀐다.[62] 김부겸 후보는 경기도 군포시 3선 의원이었고, 이정현 의원은 당 사무처 출신의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었다.[63] 정운천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라북도지사로 출마해 약 18%의 득표를 한 적이 있다. 결국 4년 뒤인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3자 구도 속에서 당선을 이루어냈다.[64] 셋 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되었고,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들이 되었다. 그리고 21대 총선에서는 정운천만 유일하게 당선되었고, 나머지 둘은 모두 낙선하였다.[65] 무소속이기는 했지만, 보수 성향의 후보로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모종의 사건 때문에 탈락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였다.[66] 전임자였던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 소속 현직 국회의원인 공성진이 임기 1년 미만을 남기고 국회의원직을 잃는 일까지 생기면서(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었던 관계로 재보궐선거는 실시되지 않았다.) 새누리당에 대한 감정이 좋기 더 어려웠다.[67] 그러나 두 후보는 이후 지역구를 떠났고, 연고지인 전라도귀향하여 국민의당 후보로 20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68] 그리고 강남구 을송파구 을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당선되게 된다.[69] 논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사람의 이론, 주장, 자료를 인용할 때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부터가 표절이다.[70] 다만 진보정당이나 당원들 사이에선 새누리당이 잘한 유일한 (혹은 후술된 조명철까지 포함해 유이한) 공천이란 말도 나왔었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이자스민 의원의 법안 발의를 도와주기도 했고. 근데 더 웃긴건 대다수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그녀에게 반감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실 외국인들의 인식에 관한 해외 여론조사 같은 것을 봐도 기본적으로 좌파보단 우파에서 훨씬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71] 2019년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고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72] 나중에 태구민(강남구 갑), 지성호(비례대표)가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그 명맥을 잇게 된다.[73] 기초자치단체 밑에 일반구가 있으면 일반구대로 선관위가 새로 생긴다.[74] 다만 리턴 매치가 벌어진 20대 총선에서는 두 후보간 격차가 많이 벌어져 심상정 후보가 여유있게 당선된다.[75]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뒤에 이름을 한나라당으로 바꾼 정당.[76] 연령별 투표율 등을 집계하는 데는 시간이 며칠 정도 걸리기 때문에 절대 투표 마감 직후에 나올 수가 없다.[77] 실제 선거 성별 및 연령대별 투표율은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주석이 달린 내용에 관련된 투표율은 남(19세50.6%, 20대 전반 50.0%, 20대 후반 36.3%, 30대 전반 39.9%, 30대 후반 47.4%) 여(19세 43.4%, 20대 전반 40.4%, 20대 후반 39.5%, 30대 전반 43.7%, 30대 후반 50.8%)로 20대 후반 남성의 투표율이 제일 낮았다.[78] 보수정당은 20대 총선 - 122석, 21대 총선 - 103석, 22대 총선 - 108석 으로 모두 패배하였다. 그나마 20대 총선은 패스트트랙 저지선(120석)을 넘겼고 민주당계 정당도 둘로 나눠진 상태(더불어민주당 123석 & 국민의당 38석)라 체감이 덜했지만 이후 두 번의 총선은 패스트트랙 저지선에도 한참 미달한데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170석을 넘기며 엄청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의회 권력의 압도적 보수 열세가 최소 8년간 지속될 전망이다.[79] 원래는 투표율 70%를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에 목표치를 낮췄다.[80] 이 과정에서 김희철 후보도 여론조작 문자를 보냈다는 설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문자메시지 조작에 대해 알기 전에 경선에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하겠다는 선언은 미리 했었다.[81] 2010년 하반기 재보궐선거는 물론이고, 해당 19대 총선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에서 모두 은평구 을 지역에서 나왔다.[82] 공직선거법상 선거 유세가 가능한 차량은 따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지정된 차량은 예비기간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83] 똑같이 높은 정권 심판론, 야당의 공천 내홍과 NLPDR계 정당과의 연합 등이 말 그대로 판박이였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여당은 대참패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