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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당 | |
<colcolor=#F47920> 슬로건 | <colbgcolor=#fff,#1f2023>청년자립, 국민행복, 정치개혁 |
창당일 | 2012년 3월 15일 |
해산일 | 2012년 4월 12일 |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포은로2가길 59 우제빌딩 3층 (합정동) |
당색 | 주황색 (#F47920) |
공동대표 | 강주희, 권완수 |
2012.4.12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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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2년 3월 19일에 창당된 대한민국의 신생정당. 20대와 30대 등 청년층의 정치조직화를 목표로 창당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창당준비위원회 창설을 신고한 게 2012년 2월 13일이었는데, 한 달 만에 5,000명 당원을 모집하여 5개의 시도당 창당대회와 중앙당 창당대회까지 열어버리는 데 성공하였다.
2. 당명과 로고
- 한국어: 청년당
청년당의 로고 | |
3. 역사
안철수나 김제동 등의 청춘콘서트에 참여하여 실무를 보거나 청춘콘서트를 청강하던 20~30대 사람들이 청년 진보정치를 따르겠다며 창당한 정당이다. 당시에는 진보 성향이었던 안철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친안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정당에서 자체적으로 친안철수 정당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녹색당과 세를 같이 하기도 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플러스 등 SNS를 통해 세를 규합하였으며,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하였다. 하지만 신생정당이라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고, 비례대표 선거에서 2%의 득표율을 올려서 정당 해산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고, 안철수도 당시에는 명확하게 정계 진출을 어떻게 해야될지 구상정도나 하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안철수의 지원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었다.[1] 그리고 결국 지역구에서 전원 낙선하고, 비례대표에서도 0.3%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데 그치며 한 명의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2]2017년에 우리미래라는 이름으로 재창당하였다. 5년의 세월 사이 안철수가 우클릭을 했기 때문에 안철수 지지 성향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상호교차성 페미니즘계, 신좌파 세력 등이 들어오면서 보다 진보적으로 바뀌었다.
다만 당시 인원들 중 친안 성향이 명확했던 중도성향 당원들은 안철수를 따라 새정치연합에 합류했고 이후에도 새정치민주연합, 구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을 거쳐 신 국민의당에 잔류하거나 일부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3], 국민혁명당[4] 등으로 이동한다.
4. 역대 대표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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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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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안철수와 관계가 있었던 윤여준과 김종인은 안철수에게 정계에 진출했을때 먼저 총선에서 제3정당으로써의 세력을 갖추고 그 다음에 대선에 도전하자고 안철수에게 제안했지만 안철수는 이에 대해 머뭇거리다가 총선이 다지나고 나서야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게 되었다.[2] 이후 이들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결국 득표율 2% 미만 정당이 해산된다는 규정은 위헌 결정이 내려져 폐지되었다.[3] 주이삭 서대문구의원이 이에 해당된다. 안철수를 따라 국민의당에 합류했으나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에 반발해 안철수와 결별했다.[4] 19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던 강연재가 해당된다. 안철수를 따라 구 국민의당에 합류했으나 20대 총선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건너가 친홍으로 전향했으며, 후에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과 손잡고 국민혁명당 소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