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1] | 심상정[2] | 조승수[3] |
2011년 9월 6일,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 건설 추진을 발표하는 노심조. |
1. 개요
진보정치의 거물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조승수 전 의원을 묶어 부르는 호칭. 이 3명의 정치인 모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정의당 등 진보정치 핵심 정당들에 속해있었다. 2000년대 중반 형성되어 심상정 의원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2024년까지 PD계열 정치를 주도했다.2. 역사
이들 모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출마해 노회찬, 심상정은 비례대표로 조승수는 울산 북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한다. 이후 노심조는 함께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한다. 이후 진보신당 내부의 통합파와 통합진보당에 합류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터져버리면서 이정희등 당권파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 등의 비당권파와 함께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이후 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꿨고, 그 이후 4자 통합과 참여계의 대규모 이탈, 내부 분열 등을 겪으면서 녹색정의당이 되었다.노회찬 전 의원은 조승수 전 의원이 사실상 반은퇴 상황일 때 심상정 의원과 함께 정의당을 이끌었지만, 2018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여영국 후보가 다시 의석을 되찾았지만, 그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34%을 받아서 2위로 낙선하더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아예 8%에 그치면서 정계 은퇴 위험이 커져버렸다.
또한 조승수 전 의원은 2014년 울산광역시장 선거에서 큰 표차로 낙선을 한 이후 경선 탈락을 거듭하다 음주운전 사고로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직에서도 물러나면서 사실상 정계 은퇴가 확실시 되었다.
심상정 의원은 고양시 갑에서 진보정당 정치인으로는 최초로 4선에 성공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급격히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으며[4] 결국 고양시 갑에서 18%를 받으며 당선에 실패하였다.
2024년 4월 11일, 심상정 의원이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이로서 진보정당의 역사를 풍미했던 '노심조' 시대가 마무리되었다.#
3. 평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의 뒤를 이어 이 세 명은 진보정치계의 거두이자, 민주노동당-진보신당-통합진보당[5]-진보정의당-정의당으로 이어지는 PD계의 계보를 잇는 말그대로 정신적 지주였다. 물론 이 중 조승수는 다른 두 명보다 경력이 적기에 인지도가 밀리긴 하지만, 그래도 노심조만큼 인지도가 높은 진보 정치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조직력 위주인 NL과 달리 개인기로 돌아가던 PD 쪽 입장에선 이 세 명은 희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사실상 PD계 진보정당의 거두나 마찬가지였던 정의당은 이들 덕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진보정치에 유례없는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개인기 위주로 정치를 하는 PD 계열 특성상, 한 명이라도 부재하면 매우 치명적인데, 노회찬 사후 이후 이게 어느정도 현실화 되었으며, 그나마 그 뒤를 여영국 후보가 이었으나 그마져도 두 번의 총선 낙선[6]으로 사실상 은퇴가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리고 조승수는 큰 표차로 낙선 후 공천 탈락만 반복되었다가 음주운전으로 정계에서 아웃되었고, 심상정이 막판까지 불꽃을 유지했으나 그마저도 2024년 총선에 낙선함으로써 정계 은퇴를 확정지음으로써 이들의 불꽃은 사그라 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특히 심상정과 노회찬은 민주당계 정당들과 보수정당들의 공고한 양당 정치 생태계에서 연약한 진보정치를 이끌며 세력이 미약한 진보정당들을 원내진입에 성공시키고 원내 3당이라는 입지를 굳히며 현재의 진보정치의 토대와 기둥을 만들어낸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이 몰락하며 원외정당으로 밀려나면서 진보정계에서 노회찬 전 원내대표 사후 심상정 의원을 제외하고는 지역구에서 독자생존이 불가능했는데 그 심상정 의원마저 낙선했으며, 이로 인해 진보정계는 지역구에서도 경쟁력있는 진보 정치인, 즉 제2의 노심조를 발굴해야한다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4. 여담
조승수 대신 한 때 정의당에서 활동했던 유시민을 포함해서 '유심노'라는 말도 쓰였었다. 하지만 유시민이 정의당에서 탈당한 이후로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7]5. 관련문서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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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별명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 전국금속노동조합 · 노심조 · 선거 로고송 · 고양시 갑 |
[1] 2018년 사망. 최종 당적은 정의당.[2] 現 정의당 소속.[3] 現 정의당 소속.[4] 대선 당시 무리하게 양비론을 펼치며 단일화를 거부해, 정의당에게 교차투표를 해줄 수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엄청난 반감을 산 것이 원인이었다. 더군다나 이재명과 윤석열의 표 차이가 겨우 0.73% 박빙이어서 심상정이 대선 패배의 큰 원인이었다는 책임론이 강하게 불거진 상태였다.[5]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류했다.[6] 첫번째는 그나마 이흥석이 15% 정도 들고 갔다는 참작 사유라도 있지만, 두번째는 8%에 그치면서 말 그대로 쩌리로 전락하였다. 그 이흥석조차도 선거보전선을 지킨 걸 감안하면 매우 굴욕인 것[7] 사실 유시민과 노심조는 정치적 노선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같이 묶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노심조는 민노당 시절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과 정치적으로 한나라당 못지 않게 대립하는 사이였고 친노로 대표되는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들과 갈등과 협력을 반복해왔는데, 유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 중 1명으로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었다. 애초에 유시민이 정계에 입문한 것도 민주당 내 후단협 세력의 해당행위와 후보 흔들기로부터 노무현을 정치적으로 지키기 위해서가 컸다. 노심조와 유시민이 정치적으로 연합하게 된 건 2012년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