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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장기
△ 대학생 심상정[1] |
2. 운동권 / 노동운동가 시절
△ 대학생 노동운동가 심상정 |
알쓸신잡 7회에서 대학 동기인 유시민이 소회하기를, 대학생 시절 심상정은 욕을 그렇게 찰지게 하는 입이 매우 거친 여자였다고 회고했다. 심상정은 대학 시절 운동권에 참여하게 되면서 지도부에 들어가기를 바랐으나, 당시 운동권에서 조차 여성이 조직의 주축이 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에 화가 잔뜩 난 심상정은 아예 운동권을 돌아다니면서 "옥바라지만 시킬 거면 내가 데려간다. 남자들 틈에 치여서 크지도 못한다. 내가 키운다"며 여자들을 죄다 모아서 여자들로만 구성된 연합회를 만들었고, 이때 만든 여성 연합회 데리고 후일 구로지역 노동조합 연대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후 다시 지도부에 들어가기를 신청했으나 그럼에도 거절당했다고 한다.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유시민이 덧붙인 바로는 서울역 회군 사건 당시 집회한다고 다들 모여 있는데 어떤 여대생이 십원짜리 욕을 그렇게 잘 섞어가며 지도부에 대해 항의를 하더라고. 그게 바로 심상정이었다고 한다. 운동권이 남성 중심 문화를 유지하고 '여자가 어디' 기조가 강하던 시절 서울대학교 총여학생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도 맡았다.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며 노동운동계의 스타가 되었다. 이후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창립에 참가하였다. 1986년 인천 5.3 운동으로 김문수가 체포되자 그 뒤를 이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이 되었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의 해산 후 수배생활을 해오다 1988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의 결성에 조력했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자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역임하며 노동운동가로서 입지와 기반을 확고히 했다. 썰전에서 유시민이 말하길 구두를 신고 달리며 도망치다가 구두를 벗고 철조망담을 넘어 도망을 다니며 구속을 피해다닐 정도로 도망을 잘 다녔다고 한다.
△ 수배 시절 심상정 |
1993년 11월 23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가 종료된 1995년부터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의 사무처장을 역임하며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기반을 닦았다.
2001년, 구로동맹파업이 민주화 운동으로 분류되어 수배경력이 말소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금속노조가 정식으로 설립되자 다시금 사무처장을 역임하며 노동운동을 계속했다.
2003년 사무처장에서 물러나[4], 같은 해 10월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중앙위원을 맡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의 자리에 오른다.
3. 정계 활동
△ 민주노동당 시절 심상정 |
17대 국회의원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초선에서부터 여러 활약들이 있었으나,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 반대에 적극 나서면서 벌인 논쟁들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권영길, 노회찬과 경쟁하여 권영길에 이어 2위[5]로 결선투표에 진출하여 2% 차이로 석패. 이후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격랑에 휩싸이면서,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다.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출당 등을 건 혁신안이 2008년 2월 3일 결국 당내 NL계의 반발로 부결되자 다음날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2월 17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노회찬, 조승수 등과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진보신당 소속으로 2008년에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양시 덕양구 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손범규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려서 낙선했다.[6]
국회의원 낙선 후 다시 노동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되었으나,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하여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확대하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운동을 벌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국민참여당 후보 유시민[7] 지지를 선언하고 마지막에 사퇴한다. 이 때문에 당기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기사.
2011년 진보대통합을 위해 진보신당과 통진당과의 통합에 대해 대의원대회를 열어 선거를 통해 '통합하지 않는다'라는 결정이 나오자 새진보통합연대와 함께 통합진보당에 개별 합류한다.
2012년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고양시 덕양구 갑 국회의원에 170표[8] 차로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면서 4년 만에 국회에 재입성하였다. 당시 개표가 99% 완료된 상황에서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에게 근소하게 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패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투표함인 재외국민 투표함에서 심상정에게 몰표가 나와 극적으로 역전하였다. 당시 기사.
3.1. 진보정의당 창당
2012년, 5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통합진보당이 내외적인 갈등과 부정 경선 사태로 탈당, 진보정의당 창당에 힘을 보탠다.제18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대선 후보로 10월 14일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 후보자로 등록한다. 그러나 결국 11월 26일 야권 단일화를 위해 당시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받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후보 등록을 포기한다.
이후 정의당의 원내대표로서 활동하다가, 2015년 6월 8일자로서 원내대표의 임기를 마치고 당대표 선거에 참여, 1차 선거 때는 노회찬 후보와 큰 차이로 2등을 득표했지만, 결선에서는 노회찬 후보를 앞서서 당선하여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일방적인 노동개혁 강행을 골자로 한 기자회견을 하고 온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2015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이 폭풍 사자후를 토해내어 화제가 되었다. 이 영상을 토대로 만든 loose your 임금피크제란 영상도 나왔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요한 건 대선에 앞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살아남는다면 진보정당 최초 3선 의원이 되지만,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과의 대결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2016년 2월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8% 정도 앞서고 있었다. 만약 야권 연대가 무산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들과도 대결해야 되므로 더욱 힘든 싸움이 예상되었다.
2016년 2월 23일부터 시작된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국면에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당연하고 마땅한 결정이라고 발언하였다. 당의 상임대표직을 맡고 있어 필리버스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을 격려하거나 새누리당 의원들의 방해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 필리버스터 마지막 날인 3월 2일 정의당 마지막 주자로서 필리버스터 연설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 조원진 의원에 맞서는 심상정 의원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준 후보와 단일화가 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반수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하며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를 16%p 이상 따돌리고 압승을 거두며, 이날 승리한 같은 당의 노회찬 의원과 함께 한국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중진 의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심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심상정에게 거의 몰표가 쏟아진 수준이었고, 기존 19대 총선에서 손범규 후보가 우세했던 농촌 지역들 중에서조차 단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신승하긴 하지만 모두 이겼다. 그 기반에는 꾸준한 지역 의정활동과 농촌 지역 개발이 주요 요인으로 뽑힌다. 탄탄한 지역기반을 보여줌으로써 의정활동에서 큰 흠이 없는 한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진보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던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인사였으나, 주요 진보 인사들이 여러 사건들[9]에 휘말려 피해를 입고 정치권에서 은퇴하거나 물러난 사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결과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선 노회찬과 함께 진보정당의 독보적인 중량급 인사로 성장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만 당대표로서 정의당의 2016년 20대 총선 승리를 견인했어야 하는데, 단 6석만을 획득하는 데 그치며 전체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20대 총선이 지난 19대 총선과는 달리 비례대표가 7석 축소된 데다, 국민의당과의 단일화는 물론 더민주와의 단일화마저 실패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의당 자체의 지지기반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이 참패를 당하며 또다시 두자리수 의석확보 실패가 유력해지자 심상정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다. 심상정의 본인의 주장대로 비례대표 관련 선거제도의 개혁을 이루었지만 결과적으로 야당과 심지어 더불어민주당마저도 정의당을 배신하고 위성정당을 세워버렸다. 결국 정의당이 지난 총선보다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다르게 오히려 원외정당으로 밀려날 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선거제도를 악용해 통수를 친 건 더불어민주당이지만[10] 결과론적으로 심상정의 계획이 실패한 것이기 때문에 당내에서의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선거에서 본인의 의석마저 잃는다면 정치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을 뻔했지만 결국 본인의 의석은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의당이 소규모 진보정당임을 감안해도 선거에서 얻어내는 결과가 영 신통치 못하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11]
3.2. 20대 국회 활동
전반기에는 정무위원회에 배정되었다.- 2016.06.18 성과 연봉제를 두고 박근혜 정부야말로 저성과자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 2016.06.23 김해신공항 처리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잘한 일이라 칭찬했다.
- 2016.06.28 CEO 등의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30배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는 일명 '살찐 고양이 법'을 발의했다.
- 2017.03.04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을 제정했다.
한편 심 대표가 19대 및 20대 총선에서 제압한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박근혜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20대 후반기 국회에서는 기획재정위원회로 배정되었고, 행정안전위원회 산하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됐다. 민주평화당과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을 결성하면서 교섭단체가 되면서, 정의당이 처음으로 위원장직을 얻게 되었다. 2018년 10월, 심상정 의원은 첫 정개특위 회의에서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정당이 된 이후 처음으로 주어진 ‘위원장’ 자리이자, 제가 국회의원 3선을 하면서 맡게 된 첫 번째 국회직이다"라고 밝힌 적 있다. 이후 노회찬 의원 사망으로 인해 교섭 단체가 깨지자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위원장직 사퇴 요구를 받았으나, 심 의원은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2019년 6월, 이인영-나경원-오신환 3당 원내대표 간 합의로 인해 정개특위 위원장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자유한국당이 모든 상임위에 복귀하면서,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위원장직을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이 1자리씩 나눠가진다는 합의안을 도출한 것이다. 합의안에 대해 심 의원은 "비정규직 해고시킬 때처럼 문자통보도 없었다"며 "선거제 개혁에 대한 민주당의 진의가 무엇이냐"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패스트트랙과 관련된 자유한국당 제외 4당 공조도 어떻게 될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14년만에 얻은 첫 위원장 뺏긴 정의당, 4당 공조는요?
이와 관련해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슴이 아프지만 국회 정상화를 위해 참아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이 이거 안 내놓으면 못하겠다고 떼를 쓰는 마당이었기 때문"이라고 자유한국당을 비난했다.#
3.3. 제19대 대통령 선거
△ 출마선언하는 심상정 |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민주주의
노동이 당당한 나라
2017년 1월 1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 기사 19대 대선의 유일한 여성 후보다. 슬로건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이고, 노동개혁, 재벌개혁, 탈원전 국민투표,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현, 국방개혁, 선거개혁 등을 주요 공약으로 하였다. 여기서 선거개혁의 핵심은 투표연령 만 18세로 인하, 결선투표제 및 정당명부비례제의 실현이다.노동이 당당한 나라
1월 24일 첫 노동정책 공약, 일명 슈퍼우먼 방지법을 발표했다. 새당 보도자료
2월 10일 오전에는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헌화했는데,# 방명록에 적은 '친노(親勞) 정부 수립하여 사람 사는 세상 만들겠습니다' 란 문구가 논란이 되었다.# 정계에서 특정 정파를 일컫는 단어이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언급되는 용어인 친노(親盧)라는 용어의 '盧'에 노동(勞動)의 '勞'자를 대신 붙인 표현인데, 고인이 된 사람의 묘소에서 일종의 언어유희랍시고 부적절한 표현을 썼다는 것. 참여계에선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참여정부의 정책을 향해 '반 노동 신자유주의 정권'이란 표현으로 날을 세우다가 선거철만 되면 당비 내는 참여계 당원들과 일반 야권 성향 지지자들에게 표 달라고 굽신거리더니, 이번엔 봉하마을 가서 대놓고 비아냥까지 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후 해당 건에 대해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밝혔으나, '이 정도 표현이야 괜찮지 않나'는 의견과 '이건 아니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중.#
2월 24일에는 헌법에 존재하는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꾸고, 노동 인권 교육의 정규 교과 과정 편성, 그리고 근로자의 날과 근로기본법을 노동절과 노동기본법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공약을 통해 더 이상 노동을 천시하고 경시하지 않는,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3월 5일, 동반자등록법 제정이라는 공약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심상정은 "노인의 재혼이나 동거, 장애인공동체, 미혼모 가정, 동성커플, 비혼커플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존재함에도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줄 법적 규정이 전혀 없다"는 발언을 했다. (기사) 이 법안이 뭐냐면 현행 결혼 제도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이에는 당연히 동성커플들도 포함된다. 즉, 동성결혼 항목에 소개된 시민결합제도, 생활동반자법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진선미 등의 일부 의원이 이 이름으로 시민결합제도의 입법을 추진한 바 있으나 무산되었다. 문재인, 안희정 등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였기에 성소수자들이 찬동하고 있다.
4월 27일 심상정은 "주한미군 철수, 대화 여지 있다…北인권안 지금은 찬성", "사드 기습배치는 동맹국 주권을 무시한 처사…미국에 유감 표명"'이라는 얘기를 꺼냈다. 내용만 보면 김정은 체제 존중, 한반도 평화협력, 핵포기, 미군철수협상을 주장하는 것인데 이 당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지 북한에 대한 공습태세를 명령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상황이며 대부분의 국민들이 주한미군의 주둔의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심상정 후보가 안보에 있어서 80년대 반미 주한미군 철수만 외치던 운동권 수준의 구닥다리 정세관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이 많다.(기사)
매니페스토 실천본부의 산정에 의하면 공약실현을 위한 5년간 예상 지출액이 550조 원으로 5대 주요후보 중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진보적인 위치에 있는 문재인 후보의 178조 원(5년간)의 3배가 넘는 것은 물론, 2번째로 높은 유승민 후보의 208조 원보다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공약수행에만 이 정도가 요구된다는 것 때문에 당선현실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믿고 타 후보와의 차별화을 위한 현실성 없는 남발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세제 및 사용처 개혁이나 추가 세수 등의 정책변화를 수반하더라도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이며, 국가적인 경제규모의 대약진 없이는 사실상 실현이 어려운 대규모이기 때문이다.
토론회를 통한 활약과 선명한 진보 정치색을 통해 안철수 지지자들 중 20대들 사이에서 지지도가 가져오고 있으며, 상당수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던 유승민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마의 5%를 넘는 여론조사도 나오기 시작해 정의당 내 분위기도 상당히 고조되고 있다. 10%만 확보되어도 선거자금의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와 진보정당 최초의 2자릿수 득표율을 획득한다는 상징성 덕분에 당과 후보 본인이 완주 의지를 더더욱 굳히고 있다. 여기에 지지층이 겹치고 문재인 캠프와 약간의 신경전이 오가고 있다. 단, 현재까지 지지율 상승 추세를 보면 문후보의 지지율이 아닌 안철수 혹은 부동층에서 진보 쪽 유권자들로 통한 지지율 상승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연대론은 나오지 않는 상태.
여기에 홍준표 후보 안철수 측에게 가있던 보수표가 급속도로 결집되어 15% 이상의 지지도가 나와 인터넷상에서 문재인 측 일부 지지자들은 이 표이반을 걱정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서 심상정 뽑으면 홍준표 된다는 문구가 돌고 있다. 여기에 정의당 측은 사표방지심리를 막기 위한 전략을 준비하는 중.
5월 9일 최종 결과는 막판 15%까지 가능하다고 예측한 것에 크게 못 미치는 6.2%(5위)로 낙선. 그리고 막판에 전략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는데 같은 군소정당 입장에서 바른정당 탈당 사태를 겪은 유승민 후보를 굳세어라 유승민[12] 등으로 응원하는 것은 좋았으나 그 후로도 "보수는 유승민 나머지는 날 찍어라"라든지 김종대 의원이 "심상정 차선은 유승민"이라고 발언한 것들은 표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다. 실제 대선 마지막 1주일은 바른정당 탈당사태, 6차 대선토론에서의 12척 발언, 딸 유담 성희롱 사건 등등 유승민이 이슈를 주도하는 상황이었고 심상정은 거의 주목 받지 못하는 와중에 저런 발언들이 나온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영향으로 여론조사에서 심상정한테 계속 밀리고 있었던 유승민이 4위를 기록하게 된다.[13]
그래도 역대 진보 정당 후보 중[14]에서 가장 많은 득표수와 득표율을 기록했기에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과 탄핵사태로 보수층이 궤멸적 타격을 입고 진보층 유권자가 증가한 유리한 상황#에서 겨우 6% 득표율을 올린 것이 유의미한 결과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진보성향의 문재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었기에 사표방지심리도 거의 작용하지 않았고, 심상정의 주요 공략층인 20,30대에게서도 유승민에게 뒤진 득표율을 올린 결과#가 과연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여담으로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운동본부'의 주최하에 펼쳐진 투표권이 없는 10대 청소년들의 대선 모의 투표에선 당선된 문재인 후보 다음으로 60,075표 중 18,629표(36.02%)를 얻으며 2위를 해서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15]. 대체로 10대의 경우 성향이 진보적이기도 하고 헬조선, N포 세대 같은 키워드가 부각되는 현 세대에서 불안감을 느껴 '노동'을 앞세운 심상정 후보의 공략이나 토론회에서의 모습 때문에 지지를 보였다는 분석이 있다.
주요 정당 5명의 후보들 중에서 대선 후원금이 가장 많이 들어왔다.#
3.3.1. TV 토론회
△ TV토론회 |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적지향은 말 그대로 성적지향이고 성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여러 정책도 필요하지만 노동 문제는 국정의 가장 우선 순위로 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월 13일 '한국기자협회·SBS 공동초청 대선후보 토론회' 에 참여하여 1차 정치에 관련된 쟁점으로 후보들과 토론을 하였다. 1부 정치 2부 후보의 자질에 대해서 다루어졌는데 1부 자신의 질의시간에 홍준표에게 경남도민에게 석고대죄라도 하고 사퇴할 분이 꼼수사퇴해서 도민 참정권까지 가로막느냐고 날을 세웠다. 이에 맞받아서 홍준표가 심상정에게 "심후보도 대선에 나왔으면 4월 9일 이전에 국회의원 사퇴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홍준표는 "대선에서 떨어지면 국회의원 계속하려고 그러느냐. 당당히 사퇴하고 대선에 임해야지, 그건 꼼수 아니냐"며 "다른 후보들도 해야 한다며 심상정, 유승민, 안철수 후보들도 사퇴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지역에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 그건 참정권 침해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또한 홍준표는 "왜 본인들은 의원직 사퇴 안 하고, 저한테만 '대선 한 달 전에 도지사 사퇴해서 보궐선거를 없앴다'고 꼼수라고 하느냐"며 "본인부터 사퇴하시라. 사퇴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며 사퇴를 종용했다. 선거법상으로,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대선출마가 가능하지만 지자체장은 무조건 사퇴해야 대선출마가 가능하다. 심상정 후보만이 아니라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로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홍준표의 도지사 사퇴에서 논란이 되는 점은 도지사 공백이 발생하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보궐선거를 무산시켰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의원직 사퇴와 관련한 홍준표 후보의 비판은 법리적 근거를 무시한 전형적인 물타기에 불과하다.
4월 19일 'KBS 초청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여하여 부각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문재인 후보에 대한 공격만 된 셈이라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와 설전을 벌이면서 과거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16]과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공약에 대한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근거를 바탕으로 비판을 해 민주당 지지자들과 정의당 내 참여계 당원들을 들끓게 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 반노동 정권'이라며 온갖 날선 비판을 가했다가, 세월이 흐르고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으로 이르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노무현정신을 잇는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진보 성향 지지자들의 표를 끌어모으고, 선거철이 끝나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행보를 반복해 온 건 익숙해진 패턴이었으나, 공약과 관련한 비판 제기 과정에서 문제를 드러낸 것. 심 후보는 "사실이 아니면 책임지겠다#"는 말까지 하며 '문 후보의 복지공약이 축소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문 후보는 팩트체크를 요청하였다. 토론이 끝난 이후 각 언론사에서 꺼낸 팩트체크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SBS#는 문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고, 오마이뉴스#와 JTBC#는 심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민주당][정의당]
이 일건이 민주당 지지자들과 당내 참여계의 심기를 직격한 듯 비판여론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정의당 홈피는 마비되었고, 당원게시판에 비판 및 비난글이 쇄도했고 탈당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람들도 늘어났는데[19], 당과 캠프 관계자들이 사안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 한 채 특정 후보의 지지층들의 짓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잇따라 꺼내며 이들의 화를 더 부채질했다.
정의당의 총무팀 관계자는 “통상적인 탈당 수치에서 약간 늘어나 10명이 채 안 되고 크게 변동은 없다”며 “당원 게시판은 개인적 의견을 자유롭게 올리기에 용이한 특성을 띨 뿐, 민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고#, 심상정 캠프의 박원석 공보단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의당이 정의가 아닌 듯하다'라고 발언한 송영길 문캠 선대위 총괄본부장의 이런 인식과 발언이 어제부터 이어지는 일부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정의당과 심 후보에 대한 집단린치에 가까운 전화, SNS 등을 통한 공격과 과연 무관한지 의문이다”라고 발언했으며#, 선대위 비서실장인 김종대 의원은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9.11 테러를 당한 것 같은 그럴 정도의 느낌까지 오더라"며 타 후보 지지자들과 당원들의 항의를 테러에 빗대는 발언을 했다.#
심상정 후보 지지자들도 이에 맞서 "정당끼리 경쟁하고 검증하는 게 왜 문제냐, 문재인 지지자들이 정당간의 당연한 경쟁과 검증을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는 입장. 노회찬은 "이번 토론에서 참여정부의 과오만 이야기하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평했다.
이후 심상정 후보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에서는 토론 관련 메시지를 보내면서 "심상정은, 정의당 대통령 후보입니다."라는 제목만 덧붙였다.# 이 말이 의미심장한게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 지지자들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자신의 정당성을 함축한 듯하다.
한편 당원 자유게시판에는 탈당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람들에 대해 "대중정당이기에 하루에도 몇 백명씩 (정의당에) 들어왔다 나가기도 한다.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는 심 후보의 발언에 격분한 일부 당원들의 항의가 올라왔다.#
4월 25일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는 안철수를 제대로 저격했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고 말한 안철수에게 사장님 마인드라며 깠고 안철수가 안랩을 운영하면서 포괄임금제를 실시했다는 것으로 다시 한번 안철수를 저격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는 경영에서 손뗀지 오래되었다고 답변했지만 30%를 웃돌던 안철수의 지지율을 22%까지 깎아냈다. 박근혜에게 저격을 빙자한 뗑깡을 부려 역효과를 일으킨 이정희와는 달리 심상정은 안철수를 제대로 저격했다. 다만 심상정의 검증만으로 안철수의 지지율 8%를 깎아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으로 볼 수 있다. 안철수의 지지율 하락은 토론회에서 'MB아바타'라는 단어를 스스로 꺼낸 것에서 기인했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심상정의 저격으로 수혜를 입은 사람은 문재인과 홍준표 그리고 심상정 본인이다. 안철수를 끌어내려 문재인은 당선 가능성이 보다 높아졌고 홍준표 역시 안철수와 맞대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고 문재인이 1강체제를 유지하며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안심하고 심상정을 찍을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본인의 지지율이 많이 올라간 편.
안철수를 저격하는 심상정의 면모를 보자면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심상정이 상당히 뛰어난 토론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다만 뛰어난 토론 공격능력과는 별개로 토론 방어능력에서는 미흡한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문재인이 500조 예산과 관련해서 질문을 했을 때 명확한 답변 없이 얼버무린 점이다. 이외에도 남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자꾸 끊으려는 토론 태도도 지적이 많은 편.
3.4. 21대 국회
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문명순 후보와 이경환 후보가 심상정 심판 구호를 들고 나와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보이자 선거 유세 내내 저자세로 읍소했고 지지율 39%로 당선되어 4선 의원이 되었다. # 게다가 “고단한 정의당의 길을 함께 개척해온 우리 후보들을 더 많이 당선시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 #물론 정의당과 민주당 사이의 갈등이 심해져서 독자적으로 출마하는 가운데에서도 당선이 되었기에 의미는 있지만, 문제는 이전보다 격차가 반토막이 난데다, 다음에 민주당 쪽에서 작정하고 심상정을 떨어트릴 의도로 중량감이 있는 후보를 보내거나 선거구 조정이 이뤄져서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간다면[20], 심상정도 안심할 수가 없게 된다. 정의당 지역구 의원 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진보진영 최다선인 4선이란 성적은 매우 좋은 성적이지만, 5선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지 과제를 떠안게 된 선거가 바로 이번 선거인 것이다.한편 제2당인 통합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유력했던 정진석 의원이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으로 인해 국회부의장직을 거부하자, 제3당의 최다선인 심 의원이 국회부의장으로 유력하게 되었다. # 심상정이 국회부의장이 되면 2명의 국회부의장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지게 된다. 다만 2021년 8월 여야합의로 정진석의원이 선출되면서 없게 되었다.
상임위에선 국토교통위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아마도 고양시 덕양구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GTX 문제 때문으로 추정된다.
3.5. 제20대 대통령 선거
20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심상정 |
10월 13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지사를 저격하며 "이번 대선은 심상정으로 단일화를 해야 승리할 수 있는 대선"이라며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주장했다.#
11월 14일,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를 '가당치 않다'며 이번에는 일축했다. 오히려 사안별로 김동연, 안철수와 다당제로의 전환 측면에서의 연대는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
11월22일, 정의당 당 인사들이 연달아 김어준을 비토하는 가운데 심상정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단, 아직 만난 것도 아니므로 단일화 추진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
11월 25일, "제 삶 자체가 페미니즘이다. 비동의 강간죄 꼭 도입하겠다."라고 발표하였다.# 뒤이어 "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 공약'을 발표, 대통령이 되는 즉시 성폭력과 전면전에 나설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여성들이 단지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여성들은 안전이별을 매일 검색하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고 부연했다.
2022년 1월 12일, 주목받는 행보를 보이지 못한 채[21], 비슷한 지지율에 있다가 10%대 상승에 성공한 안철수와 달리 사실상 잊혀져 원내 3당의 대선 후보와 4선 현역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도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보다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처참한 상황이 계속되자 일정 중단을 선언했다.#
허경영은 이에 대해 본인이 당선되면 심상정에게 장관 임명권을 드릴 것이니 낙담하지 말라고 격려했는데, 허경영이 사실상 심상정을 조롱했다는 의견이 많다.
1월 17일 재신임을 묻는다는 내용으로 복귀 선언을 했다.#
2월 11일 4차 토론에서 윤석열, 이재명, 안철수 모두에게 송곳 질문을 하며 맹폭을 퍼붓어서 오랜만에 제대로 존재감을 부각했다는 의견이 있다.#
3월 3일,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직후 이재명 당선에 회의감이 들 수 있다. 부담없이 (본인) 심상정을 찍어달라라면서 이재명으로 가 있는 기존의 본인 지지층[22]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지지율의 한계 탓에 두 자릿수 득표율에 또 다시 실패한 채 2.4%의 득표율을 얻은채 3월 10일 새벽 12시 50분경 패배에 대한 승복 선언을 했다.
그나마 허경영 등 다른 군소 후보들은 가볍게 제쳐내며 3위 자리를 어떻게든 지켜낸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하지만, 3번째 대선 도전에도 결국 실패했다는 점과, 득표율도 19대 때보다 반토막 이상으로 떨어진 탓에 향후 미래가 불투명하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일부 심상정 지지층이 윤석열 당선을 막기 위해서 이재명에게 투표했다는 점도 고려해 보면, 실제 지지율은 득표율보다 다소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대선이 예상 외로 득표율차가 0.73%라는 초박빙 상태로 끝나면서 마지막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민주당과의 단일화 없이 완주를 하면서 이재명 후보의 표를 상당히 잠식한지라 결과적으로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키고, 이재명 후보를 낙선시킨 일등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 #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선거를 망친 트롤이 된 셈이라 욕을 먹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윤석열 당선의 일등공신이자 영웅이라면서 가히 구세주급으로 찬양하는 중이다. 이후 이날 국회 본청에서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을 열고 "득표율을 넘어서 밤새 정의당에 12억원의 후원금을 쏟아주신 지못미 시민들의 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
결과적으로는, 동귀어진의 청야전술인 셈이라서 심상정이 대선 출마 강행으로 인해 정의당은 빚더미가 된 원외정당으로 전락해버린다. # 정확히 말하자면, 심상정이 대선출마를 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정의당이 빚더미에 올라가는 비극은 없었을거란 얘기.
이후, 정의당이 22대 총선에서 참패하고 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자본잠식의 상태에 이르자, 심상정 책임론이 엄청나게 불거지고 있다. 심지어 본인이 노동을 운운하며 데려왔던 박창진은 아예 민주당으로 건너가버리며 본인의 능력까지도 의심받게 되었다.
3.6. 대선 이후
"무한책임 자세로 헌신하겠다" 비례대표 사퇴 당원 투표 기간동안 정의당에 상황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그 외에는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 #
3.7.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녹색정의당 내 유일한 지역구 의원이자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22대 총선에도 고양시 갑 지역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녹색정의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지역 여론[23], 고양시 선거구 개편 가능성, 좋지 않은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 등 여러모로 좋지 않은 변수들이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심상정이 대선에 출마하여 표를 갈라먹어서 이재명이 낙선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 더 이상 교차투표에 대한 기대가 힘든 상황이다.3월 4일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고양시 갑에서 22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5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22대 총선 출구조사 및 개표 결과 10%대 지지율(18.41%)로 3등을 차지하며 낙선했다. 이미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24] 녹색정의당이 원외 정당으로 전락하면서 더 이상 정치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선거 비용 전액을 보전받으면서 어느정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25] 20대, 21대 총선에서는 각각 52.97%, 39.38%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과 비교하면 갈수록 정의당 및 심상정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심상정이 정의당의 대표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준우 상임대표도 심상정 의원이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대신 지역구를 선택한 이유로 "고양시 주민들에게 심판을 받아보기 위함이었다" 라고 말했다. # 21대 총선 이후부터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 노동계 목소리 대변 실패 등의 여러 문제가 나오면서 정의당의 세력이 점차 쪼그라들고 있었고, 당 안팎에서 용퇴 얘기가 나오던 상황에서, 본인 역시 정계 은퇴에 대한 고민과 정치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득표력이 가장 높은 본인이 비례대표에 출마하여 적어도 정의당이 숨은 쉴수 있게 해놨어야 했는데, 뻔히 불리한 걸 알면서도 지역구 출마를 고수한 건 비판의 여지가 있다.[26] 이미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관계가 심하게 틀어진 시점에서 지역구 당선은 어려웠다. 결국 1~2석 정도 얻을 기회마저 스스로 걷어차 본인이 몸담던 당까지 원외정당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사실상 숨통을 끊어놨다.[27]
한때 정의당의 일원이었던 유시민 전 이사장 역시 이런 행보를 비판했다. 22대 총선이 끝난 이후 "대선때 단일화를 거부하면서 민주당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총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동정표로 비례대표를 정의당에게 주던 것을 끊어버렸으며, 특히 심상정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 책임을 진 적이 전혀 없다." 라면서 비판했다.#
하지만 정치에서 명분이 가지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례대표에 도전하면 욕심을 부린다고 비판받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조한 입장에서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짓밟는 자기모순적 행위라고 공격받을 여지가 컸다. 거기에 애초부터 등판할 생각이 없었음에도[28] 당에 요청에 따라 출마한것 또한 감안해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봤을 때 22대 총선 출마는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의 명분을 쌓기 위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정치적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점 또한 정계은퇴를 고민하게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거대양당 소속이 아니다보니 상임위원장, 국회부의장을 맡을 수도 없고, 장관의 경우에도 내각제 개헌이라도 하는것이 아닌이상 현실성이 없는데다가, 지자체장쪽으로 눈을 돌려도 선수를 감안하면 도지사는 해야하는데 도지사 역시 민주당과 단일화라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던 셈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이미 4선까지 한 만큼 아무리 조직이 위험하더라도, 자신의 정치인생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사안을 택할 동인이 적었다. 그리고, 정의당은 22대 총선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대참패를 기록하면서 원외정당으로 전락한다.
4. 정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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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정의당 심상정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21대 국회의원 남은 임기를 마지막으로 25년간 숙명으로 여기며 받들어온 진보 정치의 소임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저는 지역구 주민의 신임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소속된 녹색정의당이 참패했습니다.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중심에 서 왔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동안 척박한 제3의 길에 동행해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국민들께 통절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또 작은 정당 소속 저 심상정에게 세 번이나 일할 기회를 주시며 큰 사랑을 보내주셨던 덕양 주민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내내 행복했다는 말씀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진보정당 25년은 참으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벅차지 않은 날이 없었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박봉을 쪼개서 당비 후원금 내고, 휴가 내서 피케팅 하고 월세 보증금 빼서 선거에 도전했던 수많은... 수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수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고되고 외로운 길을 함께 개척해 온... 사랑하는 당원들과 지지자 여러분께 감사하고 또 미안할 따름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25년간 오로지 진보정치의 한길에 생을 바쳐왔습니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정치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고 권력을 잡는 것보다 더 큰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향해 매진해왔습니다. 극단적인 진영대결 정치의 틈새에서 가치와 소신을 지키려는 저의 몸부림은 번번이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혔고 때로는 무모한 고집으로 비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에, 우리 사회의 약자와 보통시민의 권리가 개선되고 대한민국의 사회가 진보되어 왔다고 믿습니다. 저와 진보정당이 진정 사랑했던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웃하며 살아가는 보통 시민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진보정당을 만들어온 힘이고 저의 자부심이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온몸으로 감당해온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잠재력을 갖춘 훌륭한 후배 정치인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도록 진보정당의 지속 가능한 전망을 끝내 열어내지 못한 것이 큰 회한으로 남습니다.
이제 저는 한 사람의 시민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진보정당의 부족함과 한계에 대한 책임은 제가 떠안고 가도록 허락해 주시고 녹색정의당의 새롭고 젊은 리더들이 열어갈 미래정치를 따뜻한 마음으로 성원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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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작은 정당 소속 저 심상정에게 세 번이나 일할 기회를 주시며 큰 사랑을 보내주셨던 덕양 주민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내내 행복했다는 말씀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진보정당 25년은 참으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벅차지 않은 날이 없었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박봉을 쪼개서 당비 후원금 내고, 휴가 내서 피케팅 하고 월세 보증금 빼서 선거에 도전했던 수많은... 수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수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고되고 외로운 길을 함께 개척해 온... 사랑하는 당원들과 지지자 여러분께 감사하고 또 미안할 따름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25년간 오로지 진보정치의 한길에 생을 바쳐왔습니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정치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고 권력을 잡는 것보다 더 큰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향해 매진해왔습니다. 극단적인 진영대결 정치의 틈새에서 가치와 소신을 지키려는 저의 몸부림은 번번이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혔고 때로는 무모한 고집으로 비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에, 우리 사회의 약자와 보통시민의 권리가 개선되고 대한민국의 사회가 진보되어 왔다고 믿습니다. 저와 진보정당이 진정 사랑했던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웃하며 살아가는 보통 시민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진보정당을 만들어온 힘이고 저의 자부심이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온몸으로 감당해온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잠재력을 갖춘 훌륭한 후배 정치인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도록 진보정당의 지속 가능한 전망을 끝내 열어내지 못한 것이 큰 회한으로 남습니다.
이제 저는 한 사람의 시민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진보정당의 부족함과 한계에 대한 책임은 제가 떠안고 가도록 허락해 주시고 녹색정의당의 새롭고 젊은 리더들이 열어갈 미래정치를 따뜻한 마음으로 성원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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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1일, 심상정의 정계 은퇴 선언 기자회견
심상정의 퇴장으로 민주노동당 시절 제3지대 진보정치의 전성기를 상징했던 노심조 3인방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29] #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정계 은퇴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묻는 질문에 "기자회견문으로 대체한다"며 눈물을 훔쳤던 이유에 대해서는 "헌신했던 당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
공교롭게도 심상정이 처음 국회의원이 된 2004년 당시 0.3% 차이로 구시대 정당인 자유민주연합과 김종필이 몰락하고 심상정을 비롯한 민주노동당(진보세력)이 원내에 진출했는데, 20년 뒤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정의당은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등 새로운 진보정치세력에 밀려 원외정당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정치세대의 교체가 20년 만에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은퇴에 대한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30] 2007년부터 2012년, 2017년, 2022년까지 네 번의 대선에 출마(2007년은 당내 경선 탈락, 2012년은 후보 등록 전 사퇴)했고 거대 양당 소속으로도 쉽지 않은 4선 의원을 달성하면서 한때 가장 이름을 널리 알린 진보정치인이었으나, 끝내 일부 정의당원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한 채 쓸쓸히 정치인생의 막을 내렸다.
[1] 본인 피셜 이때의 자신을 살짝 김고은 닮았다고 하며 김고은 팬들에게 사과했다.[2] 충암학원 소속의 사립학교. 본래는 충암중(남)과 충암여중이 따로 있었다가, 후에 두 학교가 합쳐져 남녀공학이 된 듯하다. 그래서 졸지에 윤석열 대통령과 중학교 동문이 돼버렸다.[3] 명지대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는 명지학원 소속의 학교. 후에 명지고(남)와 명지여고가 합쳐져 남녀공학이 되었으며, 명지전문대학 근처에 있다.[4] 그래도 금속노조 조합원이기는 하며, 사석에서도 평생 그 자격은 유지할 것이라고 하였다.[5] 권영길 후보가 과반에 0.6% 미달하여 결선투표가 진행된다.[6] 고양시 덕양구 갑과 가까운 파주시 광탄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지역구를 이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7] 당시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여론조사 경선으로 단일화한 상태였다.[8] 19대 총선 전국 최소 표차 당선인. 한편 그의 평생 동지인 노회찬 의원은 노원구 병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17.6%p 차이로 대파하고 여의도에 복귀하나, 잘 알다시피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9] 전부 통합진보당에 관련되어 있는데 그만큼 통진당에 관련된 사건들이 진보 정치에 입힌 내상이 컸다.[10] 미래통합당은 선거법 개정 이전부터 패스트트랙을 강행할 시 위성정당 창당을 불사하겠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결사반대했고 선거법 개정에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을 끌어들인 건 더불어민주당이였다.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 창당을 공식화하여 일부 현역의원들을 미래한국당에 입당시켜 교섭단체까지 구성하자 그때에서야 자신들도 질 수 없다며 위성정당을 창당하여 민생당과 정의당의 뒤통수를 치고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실제로 21대 총선에서 선거법 개정이 아니었다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선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11] 다만 비례대표 지지율은 지난 지방 선거의 8.97%, 지난 국회의원 선거의 7.2% 대비 소폭 상승한 9.67%로, 창당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다.[12] 이후 2018년 6월 "따뜻한 보수 이야기를 했지만 안보는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했고, 민생에 있어서는 여전히 차가웠다"라고 주장하며 이 발언을 철회했다. #[13] 유승민과 심상정은 겉보기에는 접점이 없어 보이나 안보를 제외한 노동 복지 등에서 상당한 접점을 보이고 있으며, 유승민은 안보는 보수 경제는 개혁이라는 이미지로 20, 30대 젊은 표심을 얻었기에 더 뼈아프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친하기도 하다.[14] 진보후보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는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 조봉암 후보가 기록한 216만 여표. 이 당시 조 후보의 득표율은 30%였다.[15] 여담으로, 심상정이 문재인에게 이긴 지역이 경북, 대구, 부산, 울산, 강원, 제주인데, 이 구도는 경남이 제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15대 대선과 16대 대선에서 이회창이 이긴 지역과 흡사하다. 참고로 3위 유승민과 4위 안철수도 꽤나 접전이었는데, 안철수는 새천년민주당 + 자유민주연합을 합친 것처럼 호남, 충남에서 유승민에 앞서 3위를 차지했고, 이외 지역은 전부 유승민이 3위를 차지했다. 덤으로 홍준표는 텃밭 대구경북을 포함해 전 지역 5등(......) 달성.[16] 정확히는 참여정부시절에 만들어진 비정규직법에 참여한 문후보에 대한 비판, 문후보의 공약은 "비정규직 철폐"가 아닌 "OECD 수준으로 감축"이다.[민주당] 박광온 공보단장 브리핑 : 경선이 끝나고 후보가 확정된 이후에 당에서 준비한 공약을 정책위원회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후보의 세부 공약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은 내용을 착오로 배포한 것이다. 이 부분은 관계 실무자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선관위에 게시되어 있는 정책공약이 문재인 후보의 정책공약이다.[정의당] 정책논평 : 중앙선관위는 4월 11일까지 각 후보로부터 공약을 제출을 받았다. 공약을 제출해 놓고 공약 제출 시한을 한참 지나서 공약을 변경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방식도 문제인데 변경된 내용이 더 큰 문제다.[19] 다만 당원게시판에는 당원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글을 게시한 사람들은 참여계로 보인다.[20] 덕양구가 분구된다면 효자동, 삼송동, 창릉동, 화전동을 고양시 갑에 편입하게 되는데, 저 4지역은 민주당세가 정의당세보다 강한 지역이다. 특히 창릉동은 3기 신도시 사업의 수혜지역이기에 더더욱 그렇고[21] 그나마 윤석열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응해 여가부 강화 공약을 꺼내 여성표를 결집하려 시도했으나 윤석열과 다르게 지지율로 이어지지 못했다. 원래 있던 심상정 지지층 외엔 여가부에 큰 관심도 없거나 이재명을 선택해서 폐지만 안 되면 그만이라고 여겼기 때문. 오히려 폐지만은 막아야 한다는 심리로 이재명에 더 몰렸다.[22] 2017년 대선에 비해 지지율이 낮은 상태이다.[23]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소속 고양시의원 전원이 낙선했다.[24] 19대, 21대 총선에는 정의당 지지자들의 응답률이 적어 여론조사에서의 열세를 뒤집고 당선이 된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1위와의 차이가 30% 정도로 워낙 압도적이었다.[25] 거대 양당 쏠림 현상에도 18% 넘게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동정표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주로 옮겨서 출마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 13% 가량을 얻으면서 선거비 전액 보전도 못 받게 되었다. 녹색정의당도 비록 원외정당은 되었지만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기준인 2%를 넘어서 해산 등 최악의 결과는 피하게 되었다. 다만 문제는 녹색정의당의 부채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파산까지 거론될 정도로 몹시 좋지 않다. 즉 최악의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26] 심상정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라 마포구 을에 출마한 장혜영 비례대표 의원의 유세를 지원하거나, 지지율이 꽤 나오는 호남 쪽으로 지원유세를 했다면 비례대표 1~2석은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 본인의 지역구에서 워낙 밀리는 데다 선거비 보전마저 걱정할 판이라 지원 유세를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다.[27] 당선 이후 본인이 의원직을 사퇴하면 다음 순번에게 승계되기 때문에 원내정당을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28] 대중은 물론이거니와 녹색정의당 내부에서 심상정말고는 인물이 없냐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세대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게 분출되고 있었고, 심상정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세대 교체를 위해 전면에 나서는 일을 줄이고 있던 상황이었다.[29] 노회찬은 2018년 생을 마감했고, 조승수는 정식 은퇴선언을 안했지만 2014년 낙선 이후 현재까지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 정치계랑 멀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며 사실상 정계은퇴나 다름없는 상태이다.[30] 본인 채널에 올라온 반응들을 보면 양도 적을뿐더러 그나마 있는 의견들도 부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