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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대 중반 성립된 운동권의 좌익 민족주의 성향 주요 정파.2. 상세
NL은 National Liberation, 즉 민족해방의 약어로, 민족해방파라고도 불린다. 좌익 운동권 중 흔히 평등파로 불리는 PD 계열과 대조하여 자주파라고 일컬어지고, 이들의 핵심 테제인 자주민주통일의 두문자어인 자민통으로 불리기도 한다.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로 남북 분단과 대미 종속을 꼽았으며, 이를 민족 모순으로 판단하여 반미 운동을 통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과 협력하여 남북통일로 나아갈 것을 주장했다.[1] NL 중 다수는 극좌가 되어서 아예 대한민국의 정통성 자체를 부정하고 북한의 적화통일론을 신봉하는 주체사상파의 조류로 이어졌고,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북한의 대남공작과 연계되기도 하였다.
80년대부터 30여 년간 한국 진보운동의 주류였으나, 2013년 8월 28일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 이후 큰 타격을 입었다.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정당해산 심판으로 붕괴된 후 대한민국 진보운동의 주도권은 PD 계열 위주의 정의당[2]이 가져가게 되고, 그와 별개로 NL은 2016년 이후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거나, 민중연합당 창당에 합류했다.[3] 이후 민중연합당은 2018년 민중당으로, 2020년 진보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선거에 참여했다. 2023년 전주시 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강성희 의원을 당선시켜 통합진보당 해산 후 9년만에 원내정당으로 복귀하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명의 의원을 당선[4]시키는 등 민주당과 연대를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독자적 세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5]
2020년대 이후로는 대표적인 강성 PD 연구단체인 노정협과 노사과연의 청년회원들이 진보당에 집단 가입하고, 노동자연대 탈퇴파가 창립한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가 진보당과 연계해 활동하며, 반대로 정의당의 주류 정파에 자주파인 비상과 또다른플랜이 있으며[6], 더불어민주당에도 NL·PD가 명확한 파벌을 이루지 않은 채 섞여들어가 있고 등 NL-PD의 이분법은 과거에 비해 형해화되고 서로 통합되는 추세이다.
3. 형성
이 기사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각종 오해와 근거 없는 억측이 난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정확하고 맥락에 맞게 NL의 탄생을 짚어낸 기사이다.1980년대 중후반에 학생운동에서 돌출한 사회구성체 논쟁[7]을 통해 NLPDR, 즉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cy Revolution)[8]을 주장하던 그룹은 세를 불려나가면서 CA와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두고 대립하였다.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서 돌출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발생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5.18 민주화운동이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사에서 광주항쟁은 반미가 중요한 명제로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까지 재야와 대학생 등 민주화 운동 세력 대다수는 '미국을 박정희 정권의 폭주를 저지하는 고마운 우방'으로 보았으며, "그나마 미국이 있으니 간신히 숨통이 트인다"라고 생각하였다. 유신 말기의 카터 행정부가 인권과 민주화를 중시하며 박정희 정부와 사이가 껄끄러웠던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민주화 운동 세력에선 북한에 대해서 통일을 이루어야 할 같은 민족으로 대화와 협력의 대상으로 보았지만, 동시에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노리는 침략자 무리라는 반북, 반공 정서도 같이 존재하였다.[9]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 여전히 소련이 건재하고 12.12 군사반란으로 신군부가 다시 정권을 틀어쥐는데, 미국은 내부 정치상황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10] 얼마안가 벌어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미국은 신군부의 과잉 유혈진압을 사실상 방관하였고, 카터 이후에 집권한 레이건 행정부가 전두환을 미국에 초청하는 등 신군부의 집권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학생운동, 그리고 재야민주화운동 내부에 반미 정서가 폭발하기 시작한다.[11]
반미운동의 무풍지대 중 하나라던 대한민국에서 1982년의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같은 반미 시위가 터져나오고, 학생 운동권 진영 전반에 반미 정서가 자리잡게 된다.[12][13]
이러한 와중에 김영환의 강철서신을 계기로 주체사상이 유입되는데, 한반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과학적 변혁이론으로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 국면에서 '직선제 개헌'이란 간단명료한 슬로건을 내세워 폭넒은 대중성을 확보하게 되고, CA 그룹의 상당수 내지 비(非)주사 계열까지 흡수하면서 NL은 엄청난 양적팽창과 함께 학생운동의 주류가 되어 전대협과 한총련을 주도한다. 이후 '애국적 사회진출' 이란 이름으로 학교를 떠나 노동운동과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다.
4. 핵심 사상과 주장
4.1. 핵심적 주장 요약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자주/민주/통일로 표현된다....고 보통 알려져 있는데 자민통은 NL의 구호가 아니라 80년대 후반 NL의 분파 중 하나이며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80년대 후반 NL은 전대협이라는 이름하에 집결하였지만 그 안에서는 소그룹들이 각각 존재했으며 이 소그룹들은 전대협의 주도권을 쥐고자 막후투쟁을 벌였고, 심지어 임수경 방북 사건 같은 짓을 벌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전대협 내 조통(조국통일) 그룹이 주도한 것이었으며 NL 내부에는 이외에도 조통그룹과 자민통 그룹 외에는 비주사 NL로 불리는 관악자주파,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까지 한 김영환이 결성한 반제청년동맹 등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민통=NL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전대협의 결성을 주도한 배후가 바로 자민통 그룹이었기 때문이다.#이 네 개 정파는 소속 학교에 따른 차이가 강했다. 이를테면 조통그룹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서울 서부지역 대학들과 인천대 등 인천지역 대학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자민통 그룹은 외대, 한양대 등 서울 동부지역 대학들과 전남대 등이 중심이 되었다. 관악자주파는 당연히 서울대 중심이었다.
다만 사상적 차이가 없던 것은 아닌데, 관악자주파는 상술했듯 아예 주사파를 거부했다. 자민통 그룹과 반제청년동맹을 정통 주사파를 따랐고, 조통그룹은 다른 말로 새벽그룹이라고도 불리는데 장명국 씨가 발행하던 잡지 새벽을 보고 이론을 학습한다 해서 붙은 명칭이다. 이 새벽그룹은 주사파를 받아들이긴 받아들이는데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특이하게 변형해서 받아들였다.
1980년대 5.18 민주화운동으로 불타오른 반미정서와 폭압적인 군사독재 그리고 외국차관에 의존해서 성장한 재벌(매판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상황에서 정립된 NLPDR 이론은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조국통일"을 3대 목표로 설정했다.
즉, 한반도 남반부를 강점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반미자주화), 이들의 하수인 파쇼독재 정권을 타도한 후에(반파쇼민주화), 자주적 민주정부를 건설해서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달성하자(조국통일)는 것이 핵심 이론이다.
조직력 구축을 소홀히 하고 내부 토론에만 신경을 쓰는 PD와는 다르게, NL은 "품성론"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조직력을 탄탄히 갖추었기 때문에 현재도 운동판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정파이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이론이 빈약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수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4.1.1. 비주사NL의 입장
위의 내용도 어느 정도 수용하고 태도도 비슷하지만 현대 자주파의 주류인 비주사라고 불리는 개혁파들은 중심이 되는 또 다른 이론을 가지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적인 시스템, 국제적 금융 제국주의의 시스템을 무너트리는 것을 중심으로 본다.이 금융 제국주의라는 것을 설명하자면 세계 다국적 기업 절대다수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계 금융 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금융과 기업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미국의 존속과 국익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들을 보편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14] 그렇다면 미국의 패권을 무너트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미국이 허락한 선 안에서 진보주의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해방으로 이어질 수 없게 된다. 즉 미국이 타도 되어야만 사회주의가 각 국가에서 이뤄질 수 있으며 반미자주화를 통한 사회주의 경제수립과 그것을 위한 친미 보수정권 타도, 조국통일을 하여 국력의 증대로 반미자주화의 역량 확대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비주사 자주파의 당면 목표는 "금융 제국주의 시스템을 무너트리고 그 시스템의 최정점에 위치한 미국을 타도하는 것"이다.
즉, 그렇기에 여전히 반미를 위한 토대인 보수정권 타도를 내세우며 타도 후에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커지면 이 이론을 알린다면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정당중 반제국주의를 성향으로 가지는 정당들과 비슷한 입장이다.
이런 주장이 90년대에도 존재했으나 당시엔 비주류적 입장이었고 위의 입장이 당시의 주류였다. 허나 시간이 지나며 비주사 개혁파 입장이 압도적 다수가 되었다. 이 입장이 쪽수 자체는 많았으나 정통파의 단결력이 훨씬 강하다 보니 주류를 한동안 차지했다.
4.2. 현실 인식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로 보고 있다.[15] 원래 이론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었는데 80년대의 3저호황 이후 약간 이론을 수정해 명칭을 변경했고, 식민지반봉건론을 주장한 안병직은 일본 경제학자 나카무라가 주장한 중진자본주의론을 받아들여[16] 식민지 근대화론의 기초를 마련한다.대한민국 정부를 미제의 꼭두각시 정부라고 판단하여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언뜻 보면 일본의 한국사 정체성/타율성론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이론으로, 이들이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과 그 이후 좌파들의 논의를 검토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냉전이 끝나면서 역사학계/사회과학계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이론이 되었지만, 1980년대 당시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학생사회와 검열로 인한 정보부재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현상은 아니다. 이것이 1980년대 말 사구체 논쟁을 거친 이후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소위 식반자론.)으로 정립한 것이 현재까지 온 것이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외세의 식민주의적 침략과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민족 자립국가로 보았으며, 그중 일부는 남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바로 북한이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자유롭고 자주적인 국가라고 여기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다. 따라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외세인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같은 민족끼리 자립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1960~70년대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범으로 여겼던 타국 사회주의 진영들의 평가도 한몫했다.[17]
이런 환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깨지게 되었지만[18] 행여나 북한이 남한보다 빈곤하더라도 남한은 미제에 종속되고 북한은 자립하여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북한을 중심으로 두고 남한을 봐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 그래도 북한은 사회주의적 토대가 남아있으니 이 토대를 지키기 위한 현 북한의 체제 수호도 옹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4.3. 농민운동
NL은 남한 사회를 봉건주의라고 보기 때문에 농민과의 연대를 중시하여 전농과 긴밀하게 연대한다. 학생회가 한총련 계열이라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 농활을 갔는데, 협동봉사라는 측면도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더 강하기 때문에 한총련 지도부에서 각각의 학교에 지역할당을 해 누락되는 지역이 없도록 전국적으로 조직했다. 뭐, 그렇다고 PD가 농활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의미가 좀 다르다. 실례로 어느 대학의 PD계열의 학생회에서 '학우들의 부모님을 돕자!'라는 취지로 한총련에서 내려온 할당구역을 무시하고 농사짓는 학생의 집 위주로 농활을 꾸렸다가 비판당한 일이 있었다. 또한, NL 계열 총학이 있는 학교의 농활 시기는 반드시 PD계열 최대 행사인 5월 1일 노동절을 포함하도록 정해졌다. PD계열 행사 참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4.4. 외교 노선
반미주의·반서방주의 노선을 걷던 NL 그룹은 2000년대 이후 중국이 미국의 대항마로 급부상하자 빠르게 친중 성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이자 후원국인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태도 탓에 과격한 배타적 국수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시대착오적인 반일, 반미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을 듣는다. 거기다 NL들의 주 성향인 반일감정 또한 친중과 맞아떨어진다. 항상 미제타도, 일제타도를 외치는 NL들이 중국과 손잡자고 주장하는 건 그간의 행태를 보아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미제의 하수인인 반통일수구세력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입장이다.이러한 성향은 외국과의 국제협력이나, 한국군 해외파병 문제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PD들이 해외파병에 대해서 '명분 없는 전쟁' 혹은 '한국의 이미지 악화가 우려'[19]라는 의견을 내놓으며 반대할 때, NL들의 파병 반대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이라서' 위에도 서술했듯이 똑같은 FTA인데 한-미 FTA와 나머지 국가와의 FTA를 대하는 온도차가 명백하다. 한중FTA에 대해서 NL계열의 일부인 전농이 반대선언을 한 적 있으나 같은 기간 한미FTA에 대해 반대성명과 시위를 한 횟수에 비해선 수 배의 차이가 있다. 전농은 중국산 김치 등으로 인해 자기 밥줄이 걸려있다는 차이도 있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입장에서도 NL계의 입장이 드러나는데 민중당에서 중국편을 들며 시위대들을 나무라는 성명을 냈다. 해당 논평은 다른 운동진영에서 흑백논리이자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받았고 당내 인권위원회에서는 정반대로 중국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해 당내에서 격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러시아를 두둔하며[20]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4.5. 대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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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民統(자민통)은 북한공산집단의 대남적화통일 전위조직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강령과 지도노선에 따라 결정적 시기에 민중봉기를 유발하여, 헌법이 상정하고 있지 아니한 방법으로 현 정권을 타도하고, 외세를 축출(자주)한 후, 민중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민족자주정권을 수립(민주)한 다음, 연방제로 남북을 통일할 것(통일)을 목적으로 구성된 지하조직
주사파 학생운동의 주요 분파인 '자주·민주·통일그룹'에 대한 1991년 대법원 판결(91도2341#, 91도2671#)
노태우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NL의 리즈 시절 80년대 말에는 북한의 선전 멘트에 매우 충실히 반응해 6.25 전쟁은 한국의 북침으로 발발했다고 믿고,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는 미국이 북한을 두려워하여 준비한 핵무기라고 믿는 등 여러모로 순진한 모습을 지녔다.주사파 학생운동의 주요 분파인 '자주·민주·통일그룹'에 대한 1991년 대법원 판결(91도2341#, 91도2671#)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NL은 국가보안법이 노리고 있는 메인 타겟이다. [21]
노태우 정부 말기 이후로는 PD보다 NL이 주 타겟이 되었는데, 소련과 수교하고, 거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이 붕괴되면서 PD들이 힘을 얻기 힘들어진 반면[22], 1993년 설립된 한총련의 주축이 된 NL들이 여러 사고를 일으켰고 문민정부와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이런 경향은 사라지지 않아[23] 1997년 이석 치사 사건 이후 한총련 자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NL 탄압에 들어갔다. 당시 전경들 말로는 PD가 좌파라면 NL은 레알 빨갱이들이라고.
1990년대 초 PC통신 시대에 하이텔의 노동운동관계 동호회에서는 김씨 일족이 쓴 문서가 HWP파일로 만들어져 유통되기도 했다. 숨기기 좋은 통신망과 전자매체를 이용했기 때문에 인터넷과 웹사이트 이용도 빠른 편이었다. 이러다가 한 번 크게 탈이 난 적이 있는데, 아무나 초창기 구글 검색에 관련 단어를 치면 소위 북한관계 학습문서가 좌르륵 걸려나왔는데 그게 십중팔구 노동운동단체 아니면 노조 웹사이트였다. 그만큼 이 쪽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학생운동의 종말로 거의 죽어가던 NL 내 주사파 세력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2000년대 초중반까지 주체사상 총서, 김일성 회고록 심지어 대남방송 녹취록 같은 문서들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하면서 나름 대중화를 시도했으나, 젊은층의 호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공안기관의 실적만 올려주었다.
5. 조직과 분화
1990년대 초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해소 이후, NL 계열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이라는 전국 단위 상설연합체를 설립하면서 지역별 산하 지부들이 결성되었다. 이때 형성된 지역 네트워크는 훗날 정당 정치에서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9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이 3대 핵심 정파로 꼽혔다. 특히 경기동부연합은 성남·용인 지역 노동·청년 운동을 토대로 타 지역 활동가와 조직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 3대 정파는 사안에 따라 연대하거나 패권 경쟁을 벌였다.[24]199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권에서는 주체사상의 노선 해석과 투쟁 방식을 둘러싸고 주류 강경파(일명 '자주단결'[25], 남총련 및 서울지역 주류)와 비주류 온건·혁신파('자주혁신')가 한총련의 주도권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96년 연세대 사태와 97년 이석 치사 사건 등으로 한총련이 고립되자, 혁신파는 기존 주류의 폭력적 투쟁 방식과 낡은 운동 관행을 비판하며 학원 자주화와 대중적 학생운동을 내세웠다.[26] 이 혁신파의 대표적인 흐름이 사람사랑 그룹이었다. 사람사랑은 김영환 계열(민혁당)의 영향권에 있던 전북 지역(전북대 등), 경기남부(용인·수원 지역, 이른바 용성총련) 등이 연대한 전국 단위 학생운동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민혁당 사건과 핵심 지도자 김영환의 전향을 거치며 이 '혁신파' 내부는 결정적인 분열을 맞게 된다. 김영환 계열의 전북총련은 그의 노선 선회를 계기로 '북한 민주화 운동'으로 완전히 돌아서며 NL운동을 이탈했으며, 2000년대 이후 상당수가 뉴라이트 진영의 모태가 되었다.
김영환의 전향을 거부하고 NL 잔류를 택한 경기남부 및 서울 일부 활동가(하영옥·이석기 계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했다. 이들은 졸업 후 성남·용인 등을 거점으로 결집하여 경기동부연합의 주축이 되었으며, 이후 '반미구국 노학연대선봉대(노선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한대련,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거쳐 진보당의 핵심 청년·지역 정치인으로 이어졌다.
5.1. 학생회
학내의 여러 동아리들과 학생들을 이끌고 투쟁대오 전면에 나서야 하기에 일명 '학원 자주화'가 학내 최우선 목표가 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학생회를 장악하려 한다. 때문에 과거에는 부정투표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학생회를 둘러싼 비리와 폭력사건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 총학에 당선되어도 한총련 중앙에서 내려주는 외부 실천들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학내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고 이 부분과 관련해서 타 정파 및 학생들에게 비판을 받아왔다. 그 결과 현재는 극소수 동아리를 운영하는 정도로 그리고 있으며 학내에서 이런 활동들이 반향을 불러오지 못해 투표율 미달로 총학투표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부지기수. [27]6. 비판
6.1. 수구 반동적 면모
진보 좌파라고 자처하지만, 정작 진보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모들이 있다. 사실 운동권의 민중이라는 개념이 서구식 민주 공화정의 근대적인 시민(공민)이라는 뜻보다는, 전근대 유교 민본주의와 관련된 백성의 의미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강철서신'으로 한국에 주체사상을 소개한 김영환(1963)에 따르면, NL 운동권은 사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반외세 민족감정과 같은 정서에 기반한 집단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성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NL 운동권을 흔히들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NL 운동권 중에서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사회주의 보다는 민중사관에 관련된 동학농민운동, 의병, 민속문화, 전통문화, 무속신앙, 우리민족끼리, 대동세상, 대동제, 신토불이, 민족정기, 쇠말뚝, 환단고기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민족의 정통성이 북한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다. 실제로 80~90년대 운동권 회고들을 보면, 탈춤 동아리나 판소리 동아리에 속한 운동권들이 가장 강성이었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극좌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위정척사파나 의화단 운동과 같은 배외적 민족주의와 수구적 반동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동학 교령들이 월북하는 사례들이 있었고, 김일성 우상화에서 솔방울 수류탄이나 축지법 같은 것도 과학적 사회주의보다는 무속신앙에 가깝다. 북한에서 단군릉을 만들어서 선전하는 것은 무속신앙적인 권위와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을 수구적 세력으로 보는 관점에서 브라이언 마이어스(교수)는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서구권의 네오나치 극우 세력에서도 북한의 인종적 순수성 지향에 감명받는 경우들이 있다고 한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북한을 성리학 국가라고 규정했었다. 북한의 선전물들을 보면, 과학적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유교적 충효 사상이나 존왕양이에 가까운 경우들이 꽤 많다.50년대생들과 60년대생들은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대화의 여러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뿌리는 여전히 대부분 농촌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적 생활양식을 받아들인 세대임과 동시에, 정부가 근대화 사업을 통해 농촌에 침투하고,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바라본 세대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대학에 가서 도시 생활을 접하고, 한국의 고도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출현한 불균등성장을 마주했을 때 빈부격차, 도농격차 등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많은 운동권들이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데는 이런 '각성'과 '의식화'가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자신들이 유년기를 보냈던 농촌 공동체에 강한 향수를 보이면서, 세계의 여타지역에서 발전한 신전통주의와 유사한 지향을 형성했다. 소련식 정통 사회주의와는 구분되는, 한국식 NL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런 구도는 마치 이란의 사회주의자 그룹이 소련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페다야네 할크와 이슬람 전통을 포용하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무자헤딘 할크로 갈라진 것과 정확히 유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운동권 이념의 주류를 형성했던 NL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의 본질은, 사회주의보다는 신전통주의라고 보아야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통해 노동계급이 이끄는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 볼셰비키의 후예가 아니었다. 대신에 군부 독재 시기에 진행된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문화적 변화, 계층의 분화 등 근대화의 갖은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농촌 공동체를 한국에 복원하고자 했던 이들로, 계보를 찾자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후예라고 해야 옳았다. 실제 그들이 위정척사파처럼 근대화에 맞서 유학자의 사회적 헤게모니를 복원하고자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가정과 지역사회로부터 교육받아 익숙하게 내면화한 성리학적 감성에 강한 친화성을 보이고, 함석헌이나 신영복을 비롯하여 전통주의적 인간론과 영성론에 감화된 것은, 근대성을 지향한 소련식 사회주의보다는 위정척사파의 감수성에 더 어울렸다.
80년대 운동권들의 이런 전통 회귀적 경향성은 그들이 80년대 이후에도 보이고 있는 여러 행태를 설명할 때 아주 유용하다. 농활을 통해 그들이 농촌을 방문하여 한국의 때 묻지 않은 전통문화를 발견하려고 했던 것, 학교에서 미국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인 코카콜라를 거부하고 풍물패를 조직했던 것, 그들이 열망했던 정치·사회적 목표가 좌절된 이후에 많은 이들이 영성을 찾고자 종교나 무속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 수양 운동에 귀의한 것, 그리고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물들지 않은 공동체의 이상향으로서 북한에 환상을 품게 된 것이 모두 같은 연원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들의 가장 비슷한 친척은 멀리 서쪽의 사회주의적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활동들은 대학 인근의 쪽방에 모여 코란을 암송하며 이슬람의 '본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던, 혹은 법을 어겨가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고자 했던, 그리고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자고 결의했던 터키, 이란,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학생들의 활동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강철서신』의 저자로서 NL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김영환의 사상에 1979년 미 대사관을 점거한 테헤란의 군중들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임명묵, 『K를 생각한다』, 252~254p
많은 운동권들이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데는 이런 '각성'과 '의식화'가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자신들이 유년기를 보냈던 농촌 공동체에 강한 향수를 보이면서, 세계의 여타지역에서 발전한 신전통주의와 유사한 지향을 형성했다. 소련식 정통 사회주의와는 구분되는, 한국식 NL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런 구도는 마치 이란의 사회주의자 그룹이 소련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페다야네 할크와 이슬람 전통을 포용하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무자헤딘 할크로 갈라진 것과 정확히 유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운동권 이념의 주류를 형성했던 NL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의 본질은, 사회주의보다는 신전통주의라고 보아야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통해 노동계급이 이끄는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 볼셰비키의 후예가 아니었다. 대신에 군부 독재 시기에 진행된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문화적 변화, 계층의 분화 등 근대화의 갖은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농촌 공동체를 한국에 복원하고자 했던 이들로, 계보를 찾자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후예라고 해야 옳았다. 실제 그들이 위정척사파처럼 근대화에 맞서 유학자의 사회적 헤게모니를 복원하고자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가정과 지역사회로부터 교육받아 익숙하게 내면화한 성리학적 감성에 강한 친화성을 보이고, 함석헌이나 신영복을 비롯하여 전통주의적 인간론과 영성론에 감화된 것은, 근대성을 지향한 소련식 사회주의보다는 위정척사파의 감수성에 더 어울렸다.
80년대 운동권들의 이런 전통 회귀적 경향성은 그들이 80년대 이후에도 보이고 있는 여러 행태를 설명할 때 아주 유용하다. 농활을 통해 그들이 농촌을 방문하여 한국의 때 묻지 않은 전통문화를 발견하려고 했던 것, 학교에서 미국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인 코카콜라를 거부하고 풍물패를 조직했던 것, 그들이 열망했던 정치·사회적 목표가 좌절된 이후에 많은 이들이 영성을 찾고자 종교나 무속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 수양 운동에 귀의한 것, 그리고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물들지 않은 공동체의 이상향으로서 북한에 환상을 품게 된 것이 모두 같은 연원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들의 가장 비슷한 친척은 멀리 서쪽의 사회주의적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활동들은 대학 인근의 쪽방에 모여 코란을 암송하며 이슬람의 '본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던, 혹은 법을 어겨가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고자 했던, 그리고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자고 결의했던 터키, 이란,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학생들의 활동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강철서신』의 저자로서 NL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김영환의 사상에 1979년 미 대사관을 점거한 테헤란의 군중들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임명묵, 『K를 생각한다』, 252~254p
5.18민주화운동의 극적 형상화에 대한 고찰 -마당극에 나타난 반미의식을 중심으로-
오월극에 구현된 민속 신앙의 특성과 그 의의
1980년대 광주민중미술의 전개양상에 나타난 신명(神明) 연구
1980년대 전반기 서울지역의 풍물운동계열 작품에 나타난 굿성 연구-1980~1987년 6월항쟁 사이의 작품을 중심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 그룹 ‘두렁’의 작업에 나타난 설화, 민속, 샤먼의 의미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타난 종교와 이데올로기
권력과 저항 사이에서-1980년대 민속의 정치적 의미 변화의 배경과 과정-
대항적 에너지와 분할의 딜레마의 너머- 1970~80년대 민속 부흥의 몇 가지 장면과 공동체성의 의미 -
1970∼1980년대 ‘민족문화’ 개념의 분화와 쟁투
586 운동권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586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과연 좌파인가. 나는 한국의 좌파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 결과 도달한 나의 결론은 한국 좌파는 사회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아닌 전근대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좌파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사실상 중세 농촌 공동체가 모델이며, 민족주의는 전근대의 종족을 준거집단으로 하는 것이었다.
최범, 『문제는 근대다』, 7p
최범, 『문제는 근대다』, 7p
왜 민중운동은 반근대화 운동인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중운동이 중세 농촌 공동체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환상에 기반 해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러니까 한국의 민중운동은 근대를 부정적으로 보고 전근대, 즉 중세를 이상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민중운동은 근대를 외세의 침략이며 비인간적인 문명으로 본다. 그에 반해 전근대를 민족 고유의 순정한 삶의 방식이 살아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문명으로 본다. 민중운동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중세 긍정, 근대 부정이라는 낭만주의적 문명관에 기반 해 있는 것이다.
최범, 『우리는 왜 여전히 전근대적인가』, 55~56p
최범, 『우리는 왜 여전히 전근대적인가』, 55~56p
민중미술의 근대적 주체성은 또 다른 한편으로 커다란 모순과 역설을 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부정이 근대화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되어 버린 것이다. 반민족에 대한 민족 주체, 반민중에 대한 민중 찬양, 외세 의존에 대한 자주 강조는 분명 주체성 있는 태도로서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반발이, 그것을 넘어서는 주체적 근대화로 나아가기는커녕 거꾸로 근대 이전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고 예찬하는 전(前)근대화 또는 반(反)근대화의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데 있다. 전통, 신명, 무속, 농촌 공동체, 덩실덩실, 얼쑤, 대동세상... 민중미술이 그려내는 민족과 민중의 모습에는 어떠한 모순과 갈등도 없으며, 거기에는 전통적인 공동체가 하나의 유토피아로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소박한 리얼리즘과 한국적 모더니즘이 모두 식민지 근대화의 현실과 모순을 외면하고 관념적인 미학을 추구했다면, 민중미술은 전통사회와 공동체를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는 또 하나의 관념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비판이 주체적 근대화로 나아가는 대신에 전근대 또는 반근대로 퇴행해버리고 마는 민중미술은 진정 주체적이고 근대적인 미술인가. 어쩌면 민중미술 또한 한국의 근대화가 넘어서지 못한 문턱, 즉 식민지 근대화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비주체적인 식민지 근대화가 많은 모순과 한계를 가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식민지 근대화는 비록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권위주의 통치와 국가 폭력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순과 투쟁하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었다. 6월항쟁은 바로 그러한 투쟁의 찬란한 성과였다. 민중미술 운동은 그러한 민주화 운동과 함께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과 민중미술 운동이 빠진 한계와 함정에 대해서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말했듯이,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반발이 주체적 근대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근대적 삶과 공동체를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고 미화하는 역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민족과 전통은 선, 외세와 근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이 가로 놓여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그 부문 운동으로서의 민중미술 운동에 이러한 성격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최범, 『문제는 근대다』, 164~165p
소박한 리얼리즘과 한국적 모더니즘이 모두 식민지 근대화의 현실과 모순을 외면하고 관념적인 미학을 추구했다면, 민중미술은 전통사회와 공동체를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는 또 하나의 관념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비판이 주체적 근대화로 나아가는 대신에 전근대 또는 반근대로 퇴행해버리고 마는 민중미술은 진정 주체적이고 근대적인 미술인가. 어쩌면 민중미술 또한 한국의 근대화가 넘어서지 못한 문턱, 즉 식민지 근대화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비주체적인 식민지 근대화가 많은 모순과 한계를 가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식민지 근대화는 비록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권위주의 통치와 국가 폭력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순과 투쟁하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었다. 6월항쟁은 바로 그러한 투쟁의 찬란한 성과였다. 민중미술 운동은 그러한 민주화 운동과 함께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과 민중미술 운동이 빠진 한계와 함정에 대해서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말했듯이,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반발이 주체적 근대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근대적 삶과 공동체를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고 미화하는 역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민족과 전통은 선, 외세와 근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이 가로 놓여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그 부문 운동으로서의 민중미술 운동에 이러한 성격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최범, 『문제는 근대다』, 164~165p
2. 민중적 리얼리즘의 '민중'과 '현실'은 무엇인가
-새로운 리얼리즘을 위하여
고축문 또는 선언문
"유세차 갑자년 사월 스무하룻날 미술동인 '두렁'은 경인미술관에서 '창립전'을 가지게 되었으니, 하늘에 계신 단군 한울님, 항일의병신위님, 갑오농민신위님, 노동신위님 부디 내려오셔서 흥겨운 잔치판에 먹고 나고 놀고나 가소서. 또한 광대신위님도 함께 내려 오셔서 자릴 빛내 주소서. 지금 서울 장안에는 온갖 서양 잡귀신들로 붐비어 있습니다. 남이야 어찌됐던 예술이 최고다 순수귀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여인의 육체다 누드귀신, 그림을 잘 그리려면 인상 쓰는 것부터 배워라 인상귀신, 예술의 창조는 곧 파괴다 다다귀신, 난 다다의 사촌이다 슈르레알 귀신, 똑같이 그리자 하이퍼 귀신, 콘셉츄얼아트, 팝아트, 미니멀아트, 모노크롬, 액션페인팅, 해프닝, 비데오아트 등등 여기 내려오신 여러 신위님들이시어. 이 온갖 잡귀 잡신 물리치게 도와주소서. 또한 참다운 우리 그림 그리게 살려주소서. 여럿이 그림을 그린 가운데 재치가 넘쳐흐르는 그림, 서툴러 보이지만 익살이 듬뿍 담겨 있는 그림, 서민들의 한과 신명이 꿈틀대며 살아나는 탈, 마을 입구에서 재앙을 물리치던 장승, 이처럼 그림이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삶에 꿈과 용기를 주는 그림 되게 도와주소서. 여기 모이신 여러 신위님들, 구경 손님네들 차린 건 별로 없어도 서로 나눠 먹고 그림 구경 실컷 하고 배부른 듯 돌아가소서. 가시는 걸음이 흐뭇하기를 바랍니다. 잡귀 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쳐드리세 쳐드리세 만복을 쳐드리세 - 상향."
2024년 11월 9일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미술동인 '두렁'의 창립 40주년 기념전시가 열렸다. 열림굿과 함께 개막된 전시의 한쪽 변멱에는 40년 전 창립 당시의 고축문이 걸려 있었다. 고축문은 제사를 지낼 때 신령에게 바치는 글이다. 제사도 아닌 미술 전시에서 고축문을 올렸다는 것에서 '두렁' 그룹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록 전통적인 제의의 형태를 띠었지만, 고축문은 일종의 선언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위의 고축문은 '두렁'이라는 미술집단이 출범을 하면서 자신들의 존재와 활동 방향을 알리는 공개 문건인 셈이다.
(중략)
다시 '두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그들의 선언문(고축문)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서양 아방가르드의 예술 행동을 모방한, 그들의 선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두렁'의 선언문은 철저한 선악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에는 물리쳐야 할 잡귀신과 살려내야 할 우리 그림이 있다. 순수귀신, 누드귀신, 인상귀신, 다다귀신, 슈르레알 귀신, 하이퍼 귀신, 콘셉추얼 귀신, 팝아트, 미니멀아트, 모노크름, 액션페인팅, 해프닝, 비디오 아트 등등은 잡귀신이고, 재치가 넘치고 익살이 담겨 있는 그림, 서민들의 한과 신명이 꿈틀대며 살아나는 탈, 마을 입구의 장승 등은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꿈과 용기를 주는 미술이다.
한마디로 서양 미술은 죄다 물리쳐야 할 잡귀신이고 한국 전통미술은 복을 받아야 할 미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두렁'의 고축문은 외형적으로는 서양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선언문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이나 성격은 철저히 전근대적인 무속적 세계관과 사고방식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그들의 미술은 굿의 일종이었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한 번 물어보자. 서양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이 근대혁명을 꿈꿨다면, '두렁'이 꿈꾼 혁명은 어떤 혁명이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근대를 거부하고 과거의 농촌 공동체로 돌아가고자 하는 전근대혁명이다. 서구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마찬가지로 두렁도 미술과 현실의 합일을 꿈꿨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현실은 지금 여기, 이곳의 현실이 아니라 근대 이전의 농촌 공동체였다. '두렁'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그렇다. 논두렁, 밭두렁 할 때의 그 두렁
(...) 두렁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것은 모두 좋고 남의 것은 모두 나쁘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선악이분법이어서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면 히틀러도 울고 갈 정도의 심각한 인종주의적 편견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을 낳은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심지어 이런 미술을 진보적이라고 불렀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던 것일까.
최범, 『우리는 왜 여전히 전근대적인가』, 180~186p
-새로운 리얼리즘을 위하여
고축문 또는 선언문
"유세차 갑자년 사월 스무하룻날 미술동인 '두렁'은 경인미술관에서 '창립전'을 가지게 되었으니, 하늘에 계신 단군 한울님, 항일의병신위님, 갑오농민신위님, 노동신위님 부디 내려오셔서 흥겨운 잔치판에 먹고 나고 놀고나 가소서. 또한 광대신위님도 함께 내려 오셔서 자릴 빛내 주소서. 지금 서울 장안에는 온갖 서양 잡귀신들로 붐비어 있습니다. 남이야 어찌됐던 예술이 최고다 순수귀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여인의 육체다 누드귀신, 그림을 잘 그리려면 인상 쓰는 것부터 배워라 인상귀신, 예술의 창조는 곧 파괴다 다다귀신, 난 다다의 사촌이다 슈르레알 귀신, 똑같이 그리자 하이퍼 귀신, 콘셉츄얼아트, 팝아트, 미니멀아트, 모노크롬, 액션페인팅, 해프닝, 비데오아트 등등 여기 내려오신 여러 신위님들이시어. 이 온갖 잡귀 잡신 물리치게 도와주소서. 또한 참다운 우리 그림 그리게 살려주소서. 여럿이 그림을 그린 가운데 재치가 넘쳐흐르는 그림, 서툴러 보이지만 익살이 듬뿍 담겨 있는 그림, 서민들의 한과 신명이 꿈틀대며 살아나는 탈, 마을 입구에서 재앙을 물리치던 장승, 이처럼 그림이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삶에 꿈과 용기를 주는 그림 되게 도와주소서. 여기 모이신 여러 신위님들, 구경 손님네들 차린 건 별로 없어도 서로 나눠 먹고 그림 구경 실컷 하고 배부른 듯 돌아가소서. 가시는 걸음이 흐뭇하기를 바랍니다. 잡귀 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쳐드리세 쳐드리세 만복을 쳐드리세 - 상향."
2024년 11월 9일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미술동인 '두렁'의 창립 40주년 기념전시가 열렸다. 열림굿과 함께 개막된 전시의 한쪽 변멱에는 40년 전 창립 당시의 고축문이 걸려 있었다. 고축문은 제사를 지낼 때 신령에게 바치는 글이다. 제사도 아닌 미술 전시에서 고축문을 올렸다는 것에서 '두렁' 그룹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록 전통적인 제의의 형태를 띠었지만, 고축문은 일종의 선언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위의 고축문은 '두렁'이라는 미술집단이 출범을 하면서 자신들의 존재와 활동 방향을 알리는 공개 문건인 셈이다.
(중략)
다시 '두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그들의 선언문(고축문)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서양 아방가르드의 예술 행동을 모방한, 그들의 선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두렁'의 선언문은 철저한 선악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에는 물리쳐야 할 잡귀신과 살려내야 할 우리 그림이 있다. 순수귀신, 누드귀신, 인상귀신, 다다귀신, 슈르레알 귀신, 하이퍼 귀신, 콘셉추얼 귀신, 팝아트, 미니멀아트, 모노크름, 액션페인팅, 해프닝, 비디오 아트 등등은 잡귀신이고, 재치가 넘치고 익살이 담겨 있는 그림, 서민들의 한과 신명이 꿈틀대며 살아나는 탈, 마을 입구의 장승 등은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꿈과 용기를 주는 미술이다.
한마디로 서양 미술은 죄다 물리쳐야 할 잡귀신이고 한국 전통미술은 복을 받아야 할 미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두렁'의 고축문은 외형적으로는 서양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선언문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이나 성격은 철저히 전근대적인 무속적 세계관과 사고방식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그들의 미술은 굿의 일종이었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한 번 물어보자. 서양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이 근대혁명을 꿈꿨다면, '두렁'이 꿈꾼 혁명은 어떤 혁명이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근대를 거부하고 과거의 농촌 공동체로 돌아가고자 하는 전근대혁명이다. 서구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마찬가지로 두렁도 미술과 현실의 합일을 꿈꿨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현실은 지금 여기, 이곳의 현실이 아니라 근대 이전의 농촌 공동체였다. '두렁'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그렇다. 논두렁, 밭두렁 할 때의 그 두렁
(...) 두렁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것은 모두 좋고 남의 것은 모두 나쁘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선악이분법이어서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면 히틀러도 울고 갈 정도의 심각한 인종주의적 편견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을 낳은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심지어 이런 미술을 진보적이라고 불렀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던 것일까.
최범, 『우리는 왜 여전히 전근대적인가』, 180~186p
샤머니즘
무속(샤머니즘)은 민주화 운동과 강하게 연동되면서 1980년대 이후에 갑자기 공적인 인지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유교적·그리스도교적 가치관에서 보아 샤머니즘은 미신과 사특한 믿음으로서 극도로 멸시되고 있었다. 사회의 하층 여성의 열렬한 신앙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 샤머니즘이 평가되게 된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외래의 종교와 사상(유교·불교·그리스도교)이 아닌 민족 고유의 종교와 사상으로서 샤머니즘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본과 미국에 의한 근대화의 폐해를 극복하는 내재적 사상의 자원으로서 샤머니즘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셋째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인 '민중'의 사상으로서 기층 민중의 신앙인 샤머니즘에 주목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김지하와 황석영 등이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발굴하고 작가적 영성에 의한 재해석을 가하여 작품화했다.
극단적인 멸시를 받는 가운데 샤머니즘은 여성들로부터 점점 더 폭넓은 신앙을 모으고 있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샤먼의 연합 단체)에 등록해 있는 샤먼(무당)의 수는 18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것은 사제의 수로서는 다른 종교보다 많다.
오구라 기조, 『조선사상사』, 350p
무속(샤머니즘)은 민주화 운동과 강하게 연동되면서 1980년대 이후에 갑자기 공적인 인지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유교적·그리스도교적 가치관에서 보아 샤머니즘은 미신과 사특한 믿음으로서 극도로 멸시되고 있었다. 사회의 하층 여성의 열렬한 신앙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 샤머니즘이 평가되게 된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외래의 종교와 사상(유교·불교·그리스도교)이 아닌 민족 고유의 종교와 사상으로서 샤머니즘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본과 미국에 의한 근대화의 폐해를 극복하는 내재적 사상의 자원으로서 샤머니즘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셋째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인 '민중'의 사상으로서 기층 민중의 신앙인 샤머니즘에 주목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김지하와 황석영 등이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발굴하고 작가적 영성에 의한 재해석을 가하여 작품화했다.
극단적인 멸시를 받는 가운데 샤머니즘은 여성들로부터 점점 더 폭넓은 신앙을 모으고 있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샤먼의 연합 단체)에 등록해 있는 샤먼(무당)의 수는 18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것은 사제의 수로서는 다른 종교보다 많다.
오구라 기조, 『조선사상사』, 350p
정치에서 무속적인 모습이 참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정치에서 ‘문제풀이’보다는 ‘한풀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망자를 뒤로하면 정치적 권위와 정당성을 얻습니다. 박근혜 집권 뒤에는 흉탄에 쓰러진 박정희가, 문재인 집권 뒤에는 역시나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이한 노무현이 있었습니다. 한을 품고 간 것처럼 보이는 망자가 있고 그 망자를 대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로 정치적 정당성을 얻습니다.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람들이 리더를 뽑고 밀어주기보다는 특정한 망자의 한을 풀어보라고 사람들이 지지하고 리더를 선출합니다. 무속 사회의 특성이지요. 정치인들이 산 사람, 국민들에게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툭하면 묘지에 가서 향 피우고 망자의 권위를 자신의 현재 권위로 치환하려고 합니다. 유훈 정치를 북한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도 유훈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무속의 영향이지요.
한恨, 자기 연민, 피해의식, 선량한 피해자의식도 이야기해볼까요? 한은 선량한 피해자의식입니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마음인데 이게 한의 정서에요. 이 한의 정서는 불행히도 젊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것 같죠. 제도의 피해자, 가부장제의 피해자, 페미니즘의 피해자, 지나친 경쟁 사회의 피해자, 지나친 부모 욕망 투사의 피해자,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사고, 이런 자기 연민, 피해자의식만 봐도 한국은 무속 사회가 맞습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6~27p
한恨, 자기 연민, 피해의식, 선량한 피해자의식도 이야기해볼까요? 한은 선량한 피해자의식입니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마음인데 이게 한의 정서에요. 이 한의 정서는 불행히도 젊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것 같죠. 제도의 피해자, 가부장제의 피해자, 페미니즘의 피해자, 지나친 경쟁 사회의 피해자, 지나친 부모 욕망 투사의 피해자,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사고, 이런 자기 연민, 피해자의식만 봐도 한국은 무속 사회가 맞습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6~27p
커다란 사건, 사고가 터지면 냉철한 원인 분석이 안 됩니다. 인과적 사고보다는 늘 응보적 사고를 합니다. '왜'가 아니라 '누가'를 찾습니다. 항상 '죽일 놈'을 찾아요. 원인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는 푸닥거리할 대상을 찾는 겁니다. 과거 향촌 공동체에서 흉사가 닥치면 개와 닭으로 하던 푸닥거리와 똑같은데요. 그러다 보니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살피는 게 잘 되지 않습니다. 처벌할 인간만 찾으려 혈안인데 어떻게 구조적 원인을 분석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시스템이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비슷한 사고가 또 터집니다. 그러면 다시 응보의 대상을 찾는데 늘 푸닥거리할 대상을 찾는 사회, 역시나 무속의 영향이지요.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19p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19p
그저 사람들이 죽고 비극적 사건이 터지면 너도나도 감정 과잉, 공감을 넘어서 지나친 자해적 감정 이입, 사실상의 빙의와 접신을 하는 것은 우리가 무속의 민족이라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추모 시설이 산재해 있고 추모 시설들이 상징화되고 더 나아가 신격까지 부여되어 신성시된다고 해도 문제를 일으킨 원인들이 시정되지 않으면 추모 시설과 위령 시설 세우는 행위들은 그냥 굿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고 죽은 넋들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상 의미 없는 짓이죠. 예산이 집행되면 그저 국가적 낭비고요. 비슷한 희생자와 사고가 다시는 나지 않게 구조적 원인이 바뀔 수 있게 우리의 힘을 써야지요. 하지만 무속의 나라, 공감절대주의, 공감근본주의, 공감이라는 이름의 접신주의의 사회, 늘 그렇게 소중한 공동체의 에너지를 탕진하고 낭비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26p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26p
망자 이름 들어간 법을 보면 강한 처벌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이 능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원인과 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된다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없이 처벌의 강도와 범위를 늘려서 법에 담자면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부작용과 역기능이 심각할 것이 뻔하기에요.
마지막으로 네이밍 법안과 관련된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조속히 해당법을 통과시켜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자"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런 수사가 공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등장해요. 아니 입법 행위가 망자와 망자 유가족들 한을 달래주기 위한 것인가요? 국회가 굿당이고 신당神堂인지요? 입법 행위의 목적이 정말 누군가의 넋을 달래주고 한을 보듬어 안기 위한 것이라면 실제로는 굿이라는 건데요. 국회의원이 무당입니까? 국회의원들이 정치만이 아니라 굿도 해야 하나요? 네이밍 법안 관련해서 여론 추이나 맥락과 과정을 살펴보면 국회의원도 가끔은 무당이 되어 굿을 해야 하나 봅니다. 기껏 법을 만들어 통과시켜야 하는 당위가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라면, 그래서 서둘러야 하는 일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네이밍 법안 중에 유독 망자의 이름을 딴 법이 많고 그 법들의 통과를 위한 당위를 말할 때 희생자 넋과 혼의 위로를 말한다는 것도 역시 한국은 무속의 나라임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39p
마지막으로 네이밍 법안과 관련된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조속히 해당법을 통과시켜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자"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런 수사가 공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등장해요. 아니 입법 행위가 망자와 망자 유가족들 한을 달래주기 위한 것인가요? 국회가 굿당이고 신당神堂인지요? 입법 행위의 목적이 정말 누군가의 넋을 달래주고 한을 보듬어 안기 위한 것이라면 실제로는 굿이라는 건데요. 국회의원이 무당입니까? 국회의원들이 정치만이 아니라 굿도 해야 하나요? 네이밍 법안 관련해서 여론 추이나 맥락과 과정을 살펴보면 국회의원도 가끔은 무당이 되어 굿을 해야 하나 봅니다. 기껏 법을 만들어 통과시켜야 하는 당위가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라면, 그래서 서둘러야 하는 일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네이밍 법안 중에 유독 망자의 이름을 딴 법이 많고 그 법들의 통과를 위한 당위를 말할 때 희생자 넋과 혼의 위로를 말한다는 것도 역시 한국은 무속의 나라임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39p
빙의와 접신 이전에 무속에서 중요한 것이 억울함의 정서입니다. 피해자의식입니다. 무당은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고 책임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나서 같이 억울함과 피해의식에 공감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때론 대신 울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요. 그게 무속입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40p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40p
사실 한국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억울함'이죠. 억울함, 나는 피해자라는 정서가 바로 무속의 핵심 정서인데요, 개인과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단위로 확장시켜도 억울함이란 정서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절에 말입니다. 식민지배를 한국만 당했어요? 외세에 의한 침탈의 역사를 우리만 겪었나요? 우리보다 훨씬 심하게 외세에 고통을 겪고 민족과 국가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많습니다.
이 땅은 일제와 서구제국주의가 침범해오기 전에 착한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살고 있는 평화와 고요의 땅이었는데 나쁜 외세가 쳐들어와서 우리 삶의 질곡과 고통이 만들어졌고 분단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비록 경제는 많이 발전했지만 적지 않게 외국에 종속된 나라이고 외세에 의한 질곡과 고통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NL식의 역사관이 많은 이에게 동감을 받고 적지 않게 일반인들의 상식적 역사관에 편입되어 버렸죠.
그 뒤에는 억울함의 정서가 있습니다. 무속에 뿌리를 둔 그 코드에 잘 접속했고 그것을 계속 건드려줬던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40~241p
이 땅은 일제와 서구제국주의가 침범해오기 전에 착한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살고 있는 평화와 고요의 땅이었는데 나쁜 외세가 쳐들어와서 우리 삶의 질곡과 고통이 만들어졌고 분단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비록 경제는 많이 발전했지만 적지 않게 외국에 종속된 나라이고 외세에 의한 질곡과 고통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NL식의 역사관이 많은 이에게 동감을 받고 적지 않게 일반인들의 상식적 역사관에 편입되어 버렸죠.
그 뒤에는 억울함의 정서가 있습니다. 무속에 뿌리를 둔 그 코드에 잘 접속했고 그것을 계속 건드려줬던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40~241p
약자성과 피해자성을 선점하려고 하고 그것을 공인받으면 왕관을 쓰기도 하고 사회적 자원의 분배에 맨 앞줄에 서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이 보이면서 사회의 건강한 인센티브 체계가 망가지며 시민 정신이 병드는 모습,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려되는 사회의 모습이며 우리 현주소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공동체에 기여하고 타인의 효용을 충족시키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성과 약자성을 무기로 삼아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게 말이 되는지. 우리 내부를 보면 한심한데 밖으로 봐도 가끔 한숨 나옵니다. 그런 짓을 국가 단위로 행하는 집단이 바로 우리와 같은 민족 북한이지요.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59~260p
임건순, 『한국형 무속 정치학』, 259~260p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이러하다면,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사회구성체 논쟁 같은 것으로는 한국 사회를 설명할 수는 없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니 식민지반봉건이니 하는 언설로는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정치경제적 근대성과 사회문화적 전근대성의 이종모순결합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학문적으로 의제화할 때만이 가능하다. (...) 새로운 한국 사회 성격 논쟁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 몸은 한국인 정신은 조선인』, 182p
최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 몸은 한국인 정신은 조선인』, 182p
6.2. 정치행태
NL계열이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가입하고 당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크게 물의를 일으켰는데, 민주노동당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군자산의 약속[28] 이후에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입당한 NL계는 조직력을 이용해 지역조직들을 차례로 장악해 나갔다.예를 들면 가장 흔한 방법이 위장전입을 통한 지역조직 장악이었다. NL계열 조직원들이 특정 지역구로 단체로 위장 전입한 다음에 해당 지구당(現 당협위원회)의 위원장 선거에서 몰표를 던져서 자기네 인물을 위원장으로 만들어서 해당 지구당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단체로 다른 지역구로 위장전입해서 역시나 기존 당원들에 비해서 숫적 우위를 확보한 다음에 다시 위원장 선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네 숫자를 불리기 위해서 주민번호 등을 도용해서 유령당원들을 대거로 입당시켜서 대리투표만 한 다음에 다시 탈당시키는 탈법 사례도 상당히 많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범NL계 내부에서도 이런 짓거리를 가장 많이, 가장 악랄하게 저지른게 현재 정의당에 들어가 있는 인천연합이다. 인천 남동갑지구당 사건[29], 용산 지구당 사건 등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자 기존의 PD계열(평등파)이나 무정파 계열 당원들이 격렬하게 반발했으나 NL계의 조직력을 총선/대선에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던 기존 지도부[30]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장악한 지구당에 배정된 대의원들도 당연히 NL계열 인사들로 이루어져 결국 2004년 총선 직후에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승리해 당권까지 차지했다.[31][32]
과거부터 NL계열의 행보를 비판해온 진중권은 'NL이 학생회를 장악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악하고, 대물림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국회의원이 되면 희석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비민주적인 방법을 국회까지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오를 했다'고 평가했다.[33]
현재는 보수우익으로 전향하면서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한나라당을 통해서 정계에 입문한 옛 NL계열의 사람들은 과거 극단적인 친북반미 노선을 주장했던 것에 대한 컴플렉스인지 극단적인 반북친미 노선을 타고 있다. 거기에 과거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을 '인류의 태양'으로 찬양하던 것의 반동인지, 이제는 대한민국의 전 독재자들인 이승만과 박정희를 '민족의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있다.
NL의 핵심 활동가였던 민경우[34]가 2009년 출판한 <진보의 재구성>에선 현 NL 운동의 한계 및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식민지인가?’, ‘농촌 인구가 급감한 현실에서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이 여전히 의미 있는가?’, ‘현대와 삼성은 매판자본인가?’, ‘지사적 풍모와 금욕적 생활 태도가 요즘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가?’, ‘일국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미제의 식민지'라는 게 1980년 후반 정립된 NLPDR론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데 NL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출판하고 얼마 뒤에 민경우는 NL운동을 정리하고 보수 우파로 전향한다.[35]
6.3. 단결에 있어서의 문제
NL계열은 PD계열에게 '통큰단결'이라고 항상 손을 내밀며 연합하려고 하지만 수직적 상명하복의 조직구조상 소수파인 PD계열은 NL계열의 머릿수 때우기로 흡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발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의 분당 과정 자체가 NL-PD 세력들의 세력다툼의 연속이라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NL계열은 PD계열을 통큰 단결을 저해하는 종파주의자라고 깐다. 마찬가지로 PD계열은 NL계열을 북한식 독재 정권이라고 깐다.[36]한총련도 초창기에는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란 슬로건하에 비록 NL이 우위이긴 하지만 PD계열도 중앙조직 간부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였으나 1995년 모든 중앙조직을 NL강경파가 싹쓸이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로 슬로건을 바꾸었다. 그러다 1996년 연세대 사태의 영향으로 하향세에 접어들기 시작하고 1997년 들어 한총련 출범식 과정에서 벌어진 전경사망 사건과 이석 치사 사건으로 완전히 나락으로 빠졌다. 다만 그동안 쌓아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어찌어찌 땜빵하다가 2000년대 중반 들면서 완전히 망했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 노동운동 출신이 창당한 민주노동당에서도 NL이 2001년부터 각 지구당을 장악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2004년 이후 당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 시기에 초창기부터 당에 헌신하면서 부유세와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정책팀과 이론가들이 모조리 당을 떠게 된다. 대표적인 게 우석훈 박사, 진중권 등이다.
6.4. 변화
정의당에 결합한 NL 출신들은 이전과는 다른 태도들을 보이고 있는데, 국민의당의 한 예비후보가 인천연합 출신 이정미 후보의 전국연합 활동을 들어 정의당이 공산주의자를 공천하였다고 공격하자, 이에 대해 이정미 후보는 "북한은 보편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국가"이며, "북한의 3대 세습도 보편적 상식에서 볼 때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북한 찬양을 멈추면서 NL특유의 민족주의 노선과 단결력으로 대학과 정의당 내에서 영향력을 얻고 있는 추세이다.최근에는 경기동부연합과 진보당이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북한문제에 대해선 언급을 줄이고 노동자 문제와 지역현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편이다. 시대가 지나며 청년 당원들과 남은 이들은 은 구 주류와 다르게 비주사 개혁파 이론이 압도적 다수를 취하면서 북한 사회를 이상사회로 바라보는 것도 사라지고 구 패권적 행태도 당을 분리하고 나서는 꽤 줄고 서로 협력하려는 편이다.
사실 당권 먹으려는 것은 정치의 모든 정파가 하는 것이게 나쁜 것은 아닌데 통합진보당까지 자신들도 강경하게 다수파로써 지분 주장하고 nl정통파에서 난리 치고 pd조차 싸움을 무차별적으로 시도해서 뒤에서의 조직 내 정파 갈등이 매우 심각해서 터진 것에 가깝다. 사실 현 주류는 타협하려고 한 편이다.
7. 현재
'미국의 식민지로 착취당하는 한국'이라는 논리 기반이 한국의 성장으로 인해 점점 흔들리면서 과거 NL이었던 집단은 정치 조류로서 남을지언정 이론적인 의미에서의 NL은 전성기에 비하면 세력이 약해졌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G11에 넣으려고 하거나, 신남방정책과 같이 (좌파적 시각에서 봤을 때)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는 모습에서 NL의 이론적 기반이 많이 흔들린 것이다.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세계적으로도 언제까지 개발도상국인 척 할 거냐고 트집을 잡힐 정도로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졌기 때문에[37] 이념의 토대부터 큰 변혁 없이는 버티지 못할 상황이다.[38]중국 역시 시진핑 집권 이후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적극 도입했으며, 대침체 이후 시장경쟁과 효율성을 우선하던 자본주의적 정책이 약화되고, 사회주의적 재분배와 국가의 역할이 중시되는 방향성으로 선회하며 공공부유를 강조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적 요소가 산재한다는 특성이 있다. 중국 경제 100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Chinese Economy 100 Years: Where is the Chinese Communist Party Going Between Socialism and Capitalism?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이론과 조직문화가 개혁되며, 개량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며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진보당의 경우 계급계층활동 및 지역에서의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상향식 민주주의의 형태를 표방하고 있으며 다양한 의제에 집중하며 기층조직을 발전시키고 있다.
7.1. 대중정당, 대중단체화
2020년대 기준으로 NL의 주류인 진보당은 반미 반제국주의와 평화통일에 대한 내용들을 내걸고는 있지만 현재는 그냥 모호하고 포괄적인 개념에 그치고 있다. 핵심적인 정책이나 활동은 정의당이나 노동당 같은 정당과 큰 차이가 없다.[39] 2024년 22대 총선에 나선 진보당 지역구 후보들을 보면 거대담론이나 진보적인 정책의제에서 기성 제도권 정당들과 차별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서유럽 공산당들이 1970년대 대거 유럽공산주의로 갈아탔던 것처럼, 앞으로 NL은 단순 사회주의 지향 세력으로 변화하여 대중정당으로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거나[40] 심지어는 한대련/청지의 경우에서 보듯 그냥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쪽으로 갈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서유럽 공산당들, 가깝게는 일본공산당이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될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그러한 추세이다.[41]대체로 이러한 행보는 노조 관료, 노동조합 상근자들에 기반하여 나타나고 있다. 개량주의와 스탈린주의는 모두 노조 관료들에게 매력적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의 약빨이 다하면서 개량주의적인 방향으로 우경화하는 것이다. 서유럽 유로코뮤니즘의 역사가 그대로 NL 개량주의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NL의 정통성을 계승하기 때문에 반미, 민족주의적 색채는 여전히 강하게 띤다.[42]
7.2. 민족주의적 노선만 남긴 형태의 전향
위 문단과 반대의 경우로 말 그대로 민족주의적 성향을 제외하고는 성향의 상당수를 수정한 경우다.[43] 한대련 같은 대학생 단체들은 아예 사회주의적 색채가 사라진, 민족주의적 관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면에서 좌파 성향이 약화된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민주주의(노동해방, 성평등 등...)가 아니라 형식적인 민주주의(공정선거, 공약 준수...) 선에서 그치고 있고 한대련의 후신격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역시 이재명 후보를 비판적 지지 선언하며 우경화하였다.어찌 되었든 소위 말하는 운동권의 범위 내에서 보자면 이들은 NL에서 민족주의만을 남기고 우경화한 것이다.[44] 이러한 현상은 NL의 기본 사상이 민족주의와 자/민/통에 있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일국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것에서 그 일국 사회주의의 이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민족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NL 성향의 노래패인 우리나라가 1999년 결성 이래 18년 동안 보인 행보나 곡의 가사 내용 변화를 보면 이러한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원래 노래패 우리나라는 한총련 시절에 결성되었는데, 2000년에 나온 1집 앨범을 보면 해당 앨범에 실린 주한미군 철거가 정도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강성 NL 성향의 노래들이 잔뜩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노골적으로 범민련 활동을 고무하고 응원하면서 '달려가자 전사여, 연방 통일 조국으로!'라 외치는 '범민련 전사'라는 곡이 있는가 하면[45], 대놓고 국뽕 거하게 들이키고 지은 '조국의 품 안에서 나의 삶은 빛나라' 같은 곡도 있다. 대놓고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내용이 없기에 이적표현물은 아니며 멀쩡하게 음원 사이트에서도 유통되고 있긴 하지만, 비NL 성향의 운동권이 들어도 불편한, 내지는 곡은 좋은데 가사가 아깝다 느껴질 정도의 곡들을 무더기로 뽑아내던 시절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곡이라고 쓴 것들을 보면 북한의 모 선전 사이트를 연상케 하는 제목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노골적으로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내용의 <3대 헌장 높이 들고 통일을 합시다> 등등... 도대체 이게 어떻게 해서 음원 사이트에서 팔리고 있나 궁금한 곡들이 부지기수다(...).[46]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러한 성향은 차차 퇴색되어 가고, 도종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라든지[47], 특별히 NL 성향 없이 민족주의적 내용을 담아 낸 노래들이라든지, 아니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추모하는 노래라든지... NL은커녕 좌파적이라 하기도 어려운 곡들을 뽑아내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과거 NL 노선의 청년학생 운동을 했던 세대들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 당시 노선을 계승한 단체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급 기반성이 약하거나 본인이 노동계급이지만 중간계급적 허위의식에 깊이 매몰된 미조직 노동계급인 경우 이런 행보를 많이 나타내고 있다. 위 문단처럼 전국연합 계열의 NL 활동가들이 유로코뮤니즘으로 돌아선 경우에는 노동계급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개혁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면, 이쪽은 노동계급에 기반이 없다 보니까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남기지 않고 그저 민족주의자로 돌아선 것이다.[48]
어쩌면 더불어민주당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떠오른 2017년 이후의 정세 속에서는 과거 NL이었다가 친노로 바꾸었던 세력들처럼 완전히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 혁명성이나 진보성을 내세우던 다른 세력들이 대체로 그랬듯 그저 새로운 지배세력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다.
8.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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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당 계열: 90년대 NL주류를 비판하며 혁신계열[49]로 불리다가 2000년대 민주노동당 장악 이후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구성하며 NL운동계의 주류가 된 세력. 독자적 진보정당 건설에 주력했으며 노동자 민중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통운동을 주장함.
- 진보당: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의 민중연합당과 울산연합의 새민중정당이 2017년 합당하여 다시 꾸린 NL계열 대표 진보정당. 2020년 민중당에서 진보당으로 당명을 개정하였다.
- 평화너머: 울산연합 계열의 통일운동 단체. 과거 겨레하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이름을 변경하였다.
- 진보대학생넷: 2017년 결성하여 부울경지역과 수도권을 위주로 활동하는 진보당 지지 성향의 대학생 운동 단체.
- 평화나비, 청년하다, 한국대학생문화연대(한문연)[50] 등 대학내 동아리 활동
- 한국청년연대: 구 민청련-전청대협-한청. 한총련, 한대련에서 활동했던 졸업생들이 지역 활동을 위해 조직한 청년회들의 연합체. 20대 총선에서 민중연합당으로 대거 출마했다.[51]
- 민중운동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민파,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노총 내에서 NL계의 영향을 받는 노동운동가들을 국민파라고 한다. 지역단위 노조들이 대중적 이미지를 만들고자 당시에는 많이 퍼져있었던 NL 민족주의 운동과 결합한 것. NL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도 이곳에 합류한다. 이들은 민주노총 내의 우파를 맡아 민주당계 정당과 협상하고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환경을 개선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국민파 인사 중 한 명인 권영길이 1997년 대선에 국민승리21 후보로 출마하면서 국민파 일부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 국민파 최대조직이었다가 2020년 이후 분리된 '민주노동자전국회의'(전국회의)는 사실상 국민파의 별개 조직이자 진보당계로 인식된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통합진보당-민중당-진보당을 꾸준히 지지하는 농민운동 조직.
- 자주단결계열[52]: 반미, 반서방, 반일, 통일운동 중심이며, 반보수정당 투쟁이 주 관심사. 독자적 진보정당운동[53]이나 노동운동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 국민주권연대(주권연대): 과거 한총련 비선 계열에 속해 있던 활동가들이 모여서 주축으로 활동하는 전위단체이며 촛불행동을 구성하는 주요 인원들이기도 하다. 자체 미디어로 자주시보와 주권방송 등을 운영하고 있다.
- 국민주권당: 위의 국민주권연대 인사들이 모여 창당한 전위정당으로 과거에는 진보당에서 활동하였으나 여러 갈등 끝에 2023년 집단 탈당하여 결성하였다.
-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명목상은 한총련-한대련 계통의 뒤를 잇는 대학생 운동 조직이다. 한대련까지는 혁신 계열에서도 참여하였으나 현재는 사실상 남총련 위주의 단결계열 단일 정파 조직으로 남아있고 민권연대-주권연대와 노선을 공유한다.
- 민중민주당: 과거 코리아연대[54] 인원들이 주축으로 결성된 전위정당으로 중부지역당 계통으로 알려져 있다.
-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대표자협의회(민대협): 한총련 와해 후 한대련이 등록금 문제 등에 집중하는 것에 반발하며 한총련의 반미운동 전통을 지키려는 서울지역 대학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그룹.[55]
- 통일시대연구원(통일시대): 2018년 4.27 연구원으로 조직되었다가 최근 통일시대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꾼 조직. 주체사상을 비롯해 북한 사회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 등 북한의 관점에서 북한의 역사, 정치, 사회, 외교 등을 설명하는 여러 책을 발간하고 있다. 당연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밥 먹듯 수사를 당하는 일이 다반사. 2021년에는 연구원 이정훈씨가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한때 NL을 대표하는 통일운동 조직이었으나 90년대 중반 '새로운 통일운동체 논쟁' 이후 단결 계열의 원로 조직으로 남아 영향력은 미미해진다.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을 학생조직으로 두었다. 2024년 김정은의 통일조직 폐쇄 지시 이후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자주연합(자주연합): 범민련 해체 이후 재조직파가 후술할 노정협, 통일시대연구원 등을 끌여들여 조직한 범민련의 후신이다.
- 기타
- 정의당 내 NL 출신 그룹: 통합진보당이 분당되면서 정의당에도 NL 출신 그룹이 참여하였다. 인천연합, 광주전남연합의 비상, 인천연합에서 활동한 서울연합 주축의 또다른플랜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북한의 인권실태를 비판하고 3대 세습을 반대하는 등 사실상 기존 NL 세력과는 정치 노선이 많이 달라진 상태이다. '꿈꾸는 고래'[56]라는 학생조직도 운영하였다.
- 국제전략센터: 또다른플랜 등이 참여하고 있는 NL 계열 연구 단체이다.
- 다극화포럼: 한신대학교의 이해영 교수 등을 주축으로 하는 광범위한 NL 계열의 통일적인 연구 단체이다.
- 비주사 NL(NL 좌파): CA 출신으로 NL의 대중노선을 따랐지만 주체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룹.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서울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관악자주파'등으로 불리다가 21세기 진보학생연합등으로 이어졌다. 하태경 등 일부는 뉴라이트로 전향했다.
- 더불어민주당 내 구(舊) NL 출신 정치인들: 전대협, 한총련 활동을 하다가 제도권의 민주당계 정당으로 옮겨간 이들도 많이 있다.[57] 이들 중 순수 NL 계열 출신 사람들도 있고 순수 NL 계열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섞여있다. 즉 다분히 NL, PD, ND, CA 등의 계열이 혼재되어 있다.
그 외에 아직도 법외 재야운동 성격에 머물러 있는 몇몇 단체들이 있지만[58], 사실상 통일 운동 원로들의 친목모임으로 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59]
9. 참고자료
-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 한 NL운동가의 성찰과 고백
지은이 - 이명준(가명) 2012년 6월 바오 펴냄
필자는 서울 모 대학의 96학번 NL운동권 출신으로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다가 2008년 탈당한 이후에는 평범한 사무직노동자로 살고 있다. 이책에선 때묻지 않은 상태로 대학에 입학했던 새내기들이 사회정의를 갈망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어떻게 골수 주사파가 되어가는지를 자신의 체험에 근거해서 매우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엠팍 불펜에 올리기 시작했던 시리즈 글이었는데 딴지일보, 오유 등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화제가 되었고, 2012년 6월달에 정식 출간되었다. 때마침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NL주사파 그룹의 민낯이 드러나던 시기라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엠팍 불펜에 올라왔던 글들은 출간과 동시에 삭제되었고, 딴지일보에만 내용의 일부가 남아있다. 딴지일보 게시판 연재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 전 NL 운동가의 자기고백 "주사파는 진보가 아닌 파시즘" - <경기동부> - 종북과 진보 사이, 잃어버린 우리들의 민주주의
지은이 - 임미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 2014년 3월 이매진 펴냄.
필자는 경기동부의 근거지인 성남시가 바로 철거민들의 강제이주로 벌어진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의 현장이며, 이석기를 비롯한 경기동부의 핵심인사들 상당수가 바로 성남출신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철거민 강제 이주와 공권력의 업악속에서 성장한 광주대단지키드들이 자신들만의 유대감, 그리고 외부에 대한 배타적 시선으로 경기동부를 형성해나갔다고 분석한다. 다만 자료 수집 과정에서의 심각한 취재 윤리 위반으로 인해 비판받기도 했다.[60]
- 박찬수의 NL 현대사
한겨레신문 박찬수 논설위원이 연재했던 NL운동의 연대기. 1986년 NL운동의 태동부터 2016년 당시까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2017년에 인물과사상사에서 <NL현대사>란 제목으로 에피소드를 몇 개 더 추가해 단행본화됨. 그 후 한겨레 박찬수 논설위원은 한미우호증진에 기여해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에게 상을 받았다.
-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사 (1997~2019)
학생운동이 전환점을 맞이한 1997년부터 2019년까지의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사를 정리한 글이다. 소위 말하는 '광주전남연합' 산하 NL 활동가들에 대한 자세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여담이지만 전남대는 NL 학생운동의 총본산으로 '반미구국의 철옹성'으로 불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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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파 | 평등파 | 사회당계 | 사민계 | 생태주의 | ||||||
| 17대 총선 ~ 18대 총선 | ||||||||||
| <nopad> 민주노동당 | <#ef4122> 한국사회당 | |||||||||
| 자주파 | 평등파 | 사회당계 | ||||||||
| 18대 총선 ~ 5회 지선 | ||||||||||
| <nopad> 민주노동당 | <#E62020> 진보신당 | <#DF341D> 사회 | <#FCCA00> 참여당 | <#419639> 민주당계 | ||||||
| 자주파 | 잔류파 | 탈당파 | 사회당계 | 참여계 | 민평련 | |||||
| 5회 지선 ~ 19대 총선 | ||||||||||
| <#EE7700> 민주노동당 | <nopad> 통연 | <#E62020> 진보신당 | <nopad> 녹색 | <#F47920> 청년 | <#FCCA00> 참여 | <#019E33> 민주당계 | ||||
| 자주파 | 잔류파 | 통연 | 잔류파 | 사회당계 | 생태 | 청년당 | 참여계 | 민평련 | ||
| 19대 총선 ~ 통진당 부정선거 사태 | ||||||||||
| <nopad> 통합진보당 | <nopad> 노동 | <nopad> 녹색 | <#39B44A> 민주당계 | |||||||
| 자주파 | 통연 | 참여계 | 제파 | 생태 | 혁통계 | 민평련 | ||||
| 통진당 부정선거 사태 ~ 통합진보당 해산 | ||||||||||
| <#782B90> 통합진보당 | <#FF007F> 진보정의당 | <nopad> 노동 | <nopad> 녹색 | <#0082CD> 민주당계 | ||||||
| 자주파 | 평등파 | 제파 | 생태 | 혁통계 | 민평련 | |||||
| 통합진보당 해산 ~ 20대 총선 | ||||||||||
| <nopad> 민중연합 | <#FFCC00> 정의당 | <nopad> 노동 | <nopad> 녹색 | |||||||
| 자주파 | 인천 | 국민모임 | 노정연 | 통연계 | 평등넷 | 참여계 | 제파 | 생태 | ||
| 20대 총선 ~ 19대 대선 | ||||||||||
| <nopad> 민중연합 | <nopad> 새민 | <#FFCC00> 정의당 | <nopad> 노동 | <nopad> 녹색 | ||||||
| 자주파 | 인천 | 통연계 | 평등넷 | 참여계 | 제파 | 생태 | ||||
| 19대 대선 ~ 21대 총선 | ||||||||||
| <nopad> 민중 | <#FFCC00> 정의당 | <nopad> 녹색 | <nopad> 미래 | <nopad> 변혁 | <nopad> 노동 | |||||
| 자주 | 인천 | 통연계 | 모멘텀 | 평등넷 | 참여계 | 생태 | 청년 | 제파 | PD | |
| 21대 총선 ~ 20대 대선 | ||||||||||
| <nopad> 진보 | <#FFCC00> 정의당 | <nopad> 녹색 | <nopad> 미래 | <nopad> 노동당 | <nopad> 기본 | |||||
| 자주 | 함서 | 통연계 | 전환 | 새진 | 생태 | 청년 | 변혁 | 진신계 | ||
| 20대 대선 ~ 22대 총선 | ||||||||||
| <nopad> 미래 | <nopad> 노동당 | <nopad> 기본 | <nopad> 사민 | <nopad> 진보 | ||||||
| 함서 | 통연계 | 전환 | 녹색 | 청년 | 변혁 | 진신계 | 새진 | 자주 | ||
| 22대 총선 ~ 12.3 내란 | ||||||||||
| <nopad> 노동 | <nopad> 정의당 | <nopad> 녹색 | <nopad> 미래 | <#D6001C> 진보당 | <nopad> 사민 | <nopad> 기본 | ||||
| 제파 | 함서 | 비상 | 전환 | 생태 | 청년 | 경동 | 세상 | 새진 | 너머 | |
| 12.3 내란 ~ 21대 대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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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대선 ~ 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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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정당별 계파 (기타 진보 · 정의 · 진보 · 기본소득 · 사민 · 혁신 · 민주 · 새민주 · 개혁 · 국민의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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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하는 경기대학생연대 행대연, 2023~현재 | 자주연합 청년위원회 2025~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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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극좌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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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시는 해산하거나 활동을 중단한 단체 ◈: 조선공산당 계열, ★: 자주(NL) 계열, ◆: 평등(PD/CA/IS 등) 계열, §: 기타 계열 같이 보기: 대한민국의 극우 단체 | ||
[1] 한편 좌익 운동권 중 평등파인 PD 계열은 계급모순을 근본적인 문제로 보고 노동운동과 연계할 것을 중시했다.[2] 정의당 내 정파는 PD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참여계와 인천연합 등 다양한 정파가 존재했다.[3] 현 NL의 구심점인 진보당의 직접적 전신이자 통합진보당의 실질적 후계 정당이다.[4] 이후 손솔 의원 승계로 4명.[5] 아래에서 언급하듯 진보당의 NL 성향이 다소 희석되긴 하였으나, 정파들의 기본적인 인적 구성부터, 한미동맹 파기 및 주한미군 철수 등 특유의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NL 계통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6] 비상의 주류 구성원인 인천연합은 한 때은 정의당의 당권파였으며 또다른플랜(前 함께서울)의 경우, 주류 NL과 다를 바 없는 국제 정세 인식을 보여주며 사실상 NL로 분류된다.[7] 사실 한국에는 무려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좌익운동은 물론 해방정국 동안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여운형계 사회주의 운동, 진보당, 사회대중당 등 합법적인 혁신정당에서 활동하던 잔존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통일혁명당을 만들어서 북한과 연계를 시도하거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등의 지하혁명 조직을 만들기도 하였으나 결국 6.25 전쟁의 여파 속에서 막강한 반공주의적 탄압으로 인하여 북한과 연계된 집단은 물론, 결과적으로 그와는 전혀 상관없었던 사회민주주의 정당까지 소멸되었다. 결국, 서방 국가들의 현대정치사와 비슷한 궤적을 걸을 가능성이 있었던 이념 정치의 토양이 사라졌으나, 박정희 정권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대중적 저항의식을 심어 주었으니 서양 국가들의 정치사에서 사회당, 사민당 등이 존재하며 지속적으로 세대를 거쳐 저항이나 개혁의 구심점 노릇을 한 것과는 달리 그 시대의 한국의 활동가들에게는 그러한 과거의 교범이 없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사구체 논쟁의 형태로 "어떤 이론, 이념에 따라 반정부·반독재 투쟁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은 거의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8] NL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만국의 노동자의 일치 단결'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허황되었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시작한다. 당시 전쟁이 일어나자 각국의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보다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며 민족주의에 기반한 전쟁을 지지했다. 이 전제 위에 개별 국가의 사회주의 혁명은 해당 국가의 노동자 계층이 스스로 달성해야 한다는 공산주의 혁명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일국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말해 스탈린주의로 정리가 되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경계가 명확하지 못한 동아시아의 중국과 한국에 전파되면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이론으로 바뀌어나갔고,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로 변화되게 된다. 사실 이와 같은 주장은 세계 약소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본디 레닌의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종 단계라는 제국주의론에 기반한다. 이에 따라 서방 제국에 의해 지배받는 식민지 국가와 선진국의 노동계급은 단결을 하기 어려우니 우선 제3세계 후진국의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한 국제주의 노선의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의 본질적인 반동주의적인 측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이들은 제국의 압제자보다 약소국의 압제자가 타도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가 그들이 후진국의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권을 비판하길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방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지지할지라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민족 운동은 반동으로 보고 비판한다. 반대로 한국의 NL들은 아직도 20세기 마인드로 한국이 미제의 식민지라는 가설로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니 뭔가 기괴한 게 탄생한 것이다. 레닌주의 극좌파의 경우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력에 맞서 북한을 두둔하고 친중적인 성격(한국 좌파만의 특징은 아님)을 보인다. 그런데 대다수 남한 대중들의 인식은 반제국주의 국가라 지칭되는 북한과 중국은 엄연히 6.25 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한 침략자고 반대로 미국은 이들을 저지한 수호자라는 것이니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이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면서 구세대의 감상적 민족주의가 약화됨에 따라 한국 사회가 미제의 신식민지라는 주장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 이상 대다수 대중들 사이에서 납득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심지어 남한 사회구성체 자체가 이미 제국주의에 접어들었다거나 거기까지는 아니라도 아(亞)제국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과거에 한국 경제가 덜 발전했던 군부독재 시절에 등장하여, 아무런 업데이트를 거치지 않은 채 남한이 아직도 '신식민지 반봉건 사회'라 규정하는 NL(혹은 스탈린주의 계열 PD) 운동권의 반제론은 먹혀들지 않게 되었고 점점 대중운동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선진국임에도 자국의 민족 운동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민족 볼셰비즘이라는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도 상당히 기괴한 이념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역사가 오래되었다.[9] 예를 들어 재야대통령으로 불리던 장준하는 강경한 반공주의자였고, 유신정권 당시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문익환과 계훈제는 미군 통역장교 출신으로 친미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개신교 목사들의 상당수는 미국 유학파였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도 민주화 시위대에서 '반공전선 이상없다, 김일성은 오판말라'같은 플래카드를 들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언론의 자유, 공정선거, 인권, 서민층 권익 보장 같은 보편적, 제도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수준이 대세였다. 이외에 중남미에서 유래한 종속 이론 등이 학계에서나 좀 보급되는 정도였다.[10] 1980년은 미국의 카터 행정부가 심각한 지지율 하락으로 레임덕에 시달리는 시기였기에 국외문제에 개입을 할 수가 없었다.[11] 동 시기에 국무부도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는 있었지만, 냉전 상황 속에서 한반도에 친미정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정책이었기 때문에 전두환 정부를 마지못해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사실 미 대사관을 비롯한 미 당국은 투옥된 김대중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때문에 김대중의 명줄을 잡고 있던 전두환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2016년 기사 다만 매체들이 현대처럼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에 그런 속사정까지 알 수 있을 리 없었던 대학생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미국놈들도 사실 다 똑같은 놈들이다."라는 오해가 퍼지게 된다.[12] 197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섰던 인사들의 상당수가 이런 뜬금없는 반미 정서의 돌출에 불안감을 느끼고 침묵하거나 오히려 친정부적인 스탠스로 기울어진다. 그중 대표적인 인사들은 윤보선, 천관우, 강원용 목사, 지학순 주교. 이 시기 운동권에서 터트렸던 굵직굵직한 사건에는 어지간하면 반미라는 모토가 깔려 있었고, 그 정서가 고양되면서 좌익 민족주의가 타오르게 된다. 또한 1980년대 중반 수입 개방을 기점으로 농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으면서 농민 운동에서도 반미 감정이 피어올랐다.[13]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적으로 반미 운동의 무풍지대'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당시의 시대상은 '반미 vs 친미'의 충돌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소련이 무너지는 1991년을 최정점으로 하며, 사실상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에 반미주의가 대한민국에 들끓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즉, 그 시대는 종속 이론의 시대였으며, NL의 모든 핵심은 사실상 종속 이론이 제시하는 '특수한 역할'을 NL 세력들이 새로 규정하고 정립한 저항 이론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시작되기에 이른다. 1986년 필리핀 민주혁명을 기점으로 레이건 행정부가 '친미 범위 속 민주화' 기치를 담고 새로 만든 '저강도 전략'도 한국 운동권들 사이에서는 반대로 반미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썼다.[14] 미국이 손해를 볼 때는 이 금융자본만이 손해를 안 보게 국익을 침해한다고 본다. 어차피 이들 없이는 미국 경제도 존재할 수 없으니.[15] 뉴라이트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최초로 이런 주장을 한 안병직은 뉴라이트 초기 인사가 된다.[16] 사실 그가 주장한 식민지반봉건론도 일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게서 심대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17] 실제로 김일성은 1960년대 이후 자신의 독재권력을 확립해 가며 소련과 중국 모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독자노선을 취하긴 했다. 장폴 사르트르나 살바도르 아옌데 등 이 시기에 방북한 해외 사회주의 인사들이 북한을 고평가한 바도 있고. 물론 북한의 대외 선전용 의도도 있었겠지만 어찌 되었건 당시 북한의 경제는 나름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을 때기도 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의외로 '자주적이고 평등한' 북한이라는 환상이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이는 사례는 있었다. 물론 동구권이 몰락하고 과거에 검열 및 억압되었던 정보들이 풀리면서 이러한 환상은 처참히 무너져 갔지만.[18] 1989년~1990년 당시 한창 남북 화해 분위기에 따라 북한에 다녀온 학생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이, 자신들을 환영하기 위해 오밤 중에 주민들을 깨워서 숙소 근처에 동원시켜 놓은 것을 보고 "얼굴에 피곤하다고 쓰여있는 사람들 데리고 뭐 하는 짓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적어도 남한이 북한보다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종의 임수경 쇼크의 남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19] 친미성향의 우파 인사들 중에서도 이런 이유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동의안 국회 표결 때 한나라당 내에서도 반대표가 속출한 것도 이런 관점이다.[20] 소련 시절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PD가 소련을 옹호했고, 오히려 주체사상을 따르는 NL 그룹은 소련을 동경했으면서도 소련에 큰 관심은 없었다.[21] 반면 PD 계열 단체들은 어지간해서는 국가보안법으로 엮기 어려운지 주로 파업 가담이나 시설물 파괴 등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식으로 잡아가는 수법이 많이 쓰인다.[22] 이 무렵에 대부분의 PD들의 행보는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보수주의 우파나 자유주의 중도좌파로 전향한 경우, 둘째로 사회민주주의로 우경화한 경우, 셋째로 서유럽의 신좌파 노선을 받아들인 경우, 마지막으로 트로츠키주의나 국제사회주의로 갈아탄 경우. 국제사회주의는 1990년에 들어왔고 트로츠키주의는 1995년에 들어왔다.[23] 운동권들은 민주화 운동가인 김영삼, 김대중을 지지하긴 했으나, 이 양김은 온갖 고초를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정치를 수행했다. 결국 민주주의 정권인 YS/DJ 때도 한총련 등은 결국 폭력 동반 시위를 일으켰다. 훗날이 돼서야 이들은 참여정부 시기에 힘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대통령 중 친노 입장을 지지하며 존속한 상태이다.[24] 비판적 시각에서는 이들 정파가 공식적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비선(지하) 조직적 관행을 유지하며, 대외적으로는 합법 조직의 대표자를 앞세워 내부 통제와 일사불란한 당직·공직 선거 동원을 자행했다고 지적한다.[25] 상대 정파에서는 주사, 비선 등으로 불렀다.[26] 한편, 다른 정파(비주사NL이나 PD 계열) 및 외부 비판자들은 비주류 혁신파 역시 주류 자주단결과 본질적인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초기에는 '세련되고 대중적인 운동 방식'을 표방했으나,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기존 주류와 다름없는 정파 패권주의, 배타적인 조직 운영, 대중적 설득력 부족 등의 한계를 똑같이 드러냈다는 지적.[27] 최근에는 뉴라이트의 지원을 받는 학생회라든지 비운동권이 다소 강해질 정도다.[28] 이것을 기점으로 NL 운동가들은 거리투쟁에서 선회하여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다양한 합법적 사회조직에 유입되기 시작했다.[29] 2002년 10월 26일 남동을(준) 창립총회을 앞두고, 90여 명의 기존당원(중동지구당의 PD쪽의 당원 20여 명, 경기동부연합 세력 12명 포함)을 힘으로 누르기 위해 인천연합 쪽 부평갑 • 을지구당 소속 당원 73명이 당권신청 마감일인 9월 30일 주소 변경(지구당 이동)을 신청했다. 갑자기 당원이 90여 명에서 1백 60명으로 불어나고 인천연합은 모든 당직을 '싹쓸이' 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결국 73명 중 13명은 남동갑지구당에, 60명은 남동을지구당 창당사업을 기약하며 지구당을 재이동해 '전쟁'을 보류한 사건이다.[30]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31] 자기들끼리 분열해서 동상이몽하고 있던 PD계(평등파)는 2004년 6월 전당대회때 지도부 선거에서 전멸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연합했지만, 그 뒤에도 2006년까지 모든 당직 선거, 후보자 경선에서 거의 전패했다.[32] 이 방식은 후일 산업화나 밭갈기처럼 인터넷 커뮤니티를 장악하는 방법으로 자주 사용하게 된다. 기존 사용자들은 여기 아니더라도 활동할 곳은 많다며 자리를 뜨고, 운영자들은 밭갈기를 온 세력이 만든 트래픽에 꿀을 빨거나 극단적으론 운영자가 이들의 편을 들어서 장악이 끝난다. 그리고 장악이 끝나면 이를 잠시 동안 유지하면서 이름값을 끝까지 사용한 뒤 원래 활동하던 사이트로 돌아가고 하나의 사이트가 몰락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33] 진중권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1980년대 후반 서울대 PD계열의 이론가였던 이진경, 조국 교수와 함께 '주체사상비판'이란 책을 출판하면서 NL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과거가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들이 NL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게 반지성주의였다. 맹목적인 친북성, 조직보호의 명분하에 저지르는 각종 사건사고 등 NL계의 병폐가 대부분 반지성주의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분석했다. 진중권은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서 2000년대 초반 조독마(인터넷 조선일보 독자마당)에서 보수 네티즌들과 일당백을 하며 인터넷 키보드워리어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에 NL계가 민노당에 대거 입당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NL계 인사들하고 장기간 키배를 뜨기도 했다. 당시 진중권이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NL계를 계속 공격하자, 주변에서 진중권과 NL계 핵심인사들 간의 비공개 대화 자리를 주선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나온 NL계 간부가 "지금 수령님이 살아계시다면 무슨 일을 했을꺼 같소? 나라면 진보정당을 하셧을꺼 같은데."라는 발언을 하더라고 진중권이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런 놈들하고 무슨 일을 같이 하냐'면서. 결국 진중권은 이대로 가면 당은 NL의 위장막으로 전락하고 진보정당 운동은 실패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였다.[34] 민경우는 NL 내에서는 특정 분파에 치우치지 않는 비교적 중립적인 인물로, 이 때문에 수많은 NL계 단체가 참여한 범민련과 통일연대 사무처장을 오랜 기간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뉴라이트 계열로 전향하여 극단적인 친일반북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35] 당시 민경우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던 인물이 정의당의 청년 정치인으로 각광받았던 조성주(정치인)이다. 조성주도 학생 시절에는 NL계열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활동했으나, 이후에는 NL그룹과 거리를 두다가 개혁신당으로 이동한다.[36] 한 학교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예를 들 수 있다. H대는 옛날부터 NL계가 강한 곳이었는데, 2010년대 초반에 여러 민중민주주의 단체들과 정당 조직들이 여러 강연회, 세미나를 열면서 세를 불려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NL계가 중심인 H대의 총학생회는 강연자의 학교 초대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학생처가 강연을 불허하자 여기에 동조하는 등 다른 운동권 학생들을 억압하는 행위를 일삼았다. 강연회나 세미나를 취소시킨 이유는 그 연사들이 진보신당, 민주당(2013년), 진보정의당 등의 정치인들이어서 학생들이 접하기에는 너무 정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 H대 총학생회는 통합진보당의 여러 인사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고 당원가입서를 배부하는 등 이미 NL계 정치인들은 초대한 전례가 있었던 데다가, 심지어 일손이 부족해서 노동자연대나 진보정의당원들에게까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던 이후였는데도 말이다.[37] 진짜 개도국이나 후발주자 국가들도 자신들보다 훨씬 강대한 대한민국이 자신들과 같은 부류에 드는 것을 매우 꺼린다.[38] 이에 따라 일부 NL파는 21세기 한국의 사례를 '아제국주의'라고 설명하려 한다. 아제국주의는 분명히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사례이다. *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인도 제국은 분명히 대영제국의 식민지였고 인도 인민은 당연히 영국 시민보다 열등한 취급을 받았던 건 맞다. 하지만, 인도 제국은 엄연히 베르사유 조약의 체결국이자 국제연맹의 창립국이었으며 (이는 식민지 자격으로는 유일무이한 사례) 인도 제국군은 식민지군으로서의 동원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도의 전통적인 외교 전략과 부합하기도 하는 자의적 의지를 지니고 인도 근교의 파병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아니, 식민지의 독립이 시간 문제가 되어가는 2차대전 즈음 특히 남방 작전 이후에는 영국이 형식상으로는 동원령을 발동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도에 구원(문자 그대로 SOS) 요청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영국이 '더 이상 인도의 안보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게 현실로 증명되면서 인도의 반영 투쟁(Quit India. 인도를 떠나라)은 더욱 격화되었고 결국 영국은 전후 독립을 확약하고 나서야 인도군을 세계 각지로 파병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런 사례를 지켜본 식민지 조선의 친일파 지식인들도 일본 제국의 범주 내에서 아제국이 되자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으며, 현대 한국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중국 포위망에 자의적으로 가담함으로써 미국 체제 내에서의 아제국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 NL 일각에서는 일본도 일종의 식민지 아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미국이 오랫동안 전후 냉전 체제를 해체하려고 하는 일본 정치인 특히 총리나 외무상을 좌시하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매수(각복전쟁과 미키 내림), 내각 붕괴, 선거 패배 유도, 원인 불명의 질병 그리고 의문사, 심지어 (안보투쟁의 경우) 대중봉기까지 포섭(안보투쟁에 동조하는 극우파를 경유하는 CIA의 전학련 자금 지원)해서 미일관계를 단속해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일본도 미국의 체제에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플라자 합의 등 일본에게 치명타가 된 조치도 이런 관계의 결과물(미국의 결정적 요구를 거절하지 못함)이라는 것. 출처: 마고사키 우케루,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39] 다만 정의당도 기존의 노동운동 중심 정당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등 꽤 우클릭이 이루어진 상태긴 하다. 노동당은 반대로 상당히 좌경화해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되었다.[40] 현재 진보당이 이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노동당에서는 진보당의 노선을 사민주의로 규정하기도 했다. 물론 흔히 생각하는 제3의길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우파가 아닌 남미에서의 사회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써 그렇다는 것. 실제로 진보당의 노선의 방향성은 남미의 21세기 사회주의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평가받는다.[41] 그러나 아직 내부에 스탈린주의계열이 그래도 당내 좌파로서 어느 정도 남아있다. 온건파의 주장이 현 시점에선 올바른 행동으로 보고 지적을 안 하여 잘 안드러난다.[42] 이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 2025년 APEC에서의 트럼프 규탄시위[43] 민족주의적 자유주의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실제로 이런 이념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을 엄밀한 의미의 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오히려 좌익 내셔널리즘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실제로 신 페인처럼 좌파적 색채를 버리고 중도좌파 좌익 내셔널리즘 정당으로 변모한 경우도 있으며, 구 동구권의 좌파 정당들도 탈냉전을 거치며 공산주의를 버리고 사회민주주의 좌익 내셔널리즘 정당으로 온건화된 경우가 많다. 사실 이념 변천의 궤적만 보면 이런 경우와 훨씬 유사하다.[44] "남한의 정치 지형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찌 되었든 이는 우파로 전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사회자유주의를 염두에 두고 쓴 말인 듯한데, 그렇게 봐도 한국과 유사한 정치 체제를 가진 국가 중 이들을 범좌파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주체사상, 더 나아가 사회주의를 포기했을지 몰라도 좌파 색채와 지향성을 포기한 적 없다.[45] 가사 전문: 함성소리 들려온다 거센 파도와 같이 / 민중의 바다가 열렸다 통일이 밝았다 / 그 얼마나 목 메이게 불러왔던가 / 사랑스런 통일 조국이여 터질 듯한 심장이여 / 달려가자 전사여 연방 통일 조국으로 / 3대 헌장 정신 드높이자 범민련 전사여 // 범민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동지여 / 마지막 남은 핏방울까지 통일에 바치자 / 그 얼마나... (이하 동일)[46]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적이지만 확대되고 있다는 뜻이다.[47] 도종환 시인이 민주당 국회의원인 관계로, 우리나라 대표 멤버인 백자가 국회방송에 출연하여 도종환 시인의 시에 곡 붙인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48] 울산연합은 한국 노동운동의 근원인 울산에서 정규직 노조를 기반으로 성장한 그룹이고, 인천연합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말 인천 부평·계양 및 부천 등지의 공단지대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면서 출발하였다. 경기동부는 모든 NL조직들이 통일운동에 집중할 때 <노동자학생연대선봉대>라는 학생조직을 운영하면서 노동자연대투쟁에 참여하면서 세를 불렸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양극화 문제가 대두되자 일반노조 같은 비정규직 노조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렇듯 노동자계급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개량 주의 행보를 보이면서도 좌파적 색채가 남는 것이다.[49] 학생운동 내에서는 사람사랑, 노선대 등[50] 한의계 진료모임 길벗, 약대동아리 늘픔, 스무살의 자격, 에코로드, 사실 위의 진실 IMFACT, 인권더하기법률, 이공계 지식공동체 CUBE가 소속되어 있던 모임. 2011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자본주의 연구회'도 이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문화운동, 계열별 학술모임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하부 조직에서 비민주적인 운영방식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2000년대 들어 학생회 운동이 퇴조하자 다양한 관심사별로 그룹이 조직된다. 위의 연합 동아리들의 활동은 다양한 부분에 걸쳐있어 회원들 중에는 단순히 학술, 봉사목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단체 자체를 NL 조직으로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각 조직의 운영진이나 이들을 지도하는 선배 라인은 경기동부연합 계열 출신으로 통합진보당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길벗과 늘픔을 제외하면 2018년을 전후해서 사실상 활동이 없어지고 새로운 동아리들을 만들어가며 활동 중.[51]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일부 후보들은 NL단결(민권연대) 계열[52] NL강경파, 자주대오, 주사, 비선 등으로 불리기도 함. 다만 단결=비선은 아니고 비선이 단결의 일부에 가깝다.[53] 정당을 결성하기는 하지만 선거에 나가 당선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대외적인 간판을 거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이를 계급협조 또는 비판적 지지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자주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 남한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 운동이 불가능 하다고 보고 당은 자신들 단체의 대의를 내세우고 선전하는 용도로만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선거에서는 오랫동안 민주당 비판적 지지를 해왔다.[54] 2016년 이적단체로 지정된 후 2017년 자진해산[55] 서울대 애국학생연대(애학련)와 국민대, 명지대 등의 자주단결계열이 중심[56] 그동안 정의당 내 인천연합은 노유진의 정치카페 등을 듣고 자발적으로 가입한 리버럴-사민주의 당원들이나 지속적으로 대학생위원회나 생활도서관과 같은 진보성향의 동아리, 전국학생행진 내 인맥을 통해 세력을 포섭해왔던 PD들과는 달리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 이후 후배 조직원들을 포섭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정미 의원 이후로 공식적인 인천연합 계열의 정치인을 길러내지 못해 쇠퇴하다가 권중도 서울시 청년학생위원장의 주도로 2016년 초부터 진행된 청년둥지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꿈꾸는 고래라고 하는 정의당 외곽조직이 되었다. 이들은 전국 대학생 진보동아리연합을 표방하며 이후엔 정의당 색을 버리고 완전한 대학생 조직으로 바뀌었다.[57] 이인영, 우상호, 김부겸, 이종걸, 임종석, 정청래, 김민석, 박선원, 윤호중, 박홍근, 김태년, 정의찬, 강위원, 민형배, 최혁진, 양부남 등.[58] 범민련의 뒤를 잇는 원로들의 단체[59] 그러나 이들이 암암리에 진보정당에 시민사회단체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시각 또한 만만치 않다.[60] 경기동부연합 핵심 인사인 정형주, 박우형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에 실었는데, 둘에게는 NL을 비판하는 책을 쓸 목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남시 시사(市史)를 쓸 목적으로 인터뷰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당연하지만 인터뷰 목적을 거짓으로 속이는 것은 작가나 기자가 해서는 안 될 가장 심각한 수준의 취재 윤리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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