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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6-06 12:01:45

민중

파일:구한말 민중.jpg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구한말 시골 여성들의 모습
1. 개요2. 상세3. 비판4. 관련 문서

1. 개요

민중() 「명사」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이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민중이 힘을 포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자신들이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The most common way people give up their power is by thinking they don't have any.
앨리스 워커

'많은 사람들', '일반인으로 구성된 대중'을 뜻하는 단어.

2. 상세

백성 민()과 무리 중()으로 구성된 한자어. 한자 그대로 뜻풀이하면 백성의 무리, 즉 국가와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일반 대중을 일컫는다. 한 마디로 평범한 일반인들.

원래 '다수 대중'을 뜻하는 평범한 용어였지만 1980년 전두환 육군 소장이 이끄는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뒤로 자본가와 정치 권력자 등 특권층을 제외한, 이들과 대비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국어사전에도 "주로 피지배계층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사실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로 '인민'이 있으나, 이 단어가 북한중국 그리고 구 소련사회주의-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에게 선점(?)당하다시피 할 정도로 이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며 본의 아니게 이념적 용어처럼 굳어져버린 탓에 대한민국에서는 금기시되었다. 이에 따라 인민을 대체하는 용어로 '민중'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에서 널리 사용되어왔다. 예를 들면 "자본가와 특권 계층에 압제받는 노동자 민중" 같은 느낌. 일각에서는 '민중'을 '인민 대중'의 결합어 또는 축약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정치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조어라서 한국어의 고유한 개념명사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며 영어 위키백과에도 Minjung이라는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민중을 'minjung'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류인데, 대개 민중은 'people'로 전부 통용 가능하며 뉘앙스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people'을 의도적으로 '민중'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민중 개념의 용례가 확장되기도 전인 20세기 초 인물들이 가끔 '민중'을 언급하는 요상한 번역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인민'의 사용이 한국보다는 제한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민중'이라는 개념을 더 폭넓게 사용하며, 한국 정치사에서 의미가 있는 용어임은 분명하다. 일본에서는 좌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개념이며, 대중적이지는 않다.

3. 비판

과연 민중이라는 대상은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는가? 와 민중은 무조건 지지해야 하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인가? 라는 비판이 있다.

일단 첫 번째 비판은 "과연 민중이라는 대상은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는가?" 인데 1의 의미를 따르자면 자본가나 특권계층을 모두 포함한 의미가 된다. 그러나 2의 의미는 자본가와 특권계층을 제외한 의미이다. "민중은 무조건 지지해야 하고 보호해야 하는가?" 라는 것인데,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의 말을 따르면 "민중은 도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옹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라고 말하였다. 즉, 민중은 그 자체로 선하다고 볼 수 없는 존재이다. 저 말대로 실제로 그래야 하는지는 개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는 이런식으로 '민중의 절대 선역화'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민중 역시 잘못된 길로 갈 소지가 얼마든지 있으며 이는 자칫하면 자유민주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극단적인 집단주의나 중우정치로 갈 수 있다는 비판의 소지가 많다. 애초에 포퓰리즘이 그런 예이다. 민중 역시 잘못된 길로 나갈 때 그것을 제어할 수단이 필요하는 것. '민중' 개념을 넘어서려는, 혹은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으로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 개념이나 포스트식민주의의 '서발턴' 개념 등이 있다. '민중' 용어도 학자나 저서에 따라 맥락적 어의가 달라지기도 한다. '민중' 개념이 한국적 개념어라는 점, 넓게 확장해도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한다는 점은 역으로 '민중'을 사회과학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외국이라면 'people'이라고 하면 설명되는 개념을 왜 '인민'이 아니라 '민중'이라고 정의해야 하는지 타당한 설명이 있어야 하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한 반론이 없는데, 북한 때문에 '인민'이란 개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민중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 묻는 의견도 있다. 민중이란 처음부터 이 한 단어를 통해 묶인 불특정 다수로, 혹자는 이를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여기기도 하나 그 실체는 각각의 사정과 생활을 가진 여러 개인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관점에서 민중이라는 단어가 개인의 특수성이나 다양성을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진보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착취당하고 피해받는 다수'의 이미지로 고정시킨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한국의 운동권에서 민중을 신성시하는데 반하여, 사실 칼 마르크스도 농민을 쁘띠 부르주아라고 부정적으로 보았고, 사회 최하층인 룸펜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한국의 운동권이 민중 문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유교 민본주의와 무속신앙과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가깝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전쟁과 기근의 불안정성에 대한 희생자로서, 농민의 출구는 마술 또는 미신에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것이나마 농민의 삶에서 분별해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주 비관용적이었고, 때로 무시무시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의미심장한 징후는 한나라 시기의 농민반란의 출현이었는데, 이는 중국 역사의 주요 주제가 된 현상으로서, 왕조가 지나가는 과정에서 거의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 농민들은 중국 역사에서 또 하나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인 비밀결사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반란은 대개 종교적인 형식을 취했다. 천년왕국주의, 마니교도적 계통이 중국 혁명을 관통하여 흘러왔는데, 이는 수많은 모습으로 표출되기는 했지만 항상 선과 악, 의로움과 사악함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가끔 이는 해당 사회조직을 위협하기도 했지만, 농민들이 오랫동안 성공적이었던 경우는 드물었다.
J.M 로버츠, O.A.베스타, 『세계사 1』, 591p
한국인들은 자신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어떠한 경우든 다른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기를 거절하지 않으며, 오막살이에 자신의 가족을 먹일 만큼의 식량밖에 안 남은 경우가 아닌 한 지나가는 행인에 대한 식사 제공을 회피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한국인의 의지는 천성적인 것이다. 일례로 식사시간이 되면 노동자들은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자기들의 소박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기를 청한다. 한국인들은 손님에 대한 환대를 가장 숭고한 의무로 여기며, 모두가 이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식사시간에 집에 들어오는 사람을 거절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불청객일지라도 들어와서 함께 식사하기를 즉시 청한다. 부유한 사람들이 일종의 가족 기념일에 연회를 베풀고는, 이웃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든 행위를 받아들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와 같이 손님을 환대하는 관습 덕분에 주머니에 동전 한 푼 가지지 않은 채 먼 거리를 여행하고는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고 밤에는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할 누군가를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기에 날씨가 나쁠 경우에 그와 같은 불청객들이 손님을 환대하는 집에서 이틀, 사흘 혹은 일주야 이상을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주인의 완벽한 부양을 받으면서 말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매우 일상적인 현상으로,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모든 관습은 격려와 칭송을 받는 일이기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관습은 나태와 구걸을 극단적으로 확산시키기도 한다. 사회적인 도움과 자선을 염두에 둔 많은 건달뱅이와 무뢰배들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떠돌아다니며 모든 곳에서 친절한 시민들로부터 동냥을 받아가면서 한 해 내내 무위도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이 행인들이 자신들에 대한 험담을 퍼뜨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의복과 신발 등을 제공하는 것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행상인, 광대, 주술사 등은 한국인들의 광범위한 천성인 손님을 환대하는 관습을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악용하는 부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정한 재난은 걸인들로부터 발생한다. 한국에는 걸인의 숫자가 대단히 많다. 수도에는 여자 걸인들의 조합이 존재하는데, 그녀들은 가까운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하여 도시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놓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악랄한 성격과 집요함을 이용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이 끔찍한 기생충들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않는 한 그녀들에게 금픔을 희사하는 행위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심이 들도록 하고 있다.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포지오, 『러시아 외교관이 바라본 근대 한국』, 291~293p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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