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3-30 15:19:15

인민

1. 개요2. 유래3. 용례
3.1. 본 의미3.2. 대한민국의 경우3.3. 오해3.4. 특수한 용법
4. 유사한 처지의 단어

1. 개요

국가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2. 유래

원래는 한문에서 쓰인 말이며, 한반도에서도 고대부터 백성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외국어 단어들이 한자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서구의 'people'이라는 개념을 '人民'으로 번역하면서 학문적인 의미가 덧씌워진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근대의 한국에서 이 단어는 민주주의의 권리주체로 사회계약으로서 건설된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국민'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다. '인민'은 결속감을 논외로 한 자연인의 집단을 의미하는 말이다.

북한에서 '국민' 대신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단어라는 인식이 퍼져 있기도 한데, 이러한 인식은 어제오늘이 아니라 1940년대부터 있었기 때문에 제헌 헌법에 쓰인 '인민'이라는 용어에 이의가 제기되어 '국민'으로 고쳐지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에서 동무와 함께 간첩으로 오해받기 좋은 단어이다.

3. 용례

한자의 뜻은 알다시피 사람+백성이다. 서양에 있는 개념을 동양식으로 번역하기 위해 채택한 것일 뿐이라 한자 뜻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용례가 중요한 단어다.

인민 자체는 멀리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신라 진흥왕서울 북한산 순수비에도 나올 만큼 오래 전부터 사용한 표현으로, 백성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1763년에 쓰인 일동장유가에도 표현이 등장하며, 구한말 조영수호통상조약(朝英修好通商條約, 1883)[1]홍범 14조에서도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홍길동전 영인본에서도 등장하며, 심지어 개신교의 개역성경에서도 등장한다.[2]

'인민'은 그 어떠한 정치적, 국적상의 구분 없이 상호 간에 위계 없는 자연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때문에 인문학, 사회과학, 무엇보다 특히 정치학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구별하는 경우, 자연인의 뉘앙스를 강조할 때는 국민이나 시민보다는 인민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3.1. 본 의미

본래 고대에 사람 인(人)과 백성 민(民)은 별개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본래 중국에서 인()은 성 안에 살던 사람(즉, 부르주아), 민()은 성 밖에 살던 야인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인은 최소한의 사회적인 지위(사(士) 계급 이상)를 가진 자[3], 민(民)은 순전히 다스림을 받는 자, 민초를 가리키게 된다. 이라는 글자부터가 눈을 강제로 멀게 하여 노예로 만든 성 밖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이 구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유교 윤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비유인 "군자"와 "소인"이다.[4]

논어에도 "애인(愛人)"과 사민(使民)"과 같은 식으로 인과 민을 다른 집단으로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조기빈의 분석이 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조기빈의 이런 이론은 지나치게 '마르크스주의'에 가깝다고 해서 까인다. 애초에 조기빈의 저서인 논어신탐에서 이 얘기가 나온 게 '공자는 인과 민을 차별한 고대 노예제 옹호자.'라고 까기 위한 거라,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해당 구절에서 '애인'은 '절용(節用)'과 짝지어져 있다는 점, 전통적으로 '인'의 해석에서 '인'을 '민'과 동일한 '담세 계층'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미 동일한 의미로 보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듯 '인민'은 보통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는 단순한 단어다. 정확히 말하면 \'인민'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고, \'국민'은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국적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더 특수한 개념이다. 예컨대 국가가 존재하기 전의\ 원시적 사회의 사람들의 집단은 '인민'으로 부를 수는 있으나 '국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현대에도 국가를 초월한 사람들의 집단은 '국민'으로는 일컬을 수 없지만 '인민'으로 부를 수는 있다.

3.2. 대한민국의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공산주의 세력이 주로 애용한다며 '국민'으로 바꿔 불렀고 공산권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면서 인민이란 단어가 더욱 기피됨에 따라 people으로서의 의미가 사장되었다.

사실 유진오 고려대학교 교수는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제정 당시 '인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윤치영 의원과 같은 반공주의 세력들의 반발로 인해 '국민'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제헌헌법 초안에서는 '국민' 대신은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윤 의원이 '인민'이라는 단어가 공산주의에서 사용하는 단어라 껄끄럽다고 주장해 싸그리 '국민'으로 바뀌었다. 조봉암 의원은 세계 각국에서 쓰는 보편적인 개념을 단지 공산당사용한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것은 고루한 편견이라며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제헌헌법 초안을 기초했을 때 '인민'을 고집했던 유진오 교수도 이를 아쉬워했다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인민주권'이라는 말을 '실질적 국민주권'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 헌법학계에서는 인민주권론과 국민주권론을 대비시키고 국민주권론의 손을 들어 주는 의견이 대부분이며, 시중 헌법 교과서도 거의 빠짐없이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5] 국민주권은 자유주의, 인민주권은 공산주의로 착각하는 사람도 일부 있는데 인민주권(droit des peuples, 원어인 프랑스어)은 루소가 주장한 직접민주주의, 국민주권(nation, 주권)은 시예스가 주장한 대의제에서 주로 나오는 용어로 공산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다. 다만 전공학문에서는 얄짤없다.

people을 인민 외에 다른 단어로 번역하려면 이유를 해설하는 각주를 달아줘야 할 정도로 '인민'은 '국민'과 뜻이 확연히 다르다. 사회과학에서 용어의 중요성, 나아가 용어규정 자체에 담긴 정치성을 생각해 보면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를 대체하겠다던 사회과목 교과서 파동이 왜 논란이 되고 각 세력별로 첨예한 갈등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대립 상태가 시작하면서 사회주의자가 그 이념 특성상 인민의 혁명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6.25 전쟁까지 겹치면서 한국에서 인민의 인식은 완전히 '그 쪽 언어'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꺼내오는 미국의 헌법에 표기된 people도 쓰임새 등을 보면 한국의 번역명인 국민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온것인데, 이쯤 되면 국민이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것은 담지 않았나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지경이다. 근데 언어라는 것이 각각 환경과 인종, 문화, 역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절대적으로 딱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게 문제이기도 하다.[6]

아예 '인민'이란 단어가 더 학문적으로 적절한 경우에도 이념 때문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7]

아무튼 이러한 복잡한 사정이 얽힌 관계로 한국에서는 인민 보다는 민중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민중민주당, 민중당 등.

3.3. 오해

중국과 북한에서도 이 말을 쓰기 때문에[8] '인민'은 공산주의말로, '국민'은 민주주의말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영어에서도 'people's democracy'라는 말을 공산주의에서 선점해 버린 바람에 영어 위키백과에서 저 단어를 검색하면, 사상으로서의 'people's democracy'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상으로 설명된다.

번역된 시기를 보아도 일본에서 'people'을 '人民'으로 번역하던 근대는 현실 공산주의 국가가 전혀 없는 시대였다. 대한제국 역시 '인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고, 초기 대한뉴스에서도 아나운서가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골수 반공주의자였던 장제스김구도 '人民'이라는 단어는 잘만 썼고, 반공국가인 남베트남에서도 국민을 인민이라고 잘만 불렀다. 따라서 이 사람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공산주의 색채가 없는 표현이었으며 오히려 1950년대 이후 반공주의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왜곡된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으로 보는 게 옳다.

대만에서도 '人民'이라는 용어를 잘만 사용한다. 가령 중국 대륙과의 교류에 관한 법률인 '양안인민관계조례(兩岸人民關系條例)' 등등.

3.4. 특수한 용법

현재는 역사 칼럼 등에서 대체로 공산주의 국가들의 국민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자주 쓴다. 예를 들면 냉전 시대에 독일도 서독 국민, 동독 인민 등으로 표기하고 소련 인민, 폴란드 인민, 쿠바 인민 등으로 표현했으며 중국이나 베트남의 국민들도 인민으로 칭하는 경우가 있다.

극히 예외적으로 대화의 상대자가 공산국가 국민인 경우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써 줄 수 있다. 아니면 북한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그냥 인민이라고 하는 경우, 패러디에 가까운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패러디라면 보통 북한이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풍자해서 린민으로 써주는 편.[9]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이들의 사용례를 들어보자.
학생: 그쪽 인민들은 잘 지내나요?
선생님: 하도 쫄쫄 굶어서 인민들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10]

4. 유사한 처지의 단어

4.1. 노동자

한반도에서 비슷한 일을 당한 단어로는 노동자가 있다. 남한에서는 노동자보다는 근로자(勤勞者)라는 표현을 강조 해왔다. 다만 노동자는 인민과도 약간 다르다. 노동자는 북한에서 강조하기 이전부터, 일제강점기부터 계급적 뉘앙스가 강하다며 우익 진영에서 기피해 왔기 때문이다.[11] 물론 북한에선 이런 기피 현상이 없었으니 '로동자(두음법칙 부정)'라는 표현을 좀 더 자주 쓰는 것은 맞다. '근로자'라는 표현은 박정희 정권 등을 거치면서 의도적으로 계속 강조되었다. 그래도 '인민'과는 달리 '노동', '노동자'는 남한에서 금기시됐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다. 고용노동부에서 보듯 노동이라는 말은 남한의 정부 부처에서도 쓰일 정도니까.[12]

학문적 차원에서는 노동이라는 단어는 전혀 문제없이 통용되고 있다. 노동법도 노동이라는 표현을 쓰고, 노동경제학은 가장 자유지상주의에 가까운 세계관을 갖춘 주류경제학이라는 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경제학이다. 생산요소로서의 노동(labor)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근로3권이나 근로기준법처럼 법적으로 용어가 고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히려 근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색한 상황이다.

노동법상에서는 두 가지 용어를 애매하게 섞어서 사용한다. 직접적으로 근로기준법상에는 노동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며 근로자라는 말만 나온다. 다만 집단적 노사관계법에서는 노동조합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식이다. 그래서 공식매체나 정부, 기업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기념하지만 노동단체에서는 '노동절'을 기념한다.

북한에서도 '근로'라는 말은 자주 쓴다. 근로의 정신, 근로인민, 근로자의 날 등. 심지어 조선로동당의 공식 기관 잡지의 이름이 근로자이다.[13] 북한 애국가에서도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라는 표현이 있다.

4.2. 동무동지

동무는 순우리말이며 동지는 서양의 Comrade 개념을 번역한 것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북한에서의 용례는 크게 다르다. 동무는 계급이나 지위가 같거나 낮은 사람에게만 쓰이며 동지는 계급이 높은 사람을 지칭한다. 즉, 수령동무는 틀린 표현인 정도가 아니라 자칫 잘못 쓰면 아오지로 끌려갈 수 있는 위험한 말이며 수령동지가 올바른 표현이다. 이 동지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남성 노인에게는 '아바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더 높여 부르면 수령아바이라고도 한다.

4.3. 주석

PresidentChairman의 역어로 사용됐던 주석(主席)도 이러한 레드 컴플렉스로 인해 사용이 제한됐다.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임정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이 단어는 좌·우 무관히 국가조직의 최고 책임자를 지칭하던 용어였는데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한국에서는 공산권, 특히 북한,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공산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됐다.[14]

[1] 해당 조약은 체결 과정에서 중국이 가져다 준 초안의 '상민'(商民) 대신 조선의 주장을 통해 '인민'으로 단어가 변경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출처: 세계외교사 (김용구, 박문사, 2006) pp. 485)[2] 창세기 14:16, 사무엘하 15:23, 역대하 17:9, 에스더 1:5. 그러나 1998년 발행된 개역개정판에서는 모두 다른 단어로 대체되었다.[3] 사실 훗날 "민"에 해당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게 되는 백성(百姓, 백가지 성)이라는 표현도 이 인과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사(士)계급 정도는 되어야 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4] '대인'의 상대어가 '소인'인 건 맞지만, '사' 그러니까 '봉토를 받을 수 있는 상류 계층'이라는 의미에서 '군자'를 소인의 상대어로 보는 것이 조금 더 맞다. 애초에 군자가 토지를 가진 사람, 곧 '군'의 아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대인이 소인의 상대어가 되면, 뉘앙스가 조금 달라지는데 '토지 분급대상'으로서의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그러니까 균전제 같은 제도에서 몇살 이상이 되면 경작할 토지 얼마를 분급받는다-라는 규정 같은 것이 적용되는 구분인 셈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다.[5]인하대 교수인 국순옥과 방송대 법학과 교수들, 민주법연 소속의 학자들 정도가 다른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관심있는 사람은 국순옥의 '민주주의 헌법론' 참조. 교과서는 아니고 논문집이다.[6] 후술하겠지만, people과 '인민'이라는 단어의 관계도 1대1로 대응되는 관계가 아니라 더 복잡해진다.[7] 단, 그렇다고 '국민'이라는 단어가 전체주의적 단어라는 것은 지나치게 매도하는 것이다. '국민'의 '국(國)'과 '민(民)'을 복속관계로 파악하여 국가가 민을 복종시키는 뉘앙스가 있다고 말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으나, "a community of people composed of one or more nationalities"라는 영어사전(Merriam-Webster)의 설명이나,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 실제 학자들의 용례들을 본다고 하면 '국민'은 어디까지나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오히려 국가의 본질이 '구성하는 민(民)'에 있음을 강조하는 용어이다.[8] 국명부터가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며 '인민'이라는 표현이 비교적 자주 사용되는 편이다.[9] 다만 사람 인(人)은 원래 한자음 자체가 '인'이기 때문에 두음법칙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일종의 과도교정인 셈이다..[10] 근데 사실 금강산 관광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현대아산에서 고용한 조선족이 절대다수고, 금강산 여행의 특성상 여행객이 굶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그 정도로 개방된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면 북한 기준으로는 나름 중산층이다.[11] 인민에는 구분의 개념이 없지만,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서로 구분되는 개념인데 이러한 계급적 구분이 인식되는 것을 우파는 위험하게 생각해 왔다.[12] 단, 고용노동부라는 명칭도 '노동'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희석시키기 위해 일부러 '고용'을 붙인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13] 로동신문의 자매지 역할을 수행한다.[14] 다만 프랑스 임시정부의 국가원수는 주석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