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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10:47:30

정무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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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수석비서관 (1968~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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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205c> 정무수석비서관
政務首席祕書官
Senior Secretary for Political Affairs
파일:2016092026439366.jpg
현직 홍철호
취임일 2024년 4월 22일

[clearfix]

1. 개요

정무수석비서관(政務首席祕書官, 약칭 정무수석). 대통령비서실수석비서관 중 하나로 정무수석비서관실의 장이다. 현재 최선임 수석비서관이다.[1]

2. 상세

대통령을 보좌하여 행정부입법부 간 업무 및 대(對)국회 관계를 총괄적으로 조율한다. 주로 여야의 원내대표와 교섭하고 정치권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한다. 이외에도 '정무'(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담당하는 만큼 업무 영역이 사실상 거의 모든 국정에 걸친다. 여론 파악 등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데에도 정무수석의 보고가 결정적이다. 대통령의 뜻을 잘 헤아리는 복심들이 가는 자리라는 인식이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지역 숙원사업 등을 들어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여의도 민원수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통령의 국정 현안 추진을 원활히 만들기 위해 의원들에게 어떤 당근을 제시할 것인지를 기획하는 자리인지라, 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의원들을 상대로 협상을 하는 만큼 의원직 경험이 있는 인물 중 어느정도 중량감이 있는 인물(주로 재선[2])들이 주로 맡아왔다. 예산과 법률안에 대해 국회에서 대통령 또는 행정부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반대파 인사들과 협상하는 일이 주 업무인 만큼, 주로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일 때는 김대중 정권의 문희상, 노무현 정권의 유인태, 문재인 정권의 전병헌처럼 야당 정치인과도 두루두루 친분을 유지하는 중도파 인사가 정무수석을 맡는다. 반대로 국회가 여대야소 국면[3]일 때는 이명박 정권 당시 온건파 친박 인사였던 정진석이나 문재인 정권 당시 김한길의 보좌관 출신이었던 비주류 이철희가 임명[4]되었던 것처럼 여당 내 소수파, 비주류 인사에게 이 자리를 맡기기도 한다.

국회와의 소통은 어느 정부에서나 필요한 만큼, 다른 수석비서관 자리와 달리 정권 교체 때마다 없어지지 않고 박정희 정부 때 설치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 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어떤 정권이든 이름이나 권한에 약간에 변화만 있을 뿐 자리가 통째로 사라지지는 않는 자리이다. 극히 이례적으로 참여정부에서 "정치권에 대통령이 간섭하지 않고 필요한 접촉은 각 장관에게 맡기겠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로 2003년 새천년민주당 - 열린우리당 분당 시에 잠시 공석으로 비워둔 적은 있지만 아예 폐지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국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대참패 - 한나라당이 압승하면서 야당과의 접점이 필요했기에, 정무수석 자리를 다시 채워서(민정수석이 겸임) 운영하였다.

박근혜 정부조윤선 전 수석이 최초의 여성 정무수석이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을 얻기도 했으나, 현재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첫 정무수석인 전병헌도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기준으로 밑에 정무비서관, 자치발전비서관을 두고 있다.[5] 정무수석은 비서실장 산하 수석비서관 중 최선임으로 비서실장이 자리를 비우면 비서실장의 직무를 대행하였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의 신설 이후 최선임 수석비서관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2023년 11월 30일, 국정기획수석직이 폐지되고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부활시키면서 최선임 수석비서관 자리를 되찾았다.

여담으로 국회와 지방자치단체에도 정무수석직이 있다. 역할은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그것과 비슷하다.

3. 조직

4. 역대 정무수석

4.1. 박정희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조시형 (趙始衡) 1968년 3월 21일 ~ 1969년 2월 17일
임시 김학렬 (金鶴烈) 1969년 3월 11일 ~ 1969년 4월 12일
2대 김상복 (金相福) 1969년 4월 12일 ~ 1971년 7월 9일
3대 홍성철 (洪性澈) 1971년 7월 9일 ~ 1973년 12월 3일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류혁인 (柳赫仁) 1973년 12월 8일 ~ 1979년 12월 18일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정상천 (鄭相千) 1973년 12월 8일 ~ 1978년 12월 22일
2대 고건 (高建) 1979년 1월 10일 ~ 1979년 12월 18일

4.2. 전두환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우병규 (禹炳奎) 1980년 9월 3일 ~ 1981년 12월 22일
2대 허화평 (許和平) 1981년 12월 24일 ~ 1982년 12월 20일
3대 정순덕 (鄭順德) 1982년 12월 20일 ~ 1984년 10월 19일
4대 허문도 (許文道) 1984년 10월 20일 ~ 1986년 8월 27일
5대 김윤환 (金潤煥) 1986년 8월 29일 ~ 1987년 7월 20일
6대 이진우 (李珍雨) 1987년 7월 20일 ~ 1988년 2월 24일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김창식 (金昶植) 1980년 9월 3일 ~ 1982년 1월 5일
2대 김태호 (金泰鎬) 1982년 1월 7일 ~ 1983년 10월 14일
3대 안응모 (安應模) 1983년 10월 14일 ~ 1984년 3월 28일
4대 유흥수(柳興洙) 1984년 3월 28일 ~ 1984년 10월 19일
5대 김용래 (金庸來) 1984년 10월 20일 ~ 1986년 1월 9일
6대 강우혁 (康祐赫) 1986년 1월 9일 ~ 1988년 2월 24일

국회 소통 업무뿐만 아니라 정무1수석은 외교·군사, 정무2수석 일반행정 업무도 담당해 그 권한을 강화했다.

4.3. 노태우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최병렬 (崔秉烈)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5일
2대 최창윤 (崔昌潤)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7일
3대 손주환 (孫柱煥) 1990년 12월 27일 ~ 1992년 5월 6일
4대 김중권 (金重權) 1992년 5월 6일 ~ 1993년 2월 24일

4.4. 문민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주돈식 (朱燉植) 1993년 2월 25일 ~ 1993년 12월 22일
2대 이원종 (李源宗) 1993년 12월 22일 ~ 1997년 2월 28일
3대 강인섭 (姜仁燮) 1997년 2월 28일 ~ 1997년 7월 11일
4대 조홍래 (趙洪來) 1997년 7월 11일 ~ 1998년 2월 24일

4.5. 국민의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문희상 (文喜相) 1998년 2월 25일 ~ 1998년 5월 18일
2대 이강래 (李康來) 1998년 5월 18일 ~ 1999년 2월 5일
3대 김정길 (金正吉) 1999년 2월 5일 ~ 1999년 11월 23일
4대 남궁진 (南宮鎭) 1999년 11월 23일 ~ 2001년 9월 11일
5대 유선호 (柳宣浩) 2001년 9월 11일 ~ 2002년 1월 29일
6대 조순용 (趙淳容) 2002년 1월 29일 ~ 2003년 2월 24일

당초 김대중 대통령은 "정무수석은 군사정권의 유산이고, 선진국에는 없는 기형적 조직이다"라는 측근 장성민의 주장에 동감해 정무수석을 폐지하려 했으나,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김중권 비서실장의 완곡한 설득으로 존치시켰다고 한다.

4.6. 참여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유인태 (柳寅泰) 2003년 2월 25일 ~ 2004년 2월 13일

정무수석이라는 자리가 대통령의 복심으로 정당과 청와대의 사이에서 사실상 정당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지적이 일자, 국회의 도움을 요구하는 정무 업무는 각 부서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공석으로 뒀다.[6]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말하기를 노 전 대통령은 비서실 내에 굳이 정무 업무를 따로 둬야 하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국회의 도움 요청은 알아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무수석 출신의 박형준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맡기도 했던 만큼 정무 업무는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발끈했다.[7]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안드로메다 관광 보낸 이후에는 민정수석이 정무수석의 직무를 겸무하는 식으로 이게 부활을 했다.[8] 한나라당과의 협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7. 이명박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박재완 (朴宰完) 2008년 3월 1일 ~ 2008년 6월 20일
2대 맹형규 (孟亨奎) 2008년 6월 23일 ~ 2009년 9월 1일
3대 박형준 (朴亨埈) 2009년 9월 1일 ~ 2010년 7월 16일
4대 정진석 (鄭鎭碩) 2010년 7월 16일 ~ 2011년 6월 10일
5대 김효재 (金孝在) 2011년 6월 10일 ~ 2012년 2월 10일
6대 이달곤 (李達坤) 2012년 2월 15일 ~ 2013년 2월 24일

초대 정무수석인 박재완부터 마지막 정무수석인 이달곤까지 모두 전현직 국회의원[9]들이 임명된 것이 특징이다. 정무수석이 주로 여야 간의 관계 조율 등을 맡은 것을 생각하면 나름 취지에 맞는 인선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만 막상 여야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4.8. 박근혜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이정현 (李貞鉉) 2013년 3월 25일 ~ 2013년 6월 3일
2대 박준우 (朴晙雨) 2013년 8월 5일 ~ 2014년 6월 11일
3대 조윤선 (趙允旋) 2014년 6월 12일 ~ 2015년 5월 18일
4대 현기환 (玄伎煥) 2015년 7월 10일 ~ 2016년 6월 7일
5대 김재원 (金在原) 2016년 6월 8일 ~ 2016년 10월 30일
6대 허원제 (許元齊) 2016년 11월 3일 ~ 2017년 4월 3일

'박근혜 = 불통' 이라는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인식될 정도로 소통 능력이 안 좋은 대통령을 모신 탓인지 국민들에게나 국회에게나 썩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 중에서 이정현 수석[10]의 경우에는 고향 곡성에서 2014년 재보궐선거, 그 옆동네인 순천에서 20대 총선까지 내리 재선을 하고 당대표가 되었으나 탄핵 사태의 책임을 지고 탈당, 정치적 유배 생활을 했고 윤정부 출범 직전인 5년 후에야 복당할 수 있었다.[11] 조윤선, 현기환 전 수석은 재판을 받는 등 말년이 영 좋지 못했다. 김재원 전 수석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 때문에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나마 언론인 출신인 허원제 前 수석은 탄핵 정국 이후에 부임해서 그런지 존재감이 없는 편.

4.9. 문재인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전병헌 (田炳憲) 2017년 5월 14일 ~ 2017년 11월 16일
2대 한병도 (韓秉道) 2017년 11월 28일 ~ 2019년 1월 8일
3대 강기정 (姜琪正) 2019년 1월 8일 ~ 2020년 8월 11일
4대 최재성 (崔宰誠) 2020년 8월 11일 ~ 2021년 4월 15일
5대 이철희 (李哲熙) 2021년 4월 16일 ~ 2022년 5월 9일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안 하나 통과 시킬 수 없는 만큼 정무 업무의 중요도 커 3선에 원내대표까지 역임했던 중량감 있는 전병헌 전 의원을 임명 했지만, 롯데홈쇼핑에게 e스포츠협회 후원금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사임했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시민당이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정무수석의 역할이 임기 초에 비해 다소 낮아졌었으나 4선의 중진인 최재성 전 의원이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보통 정무수석 자리는 재선이 주로 임명되는 자리였기 때문. 이후 2021년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를 해서 레임덕 관리도 해야하고 야당과 협치도 필수가 되면서 당-청을 조율하는 정무수석비서관이 중요한 자리로 급부상됐고 정부에서는 친문 색채가 옅은 이철희를 임명하였다.

4.10. 윤석열 정부

<rowcolor=#fff> 대수 이름 임기
초대 이진복 (李珍福) 2022년 5월 10일 ~ 2023년 12월 3일
2대 한오섭 (韓吳燮) 2023년 12월 4일 ~ 2024년 4월 22일
3대 홍철호 (洪哲鎬) 2024년 4월 22일 ~ 현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신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으로 민선3기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동래구 지역구 국회의원(3선), 국회 정무위원장을 지낸 이진복 전 의원을 내정했다. 이진복 의원은 친무계의 핵심 인물로 뽑히며[12], 총리실 및 총리 직속기구를 관할하는 정무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만큼 적임자라는 하마평이 있다. 그와 호흡을 맞출 정무비서관은 SBS 앵커와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지만, 자치행정비서관은 서승우 충청북도 행정부지사가 임명되었다.

5. 창작물에서의 등장


[1]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존재하였을 때는 국정기획수석에게 최선임 수석비서관 자리를 내주었었다.[2] 대통령실과 여당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원만하고, 당대표가 다선에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이해찬이나 이낙연처럼 원로급 인사인 경우 격을 맞추기 위해 최재성이나 강기정처럼 3선 이상의 전직 의원이 임명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차기 대권주자나 거물급 인사가 당을 맡는 경우 당정관계 역시 행정부의 요구사항을 실행하는 역할만 맡는 수직적 형태 대신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수평적 형태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의 정무수석 업무는 정치 입문자 꼬리표를 갓 떼어낸 것으로 여겨지는 재선 의원 수준(이들은 보통 당에서는 실무 책임자인 원내수석부대표나 사무부총장을 맡는다.)에서 수행하기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최재성과 강기정은 각각 3선 의원 시절 당에서 사무총장과 정책위원장 직을 수행하며 당무를 총괄한 경험이 있기에, 재선급 전직 의원에 비해 보다 폭넓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고 여겨진 것이다.[3] 이면서도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나 4.7 재보선 패배 이후처럼 정권이 위기를 맞아 국면 전환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일 때가 특히 그렇다. 여대야소면서 대통령실의 정국 장악력이 문제가 없을 때는 박형준이나 최재성과 같은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정무수석을 맡는 경우가 많다.[4] 정무수석비서관 역임 이후에는 청와대 핵심 보직을 맡은 만큼 친문 인사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철희를 비주류 인사로 분류하는 시각이 더 많았다.[5] 2019년 9월 기준. 직위가 자주 변경될 수 있으니 청와대 홈페이지의 조직도를 참고하기 바란다.[6] 때마침 유인태 수석도 17대 총선 도봉구 을 출마로 방향을 굳히면서 문제는 없었다.[7] 결과적으로는 참여정부가 중반부터는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면서 그 정무업무가 단순한 일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8] 민정수석 중에서 전해철, 이호철 수석이 정무수석을 겸무한 인물이다.[9] 박재완: 17대 의원, 맹형규: 15~17대 의원, 박형준: 17대 의원, 정진석: 16~18대 의원, 김효재: 18대 의원, 이달곤: 18대 의원[10] 다만 이정현은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서 책임을 지고 윤창중의 상급자인 이남기 홍보수석이 사임하면서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임기간도 짧은 편.[11] 탄핵 사태의 똥물을 제대로 뒤집어썼고 논란도 적지 않았던 것과는 별개로 지역구 관리 능력은 상당히 탁월했던 덕에, 정치 기반인 순천곡성에서는 여전히 지지율이 높아 8대 지선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순천곡성에서는 높은 득표율을 얻어 총 19% 근접한 득표율로 선거비 전액 보전을 받고 현재는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기했다. 현재로서는 국민의힘 전신 정당 역대 대표들 중에는 단 둘뿐인 현역 정치인 중 1명이다. 나머지 1명은 홍준표 대구시장.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대표들은 모두 은퇴했거나 정치 생명이 끝났다.[12] 이진복박관용국회의장 보좌관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한 인물이다. 박관용이 민주계 출신이었던 만큼 같은 민주계 출신인 김무성의 라인이 된 것은 당연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