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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에서 나타나는 유형의 임금이나 통치자. 대부분은 그 국가, 왕조의 마지막 지도자다. 그런 한편 무질서가 판을 치는 난세를 기회로 삼아 세력을 떨쳤지만 끝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한 첫번째 지도자인 경우도 많다. 언뜻 생각하기에 한 나라 권력의 정점인 지도자가 뛰어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 같지만, 지도자도 결국엔 일개 개인이므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2. 유형
자주 보이는 유형은 다음과 같다.- 지도자가 집권하기 이전부터 쌓여온 문제점이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된 경우. 즉, 국가 막장·멸망 테크를 거칠대로 거쳐서 어떤 지도자가 등장해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 내부가 아닌 외부의 국제적 상황이 너무나 나빴던 경우.
- 암살 같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터진 경우.
- 그 나라의 국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게 되는 경우. 갑자기 엄청난 자연재해가 터졌다거나.
- 전장에서의 예기치 못한 사태 발생. 전쟁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측 못한 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분명히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유리한 조건을 갖추어 놓고 싸움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펌블이나 연속 크리가 터진 듯한 전개로 인해 패배하거나 아예 전사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 위쪽과 흡사한 경우인데, 자신은 충분히 유능하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상상을 초월하리만치 더 유능한 나머지 상대에게 역관광을 타버리는 경우.
- 초반에는 어느 정도 유능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무너지는 경우. 이 경우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향락에 젖어 타락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폭주하는 경우다. 둘 다일 때도 있다.
- 유능하긴 한데 그게 국가 지도자로서 필요한 능력이 아닌 경우. 즉 정말 국가 지도자로서 필요없는 능력이다. 가령 예술가로서의 능력이 있다거나 칼싸움 실력 등 좁은 의미의 개인 전투력 등을 의미한다.
- 지도자로서 일부 특정 분야만 유능하고 나머지 분야에는 무능한 형태이다. 이 경우 무능한 부분의 문제점이 다른 유능한 부분으로 커버가 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령 본인은 청렴하고 부패와는 거리가 멀지만, 아랫사람을 선별하고 다루는 것은 잘 몰라서 무능하고 부패한 인사만을 기용하는 것이 그 예이다. 다른 예로 실무에는 뛰어난데 최고 지도자로서의 능력 자체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는 군주제에서도 등장하지만 공화제 국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유형으로 행정 관료로서의 능력은 뛰어나다고 검증받았지만, 정작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 지도자가 된 뒤에는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꼭 국가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무능력한 상사 문서에 나오듯이 실무 자체는 능력이 뛰어난데 조직의 관리 능력은 부족한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반대로 성공한 지도자 중에는 본인의 실무 능력 자체는 별로이지만 뛰어난 용인술과 조직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 관리해서 성공한 사례도 많다.
- 지도자로서 유능하기는 하나, 치세를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돌발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은 뒤떨어지는 경우. 흔히 표현하는 '치세의 능군, 난세의 암군'이 이 쪽이다. 위의 외부적 악재나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평소에는 유능한 군주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여기에 꼽힌다. 단, 이런 유형의 경우 실제로는 명군처럼 보일 뿐 처음부터 암군인 경우도 있다. 즉 실제로는 무능한데 단지 운이 좋아서 통치를 쉽게 할 수 있어서 명군처럼 보인 것.
- 잘해 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도중에 예기치 못한 일로 절망하여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타락하는 경우. 이런 유형은 국가가 거의 망하기 직전인 상황에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지도자의 근성이 물러터진 경우 금상첨화다. 이런 유형은 위의 유형보다 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 전쟁과 정치적 투쟁을 통해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세우는 것은 성공했지만, 부족한 치세 능력으로 인해 그 체제를 장기간 유지하는데 실패한 경우. 유명한 격언인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다스릴 수는 없다'와 연결된다.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는 것과, 그 체제를 정비하고 확립하는 작업은 엄연히 다르다. 역사 속 국가 중 장기간 존속에 성공한 국가의 경우엔 그 건국자/창립자 혼자서 모든 것을 했다기 보다는 그 후계자, 혹은 그 다음 후계자들의 치세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 체제 정비 작업을 진행해서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 공적인 영역에서는 유능하지만 사적인 부분에서 실패하고, 이것이 국정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 유교의 격언 중 하나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수신'과 '제가'에는 실패한 유형이다. 지도자도 인간이므로, 정치는 잘하지만 사적인 부분에서는 나쁜 면모도 있을 수 있다. 가령 유능한 지도자라고 해도 패륜을 저지르는 불효자이거나, 막장 부모이거나, 막장 부부일 수도 있는 법이다. 이로 인해 지도자가 명망을 잃고 국민들이 불신하며 국정이 문란해질 수 있다. 반대로 지도자 본인은 인격자라고 해도 그 가족들의 처신이 엉망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민주 공화정의 지도자라고 해도 사적인 문제가 국정 운영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물며 군주와 그 가족들이 실권을 차지하는 전제군주제 국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지도자의 가족들이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잔혹한 인사이거나, 부정부패한 인물이거나, 권력 자체에 욕심이 너무 많아서 정치를 어지럽히고 지도자와 국가를 어려움에 빠트린 사례는 역사에서 흔하다.
- 제대로 된 후계자로의 승계에 실패한 경우. 지도자 본인이 갑작스러운 병이나 사고 등으로 미처 제대로 된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사망하거나, 그 후계자가 매우 무능하고 사악해서 지도자 본인을 축출, 살해하고 자신이 권력을 장악한 뒤 파멸해버리는 사례가 있다. 이 경우 후계자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지도자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지만, 위에 언급한 천재지변처럼 지도자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군주가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미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 역시 '군주', '지도자'라는 존재를 초인으로 생각하는 영웅사관으로, 장기적인 구조와 메커니즘에 주목하는 현대 역사학에서는 별로 통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 외에 어떤 분야에서는 유능했지만 그만큼 다른 쪽에서 컸던 문제점이 패망의 원인이었던 경우도 있다. 여기의 사례는 나라가 막장 테크를 타고 패망이 예정되었지만 도망갈 수 없는 슬픈 운명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집권할 경우 전대의 실책까지 모두 뒤집어 쓰거나 책임만 있고 권력 행사가 불가능하다면 누가 왕을 맡으려 하겠는가? 서로마 말기 황제들이 대표적이다. 결국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퇴위당하고 나서 그를 끌어내린 오도아케르나 동로마 측이 임명한 율리우스 네포스나 모두 황제위를 맡거나 행사하려 들지 않았다. 모두가 도망치고 떠날 수 없거나 눈앞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던 상대적인 개념인이 독이 든 성배를 들어서 여기 목록에 올라간 것이다.
2.1. 창작물에서
창작물에서는 또 다른 경우가 있다.- 설정 변경 - 작가의 능력 부족 등으로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 사건을 일으키거나 배경 설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정상 혹은 작품 초반의 스토리로는 훌륭한 왕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속 빈 강정이나 위선자가 되어버리는 경우.
- 주인공 보정 - 주인공의 적인 경우, 위와 마찬가지로 유능하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연발한다든가 하는 설득력 없는 전개 끝에 망해버리는 경우. 이처럼 주인공을 띄워주려다 작품을 망치는 사례는 흔하다. 이것 또한 작가의 능력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 위험한 것에 관여함 - 주로 자신의 왕비, 왕자, 공주가 죽었을 때 부활시키다가 나라가 망하거나, 자국을 강하게 만들려고 나쁜 마법이나 악마와 계약하는 등, 부정적인 방법을 시도하려다 국가 막장 테크를 타게 만들어버리는 경우.
3. 역사적 사례
확실하게 어느 정도 유능했던 지도자만 추가할 것. 단순히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만 있었거나 인격만 좋았던 지도자는 제외.3.1. 한국사
- 성왕 - 아버지 무령왕과 함께 백제의 중흥기를 이끈 임금으로 평가받는다. 한때 잠시나마 한강 유역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고, 내치 쪽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으나, 신라의 진흥왕과 치른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 의자왕 - 의자왕 개인으로 보자면 분명히 총명했으나, 내부를 잘 단합시키지 못했고, 이 탓에 신라를 상대로 시간을 끌었다가 당나라가 개입하며 망크리를 탔다. 흔히 의무교육 교과과정에선 말년에 타락해서 충신을 멀리하고 간신을 가까이 두어 백제의 멸망을 초래한 암군이 되었다고 알려져있으나, 실제로는 상술한대로 귀족과 왕족간의 권력분쟁을 끝까지 해결하지 못해 뭘 하려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아버지 무왕은 이런 상황을 수습할 정도로 능력이 있었으나 의자왕은 그 정도까진 미치지 못했다. 영화 황산벌에서 왕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의자왕과 41인의 좌평들, 귀족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대신들의 다툼이 잘 나와 있다. "백제가 우덜 나란가?(우리들 나라인가?) 너들 부여 씨 나라제?(너희 부여 씨 나라지?)" 결국 계백이 칼 빼들고 대신들을 윽박지르는 것으로 다툼이 끝난다. 타락보다는 폭주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 애장왕 - 개혁을 실시하고 귀족들을 견제하는 등 왕권 강화에 힘썼으나, 왕위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킨 숙부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신라는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가게 된다.
- 궁예 - 고아 출신의 승려라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태봉을 건국해 후삼국시대의 한 축을 차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나친 공포 정치로 인해 지지 기반을 잃고 결국 왕건의 반란으로 인해 몰락하였으며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은 멸망한다.
- 견훤 - 신라가 힘을 잃어 기울어 가는 혼란기에 일어나 왕위에 올랐으며 기울어져 가던 신라는 물론, 고려의 왕건조차도 벼랑 끝으로 몰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맹장이었다. 하지만 전술적 능력만 탁월했으며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적 능력은 다소 부족했다. 내부의 호족들을 하나로 묶지 못했으며, 또 견훤 자신의 가족을 다스리는 제가 능력도 부족했는지 후계자 선정과 그로 인한 맏아들의 반란 때문에 후백제는 무너져갔으며 결국 본인은 고려로 망명, 세계사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자신이 세운 나라를 자기 스스로 끝장낸 사례가 됐다.
- 경애왕 - 포석정에서 술먹고 놀다가 견훤의 습격에 죽음을 맞았다고 알고 있지만, 망해가는 나라를 조금이라도 되살리기 위해 고려와 외국에 외교를 하고 후백제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포석정에서 정말 놀고 먹느라 후백제에 당한 것인지 침략 소식을 듣고 종교적 행사를 한 것인지는 현대에도 여전히 논란이 많은데, 이는 해당 문서들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 경순왕 - 후백제의 신라 침공 이후, 수동적으로만 고려와 후백제의 대결을 바라보다 대세가 고려에 기울자, 나라를 고려에 바친 신라의 마지막 군주로 기억되고 있지만 경순왕 역시 제위 초에 후삼국의 분열로 망가진 신라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던 군주였다. 일례로 자신이 후백제가 세운 괴뢰정부의 명목으로 세운 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후백제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고려에 붙어 친고려 노선을 확고히 하며 후백제를 견제하는가 하면 형식적으로나마 취했던 존왕의 의마저도 마음껏 무시하는 고려의 왕건과 국서를 교환하고 있었을망정 그래도 나름대로의 저울질은 하면서 고려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하였다.
- 목종 - 즉위 초기에는 성실히 국정을 운영하며 여러 업적을 남겨왔으나, 어머니인 천추태후가 권력욕으로 인해 섭정을 놓지 않자 목종 또한 의욕을 잃고 동성애를 비롯한 향락에 빠지게 되었으며 최후에는 강조의 정변으로 폐위당하고 말았다.
- 공민왕 - 즉위하자마자 고려 내에서 득세하던 원나라의 세력을 축출하고 신진사대부를 등용하는 등 무너져가는 고려를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원의 간섭과 수없는 외침, 권문세족의 반발에다 결정타로 정신적 지주이자 개혁의 동력이였던 노국대장공주의 사망으로 인해 무너져버린다. 공민왕이 권문세족에게 암살당한 이후로 즉위한 우왕/창왕/공양왕이 사실상 권신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려사에서 그나마 통치자 노릇을 제대로 했던 마지막 임금. 다만, 공민왕의 개혁 정책 및 능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재평가들도 나오고 있기는 하다.
- 공양왕 - 그나마 이 인물은 본인이 할 게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나름 정몽주나 이색 등 온건파 신진 사대부를 밀어주며 이성계, 조준, 정도전 등으로 대표되는 급진파 신진 사대부를 견제하는 등 나름 할 건 했다.
- 태조 이성계 - 고려 시절 이름난 용장이었고, 이후 위화도 회군으로 부패한 고려 조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 왕위에 올라 조선 왕조를 창건했으며, 이전 왕조 고려의 폐단들을 없애고 과전법을 시행하는 등 백성들을 위한 정책들을 펼쳤다. 하지만 말년에 후계자를 선정할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독단으로 밀어붙였고,[1] 결국 이 탓에 왕자의 난이 발발.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정도전과 남은등 측근 세력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이방원 세력에 가담하게 된다. 심지어 이 전후로 병세까지 악화되면서 나라를 건국한 개국왕이란 위명에 걸맞지 않은 소박한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 연산군 - 개인 시집도 내고 수준 높은 문화를 만드는 등 예술적인 능력만큼은 굉장히 탁월했다. 또한, 집권 초반기에는 아버지 성종처럼 적절하게 대신들과 타협하며 그럭저럭 국정을 잘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의 결정적 원인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는[2] 심각한 권력 추구와 탕아 기질을 전혀 자제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갑자사화라는 희대의 사화를 일으키며 폭주한 끝에[3] 방탕한 폭군이 되었다가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위당한다. 어떻게 보면 조선판 네로라 할 수 있는 인물.
- 선조 - 의외일 수도 있지만, 사실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특수한 방책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여러 인재를 등용하는 등 조선을 부흥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군주였다. 더욱이 갑작스럽게 8계급 특진한 이순신의 사례에서 보듯 얻어 걸린 인재풀이 아니라 선조의 사람 보는 눈이 꽤 좋다는 걸 증명하는 인사들도 많다. 그 확실한 근거로 그 당시 등용된 인재인 류성룡, 이순신, 권율, 이원익, 이이, 이항복, 이덕형 등은 마찬가지로 엄청난 인재들이 밀집해 있던 세종[4] 이후 조선 역사상 최고의 인재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10여년 간의 전후 부흥 과정만 봐도 임란 당시 그렇게 삽질을 했던 왕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죽하면 왜란 이전의 업적들이 부각되지 않아 무능했던 왕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5] 그러나 왜군의 갑작스러운 침입에 자포자기한 듯이 무너져버리면서 요동 파천 및 이순신 견제 등 본인이 사서 암군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또한, 광해군에 대한 도를 지나친 질투로 인해 후계자 문제를 어지럽혔고, 이는 이후 광해군이 폭주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후계자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은 덤이다.
- 광해군 - 세자 시절만 보면 포텐셜이 충분한 임금인데, 왕위에 오르고 나서는 막장이 되어버렸다.[6] 부왕인 선조가 임진왜란 이전의 업적이 부각되지 않아 무능했던 왕이라고 평가받는다면, 아들인 광해군은 반대로 세자 시절과 중립 외교만이 부각되면서 막장 행각[7]이 가려져 좋은 방향으로 평가를 받은 케이스.
- 흥선대원군 - 단기간 내에 조선의 수많은 적폐를 청산하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시대의 흐름과 역행하는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펼친 데다가[8] 경복궁 중건과 관련해 미친듯한 인플레이션을 찍었고, 결정적으로 권력욕 때문에 말년에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3.2. 동양사
- 금애종 - 숭정제와 비슷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이쪽은 군사, 행정적인 면에서 나름 성과도 올렸기 때문에 능력적으로 좀 더 인정할 만하다.[9] 하지만 적국이 하필이면 리즈 시절의 몽골인지라…
- 광서제 - 국제정세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문물 이해도가 높았던 인물. 유딩의 나이일 때부터 즉위한 채 여러모로 불우한 현생을 보내다 변법자강운동의 행적과 내용들을 보면 어린 나이에도 꿋꿋이 버텨오며 국가를 걱정하며 많은 고민으로 철저하고 은밀하게 노력해왔다는 것에서 능력과 인성은 인정할 만하며 성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에 뒤쳐가는 주변 인물과 사회를 보면…
- 나디르 샤 - 군사적인 능력만큼은 그야말로 개사기라 오스만과 무굴 제국 등 어느 누구도 그를 이기지 못했지만, 전쟁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전쟁광 특성 탓에 내치를 제대로 말아먹었고 병사들에게도 잔인하게 굴어 결국 휘하 무장에게 암살당했다.
- 당현종 - 집권 초기에는 측천무후의 잔여 세력을 축출하고 개원지치라는 당나라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그러나 관롱집단의 폐해 등 눈에 보이지 않게 쌓인 적폐들이 속속 드러나고 이임보, 양국충 등의 간신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국정이 혼란스럽게 바뀌었다. 결국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당현종 본인도 정치에 뜻을 잃어 아들에게 양위했으며 당나라는 쇠퇴의 길로 빠졌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해서 천하를 통일하고 일본의 1인자가 되었으니 능력은 분명 뛰어났던 셈이지만, 국제 정세에 너무나 어두운 나머지 일으킨 임진왜란 하나로 본인은 물론이고 도요토미 가문 자체를 파멸로 이끌었다.[10]
- 도쿠가와 요시노부 -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정치력이나 시대를 읽는 면은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이미 정세는 토막파에게 기울어 있었다. 그나마 정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본인 및 막부 세력에 대한 보복을 최소화하고, 순순히 은퇴를 받아들여서 일본의 근대화에도 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근대화를 받아들이고 마지막에는 권력을 메이지유신 세력에게 넘겨주면서 일본이 식민지가 되지않고 열강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11]
- 사담 후세인 - 오늘날에야 독재자에 혀 잘못 놀린 탓에 미국에 찍혀 사살당했다로 요약이 가능하지만, 사실 부통령 시절에는 이라크를 경제 대국으로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하여 자국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전적이 있는 인물이다. 이런 점 덕분에 차기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고 당연히 선출되었다. 그러나 막상 본인에게 권력이 주어지자마자 그 현명한 판단력을 다 날려먹고 부패한 정치가로 변모하였다.
- 사마염 - 서진을 건국한 초대 황제이며 집권 초에는 나름대로 개념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반론으로 전국 통일은 멀게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집안의 공로를 거저 물려받은 것이고, 집권 초기의 개념있는 모습도 단지 어머니의 '눈치'를 본 것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집권 이후의 각종 사치와 향락, 특히나 사마충을 후계자로, 가남풍을 그 정실로 정한 책임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래도 사마염은 나라를 건국한 개국황제로서 통치를 제대로 할 만큼의 능력은 분명히 있는 군주였으며, 업적이나 성과도 적지 않은 만큼 능력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12] 오히려 그런 능력을 가지고도 국가를 멸망으로 몰아 넣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으니 더 비판받는 것이다. 막말로 서진의 멸망 원인 중 몇 가지는 사마염이 정신 차리고 제대로 했으면 방지할 수 있었다. 일단 가남풍만 갈아넣었어도 충분했고, 그게 아니면 죽을 때 사마충에게 일단 제위를 맡기되 잘 못하면 사마휼이 성장할 때까지 몇년만[13] 기다렸다가 양위시키는 식으로 조치를 취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 샤 자한 - 위의 공민왕과 유사하다. 아들인 아우랑제브의 왜곡이 어느 정도 가미되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유능한 군주였던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의 사망 이후, 타지마할 건립 등의 추모 사업에만 집착해서 망가진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특히나 후계자 관리에도 실패하여 아들들이 황위 계승을 두고 서로 싸우다 최종 승리한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당해 탑에 갇혀 살다가 죽는다.
- 손권 - 충분한 제왕의 자질을 가진 인물로 오나라가 건국되기 전 강동의 우두머리였던 형 손책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 공백 사태를 잘 수습했고, 뛰어난 인재들을 요소요소 잘 기용해 적벽대전, 그리고 이릉대전 등에서 승리를 거두며 229년 오나라를 건국하여 황제가 되고 기틀을 닦아낸 인물이지만 말년에 이궁지쟁이라는 훌륭한 병크로 인해 업적을 다 말아먹다 시피했다. 물론, 오나라 역시 손권 대에서 망하지는 않았고 손호도 병크는 충분히 저질렀다.
- 양광 - 아버지가 중단시켰던 대운하 공사를 끝끝내 완료하여 중원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개인적으로도 예술에 뛰어났고 계략에 능했으며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남진을 멸망시킬 정도의 군사적 재능을 지닌 유능한 군주였으나, 계승 과정에서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이중인격 쇼와 막장스러운 사생활에 더불어 고구려를 잘못 건드렸다가 시원하게 말아먹으면서 수나라의 단명을 부추겼다. 그 대가로 우문화급에게 교살당했다.
- 숭정제 - 명 4대 암군이 싼 똥을 결국 치우지 못해서 망했다. 맨 위에 언급된 통치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개인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는 좋은 본보기다. 다만,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실제 유능한 군주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 아시카가 요시테루 - 무로마치 막부의 질서 자체가 붕괴해 가던 시기에 쇼군에 올라, 다이묘 간의 분쟁 조정, 막부 역직 재배분, 만도코로 정리 등의 개혁을 통한 막부 재흥을 노렸으나, 미요시 요시츠구의 기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 요시야 - 종교와 국가 체제를 개혁하고 북이스라엘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거기에다 이집트와 신바빌로니아 중에서 어느 쪽이 흥할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에 너무 가까운 탓에 파라오의 죽창 한 방에 목숨은 잃고 나라는 이집트의 꼭두각시가 되고 말았다.
- 이욱 - 항우가 군사적인 능력은 만점인데 군주로서의 자질이 미달인 케이스라면 이욱은 예술가로서는 뛰어났지만 군주로서의 덕목은 갖추지 못한 경우다. 마침 둘 다 겹눈동자였다고 한다.
- 이존욱 - 항우처럼 전투에서는 역시 탁월했으나 정치에서는 멍청이였다. 악질 세리 공겸을 등용해 온갖 세금을 뜯게 했으며 덤으로 마누라인 유황후도 악랄한 세리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폭발한 민중과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활에 맞아 처참하게 죽는다. 그나마 친척인 이사원이 제위를 이으며 나라를 안정시켰지만…
- 울루그 베그 - 티무르 제국의 아미르로, 아미르가 아니었다면 인류사에 이름을 더 남겼을 위인이다. 천문학과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학자였으며, 쿠란에 박식하고 아랍어에 능통할 정도로 독실한 무슬림이었으나 종교적 관용 정책을 폈다. 다만 군주로서 필요한 재능과 학자로서 요구되는 재능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 불행으로, 즉위한 지 겨우 2년 만에 친아들인 압달 라티프가 일으킨 반란으로 참수당하고 만다.
- 장제스: 쑨원의 이념을 받들어 청나라 멸망 이후 사분오열된 중국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과업을 실행했으며 중일전쟁 시기 항일투쟁까지 이끌어 중화민국을 당당한 승전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으나 군벌의 연합체적 성격에 불과했던 국민정부의 부패를 막지 못해 민심을 잃었고 결국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중국 대륙을 마오쩌둥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타이완 섬으로 도망치면서 허무하게 몰락했다.
- 조무령왕 - 호복기사 개혁으로 조나라를 중흥시킨 군주였으나 후계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사구정변이 일어나면서 본인도 아사한다. 본인이 쌓아놓은 기반 덕분에 조나라가 어느정도 버티긴 하였지만 그의 죽음 이후로 만성적인 멸망 테크를 탄 건 사실.
- 조모 - 주변에서 조조의 환생이니, 무용은 조조와 같고 재능은 조식과 같으니 같은 극찬을 들었을 만큼 재능은 확실한 인물이였으며, 당시 정권을 잡은 사마씨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다른 방도가 없자 자기가 가진 마지막 무기인 황제의 목숨을 판돈으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다 피살당했다. 초기의 목적은 실패했지만 결국 그 행동으로 인해 사마씨의 권위마저 아주 박살내고 서진의 몰락에 일조하는 등 계산대로 물귀신 작전만은 성공한 셈이다.
- 제환공 - 관중과 포숙아를 기용해서 국력을 크게 강화하고 춘추오패 중 최초의 패자의 자리에 등극했지만, 이후 역아, 수초 등의 간신들을 가까이하면서 국정이 문란해졌다. 결국 말년에는 권력 다툼으로 인해 감금당해서 굶어죽고, 제대로 시신도 수습하지 못해서 구더기가 잔뜩 생기는 비참한 모습이 되었다.
- 항우 - 서초를 건국한 서초패왕이며 군사적 능력 자체는 마지막 싸움이 되었던 해하 전투 말고는 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수준 미달이었다. 18제후왕 분봉으로 인해 적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적을 키워주는 계기가 되었고 행동이 지나치게 즉흥적이었던 데다가 그의 군대가 지나가는 길마다 시체가 즐비해 적대하는 자가 많았다. 한신, 진평, 영포등의 유능한 부하들을 키우는 능력도 없고 인정해줄 생각도 없으니 인재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자연히 그의 곁을 떠났다. 결정적으로 싸웠다 하면 이겨도 싸우는 이유인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잦았다. 게다가 반성이란 것을 할 줄 몰라서 몰락했을 때조차 "내가 패한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하늘이 날 방해해서다!"라고 분노했다. 우군은 자꾸 없어지는데 적은 끝없이 덤벼든다. 이기기는 이기는데 언제나 불리해진다. 전투에서는 항우에게 발리는 것이 일이었지만 인재 쓰는 일에 있어서는 귀신같았던 라이벌 유방과 비교된다.
- 헌제 - 후한은 이미 아버지인 영제 치세부터 망해 있었으며, 이미 전권을 장악한 동탁에 의해 탈법적으로 옹립되었던 만큼 즉위한 순간부터 본인 스스로 권력을 부릴 수 없는 위치였다. 황위 자체가 난세의 결과물인 만큼 31년 치세동안 참 편치 못한 시간을 보냈다. 그 위치에서도 후한의 사직을 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결국은 본인 대에 후한이 멸망했지만 헌제에게 책임을 지우는 이는 거의 없으며 동정을 많이 받는다. 시대와 더불어 아버지를 잘못 만난 황제이다.
3.3. 서양사
- 시몬 볼리바르 -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를 독립시키고 이들 국가들을 한데 묶어 그란 콜롬비아 연방으로 단일 연방 국가를 남미 대륙에 세우려고 했으나 각국의 크리요오 지배층들의 이해관계와 견해가 일치하지 않아 실패하여 그란 콜롬비아 연방은 그의 실각 이후, 각국으로 분리독립 하면서 해체된다.
- 구스타브 2세 아돌프 - 근대전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이며 훌륭한 정치로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들었고 30년 전쟁에서도 활약했으나, 뤼첸 전투에서 전사했다. 직후, 스웨덴 자체도 뇌르들링겐의 패배로 공세가 중단되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장군으로서도, 군주로서도 일국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엔 충분한 유능한 인재였다. 그러나 유럽 정복을 꿈 꾸는등 지나친 욕망을 품기 일쑤였고, 심지어 연이은 성공에 자만했는지 후반부에 외교적 실책을 자주 저질러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14] 당대 나폴레옹의 재능은 뛰어난 편이라, 욕심만 안부렸어도 유럽 정복같은건 불가능이더라도, 유럽을 주름잡는 맹주정도는 될 수 있었겠지만 다시 말하듯 그놈의 욕심을 접지 못한 게 문제였다. 애초에 연합국은 나폴레옹이 정복한 지역을 토해낸다면 혁명전쟁으로 프랑스가 획득한 구역의 지배권과 나폴레옹의 왕위는 인정해줄 생각이 있었고,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에도 협상의 여지는 열려있었으나 나폴레옹이 일체의 협상을 거부하는등 자발적으로 화를 자초했다.
- 나폴레옹 3세 - 내치에는 나름대로 업적이 있었고 인간적인 매력도 상당해서 지지를 많이 받았지만, 외교 및 전쟁에는 너무나 큰 실책들을 범했다. 결국 프로이센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본인도 영국으로 망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 릴리우오칼라니 - 뛰어난 정치 감각과 더불어 알로하 오에라는 유명한 노래를 지을 정도로 영민한 군주였으나 이미 당시 하와이 왕국의 경제적 상황과 외교적 고립은 릴리우오칼라니 본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미국 정부에 의해서 폐위당했다. 류큐 왕국의 쇼타이 왕과 흡사한 예.
- 마요리아누스 -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이탈리아로 쪼그라든 서로마 제국에서 본인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으로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를 수복하고 서고트 왕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웠다. 후에 반달 왕국까지 정벌하려 했으나 그의 능력을 두려워한 간신 리키메르의 배신으로 함대를 모두 잃고 결국 암살당했다. 그의 사망후 20년도 안되어 서로마는 멸망한다.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 '부패할 수 없는 자'(l'Incorruptible)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청렴하고 유능한 지도자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공포정치를 실시했고, 결국 민중의 지지를 잃게 되었으며 반대파들이 들고 일어난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파멸한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 소련 체제의 근본적 모순점[15]이 쌓일 대로 쌓여 심각한 상황에서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 체제를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로 바꾸어갔고, 다당제와 표현의 자유 등 자유•민주적 개방도 진행했다 하지만 80년대 말 갑자기 개혁의 속도를 너무 높여 진행하였고, 2차대전 이후 공산화된 동유럽 공산권과 달리 1차대전 직후 공산화가 된 소련인들은 태어나시면서부터 공산사회를 경험했던 사람이 많아 이러한 개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여기에 결정타로 보수파[16]가 8월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보리스 옐친의 인기가 급상승하자 실권을 옐친에게 넘겨주고 결국 소련은 해체되기에 이른다.
- 바예지트 1세 - 용맹한 지휘관이었을 뿐 아니라 통치자로서의 리더십도 뛰어나 오스만 제국의 세력을 크게 넓혀, 제국의 첫 번째 전성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자신보다도 군사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티무르에게 패배, 포로 신세로 죽었으며 오스만 제국은 멸망 직전을 제외하면 6백년 역사상 최악의 위기에 몰렸다가 아들인 메메드 1세, 손자인 무라드 2세의 치세를 거치며 겨우 티무르에게 당했던 피해를 복구하게 된다. 이 쪽은 위에 쓰인 유형 분류 중 본인도 유능한 편이지만 상대편인 티무르가 더 뛰어났던 경우에 속한다.
- 바실리오스 2세 - 동로마 제국 최고의 명군 중 하나이지만, 이 사람은 공화국의 실권자가 아니라 군주국의 황제였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의 관심은 온통 제국 경영 뿐이었는데,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후계자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아 사후 제국의 후계자 혼란에 영향을 끼쳤다.
-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 칠레가 스페인 식민지였을 시절 탁월한 지도력과 협상력을 보이며 칠레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칠레 독립 후 칠레 초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정교 분리, 장자상속제 폐지, 대지주 제도 폐지를 통한 토지 개혁, 분배 등 개혁 정책을 추진했으나 그 개혁 과정에서 지나치게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며 반대파들의 불만을 크게 초래하여 오이긴스의 정책에 반대하는 보수파들의 압력과 저항으로 인해 6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였다.[17]
- 앤서니 이든 - 외무장관 시절에는 2차 대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영국을 대표해서 소련, 드골의 자유 프랑스 등과 협상을 벌여서 영국과의 관계를 유지한 유능한 외교관이었다. 하지만 총리에 취임한 이후에는 긴축정책을 펼치다가 여론의 반감을 샀고, 여기에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무리하게 수에즈 전쟁을 벌이다가 미국의 압력을 받고 군을 철수시키는 등의 망신을 당했다. 전형적인 '실무는 뛰어난데 지도자로선 무능한' 유형이다.
- 율리시스 S. 그랜트 - '훌륭한 군인이 꼭 훌륭한 정치인이 되지는 못한다'의 유형. 본인조차 '나는 대통령에 맞지 않다'라고 고백할 정도이다. 남북전쟁 때 연방군 사령관으로서의 군공은 실로 대단했고 대통령도 그 업적을 바탕으로 가능했으며, 여기에 그랜트 개인적으로는 청렴하고 인간성도 훌륭한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보는 눈이 너무 부족해서 무능하고 부패한 인사들을 기용했고 이에 대한 지적도 수용하지 않는 독선적인 행동을 내보인 결과 본인의 정치적 평판까지 최악으로 치달았다.
- 카를 1세 - 궁정 생활의 사치를 자제하고 제국 내 소수민족의 자치를 허용하려 하는 등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보수 세력의 반발로 실패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뒤에는 황실 해체를 막을 수 없어서 해외로 망명해야 했다.
- 콘스탄티노스 11세 - 즉위 이전에도 덕망이 높았으며, 즉위 이후에는 거대한 강국인 오스만 제국에 맞서 사신을 보내 속국이 될 테니 제국을 그대로 보전해 달라고 요청했고[18] 끝내 오스만 황제 메메드 2세가 적대적으로 나오자 용병과 콘스탄티노플 주민을 규합해 맞서 싸웠으나 끝내 실패했다. 이로써 로마 제국은 2천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멸망한다.
- 클레오파트라 7세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요녀나 팜 파탈의 이미지와는 달리,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끌어들이고 이집트의 속국화를 막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이미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군사력과 인적 자원의 미비는 클레오파트라 본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로마와의 전쟁중 악티움 해전에서 도주하는 등 큰 실책을 벌여서 패배하고 본인도 자결했다.
- 한니발 바르카 - 단독으로 로마 공화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던 불세출의 명장이었으나, 카르타고의 다른 장군들과의 연합이 잘 되지 않았고, 그들의 능력부족으로 결국 로마를 멸망시키지 못했다. 전쟁이 단 한명의 지휘관만으로 되는게 아니란걸 보여준 사례.
- 허버트 후버 - 대공황 이전까지 관료로서 능력과 행보는 꽤나 좋은 편이었고,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버에게 거는 기대 역시 높았다. 하지만 세계 대공황이 터지고 그 와중에 보여준 영 좋지 않은 위기 대처 능력 때문에 미국 경제를 말아먹은 무능한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가 깊게 박혀버렸다. 정작 대통령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행정 관료로서의 능력은 결코 나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치세의 능군, 난세의 암군'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 헨리 2세 - 잉글랜드의 프랑스 내 영토를 크게 늘리고 내정에도 상당히 유능한 군주였으나, 자식들을 편애하는 등 집안 관리가 개판이었다. 결국 자식들의 반란으로 인해 홧병으로 사망한다.
4. 창작물의 사례
- 나이트런 - 황제 디오라시스 4세, 기사왕 랄프 파올로: 둘 모두 과거 '영웅'이라고 불릴 정도였지만 나라가 멸망한 후 마더나이트와의 계약으로 콜드 히어로가 되었다. 디오라시스가 다스리던 투린 연맹의 경우는 아직 구체적인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파올로는 자신이 세운 나라를 자신이 박살냈다.
- 날아라 슈퍼보드 - 게임의 여왕: 일하지 않고 노는 낙원인 게임의 왕국을 다스리며 뛰어난 게임 실력을 보여줬으나, 일하는 사람들을 가두고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여 땅을 황폐화 시킨데다가 게임 대회 결선 참가자들을 수족관에 가둬 전세계를 게임의 왕국으로 건설하는 용사를 만들려고 했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 주인공들에 의해 드러나고 그들에 의해 게임의 왕국이 파괴 되고 그녀도 요괴로 판명 되어 처단 당한다.[19][20]
- 드래곤볼 - 국왕: 나라에 범죄자가 거의 없다시피 한 점이나,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점 등 모범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상대들이 거의 우주를 주무르는 존재들이어서 나라를 4번이나 말아먹었다…
- 디아블로 시리즈 - 레오릭: 원래 지혜롭고 자비로운 성군이었으나, 디아블로의 하수인인 대주교 라자러스의 꾀임에 빠져 디아블로가 봉인된 트리스트럼에 왕궁을 짓는 바람에 디아블로의 영향을 받아 정신줄을 놓고 만다. 결국 한때 자신의 충신이었던 라크다난에게 시해되었으나 스켈레톤 킹으로 부활, 본편 시점에서는 플레이어가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로 등장한다.
- 로미오X줄리엣 - 몬태규 대공: 유능한 권모술수의 달인이었으나 그 능력으로 폭정만 일삼았던 탓에 백성들의 증오를 받다가 백성들이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키자, 극단적으로 진압하려다 결국 부하들에게 배신당하고 목숨까지 잃고 만다.
- 리니지 - 켄 라우헬: 항우와 마찬가지로 전략에서는 천재라고 할 인물이지만 왕으로서의 자격은 떨어졌다. 물론, 마녀와의 계약 문제도 있긴 했지만 그가 왕이 아니라 기사단장이나 장군이었다면 나라도 엄청나게 부강하게 만들 인재라서 아쉬운 인재였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블랙 팬서, 토르: 블랙 팬서는 와칸다의 부족장들 중 음바쿠만을 제외하고 모두가 왕위에 오르는 것에 동의했고, 그 음바쿠도 블랙 팬서의 인품에 결국 왕위를 인정했을 정도로 인망은 이미 증명되었으며 선조들이 여태까지 외세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계 최빈국이란 타이틀을 달고 기술력을 숨기며 펼쳐온 쇄국 정책을 깨며 자국의 자산을 개방하며 타국과 교류하는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하필 자국에 최초로 침공해온 세력이 우주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강력한 타노스의 군단이었기에 바로 자국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핑거 스냅의 여파로 국민의 상당 수를 잃고 본인도 먼지가 되어 사라져야 했다. 거기다 현실에서 블랙 팬서의 배우 채드윅 보즈먼이 암으로 사망하면서 극중에서도 이른 나이에 승하하는 것으로 진행되어 트찰라의 치세는 더 빛을 발하기도 전에 끝나고 말았다.
토르는 3편 내내 성장을 거치며 왕의 자질을 갖춘 지도자가 되었지만, 하필이면 아스가르드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해야하는 일이 자국의 영토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살린 백성은 갑작스런 타노스의 침공으로 절반이 죽어나갔고, 핑거 스냅으로 또 잃었으며, 이미 수많은 절망을 겪은 토르는 결국 이 일로 정신이 무너져 5년을 방탕하게 살았다. 그나마 놀고 먹는것만 해서 폭군으로 흑화하지 않았던 것이 스스로를 포함한 모두에게 다행이었을 정도. 이들 모두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로는 타노스에게서 잃었던 것들을 되찾아 다시 해피엔딩을 맞게 되긴 했다.
- 마블 코믹스 - 닥터 둠: 폭정을 일삼던 폭군을 처단하고 부패한 귀족들을 몰아내 나라를 발전시키며 백성들의 신망을 샀으나, 그 자신이 폭군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가면 교만해져서 다스리는 나라가 소국이라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의 능력만 믿고 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었던 게 문제였다. 이 때문에 전 세계 국가들과의 전쟁을 초래했고 국가와 국민들이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만다. 나중에는 폐위되며 나라도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 반지의 제왕 - 데네소르 2세: 국민을 사랑하고, 지혜롭고 냉철하며 유능한 군주였지만,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곤도르를 사우론의 마수에서 지키며 꽤 오래 버텼지만, 결국 팔란티르를 통해 본 사우론의 압도적인 군세에 절망하고 아들 보로미르와 파라미르를 잃으며[22]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피터 잭슨의 영화판에선 그냥 암군으로 묘사되지만.
- 블루 아카이브 - 총학생회장: 초인이라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하고 완벽하다 할 만큼 대단한 지도자였다고 하며 키보토스 전역의 신망을 받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실패했다고 하며 본편 시작 시점에는 선생을 보내고 사라진 상태다.
- 십이대전 대 십이대전 - 댄디 라이온: 작중 과거 소개문을 보면 댄디 라이온은 대통령이나 왕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의 국가를 운영하고 있던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런 그는 전쟁 범죄자로써 체포되고 말았다.
- 아르슬란 전기
- 고타르제스 2세: 원래는 선정을 베풀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명군이었으나 혈통에 대한 집착 때문에 미신에 빠지게 되어 암군으로 타락했다. 특히 왕가의 후손을 가지겠다는 명분으로 며느리를 겁탈하는 패륜을 저질러 분노한 자식들에게 살해된다.
- 안드라고라스 3세: 무력에서 인간을 초월했을만큼 강하며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전쟁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치는 무관심했으며 국가의 근본적인 폐단을 개선할 생각을 전혀하지 않아서 실패했다. 특히 폭군이라서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도 않았고 간언만 하면 파면하거나 처형하려고 들어 간언 자체를 못하게 만들었다. 가장으로서도 아내와 자식에게 비정하게 대하여 가정까지 파탄냈고 본인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 아르슬란: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들을 아끼는 성군으로 폭군인 선왕 안드라고라스 3세가 엉망으로 만들었던 나라를 개혁 정책으로 바로잡았지만 운이 좋지 못했다. 사왕군의 침공을 받아 당해내지 못하고 국토 전체가 초토화되었으며 개혁정책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에게 배신당한데다 본인은 마왕과 싸워 그를 이겼으나 치명상을 입고 사망하며 나라까지 멸망하고 만다.
- 기스카르: 유능하고 암군인 형 이노켄티스 7세와 광신도 보댕의 실정으로 인해 막장이 된 나라를 재건하여 잘 다스렸으나 후계자도 없이 욕심을 부려 파르스 정복에 나섰다가 저격당하여 사망함에 따라 기껏 통일한 나라가 분열된다.
- 언더테일 - 아스고어: 괴물들의 나라를 잘 다스려온 존경받는 왕이지만 아들의 죽음 이후 보여준 우유부단함 때문에 왕비와도 헤어지며 가정이 무너졌다. 이후 불살 엔딩에서는 살아남지만 보통 엔딩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건 결국 죽게되며 몰살 엔딩에서도 저항도 못하고 죽는다.
- 얼음과 불의 노래
- 마에고르 1세: 능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이기적이고 포악해서 악행을 일삼다가 결국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 패하게 되자 자살하고 만다.
- 비세리스 1세: 조부인 성군 재해리스 1세가 발전시킨 칠왕국을 더욱 발전시켜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막장인성을 가지며 악행을 일삼던 동생 다에몬 타르가르옌을 처벌하지 않았고 후계자 선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그 결과 사후 다에몬이 비세리스의 손자 재해리스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악행을 저질렀고 아들 아에곤 2세와 딸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이 왕위를 두고 용들의 춤이라는 내전을 벌여 왕실과 나라에 막심한 피해를 입혀 그가 발전시킨 칠왕국을 파탄내고 만다.
- 아에곤 5세: 왕이 되고 나서 선정을 펼쳐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왕이었으나 정작 약한 왕권과 귀족들의 반발로 인해 그가 추진한 개혁정책이 모두 실패한다. 그래서 마지막 대안으로 왕실의 강력한 힘이었던 드래곤을 부활시키려고 의식을 치렀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본인은 물론 자식들과 왕족들, 귀족들까지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 롭 스타크: 북부의 왕을 칭하면서, 가장 어리지만(만 15세), 전투시 가장 앞에 나서고, 가장 늦게 자고, 가장 일찍 일어나는 지휘관이었다. 군재는 그야말로 당대 최고로 꼽혔고, 전반적인 능력도 나이를 감안해도 높게 평가받았다. 하지만 정략결혼이라는 세력규합에서 중요한 문제를 혈기어린 감정에 치우쳐 프레이 가문과의 혼사를 엎어버리고 제인 웨스털링과 결혼하려한 판단미스를 저질렀고, 이후 악조건인 상태에서 다시 한 번 프레이 가문과 혼인동맹을 맺어보려다가 피의 결혼식에서 잔인하게 암살당하고 만다. 단 1년의 치세였다.
- 타이윈 라니스터: 뛰어난 정치가로 무능한 왕인 외손자 조프리 바라테온을 대신하여 국정을 잘 이끌어냈으나, 차남인 티리온 라니스터를 지나치게 박대하다가 결국엔 티리온에게 살해된다. 타이윈 사후 지도자가 된 딸 세르세이가 무능한 통치로 왕국에 악재가 연달아 발생해 본격적인 국가 막장 테크를 밞게 된다.
- 오버로드(소설)
- 지르크니프 룬 파로드 엘-닉스: 바하루스 제국의 황제로 13세에 즉위해서 숙청과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절대왕권을 이루어 내고 제국을 강국으로 발전시켰으나,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아인즈 울 고운이라는 걸어다니는 코즈믹 호러에 의해 계획이 파탄나고 제국을 마도국의 속국화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실패일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성공한 지도자가 되었는데, 속국이 된 후 오히려 든든한 뒷배가 생긴 셈이 되어 국내 정세가 크게 안정되고 큰 피해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쭙잖게 적대했다가는 어마어마한 유혈사태가 일어날 뻔했는데 제때 숙이고 들어간 덕에 무사할 수 있었던 것.
- 칼카 베사레스: 로블 성왕국의 성왕으로 10년 가까이 지나치게 온화하다는 불만은 있을지언정 이렇다 할 실책도 보이지 않고 나라를 통치해 왔다. 다만 여성의 몸으로 성왕에 오른 탓에 북부에서 지지받는 것과 달리 남부에서는 별로 지지를 받지 못했고, 사람이 너무 좋아서 강경하거나 음험한 정책을 쓰지 못해 남북 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래도 본인의 능력 덕분에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으나, 얄다바오트와 아인연합군이 침공해오면서 본인은 처참하게 죽고 나라도 멸망하기 직전까지 몰리고 말았다. 아인즈 울 고운의 도움으로 간신히 나라를 구할 수 있었지만, 생전 본인이 해결하지 못한 남북 간의 갈등이 더 심화되면서 후일 자연스럽게 마도국에 흡수될 것이 명백한 상황이다.
- 워크래프트 시리즈 - 레인 린, 테레나스 2세: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통치자들이었지만 전자는 어둠의 문을 거쳐서 침공한 타락한 오크 족장이 보낸 자객에게, 후자는 불타는 군단의 간부와 스컬지의 지도자에 의해서 맛이 가버린 아들놈에게 끔살당했다.
- 킹덤 오브 헤븐 - 보두앵 4세(예루살렘 왕국): 실제 역사에서도 유능한 왕이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더욱 고평가되어서 평화로운 진정한 '킹덤 오브 헤븐'(천상의 왕국)을 구현하려 노력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이미 나병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기 드 뤼지냥과 르노 드 샤티옹을 통제하는데 실패한다. 마지막 희망인 발리앙도 자신의 여동생 시빌라와의 혼인을 거절하고 떠나버린다. 결국 보두앵 4세는 병으로 사망하고 후계자인 그의 조카 보두앵 5세도 마찬가지로 한센병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시빌라는 그를 안락사하고 왕위를 기에게 물려 준 뒤, 폐인이 된다. 사실상 보두앵 4세가 죽음으로서 예루살렘 왕국은 끝난 셈.
-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 파이널 판타지 VI - 가스트라 황제: 인격적으로는 사악했지만 군국주의 제국의 황제라는 점만 놓고 보면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각성한 부하 케프카 팔라초에게 배신당해 죽는다.
- 파이널 판타지 XV - 레기스 루시스 카일룸
- Warhammer - 지그마, 카를 프란츠, 테클리스, 말레키스, 토그림 그러지베어러, 루옹 레옹쿠르, 질 르 브레통, 마즈마문디, 카탈린, 천룡황제, 오리온, 티리온, 스노리 화이트비어드 등: 모두 유능하나 엔드 타임에서 카오스 세력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나 패하고 나라까지 멸망한다. 특히 GW에서 구 판타지를 끝장내기 위해 만든 캠페인이라 이길 방법이 아예 없었다. 그래도 지그마, 말레키스, 티리온, 스노리 화이트비어드는 후속작인 에이지 오브 지그마에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 Warhammer 40,000 - 황제: 인류제국을 세우고 대성전을 거쳐서 승승장구했지만 호루스 헤러시 무렵에 자식들 중 한 명이었던 호루스와의 대결에서 중상을 입었고[24] 황제 본인은 혼수상태에 빠져 황금 옥좌에 안치됨으로써 인류제국이 위기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일단 황제가 황금 옥좌에 안치된 뒤에도 워프 항해를 지원하고 있으므로 인류제국 자체가 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후로 설정이 바뀌면서 유능하기만 한 지도자가 되었다.
5. 관련 문서
[1] 여기에 신덕왕후, 정도전 등 방석 지지세력이 이성계의 뜻을 따랐다. 다만 정도전은 원래 나이가 많은 왕자 혹은 공을 세운 왕자를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는 측이였으나 이성계가 방석을 후계자로 정하고 그대로 밀어붙이자 어쩔수없이 따른거에 가깝다.[2] 하지만 정황상 어머니의 죽음은 즉위 전부터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3] 엄연히 무오사화는 연산군이 문제가 아니라 사림 측의 자폭이었다. 원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자신을 등용한 사람의 통수를 까는 글을 지은 스승과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제자가 기레기 짓을 한, 현대에 봐도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짓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세 사항은 무오사화 문서를 참고할 것.[4] 심지어 세종의 인재들은 능력들은 뛰어났지만 하나같이 마이페이스 기질이 강했고 비리도 심심치않게 저지르던, 군주 입장에서도 참으로 다루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 인재풀은 단종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의해 박살났다. 그에 반해 선조 밑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황이 어려운 와중에도 나라와 왕에게 충성했고, 나름 청렴했던 사람들이었던걸 보면 인재 복은 선조 쪽이 좀 더 좋았다 볼 수 있다.[5] 이는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이 빈약한 영향도 크다. 선조실록만 봐도 임진왜란 이전을 다룬 분량이 나머지 분량의 1/10에 불과하며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도 왜란의 와중에 소실되었다.[6] 이에 대해선 선조의 도를 지나친 질투로 인한 지속적인 견제 + 적자인 영창대군의 탄생으로 인한 유영경을 위시한 소북의 자리 흔들기 행위로 인해 왕위에 올라오기 전에 정신적으로 무너져 버렸고 이것이 즉위 후의 폭주로 이어진 것이라는 의견이 있으며 이는 학계에서도 지지받는 설이다.[7] 대표적으로 미친듯이 궁궐을 지어올린 것이 있다. 얼마나 지어올렸으면 신하들과 백성들의 반감이 컸을 정도이며, 고려의 암군인 충혜왕이나 의종과도 비견될 수준이다. 문제는 이게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재정도 좋지 않은 시점에서 그랬다는 것.[8] 다만 이쪽은 이집트처럼 적극적으로 개항했다가 나라가 망한 사례를 들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보는 자들도 있다. 대원군 본인도 처음부터 거부하지 않았고, 프랑스 가톨릭 신부들을 접촉하려고 했지만 이들이 가톨릭 국교화 및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한 탓에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고 포기했다는 분석도 있다.[9] 당장 애종이 발굴한 금나라의 최후의 명장인 완안진화상이 1229년에 벌어진 대창원 전투에서 금나라 군 400명으로 몽골군 8000명을 물리쳤고, 이어서 1231년에 일어난 도회곡 전투에서도 몽골 제국의 이름난 명장인 수부타이를 격퇴시켰다. 참고로 이 전투는 수부타이의 일생의 유일무이한 패전이었다.[10] 자손으로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남겼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리저리 휘둘리다 훗날 속담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오사카 전투 당시 주변과 함께 자결한다.[11] 이에 반에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지배층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외세를 끌어들이면서까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다가 중국은 반식민지,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는 지금도 한국과 중국에서 고종황제와 서태후를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다.[12] 특히 독발수기능의 난 때 무명의 장수였던 마륭을 파격적으로 기용해서 전쟁을 종결시킨 용인술은 진짜 놀라울 정도다. 특히 문벌 귀족의 권력이 매우 막강해 귀족정의 성격이 매우 짙었던 서진 정권이라 더욱더 놀라운 성과이다.[13] 사마염이 붕어하고 2년 만에 사마휼이 성년이 되었다.[14] 특히, 이베리아 반도 전쟁과 러시아 원정이라는 치명적인 실책을 연달아 저지른 것이 몰락의 단초가 되었다.[15]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은 자본주의가 잘 발전한 뒤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10월 혁명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조차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결국 혁명 이후 경제를 발전시켰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멘클라투라의 등장 등 각종 문제점이 발생했다[16] 소련 공산독재의 유지를 바라는 자들[17] 그러나 당시 칠레 정치계의 친 오이긴스파 세력들은 오이긴스가 대콜롬비아 공화국의 시몬 볼리바르처럼 종신 집권하기를 희망했었다.[18] 비잔틴이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으로 들어간 것이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고, 요안니스 5세 때 이미 선례가 있었다.[19] 원작 만화에서는 게임의 여왕이 아예 요괴가 아니라 인간이었으며, 주인공들이 오히려 게임의 여왕에게 두들겨 맞고 게임의 왕국의 기물을 파손한 죄로 손해배상으로 강제노동을 하다가 분신술로 겨우 탈출한다.[20] 애니메이션에서는 게임의 여왕이 사악한 짓을 저지른 요괴가 맞으므로 처단 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나왔으나, 작중에 등장한 다른 요괴 대부분이 사람들을 일부러 직접 해친 것에 비해서 게임의 여왕은 그런 행적을 보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요괴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며 처단할 수준은 아니었고, 그 중에서 특히 살인과 병원 폭격 등의 심각한 악행들을 저지른 얼굴 셋 팔 여섯이 주인공들에게 항복하자 반성했다면서 용서했던 적이 있는데다가, 심지어 주인공들 그 자신들도 게임의 여왕보다 심각한 악행인 살인, 폭행, 절도, 금품갈취 등의 악행을 저질렀던 적이 있기 때문에 게임의 여왕을 요괴라고 처단할 자격이 부족하다. 그리고 게임의 여왕의 처단 방식 자체도 인간의 모습을 한 게임의 여왕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공정한 재판 절차도 없이 여론에 편승해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처단한 마녀사냥에 가깝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21] 외교 부문의 지도자였고 동시에 마법나라 측에서 상당한 권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였지만 limited 내에서 예상치 못한 적의 공격으로 사망하게 되었고 이후 외교 부문은 망했다.[22] 사실 파라미르는 죽은 게 아니었다.[23] 일단 세이버가 성배전쟁에서 승리하면 빌 소원은 나라를 재건하고 싶다. 정확히는 선정의 왕검을 뽑은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에 가깝다. 하지만 이 방식을 쓰게 되면…[24] 이 와중에 호루스는 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