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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0:41

남승하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남정하(南廷夏)
우성(禹成)
본관 영양 남씨[1]
출생 1872년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거성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 부흥마을)[2]
사망 1907년 4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동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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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남두희는 그의 5촌 당숙이다.

2. 생애

남승하는 1872년경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거성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 부흥마을)에서 아버지 남재희(南載熙)[3]회재 이언적의 후손인 어머니 여강 이씨 이재례(李在澧)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4월 영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정용기에게 가담했고, 이후 영해 방면으로 나아가 신돌석 의병대와 연합해 일본군과 접전했다. 정용기가 경주진위대에게 체포된 뒤 귀가했다가 1907년 4월 청송에서 재차 의병을 일으켜 의병을 모집하던 중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되어 1907년 4월 9일 청송군 현서면 화목동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남승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송정공파(松亭公派)-청송 문중 14대손 하(夏) 철(喆) 항렬. 영양 남씨 22세.[2] 인근의 도평리·개일리·월매리와 함께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남두희·남석광·남승철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영양 남씨 청송 입향조인 운강(雲岡) 남계조(南繼曺)의 9대손이며, 거성리 입향조인 남세주(南世柱)의 6대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