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문봉의(文鳳儀) |
생몰 | 1878년 7월 3일 ~ 1937년 3월 3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군 안면 고남리 (現 충청남도 태안군 고남면 고남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서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문봉의는 1878년 7월 3일 충남 서산군 안면 고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9월 안황(安滉)으로부터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취지와 목적을 듣고 이에 가입하여 재무감독 겸 충청지부의 조직을 맡았다. 이후 1919년 대한독립애국단 단장 신현구의 지시에 따라 충청도 일대의 조직 확대와 자금 수합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19년 11월까지 충남 청양군, 논산군, 예산군 등지에 지부 조직을 설치할 수 있었다.1919년 12월 초, 그는 직접 충청도 지역에 내려가 청양군의 정상길 등을 동지로 포섭하는 한편 자금수합 활동도 벌였다. 또한 1920년 1월 하순경 신현구 단장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대한독립애국단이 와해되자 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원(金泰源)과 힘을 합쳐 혈복단(血復團)을 새로이 조직하고 혈복단 충청남도 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대한독립애국단 조직의 전모가 일제 경찰에게 모두 드러나면서 결국 체포되었고,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37년 3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문봉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