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석환옥(石煥玉) |
생몰 | 1898년 10월 4일 ~ ? |
출생지 | 평안북도 초산군 동면 구룡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석환옥은 1898년 10월 4일 평안북도 초산군 동면 구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10월 20일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서 파견된 김여정(金汝正)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고, 같은 날 밤 대한독립단원 이승우(李承祐), 이인식(李仁植)[1]과 함께 초산군 남면 순사주재소와 남면사무소를 공격하려 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10월 24일 오후 12시경, 남면과 동면의 경계인 달악령 산 너머에 집합한 석환옥, 이승우, 이인식, 김병현(金炳鉉), 최성전(崔成典) 등은 남면주재소 공격과 무기 획득, 면사무소 공격과 자금 회득 방법 및 각자의 임무를 결정했다. 석환옥은 주재소에 탕천(湯淺) 순사만이 근무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돌아와 김여정에게 보고했다. 김여정은 주재소 뒷산에서 공격할 예정이었지만 탕천순사의 선제 사격을 받고 도주했다. 이후 석환옥은 이승우, 이인식과 함께 면사무소에 도착해 면서기 이현식(李賢植), 김기준(金基俊), 김기환(金基煥) 등에게 사직할 것을 촉구하고 면사무소 서류, 비품, 장부 등을 파기했다.
얼마 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1년 2월 28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방화, 가택 침입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6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9월 23일에 가출옥했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석환옥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