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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0년 |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도리[1] | |
사망 | 1919년 3월 20일 (향년 49세)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 |
본관 | 진주 강씨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시만은 1870년생이며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도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벌어진 대양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 때 심재기(沈載祺) 등 17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자 다음날 구금자 구출 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인근 면리에 연락해 3월 20일 오후 7시에 합천읍에 모이기로 약속했다. 20일 오후 대양면 마정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강시만은 김영기(金永琪), 심맹권, 손득룡 등 12명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고 500명의 군중을 이끌고 읍내까지 행진했다. 이어 합천경찰서로 가서 심재기 등의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서장은 먼저 해산을 하면 석방하겠다고 말했지만, 결사대와 군중은 이를 믿지 않고 경찰서를 공격했다. 이에 경찰이 총격을 가해 강시만 등 4명이 피살되었다.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강시만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