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병규(朴秉圭) |
이명 | 박방단(朴邦端), 박방세(朴芳世) |
본관 | 밀양 박씨 |
생몰 | 1879년 ~ 1919년 3월 23일 |
출생지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용흥리[1] |
사망지 | 경상남도 합천군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병규는 1879년 생이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용흥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23일 삼가면 시장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군중 1만 2천명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다. 그러던 오후 3시 정금당 앞 광장에서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성토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마지막 연사인 임종봉(林鐘鳳)의 연설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갑자기 헌병이 총격을 가하면서 임종봉이 총탄을 맞고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에 분노한 군중은 도주하는 군중을 쫓아 곤봉과 낫을 들고 경찰주재소와 우편소로 돌진했다. 이때 일본 군경이 총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13명이 피살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박병규는 이때 총탄을 맞고 피살되었다.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박병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