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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2:48

장성원(독립운동가)

1. 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성원2.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장성원

1. 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성원

파일:장성원.jpg
성명 장성원(張聖源)
이명 장중원(張重源)[1]
본관 옥구 장씨[2]
생몰 1897년 1월 16일 ~ 1956년 11월 3일
출생지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리[3]#
사망지 충청북도 괴산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장성원은 1897년 1월 16일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김수백·이태갑(李泰甲)·박내명(朴來明)·신강면·함재원과 함께 청안면 읍내 장터의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들은 오후 2시경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시위를 진행하며,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고 우편소를 순식간에 파괴했다. 이때 그는 김수백, 함재원과 함께 군중 200명과 함께 다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우편소를 습격했고, 우물에 쌓아 올린 돌을 군중에게 건네주어 투석케 했다.

얼마 후 주재소의 경찰과 헌병이 시위 행진을 강력히 제지하며 해산을 권고하자, 그는 신강면, 김수백, 박순옥(朴巡玉), 함재원 등과 함께 "우리는 독립을 희망한다! 너희는 속히 물러가라!"고 외치며 대항하다 결국 체포되었다. 그 후 1919년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괴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6년 11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장성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장성원

성명 장성원(張聖元)
생몰 1886년 ~ 1920년 11월 13일
출생지 미상
사망지 중국 지린성 연길현 유수하자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장성원은 1886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중국 지린성 연길현 유수하자에서 독립군의 경비대원을 맡고 활동하다가 1920년 11월 13일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장성원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형사사건부[2] 23세손 원(源) 항렬.[3] 옥구 장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