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921년 11월 11일 |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동부동[2] (현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 |
사망 | 1996년 12월 17일 |
아르헨티나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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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장덕기는 1921년 11월 11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동부동(현 의주군 의주읍)에서 태어났다.그는 의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한때 조선에서 대장장이로 일한 적 있으며, 일본군 부대에 물자를 판매하는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종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화민국 상하이시로 망명하여 일본어 교사로 근무하다가[3] 1942년 6월부터 한국광복군 지하공작원과 접선해 후방공작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42년 11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에서 활동했으며, 1945년부터는 시안에서 복무했다. 1945년 5월에는 한미합작특수훈련인 OSS훈련을 수료하고 국내정진군 평안도반 제1조에 배속되어 국내 침투작전을 준비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했다.[4]
귀국 후 대한민국 국군에 임관하여 대령으로 예편하였고, 한때 토지개량조합(현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근무하였다. 토지개량조합을 퇴직한 후에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1996년 12월 17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장덕기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1]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에는 張[2]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3] 이때문에 중국어와 일본어가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능통했다.[4] 광복 직후 장덕기는 중국전구(中國戰區) 미군대표단(美軍代表團)의 고문에 선임된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을 비롯해 장준하·김준엽 등과 함께 8월 16일 오전 4시 'C47형' 운수기를 타고 시안 서관(西關)공항을 출발했으나, 산둥반도 상공을 지나던 중 일본군의 마지막 발악에 미군 항공모함이 습격을 당하는 한편 항공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기상 악화까지 겹쳐져 결국 시안 서관공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