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마만봉(馬萬奉) |
이명 | 마영준(馬英俊) |
생몰 | 1894년 8월 10일 ~ 1951년 2월 10일 |
출생지 | 강원도 춘천군 북산면 물로리 |
사망지 | 강원도 춘천군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마만봉은 1894년 8월 10일 강원도 춘천군 북산면 물로리에서 마정삼(馬正三)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7년 6월 6일 의병을 이끌던 부친 마정삼이 일본군에게 참살당하자, 큰형 마도현(馬道賢)과 작은 형 마뇌병(馬雷炳)과 함께 복수를 결심하고 역시 부친이 살해당한 박순구와 마남룡 등을 끌여들어 1921년 9월 강원도 홍천에서 장총단(長銃團)을 조직했다.그 후 마만봉은 1921년 9월 6일 박순구와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에 소재한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해 경찰관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1922년 10월 5일 박순구와 함께 춘천군 동면 품걸리에 거주하는 김영주(金泳柱)의 집에 들어가 일제 원절식(元折式) 12구경 엽총 1자루와 실탄을 입수했다. 또한 1923년 6월 3일에 박순구와 함께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주재소에 근무하는 순사 츠루사키 요시오(津留崎良夫)에게 발포했지만 빗나갔다.
1924년 9월 14일, 마만봉은 마도현, 안이순(安二淳)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륜리에 거주하는 김수룡(金洙龍)에게 자신들이 상해임시정부 위원임을 자처하며 군자금을 요구하여 36원을 받아냈다. 이후 그는 강원도 인제에 있는 가리산(伽里山)을 근거지로 삼고 홍천, 춘천, 양구 등지에서 24차례 군자금을 받아내거나 경찰 관서를 공격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927년 12월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 마만봉은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살인미수, 강도, 강도살인, 가택침입, 강도미수죄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향에서 조용히 살았으며, 1951년 2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마만봉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건국훈장 애국장]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yI8byHcM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