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공성찬(孔成瓚) |
본관 | 곡부 공씨 |
생몰 | 1877년 ~ 1909년 9월 |
출생지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둔리 |
사망지 | 대구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공성찬은 1877년생이며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둔리 출신이다. 그는 1908년 2월부터 김성구(金聖九) 의병장의 부장을 맡아 부하 수십명과 함께 전북 남원, 전남 구례, 옥과, 순천군 일대에서 무장 투쟁을 벌였다. 그해 11월, 그는 전남 곡성에서 일제 순사대와 교전했다. 그리고 1909년 2월 26일 임세묵(林世默) 등 10여명과 함께 무장하고 남원군 두동방에 거주하는 양극중(梁極仲)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고, 3월 1일 남원군 수지방에 거주하는 박해창(朴海昌)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던 1909년 4월 읽본군에게 체포된 그는 5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강도 혐의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항소했지만 8월 17일 대구공소원과 9월 7일 대심원에서 모두 기각되었고, 1909년 9월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공성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