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나사진(羅士辰) |
생몰 | 1883년 ~ ? |
출생지 | 전라북도 고부군 우일면 우산동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 우일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나사진은 1883년경 전라북도 고부군 우일면 우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10월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서 거병한 김영백(金永伯) 의진에 가담했고, 1908년 3월 4일 전라북도 정읍군 단곡리에 주둔한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 공격해 상당한 손실을 입혔다. 또한 그는 같은 해 7월 일본군 흥덕수비대와 교전했고, 9월 21일 방장산 산록의 백계동에서 일본군 헌병 및 순사대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다.1908년 10월 상순, 나상진은 김병백의 지휘 아래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기리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맞붙었고, 11월 상순에는 오현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2월 21일 김영백 및 동료 의병 40여 명과 함께 전라북도 고부군 성포면 봉양리에서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징수했다. 그러나 1909년 초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1910년 3월 1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전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으며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나사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