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 |
출생 | 1891년 |
함경북도 경원 | |
사망 | 1938년 5월 25일 |
소련 하바롭스크 | |
서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그는는 러시아 10월 혁명과 3.1운동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항일 활동에 나섰다. 1921년 3월 전한군사위원회 군사위원이 되었고 동년 5월 고려공산당 상해파 군사부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1921년 6월 자유시 참변 당시 그는 사할린의용대의 중심인물로 고려혁명군의 무장해제에 저항했으며, 이때 약 500명의 무장부대를 지휘했다. 이후 연해주 이만으로 이동하여 11월 전한군사위원회 위원, 1922년 8월 대한혁명통군서와 고려혁명군정의회 군정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일본군이 후원하는 러시아 백군과의 전투를 전개했다. 1923년 경 중국 요하 지역으로 이주하여 1924년 교하에서 대한혁명통군부의 설립에 참여하고 중동 부사령관에 선임되어 활동했다. 원동 해방 전쟁이 종결된 후 법률 과정을 이수하고 하바롭스크주의 검사국에서 일했다. 1936년 1월 21일 원동주 내무 인민 위원부에 반혁명 혐의로 붙잡혀 하바롭스크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4일 소련 내무 인민 위원부 산하 특별 재판소에서 3년을 받고 오렌부르그로 유형을 갔다. 1937년 4월 29일 오렌부르그시 내무 인민 위원부에 다시 붙잡혔다. 1938년 5월 25일 소련 군사 최고 법정에서 사형을 받고 당일 하바롭스크에서 처형되었다. 1959년 2월 24일 소련 군사 최고 법정 결정에 따라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