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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공산주의 정당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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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共産黨
Communist Party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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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공산당의 당기[3]

1. 개요2. 공산당의 역사
2.1. 러시아 혁명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2.2. 제2차 세계 대전 직후2.3. 68 혁명 이후 현재까지
3. 한국의 공산당
3.1. 일제강점기 활동3.2. 해방 후3.3. 한국의 공산당 역사
4. 세계 공산당
4.1. 등재 기준4.2. 헌법에 공산주의가 명시된 국가의 집권 공산당4.3. 헌법상 공산국가는 아닌 국가의 여당 또는 연립여당4.4. 현존 비집권 공산당4.5. 과거의 공산당4.6. 제한 및 금지 여부
4.6.1. 공산당이 현재도 금지인 국가4.6.2. 과거에 제한 및 금지된 국가
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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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산당이란 공산주의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사회주의 정당 가운데 소련의 공식적인 승인을 얻어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공산주의 체계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정당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다. 즉, 소련이 망한 오늘날에는 공산당 역시 기반을 상실한 상태이고 실제로 많은 공산당이 해체하거나 당명과 강령을 개정하여 전혀 다른 성격의 정당으로 변신하였다. 설령 다른 공산주의 정당들이 존재하더라도 더 이상 한 개만 존재하라는 법은 없어져 한 국가 내에서도 여러 공산주의 정당들이 존재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4]

스탈린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 노선의 패배가 소련의 붕괴로서 확실시되고 철의 장막이 거두어지면서 각국의 스탈린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자들은 제3세계 막장국가가 아닌 이상 그저 망상주의자 내지 그걸 내세워서 자기네 밥그릇을 챙기려는 장사꾼 취급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산주의 정당은 사민주의정당으로의 변모를 꾀하였고 일부 국가에서는 소련의 지시에 의해 단 1개만 존재하던 공산당이 우후죽순 난립하게 되었다.

원시적인 형태의 공산주의 정당은 프랑스 혁명 시기의 프랑수아 바뵈프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실제로 공산당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러시아 혁명에 이르러서다. 공산주의나 공산당이라는 이름 자체가 200여 년에 이르는 근대 사회주의의 계보 가운데에서 다른 사회주의 정당과의 차별화를 주장하고 싶어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스스로의 과학성을 자랑할 때도 그랬고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면서 말뿐인 서유럽 사회주의자들을 비웃을 때도 그랬다.

따라서 어떤 집단이나 정당의 이데올로기가 (조직명/당명과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공산주의/공산당이라고 통용되는 성격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려면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사상 가운데에서도 레닌이 주창한 소위 마르크스 - 레닌주의(ML)를 추종하면서 조직적으로는 마찬가지로 레닌이 고안한 민주집중제적 혁명 전위 정당의 구조를 가진 정치조직, 그 가운데서도 스탈린주의나 이를 수정한 흐루쇼프식 현실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조직을 부를 때만 써야 한다.

그러므로 계급 독재나 폭력/평화 혁명론을 포기한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즉 영국 노동당이나,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등의 다른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은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대로 혁명론은 계속 유지하고 있으나 혁명 전위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국가 권력을 분쇄한 후 새로운 형태로 다시 편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할 대상으로 보는 아나키스트 계열 단체들 또한 공산당이 아니다. 혁명 전위를 표방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5]와 무장 혁명론까지도 견지하면서 국가 권력에 대한 분쇄 후 재편성을 추구하지만 스탈린주의나 현실사회주의가 아닌 트로츠키주의 노선을 따르는 단체들도 공산당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쪽은 주로 '사회주의 노동자당', 정당이 아닌 경우에는 '사회주의 노동자 XX'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국가/민족/성별보다 계급을 중시하며 자본주의와 산업 혁명의 발달로 부르주아에게 집중된 생산수단을 박탈하여 공공화한 뒤 노동자가 필요한 몫을 받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실현되기만 하면 이른바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대다수의 민중에게는 전쟁도 없고, 종교도 필요없고, 모두가 형제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겠지만 부르주아나 지주 같은 프티부르주아들은 피 한 방울까지 착취한 다음에 모든 재산을 빼앗고 수용소에 처넣거나 집단농장으로 귀속시켜 반혁명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래야 다른 프티부르주아들도 노동자 계급에게 고분고분해진다고.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유럽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제2인터내셔널이라는 하나의 회의체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볼 때 공산당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분열이 좌파의 일상이긴 했지만...

역사적으로 공산당에 가입하는 것은 꽤나 까다로웠다. 혁명 전 숨어서 활동할 때는 아무나 받아들였다가는 내부에 첩자가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서 인맥을 통해서 가입시켰다. 그러다가 러시아 내전 때 소련에서 당원증을 그야말로 '뿌린'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뿌려진 당원들의 기강이 워낙 헤이해서 문제를 일으켰고 그 결과 일어난 것이 대숙청이었다. 국가가 안정화된 후에는 다시 어느정도 뿌리기 시작했다. 웬만한 유명인은 대다수가 공산당원이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2023년 기준으로 중국에서는 약 9700만 명으로, 전 인구의 7%가 당원이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공산당이라는 말 자체가 높은 확률로 북한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하나의 중국과 비슷한 '하나의 한국'이란 개념이 있어서 '북한'이란 말은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북한을 북한이라고 하지 않고 '공산당' 또는 '북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정작 위쪽에는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없으니 웃기다.[6]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가리킬 때도 '중국'이 아닌 '중공(中共, 중국공산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중국'은 대만으로 천도중화민국[7]을 가리켰다.

2. 공산당의 역사

2.1. 러시아 혁명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서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미 선거를 통한 집권에 근접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사회민주당(SPD)은 오랜 역사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정통성, 수많은 당원과 전국에 걸친 튼튼한 당 조직, 카를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 지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도자들을 갖춘 그야말로 당대 서유럽 최강의 정당이었다. 이들이 모여서 열나게 치고박고 싸운 제2인터내셔널은 사회주의를 넘어 당대의 사상적 흐름을 주도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회주의자들은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자는 기존의 합의도 산산조각내 버린 채 서로 상대편 국가의 전제적 통치를 비난하며 애국자로 돌변했다. 사회주의도 결국 근대 국가 체제의 안에 있었다는 좋은 사례만을 남긴 채 전쟁은 끝났고 전후 이들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쟁 대신 혁명을 선택한 소비에트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레닌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러시아에서 그때까지 이론적으로만 존재했던 사회주의 공산국가가 탄생하자[8] 이미 기존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에 환멸을 느끼던 많은 좌파 지식인과 노동자들은 일단 덮어놓고 러시아와 레닌의 편을 들었다. 이에 독일을 필두로 서유럽, 중유럽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국가에서 공산당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전후의 우울한 사회상에다 기존 사회주의 정당들이 움츠러든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들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에 공산주의 정당들만 급격히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만. 이 시기에 사회주의 이념이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로 널리 전파되면서 중국일본, 그리고 물론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공산당이 나오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시기 공산당 최대의 위험 요소는 다름 아닌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집단지도체제에서 정권을 잡을 때 트로츠키, 부하린,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등 적어도 스탈린 자신보다는 훨씬 똑똑하고 활동력 넘치는 동지이자 경쟁자들을 그 특유의 음험한 책략으로 모두 제거하고서야 레닌의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뒤가 구린 스탈린은 특히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이 컸던 트로츠키의 지지세력을 말살시키기로 마음먹고 "한 국가에 존재할 수 있는 혁명 전위 정당은 오직 단 1개의 공산당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 여러 정당 가운데 어느 정당을 공식적인 공산당으로 인정할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일관성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지침을 내렸다. 이 지침 탓에 각국의 공산주의 세력은 자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게 된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든 스탈린의 간택을 받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떠는 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

어쨋거나 다른 사민주의 정당과 타협하지 말라고 했다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자기 말을 우걱우걱 쳐묵고 사민주의는 고사하고 중도 자유주의 세력까지 끌어모아 인민전선을 결성하라고 하질 않나, 그렇게 인민전선으로 집권하자마자 보수파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난 스페인(스페인 내전)은 나치 독일 눈치 보느라 찔끔찔끔 도와주는 척만 하질 않나[9], 그러다가 좀 도와주나 보다 싶더니 갑자기 총구를 돌려 인민전선 내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공격하는 팀킬을 지시하질 않나[10], 스탈린이 1930년대에 저지른 짓들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11]

당장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라는 유럽 대륙의 메이저 열강 세 나라에서 스탈린 장단 따르느라 공산당이 좀 더 제도 정치권에 가까웠던 온건 사회주의 정당, 경제적 정책과 별개로 역사적 공화주의, 급진주의를 표방하던 자유주의 계열 정당들과 하루 아침에 연대하자 → "사회 파시스트" 개드립 → 다시 연대하자 갈팡질팡하고 그 와중에 하부 조직들은 (다른 비공산주의 좌파 정당 관점에선) 막 훔쳐 가려 들면서 정치적 신뢰가 파탄나서 이탈리아, 독일에선 파시스트들이 솟아 오를 때 이를 막아야할 범 좌파권의 연대가 콩가루처럼 무너지게 만들었고 프랑스에서도 인민 전선 정권 창출이 더디게 했으며 그 와중에서도 내부 혼란과 침몰에 큰 기여를 했다. 아예 내전 중 내전이라는 '바르셀로나 5월 사태'라는 막장판을 초래한 스페인이야 말 할 것도 없고 하여튼 당시 세계 정치계에서의 지분, 지식인 사회에서의 호응, 대중적 조직력으로 보면 엄청난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범 좌파권이 제도권 온건 사회주의 계열, 코민테른 계열 국제 공산당, 아나키즘 진영 등으로 뿔뿔이 나누어져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망하게 하는 데 크나큰 기여를 했다.

물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이란 형태로 명목상이나마 공산주의 진영은 세계를 양분하게 되었지만 대전 후 공산주의 '진영'에 편입 된 지역의 태반은 전간기 사회주의자들의 투쟁과 달리 자발적인 혁명이 아니라 그 전 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이 하던 짓 그대로 답습한 소련이 자본주의 열강들과 사이 좋게 지도를 나눠 먹으면서 진출한 소련군이 연줄 있던 현지 출신 혁명가 몇몇을 '데리고 온' 공산주의였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공산당이 1930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덕택이었다. 독일이 북으로는 노르웨이서부터 서로는 프랑스, 동으로는 폴란드, 남으로는 그리스까지 전 유럽을 제패했을 때 독일의 세력 하에 놓이게 된 타국인들은 저항은 하고 싶은데 마땅히 참여할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먼저 각국의 공산당이 반독 저항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독소 불가침조약의 체결 당시 독일 점령지의 공산당 조직들은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고 나치의 점령 통치에 침묵 내지는 암묵적인 협조로 일관한 까닭에 독일군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 장기간 세력을 보존하며 미래에 대비할 수 있었다.

독소전쟁이 터지자 독일 점령지의 공산당 조직들은 곧장 지하로 들어가 처절한 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국내에서 레지스탕스를 앞장서서 주도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세력이 바로 프랑스 공산당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한 후 이탈리아 공산당이 주도하여 반독 무장 항쟁을 벌였으며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로 격렬한 무장 저항운동을 벌였다. 오히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에서는 공산당의 세력이 미미했지만 이 지역은 소련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소련의 후원을 업은 공산주의 조직들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는 국공합작, 국공내전, 중일전쟁대장정 문서 참조.

이러고 보니 1945년이 되자 미국과 영국을 뺀 전세계에서 붉은 깃발이 휘날릴 가능성이 매우 올라갔다. 그러자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이 하는 짓거리는 비슷해서 미국과 영국은 스탈린에게 핵무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빅딜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세계지도를 놓고 땅따먹기를 했는데 스탈린이 오케이 싸인을 날리자 실제로 세계가 저렇게 나뉘어졌다. 당시 스탈린은 "몸빵우리가 다했는데 물주는 미국이니 폴란드 정도까지만 어떻게든 먹었으면..."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미국과 영국은 "실질적인 몸빵은 쟤네가 다했으니 유럽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할 텐데... 프랑스부터 서쪽까지만 어떻게든 지켜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이 제시한 "독일 반띵"(...) 라인은 마침 서로의 기준보다 조금씩 많았기 때문에 서로 놀라며 후딱 수락해 버렸다.[12] 어쨋거나 저 약속은 잘도 지켜서 스탈린은 그리스 공산당이 영국의 후원을 업고 전직 나치 괴뢰 점령 정권의 부역자들을 대거 받아 들인 그리스 임시정부에게 떡실신하는 꼴을 그냥 구경만 했고 윈스턴 처칠도 전쟁 내내 영국을 지지한 데다 상당한 규모로 대독전쟁에 참전하기까지 한 폴란드 망명 정부를 나몰라라 배신했다. 이건 뭐... 어른의 사정 게다가 김일성이라는 코흘리개는 저런 어른의 사정도 모른 채 한반도를 지가 다 쳐먹으려고 싸움을 걸었고 그 결과 이 싸움에 미국이 끼어들면서 아주 제대로 난리가 났다. 스탈린은 그래도 북한 정도만 쥐고 괜찮아했지만 정작 싸움판이 벌어지자 자기는 손대기 싫어서 마오쩌둥에게 싹 떠넘겨 버렸다.[13] 그렇게 해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엄청난 주먹질을 해댔고 이 사이 스탈린은 유럽 전선을 굳건히 했다.

여하튼 이 결정을 바탕으로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동유럽 각국에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단숨에 공산주의를 채택한 국가 수가 급증했으며 서방세력에 포함된 서유럽 각국에서도 공산당의 위신이 크게 신장되었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과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전후 선거를 통해 순식간에 제1야당 규모로 성장하였다. 실로 인류가 가장 공산주의에 근접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시작되는 순간 공산주의는 그 전성기를 다했다. 더군다나 각지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운동을 원조할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적 딜레마에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국익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로만 듣고 꿈에서만 보던 소말리아, 모잠비크, 앙골라 같은 아프리카의 수많은 듣도 보도 못한 민족과 나라들의 공산주의 혁명 운동을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일일이 규합해 주고 지도해 가면서 지원까지 해 줘야 했다. 물론 국가에 따라서 이득이 된 일도 있는데 소련은 서방세계의 두목인 미국의 뒷통수를 언제든지 때리기 위해 미국의 등짝에 위치한 쿠바에서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할 때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쿠바를 공산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냉전 초중반기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내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각국 식민지제3세계 국가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기만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면서 서방세계 국가들이 식민지를 진압하려다 피를 너무 많이 보았고 소련이 가진 항공우주 기술, 국방기술은 냉전 동안 벌어진 스푸트니크 쇼크, 6.25 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등에서 미국에게 큰 공포와 출혈을 내게 만들었다. 소련 특유의 선전/프로파간다적 정치와 폐쇄성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련의 출혈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소련은 공산권 동지 국가들을 돕는 과정에서 미국에게 피해를 주긴 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이득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공산주의의 큰형님 격이었던 소련은 2차대전 이후 과장을 보태면 (무력을 써서라도) 세계의 절반을 거의 휘하에 두는 셈이었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나 위성국가 굴려먹는 데는 이골이 난 서유럽 열강들과 달리 해외 진출 경험도, 국제적인 리더 경험도 없는 소련의 동유럽 정책은 동유럽 국가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반발을 무력을 내세워 진압하면서(1956년 헝가리 혁명, 프라하의 봄) 국방비 지출이 늘고 소련의 위신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2.3. 68 혁명 이후 현재까지

서유럽에서도 거대 정당으로 성장한 공산당들이 실상 규모가 커진 만큼 체제 내에서의 안락한 위치에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68 운동으로 불리는 기존 체제에 대한 전후 세대의 격렬한 저항 앞에서 공산당은 오히려 기존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총대를 맸다. 공공시설을 점거한 학생들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인신공격한다든지, 공산당 주제에 노조에게 파업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이게 공산당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14]

프랑스 공산당이야 이런저런 논란에도 그동안 쌓아 온 도덕성의 우위-결정적으로 나치에 대항했던 공적-가 있어서 아직 세력 기반이야 든든했지만 이런 사건들이 동유럽에서 소련이 무력으로 시민들의 요구를 짓밟은 사건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공산당과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베트남쿠바에서 공산주의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것이 미국에게 실점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소련에게 득점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약체화된 서구 각국의 공산당은 1970년대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역습에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백기를 들었고[15] 동유럽 공산국가도 1989년 도미노처럼 붕괴하고 소련마저 1991년 홀라당 망하면서 공산당의 수명도 다하게 되었다. 서유럽 최대의 공산당이던 이탈리아 공산당(PCI)이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좌파민주당으로 재창당을 선언한 것이 하이라이트였다.[16][17]

공산당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하고 위험한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그게 바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인데 이 사고가 나는 바람에 소련은 혼비백산했고 이 사고를 수습하느라 사람도 너무 많이 죽고 돈도 너무 많이 탕진하고 말았다. 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버티고는 있었는데 이 사건이 결정타가 되어 소련은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1990년을 기점으로 소련은 붕괴되고 말았으며 이에 따라 냉전은 종식되었다. 그런즉, 1990년을 기준으로 이전까지는 서방의 자본주의의 맞수로서의 기능을 지녔지만 이후에는 그저 명맥만 이어나갈 뿐이 되었다. 공산당의 붉은 옷이 군복이었다가 한낱 코스튬 플레이어의 아이템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도 각국에 공산당은 잔존하고 있으며 공산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가 급격히 도입되면서 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유럽에서는 공산당이 다시 세력을 키우거나 당명을 바꿔서[18] 다시 집권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라는 사상적 지향 자체가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고 노조 관료 내지는 진보적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의 덕질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남아 있는 공산당이 과거의 공산당과 같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과거 공산당이 차지하고 있던 극좌 포지션은 전부 다 트로츠키주의 내지는 '스탈린에 비판적이면서 트로츠키주의도 아닌' 레닌주의 정당 혹은 정치세력이 다 털어 갔다(...). 정말 근본적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극좌적 지향과 강령을 갖고 활동하고 그런 성향의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는 정당 혹은 정치세력은 전부 다 그쪽 성향이다. 쉽게 말해 극좌 성향 대중들은 아무도 공산당 지지하지 않는다! 즉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리즈시절 자기네들의 최대 라이벌들에게 집을 털린 셈이다. 비록 대침체 이후로 사회주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다시 고양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공산당의 자리는 없는 거나 다름없는데 공산당한테 '수정주의자'라고 욕 먹던 좌익 개량주의자들이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욕 먹던 비스탈린계 레닌주의 정치세력이 21세기의 사회주의 운동을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19]

서유럽에 남아있는 공산당들은 기존에 주장하던 공산주의는 망했는데 생태주의페미니즘과 같은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자니 다른 좌파 그룹들에 비해 너무 구닥다리인 데다 과거의 실패가 있어서 사람들이 안 쳐다보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동유럽의 공산당은 확고한 강령과 특정한 사상적 지향이 있다기보다는 개량주의적인 정책 좀 들고 나와서 공산주의 시절을 '좋았던 옛날'로 추억하는 이들의 표를 노리는 보수파 정당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상황은 영 좋지 않은 편이다. 전술했듯 진짜 '공산주의'적 소신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안 찍는(...)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자가 공산당을 안 찍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자리는 동유럽에 진출한 트로츠키주의 혹은 비스탈린 레닌주의 정당이나 단위들이 차지하고 있다. 1차 인터내셔널 시절 그 자체부터 대양과 대륙을 넘나들며 지긋하게도 싸워 온 아나키스트들도 그 특유의 의회 정치 불참여를 불구하고 남유럽이나 중남미 몇몇 나라에서 재야 노동, 진보 운동권에서 여전히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보면 이건 아예 권력을 잡아 본 적도 없는 배다른 형제격 원쑤에게도 밀린 셈이다.

독일의 좌파당이 구 동독의 공산당(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을 계승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주축이 된 빅 텐트 정당에 가깝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전반기에 걸쳐 중남미 국가에서 좌파 정당들이 세를 넓히며 칠레, 브라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우루과이, 페루, 파라과이에서 공산당이 주요 중도좌파 내지 좌파정당들과 연합하며 장관직을 내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공산당이 주도해서 정권을 잡은건 아니기 때문에 큰 존재감은 없다.

이 와중에 현재의 중국공산당과 같은 미묘한 변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단 현재까지는 소수의 집단지도층이 주도하여 국유 경제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개발독재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공산당은 과거에는 급진 폭력혁명 노선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경착륙을 추구했지만 60년대 이후 평화혁명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연착륙를 추구하고 있으며 2013년 이후 꾸준히 10%~15% 정도의 득표율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민주적 공산당이다.

미국 공산당은 사회당(1972년 해체)과 달리 아직도 존재하는 정당이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쇠퇴한 데다, 현재 하원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약소정당 중 하나다. 선거제도가 개편된다면 모를까 양당체제가 확실히 잡혀 있는 현재 미국 정치계에서의 입지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20]

네팔에서는 네팔 공산당(마오주의 센터)이 네팔의 왕정 전복과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마오주의 공산당에 마르크스 레닌주의 공산당과 주체사상 공산당까지 있어 여러 공산당이 경쟁하는 구도다.

현재 네팔, 가이아나, 페루에서는 공산당이 다당제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독재라는 주장에 대한 명확한 반박으로 널리 쓰인다.

몰도바키프로스에서도 공산당이 집권한 예가 있다.[21]

3. 한국의 공산당

3.1. 일제강점기 활동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14px-Hammer_and_sickle.svg.png 일제강점기 한국 공산주의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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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산당의 역사는 고려공산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년에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문창범의 주도하에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소련)이 설립되었고 192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내 좌파와 이동휘의 주도로 상해파 고려공산당(중국)이 설립되었다. 이르쿠츠크파가 볼셰비키 속성이 강했다면 상해파는 중국공산당처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단체 성향이 강했다. 그리고 레닌한테 200만루블 타내기

해외의 한인 공산당도 정통성 문제를 두고 파벌대립을 하였는데 제1차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편 임시정부와 항일무장투쟁 단체에서 용공-반공을 둘러싸고 대립이 일어났다. 우선 임시정부에서는 김구를 비롯한 보수층은 혁신세력 및 소장파들이 공산당을 받아들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러한 갈등은 제2차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에서 증폭되었다. 결국 고려공산당을 만든 이동휘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쫓겨났고 심복 김립은 상해 한복판에서 김구가 보낸 청년들에게 암살당했으며 고려공산당 회원 여운형은 동남아로 떠나 버렸다.

한편 무장투쟁 쪽에서도 용공-반공의 대립이 있었다. 반공성향이 강하여 중국 국민당군과 협력하려고 했던 이범석, 지청천의 한국독립군, 중국 공산당군과 협력하려고 했던 김두봉의 조선의용군 세력은 용공-반공 문제를 두고 합작을 꺼렸고 김원봉은 사상보다 항일투쟁과 민족해방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여 국공합작 시기에 양쪽의 군사협력을 추진하였다.

1920년대 이후 국내 독립운동은 공산주의자들이 이끌었다. 조선공산당원 및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가들은 6.10 만세 운동광주학생항일운동과 그 연장선인 경성 여학생 운동, 혁명적 노동조합, 농민운동 등의 대중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가 뒤늦게 사회주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게 된 데에는(중략)사회주의자로 분류되는 혁명가 대부분이 계급 혁명에 앞서 민족 혁명을 주장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온몸을 바쳐 싸웠다는 사실이 역사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 하나둘 밝혀지면서 포상의 근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략)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조차 그 출발점은 사실상 민족주의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운동사 연구를 주도해 온 몇몇 연구자들은 사회주의 운동이 코민테른과 소련의 지도 아래 계급 혁명을 추구한 것으로 보았다.(대표적인 보기가 서대숙,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등이다.) (중략) 그러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이 꿈꾼 것은 계급 차별이 없는 사회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하게 당시 사회주의자들을 혁명 운동으로 이끈 것은 민족 해방에의 열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은 민족 문제 해결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민족 해방이었다. 민족 해방을 이룬 뒤 계급 해방을 이루자는 일종의 2단계 혁명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자들이 이전부터 존재하던 독립 운동의 한 분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 고양되고 있는 국제 혁명 운동의 분위기를 적극 활용하려고 한 일부 혁명적 민족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새로운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민족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벌이다가 사회주의를 수용하게 된 사회주의자들에게 운동의 일차적인 과제는 독립이었다. 민족 해방을 위한 새로운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회주의 운동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출신 배경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상당수가 사회주의를 수용하기 이전에 이미 독립 운동에 종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준식, 독립운동가 김한 학술회의 기조발제
현재 세계 정세는 식민지 민중 대 제국주의 군벌의 투쟁과 무산자 계급 대 자본가 계급의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국주의 군벌에 대한 식민지 민중의 투쟁은 민족적 정치적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자본가 계급에 대한 무산자 계급의 투쟁은 계급적 경제적 해방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식민지에 있어서는 민족 해방이 곧 계급 해방이고 정치적 해방이 곧 경제적 해방이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식민지 민족이 총체적으로 무산자 계급이며 제국주의가 곧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당면한 적인 침략국 일본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인 모든 권리를 탈환하지 않으면 죽음의 땅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형제여! 자매여! 눈물을 그치고 규탄하라! 전 세계의 피압박 민족과 무산자 대중은 모두 함께 정의의 깃발을 들고 우리와 함께 보조를 맞춰나갈 것이며 붕괴하고 있는 제국주의의 하나인 일본 지배 계급도 운명이 다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명백하다.(중략)

형제여 자매여! 최후까지 싸워 완전 독립을 쟁쥐하자! 혁명적 민족운동자 단체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조선공산당이 기획한 6.10 만세 운동의 전단[22]
공산당 재건운동가들이 대중 속에서 활동한 결과 대중에 뿌리내린 지도중심을 형성하고 점차 공산주의자들이 민족해방운동의 주도권을 획득해 갔다. 지역과 대중에 뿌리박은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해방 후 각 지역에서 인민위원회나 전국노동조합평의회 등이 급속하게 결성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박한용, 일제강점기 조선 반제동맹 연구,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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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정당
대한제국 ~ 미군정
(1897 ~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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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한반도가 38선으로 갈리고 조선공산당 본국은 남한에 있었고, 북한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치되었다. 조선공산당은 대중으로부터는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최대 정당이 되었고 노동운동으로 노동자 조직을 만들어 두어 조직력이 독보적이었다. 조선공산당의 공식 입장은 지금은 사회주의혁명의 단계가 아니며 부르주아와 손잡고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 중앙이 공식 채택한 8월 테제는 무엇보다 사회주의 세력의 전통적 혁명론을 수정하여 평화혁명론, 곧 평화적인 사회주의 이행전략을 구체화하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제시기 이래 사회주의 세력의 일반적인 혁명노선은 무장봉기 노선이나 폭력혁명론이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세력의 전략전술에서 평화혁명론의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거나 부정되어 왔지만, 해방 후에는 조선공산당의 혁명이행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평화혁명론은 기존의 전통적인 무장봉기전략을 철회하고, 평화적인 방식의 국가건설 전망을 도출하는 근거가 되었다.
(중략)
평화혁명론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가권력 장악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선거주의 이행노선에 가까웠다. 실제로 사회주의 세력은 정부수립의 방식으로 선거를 고려하고 있었다. 곧 인공수립이나 미소공위를 통한 정부수립의 마지막 절차도 총선거였다.
김무용,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노선과 국가건설 운동, 2005, p55~57
사회주의혁명의 과업과 성질을 운운하는 것과 같은 극좌적 경향과 싸워야 한다. (중략) 우리가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의 중요 과업(완전 독립과 토지 혁명)을 완전 해결은커녕 이제 시초의 첫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처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략)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8월 테제

그러나 이후 좌우합작운동에서 박헌영은 여운형과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심하게 다투었다. 박헌영은 미국이 공산당 계열을 고립화시키려는 전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좌우합작을 반대했고 실제로 고립화 전략이 맞았다.
공산주의자들의 역할은 축소 내지 고립화되어야 함
공산당은 1/16~2/16의 역할을 갖게 하거나 고립화
과도입법기구안#
좌우합작은 비록 공산당의 고립화 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동시에 이승만•김구로 대표되는 이른바 극우세력을 정치의 중심에서 배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중략) 중간파가 주도한 합작운동은 좌우대립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수립한다는 점에서 극좌극우를 대체하는 대안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실주의 입장에서는 실현가능성이 낮았다. 무엇보다 좌우합작운동을 대리하고 있는 김규식•여운형의 힘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극우극좌세력에 지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중략) 임시정부 수립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사회주의세력이 배제된 중간파 집단의 대표성을 소련이 수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김무용,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노선과 국가건설 운동, p185~186

이전부터 여운형 등 좌익 고위 정치인은 수차례 방북하여 소련 인사와 김일성과 논의하였는데 소련은 좌우합작을 반대하고 좌익 통합을 원했다. 박헌영, 김일성, 소련이 같은 입장이었다. 김일성은 직접 좌익 정당 통합을 하라고 여운형을 설득했고 여운형은 본래 좌익 정당 통합에 반대했으나 김일성에게 설득당해 남로당을 만든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귀하와 박헌영, 백남운 및 기타 저명한 정치인들의 지도하에 좌익 정당들의 합당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만일 이 사업이 우리에게 힘겨운 것이라면 일시적으로 중지해야 한다.”

김일성의 이 발언은 여운형의 아픈 곳을 건드렸습니다. 여운형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 안을 돌며 한참 만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합당이 우리에게 힘겨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산당, 인민당, 신민당을 로동당으로 합당할 것이다. 남조선으로 돌아가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을 완수해 낼 것이다. 나는 로동당의 지도자가 될 것이고 우리 당은 남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당이 될 것이다. 나는 미국인들이 나를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체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9월 총파업의 지도자를 체포하려 한 결과를 보고 있다.”
로마넨꼬가 스티코프에게 보낸 편지 중#
김일성이 입법기관 참여에 대해 반대하자 여운형은 한 발짝 물러섰다. 그(여운형)는 "미국에 미소를 지으면서 다른 한편 그들을 치는 화전양면 전술을 당의 노선으로 채택해야 한다"며 북로당이 반대하면 입법기관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당신이 좌익들로 하여금 입법의원에 참가하지 않도록 충고한다면 나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겠다. 서울로 돌아가서 남로당 창당을 위해 일하겠다. 만일 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남로당을 창립할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거의 당명 아래서 그것을 만들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근로인민당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남과 북의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전당대회에서 당의 이름을 정하면 될 것이다." 이후 두 사람(여운형과 김일성)은 소련의 세계정책과 조선문제 해결과정에서의 역할 등에 논의했다. 두 사람은 "조선은 소련의 원조 하에서만이 독립을 얻을 수 있다"고 합의했다.
<로마넨코의 보고서> (인용은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 p197의 번역임.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번역)
여운형: 조선은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은 아직 해방되지 않아 여기에 비합법적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넨꼬: 어떻게 해방이 안 됐습니까?
여운형: 해방이라고 되기는 했지만 미국인들로부터 다시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로마넨꼬: 왜 그렇습니까?
여운형: 최근 남조선의 반동세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넨코 소장과 여운형의 미소공위 재개문제 논의

김철수, 강진, 서중석, 이정윤, 김근, 문갑송 등 공산당 대회파는 남로당에 대항해 사회노동당을 만들였으며 여운형은 사회노동당에 이름은 올렸지만 박병엽 증언을 봐도, 스티코프 일기를 봐도 사회노동당과는 선을 그었음을 알 수 있다. 여운형은 사로당을 해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여운형이 김일성•김두봉에게 보낸 편지(1946.11.30)
내가 11월 16일에 보내 편지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하는 그 보고사항의 연속입니다.(중략) 나는 좌익진영의 통일이 중요한 문제이며 당내 파쟁을 중지시킬 최선의 방법은 사회노동당을 해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의 지도분자인 몇몇 은퇴한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당으로 복귀할 것입니다. (중략) 강진과 백남운은 합동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끝까지 싸울 테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박병엽 구술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 p215

여운형과 김일성의 의도와 달리 사로당 관계자들이 남로당과 갈등하자 김일성과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근로인민당 창당으로 대응하였다. 즉, 사로당의 공산당 대회파가 남로당과 계속 갈등하여 좌익 통합이 안 되니까 여운형을 중심으로 뭉치는 근로인민당을 만들어 좌익 통합을 하라고 김일성이 여운형을 설득한 것이다.
김일성은 백남운에게 사로당에서 탈당한 뒤 남로당으로부터 배척당한 사람들이 여운형을 중심으로 재집결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이미 했었다. 김일성은 여운형에게 백남운과 공산당 대회파 출신의 이영, 나아가 장건상같은 중도세력까지를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로당 지도부는 여운형에게 사회노동당을 완전히 해체한 바탕 위에서 몽양이 나서서 보다 대중적인 정당을 결성해야 한다고 설득했던 것이다. 북로당은 여운형에게 공산당 대회파 출신들 가운데 종파분자들을 새 당의 중앙간부로 뽑아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당 강령에 대해서는 이전의 인민당•신민당 강령의 수준이면 될 것 같다는 의견교환도 있었다. 북로당 지도부는 특히 몽양에게 사로당의 공식 해체과정을 밟는데 힘써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몽양도 이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약속을 하였다.
여운형은 사로당 출신들 가운데 남로당에 입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결집시켜 2월 26일에 근로인민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인민당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공산당 대회파 출신들을 당에 끌어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북로당이 개입하게 됐던 것이다.
박병엽 구술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 p226~236

스티코프 일기나 박병엽 증언록을 보면 박헌영뿐 아니라 여운형의 의사결정에도 평양과의 의사교환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로인민당은 북로당이 개입해서 만든 정당이다.

하지만 당시 미군정 체제에서 공산당 활동이 용이할 수 없었고 남로당의 활동은 큰 제약을 받았다.[23] 반공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정부 요직에 있는 상황에서 무자비한 색출이 진행되어 남로당에 호응했던 사람들 혹은 남로당에 몸을 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까지 학살당하거나[24], 월북하거나[25] 지하로 숨어 버리면서 남로당은 제1공화국 때 사실상 공중분해되었으며 6.25 전쟁까지 거치게 되자 수십 년간 국시는 반공이 되었다.

북한은 앞서 중국과 소련 등지에서 활동했고 용공의 입장에 있었던 빨치산 부대들이 해방 후에 들어왔고 소련군정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웠다. 북한도 공산당이 그렇듯이 무수히 많은 파벌이 있었지만 전술했듯이 김일성은 종파주의 숙청 명분을 내세워 김일성주의 아래 빨치산파[26]를 제외한 모든 파벌들을 숙청하여 사실상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해 김일성-김정일을 위시한 조선로동당 유일 체계를 확립했다.

3.3. 한국의 공산당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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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정당이 여당으로 집권 중인 국가 (: 연립정부의 일원)
붕괴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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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 공산당

4.1. 등재 기준

4.2. 헌법에 공산주의가 명시된 국가의 집권 공산당

4.3. 헌법상 공산국가는 아닌 국가의 여당 또는 연립여당

4.4. 현존 비집권 공산당

4.5. 과거의 공산당

4.6. 제한 및 금지 여부

4.6.1. 공산당이 현재도 금지인 국가

해당 항목에는 법적으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금지된 국가들만이 포함된다. 단지 성향은 공산당에 가깝지만 당강령이나 이름에 공산주의가 들어가지 않는 정당들은 공산당으로 보지 않고 그 정당이 해당나라에서 존재하거나 활동한다고 하여 공산당이 합법이라고 보지 않는다.

4.6.2. 과거에 제한 및 금지된 국가

5. 기타

6. 관련 문서


[1] 까무니스찌취스까야 빠르찌야[2] 일반적인 공산당을 이를 때는 Компартия(꼼빠르찌야)로 줄이기도 한다.[3] 깃발에 그려져 있는 인물은 블라디미르 레닌이다.[4] 인도, 네팔, 그리고 구색정당이긴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이에 해당한다.[5] 트로츠키주의에서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는 무장한 노동계급 그 자신에 의한 것이며 스탈린주의에서 말하는 노동계급과는 구분되는 관료 집단에 의한 것이 아니다. 트로츠키주의 쪽에서는 스탈린주의나 현실사회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름만 도용한 짝퉁이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6] 사실 조선로동당의 전신 중에 조선공산당이 있었지만 그것도 북한이 나오기 전이다.[7] 주로 '자유중국'이라고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전까지의 한국처럼 '자유'롭지 않았던 게 함정이다. 물론 당시 중화인민공화국문화대혁명 같은 희대의 삽질을 하고 있었던지라 여기에 비교하면 자유의 냄새는 맡을 수 있는 수준이긴 했다.[8] 최초의 공산주의 정부였던 파리 코뮌은 단지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그것도 며칠밖에 존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로까지는 쳐주지 않는다.[9] 그것도 독일 국내에서 나치의 탄압으로 독일 공산당이 사실상 와해된 와중에도 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10] 이것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도 잘 묘사한다.[11] 중국공산당이 이런 이오시프 스탈린의 공격을 극복하고 결국 내전에서 승리한 단 둘 뿐인(나머지 하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은 스탈린이 간섭하기엔 중국이 모스크바에서 너무나 먼 곳이었고 스탈린이 파견한 정통 모스크바 공산주의자들이 실제로는 무능의 극을 달려 실권하고 마오쩌둥과 같은 토종 공산주의자들이 중국내 혁명적 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유고슬라비아는 냉전기에도 독자행보를 폈다. 한편 북한은 후에 주체사상을 내세우기 시작했다.[12] 이 상황은 한반도에서도 똑같이 전개되어 경계선이 북쪽에 그어질 것이라고 보던 소련, 까딱하면 한반도를 먹힐 거라고 생각하던 미국은 또 38선이라는 중간지점을 내세우고 양쪽 다 냉큼 인정하면서 38선이 그어졌다.[13] 물론 알음알음 북한군중공군에게 무기는 엄청나게 제공해 줬다. 막상 정전협정 조인 전에 떡실신하긴 했지만[14] 68 운동을 잘만 받아먹었다면 결국은 서유럽의 공산화란 어마어마한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실패했더라도 자본주의와 기성세대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실히 굳힐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서유럽의 공산당은 이미 물이 흐려진 이도저도 아닌 상태였고 결국 최고의 기회가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15] 그나마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과 손을 잡아 1981년에 드디어 1940년대 이후 오랜만에 집권하긴 했지만 연립대상인 사회당에 밀려 당세가 크게 쇠퇴하였다. 지금은 타 좌파 세력과 손을 잡아도 하원에서 단 10석을 확보하는 정도다. 프랑스 하원의 총의석은 577석임을 감안할 시 100석 넘게 확보했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16] 이 때 해산을 결정한 마지막 전당대회가 볼로냐에서 열렸기 때문에 아직도 유럽 각지에서 볼로냐 꺼져 등의 낙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17] 그래도 몇 년 뒤에 드디어 만년 야당 신세에서 벗어나 집권하긴 했다. 상대방이 베를루스코니라는 게 문제였지만...[18] 루마니아 사회민주당, 불가리아 사회당, 폴란드 민주좌파연합, 체코 보헤미아 모라바 공산당, 슬로바키아 방향-사회민주주의, 헝가리 사회당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체코를 제외하면 모두 사민주의로 방향을 수정했다.[19]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로 well-partition 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탈린은 스탈린대로 까면서 트로츠키에 대해서도 극좌 모험주의라며 비판하는 양비론적 레닌주의자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남한 운동권은 양비론적 레닌주의가 가장 우세하다.[20] 자유지상주의 우파 정당인 자유당이나 녹색주의를 내세우는 녹색당도 지방의회 선거에서나 겨우 당선자를 내는 수준으로, 중앙선거에서 당선자를 내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21] 몰도바 공산당은 공산당이라기보다는 친러당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키프로스 '공산당'의 진짜 이름은 노동인민진보당(AKEL)이다.[22] 출처:안재성,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23] 대구 10.1 사건 참조[24] 여수·순천 10.19 사건, 제주 4.3 사건, 보도연맹 학살 사건 참조[25] 이들은 북한에서 남로당파를 형성했다.[26] 라고 쓰고 김일성파로 읽는[27] 영어 위키백과에 공산주의 정당으로 서술되어 있다.[28]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진 않지만 사회주의를 강렬히 표방하기 때문에 당 내 의원들도 공산주의를 어느정도 생각 할 수 있다.[29] 박헌영, 이승엽 등[30] 허가이, 정상진, 남일, 방학세 등. 방학세는 )허가이와 김일성의 갈등 때 김일성에게 줄을 서 소련파 선배들의 숙청에 앞장선 덕분에 나중에 내무상, 중앙재판소장 등의 요직을 지냈다.[31] 김두봉, 무정, 최창익, 허정숙 등. 허정숙은 허헌의 딸로, 연안파였다가 김일성파로 건너가서 숙청되지 않았다.[32] 김일성 등, 이후 심화조 사건 때 대부분 숙청당한다.[A] 무정부 공산주의에 입각하여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A] 무정부 공산주의에 입각하여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여당] [36] 1994년 이후 항상 아프리카 국민회의에 정권에 협력하며 장관직을 맡아왔다.[여당] [여당] [여당] [40] 북한이 일당제 국가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북한도 헌법상 다당제 국가이며, 실제로 야당도 존재한다. 물론 관제야당이다.[신임과보완] [42] 아와미 연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에 참여[43] 노동자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에 참여[44] 수마르 연합에 속한 좌파연합 일원으로 스페인 사회노동당 주도의 연립정부에 참여[신임과보완] [신임과보완] [47] 세르비아 진보당세르비아 사회당의 연립정부에 참여[48] 이름이 같은 다른 정당.[49] 바트당이 주도하는 민족진보전선 연립정부에 참여[50] 모두를 위한 전선의 일부[51] 사회융합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에 참여[52] 인간적인 콜롬비아가 주도하는 연립정부에 참여[53] 탈레반 집권 이후 무장단체로 부활하였다.[54] 1956년 해산된 독일공산당의 후신으로 1968년 재창당된 공산당. 이후 1990년 창당된 또다른 독일 공산당도 존재한다.[55] 완전한 공산주의 정당은 아니지만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을 계승하는 정당이며 공산주의 계열도 있다.[56] 베를린 시의회 및 튀링겐 주의회의 집권당이다.[57] 무장단체 겸 팔레스타인의 원내정당이다.[58]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탈당파가 결성한 마오주의 공산당[59] 공식적으로는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혁명적 사회주의 계열인 변혁당과 합당하여 공산주의 성향이 부분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60] 영어 위키백과에 공산주의 정당으로 표기되어 있다.#[61] 우당[62] 그라츠 시의회의 집권당이다.[63] 집권중인 공산당은 시진핑 사상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집권 공산당도 마오주의 표방[64] 케랄라 주의회의 집권당이다.[65] 케랄라 주의회의 집권당이다.[66] 민중당이란 뜻. 이란 내 합법정당이 아니며, 당사는 베를린에 있다.[67] 오키나와현의회의 집권당이다.[68] 네팔에 집권중인 공산당은 마오주의 성향[69] 원래 공산당은 1992년 해체되어서 좌파동맹으로 바뀌었지만 잔존세력이 1994년에 다시 창당했다.[70] 원래있던 공산당은 좌파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이념을 민주사회주의로 변경했다.[71] 혁명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생태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정당[72]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지향하고 있는 공산주의 정당. 양당우위제의 두 정당 중 한 축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힘을 못 쓰는 대신 좌파의 주류를 공산주의 정당이 차지하고 있는 정말 특이한 정치지형. 북키프로스는 사회민주당이 공산당 역할을 한다.[73] 동서독에서 동시 활동[74] 대부분은 녹색좌파당에 들어갔다. 소수는 새로운 네덜란드 공산당로 재창당하였다.[75] 현재는 다시 창당하였다.[76] 김원봉이 이끈 북한의 좌파 정당으로 김일성과 만주파의 탄압으로 와해되었다.[77]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도네츠크 지부였다. 현재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에 합병.[78] [[호주 공산당(1971년)]|1971년 공산당][79] 콘라드 아데나워 정부 당시 서독 내에 있던 독일 공산당(KPD)을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해 강제해산시킨 전력이 있었다.[80] 정식 명칭은 독일 사회주의통일당.[81] 이 중에는 무려 역사적으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 반대하고 가톨릭 신정정치에 기반한 봉건 사회로 복구를 주장하다가 나름 '현대화'한다고 좌향좌하여 포지션이 무려 왕정 사수, 카톨릭 사회 전통 강화, 농촌 공동체 재건에 더해서 지방 자치 강화, 자본주의 철폐카를리스타들도 있었다(...).[82] 당시 덴마크는 나치 독일보호령이었다.[83] 1984년 이후로는 소련 붕괴에 따라 소련으로부터 받던 지원금이 끊기면서 재정난으로 인해 더이상 대통령 후보는 출마시키지 않고 있다.[84]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는 칠레 공산당원들을 헬리콥터에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에 던지는 짓거리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의 반공 성향의 네티즌들에게 일종의 밈으로 자리잡았다.[85] Party가 사람들끼리 모여 즐겁게 노는 파티라는 뜻도 있고 정당이나 단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런 점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예시로 민주당은 democratic party, 공화당은 republican party이다.[86] 제3인터내셔널, 국제공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