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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푸치아 인민공화국 សាធារណរដ្ឋប្រជាមានិតកម្ពុជា People's Republic of Kampuchea | ||
베트남의 괴뢰국 | ||
국기 | 국장 | |
1979년 ~ 1989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민주 캄푸치아 | 캄보디아국 | |
국가 |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캄보디아국 국가 | |
위치 | 동남아시아 | |
수도 | 프놈펜 | |
정치체제 | 공산주의, 사회주의, 일당독재체제 | |
국가이사회 주석 | 헹 삼린 | |
내각수상 | 훈 센 | |
언어 | 크메르어 | |
통화 | 캄푸치아 리엘 |
1. 개요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은 1979년 1월 7일에서 1989년 9월 25일까지 지금의 캄보디아 지역에 존재한 베트남의 괴뢰국이다. 초대 주석은 헹 삼린이며, 전직 캄보디아 수상이었던 훈 센은 1985년 세계 최연소 수상직에 올랐다.2. 역사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베트남에 대한 증오를 지니고 있었는데, 특히 크메르 루주의 수장 폴 포트는 역사적 속성을 통해 베트남 증오사상을 갖고 베트남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과 친 베트남 성향 캄보디아 공산당원들을 대거 숙청했다.민주 캄푸치아 정권의 광기가 극에 달하던 1978년 후반, 폴 포트는 자국 영토 수복 명목으로 자주 베트남을 자극한 것도 모자라 무력으로 베트남을 선제공격하며 베트남인들을 학살했고, 이에 분노한 베트남은 크메르 루주의 극좌 노선에 반대하던 반 크메르루주 계열의 자국의 망명 중인 전직 크메르 루주 장교 헹 삼린을 대표로 캄보디아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캄푸치아 구국통일민족전선 등과 연합하여 캄보디아를 침공하였다. 그리고 1979년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면서 베트남은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이라는 베트남이 세운 괴뢰정권을 만들었고 이후 1981년 초대 인민혁명이사회 주석으로 취임한 헹 삼린은 새 헌법을 창설하고, 훈 센은 부수상 겸 외교부장직에 취임한다.
그러나 베트남과 소련 및 폴란드 같은 친소련 국가들 등 일부 국가를 뺀 대다수 국제사회는 불법정권으로 봤고, 이미 원조조차 끊어진 데다 베트남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탈출한 캄보디아인들을 대신해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공무원직에 오르는 등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크메르 루주도 정글 속에 숨어 저항을 계속한 데다 전 국왕 시아누크가 중립성향 반베트남 조직 '민족통일전선(FUNCINPEC)'을, 전 수상 손 산도 반공성향 반베트남 조직 '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KPNLF)'을 각각 만들어 괴뢰정부와 베트남에 맞서왔다. 그야말로 외침+괴뢰국+내전이 모두 벌어지는 극도로 혼란한 생지옥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런 혼란은 기본에 표현의 자유가 없고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선거 자체가 치러지지 않은 공산당 1당 독재 국가이긴 했어도 캄보디아의 이전 정부이자 인류 역사에 기록될 광기의 크메르 루주의 공산정권보다는 정상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베트남이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일으킨 영향으로 캄보디아 국민들은 큰 피해를 봤는데도 캄보디아 국민들은 경제는 물론 기반시설까지 반달리즘하며 폭정을 저지르던 크메르 루주를 싫어했으며 베트남이 승리하자 오히려 캄보디아에 온 베트남군을 쌍수들고 환영한 것, 그리고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시기는 민주 캄푸치아의 2배를 훌쩍 넘기는 수준으로 길었는데도 사망자 수는 민주 캄푸치아 시절보다 적었다는 것[1], 민주 캄푸치아 시기와 정반대로 매년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만 봐도 설명은 끝났다. 폴 포트 시절 국가라기보다는 전 국민 수용소에 가까웠던 막장에서 벗어나 다시 국가로서의 면모를 되찾기 시작했다. 폴 포트 치하에 금지되었던 화폐 제도 및 수학, 과학 등 교과과목 공부 제도 등이 (당연히) 다시 부활하였고 집단농장으로 추방되었던 프놈펜 등 도시 주민들도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정식정부보다 괴뢰정부가, 전쟁 없는 상황보다 전쟁 중인 상황이 더 나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1985년에는 앞서 부수상으로 언급된 훈 센이 수상으로 당선되었다.[2] 그리고 1989년 9월 동구권 붕괴가 서서히 일어나자 베트남군은 캄보디아인들이 자치능력을 가지게 됐다는 이유로 조속히 철수하여 정권은 자동으로 해체됐고, 시아누크의 FUNCINPEC 등 3개 조직이 참여한 캄보디아국으로 승계됐다.
3. 국가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캄보디아국 국가 항목으로.4. 출처
- 가로세로 세계사 2권: 동남아시아, 동방의 천년 문명이 열린다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6. p127~128.
- 폴 포트 평전 - 필립 쇼트. 실천문학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