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5 시즌 참가 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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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FC 바이에른 뮌헨 볼링 | FC 바이에른 뮌헨 체스 | FC 바이에른 뮌헨 탁구ㆍFC 바이에른 e-스포츠 | ||
역사와 문화 | 역사 | 역사 | 유니폼 | 관련 인물 | 라이벌 | 역대 엠블럼 | 역대 감독1대~32대 | 역대 감독33대~ | |
역대 시즌 | 2009-10 | 2010-11 | 2011-12 | 2012-13 | 2013-14 | 2014-15 | 2015-16 | 2016-17 | 2017-18, 리그 | 2018-19, 리그 | 2019-20, 리그 | 2020-21, 리그 | 2021-22, 리그 | 2022-23, 리그 | 2023-24, 리그 | 2024-25, 리그 | ||
문화 | 응원가 | ||
기타 | 1998-99 UCL FINAL | 2000-01 UCL FINAL | 4분 챔피언 | 2011-12 UCL FINAL | 2012-13 UCL FINAL | 가르마 대첩 | 2019-20 UCL FINAL | 2022-23 분데스리가 34R | ||
관련 상식 | 더비 매치 | 뮌헨 더비 | 바이에른 더비 | | |
기타 | 레바뮌 | 분노의 영입 | 로베리 | 브라이트니게 | ||
구단 시설 | 경기장 | 알리안츠 아레나 · 그륀발더 슈타디온 · FC 바이에른 캄푸스 | |
훈련 시설 | 제베너 슈트라세 | ||
기타 | 뮌헨 연고 구단 |
FC Bayern München Hall Of Fam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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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Macher' 창조자 울리 회네스 | Der 'Titan' 거인 올리버 칸 | Der 'Zuverlässige' 신뢰 필립 람 | |
Der 'Titelsammler' 타이틀수집가 비셴테 리사라수 | Die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 | Der 'Leitwolf' 늑대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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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뭐함 | |||
FC Bayern München[1] | |||
정식 명칭 |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 V.[2] | ||
별칭 | Bayern (바이에른/바이언) Der FCB (에프체베) Die Bayern (바이에른인) Stern des Südens (남쪽의 별) Die Roten (빨강) Rekordmeister (기록 챔피언)[3] Deutschermeister (독일 챔피언)[4] | ||
창단 | 1900년 2월 27일 ([age(1900-02-27)]주년)[5] | ||
소속 리그 | 분데스리가 (Bundesliga) | ||
연고지 | 바이에른 오버바이에른 뮌헨 | ||
홈구장 | 알리안츠 아레나 (75,024명 수용) | ||
라이벌 | TSV 1860 뮌헨 - 뮌헨 더비[6] 1. FC 뉘른베르크 - 바이에른 더비[7] VfB 슈투트가르트 - 남독일 더비[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데어 클라시커[9] | ||
슬로건 | Mia san mia[10] | ||
회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헤르베르트 하이너 (Herbert Hainer) | ||
부회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발터 메네케스 (Walter Mennekes)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디터 마이어 (Dieter Mayer) | ||
명예회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쿠르트 란다우어 (Kurt Landauer) [[독일| ]][[틀:국기| ]][[틀:국기| ]]울리 회네스 (Uli Hoeneß) | ||
의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얀크리스티안 드레젠 (Jan-Christian Dreesen) | ||
부의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미하엘 디데리히 (Michael Diederich) | ||
단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막스 에베를 (Max Eberl) | ||
앰버서더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지오반니 에우베르 (Giovane Élber) [[페루| ]][[틀:국기| ]][[틀:국기| ]]클라우디오 피사로 (Claudio Pizarro) [[독일| ]][[틀:국기| ]][[틀:국기| ]]로타어 마테우스 (Lothar Matthäus)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비셴테 리사라수 (Bixente Lizarazu) [[독일| ]][[틀:국기| ]][[틀:국기| ]]슈테판 에펜베르크 (Stefan Effenberg) | ||
감독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뱅상 콤파니 (Vincent Kompany) | ||
수석 코치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아론 댕크스 (Aaron Danks) | ||
주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 ||
부주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 ||
UEFA 랭킹 | 3위 출처 | ||
역대 한국인 선수 | 정우영 (2018~2019) 김민재 (2023~ ) | ||
공식 웹사이트 | |||
팬 커뮤니티 | [11] | ||
지난 시즌 성적 (2023-24 시즌) | 분데스리가 3위 | ||
약칭 | FCB / BAY | ||
우승 기록 | |||
★★★★★ 분데스리가 (1부) (32회[12] / 최다 우승) | 1968-69, 1971-72, 1972-73, 1973-74, 1979-80, 1980-81, 1984-85, 1985-86, 1986-87, 1988-89, 1989-90, 1993-94,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2022-23 | ||
DFB-포칼 (20회 / 최다 우승) | 1956-57, 1965-66, 1966-67, 1968-69, 1970-71, 1981-82, 1983-84, 1985-86, 1997-98, 1999-00,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2015-16, 2018-19, 2019-20 | ||
DFL-슈퍼컵 (10회 / 최다 우승) | 1987, 1990, 2010, 2012, 2016, 2017, 2018, 2020, 2021, 2022 | ||
DFL-리가포칼[13] (6회 / 최다 우승) | 1997, 1998, 1999, 2000, 2004, 2007 | ||
UEFA 챔피언스 리그 (6회) | 1973-74, 1974-75, 1975-76, 2000-01, 2012-13, 2019-20 | ||
UEFA 컵위너스컵 (1회) | 1966-67 | ||
UEFA 유로파 리그 (1회) | 1995-96 | ||
UEFA 슈퍼컵 (2회) | 2013, 2020 | ||
인터컨티넨탈컵 (2회) | 1976, 2001 | ||
FIFA 클럽 월드컵 (2회) | 2013, 2020 | ||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14] (1회) | 1931-32 | ||
VsFV 축구 선수권 대회[15] (1회) | 1925-26, 1927-28 | ||
클럽 기록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dc052d> 최고 이적료 영입 | <colcolor=#000,#ddd>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해리 케인 (Harry Kane) (2023년, From 토트넘 홋스퍼 FC, 9500만 €)[16][17] | |
최고 이적료 방출 | [[폴란드| ]][[틀:국기| ]][[틀:국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Robert Lewandowski) (2022년, To FC 바르셀로나, 5000만 €) | ||
최근 영입 | [[포르투갈| ]][[틀:국기| ]][[틀:국기| ]]주앙 팔리냐 (João Palhinha) (2024년, From 풀럼 FC, 5000만 €) | ||
최근 방출 | [[모로코| ]][[틀:국기| ]][[틀:국기| ]]누사이르 마즈라위 (Noussair Mazraoui) (2024년, T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500만 €) | ||
최다 출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 710경기 (2008~ ) | ||
최다 득점 | [[독일| ]][[틀:국기| ]][[틀:국기| ]]게르트 뮐러 (Gerd Müller) - 563골 (1964~1979) | ||
분데스리가 득점왕 (22회 / 최다) | [[독일| ]][[틀:국기| ]][[틀:국기| ]]게르트 뮐러 (1966-67, 1968-69, 1969-70, 1971-72, 1972-73, 1973-74, 1977-78) [[독일| ]][[틀:국기| ]][[틀:국기|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979-80, 1980-81, 1983-84) [[독일| ]][[틀:국기| ]][[틀:국기| ]]롤란트 볼파르트 (1988-89, 1990-91)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지오반니 에우베르 (2002-03)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루카 토니 (2007-08) [[독일| ]][[틀:국기| ]][[틀:국기| ]]마리오 고메스 (2010-11) [[폴란드| ]][[틀:국기| ]][[틀:국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2015-16,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해리 케인 (2023-24) | ||
분데스리가 도움왕 (22회) | [[독일| ]][[틀:국기| ]][[틀:국기| ]]게르트 뮐러 (1970-71, 1971-72, 1974-75) [[독일| ]][[틀:국기| ]][[틀:국기| ]]프란츠 베켄바워 (1973-74, 1975-76, 1976-77) [[독일| ]][[틀:국기| ]][[틀:국기|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977-78, 1978-79, 1981-82, 1982-83, 1983-84) [[독일| ]][[틀:국기| ]][[틀:국기| ]]파울 브라이트너 (1980-81) [[독일| ]][[틀:국기| ]][[틀:국기| ]]롤란트 볼파르트 (1984-85, 1985-86) [[독일| ]][[틀:국기| ]][[틀:국기| ]]슈테판 에펜베르크 (1999-00)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로이 마카이 (2004-05)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프랑크 리베리 (2011-12, 2012-13) [[독일| ]][[틀:국기| ]][[틀:국기| ]]토마스 뮐러 (2017-18, 2019-20, 2020-21, 2021-22) | ||
영구결번 | 12[18] |
[clearfix]
1. 개요
독일 분데스리가의 프로 축구단. 연고지는 바이에른 주 오버바이에른 현 뮌헨, 홈구장은 알리안츠 아레나다.
2024년 현재 분데스리가 최다 우승(32회), DFB-포칼 최다 우승(20회), UEFA 챔피언스 리그 6회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축구 연맹 3대 메이저 대회 우승[19], 트레블[20] 2회[21], 유러피언컵 3연패[22], 6관왕[23]을 모두 기록한 유일한 구단이며, 역사상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승 우승[24]을 이뤄냈고 유럽 5대 리그[25] 최초로 리그 10연패 및 11연패를 달성한 구단이다.
2. 구단명의 유래
구단 이름인 FC 바이에른 뮌헨은 지역 이름인 바이에른 주 뮌헨 시를 그대로 따온 것으로 보통 '바이에른'이라 부른다. 이는 바이에른 뮌헨이 뮌헨이라는 도시만 대표한다기보다는 뮌헨뿐만 아니라 바이에른 주를 대표하는 팀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26] 독일은 1871년 통일되기 이전까지 여러 개의 왕국과 공국으로 나눠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했고, 보수적인 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 연합과 '주의 클럽'과 '주의 정당'의 연합을 맺고 역사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 시민들뿐만이 아니라 바이에른 주의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원어 발음으로 'Bayern[ˈbaɪ̯ɐn]'은 바이언, 또는 바이안에 가깝다. 영어로는 바이언 뮤닉(Bayern Munich). 이탈리아어로 뮌헨이 '모나코'로 불리는 관계로 이탈리아 방송이나 미디어에선 '바이에른 모나코'라고 지칭된다. 'Die Roten'이라는 별명에서 나타나듯 상징색은 붉은색이며, 붉은색과 흰색으로 대표되는 이 팀의 고유한 컬러는 10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축구뿐만 아니라 농구, 핸드볼, 탁구, 볼링, 체스 팀도 운영 중이다.[27]
3. 평가 및 위상
화려한 우승 경력, 수많은 레전드, 고고한 전통, 안정적인 유스 시스템을 모두 갖춘 바이에른 뮌헨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명문 구단으로 손꼽히는 메가 클럽 중 하나이다. 좀처럼 거액의 이적료를 지출하지 않고 합리적인 흑자 경영을 하는 구단[28]으로도 유명하며, 타 구단에서 자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공언할 정도이다. 홈 구장 알리안츠 아레나.[29] | 알리안츠 아레나 내부. |
UEFA 챔피언스 리그 6회 우승[30], 분데스리가 32회 우승[31], 독일의 FA컵인 DFB-포칼 20회 우승 등 독일 내에서는 맞수가 없는 가히 압도적인 1강 클럽이며 역사와 위상, 현재의 행보 등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UEFA 챔피언스 리그 15회 우승의 레알 마드리드와 6관왕,5관왕의 FC 바르셀로나를 제외하면[32] 전 세계에서 바이에른보다 높은 위상을 가진 클럽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2-13 시즌 유프 하인케스 체제에서 이룩한 트레블(5관왕) 트로피. | 2019-20 시즌 한지 플릭 체제에서 이룩한 트레블(6관왕) 트로피.[33] |
최근 2010년대 초중반까지 리오넬 메시와 세 얼간이로 상징되는 바르사까지 묶어 2010년대 최강의 클럽으로 레바뮌이란 신조어도 나올 정도.[34]
1970년대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를 필두로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하며 바이에른의 황금기를 열었고, 80년대에는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90년대 로타어 마테우스, 00년대 올리버 칸 등이 팀을 대표하며 유럽 명문으로의 이미지를 다졌다.
2010년대에는 독일 클럽 최초의 트레블에 2013년 한 해 5관왕, 분데스리가 11연패[35] 및 최단 기간 우승 등 독일 내 온갖 기록들을 모두 갈아 치웠다. 유프 하인케스의 첫 트레블 이후 펩 과르디올라가 전성기의 스쿼드를 물려받았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 실망스러운 성과[36]를 내고 떠난 뒤 카를로 안첼로티, 니코 코바치 체제에서 부침을 겪었다. 그러나 감독 대행 한지 플릭의 지휘 하에 부활하기 시작한 바이에른은 2019-20 시즌에 마침내 팀의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하게 되는데, 챔피언스 리그는 무려 역대 최초로 전승 우승을 이뤄냈고 뒤이어 UEFA 슈퍼컵, DFL-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까지 연달아 제패해 6관왕[37]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했던 과거 70년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독일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리그 내 대항마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38] 그런지 그만큼 안티도 많은 편이다. 독일 축구 팬들 중 반은 바이에른을 좋아하고 나머지 반은 바이에른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39]
4. 관련 기록
4.1. 우승 기록
※굵게 표시되어 있는 것들은 최다 우승 기록입니다.- 분데스리가
- 우승: 32회
1968-69, 1971-72, 1972-73, 1973-74, 1979-80, 1980-81, 1984-85, 1985-86, 1986-87, 1988-89, 1989-90, 1993-94,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2022-23
- 독일 챔피언십
- 우승: 1회
1931-32
- 가우리가 쥐트바이에른
- 우승: 1회
1944
- DFB-포칼
- 우승: 20회
1956-57, 1965-66, 1966-67, 1968-69, 1970-71, 1981-82, 1983-84, 1985-86, 1997-98, 1999-00,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2015-16, 2018-19, 2019-20
- DFL-리가포칼
- 우승: 6회
1997, 1998, 1999, 2000, 2004, 2007
- UEFA 챔피언스 리그
- 우승: 6회
1973-74, 1974-75, 1975-76, 2000-01, 2012-13, 2019-20
- UEFA 유로파 리그
- 우승: 1회
1995-96
- UEFA 컵위너스컵
- 우승: 1회
1966-67
- DFL-슈퍼컵
- 우승: 10회
1987, 1990, 2010, 2012, 2016, 2017, 2018, 2020, 2021, 2022
- UEFA 슈퍼컵
- 우승: 2회
2013, 2020
- FIFA 클럽 월드컵
- 우승: 2회
2013, 2020
4.1.1. 최다 출장 기록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c052d><tablebgcolor=#dc052d> | FC 바이에른 뮌헨 최다 출장 기록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순위 | 이름 | 기간 | 경기 수 | 국적 |
1 | 토마스 뮐러 | 2008 ~ | 709 | ||
2 | 제프 마이어 | 1962 ~ 1980 | 709 | ||
3 | 올리버 칸 | 1994 ~ 2008 | 632 | ||
4 | 게르트 뮐러 | 1964 ~ 1979 | 611 | ||
5 | 프란츠 베켄바워 | 1964 ~ 1977 | 582 | ||
6 |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 1966 ~ 1981 | 554 | ||
7 |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 1976 ~ 1991 | 551 | ||
8 | 필립 람 | 2002 ~ 2017 | 517 | ||
9 | 베른트 뒤른베르거 | 1972 ~ 1985 | 511 | ||
10 | 마누엘 노이어 | 2010 ~ | 507 |
4.1.2. 최다 득점 기록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c052d><tablebgcolor=#dc052d> | FC 바이에른 뮌헨 최다 득점 기록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순위 | 이름 | 기간 | 경기 수 | 득점 | 경기당 득점 | 국적 |
1 | 게르트 뮐러 | 1964 ~ 1979 | 605 | 563 | 0.93 | ||
2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2014 ~ 2022 | 375 | 344 | 0.92 | ||
3 | 토마스 뮐러 | 2008 ~ | 707 | 242 | 0.34 | ||
4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1974 ~ 1984 | 422 | 217 | 0.51 | ||
5 | 라이너 올하우저 | 1961 ~ 1970 | 353 | 215 | 0.61 | ||
6 | 롤란트 볼파르트 | 1984 ~ 1993 | 332 | 155 | 0.47 | ||
7 | 디터 회네스 | 1979 ~ 1987 | 302 | 145 | 0.48 | ||
8 | 아르연 로번 | 2009 ~ 2019 | 309 | 144 | 0.47 | ||
9 | 지오반니 에우베르 | 1997 ~ 2003 | 266 | 139 | 0.52 | ||
10 | 디터 브레닝거 | 1962 ~ 1971 | 352 | 132 | 0.38 |
4.2. 이적료
- 최고 이적료 영입: 해리 케인 (Harry Kane), 9,500만 유로, 2023, From 토트넘 홋스퍼 FC
- 최고 이적료 방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Robert Lewandowski), 5,000만 유로, 2022, To FC 바르셀로나
4.2.1. 최고 이적료 영입 기록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c052d><tablebgcolor=#dc052d> | FC 바이에른 뮌헨 최고 이적료 영입 기록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순위 | 이름 | From | 이적료 | 포지션 | 일시 | 국적 |
1 | 해리 케인 | €95M | FW | 2023년 8월 | |||
2 | 뤼카 에르난데스 | €80M | DF | 2019년 3월 | |||
3 | 마테이스 더리흐트 | €67M | DF | 2022년 7월 | |||
4 | 김민재 | €50M | DF | 2023년 7월 | |||
5 | 리로이 자네 | €49M | FW | 2020년 7월 | |||
6 | 다요 우파메카노 | €42.5M | DF | 2021년 2월 | |||
7 | 코랑탱 톨리소 | €41.5M | MF | 2017년 6월 | |||
8 | 하비 마르티네스 | €40M | MF | 2012년 8월 | |||
9 | 아르투로 비달 | €39.25M | MF | 2015년 7월 | |||
10 | 마츠 후멜스 | €38M | DF | 2016년 5월 |
4.2.2. 최고 이적료 방출 기록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c052d><tablebgcolor=#dc052d> | FC 바이에른 뮌헨 최고 이적료 방출 기록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순위 | 이름 | To | 이적료 | 포지션 | 일시 | 국적 |
1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50M | FW | 2022년 7월 | |||
2 | 뤼카 에르난데스 | €45M | DF | 2023년 7월 | |||
3 | 더글라스 코스타 | €40M | FW | 2018년 6월 | |||
4 | 마츠 후멜스 | €30.5M | DF | 2019년 6월 | |||
5 | 토니 크로스 | €25M | MF | 2014년 7월 | |||
오언 하그리브스 | MF | 2007년 7월 | |||||
7 | 마리오 괴체 | €22M | MF | 2016년 7월 | |||
마리오 만주키치 | FW | 2014년 7월 | |||||
티아고 알칸타라 | MF | 2020년 9월 | |||||
10 | 헤나투 산체스 | €20M | MF | 2019년 8월 |
4.3. 그 외 기록들
- 오랜 기간 분데스리가를 평정하면서, 갖지 못했던 기록도 눈앞에 있다. 최상위 리그 최다 시즌 참가를 이루었고, 최상위 리그 최장 기간 잔류도 이루었다. 이는 함부르크 SV와 SV 베르더 브레멘의 자멸이 가져다준 기록이다. 2017년까지의 최상위 리그 최다 시즌 참가와 개근 팀 기록은 함부르크 SV의 것이었고, 그 후 2021년까지의 최다 시즌 기록은 SV 베르더 브레멘의 것이었다. 22-23 시즌에 브레멘이 돌아오지 못했다면 바이에른의 단독 기록이 되었겠지만, 승격을 확정지어 아직까지는 타이 기록이다.
5. 스쿼드
5.1. 1군 스쿼드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dc042d><tablebgcolor=#dc042d> | FC 바이에른 뮌헨 2024-25 시즌 스쿼드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FC 바이에른 뮌헨 2024-25 시즌 스쿼드 | ||||
1 (C) | 2 | 3 | 6 | 7 | |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 GK 1986.03.27 ([age(1986-03-27)]) 2011~2025 | 다요 우파메카노 Dayot Upamecano | DF 1998.10.27 ([age(1998-10-27)]) 2021~2026 | 김민재 Kim Min-Jae | DF 1996.11.15 ([age(1996-11-15)]) 2023~2028 | 요주아 키미히 Joshua Kimmich | MF 1995.02.08 ([age(1995-02-08)]) 2015~2025 | 세르주 그나브리 Serge Gnabry | FW 1995.07.14 ([age(1995-07-14)]) 2017~2025 | |
8 | 9 | 10 | 11 | 15 | |
레온 고레츠카 Leon Goretzka | MF 1995.06.02 ([age(1995-06-02)]) 2018~2026 | 해리 케인 Harry Kane | FW 1993.07.28 ([age(1993-07-28)]) 2023~2027 | 리로이 사네 Leroy Sané | FW 1996.01.11 ([age(1996-01-11)]) 2020~2025 | 킹슬리 코망 Kingsley Coman | FW 1996.06.13 ([age(1996-06-13)]) 2015~2027 | 에릭 다이어 Eric Dier | DF 1994.01.15 ([age(1994-01-15)]) 2024~2025 | |
16 | 17 | 18 | 19 | 20 | |
주앙 팔리냐 João Palhinha | MF 1995.07.09 ([age(1995-07-09)]) 2024~2028 | 마이클 올리세 Michael Olise | FW 2001.12.12 ([age(2001-12-12)]) 2024~2029 | 다니엘 페레츠 Daniel Peretz | GK 2000.07.10 ([age(2000-07-10)]) 2023~2028 | 알폰소 데이비스 Alphonso Davies | DF 2000.11.02 ([age(2000-11-02)]) 2018~2025 | 아리욘 이브라히모비치 Arijon Ibrahimović | MF 2005.12.11 ([age(2005-12-11)]) 2023~2027 | |
21 | 22 | 23 | 25 (VC) | 26 | |
이토 히로키 Hiroki Ito | DF 1999.05.12 ([age(1999-05-12)]) 2024~2028 | 라파엘 게헤이루 Raphael Guerreiro | DF 1993.12.22 ([age(1993-12-22)]) 2023~2026 | 사샤 보이 Sacha Boey | DF 2000.09.13 ([age(2000-09-13)]) 2024~2028 |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 FW 1989.09.13 ([age(1989-09-13)]) 2008~2025 | 스벤 울라이히 Sven Ulreich | GK 1988.08.03 ([age(1988-08-03)]) 2021~2025 | |
27 | 28 | 39 | 42 | 44 | |
콘라트 라이머 Konrad Laimer | MF 1997.05.27 ([age(1997-05-27)]) 2023~2027 | 타레크 부흐만 Tarek Buchmann | DF 2005.02.28 ([age(2005-02-28)]) 2023~2026 | 마티스 텔 Mathys Tel | FW 2005.04.27 ([age(2005-04-27)]) 2022~2027 | 자말 무시알라 Jamal Musiala | MF 2003.02.26 ([age(2003-02-26)]) 2020~2026 | 요시프 스타니시치 Josip Stanisic | DF 2000.04.02 ([age(2000-04-02)]) 2021~2029 | |
45 | |||||
알렉산다르 파블로비치 Aleksandar Pavlović | MF 2004.05.03 ([age(2004-05-03)]) 2023~2029 | |||||
FC 바이에른 뮌헨 2024-25 시즌 임대 선수 | |||||
# | # | ''' 14 ''' | 34 | 41 | |
알렉산더 뉘벨 Alexander Nübel | GK 1996.09.30 ([age(1996-09-30)]) 2020~2029 VfB 슈투트가르트 임대 2026.06.30 복귀 | 브리안 사라고사 Bryan Zaragoza | FW 2001.09.09 ([age(2001-09-09)]) 2024~2029 CA 오사수나 임대 2025.06.30 복귀 | 파울 바너 Paul Wanner | MF 2005.12.23 ([age(2005-12-23)]) 2022~2027 1. FC 하이덴하임 임대 2025.06.30 복귀 | 로브로 즈보나레크 Lovro Zvonarek | MF 2005.05.08 ([age(2005-05-08)]) 2024~2027 SK 슈투름 그라츠 임대 2025.06.30 복귀 | 프란스 크레치히 Frans Krätzig | DF 2003.01.14 ([age(2003-01-14)]) 2023~2027 VfB 슈투트가르트 임대 2025.06.30 복귀 | |
43 | 46 | ||||
톰 휠스만 Tom Hülsmann | GK 2004.04.11 ([age(2004-04-11)]) 2023~2026 SKN 장크트푈텐 임대 2025.06.30 복귀 | 가브리엘 비도비치 Gabriel Vidović | MF 2003.12.01 ([age(2003-12-01)]) 2022~2025 1. FSV 마인츠 05 임대 2025.06.30 복귀 | ||||
구단 정보 | |||||
의장: 얀 크리스티안 드리즌 / 감독: 뱅상 콤파니 / 구장: 알리안츠 아레나 | |||||
출처: FC 바이에른 뮌헨 공식 웹사이트 / 분데스리가 공식 웹사이트 / 트랜스퍼마크트 |
}}}}}}}}}}}} ||
5.2. 임대 명단
FC 바이에른 뮌헨 2023-24 시즌 임대 선수 명단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국적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포지션 | 생년월일 | 임대 이적 팀 | 임대 종료일 |
알렉산더 뉘벨 | Alexander Nübel | GK | 1996년 9월 30일 | VfB 슈투트가르트 | ~2025.06.30 | ||
마우리스 크라텐마허 | Maurice Krattenmacher | MF | 2005년 8월 11일 | SSV 울름 1846 | ~2025.06.30 | ||
프란스 크레치히 | Frans Krätzig | DF | 2003년 1월 14일 | VfB 슈투트가르트 | ~2025.06.30 | ||
파울 바너 | Paul Wanner | MF | 2005년 12월 23일 | 1. FC 하이덴하임 | ~2025.06.30 | ||
로브로 즈보나레크 | Lovro Zvonarek | MF | 2005년 5월 8일 | SK 슈투름 그라츠 | ~2025.06.30 | ||
막스 숄체 | Max Scholze | DF | 2005년 4월 30일 | SC 페를 | ~2025.06.30 | ||
톰 휠스만 | Tom Hülsmann | GK | 2004년 4월 11일 | SKN 장크트푈텐 | ~2025.06.30 |
5.3. 리저브 팀 스쿼드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dc042d><tablebgcolor=#dc042d> | FC 바이에른 뮌헨 II 2024-25 시즌 스쿼드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bottom: -15px" | FC 바이에른 뮌헨 II 2023-24 시즌[주의] | ||||||||
등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비고 | ||||
4 | DF | 그레이슨 데토니 | Grayson Dettoni | ||||||
5 | DF | 가브리엘 마루시치 | Gabriel Marušić | ||||||
7 | FW | 막시밀리안 바그너 | Maximilian Wagner | ||||||
10 | MF | 티모 케른 | Timo Kern | 주장 | |||||
11 | FW | 디온 베리샤 | Dion Berisha | ||||||
12 | DF | 베네딕트 비머 | Benedikt Wimmer | ||||||
16 | MF | 루카 뎅크 | Luca Denk | ||||||
17 | MF | 유네스 아이타메르 | Younes Aitamer | ||||||
18 | GK | 베냐민 발리스 | Benjamin Ballis | ||||||
19 | MF | 다비데 델에르바 | Davide Dell'Erba | ||||||
20 | DF | 빈센트 마누바 | Vincent Manuba | ||||||
21 | MF | 노엘 아세코 은킬리 | Noël Aséko Nkili | ||||||
23 | GK | 마누엘 카인츠 | Manuel Kainz | ||||||
25 | DF | 라레슈 카네아 | Rareș Canea | ||||||
26 | DF | 스티브 브라이트크로이츠 | Steve Breitkreuz | ||||||
27 | FW | 다비트 요나탄스 | David Jonathans | ||||||
28 | MF | 모리츠 모잔틀 | Moritz Mosandl | ||||||
33 | GK | 루카스 슈넬러 | Lukas Schneller | ||||||
34 | FW | 마누엘 피사노 | Manuel Pisano | ||||||
36 | DF | 타레크 부흐만 | Tarek Buchmann | ||||||
37 | MF |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 Javier Fernández | ||||||
38 | MF | 에미르한 데미르잔 | Emirhan Demircan | ||||||
40 | GK | 앤서니 파블레시치 | Anthony Pavlešić | ||||||
41 | DF | 닉 살리하미지치 | Nick Salihamidžić | ||||||
42 | GK | 막스 슈미트 | Max Schmitt | ||||||
43 | MF | 막스 메르크너 | Max Mergner | ||||||
46 | MF | 루이스 리히터 | Louis Richter | ||||||
47 | DF | 막시밀리안 슈바우어 | Maximilian Schuhbauer | ||||||
48 | MF | 크리스티앙 쿠암 | Christian Kouam | ||||||
53 | DF | 아담 아즈누 | Adam Aznou | ||||||
감독: 홀거 자이츠 / 구장: 그륀발더 슈타디온 |
}}}}}}}}}}}} ||
5.4. 유소년 팀 스쿼드
5.4.1. U-19
FC 바이에른 뮌헨 U-19 스쿼드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등번호 | 국적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비고 |
골키퍼 | |||||
- | 마누엘 카인츠 | Manuel Kainz | |||
- | 루카스 슈넬러 | Lukas Schneller | |||
- | 류사오쯔양 | Liu-Shao Ziyang | |||
수비수 | |||||
- | 브라이트 아레이음비 | Bright Arrey-Mbi | |||
- | 베네딕트 비머 | Benedikt Wimmer | |||
- | 베냐민 호프만 | Benjamin Hofmann | |||
- | 요나스 켈 | Jonas Kehl | |||
- | 아담 아즈누 | Adam Aznou | |||
- | 앙겔로 브뤼크너 | Angelo Brückner | |||
- | 데니스 바이트너 | Dennis Waidner | |||
- | 닉 살리하미지치 | Nick Salihamidzic | |||
미드필더 | |||||
- |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 Javier Fernandes | |||
- | 모리츠 모이잔틀 | Moritz Mosandl | 주장 | ||
- | 테일러 부스 | Taylor Booth | |||
- | 크리스토퍼 스콧 | Christopher Scott | |||
- | 얀 헤르만 | Jahn Herrmann | |||
- | 올리버 바티스타 마이어 | Oliver Batista Meier | |||
- | 마르빈 쿠니 | Marvin Cuni | |||
- | 알렉산더 바츠리야니스 | Alexander Bazdrigiannis | |||
공격수 | |||||
- | 다비트 할비히 | David Halbich |
5.4.2. U-17
5.5. 코칭 스태프/지원 스태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직책 | 국적 | 로마자 성명 | 한글 성명 |
헤드 코치 | Vincent Kompany | 뱅상 콤파니 | ||
수석 코치 | Aaron Danks | 아론 댕크스 | ||
코치 | Floribert Ngalgula | 플로리베르트 은갈굴라 | ||
René Marić | 레네 마리치 | |||
피트니스 코치 | Bram Geass | 브람 기어스 | ||
Walter Gfrere | 발터 그프레레 | |||
골키퍼 코치 | Michael Rechner | 미하엘 레흐너 | ||
재활코치 | Peter Schlösser | 페터 슐뢰저 | ||
Thomas Wilhelmi | 토마스 빌헬미 | |||
팀 매니저 | Kathleen Krüger | 캐슬린 크뤼거 | ||
Bastian Wernscheid | 바스티안 베른세이드 | |||
리저브 코치 | Holger Seitz | 홀거 자이츠 | ||
아카데미 매니저 | Jochen Sauer | 요헨 자우어 | ||
Halil Altıntop | 하릴 알틴톱 |
FC 바이에른 뮌헨 2022-23 시즌 의료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직책 | 국적 | 로마자 성명 | 한글 성명 | 비고 |
팀닥터 | Roland Schmidt | 롤란트 슈미트 | [A] | ||
Peter Ueblacker | 페터 우에블라커 | ||||
Jochen Hahne | 요헨 한 | ||||
수석 물리치료사 | Helmut Erhard | 헬무트 에르하르트 | |||
물리치료사 | christian Huhn | 크리스티안 훈 | |||
Gianni Bianchi | 지안니 비안키 | ||||
Stephan Weickert | 슈테판 바이케르트 | ||||
Gerry Hoffmann | 게리 호프만 | ||||
Florian Brandner | 플로리안 브란트너 | ||||
Knut Stamer | 크누트 스타머 | ||||
스포츠 심리학자 | Maximilian Pelka | 막시밀리안 펠카 | |||
스포츠 과학자 | | Soner Mansuroglu | 소너 맨스로글루 |
[A] 내과(심장)전문의
6. 클럽 역사
-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09-10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0-11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1-12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2-13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3-14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4-15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5-16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6-17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7-18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8-19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19-20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20-21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21-22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22-23 시즌
- FC 바이에른 뮌헨/2023-24 시즌
항목이 길어져서 분리되었다.
6.1. 시즌별 리그 순위
시즌별 리그 순위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color=#000> 시즌 | <colcolor=#000> 부 | <colcolor=#000> 리그 | <colcolor=#000> 순위 |
1963-64 | 2 | 레기오날리가 쥐트 | 2 | |
1964-65 | 2 | 레기오날리가 쥐트 | 1 | |
1965-66 | 1 | 분데스리가 | 3 | |
1966-67 | 1 | 분데스리가 | 6 | |
1967-68 | 1 | 분데스리가 | 5 | |
1968-69 | 1 | 분데스리가 | 1 | |
1969-70 | 1 | 분데스리가 | 2 | |
1970-71 | 1 | 분데스리가 | 2 | |
1971-72 | 1 | 분데스리가 | 1 | |
1972-73 | 1 | 분데스리가 | 1 | |
1973-74 | 1 | 분데스리가 | 1 | |
1974-75 | 1 | 분데스리가 | 10 | |
1975-76 | 1 | 분데스리가 | 3 | |
1976-77 | 1 | 분데스리가 | 7 | |
1977-78 | 1 | 분데스리가 | 12 | |
1978-79 | 1 | 분데스리가 | 4 | |
1979-80 | 1 | 분데스리가 | 1 | |
1980-81 | 1 | 분데스리가 | 1 | |
1981-82 | 1 | 분데스리가 | 3 | |
1982-83 | 1 | 분데스리가 | 4 | |
1983-84 | 1 | 분데스리가 | 4 | |
1984-85 | 1 | 분데스리가 | 1 | |
1985-86 | 1 | 분데스리가 | 1 | |
1986-87 | 1 | 분데스리가 | 1 | |
1987-88 | 1 | 분데스리가 | 2 | |
1988-89 | 1 | 분데스리가 | 1 | |
1989-90 | 1 | 분데스리가 | 1 | |
1990-91 | 1 | 분데스리가 | 2 | |
1991-92 | 1 | 분데스리가 | 10 | |
1992-93 | 1 | 분데스리가 | 2 | |
1993-94 | 1 | 분데스리가 | 1 | |
1994-95 | 1 | 분데스리가 | 6 | |
1995-96 | 1 | 분데스리가 | 2 | |
1996-97 | 1 | 분데스리가 | 1 | |
1997-98 | 1 | 분데스리가 | 2 | |
1998-99 | 1 | 분데스리가 | 1 | |
1999-00 | 1 | 분데스리가 | 1 | |
2000-01 | 1 | 분데스리가 | 1 | |
2001-02 | 1 | 분데스리가 | 3 | |
2002-03 | 1 | 분데스리가 | 1 | |
2003-04 | 1 | 분데스리가 | 2 | |
2004-05 | 1 | 분데스리가 | 1 | |
2005-06 | 1 | 분데스리가 | 1 | |
2006-07 | 1 | 분데스리가 | 4 | |
2007-08 | 1 | 분데스리가 | 1 | |
2008-09 | 1 | 분데스리가 | 2 | |
2009-10 | 1 | 분데스리가 | 1 | |
2010-11 | 1 | 분데스리가 | 3 | |
2011-12 | 1 | 분데스리가 | 2 | |
2012-13 | 1 | 분데스리가 | 1 | |
2013-14 | 1 | 분데스리가 | 1 | |
2014-15 | 1 | 분데스리가 | 1 | |
2015-16 | 1 | 분데스리가 | 1 | |
2016-17 | 1 | 분데스리가 | 1 | |
2017-18 | 1 | 분데스리가 | 1 | |
2018-19 | 1 | 분데스리가 | 1 | |
2019-20 | 1 | 분데스리가 | 1 | |
2020-21 | 1 | 분데스리가 | 1 | |
2021-22 | 1 | 분데스리가 | 1 | |
2022-23 | 1 | 분데스리가 | 1 | |
2023-24 | 1 | 분데스리가 | 3 |
7. 특징
바이에른 뮌헨 위로의 진보는 없다.
프란츠 베켄바워
프란츠 베켄바워
평가 위상 문단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레알 마드리드 등과 더불어 유럽 최고의 축구 클럽으로 꼽히며 2010년대 이후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 또한 팀을 넘어선 스타를 좌시하지 않으며 팀 자체의 프라이드는 세계 최고수준이라봐도 무방하다. 이를 대변하는 듯한 위의 문장은 바이에른 뮌헨의 확고한 프라이드가 잘 돋보이는 대목이다.[41] 독일의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이 곳에서 뛰었었고, 현재도 많은 독일 선수들의 드림 클럽으로 첫 손에 꼽힌다. 그래서 '제 2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 여타 구단들과 다른 특이한 점은 바이에른 뮌헨의 구단 임원들은 거의 모두 구단 출신의 레전드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명예 회장, 현직 회장, 사장, 단장까지 모두 바이에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다. 거기다 전문 경영인이 아닌 구단의 레전드 선수들이 경영자로서 활동함에도 2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건실한 운영을 보여주는 구단 중 하나이다. 당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바이에른의 구단 운영과 레전드 대우를 극찬한 바 있으며,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유수의 명문 클럽들도 바이에른 뮌헨의 재정 운영 모델을 참고하여 구단 운영을 개선하고 있다.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7.1. 선수단 정책
소위 빅 클럽 중에선 바르셀로나와 함께 자국 유스 활용도가 가장 높은 클럽으로 바이에른 유스 출신 선수들은 숨가쁜 영입 러시 속에서도 꾸준히 중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수준급의 유스 배출을 자랑한다. 일단 가장 대표적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인 프란츠 베켄바워를 필두로 게르트 뮐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제프 마이어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최근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세계 최정상 풀백인 필립 람을 필두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마스 뮐러, 토니 크로스, 홀거 바트슈투버, 데이비드 알라바, 마츠 후멜스 같은 선수들이 모두 바이에른 뮌헨 유스 출신이다. 이 정도면 FC 바르셀로나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유스 발굴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언제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08-09, 10-11 시즌 막장의 주역들이 있다. 미하엘 렌징, 크리스티안 렐, 안드레아스 오틀, 토마스 크라프트가 이에 해당된다.바이에른의 유스 아카데미는 선수들에게 단 하나의 포지션만을 가르친다. 또한 유스 팀의 경우 전통적으로 미드필더를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치한 4-4-2 포메이션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스 선수들의 경우 포지션 변환이 빈번하고 그 때문에 자리를 못 잡는 여타 어린 선수들을 보면 이쪽이 확실히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추후 팀의 필요에 따라 변형적으로 기용해서 선수의 적응도에 따라 포지션을 변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윙어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풀백에서 중앙 미드필더 겸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필립 람, 중앙 미드필더에서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데이비드 알라바[42]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 영입 정책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철저한 절약 정신. 바이에른 뮌헨은 매해 이적 시장마다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기보다는 그해 필요한 선수들만 딱딱 맞춰서 영입하는 걸 선호한다.[43] 그리고 바이에른은 새로운 선수로 포지션을 보강하기보다는 기존 선수와 재계약을 많이 추진하는 편인데, 이는 바이에른 보드진들의 절약 정신에서 비롯된 정책 중 하나이다.[44] 하지만 예외적으로 전 시즌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 가끔식 분노의 영입을 추진하여 스쿼드를 대폭 보강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반대로 선수를 이적료를 비싸게 받으려고 파는 일도 많지 않다. 특히 팀의 주축 선수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전통적으로 오히려 주축 선수와의 계약 만료가 가까워 왔다 하더라도, 이적료를 받고 팔기보다는 계약 만료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하엘 발락, 제 호베르투, 루시우 등의 선수가 이적료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이적을 보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리베리를 영입하고자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하였을 때에도, 바이에른 뮌헨 단장은 계약 만료 후 자유 이적으로 보내주는 일은 있어도, 이적료를 받고 팔지는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있을 정도다.[45] 그러나 이러한 정책도 최근 들어 어느 정도 유연해진 듯하다. 예를 들어 토니 크로스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둘 다 이적료를 받고 주전 선수를 다른 클럽에 판매한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선수 모두 순전히 이적료 수입만을 위해 판매한 케이스라 보기는 어렵고, 주급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다른 클럽으로 이적한 케이스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선수단의 주급 체계도 매우 엄격하다. 오직 경력과 실력을 바탕으로 주급을 책정한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2007년부터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해 온 프랑크 리베리와 유스 시절때부터 무려 20여년을 팀을 위해서 헌신한 주장 필립 람과 17년을 팀과 함께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같은 선수들이 상위에 있었다. 단, 최근에는 이 주급 체계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마리오 괴체와 티아고 알칸타라의 영입 과정에서 그 논란이 불거졌다. 마리오 괴체가 독일 최고의 재능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계약할 때부터 1200만이라는 팀 최고 연봉을 줘야 했느냐에 대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또 티아고 알칸타라도 8백만이라는 팀 내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연봉 받으며 원성을 샀다. 게다가 주급 협상 과정에서 최고의 재능이었던 토니 크로스와 마리오 만주키치 등을 잃은 바 있기 때문에 더더욱 논란이 되었다. 아무튼 바이에른은 절대로 과소비를 하지 않으며 최대한 돈을 아낀다. 일례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 선수에게 1억 유로를 투자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최근의 이적 시장 거품을 비난한 것이며 그 금액을 지불하는 구단들도 이상적이지 않다고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소비 정책을 비난하는 팬들은 없다. 이러한 소비 정책이 세계에서 가장 건전한 바이에른 뮌헨의 재정 상황을 만들었으며 바이에른 뮌헨은 협상의 달인의 면모를 보이며 이적 시장 때마다 싼 가격에 이적을 성사시켜 저소비 고효율을 이루어내는 데에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아르연 로번, 루이스 구스타부, 단테,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46] 같은 선수들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아르투로 비달의 영입 또한 3,7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성사시키며 진짜 협상의 달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심지어 네이마르 주니오르, 우스만 뎀벨레, 킬리안 음바페 등의 초고가 이적으로 이적 시장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운 2017년 여름 시장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의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헐값[47]에 데려오는 등 달인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하메스의 경우는 임대 이적이긴 하지만 완전 이적 옵션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가격도 원래 마드리드가 지불했던 이적료와 현재 이적 시장 시세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기량도 이미 월드 클래스에 가깝고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은 전성기를 구사할 수 있는 나이에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스타성도 뛰어나서 바이에른 입장에선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7.2. 분데스리가 내의 선수 영입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역사에서 역대 우승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팀이다. 바이에른은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 내에서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 정책을 펴왔다. 바이에른 자체 내의 유스 시스템도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유스 출신의 선수도 많지만, 리그 내 다른 팀의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독일 선수들 역시 대부분 제2의 국대라 불리는 바이에른에서 뛰는 것이 꿈이다. 바이에른이 사실상의 독일 국대라고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아무리 좋은 선수라 하더라도 독일 선수가 아니면 가급적 뽑지 않고,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더라도 분데스리가 출신을 뽑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때문에 타 리그에서 선수를 영입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거의 언제나 분데스리가의 다른 팀의 우수한 선수를 영입해 왔다. 이러한 정책은 독일 국대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유럽의 다른 국대들이 식민지 출신의 흑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선발한 것과 달리 독일 국대는 2000년대 후반까지 오랫동안 독일 순혈을 유지해왔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바이에른의 이러한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 출신의 영입 비중이 높다.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더라도 타리그보다 분데스리가 출신들을 선호하는 것도 여전하다.바이에른이 자국 출신의 선수들을 선호하는 것 처럼 분데스리가 선수들도 타 리그의 명문 팀에서 뛰는 것보다 바이에른에서 뛰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이 아닌 팀에서 뛰는 것에 대해 배타적인 분위기마저 존재했다.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48]에서 활약한 후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해서 오랫동안 활약했는데, 이 때문에 모국 독일에서는 탈영병 취급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에른에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해서 활동했던 로타어 마테우스는 독일 선수들이 너무 분데스리가에서만 뛰려 하고 있다면서 타 리그에서도 활동하는 것이 독일 축구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견해를 피력할 정도였다.[49] 미하엘 발락의 이적도 독일 축구의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준다. 미하엘 발락이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성장한 후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때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하엘 발락이 바이에른에서 첼시 FC로 이적할 때는 졸부 구단 첼시의 돈의 유혹 앞에 바이에른 선수로써의 명예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마누엘 노이어의 이적 일화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FC 샬케 04에서 활약하던 마누엘 노이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지만 "나의 목표는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하는 것. 해외 여행은 일 년에 한두 번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면서 맨유의 구애를 뿌리쳤고, 결국 나중에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
반면에 분데스리가는 프리미어 리그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시기 바이에른이 강팀의 반열에 자리한 가운데, 다른 한두 팀이 그때그때 바이에른에 도전하는 형국을 보여왔기 때문에 리그 내에서 장기적인 바이에른의 라이벌은 사실상 없다. 대부분의 분데스리가 선수들이 제2의 국대로 불리는 바이에른으로의 이적을 원하고 명예롭게 생각한다는 점은 프리미어 리그와는 분명한 문화적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입 정책 때문에 바이에른의 역대 레전드들을 보면 독일 내 다른 팀 출신들이 적지 않은데, 특히 오랜 라이벌인 팀인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인 로타어 마테우스, 슈테판 에펜베르크 등이 대표적이다.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미하엘 발락, 제 호베르투, 루시우 페헤이라,[50] 베르더의 미로슬라프 클로제, 베르더과 함부르크에서 본좌 놀이 했던 대형 센터백 발레리 이스마엘과 다니엘 반 바이텐, 영입 당시 독일 축구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던 마리오 고메스까지. 90년대 후반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그나마 과감한 자금 투자로 견제했지만 2000년대 초반 재정난으로 무너진 이후에는 딱히 경쟁자가 없었다. 미하엘 발락이 떠나고 잠시 동안 VfB 슈투트가르트, 베르더 브레멘 등이 떠오르면서 리그 우승도 뺏겼지만 다음 시즌에 분노의 영입을 시전하며 루카 토니, 클로제, 프랑크 리베리 등을 보강해서 다시 리그를 지배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주전 선수들이 차례로 바이에른으로 이적하면서 충성심 높은 도르트문트의 팬들이 광분하기도 했다. 또한 라이벌 팀 간에 선수 이적이 드문 잉글랜드 등 해외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것처럼 정상급의 유망한 선수가 바이에른으로 이적하는 것은 분데스리가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실 도르트문트 역시 분데스리가의 다른 팀의 주축 선수들을 빼오면서 스쿼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다.
2012-13 시즌 종료 직전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마리오 괴체를 영입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유럽의 이적 가운데서도 굉장히 충격적인 경우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4월 23일에 Bild지가 그 유명한 빌트는 알고 있다는 문구를 앞세워 독점 보도를 터트리며 마리오 괴체의 바이에른 이적이 완료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51] 이후 도르트문트 지역의 지역지부터 결국 키커까지 이 사실을 보도하며 사실상 이적이 확정되었다. 결국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공홈에서 마리오 괴체의 바이에른 이적을 알렸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그 전까지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바이에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고, 마리오 괴체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유스 출신이었다.[52] 게다가 독일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 받던 선수가 갑작스럽게 바이에른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팬들에게 유다[53]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라이벌 흔들기가 아니냐는 말까지 겹쳐서 더욱 큰 비난을 받았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도 반신반의하다가 갑작스러운 라이벌 팀 선수 영입에 혼란스러워했다. 별 필요도 없어 보였던 데다, 한동안 라이벌 밟기성 영입이 없어서 그 이미지가 옅어지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는 바이에른이 회장 울리 회네스의 장기간에 걸친 탈세가 적발되어서[54] 팀의 핵심이자 팀의 미래인 마리오 괴체의 이적이 바이에른 구단 측에서 흘러나온 것은 이를 묻기 위해서 일부러 언론에 흘린 것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게다가 20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이 진행 중이던 1월 5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의 계약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1경기 4골을 넣은 뒤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떠올랐으며, 클럽을 떠난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보도되면서 최고의 매물로 떠올랐다. 레알 마드리드 CF,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같은 유럽 최고의 구단들이 계속에서 밑물 작업으로 유혹했지만, 유럽의 12개 구단[55]의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어린 시절 드림 팀이었다던 바이에른에 합류했다. 그러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이적은 마리오 괴체의 이적과는 달리 매우 훈훈했는데, 이유는 이미 이적 1년 전부터 사실상 이적이 확정된 분위기였고[56]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는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고 고별식까지 열렸다. 독일인이 아닌 폴란드인인 탓도 있었다.
2015-16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또다시 에이스를 영입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도르트문트의 중앙 수비수 마츠 후멜스. 훈훈한 마무리를 가진 레반도프스키와는 정반대로 후멜스는 팀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강한 마찰을 빚었던 데다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에게 팬 자격이 없다 발언하는 등 적반하장스러운 면을 보였고,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에게 야유 세례를 받는 등 감정이 좋지 않은 이별을 했다.[57] 바이에른이 괴체, 레반도프스키, 이제는 주장인 후멜스까지 국가대표 선발선수 3명을 3년 만에 같은 팀에서 빼앗아 가니 도르트문트 팬들이 화날 수밖에 없기는 하다. 내년엔 마르코 로이스와 우스만 뎀벨레[58]를 데려갈 것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주로 도르트문트, VfB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SV, FC 샬케 04, SV 베르더 브레멘과 같이 바이에른의 우승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팀[59] 출신 선수나 감독들이 반바이에른파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위르겐 클린스만이나 토르스텐 프링스, 오토 레하겔은 이런 예에 속하면서도 바이에른에 몸 담은 적이 있었다. 바이에른에 있었던 적이 있지만 이들이 바이에른과 결별했을 때는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다. 올리버 칸의 후계자로 유스 시절부터 정성 들여 키우던 미하엘 렌징이 부진하자 바이에른에 나름대로 자격지심이 있을 듯한 한스 외르그 부트[60]를 영입하며 성골 격임에도 렌징을 방출시킨 사례를 볼 때, 다른 팀들도 그렇지만 굉장히 냉정하게 인사 정리를 해버린다. 이에 따라 미하엘 렌징은 유스 출신임에도 반바이에른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선수 방출도 상당히 냉정한 편이다. 빅 클럽들이 선수를 방출하는 게 냉정하긴 하지만, 위의 렌징의 예도 그렇고 바이에른은 특히 냉랭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리베리, 클로제, 루카 토니를 한꺼번에 사온 분노의 영입을 벌일 때도 클럽에 충성해오던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였다. 클라우디오 피사로, 로이 마카이, 하산 살리하미지치, 로케 산타 크루즈 등을 냉정히 쫓아내었다.[61] 그래도 메멧 숄, 올리버 칸, 비셴테 리사라수, 필립 람 등 바이에른에서 은퇴한 선수들도 많은 편이다.
7.2.1. 리그 경쟁력 약화에 대한 비판
하지만, 아무리 선수 본인이 원하고, 리그 전체의 분위기가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하더라도 이러한 바이에른 중심의 이적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유럽 굴지의 경제대국이자,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축구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독일의 프로 리그가 리그 경쟁력과 상업성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 라리가에 현격히 밀리는 것에 대해서는 바이에른의 리그 독식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오래전의 묀헨글라트바흐의 예시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서만 하더라도, 바이어 04 레버쿠젠, 베르더 브레멘, 함부르크 SV, VfB 슈트트가르트 등 강팀들이 선전을 한 이후에 그 다음 시즌 주축 선수들을 바이에른에게 빼앗기면서 몰락하였고, 결국 그중에 슈투트가르트는 결국 하위권을 전전하다 강등에까지 이르렀다. 현재 주축 선수들의 바이에른으로의 엑소더스가 진행 중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도 물론이거니와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세바스티안 루디, 레온 고레츠카, 얀피테 아르프, 라파엘 게헤이루, 콘라트 라이머와 같은 분데스리가에서 주목할 만한 자원, 혹은 이미 검증된 자원을 압도적인 주급과 클럽의 위상을 버무려 '자유 계약'으로 데려오는 악랄한 이적 정책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어려운 분데스리가 특성상 선수 이적이 많을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바이에른의 경우 주축 선수들을 꽤 염가로 사온다는 거다. 저 위의 주축 선수들이 다른 리그로 갔으면 훨씬 많은 이적료를 구단이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독일 축구의 잘 갖춰진 시스템으로 유망주를 잘 육성하면서 버텨왔는데 PL 팀들과 PSG, 레알 마드리드 등 다른 리그 구단들이 이 선수들 몸값을 말 그대로 폭등시켜 놓은 상황에서 바이에른이 자국 리그의 선수들을 자꾸 염가로 빼가면 선수 빼앗긴 구단은 선수 보충이 갈수록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7.2.2. 반론
리그 내부 이적 목록 |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우선 축구계에서 중소 클럽의 선수들이 더 나은 조건과 트로피를 찾아 보다 빅 클럽으로 이적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윗 문단에서 피해자로 묘사된 도르트문트는 위르겐 클롭과 토마스 투헬과 같은 감독으로부터 시작해서 네벤 수보티치와 박주호까지 많은 핵심 선수들을 마인츠로부터 영입한 데 이어 바이에른보다도 리그 내 선수 영입을 많이 하는 구단이고[62] 레버쿠젠은 함부르크에서 3년 연속으로 핵심 선수들[63]을 영입했다.
또한, 바이에른이 해당 선수들을 영입해와서 리그의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허점이 있는데 "과연 해당 선수들이 바이에른으로 이적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분데스리가에 남았을 것이냐"하는 문제다. 분데스리가는 기본적으로 50+1 규정 에 의해 대량의 자본이 들어서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고, 이 때문에 대다수의 분데스리가 클럽들은 셀링 클럽의 기조를 띠게 된다. 굳이 바이에른 때문이 아니더라도 분데스리가의 전도유망한 선수들은 원 소속 팀을 떠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실제로 우스만 뎀벨레,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로스, 세아드 콜라시나츠, 그라니트 자카, 율리안 드락슬러, 막스 마이어, 카이 하베르츠 등 양질의 선수들이 분데스리가를 떠났다.
샬케에서 바이에른으로 이적한 레온 고레츠카의 사례를 보면 파리 생제르맹,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타 리그 클럽들과 연결되다가 마지막에 바이에른을 선택한 케이스로 만약 바이에른이 영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 소속 팀 샬케에 잔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게 현실이다. 단순히 바이에른 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리그 구조 자체도 다른 팀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에른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전 사장은 바이에른이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이 50+1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2018년 3월 50+1 규정의 폐지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제도 유지가 결정되자 인터뷰에서 "이날 나는 DFL과 작별을 고했다"라고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64][65]
아이러니하게도 50+1 제도 유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도르트문트 CEO인 한스요아힘 바츠케다.
특히 바츠케가 50+1 제도 폐지에 대하여 반대하자 울리 회네스는 바츠케를 비판하기도 했다.출처[66]
7.3. 라이벌
전통적으로 분데스리가의 판도는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과, 그에 대항하여 5~10년 주기로 라이벌 팀이 등장해 시대를 양분하는 양상이었다. 최근에 분데스리가의 강호 도르트문트가 바이에른 뮌헨의 라이벌로 평가받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전통적인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함부르크 SV을 꼽을 수 있다.1970년대의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였다. 묀헨글라트바흐는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라이벌이었다. 70년대 바이에른 뮌헨은 71-72, 72-73, 73-74 세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랐으며, 이 여세를 몰아 74년부터 76년까지 3년 연속으로 유러피언컵(챔스 전신)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 시절 바이에른을 위협했던 묀헨글라트바흐는 69-70, 70-71, 74-75, 75-76, 76-77 시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거두면서 리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보다 더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함부르크 SV가 득세했다. 90년대 중반에는 도르트문트가 부상하여 2년 연속 분데스리가 정상을 차지하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으나 지나치게 전력을 짜낸 후유증으로 곧 추락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SV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 후반에는 FC 샬케 04, 그리고 2010년대에는 다시 도르트문트가 화려하게 부활함에 따라 바이에른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특히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가 맞붙게 되자, 엘 클라시코에 해당하는 독일어를 찾던 해외 언론들이 엘 클라시코를 독일어로 번역한 데어 클라시커라는 말을 급조하여 앞다투어 사용하면서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데어 클라시커라는 용어가 꽤나 알려지면서 분데스리가 유튜브나 SNS 등에서 경기 홍보 목적으로 쓰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홍보의 목적일 뿐 결코 두 팀 간의 특별한 라이벌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데어 클라시커 문서 참고하십시오.
널리 알려진 더비전으로는 우승 순위 1, 2위를 차지하며[67] 같은 바이에른주가 연고지인 1. FC 뉘른베르크와의 바이에른 더비[68], 바로 옆동네에 있는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쥐트도이치 더비(남독일 더비), 지금은 하위 리가를 전전해서 잊혀졌지만 같은 뮌헨을 연고로하는 독일 최초의 클럽 TSV 1860 뮌헨과의 뮌헨 더비등이 있다. 1960년까지만 해도 TSV 1860 뮌헨이 바이에른 뮌헨 위상 못지않은 명문 클럽이었기에 더욱 치열했던 더비전이었다.
한편 유럽 대항전에서는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가 최대의 라이벌로 꼽힌다. 이 두 팀은 유럽 무대에서 많은 경기나 치렀고 상대 전적에서 바이에른은 레알에게 11승 3무 12패로 근소한 열세이다. 이외에도 FC 바르셀로나, 리버풀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아스날 FC, AC 밀란, 유벤투스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유럽 유수의 명문 구단들과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같은 바이에른주의 지역 더비 라이벌 관계였던 1. FC 뉘른베르크와 VfB 슈투트가르트가 모두 강등당한 상태라 2011년에 승격해 1부리그에 자리잡은 FC 아우크스부르크가 새로운 지역 더비 관계로 떠오르고 있다.[69] 아우크스부르크는 13-14시즌 후반기 바이에른의 53경기 무패 행진에 제동을 걸었던 바 있다. 이미 바이에른이 우승을 확정지은 터라 주전 대부분이 빠졌던 부분도 있으니 감안해야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와 바이에른이 맞붙으면 항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FC 바이에른 뮌헨/라이벌 문서 참고하십시오.
7.4. 징크스
-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AC 밀란을 만나면 탈락한다.
역대 전적 1승 3무 6패. 바이언은 컵위너스컵과 챔피언스 리그에서 밀란을 총 다섯 번 만났는데 다섯 번 모두 탈락했다. 특히 2002-03 시즌에는 조별 라운드에서 만나 2전 전패를 당하며 바이언은 충격의 조별 라운드 탈락을 당하고 말았다.[70] 아주리 징크스의 클럽 버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 묀헨글라트바흐에게도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다.
위의 밀란처럼 압도적으로 밀리는 건 아니지만 유독 묀헨글라트바흐에게 발목을 자주 잡힌다. 당장 이번 시즌 분데스 리가 3라운드에서 이기기 전까지 최근 5경기 전적에서 2무 3패로 밀리고 있을 정도였는데, 특히 2021-22 시즌 DFB-포칼에서는 0-5로 대패하며 32강에서 광탈하기도 했다.
7.5. 바이에른 스쿼드 = 독일 대표팀 스쿼드?
특히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이나 FIFA 월드컵 직전 시즌에 주로 생기는 떡밥. 바이에른에서 주축을 담당하는 독일 국적 선수들은 모두 독일 국대에서도 활약하는 현상. 회네스 구단주의 속내일 수도 있겠지만 분데스리가의 선수들이 꿈꾸는 최종 목표가 대부분 바이에른 뮌헨 입단인 것에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다만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1966년까지만 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 출신 선수들은 겨우 한두 명 정도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대회별로 살펴볼 경우, 독일이 나간 최초의 월드컵인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에 바이에른 뮌헨 출신 독일 국대 선수는 지그문트 하링어가 유일했다. 그리고 독일이 두 번째 대회로 출전한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루트비히 골트브루너와 야코프 슈트라이틀레였다. 1938년 대회 이후 12년 만에 열린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서독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쟁 범죄국으로 찍혀 국가대항전 출전 금지 조치를 당하는 바람에 해당 대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다행히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는 국가대항전 출전 금지 조치가 풀렸기 때문에 서독은 해당 대회에 출전하였다. 이때 출전한 바이에른 선수는 한스 바워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거쳐간 선수들 중 최초의 월드컵 우승자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된 7명의 바이에른 뮌헨 소속 선수들이 1974년 서독 월드컵을 제패하기 이전까지는 클럽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자였다. 이후에 열린 대회인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바이에른 소속 선수들이 단 한 명도 뽑히지 못 했으며, 이는 지금까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나간 FIFA 월드컵,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본선과 예선을 통틀어 유일하다. 그나마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바이에른 뮌헨 출신 선수는 빌리 기제만 단 한 명뿐이긴 했으나, 어쨌든 독일 국대에 선수를 차출시키긴 했다. 참고로 이들 모두 수비수였고, 독일 국대로 차출된 이후에 치른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 했다.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뽑힌 바이에른 뮌헨 선수는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수비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대회에서 무려 4골을 넣으며 해당 대회 득점자 목록에서 3순위를 차지한 프란츠 베켄바워였고, 나머지 한 명은 FC 바이에른 뮌헨 팬들이 꼽은 최고의 골키퍼이자 원조 독일 국대 레전드 골키퍼로 꼽히는 제프 마이어였다. 게다가 잉글랜드 월드컵이 끝나고 2년 뒤에 열리는 유로에 나가기 위해 치르는 예선전에서는 또 한 명의 바이에른 뮌헨 선수가 추가되었는데, 그가 바로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축구 국대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나는 게르트 뮐러였다. 그리고 이 세 명은 소속 클럽과 국대에서 대활약을 보여준 데다가 이들의 클럽 동료들 역시 리그와 포칼, 유러피언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자신들을 국대에 발탁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고, 자연히 바이에른 뮌헨 출신들이 독일 국대에 뽑히기 시작했다. 특히, 1968-69 시즌에 리그와 포칼 우승으로 더블을 달생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1970년대 초중반에 구단에 황금기를 가져온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대표팀에 대거 발탁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을 주축으로 해서 나간 대회들인 1972년 유로와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확고해졌다. 74년 우승 당시 서독 국대 스쿼드에 속한 인원들 중에서 주장 프란츠 베켄바워를 비롯해 수문장 제프 마이어, 게르트 뮐러, 울리 회네스, 파울 브라이트너[71],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유프 카펠만이 바이에른 소속이었는데, 이는 당시 최종 출전 선수 명단에 속한 18명의 선수들 중 무려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그리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세 번째로 우승했을 당시에 독일 국대 명단에 있었던 22명 중에서 슈테판 로이터,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위르겐 콜러, 라이몬트 아우만, 한스 퓔글러, 올라프 톤이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었는데, 이는 전체 대표팀 인원들의 1/4에서 1/3에 달하는 숫자였다.[72]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독일 국대가 순혈주의를 버리고 해외파들이 등장하면서 잠재워지나 했더니[73] 2010년대 들어와서 이 조짐이 부활하였다. 특히 UEFA 유로 2012 직전 시즌이었던 11-12 시즌 당시 공격진부터 마리오 고메스-토마스 뮐러-토니 크로스에 중원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거기에 수비진 필립 람-제롬 보아텡-홀거 바트슈투버, 여기에 수문장 마누엘 노이어까지 국대에 선발되어 중요한 메이저 대회에 한 번 이상 나왔다. 게다가 독일의 주장, 부주장은 필립 람과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였고, 바이에른의 주장과 부주장 역시 필립 람과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다.[74]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샬케, 도르트문트 등 여타 분데스리가 클럽들과 해외파 선수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 현상도 줄어드나 싶더니 대회 직전 마르코 로이스의 부상, 허리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 아웃된 일카이 귄도안, 그리고 역시 부상으로 벤더 형제마저 못 나오자 독일 국대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또다시 대거 발탁되었다. 주전 라인업 중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토니 크로스, 토마스 뮐러, 마리오 괴체 무려 7명이 바이에른 선수로 채워졌다.[75] 그리고 독일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물러나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 이후 비독일인 선수들이 상당수 유입되어 예전에 비해 독일 국적 선수들의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다. 과르디올라 체제 3년과 안첼로티의 첫 시즌인 2016-17 시즌까지 4년의 기간 동안 바이에른에서는 팀의 주전인 동시에 독일 국가대표 선수인 마리오 고메스, 토니 크로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이 떠나고, 티아고 알칸타라, 아르투로 비달,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후안 베르나트, 킹슬리 코망, 더글라스 코스타, 헤나투 산체스 등 주로 히스패닉을 필두로 한 외국 용병들이 스쿼드 대부분을 메워 외국인팀으로 변해갔다. 물론 중간중간 요주아 키미히나 마츠 훔멜스 등이 합류했으나 유프 하인케스 시절이나 이전의 오트마어 히츠펠트 시절에 비하면 외국인 비중이 굉장히 커졌다. 16-17 시즌에는 공격진 및 미드필더진 주전 중 독일 국가대표 선수는 0명이었다. 토마스 뮐러가 벤치로 밀려나고 로베리 라인이 주전으로 돌아왔고, 그 서브도 코스타-코망 라인이었다. 요슈아 키미히 역시 전반기에는 주전이었으나 후반기에는 티아고-비달-알론소 라인으로 주전이 굳혀지면서 서브로 뛰었다. 그나마 수비 라인이 보아텡-훔멜스-람에 마누엘 노이어가 포진해 독일 국대의 수비력을 이식한 형태였는데, 이조차 보아텡의 잦은 부상으로 대부분 하비 마르티네스가 선발이었다.
그러나 울리 회네스 회장이 팀에 복귀하자 현재 바이에른의 영입 노선은 다시 독일의 색채를 더하는 정책으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회네스는 젊은 독일선수들 위주의 리빌딩을 구상하고 있으며, 히츠펠트 감독 또한 바이에른에는 너무 많은 외국인 용병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바이에른이 유럽을 제패하며 전성기를 구가할 때에는 항상 독일 최고의 선수들이 바이에른에 모여 있었다. 16/17 겨울 이적 시장을 포함해서 2017-18 시즌을 앞둔 현재 바이에른의 이적 시장을 보면 니클라스 쥘레, 제바스티안 루디, 세르주 그나브리 같은 독일 유망주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다시금 2001년과 2013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리빌딩에 이미 착수하기 시작했다.[76] 이들뿐만 아니라 율리안 브란트, 레온 고레츠카 등 컨페드컵에서 활약 중인 독일의 영건들도 바이에른과 강력하게 링크되고 있으며, 이 중 고레츠카는 결국 바이에른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때 영입한 젊은 독일 선수들이 수뇌부의 기대에 부응해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바이에른 뮌헨은 첫 번째 트레블 이후의 부진을 딛고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이는 2019-2020 시즌 당시 바이에른의 두 번째 트레블과 2020-2021 시즌 후반기에 달성한 전관왕 타이틀을 가지고 온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들 중 쥘레와, 루디, 고레츠카,[77] 키미히는 클럽에서의 활약과 컨페드 컵 우승이라는 실적 덕분에 구단과 국대 선배이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멤버였던 노이어, 뮐러, 보아텡, 후멜스와[78] 함께 러시아로 가는 독일 국대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 조별 리그 F조 경기들, 특히 한국과 붙었던 3차전에서 2-0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우승으로 끝낸 지난 월드컵과는 달리 독일 축구 역사상 월드컵 최초로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시작으로, 2018-19 UEFA 네이션스 리그 당시에 졸전을 펼치다가 리그 B 강등 위기[79], 2020-2021 네이션스 리그 조별 리그 4조 6차전 당시 스페인에게 당한 6-0 패배 및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 실패,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조별 리그에서 겪은 뒤스부르크 참사[80], UEFA 유로 2020 16강 탈락[81] 등의 연이은 참사를 겪으면서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다수 포진된 독일 국대는 강력하다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특히 바이에른 뮌헨이 17-18 시즌 부활에 성공하고, 18-19 시즌에는 더블, 19-20 시즌 트레블, 2021년에는 전관왕까지 달성하면서 다시 예전의 위상을 찾은 것과 대비되는 상황.
그나마 뢰프가 떠난 이후에는 과거 2019-20 시즌부터 2020-21 시즌까지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을 맡았던 한지 플릭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플릭은 남은 카타르 월드컵 예선 기간 동안 전승을 거두며 개최국 카타르를 제외한 국가 가운데서는 첫 번째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고[82], 이스라엘에 2-0, 네덜란드와 1-1로 비기며 부활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2022-23 시즌 UEFA 네이션스 리그 리그 A 조별리그에서 3위를 거두며 결선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였으며[83], 월드컵 본선 직전에 카타르 현지에서 치렀던 오만과의 친선전에서는 1:0 신승을 거두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본선 조별리그 1차전 상대인 일본에게 1:2 역전패를 당했으며, 2차전에서는 스페인과 1:1로 비겨버리면서 E조 4위로 추락함에 따라 2연속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마지막 3차전 상대인 코스타리카를 4-2로 이겼으나 스페인이 일본전에서 역전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코스타리카가 상대였던 1차전을 7-0으로 대승했기 때문에 득실차에서 밀려 E조 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을 맞았다.
게다가 독일 축구팀이 다시 쇠락하던 시기는 바이에른 뮌헨도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을 조기에 뚧고 본선에 진출하던 때인 2021-22 시즌 전반기에는 묀헨글라트바흐에게 5:0으로 대패하여 2시즌 연속 포칼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거둔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가 없었으나 후반기에 치렀던 챔스 16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FC 잘츠부르크 상대로 졸전을 벌이다 1:1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으며, 잘츠부르크를 홈에서 7:1로 깨고 올라간 8강에서는 비야레알 CF 상대로 홈과 원정 경기 모두 졸전을 벌이다가 합산 스코어 2:1이라는 결과를 거두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또한, 리그에서도 31라운드에서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확정지은 것은 좋았으나 이후에 치러진 경기들에서는 2무 1패를 기록하며 시즌을 찝찝하게 마무리하는 바람에 2012-13 시즌 이후 최악의 경기력과 성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팀 수뇌부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무리하게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고 싶다는 요청을 피력했으며, 결국 시즌 종료 이후 그를 바르셀로나로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후에 시작된 2022-23 시즌 극초반은 순조로웠으나, 이후 묀헨글라트~아우크스부르크 전에서 3무 1패를 당하며 팀이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챔스에서만큼은 6전 전승을 거두었으며, 포칼 32강에서도 아우크스부르크를 상대로 2:5 대승을 거두며 리그 7라운드 패배를 설욕하였다. 그리고 리그에서도 다시 연승을 거두며 선두 자리를 탈환하였다. 그러나 챔스 16강 상대로 PSG가 걸리는 악재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나마 16강 경기에서는 PSG를 압도하고 8강에 올라갔으나 대진 상대로 맨시티가 걸려버렸다. 게다가 이후 뮌헨은 3월 일정이 끝나고 포칼과 챔스 8강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율리안 나겔스만을 경질하고 토마스 투헬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는데 이게 큰 악수로 작용했다. 결국 전력의 열세와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뮌헨은 맨시티 홈에서 가진 1차전에서 다요 우파메카노의 수비 실수와 공격진들의 미비한 골 결정력으로 3-0 대패를 당한데다가 홈에서 치른 2차전에서 1-1로 비기면서 또 8강 탈락을 겪게 되었다. 거기다 포칼조차도 8강에서 SC 프라이부르크에게 2-1 역전패를 당해 탈락했으며, 리그조차 후반기 막판에 1위를 빼앗기고 준우승을 할 뻔 했다가 분데스리가의 모든 팀이 동시에 실시한 최종전 당시 뮌헨은 쾰른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상황에서 마인츠가 상대였던 도르트문트의 무승부가 확정됨에 따라 승점은 71점으로 같았어도 득실차에서 우위를 점한 까닭에 겨우 우승할 수 있었다. 이렇듯 2023년의 바이에른 뮌헨은 2019-20 시절에 거둔 2컨티넨탈 트레블과 2021년 2월에 두 번째 전관왕 달성이라는 업적을 통해 얻은 위상을 거의 잃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카타르 윌드컵에 나간 바이에른 뮌헨 소속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같이 나갔던 비(非) 뮌헨 선수들에 비하면 폼이 좋지 않았다. 우선 뮌헨의 공격진인 자말 무시알라, 세르주 그나브리, 리로이 자네, 토마스 뮐러 가운데 그나브리만 코스타리카전에서 1골을 터뜨린 반면, 첼시 소속의 카이 하베르츠는 코스타리카전에서 멀티골을, 브레멘 소속의 니클라스 퓔크루크는 스페인과 코스타리카전에서 1골씩 넣었다. 심지어 미드필더인 일카이 귄도안조차 PK이긴 해도 1골을 넣은 것에 비하면 초라한 기록이다. 게다가 뮌헨의 미드필더인 고레츠카는 1차전에서 매우 부진한 활동량과 찬스 미스를 저지르며 팀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된 동시에 일카이 귄도안과 비교되는 활약으로 까이고 있다. 게다가 무시알라를 빼면 위협적인 공격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또한, 골키퍼인 마누엘 노이어는 3차전 당시 자책골을 제외하면 여전한 폼을 보였으나, 일본전 전날에 One Love 완장에 대한 항의 시위를 주도하면서 팀 내부에 쓸데없는 논쟁만 불러일으킨데다 대회 이후에는 스키를 타던 도중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험난한 일정이 예정된 뮌헨 팬들과 독일 국민들에게 크게 비난받았다. 그리고 2022-23 시즌에 도르트문트로 이적하기 직전까지 뮌헨에 소속되어 있었던 니클라스 쥘레는 이적 직전에 체중 관리 실패로 비난받은데다 부상을 당하여 새 팀인 돌문에서도 한동안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또한, 플릭에 의해 1차전에서 자기의 포지션이 아닌 라이트백으로 출전한 결과,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1차전 패배에 일조하게 되었다. 다만 니클라스 쥘레[84], 케빈 트랍, 카이 하베르츠, 니클라스 푈크루크와 같은 비(非) 뮌헨 선수들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나왔던 메수트 외질, 사미 케디라,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과 같은 비(非) 뮌헨 선수들만큼 잘하지는 않았던 데다 그들 역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조직력과 결속력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여 2연속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만들어낸 만큼 무조건적으로 뮌헨 선수들만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에 나온 뮌헨 선수들 대부분의 폼이 별로 좋지 않은 데다가 조별리그 3차전 당시 만 19세인 무시알라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폼이 하락해버린다면 다음 월드컵에 출전이 불가능하거나 벤치로 밀릴 정도로 나이가 있으며[85][86]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뮌헨에 좋은 선수들이 이적해 오거나 데뷔하지 않는다면 북중미 월드컵에 나가는 뮌헨 소속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는 무시알라 혼자만 나가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7.6. 조직과 재정
바이에른 축구 클럽은 자회사인 FC 바이에른 뮌헨 AG에 의해 운영된다. 정확히 말하면 AG는 Aktiengsellschaft, 즉 주식회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주식 시장에는 상장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사적인 회사이다. 회사 주식의 대부분은 모 구단인 FC 바이에른 뮌헨 e.V(흔히 축구 클럽 바이에른 뮌헨으로 대표되는)이 보유하고 있다.[87] FC 바이에른 뮌헨 e.V 는 남자 축구 (1군 팀, 2군 팀, 유소년 팀), 여자 축구, 농구, 볼링, 체스, 체조, 핸드볼, 탁구, 축구 심판부, 올드 보이 선수단을 두고 있다. 이 중 80% 이상의 지분을 남자 축구단이 차지하고 있다. 모 구단인 FC 바이에른 뮌헨 e.V 가 보유한 75%의 주식 이외의 주식들은 스폰서십을 맺은 대기업들에게 있다. 아디다스가 8.3%, 아우디가 8.3%, 알리안츠가 8.3%를 소유하고 있다.[88]FC 바이에른 뮌헨 e.V 에는 모든 선수단을 관리하는 관리 자문 위원회가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축구단을 운영하는 자회사인 FC 바이에른 AG 또한 이 관리 자문 위원회의 산하에 있고 이들에 의해서 통솔되는 것이다. 바이에른의 상징적인 인물인 울리 회네스가 1979년에 클럽 디렉터로 합류한 이후 2009년에 이 관리 자문 위원회의 회장직에 올랐었다. 그야말로 반평생을 바이에른에서 일하며 클럽의 재정적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전임은 1994년부터 2009년까지 회장 역할을 역임한 프란츠 베켄바우어.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명예 회장이 되었지만 명예 회장은 실질적인 영향력은 없다. 다음은 이 FC 바이에른 뮌헨 e.V 의 관리 자문 위원회 명단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e.V 관리 자문 위원회
회장: 헤르베르트 하이너 (Herbert Hainer)[89]
부회장: 디터 마이어 (Dieter Maier)[90]
자문 위원회 부회장 및 집행 위원회 회원: 루퍼트 슈타들러 (Rupert Stadler) / 아우디의 CEO
수석 부회장 및 집행 위원회 회원: 루돌프 셸스 (Rudolf Schels)
집행 위원회 회원: 티모호이스 회트게스 (Timotheus Höttges) / 도이체 텔레콤의 CEO[91]
집행 위원회 회원: 헬무트 마크보트 (Helmut Markwort) / <Focus>[92]의 창간인이자 편집장
집행 위원회 회원: 디터 람플 (Dieter Rampl) / 유니 크레디트[93]의 회장
집행 위원회 회원: 에드문트 슈토이버 (Edmund Stoiber) / 전 바이에른 주의 총리,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 연합의 당수, 독일의 거물 정치인
집행 위원회 회원: 마틴 빈터콘 (Martin Winterkorn) / 폭스바겐 그룹의 회장[94]
그리고 FC 바이에른 뮌헨 e.V 의 관리 자문 위원회와는 따로 FC 바이에른 뮌헨 AG에도 운영진이 있다. 바이에른의 임원 대부분이 팀의 레전드 선수 출신이거나 아주 오래전부터 일해와서 구단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사람들이 많다. 다음은 FC 바이에른 뮌헨 AG의 임원 명단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AG 임원
CEO[95]: 공석
부사장 및 재무 이사: 얀 크리스티안 드레센 (Jan-Christian Dreesen)
스폰서 및 광고 담당 이사: 안드레아스 융 (Andreas Jung)
프로 선수팀 담당 이사 (단장 / 스포팅 디렉터): 크리스토프 프로인트 (Christoph Fround)
국제화 및 전략 담당 이사: 공석[96]
2007-08 시즌의 매출은 2.1M유로의 세금을 제외하면 328.4M을 기록하였고, 2008-09 세금을 제하고 303.8M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델로이트의 풋볼 머니 리그에 의하면, 바이에른은 2009년에 €289.5M의 매출을 기록한 4번째 부자 클럽이라고 발표되었다. 또한 유럽 매출 Top 10 구단 가운데 가장 부채 액수가 적으며, 동시에 가장 재정 안정도가 높다. 201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출전에 따라, 클럽의 브랜드 가치는 $786M으로 상승하였고, 이는 전년도 대비 59% 상승한 수치이다. 이에 따라, 브랜드 가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600M 가치를 넘어섰고, $853M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뒤를 이어 이 부문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2013년은 트레블에 한 해 5관왕의 업적을 이루는 등 우주 최강의 위엄을 뿜어낸 덕택에 832M로 브랜드가치 1위를 탈환했고, 2014년에도 챔스우승팀 레알 마드리드 CF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1위자리를 유지했다. 어쨋건 대부분의 거대 클럽들이 적자인 마당에 2년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인 데다, 올 시즌 구단의 머천다이징 수입은 지난 시즌의 두 배에 달하는 1억 유로를 내다볼 정도로 마케팅 능력도 탁월하다. 또한 최근의 구단 수입 발표에서는 레알과 맨유에 이어 세 번째 자리를 차지했는데, 여기서 TV 중계권료를 빼면 바이에른이 1위다. 기본적으로 분데스리가의 TV 중계권료는 높지 않으며, 2부 리그에게 중계권료를 나누어주는 균형 정책까지 쓰고 있다. 이 분배가 매우 균등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1위 팀과 18위 팀의 중계권료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엄청나게 높은 수치의 중계권료를 자랑하는 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상위권 팀과 하위권 팀의 중계권료 차이가 하늘과 땅 수준인 라리가처럼 중계권료를 받았다면 훨씬 더 높은 매출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루어낸 성과이니 더욱 대단하다.
여담으로 타 유럽 구단들은 국제적 마케팅에 중점을 둔 가운데, 바이에른은 국내 마케팅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독일 축구 팬들은 바이에른 팬과 바이에른 반대파로 갈릴 정도로 전국구 인기 구단이다. 물론 2010년대로 넘어올수록 여타 유럽 지역과 중동/아시아 쪽의 마케팅에도 신경쓰는 모습.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마케팅에 굉장히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수 마케팅을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시하지만 아무래도 최근의 추세를 보아 글로벌 마케팅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로 위원회를 만들어 프란츠 베켄바워와 파울 브라이트너를 내세워서 특히 미국쪽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6.1. 지역 기반 기업과의 스폰서십
대부분의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그러하듯 바이에른 역시 뮌헨 지역이 연고지인 많은 거대 기업들의 빠방한 스폰서십을 협찬받고 있다. 이 부분이 바이에른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점인데 유럽 최고 부국에서 알짜배기 땅을 거의 통째로 먹고 있는 수준이다. 영국의 EPL만 봐도 좁은 런던에 수많은 클럽이 존재하고 스페인도 영국보다는 나은 형편은 못 된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 제법 살 만한 다른 지역들은 전통 있는 클럽들이 산재해 있는데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을 넘어서 바이에른을 통째로 집어삼킨 꼴. 이와 비교해서 독일 북부 지방의 중심인 베스트팔렌 지역은 FC 샬케 04, 바이어 04 레버쿠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등등 챔스 경쟁 팀만 4팀이 있다.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는 4200억 원에 달하는 경기장 건설비의 24%를 뮌헨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보험사 알리안츠가 지원하는 대가로 경기장 명명권을 얻은 것이고, 최근에는 110M 유로를 지불하고 바이에른의 지분 8.33%를 인수하는 동시에 경기장 명명권 계약을 5년 연장해 2041년까지 명명권을 가지게 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110M이라는 계약금을 손에 넣은 바이에른은 공사비 부채 잔액을 변제하고, 남은 금액은 유소년 클럽 시설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밖에 뮌헨 근교의 잉골슈타트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아우디와도 스폰서십이 체결되어 있고, 2009년 90M의 주식을 매입해 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계약은 바이에른의 알리안츠 아레나 임대료를 지불하는 기간을 예상보다 훨씬 단축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부터 매년 프리시즌 막바지에 유럽-남미의 강호 클럽들을 초청해 아우디 컵을 개최하고 있다. 구단 소속 선수들에게도 아우디 사의 차량이 제공되며 2020년 1월에는 "모든 구단 공식 일정에 아우디 또는 폭스바겐 차량을 이용할 것이며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 5만 유로를 아우디 사에 지급할 것"이라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메인 유니폼 제작사는 아디다스가 맡고 있고[97], 이미 40년 가까이 협력 관계인 아디다스는 2002년에 77M의 주식을 사들여 9.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바이에른 구단 외 기업이 맡은 가장 많은 지분이다. 2020년까지 유니폼 제작사 스폰서십 계약이 되어 있는데, 더 연장될 예정이다.
현 바이에른 유니폼의 주 광고 파트너이자 메인 스폰서는 독일 자국 내 최대의 통신 기업 도이체 텔레콤이고,[98] 또한 뮌헨에 본사를 둔, 3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맥주 회사 파울라너와도 오랜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관계다. 그래서 바이에른이 우승 세리머니를 할때는 항상 들이붓고 마시는 맥주는 파울라너다. 그 밖에 옥토버페스트나 각종 행사에 쓰이는 맥주, 음료를 후원하고 있고, 매년 파울라너 컵을 개최해 바이에른과 지역민들이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대회 방식은 까다로운 조건 없이 아마추어 팀도 모두 참여 가능하며,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자를 가려 우승팀은 꿈에 그리던 바이에른 뮌헨과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 밖의 프리미엄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기업에는 코카콜라, 삼성전자[99], 카타르항공[100] 등이 있다.
7.6.2. 자선 단체
바이에른 뮌헨은 이미 자선 단체를 운영해 어려움에 빠진 클럽이나 개인을 도와 온 걸로 유명한데, 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이 일어난 직후 FC 바이에른 - 힐페 e. V. (FC Bayern – Hilfe e.V.)가 조직되어 자선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였다.이 활동으로 클럽의 선수들은 €600,000의 기부 금액을 모았다. 모인 기부금은 스리랑카의 마라텐케니에 학교를 짓는 데 쓰였으며, 스리랑카의 트린코말리 지역의 재건을 위해서도 쓰였다. 2007년 4월, 이 기부 단체는 지역의 불행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으로 목적을 변경하였다.바이에른은 재정난에 닥친 축구 클럽을 돕는 데에도 힘썼다. 그 사례로 지역 라이벌 TSV 1860 뮌헨은 바이에른과 정기적 친선 경기를 가졌고, 1860에게 도움이 되는 이적을 해주며, 재정 지원을 하였다.[101] 그리고 FC 장크트파울리가 재정난으로 프로리그 라이선스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바이에른은 장크트 파울리와 친선 경기를 무료로 벌여, 모든 매출액을 FC 장크트파울리가 가져가도록 하였다. 최근에는 마르크 판보멀의 친정 팀인 네덜란드의 포르튀나 시타르트가 재정난에 처하자 바이에른은 자선 경기를 벌였고, 수입금 전액을 지원해주었다. 2013년 2월에는 재정난으로 부도 위기 직전에 놓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알레마니아 아헨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친선 경기를 기획해 관중 입장료 등 수익금 전액을 아헨의 부채 탕감에 지원하는 데 쓰도록 하였다.
또다른 사례로는 1993년 알렉산더 치클러를 디나모 드레스덴으로부터 영입한 것이 있다. 바이에른은 2.3M의 DM에 치클러를 영입, 재정난에 닥친 드레스덴을 도왔다. 2003년 바이에른은 160만 유로의 대출을 담보 없이, 거의 부도가 난 라이벌 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지원해주었고, 도르트문트는 파산 위기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현재 이 대출 금액은 상환되고 있는 상태다.
8. 발롱도르 잔혹사
1980년과 1981년에 연속 수상을 했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를 마지막으로 발롱도르와는 좀처럼 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는 후보를 수차례 배출해내고도 해당 선수가 수상에 불리한 포지션이거나 말도 안 되는 억까를 당하는 등의 이유로 수상에 실패하고 있는데 그 기구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2001년: 올리버 칸 - 마이클 오언에게 밀려 불발
- 2013년: 프랑크 리베리 - 사상 초유의 연장 투표 진행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밀려 불발
- 2014년: 마누엘 노이어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밀려 불발
- 2020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102]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사태로 인한 시상식 취소(...)
- 2022년: 사디오 마네[103] - 카림 벤제마에게 밀려 불발
게다가 이 중 사디오 마네를 제외하면 모두가 크고 작은 논란 속에 수상이 불발되었다. 위에 가볍게 언급된 리베리와 레반도프스키 말고도 올리버 칸은 분데스 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더블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월드컵 예선에서 마이클 오언에게 해트트릭을 내준 게 임팩트가 컸는지 발롱도르를 오언에게 내줘야 했고, 마누엘 노이어는 분데스 리가 우승과 월드컵 우승을 동시 제패의 주역이었던 데다가 월드컵에서는 포디움 상대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과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차례차례 탈락시키고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호날두가 라리가에서 더 강한 임팩트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발롱도르를 호날두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렇다 보니 바이에른 팬들은 물론 타팀 팬들 역시 바이에른의 발롱도르 억까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으며,[104] 최근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중심으로 발생한 레알 마드리드의 보이콧 사태와 대비되면서 비니시우스보다 훨씬 억울한 상황이었음에도 항상 시상식에 참석하며 예의를 갖췄던 바이에른이 다시금 재평가 받고 있다.
9. 파트너십
9.1. 메인 파트너
도이체 텔레콤 | 아디다스 | 아우디 | 알리안츠 |
9.2. 플래티넘 파트너
도이체 포스트 | 굿이어 | 카타르항공 | 히포페라인스 은행[105] | 코나미 |
| ||||
파울라너 | 지멘스 AG | SAP | 티피코[106] |
9.3. 골드 파트너
코카콜라 | 하일로 아이케어 | MAN | P&G |
9.4. 오피셜 파트너
10. 역대 유니폼
자세한 내용은 FC 바이에른 뮌헨/유니폼 문서 참고하십시오.11. 응원가
자세한 내용은 FC 바이에른 뮌헨/응원가 문서 참고하십시오.12. 대한민국과의 관계
- 2018년 1월 정우영이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바이에른 뮌헨 U-19에 합류하게 되었다. U-19, 2군을 거쳐 1군, 챔피언스리그 데뷔 후 2019년 6월에 SC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하였다.
- 2022년 1월,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 이현주가 임대 이적으로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하고 반시즌 뒤 완전 이적했다. 바이에른 뮌헨 2군, SV 베헨 비스바덴을 거쳐 팀 복귀 후 다시 하노버96으로 임대 이적했다.
- 2023년 7월 19일(한국 시간), 바이에른 뮌헨이 김민재 선수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 김민재 선수 영입 후, 공식 SNS 채널에 한국 팬들을 위한 한국어 콘텐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공식 유튜브의 일부 영상들도 한국어 자막을 제공한다.
- 2024년 8월 3일, 바이에른 뮌헨이 친선 경기를 위해 한국에 방문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방한은 1900년 창단 이후 처음이다. 이 소식은 3월 20일에 발표되었고 # 경기 일정은 8월 3일로 확정되었다. 상대팀은 토트넘 홋스퍼 FC, 장소는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경기 당일, 시축에 뉴진스가 참여했으며, 민지의 시축영상이 바이에른 뮌헨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한글로 코멘트가 쓰이며 올라갔다.#
13. 응원하는 유명인사
- 우사인 볼트 - 바이에른의 팀 닥터인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 박사와의 인연으로 척추 문제를 해결한 뒤 금메달을 딴 이후 바이에른을 적극 서포팅하고 있다. 다만 그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열렬한 팬인 것은 변함없다.
- 리치 블랙모어 - 딥 퍼플의 기타리스트
-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 보리스 베커 - 실제로 바이에른 구단에서 10년 동안 활동했다.
- 베네딕토 16세 - 실제로 뮌헨 출신이며, 축구광으로도 유명하다.
- 슈테피 그라프
- 니코 로즈버그 - 뮌헨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바이에른의 경기를 매주 보며 자랐다.
- 윌아이엠 - 블랙 아이드 피스의 멤버. 2018년 9월 자신의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유럽에 와서 바이에른의 경기를 직관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 안드레아스 벨링거 - 독일 스키점프 금메달리스트. 바이에른 뮌헨의 초청으로 2018시즌 바이에른 뮌헨 미국 투어에 동행하였다.
- 알렉산더 즈베레프 - 2019-20 UEFA 챔피언스 리그 토트넘과 바이에른의 경기에서 7-2로 바이에른이 이기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사진[107]을 올렸다. 바이에른의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 또한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으며 바이에른 뮌헨 선수, 구단 계정을 팔로우한다. 구단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했다.[108]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뒤에, 21-22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바이에른 뮌헨 팀 프레젠테이션에 게스트로 나오기도 했다. 노이어에게 유니폼도 받고 인터뷰도 했다. 뒤이어 진행된 바이에른 레전드 매치에도 특별 선수 형식으로 출전해 경기를 뛰기도 했다. 자국 금메달리스트가 구단의 팬인 것을 요긴하게 써먹는 중이다.
- 다닐 메드베데프 - 인스타그램 소개글에 바이에른 뮌헨의 구호인 Mia san mia를 적었고, 바이에른 뮌헨 대부분 선수를 팔로우중이다.
- 율리안 나겔스만 - 21-22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거기다 나겔스만 본인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엄청난 팬이다. 진정한 성덕.
- 플로리안 크라프 - 한국에 4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모델이자 유투버다.# 한국에서는 주로 별명으로 '미독남'으로 부른다. 실제로 고향이 바이에른 주의 작은 도시인 바이덴 출신이다.
- 래원
- 노강민
- Bang - 개인 방송에서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다가 밤을 샜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피파 온라인 스쿼드도 바이언으로 맞췄다.
- 신유빈 - 마리오 괴체의 유니폼을 소장하고 있다.
14. 역대 주장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 ||||
1965 아돌프 쿤스트바들[109] (Adolf Kunstwadl) | 1965-1970 베르너 올크 (Werner Olk) | 1970-1977 프란츠 베켄바워 (Franz Beckenbauer) | 1977-1979 제프 마이어 (Sepp Meier) | 1979 게르트 뮐러[110] (Gerd Müller) |
1979-1980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Hans-Georg Schwarzenbeck) | 1980-1983 파울 브라이트너 (Paul Breitner) | 1983-1984 칼-하인츠 루메니게 (Karl-Heinz Rummenigge) | 1984-1991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Klaus Augenthaler) | 1991-1994 라이몬트 아우만 (Raimond Auman) |
1994-1997 로타어 마테우스 (Lothar Matthäus) | 1997-1999 토마스 헬머 (Thomas Helmer) | 1999-2002 슈테판 에펜베르크 (Stefan Effenberg) | 2002-2008 올리버 칸 (Oliver Kahn) | 2008-2011 마르크 반 봄멜[111] (Mark van Bommel) |
2011-2017 필립 람 (Philipp Lahm) | 2017-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
상당수가 동시에 독일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그리고 공격수들이 주장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15.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c052d><tablebgcolor=#dc052d> |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2px -12px" | 1963년 ~ 현재 | |||||||
33대 차이코브스키 ☆☆ | 34대 제베츠 ★☆ | 35대 라테크 ★★★☆ ★ | 36대 크라머 ★★ | 37대 로란트 | ||||
38대 체르너이 ★★☆☆ | 대행 자프티히 | 39대 라테크 ★★★☆ ☆ | 40대 하인케스 ★★☆☆ | 41대 레르뷔 | ||||
42대 리베크 | 43대 베켄바워 ★ | 44대 트라파토니 | 45대 레하겔 | 대행 베켄바워 ★ | ||||
46대 트라파토니 ★☆☆ | 47대 히츠펠트 ★★★★ ☆☆☆☆ ☆★ | 48대 마가트 ★★☆☆☆ | 49대 히츠펠트 ★☆☆ | 50대 클린스만 | ||||
대행 하인케스 | 51대 판할 ★☆☆ | 대행 욘커 | 52대 하인케스 (하인케스 체제) ★☆☆★ | 53대 과르디올라 ★★★☆ ☆ | ||||
54대 안첼로티 ★☆☆ | 대행 사뇰 | 55대 하인케스 (하인케스 체제) ★ | 56대 코바치 ★☆☆ | 57대 플릭 (플릭 체제) ★★☆☆★ | ||||
58대 나겔스만 ★☆☆ | 59대 투헬 ★ | 60대 콤파니 (콤파니 체제) | ||||||
★: 챔스 우승 ★: 리그 우승 ☆: 포칼 우승 ☆: 슈퍼컵, 리가포칼 우승 ★: 유로파 리그 우승 |
16.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008B 20%, #00008B 80%, #9400D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000,#e5e5e5 | 순서 | 우승 | 국가 | 첫 우승연도 | 우승 횟수 | ||
1 | <colbgcolor=#00008b> 레알 마드리드 CF | <colbgcolor=#eeeeef,#191919> | 1956년 | ★★★★★★★ ★★★★★★★ ★ 15회 | |||
2 | SL 벤피카 | 1961년 | ★★ 2회 | ||||
3 | AC 밀란 | 1963년 | ★★★★★★★ 7회 | ||||
4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1964년 | ★★★ 3회 | ||||
5 | 셀틱 FC | 1967년 | ★ 1회 | ||||
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968년 | ★★★ 3회 | ||||
7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1970년 | ★ 1회 | ||||
8 | AFC 아약스 | 1971년 | ★★★★ 4회 | ||||
9 | FC 바이에른 뮌헨 | 1974년 | ★★★★★★ 6회 | ||||
10 | 리버풀 FC | 1977년 | ★★★★★★ 6회 | ||||
11 | 노팅엄 포레스트 FC | 1979년 | ★★ 2회 | ||||
12 | 아스톤 빌라 FC | 1982년 | ★ 1회 | ||||
13 | 함부르크 SV | 1983년 | ★ 1회 | ||||
14 | 유벤투스 FC | 1985년 | ★★ 2회 | ||||
15 |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 1986년 | ★ 1회 | ||||
FCSB | |||||||
16 | FC 포르투 | 1987년 | ★★ 2회 | ||||
17 | PSV 에인트호번 | 1988년 | ★ 1회 | ||||
18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1991년 | ★ 1회 | ||||
19 | FC 바르셀로나 | 1992년 | ★★★★★ 5회 | ||||
20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1993년 | ★ 1회 | ||||
21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1997년 | ★ 1회 | ||||
22 | 첼시 FC | 2012년 | ★★ 2회 | ||||
23 | 맨체스터 시티 FC | 2023년 | ★ 1회 | ||||
※ 우승 횟수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구단은 UEFA 배지 오브 오너를 부착할 수 있는 구단이다. ★은 우승 트로피를 영구 소장하게 된 시즌이며 ★은 오리지널 유러피언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시즌이다.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white,#000> | UEFA 컵위너스컵 우승 클럽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or: #000" | 순서 | 우승팀 | 국가 | 첫 우승연도 | 우승 횟수 | |
1 | <colbgcolor=#ffd700,#000> ACF 피오렌티나 | <colbgcolor=#eeeeef,#191919> | 1961년 | ★ 1회 | ||
2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1962년 | ★ 1회 | |||
3 | 토트넘 홋스퍼 FC | 1963년 | ★ 1회 | |||
4 | 스포르팅 CP | 1964년 | ★ 1회 | |||
5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 1965년 | ★ 1회 | |||
6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1966년 | ★ 1회 | |||
7 | FC 바이에른 뮌헨 | 1967년 | ★ 1회 | |||
8 | AC 밀란 | 1968년 | ★★ 2회 | |||
9 | ŠK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 1969년 | ★ 1회 | |||
10 | 맨체스터 시티 FC | 1970년 | ★ 1회 | |||
11 | 첼시 FC | 1971년 | ★★ 2회 | |||
12 | 레인저스 FC | 1972년 | ★ 1회 | |||
13 | 1. FC 마그데부르크 | 1974년 | ★ 1회 | |||
14 | FC 디나모 키이우 | 1975년 | ★★ 2회 | |||
15 | RSC 안데를레흐트 | 1976년 | ★★ 2회 | |||
16 | 함부르크 SV | 1977년 | ★ 1회 | |||
17 | FC 바르셀로나 | 1979년 | ★★★★ 4회 | |||
18 | 발렌시아 CF | 1980년 | ★ 1회 | |||
19 | FC 디나모 트빌리시 | 1981년 | ★ 1회 | |||
20 | 애버딘 FC | 1983년 | ★ 1회 | |||
21 | 유벤투스 FC | 1984년 | ★ 1회 | |||
22 | 에버튼 FC | 1985년 | ★ 1회 | |||
23 | AFC 아약스 | 1987년 | ★ 1회 | |||
24 | KV 메헬렌 | 1988년 | ★ 1회 | |||
25 | UC 삼프도리아 | 1990년 | ★ 1회 | |||
2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991년 | ★ 1회 | |||
27 | SV 베르더 브레멘 | 1992년 | ★ 1회 | |||
28 | 파르마 AC | 1993년 | ★ 1회 | |||
29 | 아스날 FC | 1994년 | ★ 1회 | |||
30 | 레알 사라고사 | 1995년 | ★ 1회 | |||
31 | 파리 생제르맹 FC | 1996년 | ★ 1회 | |||
32 | SS 라치오 | 1999년 | ★ 1회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0> |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클럽 | }}} | |||
{{{#!wiki style="color: #000;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2px -12px" | 순서 | 우승팀 | 국가 | 첫 우승연도 | 우승 횟수 | |
1 | 토트넘 홋스퍼 FC | 1972년 | ★★ 2회 | |||
2 | 리버풀 FC | 1973년 | ★★★ 3회 | |||
3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1974년 | ★★ 2회 | |||
4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1975년 | ★★ 2회 | |||
5 | 유벤투스 FC | 1977년 | ★★★ 3회 | |||
6 | PSV 에인트호번 | 1978년 | ★ 1회 | |||
7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1980년 | ★★ 2회 | |||
8 | 입스위치 타운 FC | 1981년 | ★ 1회 | |||
9 | IFK 예테보리 | 1982년 | ★★ 2회 | |||
10 | RSC 안데를레흐트 | 1983년 | ★ 1회 | |||
11 | 레알 마드리드 CF | 1985년 | ★★ 2회 | |||
12 | 바이어 04 레버쿠젠 | 1988년 | ★ 1회 | |||
13 | SSC 나폴리 | 1989년 | ★ 1회 | |||
14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1991년 | ★★★ 3회 | |||
15 | AFC 아약스 | 1992년 | ★ 1회 | |||
16 | 파르마 FC | 1995년 | ★★ 2회 | |||
17 | FC 바이에른 뮌헨 | 1996년 | ★ 1회 | |||
18 | FC 샬케 04 | 1997년 | ★ 1회 | |||
19 | 갈라타사라이 SK | 2000년 | ★ 1회 | |||
20 | FC 포르투 | 2003년 | ★★ 2회 | |||
21 | 발렌시아 CF | 2004년 | ★ 1회 | |||
22 | PFC CSKA 모스크바 | 2005년 | ★ 1회 | |||
23 | 세비야 FC | 2006년 | ★★★★★★★ 7회 | |||
24 |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 2008년 | ★ 1회 | |||
25 |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 2009년 | ★ 1회 | |||
26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2010년 | ★★★ 3회 | |||
27 | 첼시 FC | 2013년 | ★★ 2회 | |||
28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2017년 | ★ 1회 | |||
29 | 비야레알 CF | 2021년 | ★ 1회 | |||
30 | 아탈란타 BC | 2024년 | ★ 1회 | |||
※ 우승 횟수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클럽은 UEFA 배지 오브 오너 부착 가능 클럽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 | <table align=center><tablewidth=230><table bordercolor=#000033> | UEFA 슈퍼컵 우승 클럽 |
{{{#!wiki style="color: #87CEFA;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or: #000033" | <rowcolor=#87cefa> 순서 | 우승팀 | 국가 | 첫 우승연도 | 우승 횟수 | |
1 | <colbgcolor=#000033,#000> AFC 아약스 | <colbgcolor=#eeeeef,#191919> | 1973년 | ★★ 2회 | ||
2 | FC 디나모 키이우 | 1975년 | ★ 1회 | |||
3 | RSC 안데를레흐트 | 1976년 | ★★ 2회 | |||
4 | 리버풀 FC | 1977년 | ★★★★ 4회 | |||
5 | 노팅엄 포레스트 FC | 1979년 | ★ 1회 | |||
6 | 발렌시아 CF | 1980년 | ★★ 2회 | |||
7 | 아스톤 빌라 FC | 1982년 | ★ 1회 | |||
8 | 애버딘 FC | 1983년 | ★ 1회 | |||
9 | 유벤투스 FC | 1984년 | ★★ 2회 | |||
10 | FCSB | 1986년 | ★ 1회 | |||
11 | FC 포르투 | 1987년 | ★ 1회 | |||
12 | KV 메헬렌 | 1988년 | ★ 1회 | |||
13 | AC 밀란 | 1989년 | ★★★★★ 5회 | |||
14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991년 | ★ 1회 | |||
15 | FC 바르셀로나 | 1992년 | ★★★★★ 5회 | |||
16 | 파르마 FC | 1993년 | ★ 1회 | |||
17 | 첼시 FC | 1998년 | ★★ 2회 | |||
18 | SS 라치오 | 1999년 | ★ 1회 | |||
19 | 갈라타사리아 SK | 2000년 | ★ 1회 | |||
20 | 레알 마드리드 CF | 2002년 | ★★★★★★ 6회 | |||
21 | 세비야 FC | 2006년 | ★ 1회 | |||
22 |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 2008년 | ★ 1회 | |||
23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2010년 | ★★★ 3회 | |||
24 | FC 바이에른 뮌헨 | 2013년 | ★★ 2회 | |||
25 | 맨체스터 시티 FC | 2023년 | ★ 1회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9fc93c><tablecolor=#373a3c><tablebgcolor=#9fc93c> | ECA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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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K 디나모 자그레브 | 레알 마드리드 CF | 레인저스 FC | 올랭피크 리옹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AC 밀란 | FC 바르셀로나 | FC 바이에른 뮌헨 | |
비르키르카라 FC | AFC 아약스 | RSC 안데를레흐트 | 올림피아코스 FC | |
유벤투스 FC | 첼시 FC | FC 코펜하겐 | FC 포르투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000,#e5e5e5 | ★★★★★ ★★★★★ ★★★★★ | ★★★★ | ★★★★★ ★ | ★★★★★ ★★ | ★★★★★ ★ | ★★★★★ | ★★★★★ ★★ | ★★★★★ ★★★ |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속 우승 혹은 통산 5회 우승 시 배지 부착 가능 (★) UEFA 유로파 리그 3연속 우승 혹은 통산 5회 우승 시 배지 부착 가능 (★) UEFA 여자 챔피언스 리그 3연속 우승 혹은 통산 5회 우승 시 배지 부착 가능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3768> |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구단 |
{{{#!wiki style="color: #ffffff;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or: #000000" | <rowcolor=#ffffff> 순서 | 우승 구단 | 국가 | 연도 | 횟수 | |
1 | <colbgcolor=#003768,#000000> SC 코린치안스 | <colbgcolor=#EEEEEF,#191919> | 2000년, 2012년 | ★★ 2회 | ||
2 | 상파울루 FC | 2005년 | ★ 1회 | |||
3 | SC 인테르나시오나우 | 2006년 | ★ 1회 | |||
4 | AC 밀란 | 2007년 | ★ 1회 | |||
5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2008년 | ★ 1회 | |||
6 | FC 바르셀로나 | 2009년, 2011년 2015년 | ★★★ 3회 | |||
7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2010년 | ★ 1회 | |||
8 | FC 바이에른 뮌헨 | 2013년, 2020년 | ★★ 2회 | |||
9 | 레알 마드리드 CF | 2014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22년 | ★★★★★ 5회 | |||
10 | 리버풀 FC | 2019년 | ★ 1회 | |||
11 | 첼시 FC | 2021년 | ★ 1회 | |||
12 | 맨체스터 시티 FC | 2023년 | ★ 1회 |
17. 기타
- 팬들 사이에서는 바이에른이 선수들의 몸을 벌크업시키는 데에 특출나다는 인식이 있다. 당장 고레츠카와 레반도프스키를 보자.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FC'가 Fitness Club아니냐는 농담이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였다.
- 여느 클럽들과 마찬가지고 유튜브 채널에서 예능 컨텐츠를 많이 시도하고 있다. 선수들끼리 나와서 간단한 게임으로 대결은 재밌으니 한번 보는 걸 추천한다. 일부 동영상은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고 있다.
- 아시아 스토어에 대한 악평이 매우 많은 편이다. 우선 패치 추가가 안 되어서 분데스리가 우승 패치 등을 추가할 수 없다. 그나마 2020년 클럽 월드컵 우승 패치만 추가가 가능했는데, 그 클럽 월드컵 우승 패치도 위치를 엉망으로 해서 가슴에 박아야 할 걸 팔에다 붙이는 기행을 벌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또한 주문 배송도 느리고 심지어 주문이 갑자기 취소되기도 하며, 등번호가 바뀌어서 오거나 다른 선수의 유니폼이 오는 등 불만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배송비도 적지 않은 금액이고 반품 절차도 복잡한지라 팬들은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혹은 서비스 개선을 넘어 아예 아시아 스토어를 폐쇄하고 그냥 메인 스토어에서 한국 배송을 해달라는 팬들도 많다.
구매대행이 답이다여담으로 상술한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21년 7월 바이언 아시아 지부 사장인 루벤 캐스퍼가 사임을 발표하였다.
- 선수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훈련 방식 및 훈련 강도가 매우 강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바르셀로나에서 임대로 온 필리페 쿠티뉴에 의하면 처음 팀 훈련에 참가했을 때 훈련강도가 에르네스토 발베르데의 바르셀로나 시절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힘들었으며, 쿠티뉴는 이에 큰 충격을 받았고 2명의 개인 트레이너를 추가로 고용해서 벌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출처 2022년 영입된 마테이스 더리흐트의 경우 유벤투스 시절보다 더 높은 훈련 강도에 적응해야 했으며, 2023년 FA로 영입된 데일리 블린트는 네덜란드에서는 훈련 중의 약간의 농담도 하는데 바이에른에서는 훈련 때 매우 진지하고 게임에서 공이 아웃되거나 잃었을 때 안타까워할 겨를이 없으며 바로 전환한다며 바이에른의 훈련 방식에 놀라움을 표시했다.출처
- 국내에선 2022-23 시즌 주장이었던 노이어가 스키를 타다가 시즌 아웃이 되고 나서 스키 관련 밈이 생겼다. 부상 중이던 뤼카가 스키장에서 목격되자 팬들이 깜짝 놀라서 PTSD가 도진다거나 하는 식. 심지어는 율리안 나겔스만이 경질될 때 스키타러 갔다가 스키장에서 소식을 들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이 팀은 스키랑은 연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돌고 있다.
레반도프스키루카스 포돌스키
- 국내 표기로는 바이에른 뮌헨이지만, 정확한 현지 발음으로는 바이엔 뮌쉔에 가깝다고 한다.
[1] 오스트로바이에른어로는 FC Boarn Minga로 표기하며 영어로는 FC Bayern Munich로 표기한다.[2] 뒤에 붙는 e.V.는 eingetragener Verein을 줄인 말로, "등록 클럽"이란 뜻이다.[3] 리그/컵 최다 우승, 최다 이적료 기록 등 독일 내 기록이란 기록은 모두 바이에른이 가지고 있기에 붙여진 별명이다.[4] 원래 독일 챔피언이란 단어는 분데스리가 우승 클럽에 붙는 칭호인데 알다시피 바이에른은 2022-23 시즌이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리그 11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요즘엔 바이에른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5] #[6]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1860 뮌헨이 1부, 바이에른 뮌헨이 2부에서 시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1860 뮌헨이 더 강팀이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부 리그 소속이었다. 참고로 2000년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에 출전한 전력도 있다.[7] 뉘른베르크는 바이에른 다음으로 분데스리가 최다 우승팀인 것이 보여주듯 과거에는, 특히 2008년 즈음 이전에는 레비어 더비만큼이나 치열한 매치중 하나였다. 그러나 뉘른베르크는 그 후 차차 몰락의 길을 걷더니 13/14 시즌에는 결국 17위로 다이렉트로 강등되고 말았다. 17/18 시즌 뉘른베르크가 분데스리가 승격이 확정되어, 18/19 시즌부터 바이에른 더비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뉘른베르크가 18/19 시즌 강등을 당하면서 19/20 시즌에는 바이에른 더비를 볼 수 없게 되었다.[8] 15/16 시즌 강등됐다가 16/17 시즌 2. 분데스리가에서 우승, 17/18 시즌부터 분데스리가로 복귀하게 되어 남독일 더비가 다시 성사되었다.[9]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들은 현재까지도 정식 라이벌은 아니다.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가 엘 클라시코 대진을 허물어버리며 결승에 진출하자 양 팀의 맞대결을 독일의 엘 클라시코로 포장하기 위한 표현으로 데어 클라시커가 사용되었고, 결승전에서의 명승부 이후에 대중화되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다만 현재는 양 구단의 공식 SNS와, 분데스리가 홈페이지에서도 이 명칭을 받아들이고 써먹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분데스리가 차원에서도 밀어주긴 하려는 모양. 어찌되었든 돈이 되는 매치업이라고 본 것이기도 하고, 순위 경쟁권에서 서로 만나는 일이 많다보니 매치업 자체는 꽤나 긴장감이 감돌긴 한다.[10] 'Wir sind wir'의 오스트로바이에른어. 해석하면 '우리는 우리일 뿐'이라는 뜻. 누가 뭐래도 우리는 우리라는 의미로 바이에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11] FC바이에른뮌헨 마이너 갤러리[12] 바이에른 공홈은 1932년에 우승한 독일 챔피언십까지 합쳐서 33회 우승으로 표기한다.[13] 2007년 폐지되었다.[1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15]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16] 10월 9일, 바이에른 뮌헨의 명예회장이자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울리 회네스에 따르면 정확한 이적료는 €95m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추가적으로 바이에른과 토트넘의 친선 경기 수익을 토트넘이 전부 가져가는 조건과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시 보너스 옵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17]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 이적료[18] 선발 라인업 11명 다음의 번호인 12번을 팬들을 위해 영구결번으로 지정해놓았다.[19]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현재 폐지된 UEFA 컵위너스컵으로 2017년 기준 이 대회를 전부 우승한 곳은 유벤투스 FC,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 첼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까지 총 5개 구단이 있다.[20] 트레블은 셀틱 FC, AFC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FC 바르셀로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맨체스터 시티 FC, FC 바이에른 뮌헨까지 총 8개 구단이 달성했다.[21] 트레블 2회는 FC 바르셀로나와 FC 바이에른 뮌헨 단 두 구단만 달성한 기록이다.[22]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패는 레알 마드리드 CF,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까지 단 3개 구단만 달성했다.[23] 6관왕 역시 FC 바르셀로나와 FC 바이에른 뮌헨 단 두 구단만 달성한 기록이다. 다만, 1971-72 시즌의 아약스는 우승할 수 있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그 당시에는 요한 크루이프 스할이 없어서 5관왕에 그쳤다.[24]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8강과 4강을 단판전으로 치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본래 경기 수보다 단 2경기만 적을뿐더러, 그 단판전마저 다득점(8-2, 3-0)으로 상대를 압도한 수준이기 때문에 전승 우승이라는 말에 흠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에 성공한 구단은 몇 있지만, 대회 역사를 통틀어 전승 우승을 달성한 구단은 바이에른이 유일하다.[25] 분데스리가, 라리가, 프리미어 리그, 세리에 A, 리그 1[26] 국내에선 많은 이들이 ‘뮌헨’이라고 줄여 부르지만 정확한 약칭은 ‘바이에른’, 혹은 ‘바이언’이 맞다. 당장에 현지 해설, 영어 해설만 들어봐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뮌헨은 바이에른의 지역 라이벌인 TSV 1860 뮌헨의 약칭이다.[27] 유럽에선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같은 축구 클럽 이름으로 산하 농구단 및 기타 종목 팀을 운영하는 일이 흔하다.[28]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은 50+1이라는 제도로 외부 자본의 거대 투자를 엄격히 금지하는 탓도 있으나,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타 빅 클럽 대비 기본적으로 아무리 보유 현금이 많을지라도 절대 거액의 지출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건실한 재무 구조로 유럽에서 첫손에 꼽히는 대표적인 구단이기도 하다.[29] 2006 독일 월드컵 개막전이 열렸으며, 1972 뮌헨 올림픽 메인 구장이던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을 홈구장으로 30년 이상 사용하다가 2004년에 신축한 구장이다. 아크릴 외부 조명으로 참가팀이나 행사에 따라 자유자재로 경기장 외벽 색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장으로 유명하다.[30] 레알 마드리드 CF 15회, AC 밀란 7회에 이어 역시 6회인 리버풀 FC와 함께 공동 3위에 위치해 있다.[31] 2위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5회. 바이에른이 자국 내에서 얼마나 압도적인지 보여준다.[32] 심지어 압도적인 챔스 우승 횟수를 지닌 그 레알 마드리드조차도 바이에른과 달리 트레블을 단 한번도 달성하지 못했다.[33] 2012-13 시즌 유일하게 놓친 DFL-슈퍼컵까지 석권해 6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34] 단순히 우리나라 호사가들의 입에서만 나온 말이 아니라 외신 및 해외 칼럼에서도 최강의 위상을 자랑하는 클럽들의 예시로 자주 묶여서 사용되어 왔다.[35] 유럽 5대 리그 최초의 기록.[36] 3년 연속 4강. 보통의 타 구단이라면 전성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좋은 성과일 수도 있으나 전성기의 바이에른에겐 눈높이에 맞지 않는 성적이었다.[37] 구단 역사상 최초의 6관왕이자 2009년 바르셀로나에 이어 역대 2번째 6관왕[38] 그나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바이에른의 대항마로 손꼽히는 상황이다.[39] 이탈리아의 세리에 A에도 바이에른과 비슷한 구단이 있다.[40] FIFA 클럽 월드컵의 전신.[41] 이는 프랑크 리베리가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로 시끄러웠을 때 프란츠 베켄바워가 실제로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구단 레전드들이 발 벗고 나서 리베리를 설득했고, 결국 리베리는 바이에른에 남아 트레블을 달성했다.[42] 심지어 데이비드 알라바는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계속해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왔으며 왼쪽 풀백,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일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이다.[43] 웬만하면 가장 저렴하게 데려올 수 있는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독일인 선수를 가장 선호하지만, 이 선호도가 절대적이지 않다.[44] 이 때문에 현재 바이에른에는 팀에서 5년 이상 활약한 선수들이 8명이나 된다. 19-20 시즌 기준으로 티아고 알칸타라,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코망, 데이비드 알라바, 토마스 뮐러, 하비 마르티네스 등이 대표적.[45] 결국 리베리는 바이에른과 재계약하였다. 바이에른 수뇌부가 리베리의 생일 때 직접 파티를 열고 구단 최고 연봉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와 펜이 담긴 상자를 건냈다고 한다. 관련 일화[46] 레반도프스키의 경우는 계약 만료로 데려온 것이므로 저 선수들과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세계 최고의 9번 공격수 중 하나를 공짜로 데려왔다.[47] 약 4,200만 유로 정도로 추정되며 한화로는 약 550억 원에 해당한다. 참고로 손흥민의 토트넘 홋스퍼 FC 이적료가 3,000만 유로 가량이다.[48] 70년대 묀헨글라트바흐는 5차례나 리그 우승을 할 정도의 강팀으로 바이에른과는 라이벌이었다.[49] 그러나 로타어 마테우스 역시 현재 독일 축구 연맹에서는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있다.[50] 이때가 어이없는 게 이 3명으로 가히 남의 집 기둥 뿌리를 뽑아다가 본인 기둥 뿌리로 삼은 격이기 때문이다. 전설의 트리플 러너업 시즌 당시 이 3명을 제외하면 월드 클래스에 가까웠던 멤버는 그나마 한스외르그 부트, 베른트 슈나이더, 올리버 뇌빌 정도뿐이었다.[51] 당시 기사. 참고로 독일에서는 보통 충격적인 게 아니고서는 'Transfer - Hammer'라는 문구를 쓰지 않는다.[52] 다만 바이에른주 출생인 마리오 괴체는 예전부터 바이에른의 팬이었고, 어린 시절 가장 싫어하는 팀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였다. 하지만 베스트팔렌주로 이주하면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유스 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유스 팀에서 뛰게 되면서 예전의 그런 생각들은 사라졌었다고 한다.[53] 기독교 전통이 강한 서구권에서 유다라는 인명으로 부르는 건 대단히 큰 욕설이다.[54] 2000만 유로 이상의 대형 탈세로, 가업으로 이어져 오던 거대한 소시지 사업 도중에서 탈세한 것이 적발된 것이다. 결국 회장직을 사임하고 3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현재는 바이에른의 유스 팀에서 일하는 중이다.[55] 레알 마드리드, 맨유, 맨시티, 첼시, 아스날, 토트넘, 유벤투스, 로마, 인테르, 제니트, 샤흐타르, 그리고 도르트문트의 재계약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56] 심지어 공식 석상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바이에른 이적을 오피셜도 뜨기 전에 인정하기까지 했다.[57] 위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마츠 후멜스는 원래 바이에른 유스 출신으로, 바이에른 팀과 갈등을 빚어 완전히 1군 선수가 되기 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케이스였다.[58] 이쪽은 다행히도 FC 바르셀로나가 데려갔다. 하지만 바르샤 입단 후 잦은 부상과 떨어지는 축구 지능, 매우 잦은 소녀슛 빈도로 인해 처참하게 몰락하고 있다.[59] 특히 북부를 대표하는 함부르크와 베르더는 남부를 대표하는 바이에른을 매우 싫어한다.[60] 레버쿠젠 전성기 시절 주전 골키퍼였으나 바이에른에게 막히며 번번히 우승의 꿈이 좌절이 되었다. 국가대표에서도 바이에른의 올리버 칸에 밀리며 벤치 신세를 졌다. 최소한 이 당시에는 반바이에른파라고 봐도 된다.[61] 냉정하긴 했지만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4위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었고, 이에 따라 대대적인 선수진 교체를 진행 중이었다. 마카이, 살리하미지치는 노쇠화 기미가 보이는 선수였고, 피사로는 챔피언스 리그의 활약은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 부족한 활약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로케 산타 크루즈는 포텐이 안 터져서 만년 유망주 소리를 듣던 선수였고, 결국 만년 유망주로 남았다. 다만 클라우디오 피사로는 이후에 바이에른으로 다시 돌아와서 엄청난 노익장을 보여주며 12-13 시즌 트레블 멤버에 포함되었고, 계약 만료로 14-15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으나 19-20 시즌까지 분데스리가 현역 선수로 활약했다.[62] 17-18 시즌을 예로 들면 바이에른이 고레츠카를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면서 욕먹는 동안 도르트문트는 리그 내에서 4명을 영입했음에도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았다.[63] 손흥민, 하칸 찰하놀루, 요나탄 타[64] 당시 34개의 클럽 중 찬성 18표, 반대 4표, 기권 9표, 불참 3표로 유지가 결정되었다. 루메니게의 인터뷰에 의하면 찬성표를 주도한 클럽은 FC 장크트파울리였으며, 유럽 대항전에 경쟁하지도 않는 2부리그 장크트 파울리가 회의에 주도적으로 나섰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분위기를 지배했다고 한다. 이로 인한 결과에 루메니게는 좌절했고 앞으로 국제적으로 점점 경쟁력을 잃을지도 모르는 분데스리가가 걱정스럽다며 불만을 드러냈다.[65] 루메니게의 후임인 올리버 칸도 50+1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66] 울리 회네스는 50+1 폐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국제적 경쟁력에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제도 유지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67] 바이에른 32회, 뉘른베르크 8회(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공동 2위)[68] 13-14 시즌 결과 결국 뉘른베르크가 강등당하면서 당분간 이 더비는 볼 수 없게 되었다가, 18-19 시즌에 뉘른베르크가 1부 리가로 승격함으로써 다시 성사되었다.[69] 포칼 경기에서는 프랑크 리베리와 구자철이 충돌하기도 했다.[70] 그리고 이 탈락이 현재까지 바이언의 마지막 조별 라운드 탈락이다.[71] 다만 월드컵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였다.[72] 다만 저 시기 바이에른은 구단의 최전성기인 70년대 초중반과 3차 전성기인 2012-13 시즌 당시와는 달리 유럽 대항전에서 부실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나갔었던 6명의 바이에른 선수들 중 아우겐탈러와(프로 시절 내내 뮌헨 소속) 아우만(선수 말년에 터키로 이적해서 1년간 뛰고 은퇴한 걸 제외하면 계속 바이에른 소속), 퓔글러(SE 프라이징에서 7년 정도 뛰고 은퇴한 것과 2년 정도의 공백기 정도를 제외하면 바이에른 뮌헨과 해당 팀의 리저브 팀에서 16년을 뜀) 정도를 빼면 타 팀에서 뛰는 기간이 뮌헨에서 뛰는 기간보다 훨씬 많았다. 실제로 로이터랑 콜러는 1991년에 유벤투스로 갔다가 1년 뒤에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다음에 거기서 구단의 처음이자 (2021년 현재까지) 유일한 챔스 우승에 공헌하는 등의 활약을 보여주다가 2000년대에 은퇴했으며, 톤은 1994년에 자신이 데뷔한 친정 팀인 샬케로 다시 돌아간 이후에 거기서 8년 동안 뛰다가 은퇴했다.[73] 다만, 그 시기에도 바이에른 뮌헨 소속 선수 한두 명 정도는 국대에 소집되어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기는 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후술한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미로슬라프 클로제, 올리버 칸, 미하엘 발락.[74] 단 필립 람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에 독일 대표팀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주장직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넘어갔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14-15 시즌을 마지막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75] 다만 바이에른이 트레블을 달성했던 시즌 당시에 뛰었던 고메스는 떨어진 실력과 폼 때문에 경쟁 자원(공교롭게도 11-12 시즌까지 함께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던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밀려 탈락했었고, 역시 트레블 시즌 당시 뛰었던 멤버인 홀거는 장기 부상으로 인해 브라질로 가지 못 했다.[76] 그러나 이것이 무조건 독일인만 영입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클럽 레코드를 갱신하며 코랑탱 톨리소를 영입한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회네스 왈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을 하되, 이왕이면 독일 선수라면 더 좋다."[77] 단, 그는 18-19 시즌부터 뮌헨에 합류. 월드컵 때까지는 샬케 소속.[78] 다만 후멜스는 바이에른이 트레블 할 당시에는 도르트문트 소속이었다가 2016년에 뮌헨으로 왔기 때문에 키미히보다 입단 시점이 늦다.[79] 실제로 강등까지 갔었으나 규정 변경으로 인해 리그 A 잔류.[80] 국력 자체가 독일보다 훨씬 약소국인 데다가 월드컵이나 유로 본선 무대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다만 이 경기가 끝나고 몇 달 뒤에 벌어진 유로 2020 본선에 나오기는 했다.) 북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서 패배했다.[81] 이 경기를 끝으로 요아힘 뢰프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직위를 내려놓고 떠났다. 다만 본인이 유로 2020을 끝으로 사임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질은 아니다.[82] 특히 뒤셀도르프에서 독일에게 2:1 패배를 안겨준 북마케도니아를 원정 경기에서 4:0으로 이기면서 뢰프 시절에 발생했던 참사를 완벽히 설욕하였다.[83] 특히 독일과 같은 조에 배정된 헝가리를 상대로는 1무 1패를 거두었다. 심지어 헝가리와 재대결을 펼쳤던 5라운드의 경우, 독일 홈에서 치르는 경기인데다 해당 경기를 패배하면 결선 토너먼트 행이 완전히 무산되기 때문에 동기부여와 장소 면에서 매우 유리했음에도 불구자고 패배하고 말았다. 또한,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독일 혼자서만 2무를 기록하며 승리를 놓쳐버린 것도 결선 토너먼트 진출 실패의 족쇄로 작용했다.[84] 특히 쥘레는 일본과 치른 1차전에서 라이트백으로 출전했을 당시에 대실책을 저질러 선제골을 헌납하면서 역전패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스페인과 치렀던 2차전에서는 알바로 모라타를 제대로 막지 못해 상대에게 선취골을 헌납하면서 독일의 축구팬들에게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쥘레의 원래 포지션이 센터백인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오른쪽 풀백에 기용한 한지 플릭이 더 비난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인물 모두 바이에른 뮌헨에서 선수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특히 플릭은 뮌헨 감독직까지 수행했다.)[85] 당장 카타르 월드컵에 독일 축구 국가대표로 출전한 7명 가운데 독일 국대와 바이에른 뮌헨 주장인 마누엘 노이어는 1986년생으로 카타르 월드컵 당시 36세였던지라 4년 뒤 북중미 월드컵 시기에는 마흔이 넘는다. 더군다나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경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경기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원 러브 캠페인의 주동한 것과 대회 이후 스키를 타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여론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한데다 2020년대 초반 들어서는 예전보다 실수도 조금씩 잦아진 만큼 노이어가 북중미 월드컵까지 폼을 유지할 수 있는 데 의문부호가 생기고 있다. 그리고 독일 국대와 바이에른의 부주장인 토마스 뮐러는 2022년 이후 고령으로 인한 노쇠화가 점차 심해지면서 벤치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데다 본인도 2026년까지 프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의사를 여러 번 밝히기도 했는지라 북중미 월드컵 이전에 선수 은퇴를 할 가능성이 크다. 뮌헨의 3주장이자 차기 바이에른과 독일 국대의 차기 주장감으로 평가받고 있는 요주아 키미히는 북중미 월드컵 개최 시기인 2026년에는 31살로 전성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할 시기가 되는데다 노이어와 뮐러와 달리 팀에 불만을 가진 사항이 다양하며, 여러 이적설에 휘말리고 있는 만큼 본인의 대우가 더 나빠지거나 성적이 신통하지 못한다면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도 상당히 점쳐지고 있다. 그리고 뮌헨과 독일 국대의 미드필더인 고레츠카의 경우, 키미히와 동갑인데다 키미히와 달리 폼이 떨어진 모습이 잦아진 만큼 차기 월드컵 참여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뮌헨의 두 윙 포워드인 그나브리와 자네는 차기 월드컵 시점에선 전성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는 30대 초반에 접어드는데다 둘 모두 뮌헨과 국대에서 제대로 활약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그나브리는 간간히 득점하면서 활약을 해주고 있지만 자네는 그조차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뮌헨 팬들 사이에서는 사디오 마네 다음 가는 먹튀이자 처분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86] 카타르 월드컵에 나간 선수 가운데 과거에 뮌헨에서 뛴 선수인 니클라스 쥘레와 마리오 괴체의 경우, 둘 모두 차기 월드컵 시점에서는 30대가 넘는데다(쥘레 95년, 괴체 92년생) 현재 뛰는 클럽에서 보여주는 활약이 기대치보다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6년에 북중미로 가길 원하는 독일 축구 국대의 최종 명단에 들 가능성은 낮다.[87] AG는 Aktiengesellschaft(주식회사)의 약자, EV는 Eingetragener Verein(등록 클럽)의 약자이다.[88] DFB(독일축구협회) 산하 클럽들은 50+1 제도에 의해 한 개인이나 회사가 구단의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바이에른도 여타 분데스리가 클럽들과 같이 소시오 제도로 운영되는 시민의 클럽이며, 80%에 달하는 지분이 바이에른 뮌헨 e.V와 11만에 달하는 팬 클럽이 보유 중이다.[89] 회장직을 맡기 이전에는 아디다스 CEO 직책을 맡아왔다. 전임 울리 회네스 회장이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회장으로 선임 되었다.[90] 2001년부터 클럽의 일원이었고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뮌헨 대학교, 즉 뮌헨 대학교의 명예 교수이다.[91] 바이에른의 유니폼 중간에 있는 'T' 자 모양이 바로 도이체 텔레콤의 마크이다.[92] 독일의 대표적인 주간 시사 잡지[93]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은행[94]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움직이는 인물이며, 모기업인 폭스바겐의 이사회 의장이자, 아우디와 포르쉐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95] 이사회 회장[96] 전인 외그르 바커가 팀을 떠나면서 공석이 되었다.[97] 바이에른 근교의 헤르초게나우라흐에 본사가 있다.[98] 유니폼에 있는 '·T···'가 도이치 텔레콤의 엠블럼이다. 또한 홈에서 리그나 컵 대회가 열릴 때마다 관중석의 일부 부분에 흰색 가운을 입은 도이체 텔레콤 직원들이 '·T···' 모양으로 앉아서 자사의 홍보를 하고 있다. ##[99] 경기장 내부 모니터, 스크린, TV 등은 대부분 삼성 것이다.[100] 항공편 스폰서십. 루프트한자 CF에 바이에른 선수들이 자주 등장한다.[101] 순수하게 자선의 목적만으로 도와준 것은 아니다. 원래 바이에른 뮌헨 홈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는 TSV 1860 뮌헨의 지분이 50%였으나 재정난을 겪고 있던 TSV 1860 뮌헨이 2006년 4월 바이에른 뮌헨에게 1100만 유로를 빌리는 조건에 구장 지분 50%를 양도 하였다. TSV 1860은 1100만 유로를 2010년 6월까지 바이에른 뮌헨에 갚으면 양도한 구장 지분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옵션이 있었으나 2007년 11월 TSV 1860은 바이에른 뮌헨과 친선 경기에서의 수익을 받는 조건에 구장 지분을 돌려받을 수 있는 옵션을 포기하며 바이에른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지분은 100%가 되었다.[102] 말 그대로 시상식 자체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발롱도르 포디움에 오른 건 아니었지만, 해당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의 챔스 전승 우승을 비롯해 트레블을 이끌어낸 일등 공신이었던 레반도프스키가 해당 시즌 발롱도르가 열렸다면 사실상 수상 확정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103] 시상식 당시로는 바이에른 소속이었지만 사실상 리버풀에서의 활약으로 포디움에 올랐다.[104] 특히 리베리의 수상 불발과 레반도프스키의 시상식 취소.[105] 독일의 은행이다.[106] 오스트리아의 배팅 및 카지노 회사이다. 라이센스는 몰타에 있다.[107] 토트넘 몇 선수와 바이에른 몇 선수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토트넘 선수들은 다 취해있고 바이에른 선수들은 신나 놀고 있는 그림.[108] 구단 유튜브에 출연해 토마스 뮐러, 마츠 후멜스와 함께 테니스 대결을 하는 컨텐츠를 진행하기도 했다. 연습장에서 즈베레프가 직원, 뮐러와 후멜스가 손님 역할을 맡은 상황극을 찍기도 했다.[109] 분데스리가로 승격함과 동시에 주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승격한 시즌 첫 번째 경기에서 시즌 아웃을 당하며 베르너 올크에게 주장직을 넘겨서 주장 기간이 매우 짧다.[110] 제프 마이어의 갑작스러운 은퇴로 부주장이던 게르트 뮐러가 주장이 되었으나 차기 시즌 바로 포트 로더데일로 이적해서 주장기간이 매우 짧다.[111] 현재까지 구단 역사상 유일한 외국인 주장이다. 당시 감독 루이스 반 할이 같은 네덜란드 국적인 점도 결정적 영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