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몬트 아우만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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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아우겐탈러 (1984~1991) | ▶ | 라이몬트 아우만 (1991~1994) | ▶ | 로타어 마테우스 (1994~1997) |
독일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라이몬트 아우만 Raimond Aumann | ||||
출생 | 1963년 10월 12일 ([age(1963-10-12)]세) | ||||
서독 아우크스부르크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2cm | ||||
직업 |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 ||||
소속 | 유스 | 슈타트베르크 SV 아우크스부르크 (1970-1976) FC 아우크스부르크 (1976~1980) FC 바이에른 뮌헨 (1980~1982) | |||
선수 | FC 바이에른 뮌헨 (1982-1994) 베식타스 JK (1994~1995) | ||||
국가대표 | 4경기 (서독 / 1989~1990)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373a3c,#dddddd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등번호 | FC 바이에른 뮌헨 1번, 12번 베식타스 JK 1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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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前 축구선수 주포지션은 골키퍼였다.182cm라는 골키퍼로서 작은 키를 가졌지만, 뛰어난 선방력을 보여주며 1988년, 1990년 키커 시즌 최고의 골키퍼에 선정됐다.
2. 클럽 경력
2.1. FC 바이에른 뮌헨
아우크스부르크 지역팀인 슈타트베르크 SV 아우크스부르크 유스에 입단하며 축구계에 입문했다. 이후 FC 아우크스부르크 유스를 거쳐 FC 바이에른 뮌헨 유스에 입단했다.
1980년에 입단한 그는 입단한지 2년만인 1982년 포스 키퍼로 프로팀으로 콜업되었다. 주전 키퍼로 뛰었던 발터 융한스와 만프레드 뮐러가 차례로 팀을 떠나고 1984년 주전 키퍼였던 장마리 파프가 부상을 입자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다. 하지만 1985-1986 시즌은 장마리 파프에게 주전 자리를 밀려 14경기 출장에 그쳤다. 게다가 1986년 1985-1986 시즌 도중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이 되었고, 1987년 9월이 되어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우만은 다시 장마리 파프와 주전 경쟁을 펼쳐야 했는데, 이에 따라 한 명은 팀을 떠나야 했고, 결국 연장자였던 장마리 파프가 팀을 떠나며 다시 주전 자리에 올랐다. 이후 그의 계속된 활약으로 그는 1991년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1991-1992 시즌 도중 무릎 부상을 입어 분데스리가 13경기 출장에 그쳤다.[1] 1994년까지 뮌헨에서 활약하며 6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경험했다.
2.2. 베식타스 JK
1994-1995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과 계약이 끝나자 베식타스 JK로 이적하였다. 그는 베식타스에서 시즌 내내 잔부상에 시달렸으며, 1995-1996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토니 슈마허, 보도 일그너등에게 밀려 국가대표와는 연이 없었으나, 기량 하락과 논란으로 인해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토니 슈마허를 대신해 세컨드 골키퍼로 뽑혔다.[2]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서독이 우승하자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계속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베르티 포크츠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은퇴할 때까지 차출되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선방력이 대단했던 선수이다. 비교적 작은 키인 182cm에도 뛰어난 선방력을 보여주었다. 1대1 찬스에서의 상황 판단력이 탁월했고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패널티 박스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도 보여줬다.하지만 30대가 되자 아우만의 장점은 퇴색되기 시작했고, 결국 골키퍼 치고는 젊은 나이인 31세에 은퇴했다. 같은 키 작은 키퍼인 이케르 카시야스와 비슷한 루트를 탄 셈.
5. 수상
5.1. 선수
-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우승:1984-1985, 1985-1986, 1986-1987, 1988-1989, 1989-1990, 1993-1994
- DFB-포칼 우승:1983-1984, 1985-1986
- DFL-슈퍼컵 우승:1987, 1990
- 베식타스 JK
- 쉬페르리그 우승:1994-1995
-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 월드컵 우승:1990
6. 여담
- 2023년 바이에른 뮌헨 공식 레전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키커 시즌 최고의 골키퍼 상을 2번이나 수상했지만, 올해의 팀에는 한 번도 뽑히지 못했다.
7. 같이 보기
1 일그너 · 2 로이터 · 3 브레메 · 4 콜러 · 5 아우겐탈러 · 6 부흐발트 · 7 리트바르스키 · 8 헤슬러 · 9 푈러 10 마테우스 ⓒ · 11 밀 · 12 아우만 · 13 리들레 · 14 베르톨트 · 15 바인 · 16 슈타이너 · 17 묄러 18 클린스만 · 19 플뤼글러 · 20 톤 · 21 헤르만 · 22 쾨프케 |
프란츠 베켄바워 |
[1] 이 때 뮌헨의 세컨드 키퍼인 스벤 쇼이어까지 부상을 입으며 급기야 바이에른 뮌헨 II에서 뛰는 게랄트 힐링하우스와 우베 고스포다레크를 프로팀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이 두 명 전부 부진에 빠지자 급히 토니 슈마허를 영입하며 공백을 메우는 사단이 벌어지기도 했다.[2] 사실 1989-1990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일그너와의 주전 경쟁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직전 프리 시즌 때 교체 투입이 되자마자 3실점을 하는 최악의 폼을 보여주며 결국 세컨드 골키퍼로 밀렸다. 본인이 직접 주전 자리를 걷어찬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