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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15:53:38

Eagle Squadron

파일:attachment/eagle squadron/eaglesquadron133.jpg

영어: Eagle Squadron
한국어: 독수리 비행대대


영국 공군에 자원해서 영국을 위해 싸운 미국 조종사들.

독수리 비행대대가 처음 생긴 때는 1940년, 즉 독일이 유럽 대부분에 영향력을 떨치던 시기였다. 영국 본토 항공전을 앞둔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면서 공군력을 충분히 키워나갔던 독일 공군에 비해 전투기의 성능도 그 수도 밀리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은 미국에서 급히 P-40을 주문했으나 전투기 조종사도 모자란 형편이었다. 한편 미국은 표면적으로나마 중립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참전을 요구하는 여론도 생기고 있었고 주변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으므로 자국 조종사들이 타국에 '개인적으로' 참전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영국 공군 내에서 생겨난 것이 독수리 비행대대이다[1]. 단, 미국은 영국 본토 항공전 시기에 영국의 허리케인이나 스핏파이어 정도의 전투기를 생산하지는 못했고, 독수리 비행대대 대원들은 P-36, P-40이나 미국산 호커 허리케인,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몰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미국 조종사들을 연합군 공군에 지원하려던시 도는 런던의 사업가 찰스 스웨니가 12명의 미국 조종사를 모아서 프랑스 공군에 보내려고 했던 것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조종사들을 보내려고 했던 프랑스 공군이 망하자, 스웨니는 영국 공군으로 진로를 바꿨다. 프랑스가 점령당한 뒤에 독일이 본격적으로 영국에 공격을 시작하자 미국인 지원자들은 더 많아졌고, 1941년 12월까지 영국 공군이나 영국군의 일원으로 싸우고 있던 캐나다 공군에 6,700명이나 지원자가 있었다.

영국은 미국인으로 구성된 비행대대들에 모두 '독수리 비행대대'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2차 세계대전 동안 활동한 독수리 비행대대 목록은 다음과 같다.

그 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이 벌어나면서 미국이 직접 참전하게 되자 독수리 비행대대로 지원했던 미국 조종사는 자국에 영국군 기지였던 싱가포르에 파견돼서 싸워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미국 정부는 허가를 내리지 않았다. 만약 갔었으면 영국 병사들과 같이 포로가 됐을 것이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는 1942년 9월까지 독수리 비행대대는 73½대의 독일 비행기를 격추했고 3개의 비행대대의 영국인 대원의 수는 알려지지 않았고, 미국인 대원들은은 243명이였다.[2]인원손실은 미국인 77명, 영국인 5명이다.

'영국의 행진곡 왕'이라고 불리는 Kenneth J. Alford가 영국을 위해 싸워준 미국인들을 위해 Eagle Squadron March/독수리 비행대대 행진곡을 작곡했다. 들어보기 이 곡에는 미국 행진곡인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일부 들어가 있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Eagle_Squadrons

[1] 비슷한 경위로 만들어진 것이 중화민국의 용병 비행부대 플라잉 타이거즈다.[2] https://launiusr.wordpress.com/2010/09/04/remembering-the-eagle-squadr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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