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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앵글리아 Ēast Engla Rīce EastAnglia | |||
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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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년 이전?[1] ~ 869년[2]/918년[3] | |||
위치 | 잉글랜드 | ||
주요 도시 | 렌드햄(Rendlesham) | ||
언어 | 고대 영어, 라틴어 | ||
종교 | 앵글로색슨 이교 → 가톨릭 | ||
종족 | 앵글로색슨 | ||
정치 체제 | 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주요 국왕 | 위하 왕 (6세기 ~ ?) 레드월드 (599년 ~ 624년) 구트룸 2세 (902년 ~ 918년) | ||
성립 이전 | 로만 브리튼 | ||
멸망 이후 | 웨식스 |
언어별 명칭 | ||
고대 영어 | Ēast Engla Rīce | |
라틴어 | Regnum Orientalium Anglorum | |
영어 | Kingdom of the East Ang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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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918년
1. 개요
고대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칠왕국 중의 하나로 지금의 노퍽주과 서퍽주 지역을 차지했다.잉글랜드의 동쪽인 덴마크 남부의 앵글리아 사람들이 이주해와서 세웠기 때문에 '동앵글리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East Anglia는 '동앵글족이 세운 국가'라는 의미로 종족 이름이 붙은 명칭이다.
이 국가의 영향으로 이스트 오브 잉글랜드 지역은 아직도 동앵글리아라고 불리며, 노퍽주 노리치에 위치한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또한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2. 건국
정확한 건국 연도는 알 수 없지만 6세기 중반에 위하(Wehha) 왕이 프리지아 지방에서 이주해 건국했다고 한다. 위하 왕은 우핑 왕가로 건국부터 794년까지 이어졌다. 다만 위하 왕과 그 아들인 우파(Wuffa)왕, 그리고 그 아들인 티틸라 왕까지는 전설로 여겨지며, 실존했음이 확실한 왕은 수도사 베다의 기록에서 교차검증되는 4대 래드왈라 왕부터이다.3. 전성기와 몰락
7세기 초반, 켄트 지방을 제외한 험버 강 남쪽 땅을 점령했고, 래드왈드 왕이 통치하던 시기는 동앵글리아의 최전성기로서 북쪽의 노섬브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왕의 사후 머시아의 펜다 왕이 공격적인 확장 정책을 펼치면서 동앵글리아의 왕 에그릭과 시그베르트를 죽였고, 에그릭의 손자 저르민 왕 또한 654년 펜다에게 살해당하면서 급격히 쇠락해져 결국 머시아에게 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종속국의 처지가 되었다.명목상의 왕권은 머시아로부터 존중받았지만 794년 독립을 도모하던 동앵글리아의 에델베르트 왕이 머시아의 오파 왕에게 처형당하면서 우핑 왕가가 단절되었다.
머시아는 반발하던 동앵글리아를 억누르며 825년까지 통치를 이어갔지만 동앵글리아 사람들의 머시아에 대한 반감은 커져갔다. 그렇게 796년 오파 왕이 사망하면서 새롭게 즉위한 에드월드 왕이 동앵글리아에 대한 강압적인 통치를 상당히 약화시켰지만 825년까지 머시아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했다.
웨식스와의 전쟁에서 머시아가 대패하자, 825년 동앵글리아의 애설스탠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베오른울프(Beornwulf) 왕의 머시아군과 싸워 승리한 후, 완전히 독립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웨식스가 주변 지방을 흡수하며 강대국으로 거듭나던 시기와 겹쳤기에 웨식스의 에그버트(Ecgberht) 왕과 머시아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음으로써 국가의 안정을 도모했다.
4. 멸망
이후 독립해 왕국을 부활시켰으나 865년에 데인족의 침략이 있었고, 869년 에드문드 왕이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전사함으로써 동앵글리아는 사실상 멸망하게 되었다. 바이킹(데인족)은 오스왈드와 애설레드 2세라는 앵글족 왕을 명목상으로 세운 뒤, 머시아와 웨식스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도록 했다.878년 앨프레드 대왕이 이끄는 웨식스군이 에딩턴 전투에서 대군세를 격파하자 퇴각한 데인족은 구트룸 1세를 동앵글리아의 왕으로 추대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0세기에 들어서자 동앵글리아의 데인인들은 웨식스의 지속적인 그리고 커져가는 압박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902년 동앵글리아의 구트룸 2세는 다른 데인족 세력들과 함께 웨식스의 대 에드워드 왕을 상대로 공방전을 주고 받았지만 전쟁의 결과로 인해 데인족 세력의 전체적인 약화를 불러왔다. 결국 917년 잉글랜드 전역의 데인족 세력은 웨식스와 계속적인 전투를 치르며 많은 영토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속되는 공방전 끝에 데인족들이 지배하던 노스햄턴과 해딩턴이 다시 앵글로색슨인들에 의해 회복되었고, 데인족의 영향하에 있었던 에식스가 웨식스의 손에 넘어가면서 데인족의 세력은 재기 불능으로 치달았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반격마저 격파한 웨식스는 918년 동앵글리아의 마지막 왕 구트룸 2세를 전사시키면서 데인족들을 몰아냈다. 웨식스에게 패배한 동앵글리아는 웨식스에 합병되어 그 일부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