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大韓民国 | 미합중국 United States アメリカ合衆国 | 일본국 Japan 日本国 |
1. 개요
서울특별시 | 뉴욕시 | 도쿄도 |
2. 국가별 명칭
나라마다 국명을 나열하는 순서가 다르다. 이것은 삼각 외교관계에서도 우선순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명을 나열하는 순서를 통해 삼국 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한-미-일순으로 나열한다. 한국어 명칭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이 우선이고, 국력이 가장 강하며 한국과 관계가 더 좋은 미국이 그 다음에 놓였고, 일본은 맨 마지막에 배치되었다. 한국 외교부나 언론에서는 모든 국가 중 미국을 제일 앞에, 일본을 제일 뒤에 나열하는 암묵적인 관례가 있기도 하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이유로 日-米-韓(일-미-한)이라고 표기하며, 미국은 U.S.-Japan-South Korea(미-일-한)라고 표기한다. 중국에서는 美-日-韩(미-일-한)으로 표기.
3. 안보 협력
사실 한미일 관계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경제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고 바로 안보 협력이다. 미국이 2차 대전 전후 계획한 '대지역(Grand Area)' 구상과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 하에서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은 핵심지역(a key world area)으로서 간주되었고 여기에서 미국의 파트너로 설정된 것이 처음에는 일본뿐이어서 일본을 건들면 전쟁이라는 의미가 담긴 애치슨 라인이 형성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공으로 발발된 6.25전쟁 이후 상호방위조약을 맺으면서 이 파트너에 한국도 포함되기 시작,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위해 파병도 불사한 한국을 중요 동맹으로 여기게 된다. 현대에 와서는 미국이 북중러 3국가를 동시 견제 및 감시하기에는 힘 드니까 미국&한국이 북한의 핵 위협이나 제2차 한국전쟁 등 돌발행동을 막고 미국&일본이 중국과 러시아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핵심 동맹이다.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한일 양국 중 하나라도 공격받으면 미국이 정식으로 개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방위조약이라는 우산을 씌어줌으로써 사실상 북중러 셋 중 하나가 한국/일본 한 국가라도 침공하거나 건드는 순간 미국은 자국영토 침공급으로 간주 및 의회 승인하에 전쟁에 참전하니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미. 즉, 북중러에게 건드리는 순간 제3차 세계대전을 각오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한국 국군이나 일본 자위대가 일본과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함께 전쟁이 일어난 국토에서 이들의 기력을 빼놓는 동안 본토에서 증원한 미군으로 이들을 상대하여 타국 영토에서 미 본토를 지키겠다는 미 본토방어의 최전방 라인이기도 하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면 한일 양국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 때문에 과거의 악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서로 협력할 가능성이 높으며 최악의 경우 한국-일본이 공동 핵무기를 개발하고자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동아시아 문제에서 중국군에게 털려서 최강전력 해군을 잃지 않거나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말 변수덩어리에 가까운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지 않는 이상 손을 땔 가능성은 극히 적어 이런 의견은 현실이 매우 떨어져 판타지의 영역이라고 봐도 된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체결되어 표면적으로는 삼국 동맹이 된 듯하나, 실제로는 한국이나 일본 두 나라 중 하나가 침공당하면 직접적으로 양국에 군대를 투입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하나 뿐이라 동맹의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의 중요한 동맹국 두 나라가 분리된 채 있어서 전시에 군사지원이나 군사정보 교환 등에 불편함을 겪게 될 수 있다. 한일동맹이 체결된다고 해도 삼국 동맹이 되는 것은 아닌데, 동맹 조약이 3개나 있으니 통합성이나 효율성이 동맹의 취지에 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일각에선 삼국 공통의 동맹조약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며 바이든 행정부는 이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통합 동맹을 하고 싶어하나 양국이 제국주의 시절 지배당한 국가와 지배했던 국가의 역사에서 비롯된 감정의 골 때문에 괜스레 건드려서 반미감정 일으키지 않는게 나은편이기에 한발 물러서고 있다.
의외로 한일 양국은 정기적으로 안보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김대중 정부부터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받을 겸 국교정상화를 한 이래로 1999년부터 2017년까지 한일 수색구조훈련(SAREX), 2012년부터 북한 탄도미사일 탐지 경보 훈련을 해왔다. 2009년에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공동훈련에, 2010년과 2012년에는 한국군 주도 훈련에 일본 해상 전력이 참가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코브라골드, 림팩, 퍼시픽 뱅가드(한미일+호주) 등 다국간 훈련에도 일본과 함께 참가했다. 2016년에는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체결했다. 한미일 정상회담, 국방 및 외교장관회담, 합참의장회담도 수시로 열고 있으며 일본 육상자위대에 창설된 일본판 해병대는 미해병대는 물론 서방국가중 2번째로 큰 규모의 한국 해병대를 참고하기 위해 해병대 시연 훈련을 참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일한 군사동맹인 미국과 달리 일본 관계는 한국과 군사동맹이 아니다. 한일 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미일안전보장조약과 같은 군사적 동맹 조약 같은 걸 체결한 적이 없으니 명백한 사실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양국간의 문제가 단순해보이면서 매우 복잡[1]하여서 이웃나라임에도 서로서로 으르렁 거리기 일상이니 미국으로써는 북한을 감시하고 중국을 견제하며 러시아가 태평양을 넘보지 못하게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라인을 구축하고 싶어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일이 과거사 문제등 민족감정으로 이 삼각관계를 구축을 못 하다보니 이를 중재하기 일상. 대략 아래와 같은 이미지 구도라고 보면 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싸워서 좋을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략 이런 느낌 |
3.1. 한미동맹과 한일안보협력
자세한 내용은 한미동맹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한일안보협력 문서 참고하십시오.
현재 한국과 일본은 동맹 관계가 아니기에 안보협력 단계이다. 해당 내용은 각 문서에 기술되어 있다.
3.2. 한미일 군사협력에 관한 시각
한미일 동맹이 아닌 현재 이어지고 있는 단순 군사협력 그 자체에 대한 입장이다.3.2.1. 찬성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신냉전이 도래한 상황에서 당장의 안보가 중요하기에, 일단 과거사 문제는 접어두자는 의견이다. 외교적 진영 논리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며 경제적 과실을 뽑아야 한다는 논리는 이상적이고 충실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이미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대립하는 상황인데다가 한국도 미국 편에 붙으면서도 중국과 달리 이해관계 충돌이 많지는 않은 러시아와는 아예 척을 지기는 싫어서 우크라이나나 나토, 서방의 살상용 군수품 지원 요구에 대해 이미 확고하게 거절을 하고 있으며 폴란드 정부와의 방산 계약을 맺을 때도 우크라이나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계약을 하였다. 그러나 유출된 비밀문건을 통해 우회 지원을 하려던 정황이 발견되면서 대놓고 지원 의사를 밝히는 태세 전환을 하는 중이다. 여튼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중국이나 북한이 돌발행동을 할 수 있으며 전쟁 발발시 군수 공장이 피해를 입을 경우 최악의 경우이지만 일본의 손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일본을 강력한 우방으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외국이 한국에 투자를 하는데 안정감을 주는 게 주한미군이며 한국 수출거래 1위가 바로 미국이다.# 한국 정치인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때때로 일보 후퇴를 해야 하기도 하며 안보 또한 상당부분 미국에게 의존하는 만큼 미국의 요구를 협의하에 전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2.2. 반대
한미일 군사협력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일본은 과거 2차대전을 일으킨 국가이고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보적 이익을 위해 국민적 자존심과 정의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당장 박근혜 정부때 체결된 지소미아의 경우도 한일 안보협력의 사례인데 꼭 필요하다는 의견은 많지 않았으나, 중국-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2019년에 문재인 정부가 한일무역분쟁에서 유리한 카드로 써먹겠다고 파기하려는 시도도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으나 미국 정계가 반대하며 압력하자 파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한게 한국과 일본이 군사협력을 하는 것이 그들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 이러는 것일 뿐이지, 미국 국익이 반드시 한국 국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 정치인은 당연히 미국 엘리트가 아닌 한국의 민의를 최우선으로 대변해야 한다. 지소미아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민들이 일본과의 군사협력에 부정적으로 본다면 당연히 미국이 요구하더라도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국민여론이 일본과 군사협력을 지지하게 되더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일본과 군사협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다.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고,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수측에서는 친북,반미라는 식으로 일축하기도 하나# 반일이라고 반드시 곧 반미인 것은 아니다. 가령 이승만 전 대통령도 극도의 혐일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따라서 미국의 한일 수교 및 군사협력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나 보수진보를 떠나서 누구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미가 아니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2020년대 와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자들도 과거와 달리 반미 감정이 크게 누그려졌고 친미 여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한미일 군사협력을 원한다 = 따라서 일본과의 군사협력 반대하면 친북 반미다는 견해는 지나친 비약에 가깝다.
사실 생각보다 진영논리로 외교관계가 나뉘어지지 않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매우 흔하다. 가령 베트남이나 인도는 대표적인 반중친미 국가이지만 동시에 친러 국가로 알려져 있다.[2] 한국이 반일과 친미를 동시에 하는 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의 국익에 맞춰서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무조건 따르는 것은 친미가 아니라 종미에 가깝다고 보이기도 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부터 더 적극적으로 한미일 군사협력을 요구하거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요구한다고 해서 우리 국익에 맞지 않으면 우리가 따를 필요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일본과 동맹이긴 하지만 일본 경제가 미국을 바짝 따라잡던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미국의 자리를 위협해서 반일감정이 극심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보면#[3] 일관된 진영논리만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당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소양함을 보낸 것에 대해 친일이라고 비난하였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일본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의당도 2023년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가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
2024년 7월 2일, 한덕수 총리를 대상으로 한 국회 대정부질문 중 국민의힘 인사들이 한미일 삼국공조를 한미일 동맹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4][5] 김병주 의원이"독도에 대한 야욕을 가진 나라와 어떻게 동맹하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다"고 표현하자, 해당 발언에 반발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하고 김병주 의원이 사과를 거부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결국 국민의힘 측에서 '동맹'이란 표현을 '안보협력'으로 바로잡고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
3.3. 한미일 군사동맹에서 한국의 손해
후술할 이유들로 인해 한국과 일본은 서로 군사동맹을 맺으면 과연 얼마나 이득이 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일관계는 정부 수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사이가 좋은 때였어도 군사동맹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역대 정부는 일본과 군사동맹은 맺지 않았고 후임 대통령이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역시 외교 정책에서는 차이점은 있었지만 일본과의 군사동맹조약을 맺지 않았다.한미동맹은 이승만 정부 이래로 지금껏 견고한 군사조약을 유지하고 있으나, 일본은 관계를 개선할 대상으로 삼기에는 한국의 손해가 크다.
첫 번째로, 일본은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영토인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자위대 정찰기를 보내 한국 해경 및 해군, 공군과 대치한다. 또한 일본은 실질적으로 한국에 영토 도발을 벌이고 있다. 한국군 vs 자위대의 '실제로 대치한 사례' 문단 참조. 이로 인해 한일 군사동맹이 이루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 11월, 한국의 경찰청장이 독도를 방문했다는 이유로 일본은 한미일 외교차관의 공동 기자회견을 무산시킨 적도 있다.
그리고 한미일 동맹은 중국의 존재 때문에 더 가능성이 떨어진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외교적(경제적)으로 마찰을 겪고 싶지 않아 한다. 중국은 단순한 북한과의 대립 문제에서는 미국과 일본과의 공조를 보이는 한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 편이지만, 한국이 기존의 미국과의 동맹 수준을 넘어 한국 - 미국 - 일본 3국의 대대적인 군사 동맹을 맺는 것에는 매우 경계하고 불쾌해 할 가능성이 높다. 의외로 역외에 있는 영국과 유럽연합은 쌍수 들어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한미일 동맹의 목적과 동맹이 대비하고자 하는 대상이 중국과 러시아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북한을 언급하며 한미일 관계 강화를 통해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은 하고는 있지만 그 어떠한 국가에서도 고작 북한 따위를 대비한답시고 경제력으로, 군사적으로 강국들이 동맹한다는 주장을 믿어줄 리는 없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과 과거사 왜곡 문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라는 영토분쟁 갈등 등으로 대립하는 중이며, 최근에는 '대만유사는 일본의 유사'라는 명분으로 대만이 중국에 의해 침공당할 경우 참전할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과 군사동맹까지 맺는다는 것은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끼인 완충지대에서 벗어나 완전한 중국의 적대국가가 됨을 의미한다. 센카쿠 열도 분쟁에 있어서 일본을 지지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중일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 입장인데, 한일군사동맹이 체결된 후 센카쿠 열도나 대만에서 중일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한국도 일본을 돕기 위해 참전할 의무가 생긴다. 즉, 한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릴 연루의 공포가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중국의 위협은 한국이 최전방에서 홀로 맞아야 한다.
또한, 일본이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을 때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을 왜 한국이 도와야 하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한미일 군사관계의 공조는 중국 뿐 아니라 중국의 우방인 러시아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러시아의 주된 관심사는 크림반도 등의 대서양과 유럽 정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평양 쪽의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특히 러시아는 일본과 쿠릴 열도 문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냉정하게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제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기존의 한미동맹에서 더 확대하여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맺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편, 러시아와는 소련 해체 이후 한때는 불곰사업, 현무 미사일과 천궁 등 국방 부분과 나로호 등 로켓 과학기술에서 기술이전 협력관계인데다가 팔도와 오뚜기, 오리온, 농심 같은 적지 않은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상당한 수입을 거둔 바도 있었다. 이후 조러동맹조약을 통해 북러관계가 밀접해지고 있다. 한미일 동맹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일본하고 협력하면 오히려 신냉전에 혼자만 독박을 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본다.
물론 무역규모를 본다면 한러간의 경제적 밀착성은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논리가 이해가 되는 이유는 지정학적 이유와 중러관계, 남북통일 이후 발생될 이득, 전략무기 재배치 등등이 러시아와 밀착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러관계 참고.
위와 같은 이유로 한미일 관계의 군사 공조 분야가 실질적으로 이뤄진 것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정보 파악과 북한 ICBM의 탄도 추적 정도였다. 미국이 군사위성으로 동태를 감시하고 동해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이지스함이 북한 미사일의 궤도를 파악했던 것이다. 실제로 한미일은 2014년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TISA)'를 체결해 상호간에 미국을 걸쳐 군사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한 한미일 3국 미사일 경보훈련도 2016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그 외에는 한미 간 군사 훈련, 미일 간 군사 훈련이 따로 이뤄지고 있다. 단지, 사관생도들의 순방 훈련과 장교들의 유학, 구조와 같은 비전술적 훈련은 한일 간에도 간간히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정경두 국방장관이 일본 항공자위대의 교육을 받은 일본 유학파이다. 정경두 문서의 공군 시절 항목 참조.
참고로 오해하지 말아야 할게 동맹과 수교는 다르며 동맹과 개방과도 다르다. 한일동맹을 한다는 것은 일본 자위대와 국군이 공동군사훈련 또는 상호 무기교류를 하거나 한국의 전시 상황에 일본 자위대가 한국으로 온다거나 역으로 일본의 전시 상황에 한국군이 일본에 간다는 것처럼 각국의 적극적인 군사개입도 허용하겠다는 거다. 즉 한일동맹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적국 관계가 된다거나 우방국이 아니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문화적인 교류와 상호 무역은 생각보다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다만 동맹을 한다는 건 그 나라와 공동 입장으로 가겠다는 건데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막는다는 공통의견을 갖고 있으면서 일본처럼 영토 분쟁 같은 대립할 만한 문제가 딱히 없으며 합리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잘 배려해왔다. 한편 미국과 일본도 중국의 팽창을 막는다는 공통의견을 갖고 있으면서 한미관계처럼 서로 크게 대립할 만한 문제가 딱히 없다.
3.4. 1997년 미일가이드라인 논란
[6]
1997년 9월, 미국과 일본이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19년 만에 개정해서 일본 자위대가 해외에 군사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1년 5개월만의 개정협상 끝에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 지침에는 일본 주변사태에 관한 항목이 새로 등장했는데 이 규정에 따라 일본의 육·해·공 자위대는 미군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군사적 역할의 범위를 사실상 해외로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일본은 일본 주변의 개념이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외교적인 수사를 합의문에 명기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한반도, 그 다음은 중국과 대만간의분쟁을 상정한 것으로 일본군 해외군사 개입의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우선 미국은 일본과 방위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전력을 극대화하고 군사비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일본 측은 군사 안보 면에서의 역할 증대를 노려 자국방위라는 기존의 동맹 틀을 의도적으로 깼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신 방위협력에 대한 위험론이 고개를 들고 있으며, 국민적 합의 과정 없이 안보를 종속화시켰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과 일본은 유사시 주변 사태의 대상국이 된 한국과 중국에 사절을 보내 군사팽창주의의 우려를 해명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은 일본이 미국의 대리 역할을 구호처럼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만 수행할지, 전쟁 피해 대상국들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미국.일본 방위협력지침 개정, 주변국들의 우려 높아져
최첨단 장비로 무장돼있는 육상과 해상 그리고 항공을 포함하는 일본의 자위대 병력은 모두 20만 3천. 앞으로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아시아와 태평양 전지역에 출동할 수가 있게 됐으며 자위대가 맡게 될 후방지원은 우선 미군의 전투지원을 위해서 일본 열도의 군사기지 뿐만 아니라 민간공항과 항만시설을 미군에게 제공하게 된다. 또한 무기와 탄약을 비롯해서 전쟁수행에 필요한 일체의 물자와 연료를 일본의 자위대가 수송을 맡게 된다. 아울러 미군기와 함정의 수리와 정비도 일본이 담당한다. 달라지는 자위대의 역할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위기에 처한 미군의 수색과 구조작전에 자위대가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긴급한 사태일 때는 적지에도 들어가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일본 방위협력지침 확정;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
당시 미일가이드라인에 대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미일가이드라인의 골자는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하여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것이 큰 문제"며 "주권국인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이런 법안이 통과된 것과 우리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에 분노할 일"이라고 김영삼 정부를 비판했다.남북정상회담 개최될 것 김대중 후보 발언 김대중 후보는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군사개입에 대해 대한민국의 사전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자위대의 한반도 군사개입에 대해 조건부허용 입장을 내놨다. 97대선 정책대결로
3.5. 한미일 군사훈련
자세한 내용은 한미일 군사훈련 문서 참고하십시오.4. 변수
4.1. 강해지는 미국의 신고립주의 경향
미국이 다시 고립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특히 신고립주의 성향의 소위 트럼프주의로도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나 성김 전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훨씬 더 고도화됐고 북러 협력이라는 변수가 생겼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한미일 3국 협력은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 신고립주의 노선에서 변화가 없는 만큼 한미일 공조 틀을 유지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에 비용 분담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한 한일안보협력 문서에 서술되어 있듯이 한미동맹 뿐만 아니라 한일 양자간의 안보협력 강화도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다.
4.2. 미중러의 상호의존이라는 현실
한국 내 여론은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디커플링 내지는 최소한 미국-중국 관계의 단절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한 희망과 달리 현실을 살펴보면 미국, 중국, 러시아는 매우 고도로 얽혀있다.우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중국, 러시아는 연합국의 맹주로서 각각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을 패망시켰고, 연합국의 세 나라는 모두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인정 중이다.[7] 냉전 시절에도 미국과 소련 사이에 회담이 많이 있었고, 미국은 70년대부터 신생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20세기부터 복잡하게 얽히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미국, 중국, 러시아의 정치적 행동 반경을 제약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정치적, 군사적으로 갈등하고 있는데다가 정치권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반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그러한 정치적 기조와는 달리 경제 부문에서는 여전히 서로 의존 중이라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민의 생활 수준과 기업을 위해서 서로 교역을 유지해야만 한다.# 미국과 중국은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도 불구,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 및 글로벌 전기차 기업들이 혼란을 대비해 중국에 공장을 확충하고 있다.#
민주-공화를 가리지 않는 정치권의 탈중국 기조와 달리 미국 대기업들은 중국 내에 공장을 다수 건설 중이다. 포드는 중국 닝더스다이(CATL)와 협력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합작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IRA에서 중국 기업과의 합작에 대한 규정이 없음을 노린 행보다. 또 포드는 링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노틸러스를 내년 초부터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역수입한다고 한다.#
인텔은 중국에 13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세우고 1만 2000여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하기로 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역시 상하이시에 리튬이온전지 기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생산할 대규모 공장을 착공하고자 한다. 팀 쿡의 애플 또한 중국 농촌 교육 프로그램에 투입할 비용을 1억 위안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스타벅스는 현재 중국에서만 25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2025년까지 매장을 9000여개로 확충하기로 했다.#
4.3. 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한 일본의 애매한 태도
한미일관계의 개선의 핵심 이유는 중국 견제인데[8] 신냉전이 본격화한 2022년 이전 이후에도 일본이 중국에 대해서 심지어 북한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미일관계 공조 등으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중국과 크게 대립할 거라는 인식과 달리 일본은 중국과의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는 것을 상당히 회피한다. 이 점은 과거에는 명백하게 드러난 점이다. 때문에 중국에 대해 한미일 관계의 적극적인 공조를 주장하는 자들의 관점과는 다르게 일본은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이다.#한국은 차라리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과 무조건 척을 지기 어렵다는 명분과 근거라도 있다지만 일본은 그런 게 전혀 없다. 한마디로 일본은 그냥 중국과 본격적으로 대립해서 자신들이 손해(특히 경제적 손실)을 보기는 싫다는 것이다.
- (뉴스1)日 "中에 정부대표단 안보낸다"면서 '외교적 보이콧' 용어는 거부(종합)
- (중앙)日도 중국 눈치... 美주도 '反화웨이' 네크워크에 불참 통보
- 중국·일본 국방장관, 내년 중 핫라인 운용 개시 의견일치(종합)
일본은 Quad에서조차도 중국을 자극하기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한 전과가 있으며#, 미국이 전 세계 통신장비·서비스 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퇴출하기 위해 추진 중인 이른바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출하기까지 했다.
러일관계도 조금 복잡한데, 일본은 미소냉전이 한창이던 1956년 일소공동선언을 맺으며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재개하여 소련과 대치하던 미국과 서방국가들을 곤란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9]
당시 소일공동선언의 내용을 보자면
- 일소 양국은 전쟁 상태를 종결하고 외교 관계를 회복한다.
- 일소 양국은 각각의 자위권을 존중하고 상호 불간섭을 확인한다.
- 소련은 일본의 유엔 가맹을 지지한다.
- 소련은 전쟁 범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일본인을 석방하고 일본에 송환한다.
- 소련은 일본에 대한 일체의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
- 일소 양국은 1945년 8월 9일 이후의 전쟁 결과로서 생긴 각각의 국가·단체·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을 상호 포기한다.
- 일소 양국은 통상에 관한 교섭을 시작한다.
- 일소 양국은 어업 분야에서의 협력을 이행한다.
- 일소 양국은 계속해서 평화 조약의 체결 교섭을 진행하여 조약 체결 후 소련은 일본에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섬을 양도한다.
이 일소 국교 정상화로 인해 더 이상 소련은 일본의 유엔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1956년 12월 18일 유엔 총회에서 소련은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함께 일본의 유엔 가입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한편 유엔 가입 이후 하토야마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이시바시 단잔이 신임 총리로 취임한다.
북방 영토 문제와 관련해서 소련은 2개 섬의 반환으로 분쟁을 마무리짓길 원했지만 일본은 남은 2개 섬의 반환까지 요구하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결국 약속된 2개 섬의 양도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1960년 1월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케가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추진했다. 그런데 개정안에 주일미군이 극동의 방위도 담당한다고 규정하여 그 범위가 모호한 것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 조약 개정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안보투쟁). 한편 극동의 범위에 자국의 영토가 포함된다고 의심한 소련도 조약 개정에 반발하면서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섬의 양도를 철회해버렸다. 이 여파로 1973년 다나카 가쿠에이가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까지 17년 간 양국 간의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정부가 들어선 뒤인 1993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방일하여 일소공동선언은 러일 관계에도 적용된다는 도쿄 선언이 이루어지고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일소공동선언은 유효하다고 발언했다. 2001년 양국이 발표한 이르쿠츠크 성명에서는 일소공동선언의 법적 유효성이 문서로도 확인되었다.
소련 입장에서는 서독과 수교한 것에 이어 일본과도 외교 관계를 회복하여 전후 처리가 완결되었다. 이는 흐루쇼프가 추진한 평화공존론의 성과이기도 하다.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보수층이 '갓끈 전술' 이론에 따라 가장 경계하는 북일관계도 미묘하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일본총리 무라야마는 일본 사회당 명의로 김일성의 사망을 애도하는 조전을 보냈다.# 당시 조전에서 무라야마총리는 "'위대한 지도자 김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에 가슴깊이 우러나오는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라고 밝혔다.[10][11][12]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일본 사회당은 북한 노동당과의 오랜 우호관계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일본 특유의 국익을 위한 남과 북에 대한 줄다리기식 외교라고 분석했다. 이런 일본의 친북 행보 전적은 한국이 일본을 믿을 수 없는 우방으로 보는 원인이 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북한 평양과 일본 나고야사이에 고려항공 직항노선이 존재하기도 했다. 평양과 일본 나고야를 잇는 직항노선은 1991년에 개통되었는데 아직 국교가 없는 두 나라 사이에서 관광용 민간항공의 직항편이 운항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당시 총리 가네마루의 중간외교가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운수성이 오늘 정식으로 허가한 북한 민간항공의 이름은 에어코리아로 북한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금강산 국제공항이 운영하는 이 비행기는 5월 17일부터 평양과 나고야를 오가며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게 되었다.[13] 이 당시 처음으로 일본과 북한을 직결시킨 최고의 상업용 전세편이 된 북한항공기는 138인승인 소련제 스보레트 1호사다. 이 항공기는 오늘 낮 1시반 95명의 초대객을 싣고 나고야공항을 떠나 3시간 만에 평양공항에 도착했다. 첫 비행편에 초대된 승객은 대부분이 일본여행사의 관계자와 재일 조총련계 인사들이었다.[14]
1996년 북한은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전세기 편수를 대폭 늘려 나고야(名古屋)~평양을 직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관광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일본 중외여행사는 조총련계 조선신보에 게재한 북한 관광단 모집광고에서 96년 4월부터 11월까지 나고야~평양간을 직항하는 고려항공 전세기편이 모두 14편 있다면서 관광코스별로 전세기 출발일자 및 요금을 게시했다. 중외여행사는 나고야~평양 직항에 3시간 가량 소요되며 4~6일이 걸리는 6개 코스별로 요금이 16만9천엔~29만9천엔이라고 관광상품을 소개했다.여행사측은 또 중국을 경유하는 북한관광의 경우 2개 코스에 9개 운항편 이 있다고 게시했다.북한과일본은 지난 92년 1월 나고야~평양간에 전세기를 연간 80회가량 운항한다는 데 합의했으나 북한 핵문제 돌출등으로 실제로 운항된 횟수는 수차례에 불과했다.[15]
1998년~2000년 사이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등으로 운항이 중단되었다가 2000년 4월에 다시 운항이 재개되기도 했다.[16]
이렇게 명맥을 유지한 북일간 직항노선은 결국엔 2002년 4월부로 고려항공 여객기의 노후화 및 북일관계 악화로 평양-나고야간 직항노선은 운행이 중단되어 현재까지도 북한-일본간의 직항노선은 운행하지 않고있다. [17][18]
다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다른 서방 국가들과 같이 일본이 대러제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2022년 7월 방위백서와 12월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해 반격 능력 확보를 천명하고 나서며 적극적인 중러 적대시 정책을 보이고 있다.#
4.4. 일본 지도자 및 정치인들의 주일미군 철수발언
일본에서도 한때 주일미군에 대한 철수 논의가 오가기도 했는데, 주일미군이 일본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점이나 과거 소련의 위협 때문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떠냐야 한다는 발언들이 일본 정치인들 사이에서 오가기도 했다.[19]'''1997년 11월 21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 : (오키나와의 주요 정당들과 시민 단체들이 미군 기지 반환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며 반발, 거부함에 따라 6개월 늦게 기노완 시에서 7백명이 참가한 가운데 거행된 오키나와 반환 25주년 기념식에서) :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집중을 완화하는 한편 오키나와를 자유 무역 지대로 전환시키겠다. 오키나와가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막대한 기여를 했으므로 전국이 부담을 나누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20]
1998년 12월 22일 노나카 히로무 일본 관방 장관 : "미국은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군 감축 협정에 따라 오키나와의 군사 훈련장 한 곳을 반환했다. 이날 반환된 나하 훈련장은 4백80㏊와 7천9백㏊의 수역으로 96년 체결된 양국간 협정에 따라 미군이 일본에 반환키로 한 11개 시설 중 첫번째 것이다. 미국은 이 협정에서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사용하고 있는 부지의 20%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이번 반환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줄이려는 노력이 진전을 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내 미군 시설의 재편과 감축을 게속 추진할 것이다." 2) 전에는 소련의 침략 위협을 막아 주는 기능을 했지만,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8년 6월 17일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 : (미국의 외교 정책 전문지 Foreign Affairs 7∼8월호에 실린 <일본에 미군 부대가 필요한 것인가>에서) : "2000년까지 3만7천명의 주일미군을 철수시키고 일본과 미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새로운 동맹 관계를 맺어야 한다. 냉전 종식 후 옛 소련의 위협이 사라지고 일본이 충분히 자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주일미군의 필요성은 사라졌다. 이제 미군이 일본을 떠날 때다. 1995년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미군 주둔에 대한 일본의 연간 부담이 50억 달러로 늘어나 최근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0년에 만료되는 이 합의를 경신하지 말고 미군을 떠나도록 해야 한다." 3) 적어도 미 해병대의 규모는 줄이고 싶어한다.
1997년 2월 24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 "중장기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양국의 안보상의 요청을 충족할 수 있는 군사 체제와 방위 정책에 관해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차 한반도 등 주변 정세의 안정을 전제로 미 해병대의 규모 감축 문제를 협의하자.” 4) 주일미군이 떠날 때를 대비해 중국의 강대국화를 핑계로 핵 잠수함을 만들고 싶어한다.
1996년 말 일본 방위연구소(<안보 환경의 장기 예측과 일본 방위의 존재 양식>이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되면 미국이 기존의 동아시아 전략을 변경할 것인 만큼 주일미군의 주둔도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중국의 강대국화가 필연적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유지되는 한 중국이 패권적인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억지력 확보를 위해서는 원자력 잠수함의 건조가 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5) 최대한 주인 노릇을 하며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다. 일본은 주일미군에 대한 지원금을 "배려 예산"이라고 부른다. 주일미군의 편의 제공 차원에서 주인으로서 "배려"한다는 뜻이다. 또한 주일미군을 "집 지키는 개"로 비유하기도 한다.
1997년 10월 4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홋카이도 오타루시의 강연회에서) : "(일본은 주일 미군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파수견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돈을 내고 미군을 주둔시켜 파수견으로 쓰는 격이며 그것이 현명하다."
틈만 있으면 주일미군 지원 예산을 깎고자 한다. 1997년 8월 3일 일본 정부(<도쿄신문> 2일치 보도) : "주일미군 주둔 경비 가운데 일본 부담분을 내년 예산에서 삭감하기로 방침을 굳히고 미군쪽과 협의에 들어갔다. 재정 구조 집중 개혁 기간인 98년부터 3년 동안 전체 방위비를 마이너스 편성한다는 내각의 결정에 따라 주일미군 주둔 경비 세출도 삭감하기로 했으며, 삭감 폭과 대상 항목을 미군쪽과 협의 중이다. 일본 정부가 주일미군에 대한 편의 제공 차원에서 지난 78년부터 도입된 '배려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삭감 대상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주일미군의 숙사와 가족 주택, 복리·후생 시설 건설에 할당된 제공 시설 정비비를 억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주일미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려 예산은 1996년의 경우 2천7백 27억 엔이었으며 제공 시설 정비비는 9백53억 엔이었다." 7) 일반 국민은 물론 유명한 고위급 정치인들이 주일미군에 대해 공공연한 반대 운동을 벌인다.아시아 주둔 미군과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
1998년 12월 22일 노나카 히로무 일본 관방 장관 : "미국은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군 감축 협정에 따라 오키나와의 군사 훈련장 한 곳을 반환했다. 이날 반환된 나하 훈련장은 4백80㏊와 7천9백㏊의 수역으로 96년 체결된 양국간 협정에 따라 미군이 일본에 반환키로 한 11개 시설 중 첫번째 것이다. 미국은 이 협정에서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사용하고 있는 부지의 20%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이번 반환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줄이려는 노력이 진전을 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내 미군 시설의 재편과 감축을 게속 추진할 것이다." 2) 전에는 소련의 침략 위협을 막아 주는 기능을 했지만,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8년 6월 17일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 : (미국의 외교 정책 전문지 Foreign Affairs 7∼8월호에 실린 <일본에 미군 부대가 필요한 것인가>에서) : "2000년까지 3만7천명의 주일미군을 철수시키고 일본과 미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새로운 동맹 관계를 맺어야 한다. 냉전 종식 후 옛 소련의 위협이 사라지고 일본이 충분히 자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주일미군의 필요성은 사라졌다. 이제 미군이 일본을 떠날 때다. 1995년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미군 주둔에 대한 일본의 연간 부담이 50억 달러로 늘어나 최근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0년에 만료되는 이 합의를 경신하지 말고 미군을 떠나도록 해야 한다." 3) 적어도 미 해병대의 규모는 줄이고 싶어한다.
1997년 2월 24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 "중장기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양국의 안보상의 요청을 충족할 수 있는 군사 체제와 방위 정책에 관해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차 한반도 등 주변 정세의 안정을 전제로 미 해병대의 규모 감축 문제를 협의하자.” 4) 주일미군이 떠날 때를 대비해 중국의 강대국화를 핑계로 핵 잠수함을 만들고 싶어한다.
1996년 말 일본 방위연구소(<안보 환경의 장기 예측과 일본 방위의 존재 양식>이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되면 미국이 기존의 동아시아 전략을 변경할 것인 만큼 주일미군의 주둔도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중국의 강대국화가 필연적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유지되는 한 중국이 패권적인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억지력 확보를 위해서는 원자력 잠수함의 건조가 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5) 최대한 주인 노릇을 하며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다. 일본은 주일미군에 대한 지원금을 "배려 예산"이라고 부른다. 주일미군의 편의 제공 차원에서 주인으로서 "배려"한다는 뜻이다. 또한 주일미군을 "집 지키는 개"로 비유하기도 한다.
1997년 10월 4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홋카이도 오타루시의 강연회에서) : "(일본은 주일 미군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파수견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돈을 내고 미군을 주둔시켜 파수견으로 쓰는 격이며 그것이 현명하다."
틈만 있으면 주일미군 지원 예산을 깎고자 한다. 1997년 8월 3일 일본 정부(<도쿄신문> 2일치 보도) : "주일미군 주둔 경비 가운데 일본 부담분을 내년 예산에서 삭감하기로 방침을 굳히고 미군쪽과 협의에 들어갔다. 재정 구조 집중 개혁 기간인 98년부터 3년 동안 전체 방위비를 마이너스 편성한다는 내각의 결정에 따라 주일미군 주둔 경비 세출도 삭감하기로 했으며, 삭감 폭과 대상 항목을 미군쪽과 협의 중이다. 일본 정부가 주일미군에 대한 편의 제공 차원에서 지난 78년부터 도입된 '배려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삭감 대상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주일미군의 숙사와 가족 주택, 복리·후생 시설 건설에 할당된 제공 시설 정비비를 억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주일미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려 예산은 1996년의 경우 2천7백 27억 엔이었으며 제공 시설 정비비는 9백53억 엔이었다." 7) 일반 국민은 물론 유명한 고위급 정치인들이 주일미군에 대해 공공연한 반대 운동을 벌인다.아시아 주둔 미군과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
그러나 아베 신조의 장기집권, 중국의 패권으로 인한 팽창정책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 일본 그리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손잡기 시작하면서 이런 가능성은 줄어들었고 오히려 주일미군 규모를 증축하기도 하였다. 한때 고립주의의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자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 일부분 철수설이 돌았지만 조 바이든이 집권한 이후로는 사라졌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여야 할 것 없이 주일미군 찬성을 외치는 중이지만 당연히 오키나와 현주민들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결국 2023년 4월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편대가 추가 배치되었다.
4.5.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한 일본의 미국에 대한 비난 및 미국의 핵실험에 대한 일본의 대미비난 여론
1996년 12월, 히로시마 원폭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자,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일본 총리는 "'지금까지 전쟁에 관련된 것이 문화유산으로 한번도 등록되지 않았다는데 이미 등록된 것(아우슈비츠)이 있는 이상 히로시마가 등록되는 것은 마땅하다"'며 환영의사를 표했다. 당시 미국과 중국 등은 일본의 전쟁 책임 때문에 문화유산 등록에 반대의사를 표해 묘한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다.[21][22]1997년 미국의 `임계치 이하' 지하핵실험에 대해 3일 2차대전 당시 원폭 피해도시인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 시장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중국이 우려를 표명했다. 히라오카 다카시 히로시마 시장은 "미국은 (이번 실험 목적이) 핵무기 안전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려는 강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실험이 핵무기 개발 경쟁을 다시 재연시킬지 모른다는 강한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토 잇초 나가사키 시장은 "유감보다 강한 분노를 느낀다"면서 "이번 실험이 핵실험 금지를 위한 국민들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미국에 강하게 항의할 것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에게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 대변인인 가지야마 세이로쿠 관방장관은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반핵단체들은 이날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그밖의 다른 주요 도시에서 집회를 갖고 미국의 지하 핵실험을 비난했다. 한편 지난 95,96년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던 중국은 이날 우려를 표명했지만 비난에 이르지는 않았다.[23]
2023년 G7 히로시마 정상회의 당시 바이든 미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히로시마 원폭기념관에 방문하고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들에 묵념하고 헌화를 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 국내와 일본 언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원폭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 일본 국내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5. 관련 문서
- 대한민국/외교
- 미국/외교
- 일본/외교
- 한미일 군사훈련 / 한미상호방위조약 / 미일안전보장조약 / 해외 주둔 미군(주한미군 / 주일미군)
- 인도-태평양
-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 정식 명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이다. 2014년 12월 체결되었다. 이 협정을 통해 미국을 경유해서 한일간 군사정보교환이 가능하다.
-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 북중러관계
- 신냉전
- TPP[24]
- IPEF
- CHIP4[25]
- 국제사회
- 대한민국/경제
- 미국/경제
- 일본/경제
- 대한민국/문화
- 미국/문화
- 일본/문화
- 한국인 / 미국인 / 일본인 / 한국계 미국인 / 일본계 미국인
- 영어(미국식 영어) / 한국어 / 일본어
- 미국 요리 / 한국 요리 / 일본 요리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1] 타 국가들을 식민지배했던 역사가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축국가들은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충돌한다면 대개 일본 편을 든다. 일본이 비축한 외화를 기반으로 한 로비력도 있으나 미-영-프는 과거 같은 식민지배국이었기 때문에 일본에게 동조할 수밖에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위안부 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일본제국이 진짜 인간이 할 범위를 벗어난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것이지 식민지배 자체를 규탄하는 것이 아니다.[2] 다만 인도는 국력의 차이 등으로 인해 한국보다 외교적인 운신의 폭이 훨씬 넓은 나라이고, 베트남은 친미 국가라고는 하지만 한미관계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애초에 미국이 집안단속할만한 국가가 아닌것.[3] 플라자 합의도 일본이 미국의 경제를 넘어서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만약 일본이 이 제안을 거부했다면 미중 무역 전쟁과 유사하게 미국과 일본 두 나라는 무역전쟁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았다.[4] 정확하게는 2023년 6월 2일 국민의힘의 "계속되는 북한의 저열한 도발 행위는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한다"는 논평과 홍준표 대구시장의 "한미일 자유주의 동맹" 발언을 지적했다.[5] 공식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동맹관계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적 동맹 관계'에는 미국만이 해당되며, 일본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동반자 관계'에 불과하다.[6]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법적 근거를 마련한 미일 가이드라인에서 일본은 97년 7월 캄보디아 자위대 수송기 파병을 통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을 떠보고 한반도 북핵위기시 자위대의 한반도 합법적 군사활동 근거를 이 법안을 통해 공식화하기도 했다. 미일 대등한조건서 군사협력[7] 당시 중국은 국민당 정권,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이었으나 21세기 기준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이 이를 계승 중이다.[8]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동유럽에 관심이 쏠려 있다.[9] 위키백과 일소공동선언[10] 일 총리 북측에 애도 전문 동아일보[11] 무라야마 북한에 조전 한겨레[12] 알 총리 사회당 명의로 북한 조전 경향신문[13] 일본나고야-평양 직항로 개설 1991.5.13 kbs뉴스[14] 북한 전세기 첫 취항 1991.5.17 kbs뉴스[15] 평양 나고야 운항노선 현황 1996.6.23 중앙일보[16] 日, 평양∼나고야 北전세기 29일부터 운항 허용[17] 日, 평양-나고야 전세기 운항중단[18] 日,북한-일본 직항로 운행중단[19] 호소카와총리, 주일미군 철수 주장[20] 아시아 주둔 미군과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21] 일 원폭돔 세계문화유산 지정, 미국 중국 반성 없이 피해강조 우려 한겨레[22] 일 원폭돔과 전쟁범죄 동아일보[23] 日 원폭 피해도시 등 반핵단체, 미국 핵실험 강력 항의 1997 연합뉴스[24] 한국은 가입을 추진중이고 미국은 TPP에서 탈퇴했다.[25] 대만과 결성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