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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21:25:08

용의 눈물/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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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인물3. 왕실 인물
3.1. 태조 시기3.2. 태종 시기
4. 대신들
4.1. 이방원 일파4.2. 정도전 일파4.3. 기타 대신들
5. 고려 인물6. 기타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등장인물과 출연진들. 이 문서에선 극중의 행적을 위주로 서술한다.

2. 주요 인물[1]

3. 왕실 인물

3.1. 태조 시기

3.2. 태종 시기

4. 대신들

4.1. 이방원 일파

4.2. 정도전 일파

4.3. 기타 대신들

5. 고려 인물

6. 기타



[1] 1회 오프닝에 얼굴과 함께 배우 이름이 나온 인물들로 한정했다.[2] 여인천하에서 엄상궁 역으로 화제가 되었던 배우다. MBC 4기 공채 성우 출신. 2006년에 심혈관 수술 후유증으로 별세.[3] 이성계를 뒤늦게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4] 이는 신덕왕후가 자신의 자식을 왕위에 올리고 싶은 욕심을 부렸던 것에 대한 죄책감 등 여러 생각이 겹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5] 태조 왕건에서 도우 스님으로 등장. 피자의 생명은 도우 드립 짤방의 그 스님 맞다...[6] 이복형 이성계가 늙고 쇠약해져 임종을 맞이할 때도 여전히 정정한 모습인 터라 같은 해에 사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7] 능력을 제쳐두고서라도 왕위계승 서열 1위는 당연히 왕의 적장자가 되는 것이 상식이다. 다만 정도전은 이미 마음 속으로 그를 배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왕실의 장자'라는 가장 우월한 조건에도 불구하고도 '고려의 유신'으로 봐도 될 정도인 그의 성향 때문이었다.[8]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성인 한병태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다. 태조 왕건 촬영 중이던 2000년 11월 7일 지병이었던 간암으로 향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9] 대표적으로 태종이 후궁을 들이는 문제로 원경왕후와 심하게 충돌했을 때, 보다 못해서 "넌 자식도 많잖아. 뭐하러 후궁을 또 들이려고 그러냐? 나는 (정실인 정안왕후 김씨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어도 젊은 날의 정으로 서로 아끼며 잘 살고 있다."고 한마디 했었다.[10] 사실 우유부단한 수준을 넘어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아우인 이방원의 눈치를 보는 속된 말로 거진 마마보이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아무리 각색을 좀 했다지만 작중의 이방과의 모습은 실록의 기록과 비교하면 작중 앙녕대군에 가한 미화만큼 괴리감이 심할 정도다.[11] 태조 왕건에서는 대주도금 역할을 했다. 유순한 성격의 정안왕후와는 정 반대로 여걸 역할[12] 그냥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정도가 아니라 '원자 운운하고 세자 운운한다는데 어찌 된 일이냐' 라고 정종에게 따지기까지 했고, 정종은 정안왕후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며 세자가 자신을 '겁박했다' 라는 표현을 썼다.[13] 태종이 정종을 배려하여 그 아들들을 절에서 다시 불러올 때 정안왕후가 달려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녀 이상으로 기뻐했으련만 등장이 없다.[14] 실제로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텐데 두 아들은 잘 살았으며, 장남 덕천군의 후손들은 사실상 중종의 후손 맥락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작중 전개를 위한 야사를 넣은 내용 때문에 동자승으로 잠시 가게 된 것이다.[15] 여인천하에서 파릉군, 야인시대에서 김좌진으로 유명하며 이방원 역 유동근과는 연개소문 배역을 맡은 적이 있었다. 유동근은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최동준은 대왕의 꿈에서 연개소문을 맡았다.[16] 태조 역시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슬퍼하는데, 신의왕후 자식들 중에서는 가장 마음이 여렸던 이로 부르며, 무인정사 이래로 원망스러워 보지를 않았지만, 죽은 다음에는 그런 대우를 했던 것에 후회하는 것으로 보인다.[17] 후에 정도전에서도 조민수로 등장, 유동근(이성계)와는 또 정적으로 만나 당연히 여기서도 패배자였다. 삼국기, 조광조, 명성황후에서도 유동근과 함께 나온다.[18] 그래서 인지 신덕왕후 는 이방원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없애야 할 인물로 보고 있었고, 정도전 같은 인물들도 없애야 한다면 이방원과 방간은 반드시 죽여야 할 것으로 여길 정도.[19] 심지어 김경응은 51회에서 정도전 측의 병사,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태조 왕건 역으로 1인 3역을 맡았다(...). 드라마 역사상 가장 나이 차가 큰 1인 다역[20] 이후 태종 이방원에서 이숙번 역으로 출연한다.[21] 한명회에서는 정순왕후 역을 맡았는데, 당시 단종 역은 무안대군 역을 맡은 정태우.[22] 들판에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사냥한 것도 아니고 백성이 팔려고 장터로 가져온 닭을 활로 마구 쏘아 죽였다. 이 일로 대로한 태조에게 종아리를 맞는다.[23] 이 소식을 들은 원경왕후가 나중에 신덕왕후에게 투호 세트를 보내 화병을 확 돋운다(...)[24] 담당 PD가 해당 드라마를 처음 기획할 당시 송윤아가 이 배역이었으나, 영화 촬영 중이라 삭발이 불가능해 거절했고 송윤아는 이숙번 부인 역으로 나중에 합류했다.[25] 실제로도 불자이며, 삭발 역시 진짜로 했다. 비구니로 출가하기 위해 삭발하는 로 나온 장소는 실존하는 순천시선암사고, 출연한 스님들도 실제 선암사 소속 스님들이다. 김나우의 부모님은 직접 촬영 장소를 찾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93][26] 태종 이방원에서는 왕실의 사돈인 심효생으로 등장하는데, 본작에서는 정태우가 맡았던 이방번과 같이 죽지만 태종 이방원에선 정태우가 맡은 이숙번에 의해 죽는다.[27] 재현이 탄탄하기로 유명한 용의 눈물에서 왜곡이 제일 심하다는 게 이 드라마 최고의 아이러니로 보는데, 다만 양녕대군 세자양보설은 조선 후기에는 정설이 되어 실록에도 등장한다. 사실 이환경은 1995년에 나온 실록 CD롬을 적극 참고하여 용의 눈물을 썼기 때문에 왜곡임을 알고도 양녕을 더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싶어 월탄이 종합한 '양녕대군 양위론'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에도 정설이 아니라는 점은 알려져 있었는지 종영 후에 방영된 특집 방송에서 어느 방청객이 작가 이환경에게 이 부분을 문제삼으며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환경이 "사료를 보면, 양녕이 신념이 굳고 자기 주관이 강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단순 양아치는 아니었을 것이다."라 반론하자 수그러들었다. 한편, 이덕일이 이희근과의 공저라 1999년에 출간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에서도 '양녕대군의 양보설'을 정면 부정하고 실제 비행을 저지른 것이 맞다고 저술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양녕대군의 실체가 아주 안 알려진 것도 아니다. 이 책도 고대사 등에서 훗날 이덕일의 악명의 단초가 될 국수주의적 저술이 있어 추천할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내용도 일부 있었고, 양녕대군의 실체도 그 중 하나이다. 한편, 이 드라마의 원작인 박종화의 다른 소설인 <세종대왕>도 양녕대군 왕위 양보설에 입각해 집필하였는데 이걸 용의 눈물도 그대로 반영했다. 다만 원작은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용의 눈물은 그들의 어두운 점도 부정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각자의 신념을 가진 인물들로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점에서, 양녕대군 묘사와 차이있다. 양녕대군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이거니와 이 편이 극적 묘사를 하기에 더 좋아서 원작 묘사를 그대로 가져온 듯 하다. 결과적으로 유동근과 이민우의 소름끼치는 연기 대결로 극적 재미와 시청률이라는 측면에선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후대의 비판도 받게 되었다.[28] 108회에서 꾸짖었을 때 태종의 목소리가 컸는지 밖에 있던 노 내관과 정만쇠 등이 놀라기도 했다.물론 선빈은 세자가 중전(원경왕후)에게 한 말을 전하면서 세자를 칭찬하려는 의도였다.[29] 본작과는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는 개망나니였던 실제 양녕대군도 붓글씨만큼은 잘 썼다고 한다. 양녕이 봉지련과의 스캔들로 인해서 근신 중일 때, 태종이 도승지로부터 세자가 붓글씨를 아주 잘 쓴다는 얘기를 듣고, 그 실력이 궁금해서 대전으로 불러 몇 글자를 쓰게 했는데, 그 실력이 가히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던지라, 태종은 세자에게 "그래그래, 남자가 젊었을 때 여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암! 그런데 그런 건 나중에 네가 보위에 오른 뒤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지금은 그저 공부에만 전념해주면 좋겠구나."라면서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신하들을 불러 세자가 쓴 글씨들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는가 하면, 경회루의 현판도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세자에게 직접 쓰게 하는 등, 철혈군주였던 태종이 제대로 된 아들바보 인증을 하기도 했다.[30] 야인시대에서 털보 역을 맡았다.[31] 아무리 양녕대군이 서브 주연급이라 해도 충녕대군은 한국사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고 학문 깊기로도 유명하니 조금이라도 모자라게 보이는 묘사가 불가능하고, 성녕대군은 어리니 효령대군이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는 아니지만 야사에서도 자기가 다음 세자가 될 줄 알고 헛물 켜다 양녕에게 한소리 듣기도 하고. 다만 극중 효령은 왕위에 욕심은 없어서 해설로도 그런 야사는 후세에 만들어진 것 같다고 덧붙인다.[32] 같은 작가의 무풍지대와 그 드라마를 사실상 리메이크한 야인시대 자유당 편에 등장하는 양녕대군의 후손 이승만과 효령대군의 후손 이기붕의 행적을 볼때 먼 훗날의 일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33] 세종이 왕자 시절부터 문자 창제를 생각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세종의 최대 업적인 만큼 이렇게라도 언급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34] 그것도 그럴게 애시당초 이방원이 민씨 일가들을 쓸어버리고 그 뒤에 사돈인 심온 일가까지 갈아버린 이유는 다름아닌 왕권이 외척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중전을 폐해버린다면 분명 또 다시 새 중전을 세워야 하고 또 다시 외척들 견제를 위해 다시 또 숙청을 해야하는데 이렇게 되면 끝이 없다. 거기에 이방원 자신의 나이도 있으니 여기서 끝내야 하는 것이다.[35] 본명은 도지원. 경빈 박씨의 그 분과는 동명이인인지라 도지영으로 활동하였으나 다시 임서연으로 개명하였다.[36] 이 드라마를 시작으로 왕과 비의 혜빈 양씨, 태조 왕건의 강비로 KBS 대하드라마에 3연속 출연한다.[37] 가령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때, 태종이 효빈 김씨를 찾아가 세자 자리를 운운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경녕군에게 있어 분수에 맞지 않은 자리라며 정중하게 거절했고, 태종 역시 그 말 자체가 효빈 김씨에 대한 시험이었음을 드러냈다.[38] 태종이 선빈과 처음 만난 곳도 이숙번의 집이었다.[39] 이숙번도 태종의 장남을 원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갈등이 무마되는 듯 했다가, 다시 민씨 가문을 견제해야 한다는 이숙번의 주청이 올라가면서 재개된지만 그러나 적자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아버지에게 칼을 겨눴던 태종은 처음부터 후궁 소생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으며, 장남 이제가 원자로 책봉된 후 이 점을 확실하게 못박아 놓는다. 이후 비중이 감소하다가 효빈 김씨와 같은 시기에 극에서 퇴장하며 퇴장이후 선빈안씨의 지밀 상궁은 세자빈의 지밀상궁으로 옮겨간다.[40] 당시에는 예명인 '허민'으로 출연했다.[41] 소빈 노씨는 다른 엑스트라 배우가 맡았으며 132회의 후궁 간택 장면에서 나온다.[42] 태조 왕건에서 추허조[43] 이저로 바꾼 것은 태종 대의 일이고, 그 이전에는 '이백경', 이후로는 '이애'라는 이름을 썼지만, 드라마에서는 시종일관 '이저'로 나온다. 시청자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개명을 잘 반영치 않는 경우가 많다. 이성계가 '이단'으로, 이방과가 '이경'으로 개명했지만 그게 반영된 사극은 없다.[44] 뒷날 야인시대에서 홍만길의 중년 시절을 연기하는 배우다.[45] 국왕의 호위대장. 현재의 청와대 경호실장에 해당. 양녕대군이 비행을 저지를 때 세자궁에 잡인들이 들어오거나 세자가 몰래 나가는 것을 못 막은 걸로 사헌부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을 법도 했는데, 품계가 깎이거나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아무래도 가공인물이다 보니 그런 듯. 같은 작가가 쓴 태조 왕건에서도 능환최승우가 후백제 건국 시점부터 멸망 시점까지 무려 수십 년 동안 '이찬'과 '파진찬' 관직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46] 물론 여기에는 자신의 딸의 신변이 걱정되었기도 했었을 것이다.[47] 해당 장면은 세자인 양녕을 찾으러 한양을 최 내관과 같이 한성을 수색하다 양녕과 마주치던 씬이다. 이때 같이 있던 최 내관이 옆에서 깐족 대는데 감히 세자 앞에서 깐족대는 모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조용히 하라면서 싸대기를 날려버린다.[48] 강상인도 극중에 나오지만 행적을 정만쇠가 가져가는 바람에 외척 숙청에 재수 없이 말려든 신료들 중 하나로 나온다.[49] 1화가 위화도 회군이라는 큼직한 사건을 다루느라 이방원의 집안을 묘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50] 원래 경순공주 역으로 내정되었지만 개인사정으로 이숙번 부인으로 출연하게 된다.[51] 당시 원경왕후는 훗날의 효빈을 비롯한 집안 식구들을 불러모아놓고 은장도를 주면서 이방원이 패하면 자결하라고 명한 상황이었는데, 남장을 한 정씨가 함께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찾아온다.[52] 당시 이숙번은 자신이 유배 정도로 끝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뒤이어 태종과 단 둘이 만났을 때 죽여 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했다.[53] 태조 왕건에서 유금필[54] 연개소문에서 강이식 역, 태조 왕건에서 '수달' 능창 역, 무인시대에서 경대승의 측근 김자격 역[55] 태조 왕건에서 공직[56] 가만 있던 걸 조영무가 성대감이라면 태상왕의 미움도 안 샀다고 떠미는데, 가기 싫었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대신 중 갈만한 사람이 정말 자기 뿐이라 결국 간다.[57] 여담으로 처형당할 때 막걸리 때문에 NG가 난 적이 있었다.[58] 무인시대에서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 역[59] 무인시대에서 문극겸[60] 태조 왕건에서 경순왕[61] 태조 왕건에서 신덕 역, 무인시대에서 전존걸[62] 태조 왕건에서 태조의 3비 신명순성왕태후의 아버지 유긍달 역[63] 태조 왕건에서 김효종[64] 태조 왕건에서 최치원[65] 태종에게 병세를 설명하며 '몸 안에 혹이 생겼다.'고 하는 걸 보면 암인듯 하다. 평소 술이 과하다는 태종의 언급이나 즉을 무렵에 술을 즐겨 마셨다는 나레이션의 설명을 감안하면 간암이었을 가능성이 높다.[66] 여담으로 108회에서 109회로 넘어가는 동안 익안대군, 조준, 박석명 순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는데, 실제로는 익안대군이 1404년, 조준이 1405년, 박석명이 1406년에 사망했다. 여기에 더해 한양 재천도 과정에서 무학대사도 1405년에 입적했는데, 이는 110회의 나레이션으로 갈음했다.[67] 사실 심온의 옥사를 다루지 않는다면 굳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 맞기도 하며, 등장인물이 워낙 많은 탓에 일찍부터 나왔더라도 비중이 주어지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당장 태종의 잠저 때부터의 수하로 태종 재위기에 군사 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이부 같은 경우, 태종 즉위도 아니고 1차 왕자의 난 이전에 퇴장했다.[68] 당시 도승지였던 조말생이 이지성은 이미 죄를 받아 유배 조치되었는데 죽일필요까지는 없다고 건의했으나... 결국 태종의 서슬퍼런 명령에 결국 그 뜻대로 행해야 했다. 여담으로 실제 역사에서 이지성은 귀양 8년 만에 사약이 아니라 목이 베이는 참수형을 당했다.[69] 여인천하에서 간신 심정으로 나온 배우다.[70] 공민왕의 젊은 부인이었기에 극 중 나이는 많아봤자 3~40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나[94], 극에서는 고려의 마지막을 지킨 태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출생년도를 잘못 알았는지 원로배우가 역을 맡았다. 즉 재현 오류...[71] 태조 왕건에서 강장자, 즉 강비의 친정아버지이자 궁예의 장인 역[72] 아들 남성진정도전에서 공양왕, 태종 이방원에서는 하륜으로 나왔다.[73] 이기영(배우)와는 동명이인[74] 이후 배우는 부활하여(...) 무인정사에서 이방원의 살생부를 읽는 역할로 재등장한다. 정도전에서는 우왕의 내관으로 등장하며, 태종 이방원에서는 태종의 내관으로 등장.[75] 이분은 일반 병졸, 이방간의 아들 이맹종 역으로 1인 3역을 했다. 정도전에서는 김저 역을 맡았다.[76] 정도전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나온다.[77] 이 동자승은 작품 후반부에 장성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아무래도 무학대사도 퇴장할 때가 다 된데다 청년 모습으로는 이런 캐미가 영 맞지 않았는지 얼마 안 가 공기화되었다(...).[78] 이와 유사한 인물로 이퇴계이율곡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79] 등장하기는 살생부에게 올랐다가 죽은 좌부승지 노석구가 반짝 나오긴 한다. 바로 죽지만...[80] 80년대 영구와 함께 바보 캐릭터의 양대산맥이었던 칠득이를 연기한 분.[81] 같은 작가의 작품 야인시대에서 정진영의 공산당 동지이자 연인으로 나오는 김해숙 역을 맡은 배우. 봉지련과 김해숙, 둘 다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봉지련은 사인이 음독자살인 반면, 김해숙은 동지인 김천호에게 팀킬을 당했다는 점.[82] 당시 본명인 이혜련(李慧蓮)으로 출연했다.[83] 하륜이 명나라에 갔을때, 양녕대군이 명나라에 갔을때[84] 태조 왕건에서 은부 역으로 출연했다.[85] 이 때 촐싹대며 양녕과 어울리다 “중전마마 납시오”란 내관의 말에 정신줄 놓고 “납시오~”라며 따라하는 패기를 부렸다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고 땅바닥에 처박혀 쩔쩔매는 모습이 압권.[86] 이효정(남배우), 이효정(여배우) 둘 다 아닌 동명이인.[87] 여자가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며 집안일을 도와주는 행동. 즉, 숙식제공 가정부를 의미한다.[88] 보통 정식으로 궁에 들어오면 상궁까지 가는데 최소 30년이 필요하다. 물론 제조상궁 급의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소수.[89] 이 때문인지 태종에 의해 원경왕후의 수족들이 쫓겨날 때 그간 바지사장으로 살며 설움을 겪었을 제조상궁에게 직접 끌어내라는 말을 듣고 질질 끌려간다(...).[90] 푼수에 못생김 캐릭으로 등장하지만 이래봬도 슈퍼 탤런트 출신 배우로 현재도 영화배우로 활동을 하고 있다.[91] 복섭이 무려 부제조상궁으로 들어오는 와중에 이쪽은 그냥 나인으로 들어오는 푸대접을 받았다.[92] 1994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한, 같은 여말선초를 다룬 KBS 대하드라마 개국에서 이지란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강민호의 아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