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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태종의 후궁 선빈 안씨 | 善嬪 安氏 | |||
선빈 안씨묘 전경 | |||
출생 | 미상 | ||
사망 | 1468년(세조 14년) 7월 15일(음력 6월 17일) | ||
능묘 |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 37-13 | ||
재위기간 | 조선 궁인 | ||
1407년 이전 ~ 1421년 6월 10일 | |||
조선 숙선옹주 | |||
1421년 6월 10일 ~ 1435년 3월 1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 순흥 안씨 | |
부모 | 부친 - 안의(安義) | ||
배우자 | 태종 | ||
자녀 | |||
봉작 | 숙선옹주(淑善翁主) → 선빈(善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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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태종의 후궁. 아버지는 검교 한성윤 안의(安義)이다. 본래 궁녀였으나 태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다.슬하에 익녕군 이치를 비롯하여 두 옹주를 낳아 1남 2녀를 두었다. 익녕군 이치는 태종의 유복자로 태어났고, 나머지 자녀들도 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1421년(세종 3) 숙선옹주(淑善翁主)로 봉작되는데, 이때 그녀의 아버지는 검교 판한성부사에 제수된다.[1]태종의 사후에는 안씨는 송사 문제로 실록에 여러 번 이름이 오르내린다. 1430년(세종 12)에는 신빈 신씨의 첫째 딸 정신옹주의 남편인 영평군 윤계동(尹季童)과 집터 문제로 송사를 벌였고, 1468년(세조 14)에는 자신의 딸인 경신옹주와 노비와 전답을 비롯한 재산 분배로 송사를 벌였다.
1468년(세조 14)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와 노비 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딸 경신옹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녀보다 먼저 사망한 상태였다.
3. 묘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 ||||
42호 | ← | 43호 | → | 44호 |
배봉산 보루 | 숙선옹주(선빈) 안씨 묘 | 사릉 석물 채석장 터 |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43호 | |
숙선옹주(선빈) 안씨 묘 淑善翁主(善嬪) 安氏 墓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 37-13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
수량 / 면적 | 분묘 1기, 묘표 1기, 상석 1기, 산신제석 1기, 문석인 2기, 장명등 1기/2,308㎡ |
지정연도 | 2019년 6월 7일 |
시대 | 조선 시대 |
소유자 (소유단체) | 전주 이씨 익녕군(소강공)파종회 |
<colbgcolor=#89236A> 숙선옹주(선빈)안씨 묘[2] |
묘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에 있다. 2019년 6월 7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받았다.
4. 대중 매체
- 드라마 《용의 눈물》- 이보희[3]
태종이 처음 보고 반한 것으로 묘사된다. 역사와는 달리 궁녀가 아니고 이숙번의 집에 얹혀살던 양반집 딸로 각색되었다가 태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된다.[4] 대놓고 자신의 아이도 세자가 될 수 있냐며 물어 볼 정도로[5] 후궁 중에서 가장 야심이 많은 성격으로 그 성격 드센 원경왕후에게도 지지 않고 맞섰으며, 이 때문에 가장 갈등이 심했다.[6]
- 웹소설《신녕궁주전》
안매주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정비전의 수방 나인이었다가 금영의 빈 자리를 채울 지밀나인이 되면서 아지와 처음 만난다. 아지가 후궁이 된 후에는 정비의 명으로 태종의 지밀나인이 되었고, 이후 승은을 입어 후궁 숙선택주가 된다. 아지와는 친자매처럼 사이가 좋았으나, 후궁이 된 후 순혜옹주 장씨의 간계로 인해 아지와 사이가 멀어진다.
순혜옹주가 유배를 간 후에도 아지와는 사이가 서먹했으나, 태종 사후에 순혜옹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구니가 된 아지를 찾아왔다가 그녀에게 사과한다.
[1]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 5월 11일 임신 3번째기사. #[2]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3] 당시의 이보희는 39세였는데 이숙번의 처[7]보다 어린 나이라는 설정과 맞지 않는 미스캐스팅이라는 말이 많았다.[4] 참고로 원래 원경왕후의 몸종이었던 신빈 신씨는 용의눈물에서는 엉뚱하게도 원래 선빈의 롤이어야 할 상궁 출신으로 나온다.설정 돌려막기[5] 이 직후 태종은 "이것들이!" 라며 원자를 후다닥 세자로 책봉한다.[6] 원작인 박종화의 세종대왕에서 혜선옹주가 맡았던 역할이 거의 대부분 선빈에게 옮겨온 것으로 추측된다. 만남에 이숙번이 엮여있다든가, 대놓고 자식을 왕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내보인다든가, 원경왕후와 극심한 대립을 보인다든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