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남인 인물들의 목록을 다룬 문서다. 실제 역사 기록에서 미남이라고 기록된 사람들만 등재하도록 한다.[1]2. 동양
2.1. 한국
2.1.1. 삼국시대
- 김춘추 - 화랑 출신에 삼국사기에 영준하고 늠름한 외모라고 기록되어 있거나,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하다, 얼굴이 백옥같다 등 용모에 관한 칭찬 및 언급들이 한중일 삼국에 모두 기재되어 있다.
- 김유신 - 화랑 출신이다.
- 관창 - 삼국사기에 따르면 용모가 우아했다고 한다.
- 무령왕 - 삼국사기에 따르면 눈과 눈썹이 그린 것 같다고 하는데, 눈과 눈썹이 그림 같다는 말은 예로부터 미남을 칭하는 표현들 중 하나이다.
- 무왕 - 삼국사기에 풍채가 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문무왕 - 부모인 김춘추와 문명왕후를 빼닮은 것인지, 삼국사기에 용모가 영준하며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사다함 - 신라 진흥왕 시기의 화랑. 삼국사기에 외모가 청수하여 화랑으로 떠받들여졌다고 한다.
- 신대왕 - 용모가 영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호동왕자 - 기록에 따르면 얼굴이 수려해 부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며, 아예 이름 자체가 수려한 남자란 뜻. 낙랑궁왕 최리가 얼굴만 보고 처음부터 귀한 집 자제라 생각했을 정도다.
- 화랑 - 원래는 신라 최고의 미녀인 원화를 뽑아 남정네들이 그 여인을 따르게 하는 제도였으나, 1대 원화인 준정이 또다른 원화인 남모에게 술을 먹인 후 익사시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후로 곱상한 미소년만 고용하는 제도로 변경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신라국기에는 "귀족의 자제 중 아름다운 이를 뽑아 분을 바르고 곱게 꾸며서 이름을 화랑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 주몽 - 삼국사기에 "골격과 의표가 영특하고 호걸다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장수왕 - 몸과 얼굴이 크고 잘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2.1.2. 고려시대
- 경대승 - 빼어난 용모를 지녔다고 한다.
- 김준 -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용모가 늠름했다고 한다.
- 광종 - 고려사에 기록된 최승로의 말에 따르면 용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 금의 - 고려의 문신으로 체격이 훤칠하고 용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 기탁성 - 용모가 단아했다는 기록이 있다.
- 박순필 - 잘생기고 수염이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있다.
- 서흥후 왕전 - 고려 후기의 왕족으로 원종의 손자이다. 상당한 미남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유응규 - 얼굴이 매우 아름다워 옥인(玉人)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 이자겸 - 북송의 관리이던 서긍이 사신을 따라 고려에 왔다가 견문록인 고려도경을 남겼는데, 여기서 이자겸에 대해 풍채가 맑으며 어진 이를 반기는 온화한 성품을 지닌 자라고 평했다.
- 인종 - 고려도경에 의하면 키는 작지만 용모가 준수하다고 적혀있다.
그래서 이모들이.. - 척준경 - 용모와 골격이 범상치 않았다고 한다.
머리 빼고 다 좋다 - 최의 - 집권 이전에는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집권 이후 살이 많이 쪄서 역변했다고 한다.[2]
- 유행간 - 고려시대 인물로 목종의 동성 애인이었다. 기록에 그의 외모가 아름다워서 목종이 그를 남색 상대로 삼고 총애했다고 적혀있다.
- 유충정 - 고려시대 인물로 발해 유민 출신이다. 외모가 수려해 목종의 애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자제위 - 개인이름이 아닌 공민왕이 만든 미소년 시종집단이다. 다만 이쪽은 진위여부 논란이 있다.
- 정중부 - 비범한 외모를 가진 거구의 미남이었다고 한다.
- 태조 왕건 - 고려의 초대 왕. 용모가 훤칠하며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2.1.3. 조선시대
- 김춘택 - 신체가 타고 났고 수려한 외모를 가져 그가 대궐을 나서면 궁녀들이 난리를 피웠다고 전해진다.
- 김홍도 - 스승인 강세황은 김흥도의 외모가 눈매가 맑고 용모가 빼어나다며 칭찬하는 글을 남겼다.
- 능창대군 - 정사인 광해군일기에 외모가 훤칠하다고 언급되어 있다.
- 문종(조선) - 풍채가 크고 수염이 풍성하여 관우와 같은 풍모를 보였다고 한다. 명나라 사신들은 세자 시절의 문종을 보고, 이 나라는 산수가 기절하므로 이리 아름다운 인물이 난다는 발언을 했다고.[3]
- 이석 - 봉녕군의 서자로 실록에서 풍채가 크고 훤칠하다고 언급되어 있다.
- 이우 - 의친왕의 2남이다. 남아있는 사진을 보면 21세기의 시각으로도 잘생겼다는걸 알수있다.
- 이행원 -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이자 우의정. 실록에는 그를 가리키며 "외모가 아름답고 긴 수염을 가져 풍의(風儀)가 훤칠했으나 본디 쓸 만한 재능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내세울 만한 것이 얼굴 뿐이었다는 이야기...
- 연산군 - 조선 제10대 국왕 그 연산군 맞다. 키가 크고 가녀린 체구에 흰 피부에다 수염이 적으며 고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야사에서는 그의 외모에 반하여 흥청에 지원한 여성도 꽤 많았다고. 미청년 쪽보다는 남자다운 상을 미남이라고 칭하던 과거와는 달리 미의 기준이 변화한 지금 시점[4]으로 볼 때, 현대의 전형적인 미남상에 꽤나 부합한 외모를 소유하고 있던 듯. 부친인 성종의 외모는 키가 크고 우락부락한 체형이었기 때문에 이런 외모는 모친인 폐비 윤씨에게서 유전된 것으로 추측된다.[5] 매체에서 연산군을 묘사할 때는 막장 행각을 벌이고 폭군 같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뚱뚱하고 막돼 먹은 모습으로 담아내는 경우가 잦은데, 실제로는 정반대인 격. 결론은 외면만 양쪽의 좋은 점을 물려 받았다고 볼 수 있다.
- 영조 - 영조는 연산군과 마찬가지로 꽤 꽃미남 임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외모를 계집스러워 천하다고 여겨서 기피했다고 한다. 이런 타입의 외모를 기생오라비 외모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각광받지 못했지만 현대 기준의 알맞는 꽃미남 취급으로 각광받는다. 이런 외모는 어머니 숙빈 최씨의 영향이 큰 듯하다.[6]
- 류성룡 - 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그를 가리켜 "금옥처럼 아름다운 선비"라고 지칭한 적이 있으며, 일본과 명나라에서도 미남이라고 칭찬을 지겹게 받았다고 한다.
- 효명세자 - 순조 실록에 따르면 이마가 불룩 튀어나오고 용의 눈동자를 하고 있어 전체적인 용모가 매우 뛰어났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조와 판박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 홍국영 - 심낙수의 '은파산고(恩坡散稿)'라는 기록에도 '눈치가 빠르고 민첩했으며 얼굴 생김새가 준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한중록에는 혜경궁 홍씨가 홍국영을 가리키며 '얼굴도 어여쁘다' 라고 언급한 구절이 있으며 승정원일기에서는 눈이 나쁜 영조가 홍국영이 어떻게 생겼냐고 신하에게 물으니 승지가 그의 외모를 가리키며 매우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는 답변을 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존현각 일기에서는 풍모가 청명했다고 한다.
- 신승선 - 연산군의 장인어른이자 폐비 신씨의 부친. 실록에 기록된 바로는 젊었을때의 용모가 아름자웠기에 오직 외모 하나로 임영대군의 사위가 되었다고 한다.
- 정조 - 효명세자는 미남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용모가 정조와 판박이였다고 한다. 정조가 직접 쓴 일기인 일성록에서는 영조가 생전에 정조더러 너는 타고난 용모가 탁월하니 이는 나라의 무궁한 복과 다름없다는 칭찬을 했다고 한다
- 정약용 - 정조가 정약전의 준걸한 풍채가 정약용의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고 평가했다고 하는데, 해당 기록의 정확한 출처를 찾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다산시문집 출처라고 하는데, 문제는 다산시문집이 정약용이 저술한 책이라는 것. 어쨌든 해당 기록을 바탕으로 정약용의 외모가 아름다웠다고 평가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있다.
- 헌종(조선) - 아버지 효명세자를 쏙 빼닮고 준수한 외모에 큰 목소리가 마치 금석에 나오는 것 같다고 한다.
- 한명회 - 예종과 성종의 장인. 미디어에서 외모가 안 좋게 묘사되는 것과 달리, 조선왕조실록에서 키가 큰 미남이라고 기록된데다가 야사인 <신도비명>에서는 "얼굴이 잘나고 키가 커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대하였고 규모와 기개가 우뚝 서 무리에서 돋보였다"고 적혀 있다.
- 한확 - 성종의 외할아버지. 한명회와는 가까운 일가친척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은 그의 외모를 가리켜, '미풍의(美風儀), 준정(峻整)'이라고 표현하였는데, 번역하자면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워낙 잘생겨서 명나라 영락제가 그를 자신의 아들인 홍희제의 딸의 사위, 즉 자신의 손녀사위로 삼고자했지만 한확은 조선에 노모가 있다며 거절하였다고 한다. 역시나 빼어난 미인으로 알려졌던 그의 누이인 강혜장숙여비(康惠莊淑麗妃) 한씨, 공신태비 한씨와 딸 인수대비도 한확의 외모 유전자를 물려받아 당시 여성치고도 키가 크고 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온 집안 식구들이 외모로 유명했던 것 같다.
- 성녕대군 - 단정하고 깨끗한 용모덕에 태종과 원경왕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있다.
2.2. 일본
- 키무라 시게나리 - 당대의 미남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 시마즈 토요히사 - 사쓰마 번의 기록이나 설화들에서 미소년이었다는 기록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 이토 카시타로 - 에도 시대의 인물로 신센구미의 참모이다. 용모가 단정하고 친절하였으며 언변이 좋아 덕망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 오다 노부나가 - 미남이었다고 한다. 오다 가문이 본래 미남 미녀를 많이 배출하는 집안으로 유명하다.
- 지고와카슈 - 사람이름이 아니라 중세 일본[7]의 남첩이나 창부들을 일컫는 말이다. 임진왜란 후 통신사의 일행이었던 신유한이란 사람이 남긴 해유록이란 책에서 그들을 가리켜 어여쁜 총각, 미남자라고 언급한데다가 아리따움이 여자보다도 더 곱다고 기록했다.
-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 당시 이름난 미녀로 유명하였던 어머니 토키와 고젠의 외모를 물려받아 요시츠네 또한 미청년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히지카타 토시조 - 신센구미 부장. 당대의 기록이나 메이지 시대의 기록들에 배우처럼 잘생겼다거나 미남이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실제 사진으로도 잘생긴 편이다.
2.3. 중국
- 반악 - 서진 시대의 문학가로, 중국역사 속 가장 유명한 미남이자 미남의 대명사 중 하나. 한번 외출을 하면 그를 따라다니는 여성들이 주는 과일과 꽃을 수레에 가득 싣고 돌아온다 하여 “척과영거(擲果盈車)” 라는 말을 만들어 낸 사람. 미남의 대명사가 되어 잘생긴 남자를 표현할 때는 항상 “모사반안(貌似潘安)” 즉 “용모가 마치 반안(반악)과도 같구나.”라고 했었다.
- 하후담 - 서진시대의 문학가로 딸린 옥이란 이명을 얻을 만큼 외모가 뛰어나 반악과 함께 중국사의 대표적인 미남으로 손꼽힌다.
- 송옥 - 중국 고대 시인으로 미남의 대명사 중 하나. 굴원의 제자로 알려진 초사의 명인으로 특히 그의 작품 <구변(九辨)>은 굴원의 <이소>와 함께 이대 초사 걸작으로 칭해진다.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아름답기가 송옥과도 같구나!” 라는 '미여송옥(美如宋玉)' 의 문구를 볼 수 있을까?
- 고장공(난릉왕) - 중국 남북조시대의 북제(北齊)의 황족이며 무장. 목소리가 좋은데다가 너무나 섬세하고 마치 여인과 같은 아름다운 용모로 인하여 적이 겁을 먹지 않는다 하여 항상 무시무시한 투구를 쓰고 전쟁에 임했다고 한다.
- 미자하 - 춘추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고사성어인 여도지죄의 주인공. 기록에 따르면 위나라의 영공은 미소년들을 시중으로 데리고 다녔는데 그중 미자하가 제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공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영공이 얼마나 그를 사랑했냐면 그가 모친이 아프단 소식을 듣고 멋대로 왕의 수레를 타고 간다던가[8] 왕에게 자신이 먹다 남긴 복숭아를 주는 등 당시 상황으로선 사형을 내려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중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영공은 효자에 속정이 깊다라고 칭찬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그의 미모가 시들해지자 영공의 총애가 옅어지기 시작했고, 미자하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하며 결국 영공은 복숭아와 수레일을 꺼내 그를 쫒아냈다고 한다.
- 동현 - 중국 전한의 정치가로 자는 성경이며 전한의 13대 황제 애제의 남첩이다. 외모가 아름다워 애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애제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나면 동현과 애제가 같이 잠이 들었다가 애제가 먼저 깼는데 자신의 소매를 깔고 잠든 동현을 깨울 수 없어 칼로 자신의 옷자락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로 인해 생긴 고사성어가 옷소매를 자른다는 뜻의 단수지벽(斷袖之癖)인데 현재 남자간의 동성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사성어로 남았다.
- 위개 - 진나라의 현학자 집안의 선비. 그는 마치 보석이 주위를 감싸고 빛나는 것과 같다는 평을 들은 절세미남이었다고 한다. 외출을 하면 그의 용모를 보려고 몰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결국 그를 구경하려고 둘러싼 사람들에게 시달려 27세의 나이에 요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이 ‘간살위개(看殺衛玠)’ ‘구경하느라 위개를 죽였다.’ 란 말이 생겼다.
- 유기 - 정사 삼국지 유요전에 "자태와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 유표 - 정사 삼국지 후한서 유표전에 키가 매우 큰데다가 용모가 매우 준수했으며 온화하고 위엄있는 인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사마의 - 세설신어에 인용된 손성의 역사서 진양추에서는 "선왕(사마의)은 미남 영웅의 지략이 있었다"(宣王天姿傑邁,有英雄之略)라고 묘사했다.
- 순욱 - 아름다운 자태에 기이한 용모를 지녔다는 것이 비문에 기록되었으며, 독설가 예형조차 그를 가리켜 용모가 뛰어났다고 기록할 만큼 순욱이 잘생긴 것은 부정하지 못했다.
- 손환 - 정사 삼국지에 용모가 단정했다고 기록되 있다.
- 조예 - 세실신어에 따르면 머리가 긴 미남이었다고 하며, 정사기록인 위서에는 용모가 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명제기에는 용모가 수려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참고로 조비가 그를 보고 자긴 아빠 닮아 못생겼는데 쟤는 왜 미남이냐면서 열폭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빠인 조비와 할아버지인 조조는 미남이 아닌데 엄마인 문소황후가 엄청난 절세미인이라 기록된 걸로 보아, 엄마의 미모를 물려받은 걸로 보인다.
- 조운 - 정사 삼국지에 "외모가 씩씩하고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9]
- 제갈량 - 젊은 시절부터 신장이 8척으로 훤칠하였고, 용모가 대단히 훌륭하여 당대 사람들이 그를 특별하게 여겼다는 정사의 기록이 있다. 연의나 설화 등의 사서 외의 이야기에서도 '조각한 백옥 같은 얼굴에 신선의 자태'가 제갈량의 외모에 대한 정석적인 묘사. 친형 제갈근 역시
얼굴은 길지만풍채가 당당하게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집안 유전자가 좋았을지도.[10] - 제갈근 - 얼굴이 길어서 문제지 정사 삼국지에서 "용모가 있다", 즉 잘 생겼다고 기록했다.
- 정보 - 정사 삼국지 정보전에서 그를 가리켜 "용모가 있었다"라고 기록했다.
- 조충 - 위서 무문세왕공전 주석 위서에 따르면 '용모와 자태가 아름다워, 무리에서 남달랐기에, 특히 총애받았다.'라고 한다.
- 주유 - 정사에서 자태가 용모가 빼어나고 건장한 체격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삼국지연의에서 별명인 "주랑"이 "미주랑"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꽃미남 이미지로 퍼졌다. 그래서인지 이분의 직계 후손도 미남배우로 유명하다.
- 진평 - 진나라 말기와 한나라 초기때의 모사가이자 정치가로 사마천의 사기에 미장부,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좋아 가난한 집안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허우대만 멀쩡하다 즉 얼굴 빼곤 별 볼일 없다고 평했다고 한다. 장부는 그의 외모가 준수하단 이유 하나로 손녀를 그에게 시집보냈다.
- 주왕 - 은나라의 마지막 왕으로 하나라의 걸왕과 더불어 중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폭군이다. 기록에 따르면 잘생기고 머리 좋고 운동을 잘하는, 매우 엄청난 엄친아였다고 한다.
성격이 역대급 싸이코에 소시오 성격파탄자라 문제지.[11] - 장온 - 정사 삼국지에 용모가 매우 탁월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정이 - 정사 삼국지에 용모가 단정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장숙 - 정사인 익부기구잡기에 용모가 훌륭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최염 - 정사 삼국지에 자태에 위엄과 기품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 하안 - 하안별전에 의하면 엄청난 미남이었기에 밖에 나가면 구경하는 사람이 거리에 가득했으며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신선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여담이지만 자신도 외모를 가꾸는 것을 즐겨 늘 화장으로 떡칠을 했으며 여장을 즐겼다고 한다.
- 마등 - 정사 삼국지에 얼굴이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맹달 - 정사에 용모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관우를 배신하고 위에 항복한 이후, 오직 잘생긴 것 하나만으로 조비의 총애를 받았다.
- 손책 - 친구인 주유와 반대로, 정사에서는 용모와 얼굴이 빼어나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얼굴의 미남으로 기록되었으나 삼국지연의 이후 용맹한 스타일의 미남으로 퍼졌다.
- 석포 - 진서 석포열전에 외모가 뛰어나다고 기록되어있다.
- 원소 - 정사 삼국지 위서 원소전에서 그를 가리켜 용모와 자태가 뛰어나며 용모가 위엄있었다라고 기록했다.
근데 연의에서 대폭 너프를 당했다. - 왕훈 - 눈썹과 눈이 아름다웠고 외모가 걸출했다고 열전에 기록이 되어있다.
- 원상 - 원소의 셋째 아들로 《삼국지》 위서 원소전 주석 전론에 따르면 어리고 미모가 빼어났으며 외모덕분에 원소가 후계자로 삼았다고 기록되어있으며 《전론》 간참편에선 그가 어리고 미모가 빼어난 덕분에 원소의 처는 원상을 사랑하여 수 차례 원상의 재주를 칭찬했으며, 원소 또한 원상의 외모가 아름답고 기이하다고 여겼으므로 장차 원상으로 후사를 잇도록 마음먹었다라고 명시되어있다. 《전론》 에서 조비가 원상의 외모를 묘사하기론 아예 예쁠 완(婉)자를 써서 거의 미소녀급으로 묘사하고 있다.
- 이성환 - 신월중원기 신진협전에 기록돼있는 인물로, 당 태종이 그를 보고나서 천하미남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 이웅 - 기록에 따르면 키카 크고 용모가 준수했다고 전해진다.
- 여범 - 정사삼국지 여범전에 용모와 자태가 빼어났다고 기록되어있다.
- 관녕 - 정사 삼국지 관녕전에 용모가 매우 수려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공손찬 - 정사 삼국지에 풍채가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목소리까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서출임에도 불구하고 태수가 공손찬의 잘생긴 얼굴 하나만 보고 자기 딸을 공손찬에 시집보냈을 정도였다.
- 용양군 - 전국시대 송나라때의 인물로 위왕의 동성애인. 미남이라고 기록되었다.
- 위소왕 - 장신의 미남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송조 - 송나라때의 인물로 위 영왕의 두번째 아내인 남자의 내연남이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에 그의 외모가 아름답고 고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자도 - 춘추시대 정나라의 인물로 동양권에서 미남의 대명사로 쓰이는 인물 중 한명이다. 시경에 그의 외모를 칭찬하는 시구절[12]이 있으며 그 맹자가 "자도의 미모를 모르는 건 눈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란 말을 한 적 있다.
- 추기 - 전국시대의 인물로 초나라의 송옥과 같이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미남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당시 세기의 미남으로 유명했던 만큼 나르시시즘도 있었는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외모에 감탄하는 일이 일상이였다고 한다.
- 서군평 - 전국시대의 인물로 당시 세기의 미남이던 추기와 더불어 전국시대 최고 미남이라 평을 받는 인물이며 추기도 그를 보고 자기보다 더 잘생겼다며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가졌을 정도다.
- 손소 - 기록에 따르면 행동거지와 외모가 매우 우아했다고 한다.
- 가남풍의 애인과 그녀가 보쌈한 남자들 - 진나라 때의 인물들. 개인이 아닌데다가 이들은 정확하게 이름이 밝혀진 바가 전혀 없어 이리 표기한다. 기록에 따르면 가남풍은 잘생긴 궁인들을 자기 침소로 끌여들이는 일이 잦았다고 하며 미소년들을 보쌈해 즐긴 후 살해해 버렸다고 한다.
- 산음공주의 면수(남첩)들 - 위진남북조 시대의 인물들로 개인이 아닌데다가 이들은 정확하게 이름이 밝혀진 바가 전혀 없어 이리 표기한다. 기록에 따르면 산음공주가 황제이자 남동생인 유자업에게 "너는 일만이나 되는 궁녀를 거느리는데, 나는 남편 하나만 보고 살아야 하는 건 불공평하지 않나"며 불평을 했고, 이에 유자업이 그녀에게 30명의 미남을 남첩으로 선물했다고 한다. 참고로 면수는 유자업이 만든 말인데, 머리칼과 얼굴이 아름다운 미남이란 뜻이다.
- 저연: 위진 남북조 시대의 인물. 유초옥의 고모인 남군공주의 남편으로 이부랑. 자치통감에 따르면 외모가 아름다워서 산음공주가 황제의 힘을 빌려 그가 자신의 밤시중을 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 제갈탄 - 세설신어에서 나오길 제갈탄의 사위였던 왕광이 제갈탄의 딸에게 "장인어른은 미남인데 당신은 왜 그런 거냐."라고 디스했다.
- 하반 - 화양국지에 따르면 괄목할 만한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 하집 - 위진남북조 시대의 인물. 산음공주의 본남편으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위에 서술된 저연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미남이었다고 한다.
- 하후현 - 세설신어에서 하후현에 대해 '마치 해와 달을 품은 듯 낭랑하다(朗朗如日月之入懷)'라는 문구가 있는데 '日月入懷'가 자체발광 미남을 뜻한다.#
3. 서양
- 게르마니쿠스 - 미남에 뛰어난 능력, 좋은 성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한다. 사실 게르마니쿠스 뿐 아니라 황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비롯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에는 미남, 미녀가 많았다고 한다.
- 기 드 뤼지냥 - 능력은 부족했으나 외모는 확실히 뛰어났다고 한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의 주변인들 중 그를 좋지 않게 보는 인물들조차 외모는 잘생겼다고 말했을 정도. 다만 황제가 된 이후에는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탈모도 오는 바람에 말년에는 펭귄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 나폴레옹 2세 - 바로 위에 서술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유일한 적자.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마리 루이즈의 미모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당시에 미남 공작이라고 불렸으며, 키도 180cm의 장신이였다.
- 니콜라이 1세 이후의 러시아 제국의 대공들 대부분 - 니콜라이 1세의 친할아버지이자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의 개창자인 표트르 3세와 아버지 파벨 1세는 추남에 키도 작았지만, 어머니인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황후는 키까지 훤칠한 당대에 손꼽히는 미녀였고, 자녀들에게 키 크고 잘생긴 뷔르템베르크의 외모를 물려줬다. 때문에 파벨과 조피 도로테아의 자녀들은 로마노프 왕조의 이전 세대보다는 외모가 상향되고 키도 컸지만, 그래도 자녀는 어머니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니까(...) 어머니의 뛰어난 외모를 물려받은 자녀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의 추남 외모를 물려받은 자녀도 있어서 좀 갈렸다. 다행히도 니콜라이 1세는 어머니의 뛰어난 외모를 물려받은 전자의 케이스였다. 또한 니콜라이 1세 역시 뛰어난 미녀인 프로이센의 샤를로테[13]와 결혼하면서, 두 사람의 자녀들과 후손들부터는 진짜로 장신에 미남미녀들이 많게 된다.
- 니콜라이 1세 - 뛰어난 외모에 키도 189cm에 달하는 미남으로 당대 유럽 최고의 미남으로 꼽혔다.
- 알렉산드르 2세 - 미남미녀인 부모를 닮아서 키 186cm의 장신에 뛰어난 미남이다.
알파메일를 알려주겠다. - 니콜라이 2세 - 키는 선대 황제들보다 작은 170cm이지만 그래도 미남이였고, 자식들도 미남미녀들이다.
- 라파엘로 산치오 - 기록에 따르면 미남이라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자신도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다재다능 했을 뿐만 아니라 키도 매우 크고 외모도 목소리도 매우 빼어났다고 한다.
- 로트프 알리 칸 -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군주였다고 기록되어있다.
- 루이 9세 -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얼굴이 황홀하고 천사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또한 피부가 깨끗하고 금발에서 광채가 흘렀으며 온화한 눈빛은 우아함으로 빛났다고 한다.
- 루이 15세 - 당시 주변인들에게 유럽 최고의 미남이라는 평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 루이 마운트배튼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 189cm의 장신에 미남으로 한때 독일 대통령 제의를 받기도 하였다.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네로 황제의 후처 포파이아의 전남편으로 잘 알려진 인물. 미남에 멋쟁이였다고 한다.
- 막스 뷘셰
- 무함마드 - 그에 대한 자료에서 미남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압둘라도 당시 메카에서 제일 가던 미남이라고 한다.
- 바실리오스 1세 - 20대 초반 트라키아에 살던 시절, 몸이 좋고 잘생겼고 힘이 좋아 눈에 띄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보두앵 4세 - 외모에 영향을 주는 질병인 한센병에 걸린 군주로 잘 알려져 있기에 다소 뜻밖이지만, 그의 스승이자 십자군 시대의 역사가인 기욤 드 티레의 묘사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인 아모리 1세가 비례적으로 측정된 것처럼 보기 좋게 키가 크고 멋들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보두앵 4세는 그런 아버지의 외모와 풍채를 닮았다고 한다. 또한 그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서도 나이에 비해 잘생겼다는 표현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병의 영향이 심각해지기 전에는 미남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샤를 4세 - 미남왕 필리프 4세의 아들이자 프랑스 카페 왕조 직계의 마지막 왕. 부왕의 미모를 물려받아 미남왕이라는 별명도 함께 물려받았다.
- 샤를앙리 상송 -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의 목을 자른 사형집행인. 젊었을 때 상당한 미남인데다가 머리도 똑똑해 직업사기를 치며 여자를 꼬시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보통 그를 묘사할때는 머리카락 하나 없는 대머리에 마른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건 나이가 들고 병마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된 것이고, 한참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제2차 포에니 전쟁 전후 젊은 시절의 그는 상당히 매력적인 미남이었다고 한다.
- 아라곤의 알폰스(비셸리에 공작) -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두번째 남편. 당시 미남으로 유명했었다고 한다.
- 아우구스투스 - 당대의 꽃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안티노우스 - 미남이란 기록이 상당히 남아있다.
- 앨버트 공 - 당대 미남이었으며 너무 잘생겨서 에른스트 1세의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 루이즈가 잘생긴 유대인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헛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 미남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아내 빅토리아 여왕도 앨버트를 처음 보고 잘생겼다며, 자신의 일기장에 "푸른 눈에 아름다운 코, 하얀 치아" 등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을 정도.
- 오토 귄셰 - 키도 엄청나게 컸는데 무려 199cm에 달했다.
- 요아힘 셰프케
- 요아힘 파이퍼
- 조아킴 뮈라 - 나폴레옹의 휘하 원수이자 프랑스 제국군, 아니 당대 유럽 최강의 맹장이었는데 이런 뮈라에게 끝장나는 게 딱 두 개였다. 엄청난 미남, 엄청난 싸움실력. 심지어 총살당할때 마저도 "난 너무 잘생겼으니까 얼굴 상하게 하지 말고 심장을 쏴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실 이집트 원정 당시에도 전투 중에 턱 아랫부분에 총을 맞았다가 운좋게 흉터 하나없이 회복하자, "파리의 여인들은 안심하시오. 내 입술은 멀쩡하니까."라고 개드립을 날린 적도 있는 사람이다.
- 조지 고든 바이런
- 조지 불린 - 앤 불린의 남동생. 작은누나인 앤과 근친상간을 했단 혐의[14]로 사형당했다. 당시 외모가 잘생긴데다가 사교성도 좋아 여성들에게 인기가 엄청 났다고 한다.
- 존 바이런 - 조지 고든 바이런의 부친. 당시 미남 귀족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줄리아노 드 메디치 - 로렌초 드 메디치의 동생. 미켈란젤로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미남이라고 극찬한 바가 있다.
- 청년왕 헨리 -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차남이자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결지왕 존 왕의 친형. 어려서부터 미남으로 유명했고 키가 동생 리처드처럼 컸다고 한다.
- 체사레 보르자 - 당시 절세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하며, 여동생인 루크레치아도 세기의 미녀로 이름이 높았었다.
- 펠리페 1세 - 워낙 미남이라 '미려왕(le bel)'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 펠릭스 멘델스존 -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음악실력, 사교성을 갖춘 덕분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 프란츠 1세 - 당시 별명 자체가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피조물이었을 정도로 미모에 대한 평판이 자자했다고 한다. 다만 프란츠 1세 역시 나이가 들면서 비만이 되어 역변했다고 한다.
- 프란츠 리스트 - 매우 잘생긴 외모와 초절기교의 피아노 실력, 사교성까지 갖춰서 당대 음악계의 아이돌이었다.
- 프랑수아 프렐라티 - 프랑스 중세시대의 인물로 흑마법사이자 연금술사였으며 질드레를 악마숭배자 및 연쇄살인범과 강간범으로 만든 인물이다. 질드레의 재판기록에 그를 가리켜 미남이라고 명시했다.
- 피델 카스트로 - 젊은 시절엔 전형적인 서양 미남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 필리프 2세 -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라이벌로 유명한 그 인물. 존엄왕이라는 명칭이 유명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대단한 미남이었다.
- 필리프 4세 - 필리프 4세의 박해 때문에 해체된 성전 기사단조차 그의 미모만큼은 인정할 정도로 미남이여서 미남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필립 마운트배튼
- 하디 크루거
- 한스 악셀 폰 페르센 - 프랑스 역사서를 보면 그가 워낙 미남이라서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당시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
- 헤르만 페겔라인
[1] 기록에서 미남이었다는 서술이 있거나, 실제 외모를 입증할 수 있는 사진 자료가 존재하는 경우에 등재가 가능하다.[2] 이는 나폴레옹 1세와도 비슷한 케이스.[3] 일정 수준의 립서비스가 겸비되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문종의 외모가 출중한 편에 속하였기 때문에 저러한 칭찬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4] 정확히는 우락부락한 남자 상보다 기생오라비 타입의 외모가 더욱 더 칭송 받는 현재. 확실히 연산군의 외적인 면에 관한 서술을 보면, 남자다운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존재하며, 오히려 그와 대조되는 호리호리하고 기생오라비 타입의 곱상한 외모 축에 속하는 편이다.[5] 야사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서늘해질 만큼의 상당한 미녀였다고 한다.[6]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숙종의 후궁이 된 것을 보았을 때 미인이었을 것이다.[7] 최소 에도 시대부터 최대 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되었을 거라고 추측된다.[8] 당시 왕이 아니거나 왕의 허락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발뒤꿈치를 자르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9] 장비가 미남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사는 아니다.[10] 근데 이분의 조카는 미남이 아니라 상당히 개성 넘치는 외모였다.[11] 하지만 후대에 그가 천지신명에 충실하게 제사를 지냈고 동쪽의 인방을 평정해 오히려 상의 국세는 왕성했다고 기록된 갑골문자가 발견되어 실은 주왕이 우리가 아는 폭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재평가되고 있다.[12] 중매쟁이 말만 믿고 자신의 남편감이 자도같은 미남일 거라고 믿었던 여성이 실제로 남자를 만나자 실망한다는 내용이다.[13] 샤를로테의 어머니이자 니콜라이 1세의 장모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가 뛰어난 외모의 미녀로 유명했다.[14] 사실 정황상 누명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