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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3 10:57:29

김춘택

김춘택
金春澤
파일:김춘택.jpg
생몰 1670년(현종 11) ~ 1717년(숙종 43)
출생지 한성부(現 서울특별시)
본관 광산 김씨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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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문신으로 사계 김장생의 직계 후손.

2. 생애

숙종의 1번째 장인 김만기의 손자이자 <사씨남정기>를 지은 김만중의 종손자이며 인경왕후의 조카이다. 김만중이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의 소설을 집필하자 한글로 번역해서 궁녀들에게 배포하기도 했으며 장희재를 몰락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고 인현왕후의 복위 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면서 이러한 를 저자거리에 퍼뜨렸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이니 철이 없는 호랑나비 오락가락 하더이다.

장희빈이 중전에 있을 때에는 제주도로 유배당하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결국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데에 성공하자 그 공으로 숙종에게 벼슬을 받을 뻔했으나 장희재의 집안 사람들과 내통해서 일을 꾸민 점 등으로 인하여 공은 세웠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전면취소되고 제주도로 또다시 유배당했다. 인현왕후를 복위시킨 공훈에 대해서는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난 시점인 고종때가 되어서야 보상을 받았다.

일설에는 숙빈 최씨와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이 있다. 아마 둘이 동일한 1670년 생 동갑인 데다가 숙빈 최씨와 긴밀한 관계였던것이 그런 소문을 낸 원인으로 보이지만 김춘택이 당시 기준으로 워낙 잘생겨서 더 퍼졌다는 얘기도 있다.

경종 독살설에 비하면 그다지 흥하진 않은 썰이고, 영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소론, 남인 계열의 음모론[1] 정도에 불과하다.

3. 가족 관계

4. 대중매체


[1] 김춘택의 아들이 영조라는 음모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