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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05:49:39

목사/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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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
2.1. 타 종교에 대한 적개심2.2. 성서비평학에 대한 왜곡2.3. 목회에서의 거짓말2.4. 목회자 모임2.5. 교회 개척의 어려움2.6. 대형교회의 독점2.7. 조직적인 통제 불가능2.8. 자율 정화 능력의 부재2.9. 목사의 전횡과 치부(致富)
2.9.1. 국외
2.10. 신학과 실제 예배의 차이2.11. 목사의 공급 과잉
2.11.1. 공급 과잉의 원인
2.12. 성경 구절 악용, 왜곡2.13. 성도를 헌금 삥뜯을 소모품으로만 보는 태도2.14. 교회 세습
2.14.1. 반론
3. 해결 방안
3.1. 세금 부과
3.1.1. 개신교계의 종교인 과세 유예3.1.2. 김진표, 김동연 종교세 과세 조기 시행 방침에 우려
3.2. 중앙 집권 제도
3.2.1. 반론
3.3. 교인들의 의식 개혁
4. 외부 링크5. 관련 문서

1. 개요

[ 관련 성경 구절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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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기다란 예복을 걸치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잔칫집에 가면 제일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또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오래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마르코의 복음서 12장 38~40절(공동번역 성서)

율법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왜 율법을 범하여 하느님을 욕되게 합니까? 성서의 말씀대로 "당신들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23~24절(공동번역 성서)

보초라는 것들은 모두 앞 못 보는 소경이요, 집 지킨다는 개들은 짖지도 못하는 벙어리, 드러누워 공상이나 하다가 졸기가 일쑤구나.
먹어도 먹어도 게걸스런 저 개들, 저 무지막지한 목자들, 모두 제멋대로 놀아나, 저만 잘 되겠다고 욕심부리는구나.
"오너라, 내가 술을 내마. 모두들 취하도록 독한 놈으로 마시자! 오늘도 내일도 마시자! 술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이사야 56장 9~12절,(공동번역 성서)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목자들에게 그들을 쳐서 이르는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망하리라. 양을 돌보아야 할 몸으로 제 몸만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아!
너희가 젖이나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을 돌볼 생각은 않는구나.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우어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주어야 하며 상처입은 것은 싸매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만 못살게 굴었을 뿐이다.
양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 온갖 야수에게 잡아먹히며 뿔뿔이 흩어졌구나.
내 양떼는 산과 높은 언덕들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양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다니는 목자 하나 없다…'
에스겔 34장 2~6절,(공동번역 성서)

엉뚱한 쪽으로 새지 않은 올바른 목회자들과 개신교 신자들한테도 괜시리 개독, 예수쟁이, '교회꾼' 등의 오명과 멸칭이 붙고 있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목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목사들이 목회를 하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인간적·인격적인 도리를 말하고 가르치면서 정작 본인들은 그대로 실천하지 않고 탈선하는 것이 크나큰 문제이기 때문.[1]

편집적, 집착적인 전도를 하는 교인들을 말리기는 커녕 "그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조장하고 유혹하는 곳도 많다. 심지어 "예수쟁이란 말이 나에게는 칭찬의 의미로 들린다"는 헛소리를 하는 타락한 엉터리 목사도 있다.

2. 사례

2.1. 타 종교에 대한 적개심

많은 경우 목사들이 설교 도중 혹은 전에 다른 종교에 대하여 왜곡되거나 지어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활동 중인 목사들은 이슬람교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설교 내용에 '이슬람 교에는 구원이 없으며, 그 사람들은 무조건 지옥행' 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쓰는 경우도 많다. 이런 행동들에 당국 이슬람 교 지도자들이 항의한 경우도 있으나, 사과나 재발 방지 조치 따위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괜히 주요 이슬람 교 국가에서 인력과 예산이 남아돌아서 개신교 관련 인물을 체크하여 입국을 막거나 마크하는 게 아니다.

기복신앙 형태로 외래 종교를 개조하여 받아들이는 바람에 겉으로는 여러 종교를 다 믿는데도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한국이 종교 면에서 특이한 나라인 것이고[2] 다른 나라들(특히 미얀마, 태국)의 경우 불교 신자 마을과 이슬람 교 신자 마을이 서로 마을을 습격하여 학살하는 짓까지 버젓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저런 동네에서 저런 짓을 하고 다닌다면 양국에 있어서 하나도 도움 될 게 없다.

우스운 건 이래놓고 한국 목사들은 이슬람인이 한국에 오면 이슬람 교를 선교한다고 날뛰는 점이다. 아랍 정보통 목사인 김동문 목사의 글을 보면 튀르키예에서 이슬람 교 선교를 위하여 한국에 선교사를 보낸다 뭐다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튀르키예는 정교분리 국가이며, 무슬림도 한국처럼 선교질하다간 이슬람 광신도정치범수용소에 가둬버리는 나라다.

자세히 조사하니 드러난 사실은 튀르키예 대사관 직원 2명이 교체된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걸 계기로 한국 개신교 선교를 더 하고 튀르키예에 선교하자는 교회들의 추태와 왜곡은 계속되었다고 한탄했다.

땅밟기는 '목회자 모임'에서 소개된 것으로 개신교와 다른 교파, 종교의 대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타 종교의 지역에 들어가서 전도나 기도회 등을 하곤 한다. 대립하는 이유는 영적 전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이슬람 교 국가 등 해외 선교는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어 일반 성도들까지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국내의 타 종교 건물들에 일반 성도들이 대항 의식을 하게 함으로써, 다른 종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게 하여 내적인 분란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구상된 것이다.

2.2. 성서비평학에 대한 왜곡

더욱 한심한 것은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깊게 신학(특히 성서비평학)을 공부하는 것을 오히려 말리는 목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교사·교수 ↔ 제자'의 관계로 대입하여 생각해보자. 이게 말이 되는가? 그 이유는 당연히 자기들이 한 거짓말과 억지 논리가 논파당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목사들이 성경과 신학에 대해 잘 모른다. 가령 대한민국 개신교에서 많은 수를 차지하는 장로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해 제대로 설교하는 목사는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을 개신교 내부의 반지성주의라고 평할 수도 있다. 이런 반지성주의는 사이비 종교 신천지가 교세를 넓히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신천지의 성경 해석에 대한 강조가 교인들의 성경 공부에 대한 열망을 일정 정도 해소해주는 방식으로 자기네 교리를 주입, 기성 교회 성도들을 빼앗기 때문이다. 신천지의 이런 모습을 벤치마킹한 다른 이단들도 등장하고 있다.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서 목사 자신들이 교인들에게 비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벌이는 짓이라 할 수 있다. 신학적, 신앙적으로 흠 없을 종교인들이 몇이나 될 지 생각해보자. 인간인 이상 불완전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이 불완전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완하느냐가 핵심 아닌가. 천주교, 불교 등에서는 이를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반복한다. 이건 종교인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자 자세다.[3]

일반성도로서 신학을 정상적인 신학대학원에 진학해(Th.M 이라는 과정의 일반 성도도 수강할 수 있는 신학과정이 신학대학원에 존재한다), 목사들과 같이 수업을 듣더라도, 목사들은 그 성도를 길들이려 한다. 어떻게든 목사라는 위치에서 목사인 자신이 성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내보이려고 하는 것이 주요한 이유.

2.3. 목회에서의 거짓말

목회는 목사가 교회 생활을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칭하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정직하지 않게 목회하는 목사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목사가 다 먹사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들어봤을 대형교회의 목사들도 불륜·횡령·고인드립 따위의 부도덕한, 심지어 성범죄 등 범죄 행위를 하는 판국이니, 일부라는 말의 신빙성이 심히 의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회가 편의점보다 많은 것을 감안하면, 나쁜 목사들이 일부일 뿐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몇몇 개혁, 급진적 목사들을 빼고 나면 거의 모든 한국의 개신교는 성경을 권위로 삼고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린다. 개신교의 공통된 사항이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4년제 개신교 신학대학이나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서 목사 코스를 밟은 사람이라면 성경의 형성 과정을 배우며 십일조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운다.

한신대를 위시한 자유주의 혹은 소위 '진보적' 신학교에서는 "성경이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고침이 있었으며, 유대 신앙에 의해서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배운다. 물론 고신대, 총신대를 필두로 한 보수적 신학교들에서는 절대 아니다. 그런 목사들(진보적 신학교 출신)이 정작 설교 때는 성서무오설[4]을 주장한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5] 물론 한국 기독교에서는 매우 소수이다.

몇몇 목사들의 경우 1:1로 면담했을 때는 "성서무오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교인들의 신앙심 고취와 교회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성서무오설만큼 권위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매사 문제(심지어는 경제적 이슈나, 역사적으로 봐야 될 부분조차도) 어떻게든 철학적 고찰을 넣어서 기존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6] 그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진행하니 원본 메세지와 달리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교인이 안 모인다. 결국 교인들 스스로가 이런 설교를 더 선호한다는 것. 덧붙이자면 문제의 원인은 교인 자체보다는 대형교회 신드롬이다. 대형교회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자본주의, 특히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한 대형교회는 좋지 않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교회들은 이러한 대형교회가 되길 바란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교회 규모에 따라 목사의 생계 수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십일조 역시 매한가지이다. 종교학을 배우면서 '성직자 사례비'와 '십일조'에 관한 점들을 배운다. 십일조는 이미 2000년 전에 폐지되었다는 것과 이미 성경에서도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유대인들에게 속했던 모든 절기법과 사회법과 종교법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되었다'고 한 것 역시 배운다.[7]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 특성상 십일조가 헌금(교회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8] 헌금 없이는 교회 운영이 불가능하기에, 배운 것과 다르게[9] "십일조야말로 복의 통로, 교인의 지표"라고 하면서 강권한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대부분의 교회 활동에서 밀려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예수교는 구약의 율법까지만 믿는 유대교가 아닌데, 어째서인지 돈 걷을 때는 유대교가 된다. 그리고 이걸 정당화하기 위해선 다시 기독교 모드로 돌아가서 가난한 과부 이야기의 후반부만 잘라내어 왜곡한다. 해당 부분 바로 직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가르치셨다. "율법학자들을 주의하여라.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시장에서 인사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 자리의 특석을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가로채고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은 더욱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0]
마르코의 복음서 12장 38~40절(공동번역성서)
가난한 교인들 중에는 주보에 게시되는 십일조 납부자 명단을 보고 쪽팔린 나머지 교회를 멀리하기도 한다. 십일조를 많이 해야만 참 교인으로 대접받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십일조라도 안 걷으면 빈털터리가 되니까. 그런데 초대 교회의 사도 바울은 정작 이런 행태를 고린도전서에서 비판했다.[11]

일단 대부분의 교회법과 교단 내 규칙의 경우, 정확하게는 십일조를 포함한 교회 헌금의 사용처를 분명하게 목회자들의 사례비와 사빈세[12], 선교비[13], 기타 재정[14]으로 확실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15] 그러나 정작 현실은 사빈세 개념은 희박한 편이고, 목회자들의 사례금도 교회법에 따라 지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교회가 상시 재정공개를 한다면 또 모를까.[16]

간단하게 얘기하면, 세속화/사유화/권력화된 한국의 개신교는 성경의 말을 돈이 되는 것, 교인을 모을 수 있는 것만 강조하여 앞뒤 맥락 다 잘라먹고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그 외의 것은 생략하거나 왜곡하거나 안 가르치는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설교(예배)에서도 실로 수많은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예화 돌려쓰기이다. 물론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 같은 내용을 말할 수도 있지만, 예배용 CD와 원고를 돈을 주고 사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속칭 '인스턴트 설교' 및 '캔 설교'라 불리울 정도로 심각한 몇몇 예배 프로그램들의 경우, 회원가입 시 전화 통화를 통해서 무슨 교회의 어느 목사인지를 확인한 후 회원 등록이 되며, 이 회원 아이디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건 목사도 사람인지라 개체 차가 있기 마련인데 말빨이 약한 목사들이 주로 활용하며 말빨이 뛰어난 목사들은 자신의 그 실력을 십분 활용하여 말빨로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아 잘 안 쓴다.

요즘 신학교에서 연설법과 화술, 강연법 등을 주로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부흥회 강사 몇 번만 만나보면 예화 돌려쓰기는 정말 바로 티난다. 거기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이럴 바에야 차라리 성경 강해설교, 그러니까 바이블 한 장을 연속해서 쭉 읽고(너무 길면 발췌해서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해서 방금 읽은 텍스트에는 이러이러한 배경이 있고, 바이블 기록자가 이러이러한 뜻에서 쓴 것이며,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어떠어떠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형태의 설교를 하는 것이 훨씬 나을 지도 모른다.[17]

그 외에도 성도 내에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올바른 내용을 알려줘도 이를 받아들여 정정하기는 커녕, 그 주제에 대해 침묵하거나,[18] 혹은 그 성도를 박해해 교회에서 밀려나게 만들어버린다.

심지어는 신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따러 온 이들 중에서도 일반 성도 출신 성도들이 반박을 해도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자신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부지기수.(일단 들어보고 말해라라는 식이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어떤 경우에는 교차검증마저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신학대학원에 와서 "교차검증이 의미가 있냐?"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 논문 어떻게 쓰려고

2.4. 목회자 모임

목사들끼리 주기적으로 모여서 단합대회를 하는 '목회자 모임'이라는 게 있다. 이는 목사들의 모임인데, 목사들과 그 부인들이 출석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서 별별 더러운 이야기가 다 나온다. 이하는 그 일부. 그리고 대형교회 목회자 모임에서 목사들은 도원결의를 한다. 왜냐 하면 자신의 교회를 세습하기 위해서 목사들끼리 의형제를 맺는데, 대놓고 세습을 하면 교인들이 크게 반발하기 때문에 서로 자기 아들을 자신과 도원결의를 한 상대방 목사네 교회에 부목사로 넣어둔 뒤 그쪽 교회를 세습하는 방식이다. 이를 교차세습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유비 목사에게는 아들 유선이 있고, 관우 목사에게는 아들 관평이 있으며, 장비 목사에게는 아들 장포가 있다. 유비 목사, 관우 목사와 장비 목사는 셋이서 목회자 모임에서 만나 의형제를 맺어둔다. 이후 각자의 아들을 목사로 만든 뒤, 유비 목사의 아들 유선 목사는 관우가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부목사를 하고, 관우 목사의 아들 관평 목사는 장비가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부목사를 하며, 장비 목사의 아들 장포 목사는 유비가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부목사를 하고 있다가, 자신들이 부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교회를 물려받아 각자 담임 목사로 취임한다(…).

실제로도 목사들 간의 인맥을 파악해보면 의외로 의형제를 맺은 목사들이 많은데, 의형제를 맺은 이유가 바로 교차세습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른바 도원결의라는, 목사들 간 의형제를 맺는 일은 이 목회자 모임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신들이 서로 의형제라는 사실 및 부자(父子)관계의 경우 교인들에게는 비밀로 한다. 의형제 관계 및 부자관계에 대해 교인들이 알면, 교차세습을 한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2.5. 교회 개척의 어려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진로는 보통 3가지로 나누어진다. 기성 교회에 청빙되어 담임 목사직을 행하는 경우와, 자기가 교회를 새로 세우는 개척이라는 경우. 그리고 기성 교회에 부목사로 들어가는 경우.

부목사로 들어가서 이후 담임 목사로 승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과반수가 해당 교회 담임 목사의 자녀나 지인 등 이미 암묵적으로 정해진 교역자가 부목사로 있다가 올라가는 경우이다. 정말 잘못된 한국 개신교회의 병폐지만[23], 현실적으로 현재 담임 목사의 자녀나 지인이 아니면서 큰 교회의 부목사로 있는 경우에는 몇 년 후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자리를 옮겨야 되기 때문에, 결국 최종 목표는 청빙 또는 개척이다. 부목사라는 자리를 큰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봉직하면서 맘에 맞으면 10-20년 이상 그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처럼 생각하기는 무리가 있는데, 대체로 부목사가 한 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년이다. 그 이상 가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닌데 흔치 않다.

그런데 기성 교회에서 외부의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경우는 역사와 규모가 대단히 오래되고 크거나 전임 목사가 퇴임[24], 축출[25], 소천하는 경우, 그리고 산간 오지의 시골 교회가 아닌 한 공석이 잘 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수가 너무 적다 보니 매년 쏟아져 나오는 목사들의 숫자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럼 남은 길은 개척이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사들의 꿈은 개척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파하고 자신에게 내려진 사명을 다하는 것이 정석과 같겠지만, 때론 벤처기업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 같은 불손한 사상을 가지고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교회키우기 for kakao 사실 대부분의 개척교회 목사들은 교회를 개척할 때 순수한 의도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자신이 봉직한 교회가 부패했다고 생각이 들거나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을 때, 몸 담고 있던 교회를 나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한다. 하지만 교회가 부흥하고 자신에게 굴러 들어오는 헌금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서서히 타락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다. 즉, 초심을 잃는다는 것.

이 경우에도 신학교 졸업 후 즉시 개척에 뛰어드는 경우와 월급 목사로 몇 년을 지내 사재를 모아서 개척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전자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에 가까운지라 보기 어렵다. 물론 개신교가 한창 부흥하던 7~80년대는 목사의 수가 부족했고 개신교의 교세가 한창 커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런 케이스가 충분히 가능했지만[26] 교계가 레드오션에 접어든 21세기에 들어서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27] 한편 후술하겠지만 "목회자로서의 소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교회를 개척해야 하냐"면서 기성 교회에 월급목사로 남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가장 땡 잡는 경우는 월급목사로 재직 중이다가 자기가 월급 받는 그 교회를 물려받아 담임목사가 되는 경우인데, 이건 아버지나 지인이 그 교회의 담임목사인 경우 말고는 별로 없으며, 그것도 교회 내부에서 갈등이 굉장히 심해진다. 큰목사 칠무해 중 명성교회김삼환 목사가 아들을 지교회 담임목사로 내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여서 교회를 물려주려고 시도했는데 이게 딱 그런 사례이다.

후자의 경우는 목회를 할 때 미리 자기가 개척할 것을 생각하고 주변의 관계를 잘 만들어놓고 후원자도 만들어놓으면 좋으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월급목사로서 일하다 교회 내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개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철판 깔고 전 교회 교인들을 확 빼와서 개척교회를 만들어내는 목사들도 있고. 물론 교회를 개척한다며 전 교회의 교인들과 연락을 하는 것은, 원 소속 교회에서 도의에 어긋난다고 욕 먹기 쉽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게 있어서 매우 욕을 먹는다.

보통 초기 자본금을 대출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서 시작한다. 교회로 쓰일 건물부터 구하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시작부터 큰 짐이 된다. 현재 개신교인들이 감소하는 추세에 비해 교회는 난립하고 있고, 목사 배출 수는 계속 늘어만 간다. 이런 상황인데 개척을 하는 것 자체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재정을 주변의 후원금이나 대출금으로 시작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것이 교회다. 서울 시내에 '교회'로 지도 검색을 해보면 징그럽게 많이 난립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극단적인 경우가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데, 같은 건물에 교회 2개가 있고, 그 바로 길 건너에 교회가 또 있으며, 밑으로 내려가면 사거리에 교회가 또 있는 등, 반경 10m 이내에 교회가 6개나 있는 대단한 밀도를 보여준다. 그 외 서울 가산동 인근의 광명시 철산4동 도덕파크 입구쪽 상가들 상황도 마찬가지로, 예장합동 소속 중견교회 예배당 옆옆 상가건물에 예장백석 소속 상가교회, 구원파의 일파인 대한예수침례교 소속 상가교회[28]가 있고, 아랫쪽 상가 건물들에 인접 감리회 소속 상가교회, 독립교회였다가 예장합동에 가입한 소형교회까지 개신교의 교단만 다른 4개 교회가 인접해서 서로 레드오션인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대개 개척교회는 교세가 엄청 작다 못해 교인이 10명 안팎인 곳도 비일비재하다. 엄청나게 적으면 4~5명끼리도 예배를 드린다.

거기에다 대형교회의 화려한 건물과 다양하고 훌륭한 프로그램들에 밀릴 수밖에 없고[29], 이러다 보니 기껏 모아둔 교인들도 교인 수평이동이라는 현상에 쓸려나가 버리기 일쑤이다. 1달에 1명씩 새 교인이 들어오는데 누적 교인의 수는 10~15명을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 하며 몇 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즉, 교인이 들어오긴 하는데 쌓이질 않는 것. 그리고 이런 교회의 목사들은 분명 전도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이 교인 수평이동으로 인하여 아무리 전도를 해봤자 결국 교인들을 돌려막기하는 꼴에 불과해서 교세가 절대로 확장되지 않는다. 이러면서 몇 년을 보낼 경우, 초기 후원금은 끊어지고 대출 이자는 쌓여가는 악 순환이 계속된다. 결국은 근성으로 끝까지 버티는 경우와, 결국 교회를 매각하고 목회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마지막으로 성장주의, 기복주의 설교로 사람들을 모으고 이 모은 교인들을 모아서 모두 대출해 교회 건물을 건축하고 올인러시하는 것도 또 하나의 선택지이다. 이런 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일부 교회들은 맞벌이 시대인 점을 이용해서 교회에 카페, 어린이집유치원, 지역아동센터, 작은도서관 등을 설치해서 이걸 운영해서 교회 운영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집사권사가 와서 일해주기도 하니 급여로 나가는 지출이 없거나 저렴한 것은 또 하나의 강점이다. 이 경우 교회 담임목사 = 원장이 되는데, 이때문에 목사나 사모가 사회복지사나 아동보육교사 등 자격증을 가진 경우도 제법 있다.

이에 반하여 개혁적 성향을 가진 목사들은 아예 '개척'이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소위 예배당 없는 교회라든가 하나의 예배당을 여러 교회가 돌려 쓰는 식으로 개신교 미션스쿨강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교회도 존재한다. 즉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곧 예수의 가르침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은 보통 사회적으로 직업을 따로 가지고 목사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 보통 사회복지와 관련된 직업을 겸직하는 편이 많다. 아무래도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예수의 가르침으로 이끌어야 하는 특성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회복지 직종을 겸직하는 목사들은 보통 국내에서 지역아동센터를 경영하는 시설장[30]이나 사회복지사로 겸직하고, 선교사 자격으로 해외로 파송될때는 현지 NGO의 직원을 겸직한다. 즉 호구지책으로 교회를 운영하지 않는 것이다. 이쪽은 직업이 따로 있는 만큼 철저히 무보수이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를 경영하는 경우나 NGO에 종사하는 경우 평균 보수보다 많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교회 재정에서 목사 사례비를 받는 경우도 존재한다.

결국 일할 교회가 없어서 신학대학원 졸업 후에 무임 목사가 되어 목사를 그만두는[31] 사람도 많다. 이 경우 딱히 신학이라는 전공을 내세워 할 만한 일이 없다 보니 목사를 그만두고 보험설계사, 택시기사, 운송업 등을 주로 한다고 한다.[32] 오죽하면 많은 목회자들의 자조성 드립, 특히 대학 선교단체 간사들이 이런 드립을 많이 한다. 간사가 되면 테크트리가, 간사→목사/간사[33]→종신간사/간사/목사/선교사[34]→보험/택시/치킨집 이렇게 테크트리가 나뉜다.

개신교 미션스쿨 교목으로 빠지는 목사는 정말로 행운아인 셈인데, 목사라는 직업 이외에 교사라는 철밥통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교목이 교사 신분인 것은 아니며, 미션스쿨과 연결된 교회의 교육목사나 전도사 등의 신분을 갖고 학교로 파견 형식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월급도 학교가 아닌 교회에서 받는다. 교목(일반 교과 교사자격증 소지)과 전도사(교사자격증 미소지)를 두었던 학교가 있었는데, 교목은 그 학교 교사 신분을 갖고, 전도사는 교회의 파견 형식으로 근무했고, 교목은 이후 부전공 연수를 받아 종교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교목이 정년퇴임하자 그 후임을 목사가 아닌 일반 교사로 뽑았으며, 전도사는 목사 안수를 받고 교목으로 승격했는데 여전히 파견 형식으로 근무 중이다가 개인 사정으로 교회를 옮기게 되어 자연스럽게 학교도 떠나게 되고 교회는 학교에 새 교목을 파견했다. 또한 박사학위 소지자에 한해서 대학단위로 넘어갈 경우에는 겸임교수나 강사 자리를 얻을 수도 있으며, 간혹 신학의 특정 부분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해서 신학과, 신대원, 교양학부 교수로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는 자리가 워낙 없기 때문에 미션스쿨 교목보다도 더 보기 어렵다.

목사(교역자)가 교회를 개척할때 평균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속적인 부분을 고려한다.[35]

2.6. 대형교회의 독점

목사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해서 신자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어서, 대형교회가 하나 생기면 주변 중소 교회 수십 곳은 순식간에 가난해진다. 심하면 대형교회 하나가 생겨버리면 이전에 있던 몇 개의 작은 교회들이 죄다 사라져 버린다. 마치 대형마트가 하나 들어서면 주변 재래시장구멍가게들이 한 순간에 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인들은 큰 교회로 몰리는 경향이 강하기에 이런 성향은 심해진다.

목사들의 평균적인 퀄리티가 저하된 것도 이 경향을 부추긴다. 개신교는 신자들이 교회를 고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자. 멀리서 이사 온 개신교 신자 A가 교회를 다니기는 해야겠는데, 우리 집 앞에 있는 작은 교회가 정신줄 놓은 이상한 목사가 시무하고 있거나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나 만민중앙교회를 비롯한 이단에게 먹힌 교회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아나? 그리고 그런 교회 한 두 번 나갔다가 나중에 안 나가면, 동네에서 얼굴 마주칠 때 피곤해진다. 작은 교회의 입장에서는 성도 수가 워낙에 적기 때문에 성도 한 명이 절실해진다.

대형교회에도 문제가 많은데 왜 작은 교회의 이상한 목사를 걱정하냐고 생각이 든다면, "대기업의 비리와 부패는 언론에 보도라도 잘 되지, 중소기업 썩은 건 잘 드러나지도 않아서 더 심하다"고 하는 세간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교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평신도 입장에선 여러 모로 대형교회가 검증되고 안전한 선택인 것.

체계화된 유치부/초·중·고등부/청년부 예배 및 활동, 교인들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교육 및 편의 등은 덤.[39]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경우 교인 수만 따지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다. 교인 수만 80만 명. 2013년 들어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사랑의교회라는 우리나라에서 규모 면에서 최대의 교회 건물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것은 건물 자체만 봤을 때의 얘기. 대지 면적이나 본당 좌석수만 보면 연세중앙교회가 더 크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교인 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훨씬 많다. 그리고 이 교회들과 금란교회 등, 담임 목사가 어지간한 작은 왕국국왕급 권세를 누리는 교회들이 몇 개 있다.

2.7. 조직적인 통제 불가능

앞서 설명한 우리나라 개신교의 기복의식+목사제일주의과 함께 한국의 개신교의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원인이다. 즉, 중앙이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각자 할거하다 보니 통제와 제재, 체계적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앙이 생길 수도 없는 것이, 애초에 개신교 자체가 기존 종교의 중앙 정치의 부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설사 개신교에 완전히 통제가능한 중앙이 생겨난다고 해도, 이 세상의 개혁이 존재하는 이상 또 다른 개신교(중앙의 부패에서 벗어나려는)가 생길 것이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몰리고 헌금이 많이 걷히는 대형교회는 태생적으로 화근을 안고 있는 셈이다. 자식에게 교회 세습까지 넘어가면 그 극한에 이른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개교회주의가 보여주는 문제점 가운데 정점을 찍는 폐해이다. 교회 세습으로 난리 난 예는 미국 수정교회, 서울 명성교회 등이 있다. 심지어 숭의교회처럼 3대 세습까지 하는 교회도 있다.

종교적 문제와 무관한 분쟁도 자주 벌어진다. 교회나 교파 간의 주도권 다툼이나 교인의 소유권 다툼, 교회 내의 권력 다툼과 같은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특별한 논박이나 설명도 없이 그냥 덮어놓고, 상대를 이단이라 매도하는 경우 역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이단관리 위원회에 뇌물을 먹여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가다 고발된 사례 역시 있다. 심지어는 한 교회 내의 목사들끼리도 상호비방 폭로전이나 이전투구가 벌어지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는 단 한 명의 교황교구의 통제 하에 전세계의 모든 가톨릭 교회가 중앙집권을 통한 조직적인 통제가 가능하며, 동방 정교회성공회, 오리엔트 정교회는 느슨한 연방제 구조이지만, 개신교는 구조상 중앙집권이 불가능하며, 교회마다 교리가 전부 다르고 교회마다 숭배방식,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입지 등이 전부 다르다.[40] 이렇게 중앙집권이 불가능한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자칫하면 이단 종파나 사이비 종교가 생길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목사가 흑화되면 바로 사이비 종교 교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건이 터지면서, "개신교에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문제점이 더욱 드러났다. 물론 이것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적 특징이라 개교회와 노회에 맡겨야 할 문제의 차이점이다. 가톨릭의 경우 교황청 및 나라마다 주교회의[41]라는 컨트롤타워가 있어 '가정에서 기도 및 선행으로 의무 축일 미사를 대신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전국의 모든 성당이 문을 닫아 가톨릭 신자들 사이로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대폭 줄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코로나-19를 대비해 1,600년 이래 최초로 모든 법회를 중지하고, 코로나-19 감염자가 많은 지역의 은 아예 폐쇄 지시했다. 하지만 개신교는 전국의 교회에 지시를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없다.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있는 신천지 신도들이 자꾸 교회로 들어오려 하는데도 자율적으로 예배 집회를 강행하는 곳이 여럿 존재한다. 사태가 크게 발생한 대경권경산중앙교회나 범어교회 등의 경우, 대구에 확진자 발생과 동시에 개신교 교회 중에서는 전국 최초로 감염자가 없음에도 교회 건물을 폐쇄하였고 유튜브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예배 집회를 하는 수도권 대형교회의 수는 2. 27일 기준 15곳 중 10곳이다. # 이 정도면 신천지에게 "우리를 감염시켜 줍쇼" 하는 꼴이다. 실제로 몇몇 건물을 폐쇄한 교회들의 경우도 이런 문제를 예상해서이다. 물론 기존의 등록교인으로 정해진 사람만 들어오게 하고 마스크를 쓰게 하는 등의 대처를 시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아무래도 여러 명의 신자들이 모였기에 비대면 예배만큼의 방역 효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2.8. 자율 정화 능력의 부재

이미 사고를 친 목사가 아무렇지 않게 계속 목사로서 직분을 유지하고 또 다시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옆 교단에서 쫓겨난 목사에 대한 그 어떠한 검증 없이, 단지 자격만 되면 교단의 목사로 가입시켜주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2011년 8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김베드로 목사 사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미 오래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모 교단에서 면직되었다. 정확한 사유는 불명이지만, 당시 그가 목회하던 예배당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예배당 장로의 말이 전해진다. 하지만 '정통'을 부르짖으면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장로교단은 굉장히 많았으며[42], 각 교단들은 서로를 통제할 어떠한 협의체조차 없었다.

김 베드로 목사는 단지 자격 요건을 갖췄다는 이유로 그 어떠한 심사도 거치지 않고 다시 기성교단 목사로 변신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히려 방송국 측에 자신들의 교단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방송국 측은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사회자 김상중은 이렇게 난립한 교단과 그에 따른 목사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그 구조적인 문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청년 여성 교인을 상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성범죄를 저지른 전병욱 목사는 2010년 11월 교회의 여성 교인에 대한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 삼일교회 담임목사직의 사의를 표명했고, 12월에 사표가 수리되었다. 그런데 사임하면서도 13억이라는 거액의 전별금을 받아가 다시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43] 그 뒤 삼일교회는 강남교회의 송태근 담임목사를 새 담임목사로 청빙하면서 마무리가 되나 싶었으나…전병욱 목사가 1년도 지나지 않아 '홍대 새교회'를 차리면서 현재까지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후 2014년 예장합동 평양노회에서 면직 재판이 열렸지만, 제대로 된 처벌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형사적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지금도 목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사건은 명백한 형사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목사들의 카르텔 형성을 위해 자정의 기회를 스스로 무너뜨린 사건이다.

물론 가톨릭에도 이렇게 걸러냈는데도 국내 외에서 사고 치는 신부들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앞서 수없이 언급된 개신교의 느슨한 통제에 비하면 교계 제도를 지닌 가톨릭의 처벌은 그야말로 추상 같다. 일단 면직은 기본이요, 교회법에 명시된 '위급 상황'이 아닌 한 성직자로서의 모든 신분과 권한이 반드시 박탈당한다. 처벌 또한 세속의 법정에서 받는 처벌은 물론 교회법에 명시된 처벌까지 모두 받는다. 문제를 일으킨 사제가 죄값을 치르기 전에 사목 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구원방주'처럼 교황청의 처분에도 굴하지 않는 신자들이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파문 등 강력한 행정적 제재는 물론 교회 차원에서 이들은 가톨릭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강조하며,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목 대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아 기존 조직과 확실하게 격리시킨다. 이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천주교회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들을 정교회보편교회를 추구하는 다른 교회 공동체에도 통지하여 그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조치한다.[44]

2.9. 목사의 전횡과 치부(致富)

서울시 마포구 H교회에서는 H목사가 은퇴 퇴직금과 예우금으로 약 18억 원을 받았다. 문제는 이 교회의 1년 예산이 14억 원이었다는 것. 1년 예산을 모조리 은퇴하는 목사에게 가져다 바친 셈. H 목사는 재임 기간 중에도 두 자녀의 미국 유학 자금을 포함한 교육비 전체를 교회 헌금에서 사용했고, 차량 유지비, 아파트 관리비, 심지어는 목사 부부의 해외 여행 경비까지 교회 헌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에 노회장을 겸직하여 대외 활동비마저 따로 받았다.[45]

게다가 월급이나 생활보장 외에도 교회 연간 예산의 몇 % 이상이 목사에게 유용금으로 배분하기도 한다.

교회가 어느 정도 잘 자리잡고, 건물도 하나쯤 올릴 때가 될 크기가 되면, 목사가 부목사들을 전담 비서로 부리면서 전용실에서 회장처럼 행동하는 걸 보게 된다. 그리고 상명하복 같은 기업식 서열 문화가 자리잡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J교회는 J담임목사가 직접 자금을 집행해서 자신의 월급(사례비)을 월 1,700만 원(기본급), 특별 집회시에는 자기 교회에서 자기가 집회를 인도하고 1,000만 원의 강사료를 받고 설교시마다 100만 원의 설교비를 받아왔다. 활동비, 판공비, 도서비 등은 모두 제외했는데 이 정도다. 심지어 이 교회는 교회 명의로 빚이 260억에 달한다.[46]

이런 목사들을 먹사[47]라고 칭한다. 평일에 골프장에 가면 목사들끼리 라운딩하는 것도 심심찮게 보인다.[48]

그야말로 교회는 망하더라도 목사는 돈방석에 앉는 것이다. 물론 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도 교회의 수익 구조에 대한 투명도는 참 어려운 과제다. 괜히 2018년에 교단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헌금으로 유지되는 구조인 만큼, 교인들에게 돈을 빌리더라도 이것을 봉사로 여기고 갚지 않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상대가 그 누구일지라도 당연한 말이지만 가족은 물론 목사한테도 절대 돈을 빌려주어서도, 보증을 서주어도 안 된다.

목사의 개인적인 치부에 대한 방지책으로, 극단적인 개교회주의를 지양하고, 주교제까지는 아니어도 교파 내에서 어느 정도 통일된 재정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실제로 주교제를 택하고 있는 성공회나 성직자 간 위계가 확실한 루터교, 구세군에서는 이런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다만 성직을 인정하는 성공회는 목사가 없다.

이 부분은 교회마다 차이가 심해서, 거꾸로 장로들이 실권을 쥐고 목사를 조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9.1. 국외

다른 나라에서도 이러한 개신교 목사들의 치부와 사치를 누리는 것에 대해 혐오감과 반감을 가지고 있다.

결국 미국에서도 개신교 목사들의 풀소유를 지적하며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값비싼 명품들을 사모으며 명품을 휘감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논리와 변명을 들이대더라도 종교인으로서는 도를 넘은 것"이라는 반응이 태반이다.[49]

미국에서도 목사들의 풀소유, 사치 행각을 폭로하는 SNS 계정은 처음 400명 정도이던 팔로워는 1달 만에 1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는 22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 이에 WP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등장하는 여러 목회자와 접촉해 입장을 물었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2.10. 신학과 실제 예배의 차이

이미 예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기복주의적 신앙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들 신학에서 배운 것과 실제 교회 생활은 차이점이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는 실제적인 차이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하여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교육과 목회자 세미나에서 분명히 배척되는 기복주의적 신앙이 실제 목사들의 설교에서 항상 들어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잘 통하는 메뉴이고, 이는 교회 확장과 목회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묵인되기 때문이다.

신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일부 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찾아가 질문들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정치적인 설교나 목사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간 경우 이게 옳은가 묻기도 하나, 대개 즉답을 피하고 빙빙 돌리기만 한다. 창조론에 대한 회의로 과학적 견해가 옳다고 하면 귀를 막고 "그걸 누가 만들었냐"만 무한반복이다. 그리고 온 우주의 생성 역시 과학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며, 우쭐하고 거만하게 믿음이 부족하다고 성도를 조롱하기도 한다. 이런 성도 중엔 아예 기독교는 궤변 뿐이라고 생각해 발을 끊기도 하지만, 최악의 경우 궁금증을 품은 채로 사이비 종교로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선 전혀 반성 없이 "오직 믿어라!! 의심하지 마라!!"만 외치는 게 현실이다.

2.11. 목사의 공급 과잉


영상 촬영이 이루어진 주 장소는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과 바로 옆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 금하마을 일대다. 즉, 행정구역만 다르지 사실상 한 동네. 또한 51초쯤에 교회 수와 비교하기 위해 나온 슈퍼, 편의점의 위치가 실제로는 대부분 잘못되어 있다.


큰 문제의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있는 점은, 목사 적체 현상이다.

목사의 '수요'는 이미 예전에 가득 찼다. 그러나 장로교 교단의 계속되는 분열 및 각 교파/교단마다 많은 목사를 배출할수록 교인이 늘어나니, 서로 닥치고 신학교를 만들고 목사와 전도사를 뽑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다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저출산 문제로 전체 국민 수의 감소에 따라 선교와 별개로 교인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실제로 예장합동의 신학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매년 4~500명 정도의 전도사 및 목사 안수자가 쏟아져 나온다.[50] 예장통합 측인 장로회신학대학교도 비슷한 수준이고, 감리회감리교신학대학교도 통상 300명 정도 된다. 정규 4년제 개신교 신학대학 중에서도 메이저급 3곳만 합쳐도 1,000명이 넘어가는 수준이니 남은 정규 4년제 신학대학은 그 몇 배가 되며, 비인가 신학교 및 군소 신학교까지 생각하면 매년 수천 명 단위의 목사/전도사가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더군다나 정규 4년제 신학대학이지만 입결은 대학교 일반학과에 비하면 턱없이 낮아서[51] 학생들의 낮은 수학 능력으로 수업에 지장이 갈 정도가 부지기수이다 보니, 질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 정규 신학대학도 이 모양인데, 비인가 신학교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 이 목사 과잉 공급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냐 하면 대한민국 목사 숫자 총합이 대한민국 국군 현역 및 예비역 장교 숫자 총합보다 많다. 그러니까 장교가 병보다 병역 의무 기간이 길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소대장은 거의 무조건 장교로 배치해서 병역 의무 이행자 60~70명당 장교 1명씩 나오는 나라의 장교 숫자보다 목사 숫자가 더 많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심지어 몇몇 지방의 마이너 신학대학들은 정규 신학대학인데도 불구하고 지원자 및 충원률 저조로 교수들이 주변의 고등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제발 우리 대학에 학생을 좀 보내 달라"고 구걸 수준의 영업을 뛰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개신교 미션스쿨 남자고등학교가 주된 영업 대상으로, 대학 진학률 실적을 만들기 위해 진학부장이나 교목이 앞장서서 최하위권 학생들을 지방의 마이너 신학대학으로 밀어넣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한 것이니까. 특히 신학대학과 같은 재단에 남고가 있는 경우는 그러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그리고 신대원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지방의 마이너 신대원들은 대학원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학생들의 수학 능력이 저조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또한 상황이 열악한 미인가 신학교가 나름 유명세를 올리겠다고 이근안, 서세원 같은 인물들의 입학을 허가하고 목사 안수까지 주었다가 제 버릇을 남 못준 이 인물들이 다시 사고를 치는 바람에 신학교와 교단이 망신을 사는 최악의 결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가톨릭과 무척 대비되는 점이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8월 17일에 사제품을 받았는데 7,000번째 한국인 사제의 서품이 2024년의 일이었다. 2024년 3월 1일에 갱신된 한국천주교회 사제인명록 기준 그날까지 사제품을 받은 한국인 사제의 수는 현직자, 사망자, 선교회나 수도회를 옮긴 이적자, 사제직을 떠난 환속자 모두 포함해서 7,019명이다. 엄청난 숫자가 결코 아닌 게 약 178년 반 동안 7,019명이다.[52] 안 그래도 가톨릭 신학교는 그 수가 적었으나 지속되는 학령인구 감소로 신학대 입결이 낮아지고 학생들의 수학 능력이 떨어지자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53]이 2019년부터 폐지를 결정했을 정도이기도 하다.[54]

또한 주교제를 취하고 있는 성공회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서품되는 사제가 10명을 넘는 해가 없다. 대한성공회는 교단 규모에 비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사회사업을 많이 운영하고 있으며,[55] 일본 성공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제를 파송해줄 것을 요청받는 상황인데도, 거의 매년 1자리 수의 사제만을 서품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주교제 교단들이 개교회주의가 강한 교단들에 비해 사제 수를 엄격히 조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2020년대 들어 개신교 중에서도 중앙집권성향을 띄는 감리회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따로 운영하던 신학대학원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교회의 경우 목사·부목사·보조목사 할 것 없이 인원이 다 차서 더 이상 받기도 힘든 실정이다. 예를 들어 200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부산광역시개신교 교직자는 약 4천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연간 소위 임관자의 숫자와 비슷할 정도이다.[56]

국내 개신교는 교단 각각의 세분화된 통계만을 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전체 목사의 정확한 수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적어도 1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6만 개가 안 되니 상당수 목사는 니트가 되는 게 현실이다. 대형교회의 월급쟁이 (부)목사로 입에 풀칠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도권 시가지에 단독 교회 건물[57]을 보유한 담임 목사는, 신규 목사로서는 언감생심급의 로망이 되어버렸다.

현재 국내 의사 수가 12만 명 가까이 되니[58], 목사와 의사의 수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목사나 의사나 대학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국가에서 인정하는 시험에 통과해 자격을 인정받은 후, 사람들이 밀집된 거주지를 중심으로 개척/개업을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현재 국내 상황에서 두 직업 간의 수요는 비교가 안 된다. 의사에게 개업은 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이 중소도시만 해도 수십 명의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들이 몇 개씩 있다. 또한 의사가 하는 일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필수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공공의료나 예방사업 같은 정부의 복지 분야에도 많은 일자리가 있다.[59] 진료와 예방 분야 외에도, 교육이나 연구 분야에 다양한 길이 있다.

그에 비해 목사는 인구의 1/5 정도만이 개신교인인 상황에서, 개척이냐 부목사냐 외에 딱히 별다른 길이 없다. 의사는 어느 사람에게든 필요한 직업이지만, 목사는 가톨릭이나 불교 등 타 종교 신자나 무종교인에게는 굳이 필요가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목사도 교육이나 연구 분야로 갈 수 있긴 하나 그것은 신학대 학부/대학원 교수직[60], 그나마 현실적으로 미션스쿨의 교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이러려면 국민윤리과목 정교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일반인이 교사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목사의 공급이 얼마나 과잉인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1년에 의사가 약 3,000명 정도 배출되는 것에 비해, 목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배출된다는 것이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또 약간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의사는 국내의 이름 있는 대학[61]의과대학에서만 배출되는 데 비해, 목사를 양성하는 기관은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각 기관에서 시행하는 교육의 질의 편차가 너무 크다. 이는 목사 수 자체 뿐 아니라 자질에 대한 관리가 요원해지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수능 입결 차이부터도 신학대[62]가 감히 의대에 비빌 수준도 아니고, 졸업 이후의 수련과정[63]나 소정의 수련과정이 끝난 이후 학회나 연수 등과 같은 평생교육의 양과 질을 볼 때, 질 관리 수준은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의사들은 개인병원을 한 곳에 밀집해서 지을 경우 병원마다 전공과가 다 다르기 때문에 내과, 외과,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피부과, 비뇨의학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등이 한 건물에 뭉쳐있으면 이건 되려 종합병원보다 더 효율이 좋다.[64] 장사가 엄청 잘 되고, 그래서 의사들끼리 일부러 빌딩 하나에 모이고 자기네 병원 전용 약국을 하나 섭외해서 개인 병원을 차리기도 한다. 하지만 목사는 이와는 다르게 한데 뭉쳐 있으면 서로가 경쟁자 사이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러면 서로 교인들을 돌려막기만 반복해서, 아무리 전도해봤자 교세는 전혀 성장하지 않는다. 이미 전도했던 교인을 옆 교회에 빼앗겼다가 다시 전도해오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개신교 책자에서도 이걸 우려하여 몇몇 사례를 보여주는데, 서울 어느 교회의 집사가 운영하는 공장에 그 교회 부목사가 4명이나 일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 부업을 하면서 일할 수 있는 목사는 상당히 나은 셈이다. 게다가 진짜 규모가 작은 개척교회의 경우, 목사 1명, 부목사 1명, 전도사 2명에 성도들도 20명 미만에, 교회로 사용하는 건물의 임대료를 지불하기 위해서 저 4명 모두가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노가다를 뛰는 상황에 몰린 경우도 있다.[65]

소규모 개척교회야 목사 하나 있으면 끝나는 판이다. 아예 부목사를 오라고 할 건덕지도 없는 판. 즉, 신학교를 졸업하면 닥치고 교회 개척에 뛰어들어야 할 판이니, 교인 수평이동을 노리고 타 교회를 비방하거나 이단적 행위마저도 불사하며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실정이다.

그러니 신학교를 막 졸업하면 교회 개척보다는 큰 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가는 게 더 좋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큰 교회 부목사로 가기 위해서는, 걸어온 경력이나 쌓아온 업적은 가산점이 되는 스펙 정도일 뿐이고 최종적인 결정은 거의 인맥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부터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교회에 목사로 취직하려면 해당 교회의 인맥이 없이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꽤 큰 교회라면 그 교회의 목사나 장로 아들이 신학대학에 다니는 경우도 많으므로, 이들이 부목사로 가는 우선순위가 되는 게 씁쓸한 현실이다.

2.11.1. 공급 과잉의 원인

이렇게 된 데는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 전도사, 사모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온 각 교회와 크리스천 부모의 책임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그 결과가 바로 엄청나게 과잉 초과 공급되어 버린 신학 전공자들이다.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과 청년들에게 신학교 가라고 부추긴 교회들은 정작 이렇게 학생 때부터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해 오고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다른 교회로 파송되어 나갈 때마다 중년층 이상 세대의 뒤를 이을 다음 세대가 너무나 부족하다[73]고 아우성치기도 한다.

2.12. 성경 구절 악용, 왜곡

종교인이든 아니든 결국에는 모두 사람이기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이런 실수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렴하고 그런 문제가 되는 행위를 고치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돈에 팔린 종교인(人) '먹사'[74]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 향한 비판을 교묘하게 '하나님에 대한 비난'으로 포장해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먹사들은 성경의 내용을 자기 입맛대로 짜깁기하거나, 뒤튼 형태의 '어긋난 근본주의, 경전주의'를 주장하곤 한다.

일례로 레이디 가가 내한 반대 사건에서 모 목사가 '동성애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 구절은 레위기의 구절이다.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레위기 20장 13절(공동번역성서)
하지만 동성애자라고 해서 딱히 서로 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즉, 성경무오설에 의거하면 오히려 '한자리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는 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레위기의 율법을 곧이곧대로 적용한다면, 남편을 가진 여자 교인과 간음한 일부 목사도 위의 레위기 구절과 바로 같은 장에 있는 율법을 어긴 죄로 불알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
이웃집 아내와 간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함께 사형을 당해야 한다.
레위기 20장 10절(공동번역성서)
심지어 인천에서 어느 목사가 유부녀와 간통해 아이까지 출산하고 나중에 친자 소송으로 이어진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지금은 구약의 시대가 아닌 예수의 희생으로써 열린 신약의 시대이며, 예수도 공생애 때 유대교 율법들(구약의 내용) 중에서도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율법들은 부정했다. 구약에 나온 내용을 다 지키자면 구레나룻을 자르지 말아야 하며 돼지고기도, 해물도 먹지 말아야 한다. 유대교와 다를 게 무엇인가? 따라서 구약의 율법보다도 신약에서 재해석되거나 완화된 교리를 우선적으로 따르는 것이 맞는다.

단, 타락한 목사들이나 이들의 영향을 받은 신자들은 신약이든 구약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구절만 멋대로 가져다 쓰므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목사가 "구약의 율법은 모두 없어졌다"는 설교를 하지만,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는 마태오 복음서 5장 17절을 예로 들면서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지 않으시고 오히려 완성하러 하셨기에 구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라며 말을 뒤집으며 이중잣대를 보여 주는 식이다. 결국 마태오 복음서 5장 17절은 '구약을 철폐하지는 않으나, 모순점을 개선한다.'는 의지의 천명으로, 구약의 가치를 무시하지 말되, 구약과 신약이 배치되면 신약을 따르라라는 내용인 것인데, 먹사 개인이 성경의 내용을 멋대로 취사선택하여 교리를 왜곡하니, 그것이 율법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던 바리새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의 졸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요한의 복음서 8장 7절(공동번역성서)
이는 인간의 죄에 관해서 오직 창조주인 아버지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판단하고[75] 심판을 내릴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간음한 여인과 예수 이야기는 후대에 첨가된 날조성구라는 것이 중론이다. 원래 내용에는 없었던 부분이다. 1세기와 시기적으로 가까운 신약 초기 사본들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사후 수백 년이 흐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수의 성전 정화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는 교회의 거대화와 부패를 가장 우려하고 혐오했던 사람이다. 교회에 ATM 기기를 두고 청년 신자들을 이용해 과잉선교를 하며 헌금을 강요하고, 엄연한 유부녀인 여자 교인이나 심지어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사사로이 교인의 재산[76]인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하는 일, 즉 '성전의 타락화' 자체가 진정한 근본주의에선 나올 수 없는 작태다. 이는 심지어 레위기와 같은 구약에서 나오는 십계명조차 어기는 행위이다.

이들의 무리한 주장에 대해 다른 이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논지를 흐린다. 문제는 정작 예수는 "비판을 하는 자는 비판을 당연히 받는다"고 언급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마태(7:1~2)의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즉 먹사들의 되도 않는 행태와 비판은 이미 그네들이 좋아하는 성경에서, 그것도 예수 본인이 욕을 먹을 것이라고 언급한 셈이다.

즉, 자신이 누군가에게 비판이나 모욕을 했으면 그에 대한 반동을 겸허히 받는 것이 성경무오론에 의거한 경전주의에서는 오히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교묘히 신성모독이니, 현대에 맞추어 재해석해야 한다느니 하며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고, 적그리스도적 행태를 태연히 하고 있다. 성서무오설과 근본주의를 밀 거면 정말 제대로 밀든지 해야 하는데, 그건 싫고 지네 좋은 거만 뽑아 쓰려 하니 당연히 모순이 생긴다. 자신들이 부족해서 가진 편견을 성경에 근거해 정당성을 얻으려는 셈. 그런데 이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뜻대로 왜곡하는 거니 배교자이자 적그리스도 맞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오는 정당한 비판을 '마귀, 사탄의 시험'이라고 일축시키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심지어는 자기가 사탄의 도전을 받았다마태오 복음의 구절(4:1~11)을 인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말에 비판적인 사람은 다 적그리스도요, 사탄이요, 마귀이고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

참고로 이런 마귀, 사탄드립은 돈 문제를 가지고 먹사, 개신교인과 싸울 때 제일 흔히 들을 수 있다. 특히 장례식과 유산 분배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비 개신교인과 개신교인이 형제자매일 경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들은 직위고하 불문하고 어린이가 아닌 한 거의 무조건 부조를 낸다. 하지만 오히려 먹사들은 장례식에서 기도를 한 후 돈을 받아간다. 실제 장례 집전에서 종교인이 수고비를 받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77] 문제는 한국은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이 오히려 돈을 주는 입장이기 때문에 '장례식에서 돈벌이냐?'라며 개신교를 믿지 않는 다른 가족들의 눈총을 받기 쉽다.

보통은 그냥 고인 가시는 길에 언성 높이기 싫기도 하고, 고인이 믿는 종교인의 축복을 받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그냥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고인이 생전에 가 보지도 않은 교회의 먹사들까지 와서 앉아서 다른 가족들에게는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기도 몇 분 하고 돈을 받아간다거나, 아니면 고인이 개신교 신자도 아닌데 가족 중 개신교인인 사람이 목사들을 불러와 기도를 부탁하고는 돈을 집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선하는 자기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 기도비를 부담시킨다. 부담을 안 시켰다면 나중에 부조금 정산할 때 확인해 봐라. 100% 장례비 명목으로 기도비가 빠져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비개신교인 가족의 뚜껑이 열린다. 그래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면 '마귀, 사탄, 고인모독 ' 따위로 몰아붙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 퍼지면서 코로나 19를 '시진핑의 개신교 탄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정세균 국무총리의 취임으로 일어난 세균 전쟁'[78]이라고 해석하는 황당한 목사들이 목격되고 있다. # 어디 구석 사이비 목사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난 대형교회 목사들이 하는 얘기다. 그런데 정세균 총리도 개신교 신자(장로)다. 아무튼 교리에 어긋나는 내용인 것을 떠나서[79]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목사들이 멋대로 전염병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며 거기에 은근히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물타기 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심판 받는 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목사의 개인적 견해를 '하나님의 뜻'에 섞어 타인을 비난하는 행위는 코로나 이전에도 흔히 있었던 레퍼토리다. 만약 천주교 사제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신자들에게 했으면 소속 교구수도회 장상에게, 심하면 교황청에 혼쭐 난다.

시간이 지나 기독교 관련 서양 나라들이 코로나로 휘청이고, 그나마 확진자 수가 적은 편이던 한국에서 대형 교회 위주로 폭발적으로 코로나가 퍼진 것을 상기하면 더욱 굉장한 발언이다.

2.13. 성도를 헌금 삥뜯을 소모품으로만 보는 태도

일부 기득권 목사들 자체가 성도들은 병 걸리든 말든 헌금 뜯을 소모품으로만 보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일례로 IM선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을 계기로 코로나 재확산세 속에서 정부가 비대면 예배 조치를 실시하자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그런데 실상을 보니 대표회장부터가 비대면예배로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앞에선 "현장 예배 포기 못 해", 뒤에선 '비대면 예배' 즉, 성도들은 병 걸리든 말든 소모품으로 쓰고 목사와 높으신 분들만 살아남으면 그만이라고 여긴 것이다. 폐쇄적인 한국 개신교 특성상 바깥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오래전부터 일부 목사 기득권층이 성도들을 헌금 바치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사실상 개신교 목회자들이 가장 비난받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한 헌금과 봉사 강요 등으로 인해 교인들의 왕으로 군림하고자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회자가 평신도보다 우위에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목회자들 또한 문제인데, 이는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장로라는 개념을 가진 개신교 신학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로인해 불필요한 일반화가 생기기도하고, 진심으로 헌금이나 봉사를 강요하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교인들을 보살피고자 노력하는 선량한 목회자들까지도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2.14. 교회 세습

(출처)(뉴스조이)우리 동네 교회 세습 지도' 50개 교회 추가
(출처)(시사저널)교차세습에 합병세습까지…여기가 교회야 기업이야
(출처)[주간조선] 편법상속·M&A…재벌 닮은 교회 세습
(조선일보)"아들에 직분 계승, 성경엔 근거 없다…교회 살리려 세습하면 개신교 다 죽어"
(출처)(기독교신문)대형교회 세습문제, 논란 중심에 서다
개신교에서는 세습이 발생한다. 물론 타종교에도 세습하는 종교들은 있지만 규모 등이 개신교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개신교는 세습이 발생하는 종교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교회세습은 2010년대 들어 급속히 늘었다. 세습교회 명단에 오른 158개 교회 중 102개 교회가 이 시기에 세습이 이뤄졌다.

교인 수를 기준으로 세습교회의 규모를 살펴보면 1,000명 이상인 교회가 53개에 이른다. 여기에는 5,000명 이상인 교회가 6개, 1만 명 이상인 교회도 8개나 포함돼 있다. 명성교회와 함께 광림교회, 금란교회, 서울성락교회 등이 세습이 이뤄진 대표적인 대형교회로 꼽힌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이 58개, 인천·경기가 66개로 합치면 124개 교회에 이른다. 전체의 80% 가까이 차지하는 수치다. 세습이 이뤄진 교인 1만 명 이상 대형교회 8곳도 모두 이 지역에 있다.

교회세습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지닌 교인들이 세습 반대에 적극 나서고, 세습금지법을 도입한 교단이 ‘세습 불가’ 방침을 공표하면서 대놓고 직접세습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자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설명하거나 옹호할 명분과 이유[80]가 전혀 없어서[81] 교회 신자들조차도 개탄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애초 교회 세습에 대한 거센 반발 움직임들도 대부분이 교회, 목사직 세습에 반대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서 나왔을 정도. 이거 때문에 교회 세습의 추태가 꼴보기 싫어서 오래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고 옮기는 신자들도 있을 정도이다.

예장통합의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가 대표 사례. 심지어 법적 소송까지 벌어졌다.

2.14.1. 반론

우선 '교회'가 세습을 옹호하는 명분이 없다 하나, 이는 성경적으로 논리가 없다 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개신교는 애초에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야 하며, 최소한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성경에 근거가 있다면 무조건 반대할 근거가 약해진다.

구약은 애초에 성막에서 '아론의 자손'들이 세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너는 세숫물을 담을 물두멍과 그 받침대를 놋쇠로 만들어 만남의 장막과 제단 사이에 놓아라. 그러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기에서 물을 퍼내어 두 손과 두 발을 씻을 것이다. 만남의 장막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물로 씻어야 죽지 않는다. 그들이 야훼께 제물을 살라 바치기 위하여 제단으로 나아갈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죽지 않으려면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길이 이 규정을 지켜야 한다."
출애굽기 30장 18~21절(공동번역 성서)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제들은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에 장작을 펴놓아야 한다."
레위기 1장 7절(공동번역 성서)
"아론의 후손 사제들만이 그 나팔을 불 수 있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다"
민수기 10장 8절(공동번역 성서)

이는 레위 사람 중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직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작용했으며, 흔히 현 교회에서 세습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구약에서의 해당 법 적용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유대교 제사장의 혈통이 유대 성전 파괴 이후 끊겨서 제사를 지낼 특권을 지닌 제사장 계급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며, 사실상 기존 유대교 제사장의 유대교 내 지위는 랍비에게 넘어갔다 봐도 무방하다. 실제 유대교 랍비에게 해당 논리를 토대로 한 교회 세습에 대해 물어본 결과, 본인들이 제사장의 혈통을 지니고는 있냐라고 다시 되물었다 물론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만인사제설에 따라, 제사장의 직책이 신도들에게 넘어왔다는 점을 토대로 이를 쓰고 있긴 하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로는 교회의 세습이 없다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도 무조건적으로 수용이 어려운 것이, 모든 교회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예루살렘 교회의 처음 지도자로 여겨지는 이는 바로 예수의 동생(가톨릭에서는 사촌) 야고보이다(사도행전 15:21, 21:18, 갈라디아서 1:19, 2:12). 최소 사촌이라 하더라도, 예수의 혈족이 첫 교회의 우두머리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초기 기독교가 성모 마리아 또한 예수를 낳았다는 이유로 신성시되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과연 초기 교회에서 예수의 직계(또는 방계)가 '혈족이라는' 이유를 제외하고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지 의문이다.

세습이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성경보다는 교단 헌법(교회법) 차원의 문제이며, 이는 개교회가 교단 교회법을 준수하지 않는 데 문제의 근원을 둬야하는 것에 가깝다.

3. 해결 방안

3.1. 세금 부과

종교인 과세는 다수의 가난한 목사들에게 타격이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소수의 부자 목사에게만 큰 타격을 준다.[82] 또한 종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니 종교인 입장에선 오히려 찬성해야 한다.
문제는 대다수가 낼 돈이 없다

목사의 횡포가 특히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금전 문제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보면 빈곤하기 짝이 없는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의 행패로 인해 목사나 사제 등 종교인 전체에게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늘고 있다. 천주교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교단 차원에서 모든 성직자의 세금을 자진 납부해왔다. 오랜 기간 이 두 교회만이 성직자 납세를 하고 있었으나, 대한성공회가 2012년에 성직자의 자진 납세를 교단 차원에서 결의함으로서 이에 합류했다.

대부분의 가난한 목사들은 종교인 과세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소득이 면세점 이하이기 때문에 소득세 몇 만 원 아까워 양심을 팔 필요도 없다.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으로 지정됨으로서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이 가능하므로 떳떳하게 과세를 주장해야 한다. 종교인 과세는 사실상 대기업 임원 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 세금 한 푼 안 내는 일부 대형교회의 먹사들이 극구 반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 먹사들은 경제적 고난을 견뎌가며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들에게는 정말 단비와 같을 수도 있는 정부의 복지 혜택을 막아가면서까지 자신의 재산을 불리고 있는 것이다.

종교인 과세는 잘만 하면 다수의 빈곤한 목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몇몇 국가에서는 종교세를 거두고 혹은 신자들이 헌금 대신 종교세를 내고 그 돈으로 교회를 지원해준다. 한국에서 이렇게 한다면 대형교회 목사에게는 많은 세금이 부과되고 영세한 목사에게는 지원을 늘려주는 방향으로 유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한다. 그리고 사회 통념상 종교인을 완전한 '사업자'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도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앞서 수도 없이 열거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어 투명해지기 전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목사들이 실질적인 자영업자로서 비지니스 개념을 종교에 도입했는데도 말이다.
예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인두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내느냐? 자기 자녀들한테서 받느냐? 남한테서 받느냐?" 하고 물으셨다.
"남한테서 받아냅니다." 하고 베드로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이렇게 하여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낚인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보아라. 그 속에 한 스타테르짜리 은전이 들어 있을 터이니 그것을 꺼내서 내 몫과 네 몫으로 갖다내어라."
마태오의 복음서 17장 25-27절 中(공동번역성경)
예수께서 "카이사르(로마 황제)에게 낼 것은 카이사르에게 내고, 하느님에게 낼 것은 하느님에게 내라"고 말씀하셨다. 황제에게 낼 것이 세금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또한, 예수께서 물고기 지갑? 안의 동전으로 친히 자신과 제자들의 세금을 내셨다. 위의 마태오 복음서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께서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신다. 그들(세상 또는 정부)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83] 세금을 내라고 정확히 말씀하신다. 이는 정교분리니 이중과세니 하는 문제 이전의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이 과세를 하네 마네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 중에 세상과 괴리되며 비난받는 이 상황 자체를 염려하셨던 것이 아닐까? 예수의 과세에 대한 의견이 이러하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며 삶 전체를 바치는 목사들에게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참고로 2013년 종교인 과세 정책은 백지화되었다. 다만 이 정책은 현실성이 없기는 했다. 이렇게 될 경우 목회자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정부인데, 당연히 정부는 목회자들이 과잉공급되는 사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사 공급을 줄이거나, 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식의 조치를 취하게 될 텐데, 이렇게 될 경우 시각에 따라서는 "정부가 종교에 관여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바티칸의 관계에서 보듯이,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84]

그리고 2014년 다시 이 의견이 등장하게 되었고, 국회에서 종교인들과 협의 중이다.

그리고 2016년 종교인 과세에 대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예정되었다. 다만 위처럼 종교세가 아닌 개인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존 소득세법에서는 종교인의 소득을 기타소득 중 사례금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시행이 계속 유예되는 바람에 종교인마다 과세 여부 및 신고 방법이 달랐다. 즉, 거의 세금을 종교인의 양심에 맡겨둔 것. 이에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근거를 마련하여 개정한 것이다. 거기에다 교회 건물, 토지는 비사업용으로 세금을 안 내도 된다. 한국 개신교 면세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때 협력의 댓가로 개신교 등 여러 종교 교단의 세금을 빼 주었고,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중용했고 본인이 개신교 장로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며 쭉 이어진 거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연말정산용으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정작 교회 자신은 세금을 안 내고 있다. 이는 법리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세무 당국에서는 이 신자들의 연말정산 종교기부금 영수증으로 역추적하여 교회의 헌금 수입을 파악할 수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십일조 통장이나 건립 헌금은 종교 기부금 내역에 들어 있으나, 수시로 내는 특별 헌금, 특별 기부금은 소득공제영수증을 안 내어 주고,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돈 또한 아무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리 문제를 떠나서도 문제인 것이 하나님에게 낸 헌금이 왜 사회 기부금인가?

3.1.1. 개신교계의 종교인 과세 유예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2017년 5월 28일 오후 정례브리핑을 마친 뒤 2018년 1월 시행 예정인 종교인 과세를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 "이 분야의 전문가인 제가 보기에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불 보듯이 각종 갈등과 마찰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종교인 과세 시기를 2020년으로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진 것에 대해 "그것은 김 위원장의 이야기다. 청와대와 조율을 통해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종교인 과세 유예 추진 논란 참조.

3.1.2. 김진표, 김동연 종교세 과세 조기 시행 방침에 우려

김진표[85]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김동연[86]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부터 종교인 과세를 조기 시행할 방침을 시사하자 우려를 표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종교인 과세 시기 논란과 관련해 독실한 개신교인인 김진표 위원장이 유예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김 부총리는 후보자 시절 "종교인 과세 내년 실시"를 강조한 바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었다.

김진표는 종단 내 알력다툼 원인으로 전락, 반대 세력이 탈세 제보를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진표, 김동연 종교세 과세 조기시행 방침에 우려.

3.2. 중앙 집권 제도

현재의 개신교장로회 따로, 감리회 따로, 침례회 따로인 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각 교회마다 담임 목사가 있는데, 경쟁적으로 신자들을 영입하려고만 하며, 각각 독립된 개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황이 전세계의 가톨릭 교회를 통제하는 가톨릭과는 달리, 개신교는 완전히 군웅할거이다. 그런데 그게 좀 심각한 게, 목사가 아예 사이비 종교의 교주급으로 변질되고 신격화되는 경향마저 있다는 게 문제다. 개신교 교단 중에서 그나마 중앙집권적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성공회이다.[87] 최근 성공회는 동성결혼 인정이나 동성애자 사제 임명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88]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개신교가톨릭과 동일하게 총 당회장을 선출해서 그 단 한 명뿐인 총 당회장에게 교황 수준의 권한을 줘서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신교를 전체 통제하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가톨릭의 인사구조를 그대로 본받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생기는 장점이, 바로 교회의 군웅할거화를 막을 수 있고, 모든 교회들이 중앙 총당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미자립교회에는 좀 더 많은 지원을 하게 해 주고 대형교회는 그만큼 봉사와 헌신을 할 임무가 주어지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목사들이 비즈니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목사 및 장로의 권한도 좀 줄일 수 있어서, 교회 내에서의 전횡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총 당회장의 경우는 임기제로 평신도들의 투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중앙집권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반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 교단에서 가톨릭을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가, 가톨릭의 중앙집권적 교회론이 비성경적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침례회 보수파라든지 회중교회 보수파가 그런 주장을 한다. 중앙집권적인 교회 구조가 비성경적이라는 말은 반론의 여지가 많다. 세계 개신교계에서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가진 교파는 성공회, 감리회, 구세군, 루터교회 등 적지 않다. 오히려 개교회주의를 특별히 강조하는 교파가 침례회, 장로회 정도로 더 적다고도 볼 수도 있다. 개신교가 원래부터 중앙집권적이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것은, 한국의 개신교에서만 느껴지는 일종의 착시다. 일단 개교회주의를 강조하는 장로회와 침례회만 합해도 한국 개신교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그 나머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감리회마저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가 대중들로부터 욕을 먹는 이유가 중앙집권적인 교회 구조 때문인가? 이 문단의 제목을 다시 보자. 혹시라도 중앙집권적으로 교회 구조를 바꾸면 좀 나아질까 싶을 정도로 개교회주의가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3.2.1. 반론

중앙집권화가 개신교의 인식 개선과 교회세습을 막을 수 있다? 당장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되는 감리회를 보자. 일반인들에게 있어 장로회와 감리회가 인식이 차이가 있는가? 감리회에서도 교회 세습은 일어나고 있다. 당장 큰 교회 3개가 담임목사의 아들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한 것이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목회자의 신변을 감리회보다 더욱 강하게 통제하는 성공회와 구세군은 대한민국에서 교세가 강한가? 개신교는 근본적으로 교황제를 반대하기에 아무리 세게 통제해봤자 교단을 분립하고 나가면 그만이다. 원천적으로 개신교는 구조 자체가 가톨릭과 동일한 수준의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통제한들 개신교인들이 원하질 않는다. 애초에 목회자던 교인이던 그렇게 목회자 개개인을 강하게 통제하길 원한다면 가톨릭으로 건너간다. 개신교의 기준은 성경이고 성경에서는 성직자의 세습(레위지파)이 자주 이뤄졌기에 정작 당사자인 교회들은 세습에 거부감이 없다. 일반신문과 진보 정치권에서는 교회세습 문제를 요란하게 다루지만 정작 개신교 내부에서는 세습을 비판하는 진영이 세습을 옹호하는 진영보다 수가 적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개신교는 특성상 교회론에 있어 성경을 출처로 두는 신중한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또다른 교단 분립과 갈등만 일어날 것이다.

애초에 개교회주의가 왜 생겨났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개교회주의는 중앙집권제도의 타락으로 인해 생겨난 제도이다.[89]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의 부패는 오늘날 개신교보다 더욱 심각했던 수준으로, 상술된 개신교의 문제점에다가 성상 및 성유물을 숭상하는 가톨릭 특성상 교회의 재정이 천문학적으로 깨져버리는 특성상 헌금 갈취가 매우 심했다.[90] 그리고 중앙집권제도 특유의 조직력으로 내부의 개혁 운동을 묵살했다. 개신교는 그나마 교파와 교단들이 분립되어있어서 내부고발이 쉽다. 권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오히려 도덕성이 더욱 망가질 여지가 많다는 것. 천주교는 개신교가 생겨나자 대항종교개혁으로 도덕성 회복 운동를 펼쳤기에 이러한 단점들이 서서히 사라진 것일 뿐, 마치 중앙집권제도 때문에 도덕성이 개혁되었다고 바라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오늘날의 천주교도 특유의 조직력으로 내부의 타락을 방관하다가 문제가 터져버린 사례가 이미 있다.

또한 중앙집권제도를 전체적으로 시행하려면 교단들의 통일이 전제되어야하는데 애큐메니컬 진영도 교단이 하나로 합쳐지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찌 가능한가?

최악의 경우엔 정치 목사가 총당회장 자리에 군림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당장 기성교단 상당수가 여러 이유에서 나간 개신교 연합회 성격의 조직인 한기총을 군소교단 총회장인 전광훈이 접수하고서 이래저래 부정적이었던 한기총 자체의 이미지가 더 부정적으로 바뀐 케이스가 있다. 게다가 전광훈이 예장(대신) 총회장을 하면서 예장(백석)과의 통합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예장 대신 교단이 셋으로 분리되었다.[91]

게다가 이미 실제로 19세기 스코틀랜드네덜란드 개혁교회가 이 제도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한 선례가 이미 있었다.

개혁주의, 개교회주의가 핵심 가치인 대한민국의 대다수 교단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보수주의 계열 교단들은 반(反) 교회일치운동 성향[92]이 강하기 때문에, 개신교 교단들이 제대로 연합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나 크다.

교회일치운동의 찬성/반대와 같이 거창한 구호를 내세울 것도 없이, 한 교단 안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 대형교회가 스스로 피땀 흘려 일군 재산과 기득권을,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지역의 같은 교단 소속 영세 교회나 미자립교회를 위해서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것. 이런 판국에 위에서 말하는 수준의 다른 교단과의 교류는 가능할 리가 없다.

애시당초 개신교라는 개념이 하나로 뭉뚱그리기가 어렵고, 아이러니하지만 '견해가 다를 경우 새 분파를 차려 나가는 것'이 개신교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중앙집권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중앙집권적 교회론 자체가 개신교, 특히 개혁주의 계열[93]의 정체성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얘기.

3.3. 교인들의 의식 개혁

종교 집단의 타락은 이 인용문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회의 미래는 성경을 아는 평신도들의 등장에 달려 있다."
에라스뮈스,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주는 안내서》, 1503
여태까지의 항목들을 읽으면 목사가 타락한 것이 전적으로 목사의 순수한 악 때문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눠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들은 바로 그 목사를 맹종하는 우매한 교인들이다.

사실 목사 개인의 스펙을 따져보면 딱히 횡포를 부릴 수 있을 만한 능력을 찾을 수 없다. 성공한 사업가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의사변호사처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다.[94] 그렇다고 정부 권력이 뒤를 봐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일부 목사들이 정부와 결탁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엄연히 정부와 교회가 분리되어 있다. 문민정부 이후로 개신교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일이 있어왔으나, 어디까지나 국정 수행에 대통령 개인의 종교적 가치관이 개입할 수 있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 군사정권 때처럼 무제한적으로 자기 패거리들 챙겨주는 식으로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95]

교회 운영에 대해서도 목사에게는 아무런 전문적인 능력이 없다. 목사들이 회계를 아는가?[96] 법을 아는가? 하다못해 노가다 십장 기술이라도 있어서 공구리라도 칠 수 있는가?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교회 밖 현실 세계에서는 쓸모 있는 스펙이 거의 없어서, 신앙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서 목사 일 못하게 되면 잉여에 가까운 수준이 된다.

더군다나 개신교 목사는 천주교/정교회사제와 같이 평신도와 확실히 구별되는 성직자의 신분도 아니다. 천주교/정교회에서는 사제 없이 주요 전례인 성체성사(미사, 성찬예배)가 진행될 수 없다. 일곱 성사 중 나머지 여섯 성사의 진행 요건도 비슷하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목사 없이 예배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장 구정, 추석에 가정예배라고 보는 것이,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미리 정해진 가이드라인[97]을 따라 예배를 진행하는 것이다.

종합해 보자면, 목사라는 자리는 말 한 마디에 자기 의지대로 평신도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바이블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설교할 권한을 인정받은 만큼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누구보다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하며 평신도와의 소통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위치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목사들이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전부 개신교 신자들이 목사에게 대를 이어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목사를 하나님처럼 신격화, 우상화, 숭배함으로써 권력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충성이란 것도 일제 시대처럼 총칼로 강요된 충성이 아니라 교인들의 자발적인 충성이란 게 문제다. 대한민국이 개신교를 국교로 삼은 신정국가도 아니고, 특정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는 상황도 아니다. 교회에 나가서 헌금 바치고 목사에게 아멘, 아멘 하는 것은 순전히 교인들의 자기 판단에 의한 것이다. 목사가 자기 생각을 교인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을 두고 보통 세뇌라고들 비판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업체에서 하는 세뇌와는 다르다. 외부의 강요 없이 자기가 직접 현장에 찾아가 스스로 목사의 가치관에 동화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장 칼뱅

역사상 종교가 타락했을 때는 썩어버린 종교계의 자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항상 등장하였다. 이들은 과거 종교집단의 권위를 이용한 반지성주의 조장이나, 면벌부와 성직 매매로 대표되는 종교인의 타락을 '가루가 되도록' 공격하였다. 목사의 횡포와 타락을 방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목사의 잘못을 교인들이 정당하게 비판하면, 그 목사는 자신의 언행을 돌이키고 교인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모든 교회 권력의 원천이 교인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며, 이것은 상술한 것처럼 '실제 역사가 증명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타락한 목사들이 끊임없이 언론 지면상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교인들이 스스로 비판 의식을 제거한 채 목사를 맹종하고 하나님처럼 신격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좋은게 좋은거다' 식으로. 교회에서 투표했을 때 90% 이하로 찬성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극단적인 경우는 100%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개신교 가치관에 입각한다면 목사는 당연히 비판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가톨릭에서 빠져나간 개신교의 핵심 모토가 분리와 개혁인데 어떻게 개신교, 더 넓게는 기독교 일반의 가치관에 입각하는 것이 목사에 대한 맹종, 우상화, 신격화로 이어진단 말인가. 하지만 개신교의 정체성을 떠나서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교인들이 어디까지나 '스스로 원해서' 노예가 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의 의식 전환에 따른 교회 개혁은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치명적인 잘못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함에도 전혀 시정되지 않는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를 나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개교회주의가 힘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주교제를 시행하는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조차도 한 성당사제가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때, 그 성당에 다니던 신자가 이에 반발하여 가까운 다른 성당으로 다니고 싶어 하면, 이를 강제적으로 막지 않는다. 어차피 타락한 채로 경직된 목사는 내가 그 교회에 있든 없든 어떻게든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그 교회는 내 힘으로 어찌 해볼 도리도 없이 여기저기 서서히 곪아갈 것이다. 그런 경우 현실적으로 교인으로서 목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진심 어린 충고/진언과 함께 교회를 나오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예수의 가르침대로 목회를 하고자 하는 목사를 찾아가자.

어차피 그리스도교 교리상 종말이 다가오면 먹사와 그 추종자는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저 스스로 조심하여 먹사 본인이나 그의 추종자가 되지 않도록 항상 신경써야 한다.

4. 외부 링크

5. 관련 문서



[1] 이런 사람들을 향해 디스하는 대표적인 말이 "개나 소나 목사질이야!" 일 정도로 목사들은 괜시리 사회악으로 취급받고 있다.[2] 노골적으로 말해 국내 대다수의 종교들은 믿는 신이 예수부처든 누가 되든 상관 없고, 그저 하나같이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고 소원 들어 달라고 비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물론 진짜 원류들은 무슨 초월적인 존재가 소원 들어주는 그런 거랑은 별 관련이 없고, 신자가 직접 공동체에 헌신하여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3] 물론 깨끗하고 바르기만 한 종교는 인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을 수준이라, 천주교나 불교에서도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돼먹지 못한 신부나 차라리 땡중이라 해야 할 승려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현대 한국에서는 개신교가 유독 목소리가 커서인지,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종교인은 대개 목사가 눈에 많이 띈다.[4] 복음주의 신학교에서는 여전히 성서무오설을 가르치며 무오설의 지지자도 적지 않다. 오해 없기 바람. 이중 성서무류설/성서불오설(중요한 부분은 문제 없다)까지는 복음주의의 정식 입장으로 인정되는데, 자세한 건 문서의 항목 참조바람.[5]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신학교에서 그런 것 배우고 환멸을 느껴 자퇴는 물론, 기독교 자체를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목사가 되지 못했을 테니 여기선 논외.[6] 가령, 종교개혁 이후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떻게든 철학과 신학적 고찰을 넣어서 해석을 해서 교회에 유리하게 해석하려 한다.[7] 이 대목을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게 골로새서다. 특히 골로새서 2장.[8] 헌금이 모두 목사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건 편견에 가깝다. 목사의 사례비(급여)는 대부분 고정적으로 책정되어 있으며, 교회를 운영하는 데에도 여러 경비가 들어간다. 볼펜이나 헌금봉투 같은 각종 비품 구매비, 월세, 전기, 수도, 차량 등의 시설 유지비 등이 기본적이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할 경우 주방 운영비와 식비도 추가로 들어가며, 주일학교라도 운영하면 아이들 간식도 챙겨줘야 하니 지출은 더 늘어난다. 여기서 규모가 커지면 미자립교회나 선교단체 등에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9] 십일조를 안 내도 되는 교회가 있지만, 이 경우 전체적인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고정비용을 제외하고 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 경우 당연히 담임목사의 사례비 반토막이 나서 재정적으로 힘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긴다. 소교회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10] 예수의 통찰력이 엄청난 게, 이 말씀부터가 이미 천 몇백 년 후에 벌어질 마녀사냥을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특히 과부의 재산을 가로채고는 아주 완벽하게 예언한 부분이다.[11] 이게 모순인 게, 정해진 금액이 아닌 소득의 10%이므로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박봉이라면 액수가 적다.[12] 지역 사회에 기부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쓸 돈.[13] 재정 상황이 어려운 선교사-개척교회를 돕는 비용.[14] 교회 시설 관리 비용, 장비 관리 비용 등.[15] 이 구분이 실제로 성경에서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다. 레위기·신명기·느헤미야·사도행전 초반부를 참고하면 쉽게 알 수 있으니 참고.[16] 교회의 규모가 어지간하면 모르겠는데 좀 커진다 싶으면 감추려는 의도 이전에 하기가 어렵다. 내역이 많아지기 때문에 교회의 재정부서나 당회원(장로급)들 정도 밖에 모른다.[17] 다만 성경강해설교는 특성상 길게 하기 어려운지라, 주로 예배/설교시간이 30분 정도로 짧은 새벽기도회나 수요예배에서 진행하는 편이다.[18] 실제로 어떤 청소년 부흥 사역을 하는 목사가 반지의 제왕을 예화로 들면서 레골라스의 화살통이 무한탄창 설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레골라스의 연인이 주었다라고 원본에 나와있다고 했다가 그 관중 속의 고교생 톨킨의 팬에게 그런 내용 없다고 반박당한 뒤 슬그머니, 그 내용을 앞으로의 강연에선 빼버린 적이 있다. 실제로는 원정 도중 로슬로리엔에서 갈라드리엘에게 갈라드림의 활을 선물받았다. 그리고 그 활에도 무한탄창 설정? 그런 거 없다. 그 활을 선물 받고나서 벌어진 나팔산성 전투에서 대놓고 언급되는 게 화살이 부족해 쏜 걸 다시 주워서 활용한다는 대목이다.[19] 2000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모처의 모 교회에서 실제로 장로들이 당회를 통해 담임목사를 직위해제시킨 일이 목사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인데, 이런 일들로 인해 목사들은 자신이 장로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말하고, 이에 대해 장단점을 논하며 서로 교정해준다. 물론 담임목사가 스스로 교회를 개척한 경우에는 이런 일이 안 생기지만, 외부에 있던 목사가 담임목사로 청빙되었을 경우에는 담임목사의 힘이 약해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쪽도 그런 케이스였고.[20] 정치목사로 악명높은 전광훈이 이 모임에서 공유한 바에 의하면 젊은 여자 집사에게 빤쓰를 내리라고 해서 내리거나 인감증명을 끊어오라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가져오면 자기 성도라고 한다. 반대로 빤쓰를 내리라고 할 때 거절하거나 인감증명을 끊어오라 할 때 어디 쓸 건지 물어보면 똥이라고 한다.[21] 전광훈의 이미지가 지금은 워낙에 부정적으로 변해서 그렇지 저 망언 당시에는 이 정도로 이미지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나마 멀쩡하게 보이던 시절에도 이런 망언이나 했다는 소리.[22] 이건 박중훈이경영 주연의 영화 할렐루야에서도 나왔던 것이다. 굉장히 고전적인 수법이다.[23] 교파를 막론하고 현재 기성교단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 의식 자체가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교단 원로들부터가 이 시스템의 수혜자들이기에,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대부분 교회 밖에서 일어난다.[24] 만 70세 정년퇴임이 대부분이나 간혹 더 큰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받으면서 퇴임하거나 건강 문제 등의 개인사정으로 사임하는 경우.[25] 기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는 경우도 해당.[26] 상계동, 목동 등의 신시가지가 개발된 80년대 후반, 수도권 5대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와 정부대전청사 및 둔산신도시가 개발되던 90년대 초중반까지가 충분히 가능했다. 이 시기만 해도 개신교 이미지가 긍정적인 편이었기 때문.[27] 2기 신도시와 혁신도시 들이 개발된 이후에도 젊은 목사가 개척하는 교회는 거의 없다. 상당수의 교회가 서울이나 인접 지역에서 교세 확장을 위해 교회를 이전하거나 큰 교회의 지성전 형태로 생기는 교회, 나머지는 기존에 목회하던 목사들이 원 소속 교회에서 독립하여 새롭게 개척하는 정도에 불과하다.[28] 사실 이건 합동 소속 중견교회를 엿 먹이려고 구원파가 진을 친 쪽에 가깝다.[29] 기본적으로 대형교회들은 교회 규모가 큰 만큼 조직이나 커리큘럼이 탄탄하게 갖춰진 경우가 흔하다. 이런 교회들은 주일학교는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어 부모와 자녀가 함께 다닐 수 있는 교회라는 메리트가 있고, 원거리에서 예배를 보러 오는 성도들을 위해 장거리 셔틀버스까지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30] 센터장이라고도 한다.[31] 목회를 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목사로서의 자격이 소멸된다.[32] 아무래도 목사들은 교회 업무 특성상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필수이기 때문에 운전 실력이 베테랑급인 경우가 많아, 생업으로 운전직을 택하는 비율이 높다.[33] 물론 간사 중에서도 신대원을 거쳐서 목회학 석사를 취득한 후에 목사 직분을 가진 이들이 많다. 지구 책임간사 이상 되면 목사 직분은 사실상 기본이다.[34] 물론 선교단체에서 나이 많은 간사들을 해외로 파송시키는 경우도 제법 있어서 선교사로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반면 간사를 그만두고 목사 직분을 활용하여 담임목회로 빠지기도 한다. 그나마 담임목회라도 하면 간사 출신 목사 중에서는 일이 잘 풀린 편에 속한다.[35] 당연히 세속적으로만 계획하지 않는다. 목사 개인적으로는 기도와 성경묵상 등의 신앙활동을 기반으로 영감을 얻고자 하며, 같은 노회에 소속된 목사들과 교류하며 교회개척 계획을 공유하고 검토한다.[36] 비개신교인들은 목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대리인' 내지는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어 성도들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되지 않은 교회들이 하는 짓이고(사랑제일교회 등), 제대로 된 교회는 그렇지 않다(문제는 제대로 되지 않은 교회들이 많다는 것). 장로회에서의 목사의 정의는 “성례를 담당하는 장로”일 뿐이다. 쉽게 말하면 일반적인 교회는 장로, 집사를 필두로 하는 평신도들이 운영하는 것이고 목사는 교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중재자로써 역할을 한다. 장로회 계열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교회 정치라고 한다. 그러므로, 교회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성도들은 목사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이다.[37] 성도가 대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설교 및 성경공부의 내용이 달라질수 있다. 예를들면, 연구직 및 전문직종의 성도들일 경우에는 교회내외적으로 경조사가 생기거나 성도들의 생활이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상 철학적인 내용이 중심이다. 철학적인 접근으로 서론을 시작해서 왜 해당 구절이 그 접근과 관련된 고민을 신앙으로 극복할수 있는가에 대한 본론이 주를 이루는 편이다.[38]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에, 군종목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종신부와 군종법사도 있다. 진급 시에는 어느 정도 비율도 맞춰주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서 소령 진급에 실패해서 대위에서 전역하는 군종목사의 수가 상당히 많은데 그 이상은 말할 것도 없다.[39] 규모가 작은 교회는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게다가 프로그램 역시 대형교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40] 개신교의 분파 중에선 성공회가 그나마 자체적으로 위계적인 교계조직은 있으나, 다른 개신교 교파들은 개교회주의가 강하다.[41] 한국 가톨릭의 경우 한국천주교주교회의[42] 특히 예장합동 계열이 여러 이유에서 뜻이 맞는 목사들끼리 뭉쳐 군소교단을 차리는 이런 양상이 더 많았다. 이 과정에서 분립된 교단들이 각자 도생하다가 여러 이유에서 그나마 규모가 있던 예장합동진리 교단으로 합류했고 그렇게 성장한 교단이 예장백석.[43] 물론 삼일교회의 인지도를 설교와 저술활동을 통해 전병욱 목사가 크게 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면서 받을 것을 다 받았으니 논란이 될 수 밖에.[44] 일례로 성공회 교회법의 타 교단 출신 성직자 전입 관련 규정에서는, 이전 소속 교단에서 사고쳤던 자는 전입을 거부하도록 되어있다.[45] 물론 이 경우에는 H 담임목사가 교회를 세운 창립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당회에서도 그 동안의 '공로에 대한 보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까지 씌워서 이런 거액을 주었을 것이다.[46] 물론 이 경우에는 J 목사가 교회를 개판으로 운영했다는 증거이다. 정상적인 목사라면 사례비와 강사료를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많이 수령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교회의 재정을 감안하여 오히려 자신의 급여를 깎는다. 게다가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는 이러한 담임목사를 견제하기는 커녕 오히려 거수기 역할만 하면서 J 목사의 전횡을 내버려 두고 있다.[47] 개신교 이미지에 먹칠하는 목사, 또는 돈이나 섹스 같은 세속적인 것을 밝히는 목사.[48] 이런 목사는 담임목사에 한정되어 있는데 목회 업무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 업무들을 자기 휘하의 부목사들에게 떠넘기고 이렇게 놀러 오는 것이다.[49] 의 경우 종교인들이 이를 반지목걸이, 묵주 등으로 착용하기도 하는데 오랫동안 종교 예식 도구 등으로 써오던 것이기에 이해의 여지는 충분하다. 게다가 금은 보통 도금인 경우가 많으며 은은 귀금속의 인식이 있지만 생각외로 비싼 편은 아니다. 은수저 세트 가격도 보통 5만 원 내외고 은 1㎏ 가격도 120만 원이다. 때문에 일반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은으로 된 장신구들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50] 그나마 감소한 것이 이 정도이다. 예장합동이 예장통합에서 분리되고 이후 군소교단의 분열 등이 병행되며 교세를 확장하던 시기에는 매년 1,000명 이상 신대원을 졸업하는 전도사와 목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51] 특히 메이저 신학대를 제외한 지방소재 마이너 신학대들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52] 단, 최초의 사제가 나온 직후부터 매우 오랜 기간에는 수가 당연히 극히 적었고 현대로 갈수록 그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많아졌으므로 연평균 40명뿐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7,019명 중 5,891명이 1980년 이후, 6,362명이 1970년 이후, 6,664명이 1960년 이후, 6,793명이 1950년 이후 사제가 된 인원이라 김대건 이후 104년 넘는 기간이 전체의 3.22%밖에 안 되며 그 다음 74년간이 96.78%를 차지한다. 2024년 12월 기준 근 50년 동안만의 서품 인원이 전체의 88%에 이르고 근 20년 동안에는 연평균 141명씩 서품이 이루어졌다.[53] 본래 천주교 부산교구천주교 마산교구의 사제를 양성했다. 이후 부산교구 신학생들은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마산교구 신학생들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한다.[54] 현 부산가톨릭대학교는 사제 양성을 하던 4년제 부산가톨릭대학교가 같은 재단인 전문대 지산대학을 합병하면서 생겨난 대학인데 결과적으로는 신학대학이 사라지면서 전문대학이던 지산대학이 부산가톨릭대학교 이름을 걸고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된 모양새가 되었다. 우회상장[55] 대한성공회에서 위탁운영 중인 사회복지시설은 150여 곳으로, 이는 국내 성공회 교회 수보다 더 많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나눔의 집'이 [age(1985-01-01)]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노숙자들을 위한 푸드뱅크 사업도 [age(1998-01-01)]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몸집은 작지만 사회에서 의미 있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성공회의 신앙 자세에서 비롯된다.[56] 게다가 선교단체 간사의 숫자까지 합치면 종사자의 숫자는 훨씬 더 많다.[57] 당연하지만 단독 건물 갖기도 상당히 어렵다. 보통은 상가 한 칸을 임대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다.[58] 국민 1,000명 당 2.3명이다. 보건복지부 자료 참조.[59] 의사는 자신이 뜻만 있다면 5급 공무원이 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60] 이 쪽도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면 자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61] 요즘은 반대로 의대가 있는 대학이 명문대학이 되는 면도 있다.[62] 당장 메이저 신학대인 총신대나 장신대의 입결도 의대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63] 의사의 경우 인턴 및 레지던트.[64] 응급실 빼고는 거의 모든 과목의 진료를 (대개 종합병원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고 진료비도 비교적 싸니 효율이 끝내준다. 의사 입장에서도 자기 수익을 정확하게 챙겨먹을 수 있고 거대집단 특유의 정치질에서도 자유로우니.[65] 그나마 이 쪽은 부목사라도 1명 있으니 목사에게 과중되는 업무량이 그나마 적은 편이다. 부목사와 전도사가 없으면 담임목사 혼자 발로 뛰면서 큰 교회나 지인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재정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예배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준비를 다 해야 한다. 재수 없으면 생계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부업까지 해야 한다.[66] 중고등부 임원, 교회학교 교사, 찬양단 등[67] 대개 부흥회교회 수련회를 마친 시점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68] 선교단체 간사들도 대부분이 이 루트를 탄 사람들이다.[69] 어디까지나 고대의 관점으로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2022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한나는 종교적인 이유로 어린 자녀를 교회에 떠넘기듯이 방임한 아동 학대이 된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자녀를 보육원에 위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게다가 사무엘상의 묘사를 보면 한나의 집은 오히려 부유한 집이었다.[70]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장 3절). 성경에서 하나님 이외의 대상을 경외하라고 기록된 유일무이한 구절이다.[71] 더욱이 한국 개신교는 유교 문화의 영향과, 부모를 향한 제사우상숭배로 여기는 교리로 인해 非개신교인들로부터 부모도 조상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종교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부모의 경외를 매우 중시할 수밖에 없다.[72] 빈말이나 과장이 아니다. 신학교에서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목사이면 성골, 장로이면 진골, 집사이면 6두품, 이도저도 아니면 해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그리고 교회 이탈자 가정에서 나오면 극단적인 사례로 역적의 자식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고 하고 있다.[73] 다른 원인으로는 중형급 이상의 교회 대부분이 청년회의 성비가 여초이다 보니 교회 안에서 신랑감을 찾지 못한 교회누나들 여성 청년들이 교회 밖에서 신랑감을 찾게 되어 결혼 후 교회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불신자 가정의 장남과 결혼한 여성 청년들은 제사 문제로 인해 명절이나 신랑측 집안의 제삿날마다 갈등하다 결국 교회에서 멀어지거나, 끝내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어느 목사의 딸이 독실한 불교 집안의 아들과 결혼했다가 어느 해 명절 당일이 일요일과 겹치자 시댁 식구들과 제사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74] 고살기 위해 진리를 팔아먹는 람들을 뜻한다.[75] 그리스도교 교리에서 하나님은 죄 없는 지고한 존재이므로.[76] 교리로 따지면 신성한 하나님의 재산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집'.[77] 일례로 일본 불교승려들만 해도 장례식에서 경을 읊어주고 돈을 받아간다. 일본 만화 맨발의 겐에서도 주인공 나카오카 겐이 경을 읊어주고 돈을 버는 장면이 나온다.[78] 코로나는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이다.[79] 야훼는 대홍수 이후 다시는 재앙으로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두었다. 또한 야훼의 심판은 현세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인간이 죽은 뒤 죽은 이의 영혼이 야훼의 뜻에 따라 심판 받는다는 것이 올바른 교리이다. 더불어 야훼의 뜻을 목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명백한 교만이다.[80] 일부의 경우에는 낙후된 시골에 위치한 교회거나 개척교회 같이 이해 되는 경우엔 자식이 부모의 자리를 이어 목회를 하는게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명성교회의 경우와 같이 교회 명의로 재산을 불려 놓은 후 교회를 세습하는 문제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교회 세습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81] 애초 개신교내 일부에서도 혈연의 교회와 목사집 세습, 승계는 금지할 정도이다.[82] 당연한 소리지만 현대에서는 많이 벌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때문에 가난한 목사들 입장에서는 과세가 이뤄져도 설령 많이 내고 싶어도 낼 돈이 별로 없지만 부자 목사들 입장에서는 과세가 이뤄지면 낼 돈이 많아진다.[83] 개정개역의 번역에 따르면,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84]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와 대한성공회가 매년 양성하는 성직자 수가 적은 것은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라, 교단 차원에서 성직자 양성 과정과 기준을 깐깐하게 세우고 정원을 줄인 결과이다.[85] 개신교(침례교) 신자(장로)이다.[86]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인이다.[87] 성공회의 영향을 받은 감리회, 구세군 역시 중앙집권제이긴 하나, 가톨릭이나 성공회에 비하면 개교회의 권한이 강한 편이다.[88] 한국 성공회보다 외국 성공회에서 영향이 더 크다. (제1세계 내의) 대부분의 성공회 신자들은 "죄는 맞지만, 정죄하거나 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89] 물론 개신교에서는 초대 기독교가 주교제를 시행하기 이전에 개교회주의로 운영되었다고 바라본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통해서 세운 여러 교회들은 중앙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운영되었으니.[90] 물론 결혼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가톨릭 특성상 세습 문제는 없었지만 반대로 성직자들의 혼외자식 문제가 심했다.[91] 심지어 대신 교단의 신학교인 안양대학교는 소유주가 교단이 아닌 개인(김영실 총장(장로) 일가)였는데, 이후 교단이 혼란에 빠지고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소유주 일가가 증산도계 신흥종교인 대순진리교의 분파인 대진성주회에게 대학을 몰래 매각하려다가 들켜서 논란이 되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92] 가톨릭이나 정교회와 대화하는 것을 불순시한다.[93] 개신교이지만 주교제가 있는 성공회나, 성공회를 모태로 하여 거의 비슷한 체제를 가진 감리교구세군은 제외.[94] 물론 목회개신교 신학, 성경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것이 맞다.[95] 물론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들을 보면 개신교와 어느 정도 친하게 지냈을 뿐이지 개신교 신자는 의외로 없었다. 박정희는 불교에 가까운 무교였고, 최규하는 유교, 전두환과 노태우는 불교였다.(퇴임후 전두환의 아들이 전도사가 되고 노태우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지만 이건 논외.) 이승만 이후로 김영삼 때까지 32년간 개신교를 믿는 대통령은 없었다는 소리.[96] 신대원 커리큘럼을 보면 상당수가 목회의 중심이 되는 말씀(구, 신약)의 비중이 가장 크며 그 다음이 조직신학과 교회사 정도이다. 기독교 행정의 비율은 전체 학점 중 1% 남짓밖에 되지 않으며 그 중에서 회계의 비율은 교회 운영에 필요한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다.[97] 물론 이걸 짜주는 사람은 원소속교회 목사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