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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6:36:23

봉헌

헌금에서 넘어옴
1. 개요2. 상세3. 이슬람

1. 개요

주로 그리스도교 계열에서, 교회성전 등에 바치게 되는 . 헌금이라는 말 자체가 獻金, 즉 바치는 돈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명칭과 의미가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시주, 공양 등의 말을 사용한다.
각각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내야지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 고린토후서 9장 7절 (공동번역성서)

모든 종교 공통. '절대로' 강제로 내는 게 아니고, 아무리 내라 해도 안 내면 장땡. 끝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도 야훼휩쓸려서 억지로 내는 헌금보다,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을 기뻐하신다고 한다.

한국 기독교가 풀어가야할 과제인 교회 내부적 부패와 가장 직접적으로 엮여있기도 하다. 본래 교회의 안정적인 운영과 구제 등의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헌금을 빌미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목사나 성직자들이 생겨나고 이를 견제할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

일부 헌금을 강요하는 곳 때문에 헌금을 내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하는 부작용이 생겨났는데, 본래 걷어들여진 헌금은 종교시설을 운영하는데 사용된다.

종교시설에서 사용되는 전기•수도요금, 식비(식당운영비), 인건비[1], 시설관리비는 어디 땅파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즉, 교회의 주 수입원이라 교회 입장에서는 좀 과하게, 강요에 가깝게 부탁한다든가 헌금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든가 하는 수는 있을수도 있는데...이는 교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안(못) 받으면 교회 재정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며, 교회 직원들의 임금도 줘야 하고, 거기에 각종 공납금이나 세금, 건물 임대료, 교회 수련회가 있는 날에는 추가로 지출되는 여러 부대비용 등 돈이 나가는게 엄청 많은데다가 대부분의 목사들은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헌금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요즘은 월급도 주지만 기본이 성직자라는 게 안 좋은 말로 잘 차려 입은 거지 소리 들을 정도의 낮은 경제력을 자랑하는 직종이고, 잘 알려진 대형교회 목사들이 예외적일 뿐이지 대부분의 소규모 교회, 개척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들은 넉넉하지 못하게 사는게 현실이다. 빈부격차는 종교 안에서도 예외일 수가 없는듯.

참고로 국내외 개신교회나 성당에서도 모종의 사유로 현금이 없으면 사정 이야기해서 은행이나 환전소에서 환전이 가능한 외국 지폐, 온라인 송금이나 상품권,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으로 헌납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2. 상세

그리스도교 계보에서 볼 때 헌금은, 야곱 때 처음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모세 때는 처음으로 율법으로 만들어졌다.[2] 신약 중에서는 고린도 후서 등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예수께서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때 부자들은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넣었는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겨우 렙톤 두 개를 넣었다. 이것은 동전 한 닢 값어치의 돈이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3]
-마르코 복음서 12장 41~44절

애초에 예수 본인도 헌금 강요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잘 알려져 있는 게 바로 위에 인용된 가난한 과부 이야기. 얼핏 보면 헌금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 같지만[4], 예수의 의도는 과부의 헌신을 칭찬하는 것과 동시에, 과부처럼 가난한 사람마저 헌금을 내게 만드는 당시 부패한 유대교 교단과 성직자들에게 분노한 것이다.

바로 앞장인 11장에서 예수는 '너희들은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분노하면서 성전을 엎어버렸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며 유대민족을 깠고, 사두가이파와 논쟁했다. 그리고 과부 이야기 바로 직전의 구절은 이러하다.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기다란 예복을 걸치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잔칫집에 가면 제일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또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오래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12장 38~40절

즉, 율법학자의 부패를 경고하며 율법학자들이 과부의 재산을 가로챈다는 예시를 들었는데, 마침 이야기한 것처럼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러 나온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다.

2.1. 가톨릭

교무금이라는 정기성 헌금과, 미사 때 봉헌하는 헌금[5], 특별한 지향을 두고 미사를 청할 때 내는 미사예물이 있다.
교무금은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에 한하여 달마다 어느 정도의 금액을 내도록 교회법에서 신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만, 금액 책정까지 강제하지는 않는다. 형편에 따라 금액 책정이 자유롭고, 소득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교무금의 의무를 면제받는다. 교무금은 교회와 교구의 운영비로 사용된다. 또한 주보에 헌금액과 교무금, 특별헌금으로 걷힌 금액은 기록하지만 낸 사람은 밝히지 않는다. 일부 성전 건립 등을 위한 건축헌금, 감사 헌금의 경우 본명과 액수를 기록한다.

새해를 맞이하면 대개 신자 가정 단위로 주임신부와 면담을 하거나 혹은 면담은 생략하고 사무장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으로 그 해 교무금을 책정하게 된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일부 본당에서는 각 구역 및 반 별로 교무금 책정 현황을 그래프로 그려 게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천주교도 돈독이 올라 신자들 압박하는구나' 하는 오해를 할 수 있는데, 앞에서 나온 바와 같이 각 구역 및 반별로 교무금을 책정한 가정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나타낼 뿐이지, 어느 가정이 교무금을 책정했는지, 안 했는지, 했으면 얼마씩 내는지 등 개인과 관련된 사항은 며느리도 모르고,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장만이 관련 서류나 교무금 통장을 보아야 알 수 있다.
미사 중 성찬 전례에 봉헌 순서가 있어 모든 신자들이 헌금을 하는 것이 원칙[6][7]. 초등부의 경우 용돈을 아껴 동전을 내라고 교육한다. 주보에 적힌 교무금에서 100원 또는 10원 단위는 거의 초등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봉헌 시간에 받은 헌금은 교회 관할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 특별 헌금은 안 해도 무방하며, 사실 하는 사람도 적다(…)

봉헌 시간에 2차 헌금을 받는 경우도 예전에는 자주 있다가, 이제는 2차 헌금이 상설화되었다. 2차 헌금이 가끔 있을 때는 주로 군인주일, 교황주일, 그외 특별한 경우 성지로 보내거나 사회복지단체로 보내 특별히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사용하기 위해 2차 헌금이 있었으며, 2차 헌금이 상설화된 현재에는 앞서 든 특별한 경우 외에는 발전기금 조성에 충당되고 있다.

개신교 사례와 혼동되어 마치 한국 천주교에서 우리은행을 통해 봉헌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되는 내용들이 쓰여진 경우가 있는데, 미사 중 봉헌은 온라인 금융과 전혀 관련이 없다.
이외에 미사 예물이 있는데, 특별한 지향을 둘 때 내는 예물이다. 미사 예물을 바치면서 날짜와 해당 미사를 정하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과 주의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미사/종류를 참고하기 바란다.

예물이기 때문에 값진 물건을 바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돈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돈으로 낸다. 성물이나 오르간 같은 것을 기부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미사예물의 일부가 미사를 집전한 사제에게 돌아간다고 해서, 손님 신부가 오면 할머니들이 감사미사를 일부러 넣어주기도 한다.[8]

특별헌금이나 교무금 등 낸 헌금자가 밝혀진 헌금의 경우 종교기부금으로 처리하여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처음엔 교무금만 하더니 어느새 주일 헌금까지. 각 교구별로 원천징수해서 납부하고 있다. 다만 신자 입장에서 소득공제를 잘 받지는 않는 편인데, 절차가 까다로운 게 아니라 믿음의 문제 때문이다. 특히 헌금은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하느님에게 온전히 드리는 중요한 행사인데 세속적인 소득공제 등을 받으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이 느껴지기 쉽기 때문에, 알면서도 신청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소득공제를 받는다고 해도 헌금은 제외하고 교무금이나 기부금 정도만 하는 경우가 많은 게 아니라 주일미사 때 헌금은 무기명인 만큼 소득공제를 받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 천주교 헌금봉투에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일미사 봉헌 헌금 액수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 교무금이나 건축 헌금 등 그 외 봉헌금은 기명이니 만큼 소득공제 신청이 가능하다.

물론 가톨릭에서는 신자들이 봉헌하는 예물에 대해서는 전혀 강제하지 않고, 실제로도 강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덕분에 성당에서 봉사하다 보면 헌금 봉투에 딸랑 천원만 들어있는 것도 많이 보게 된다. 주일미사 때도 헌금통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종류가 1,000원권. 그리고 이걸 보고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과연 천주교의 천이 天(하늘 천)이 아니라 千(일천 천(1,000)이라는 개드립을 친다. 그리고 본당 신부님들도 "제발 헌금 좀 성의있게많이 하라"며 이야기하기도 한다(…)[9] 이런 걸 비롯하여 천주교 특유의 신앙심을 딱히 강요하지 않는 나이롱 심보가 개그 소재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종교 유머 문서로.

그 외에 일각에선 가톨릭 신자들이 헌금을 내면 그 금액의 상당수가 바티칸교황에게 보내진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헌금의 대부분은 교구 내에서 사용되고 그중 일부만이 지역교회에서 자발적으로 보내지는데 이를 베드로 성금이라고 한다. 고대~ 중세 동안 세속 군주들이 교황에게 바치던 것이 점차 각 교구별로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세금의 성격으로 변했는데,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당시 교황청으로 가는 헌금을 주교들이 중간에 착복한다고 언급하는 등 폐단이 적지 않았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루터가 독일의 제후들에게 쓴 글에서 독일의 부가 전부 로마로 흘러 들어간다는 내용의 비판이 있다. 결국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기 동안 사라지고, 대신 교황 비오 9세때부터 각 교구가 자발적으로 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교구 예산 일부를 차출하는 방식이 아닌 매년 교황 주일[10]의 2차 헌금을 따로 모아 보낸다.
한국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헌금 봉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대축일 미사 또는 음력 설과 추석 등 명절 미사 예물용으로는 일반 편지봉투와 비슷한 일회용 흰 봉투를 사용한다. 봉헌자와 봉헌액수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쓰거나 쓰지 않거나는 봉헌자 마음.

한편 주일미사 헌금 봉투는 봉투라고 부르기에는 그런 것이 기명 헌금이 아닌 만큼 한 사람이 독점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나 쓰면 된다. 일회용도 아니다. 귀퉁이가 닳아 헌금이 봉투 밖으로 삐져 나올 때까지 쓸 수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 성당의 경우 누런 두꺼운 대봉투와 같은 재질로 헌금 봉투를 사용하였다. 일회용이 아닌 만큼 혹시나 봉투 안에 돈이 남아 있을 불상사를 대비하여 구멍을 뚫어 놓아야 할 이유가 없다.

봉투라고 부르기에는 그렇다고 한 것이 요즘 만들어지는 주일미사 헌금 봉투는 남성용 장지갑처럼 양쪽으로 펼치는 형태이다. 펼치지 않으면 안을 볼 수 없도록 되어 있고, 비닐 커버를 씌어 내구성을 높였으며, 양쪽에 각각 1차 헌금과 2차 헌금을 넣도록 안쪽에는 절반만 비닐로 되어 있다.

정말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의 일부를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아깝다거나, 2차 헌금 건너 뛰도록 조장하려는 의도는 아님을 유의하자.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 이용자라면 한 번쯤 보았을 수 있는 것이 계좌이체 화면으로 가면 천주교 항목이 보인다. 서울대교구를 비롯하여 한국 천주교의 주거래은행이 우리은행으로, 우리은행을 통해 금융거래가 이루어진다.

한국 천주교가 온라인 금융거래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2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교구청과 본당간 금융 거래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나이며, 개신교 대형 예배당에 ATM을 설치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2번째는 경비 절감 차원이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본당에 사무원이 상주하면서 교무금 수납까지 하였지만, 요즘 재무 상황이 아주 좋은 일부를 제외하고 사무장에게 관리장[11] 업무까지 맡기는 마당에 사무원까지 근무하는 본당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어르신들은 여전히 교무금 통장[12]이라도 은행이 아니라 성당에 와서 내야 한다는 분들이 많아 주일 날에는 교무금 수납하는 봉사자를 볼 수 있는 본당도 있다.

그리고 천주교 대구대교구내 일부 성당에서는 '봉헌권'이라 하여 지폐와 똑같은 색상으로 된 상품권[13] 비슷한 것도 받아줬는데 2024년 1월 1일부로 신규 판매를 금지하고 대신 소득공제 받을 것이면 성당마다 기명봉투를 비치해 그것에 현금을 넣어 봉헌하도록 지시했다. 이미 구입한 봉헌권이 있다면 그것을 쓰도록 했고 전량 회수되는 대로 바로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2.2. 개신교

개신교는 교단별, 교회별 교리가 통일되어 있지 않기에 헌금 방식도 천차만별이다.[14]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주일헌금, 십일조, 감사헌금, 절기헌금, 선교헌금[15], 구제헌금[16], 건축헌금[17]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예배 시간에 헌금을 걷는 순서가 따로 있어 헌금 바구니에 직접 헌금을 내지만, 헌금순서가 별도로 없는 교회는 들어오면서 입구에 비치된 헌금함에 직접 내기도 하고, 성도가 많은 대형 교회는 계좌이체ARS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요새는 인터넷뱅킹을 이용해서 자동이체를 하는 경우도 많다.[18]

종류 또한 다양한데, 십일조를 비롯하여, 감사헌금[19]과 그 밖의 선교헌금, 성전건축헌금, 구제헌금 등 특수 목적의 헌금 봉투가 주로 쓰인다.

주일헌금에는 굳이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헌금봉투를 사용하더라도 이름을 적는 것은 헌금하는 사람의 마음이라 강제하지는 않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어떤 교회에서는 학생들 출석부나 직장인들 출근카드처럼 각 교구별로 등록 교인들 전원에게 각자 이름이 쓰인 헌금봉투가 있고, 출석체크를 하듯 일요일 교회 예배 시작 전에 자기 이름이 쓰인 헌금봉투를 헌금봉투 보관장에서 찾아서 헌금을 넣고 날짜를 기입하여 헌금함에 넣어야 출석한 것으로 기입되는 경우도 있다.[20] 이 경우 교회 장부에 적혀 연말정산시 기부금영수증을 발급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남들이 헌금 얼마나 내는지 내기는 하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21] 대부분 교인이 헌금봉투에 이름과 날짜를 기입한다. 목사가 기도 형식으로 따로 챙겨주기 때문. 당연히 일반 교회는 일단 '나와만 주셔도 고맙습니다' 모드다. 또한 주보에 헌금액수는 기록하지 않는 교회가 많지만 무슨 이유로 헌금했는지[22]를 이름과 함께 올려주는 교회가 많다.

교회 주보에는 지난주에 누가 어떠한 헌금을 납부하였는지의 여부를 담는 란이 따로 구비되어 있다. 사실 신경 쓸 꺼리도 별로 없고, 보통 이걸로 교회 내 다른 사람과 얘기하면 "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식의 대답이 날아온다. 강요하는 곳은 위험한 곳이다.(…)[23] 돈 문제는 생각보다 민감해서 함부로 얘기하기 껄끄럽고 무엇보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사실, 주보에 헌금 명단을 적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위해서이다. 헌금이라는 게 불투명하게 운용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터라(혹은 내가 낸 헌금이 쥐도새도 모르게 중간에서 가로치기 당한다던지), 주보에 헌금을 낸 사람의 이름이 실리는 건 교회 입장에서 '당신이 낸 헌금을 우리가 정상적으로 잘 받았습니다. 혹시 헌금을 내셨는데 주보에 이름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하는 일종의 확인이면서 가장 최소한의 안정장치인 셈이다. 헌금도 단체에 대한 기부금에 속하기 때문에, 정상적이고 투명한 교회라면 기부금 영수증을 신청해서 발부받을 수 있다. 물론 연말 소득공제에도 기부금내역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개신교에는 감사 헌금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개인이 이런 저런 이유로 헌금을 얼마나 드리든 그건 개인 자유지만, 교회에서 미리 이사 감사 헌금, 입택(이사 후 실제로 집에 입주하게 되는 것) 감사 헌금, 졸업 감사 헌금, 입학 감사 헌금, 합격 감사 헌금, 결혼 감사 헌금, 임신 감사 헌금, 출산 감사 헌금, 돌 감사 헌금, 백일 감사 헌금, 승진 감사 헌금 등을 봉투를 미리 마련해놓고 비치하는 것[24][25]은 마치 그런 일이 있을 때 헌금해야만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각종 헌금 종류 가끔 '특별 기도회'라는 걸 여는데 이 기도회가 열리는 주간에는 일별로 헌금을 받는다.

어떤 교회에서는 구멍이 뚫린 헌금 봉투를 비치해 둔다. 이를 두고 개신교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간혹 '누가 얼마를 내는지 감시하려는 목적이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원래는 정산 때 봉투에 남은 돈이 있는지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현금을 넣어보면 눈에 잘 띄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헌금 계수하는 작업을 하는 재정부서 입장에서는 저 구멍의 존재 유무가 일하는 시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26] 요즘엔 간혹 그냥 흰봉투만 놔두는 교회도 있다. 이 경우 헌금봉투 왜 없냐고 찾아다니는 신자도 있다.[27]

정상적이라면 월급을 뺀 나머지 금액은 교회 기구[28] 등에서 따로 관리하거나, 아예 회계집사/장로나 회계과를 따로 두어 목사의 착복을 막으려고 한다. 또한,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의 심사와 의결을 통해 민주적으로 헌금을 사용한다.하지만 개신교의 특성상 개교회주의가 상당히 강하고, 또 권력의 집중이 일어나기가 쉬워서 목사가 딴맘을 먹으면 횡령이나 비리를 저지르기 쉬운 구조가 되어있다. 그 외에도 꽤 큰 문제가 되는 직분 헌금이라는 것도 있다. 매관매직[29] 하지만 웬만한 대형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어느 정도 쓴맛을 본 신자가 아니라면 자세히 아는 경우는 드물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로.

3. 이슬람

이슬람에도 헌금과 1:1 비교를 하기 어렵긴 하지만, 헌금과 유사한 개념인 사다까(모스크에 내는 돈)이 있기는 하지만 강제적이지는 않다. 보통 자카트와 사다까는 구분되는데 자카트는 자선을 행하는 것이고 사다까는 무슬림이 성원에 기부하는 돈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통 무슬림들은 어려운 자들을 돕는데 대상이 없거나, 성원 재건축, 이프타르 준비 등 돈이 필요할 경우 사다까를 내거나 한다. 사다까는 서울중앙성원 기준으로 모스크 내외부에 모금통을 비치하고, 알아서 내는 자율로 운영한다.

자카트를 해야하는 데 대상을 모르겠거나 어렵다면 성원에 내는 것을 추천하는 식으로 가르친다.


[1] 이 경우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사 사역비부터 청소, 관리집사 인건비, 사무직원 임금까지 모두 헌금에서 부담하며, 병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운영한다면 해당 교사들의 월급의 일부분을 지원하는데 쓰인다.[2] 사실 거슬러 가자면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에서 야훼에게 감사 제물을 바친 것이 그 시초라고 볼 수도 있다.[3] 이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빈자일등(貧者一燈; 가난한 여인이 4월 초파일에 찾아오는 석가모니불을 맞이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다른 사람들처럼 등불을 마련해 올렸는데, 그 등만이 폭풍우에도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설화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4] 실제로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나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의무적으로 헌금 내기를 합리화하기도 한다.[5] 한국 가톨릭에서는 의무 축일 미사와 주님 만찬 성목요일에만 내지만, 유럽에는 매 미사마다 봉헌을 하는 곳도 있다. 헌금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10센트 동전의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퍼진다[6] 원래 성찬 전례의 봉헌은 미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 향유 등을 신자 대표가 사제에게 전달하는 순서이다. 이후 헌금이 이어지는 것.[7] 유일한 예외는 천주교 군종교구인데, 훈련병들이 수입이 사실상 없기 때문있기야 하지만 벼룩의 간을 빼먹을 순 없으니. 군인가족 등이 미사에 참여했을 경우는 걷는다.[8] 원칙상 천주교 헌금은 모두 교구에 수거된 다음 신부들에게 월급처럼 재분배된다. 이 과정에서 소득세 같은 거 다 떼어간다.[9] 주로 신설된 성당이나 신자 수가 적은 성당인 경우에 간혹 있다. 본당 운영비는 항상 빠듯한데 돈 들어갈 곳은 많고(...) 신부님 입장에서도 이래저래 난감하다.[10]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과 가까운 주일[11] 보일러, 전기 관리 등[12] 교무금 통장 모양이 우리은행 통장과 똑같다. 물론 교무금 통장이라는 글자는 쓰여 있어 다른 통장과는 구별되고, 다만 마그네틱 테입이 없어 은행 내 ATM 기계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창구를 이용해야 한다.[13] 성당 사무장에게 현금을 내고 구입하는 방식이다. 구입할 때 실제이름과 세례명(동명이인으로 인한 착오방지 목적)을 알려주면 나중에 연말정산시 종교단체 기부금 명목으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었다.[14] 반드시 동산만 바쳐야 하는 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극단적인 사례로 이명박서울시장 재임 당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한 '미친 짓'을 들 수 있다. 킬포인트는 시장 직함과 서울특별시 휘장이 떡하니 들어가 있는 봉헌서로, 마치 서울특별시 공식 문서인 양 출력하여 제물로 바쳤다.[15] 파송선교사 생계비 지원이나 국내/국외/군선교지 교회 지원과 같은 선교사역에 관련된 비용으로 쓰인다.[16] 교회 내외의 취약계층 지원이나 컴페션과 같은 자선단체 지원 혹은 교회 자선사업 운영과 같은 비용에 쓰인다.[17] 이 경우는 교회에서 필요성이 생겨서 자체적으로 캠페인 비슷한 걸 시행해서 건축헌금을 모으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월세나 성전유지비로 사용된다.[18] 이 부분은 참작해야 할 게, 교회에서 편의상 자동이체를 권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 비슷한 비율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자동이체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견물생심 때문이라고.[19] 부활절 감사헌금, 크리스마스 감사헌금, 신년 감사헌금, 생일 감사헌금, 추수감사절 감사헌금 등등[20] 이런 경우는 커뮤니티의 집단주의가 강한 곳에서나 가능하고 그냥 혼자 예배만 드리고 간다면 별 상관 없는 부분이다.[21] 만약 신경쓴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일반적으로 남들 수입 캐묻고 다니는 사람 없는 것처럼.[22] 주일헌금은 예외. 각종 감사헌금이나 십일조, 교회 절기 헌금 등이 해당한다. 아니면 그냥 '~한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23] 예를 들면 '너 십일조 안 내면 하나님께서 니 인생에 저주를 내리실 거야(...)' 라던가...[24] 대형교회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어떤 명목으로 헌금해야 하는지 봉투를 마련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헌금하는 사람이 직접 써도 될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이런 풍조가 소형교회까지 흘러들어가고 있는 점은 확실히 문제.[25] 보통의 교회에서는 그냥 감사헌금 하나에 어떠한 이유로 감사헌금을 내는지에 대해 적을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요새는 크게 감사헌금/절기헌금(부활절, 크리스마스)/추수감사헌금(추수감사절)로 간소화되어 있다. 물론 대형교회 같은 경우 저렇게 감사헌금 시리즈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점은 문제라고 지적할 만하다.[26] 만약 당신이 헌금 계수를 하는데, 수천 개의 봉투를 일일이 손으로 다 열어서(...)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27] 보통 노년의 신자들이 그런데, 이러한 분들은 원래 헌금봉투를 준비해서 넣어두고 헌금을 내는 데에 익숙해져서 그렇다.[28] 예를 들어 장로회는 개교회마다 있는 장로회의, 감리교 같은 경우 개교회 내의 구역회나 지방회[29] 직분을 주고 헌금을 하라 하지, 헌금을 해서 직분을 주는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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