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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24 21:53:56

세습



1. 개요2. 역사3. 장점
3.1. 사적 결속3.2. 확실성
4. 단점
4.1. 불평등4.2. 계승권 분쟁4.3. 인간 수명의 불확실성4.4. 능력과 직결되지 않음4.5. 선후임자의 위계로 인한 보수성4.6. 퇴임의 어려움
5. 유형
5.1. 정치적 권력의 세습
5.1.1. 정치인의 후광, 정치권 세습
5.2. 경제적 재력의 세습
5.2.1. 기업의 소유권, 경영권 세습
5.3. 직업 세습
5.3.1. 정치인의 세습5.3.2. 운동선수의 세습5.3.3. 연예인의 세습
5.4. 기타
6. 세습 제도 및 법률
6.1. 조선에서6.2. 일제강점기
7. 사례
7.1. 현실에서7.2. 대중 매체에서
8. 세습을 없애기 위한 노력9. 기타10. 관련 문서

1. 개요

/ Heredity[1]

한 집안에서 후손에게 신분, 재산, 직업 등을 세대에 걸쳐서 물려주는 행위. 단순히 사람이 사망했을 때 재산을 물려주는 상속과는 엄연히 다른 의미지만, 상속을 통해 세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의 권리의무 등을 이어받는 것을 뜻하는 승계(承繼)의 하위 개념으로 볼 수 있는데 세습은 가문의 후계자에게 승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역사

원시 사회에서 인류는 일반적인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당시에도 각각 개별적인 서열이나 우두머리 등이 존재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적 측면이 발달하게 되는데 네안데르탈인이나 현대 인류 초기 사회에서는 원시적인 종교가 존재해 사제[2]와 같은 기초적인 계급 사회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들이 존재함에도 당시 시절에는 세습은 물론이고 상속의 개념조차 없었다. 우두머리나 지도자는 따로 그 직책이 직계 후손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힘이 강한 자나 머리가 비상하여 리더십이 뛰어난 자 혹은 연륜이 깊어 경험이 풍부한 자 등 능력 위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주술사 역시 이와 비슷했다. 경제적 부분에서도 수렵, 채집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다 같이 사냥을 해서 공평하게 분배하는 등의 시스템이었고, 생계수단으로 이용되는 동물의 이동에 따라 장소도 이리저리 유동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따로 모아두는 재산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명 사회에 한정한다면 세습의 역사는 인류 역사 거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인류가 농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문명이 만들어지고 사유재산과 같은 개념들이 생겨남에 따라 세습의 기초적인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농경생활을 함으로서 사람들은 정착을 하게되었고 일용할 양식들의 잉여분에 따라 모아두게 된다. 이때 본인이 사망하면 자식에게 해당 재산들을 넘기는 등 상속 및 세습의 기초적인 형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전과 같이 단순히 신체적 능력으로만 계급이 생성되지 않았고 재력에 따라 영향이 커지면서 각각의 개별간에 일개 서열 등을 넘어선 신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신분도 역시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면서 세습의 형태는 공고화된다.

세습이 지도자 선출 방식의 주류에서 벗어난 것은 근대 이후 권위주의의 탈피 및 공화주의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이전처럼 국가나 조직이 지도자의 것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원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그 과정에서 지도자로서의 정통성 역시 혈연보다는 능력주의, 민주주의적 합의가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화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가 지도자의 세습을 철폐하고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3. 장점

3.1. 사적 결속

세습은 가족 또는 친척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습하는 사람과 후계자 모두의 입장에서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남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편이고, 세습받은 재산, 지위 등에 대한 애착이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얻은 경우보다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입장에서도 재산을 온전히 자신의 소유라고 인식함으로써 책임감이 생길 수 있다.[3]

3.2. 확실성

재산이나 지위 등을 물려주는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볼 수 있다. 지위 등을 물려줄 때 수많은 '후보자'들 중 한 명을 뽑으려면 가장 적합한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해서 면담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지만, 세습하는 경우에는 후계자로 적합한 사람이 한두 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담이 훨씬 적다. 더욱이 후계자가 매우 어렸을 때부터 확정되므로 조기교육을 시킬 수도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에 따라 세습 제도가 확립된 군주제는 제법 안정성을 갖춘다. 특정 절차로 지도자를 뽑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지역에서 능력주의로 왕을 뽑으려고 하면 서로 왕이 되겠다고 반란 등 군사적 실력 행사에 나서서 나라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세습을 하면 오직 왕의 아들만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권력왕실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기반으로 국가의 권력을 온전히 한 방향과 목적에 집중시킬 수 있다. 또한 군주의 권위와 정통성이 드높아져 극단적 사회 갈등을 원만히 수습하는 심판자이자 중재자가 된다. 격렬히 대립하는 양 진영의 리더들조차 정통성 있는 군주가 중재할 경우에는 일단 한 수 접고 협상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장남 상속의 경우[4] 차남 이하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마인드를 가지게 해 왕위쟁탈전을 예방하여 유혈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5]

4. 단점

4.1. 불평등

세습의 가장 큰 단점을 꼽자면 바로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특정 직업에서 해당 가문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기술을 이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기술을 익힌 그 가문의 사람이 필요하거나, 자손 이외에 물려받을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경우 등 객관적으로 보기에 세습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자손 외의 '후보자'의 '물려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등권 침해로 인해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박탈되어 사회적 계층이 확고하게 굳어질 수도 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세습에 의하여 특정 신분이나 직업이 대물림되기 때문에 적성 등에 상관없이 직업이 강제로 선택되거나 노비 등이 되어 다른 진로는 포기해야 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만약 다른 진로에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노비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다면 국가적으로도 매우 큰 손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각종 분야에서 세습이 이전 시대에 비해 줄어든 것은 이 요인이 제일 크다.

4.2. 계승권 분쟁

위 장점에서 세습 제도가 확실하고 안정적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안정적인 세습 제도가 확립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만약 적장자 우선 등의 원칙이 없거나, 있더라도 사회 전반에 확고하게 인식이 굳어져있지 않으면 유력자가 피터지게 피터지게 싸우는 왕자의 난 같은 콩가루 집안이 될 가능성이 산재해 있다. 적장자에 위치에 있는 후보 입장에서 보면 같은 어머니 사이에서 난 동생들이야말로 가장 큰 위협이 되고, 그 동생들이 형을 제끼고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뿐더러 굳이 장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형제들은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할 정적이므로 자신의 형제와 치열한 투쟁을 해야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숙청의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유럽처럼 각국의 왕조가 친척 관계로 얽히고 설킨 곳은 자칫 잘못하면 내정간섭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같은 대규모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거의 모든 군주제는 설령 사회 전반의 제도나 법의 형식이 미비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계승 구도를 대충 처리했다가는 피바람이 불 수밖에 없단 것을 경험으로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확고한 왕위 계승 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왕위 계승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통자의 급사 등의 사태가 발생하여 정통성이 고만고만한 여러 방계혈통들만 남게 되면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내분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 반란과 내전으로 치달아 나라를 말아먹은 사례도 많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세습제 자체의 특성이 군주 직계와 가까운 왕족들이 사라지게 하고 다소 먼 방계혈통들만 남게 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특정 왕족이 군주의 직계 왕위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벌어져 골육상쟁과 숙청이 행해질 경우 세습제의 특성상 숙청한 왕족의 일가 중에서 계승권을 가진 사람이 한명이라도 남으면 후환이 되므로 아예 일가를 멸족시켜 씨를 말려버리는 형태로 잔혹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역사가 흐르며 이런 사건들이 누적되게 되면 군주 직계 가문과 가까운 친족 왕족들의 씨가 말라버리게 되고 이상황에서 직계까지 단절되면 상술했듯이 먼 방계들만 남아서 계승권 분쟁과 혼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왕위 계승 제도는 어디까지나 '왕조 내의 교체'이고, 세습군주제에서 왕조를 교체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반역으로 여긴다. 즉, 왕조를 새로 정하는 제도를 갖춘 곳은 드물다.[6] 왕조 내 세습 외의 다른 계승 원칙이 부재한 것이다. 그래서 세습제 국가들은 찬탈이나 역성혁명 등으로 왕조가 망하거나 교체될 경우 그때마다 예외없이 극심한 붕괴 후 혼란기를 겪었다.

세습제 하에서의 계승권 분쟁이 특히 더 위험하고 험악한 이유가 있다. 세습이란 결국 권력의 영구적인 독점이다. 일단 한번 왕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하면 자손 대대로 영원히 권력을 독차지할 권리를 얻는다. 반면 한번 왕위를 잃거나 왕위를 차지하는데 실패하면 역시 자손 대대로 영원히 왕위를 차지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것은 심지어 친형제라도 얄짤없다. 친형제일지라도 왕위를 얻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후손들은 더 먼 방계가 되어 오히려 더 왕위에서 멀어진다. 말그대로 모 아니면 도 뿐이니 타협의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공화국이나 세습제가 아닌 선거군주제의 경우 이번에는 우리가 권력을 잡고 다음번에는 너희가 권력을 잡을 수 있게 밀어주겠다는 식으로 각 세력들끼리 타협이라도 가능하고 설령 타협까진 되지 않더라도 이번에 기회를 놓쳐도 다음번 선거에서는 기회가 있으니 권력을 놓친 반대세력이 참고 기다릴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세습제에서는 한번 밀려나면 다시는 영원히 기회가 없으니 왕위를 놓친 반대세력이 다시 왕좌에 가기 위해서는 암살이나 반란, 내전 등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쓸수밖에 없고 당연히 왕위를 차지한 세력도 이러한 위험성을 우려하여 일말의 자비도 없이 반대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을 벌이게 된다. 그러니 일단 계승권 분쟁이 벌어지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피튀기는 골육상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세습군주제에서 왕위계승권으로 인한 반란은 오히려 다른 반란들보다도 훨씬 진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다른 반란은 주모자만 제거하면 어떻게든 진압할 수 있지만 권좌에서 밀려난 왕족이 일으킨 반란은 아예 대를 이어가면서 끈질기게 반항하기 때문이고 심하면 반란을 일으킨 왕족이 아예 스스로 군주를 칭하고 지방에서 새로 왕조를 수립하여 나라가 쪼개져 분열되는 경우도 있다.

4.3. 인간 수명의 불확실성

장점 문단에서는 세습군주제가 혈통으로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드높여 왕실에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 국가내의 혼란과 내분을 막고 단합시켜 안정을 이룰 수 있다 했지만, 바꿔말하면 이러한 혈통적 정통성을 가진 후계자가 없거나 사라질 경우 오히려 훨씬 더 심한 혼란과 불안정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 세습제는 대체로 인간의 수명을 임기로 한 종신 제도로 운영되는데, 문제는 인간의 수명이란 게 현대 의학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복불복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전근대의 열악한 의료환경 때문에 기껏 낳은 후계자가 병으로 요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떻게 성장한 후계자가 사망할 위험성도 존재하였고[7] 군주 본인이 후사를 보기도 전에 병으로 죽거나 암살당하는 경우도 있고[8] 불임이라 후사를 보는 게 불가능할수도 있다.[9] 과거에는 전란도 많았으니 정말 아무 문제 없이 건강했다 한들 전쟁으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나마 후계자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요절했다면 수렴청정 등으로 대리인이 대신 통치를 할 수 있지만 대리인이 대신함에 따른 통치 행위의 정당성의 문제,[10] 권력 관계의 혼란은 어쩔 수 없으며 세월이 흘러 왕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대리인이 쥔 권력을 놓지 않는 등의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게다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상태에서 요절하거나 후계자하고 같이 사망하는 경우[11] 윗문단에서 상술했듯이 방계혈통들끼리 계승권 분쟁으로 번질 위험성이 높았다.

요절보다야는 문제가 덜하지만 전대가 지나치게 장수하는 경우에는 계승이 너무 늦게 이루어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입헌군주제의 왕처럼 실권이 없다면 찰스 3세처럼 70살 노인이 되어 자리에 올라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지도자의 기초 체력이 중요한 직종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너무 오래 유지가 된다면 임기를 종신으로 하지 않고 생전에 후계자에게 지위를 넘겨주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후술할 퇴임의 어려움 문단에서 보듯 세습 제도는 특유의 위계 구도로 인하여 생전 계승을 하면 권력이 이중화되어 불안정함이 발생하곤 한다. 혹은 후계자가 늦어지는 계승에 불만을 품고 선임자에게 압력을 넣어 강제로 양위시키는 등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4.4. 능력과 직결되지 않음

인간의 능력이 제법 많은 폭에서 유전된다고는 하지만[12] 대체로 좋은 혈통이 우수한 능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호부견자 같은 문서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부모가 능력있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자녀가 인간말종인 케이스도 드물지 않게 나오고 유명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 중에도 의외로 가정이나 부모는 멀쩡한 경우가 꽤 있다.

때문에 세습제를 운용하다 보면 상식 이하의 무능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얻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아무리 스승들이 붙어 제왕학을 가르친다고 해도 한계가 명확하며, 말 그대로 평범한 조직이라면 말단 관리나 직원으로조차 앉힐 수 없을 사람이 국가나 조직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앉게 되는 현대 사회에서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극단적인 경우 10살도 안된 어린아이나 심지어 막 태어난 갓난아기나 아예 진혜제 같은 경우처럼 지적장애인혈통 하나로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경우 후계자가 될 자녀가 진짜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라고 하더라도 혈통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습제에서는 그런 사이코패스 후계자가 승계받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세습제의 폐단이 낳은 것이 수양제, 충혜왕, 후폐제, 김정일 같은 사례이고 현대 한국에도 조승연최철원 등이 있다.

4.5. 선후임자의 위계로 인한 보수성

세습 제도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유인즉 선임자가 후임자의 존속(대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습은 혈통에서 권위와 정당성을 찾는 제도이기에 와 같은 혈통적 윤리 이념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데, 때문에 후임자는 혈통적 상위자인 선임자를 비판하기가 매우 어렵다. 보기에 따라서 선조가 과오를 저질렀다고 지적하는 불효막심한 행위로 낙인찍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전제군주라 해도 신하들이 "선대 왕은 그러지 않았다" 식으로 선대 왕을 거론하면서 비판하면 신하는 무시할 수 있어도 조상인 선대 왕을 비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13] 때문에 인간 사회의 진전이 별로 없는 시기에는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는 시기에는 이 보수주의가 발목을 잡는다. 이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전임자를 어려워하기는커녕 정권교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매우 대조된다.

4.6. 퇴임의 어려움

의외로 이 부분도 단점이다. 권력자 입장에서 권력임기가 없다는 것은 마냥 좋을 것만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사람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군주도 사람인 만큼 감정적 피로가 쌓이고, 노쇠하며, 때로는 병에 걸린다. 흔히 일반인들은 높으신 분들을 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먹는다는 인식을 갖지만, 현실에서 절대 권력과 업무량은 필히 비례하기 때문에[14] 절대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군주, 독재자일수록 오히려 업무량이 많고, 매번 결단을 내리기 전에 홀로 고뇌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현실의 일반인도 한 직장에서 몇 년 일하다 보면 권태감이 쌓이고 이직과 퇴직의 유혹에 시달린다. 그 일반인은 상상도 하기 힘든 업무량을 도맡는 군주면 어떻겠는가? 결국 군주도 사람이고, 그래서 다 때려치우고 싶어하는 마음도 분명히 생긴다.

그렇지만 생전 퇴위는 어렵다. 여기서 '여기저기 미움받는 독재자라면 물러나면 죽을까봐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자기 자손이 차기 군주가 되는 세습제 군주정에선 그냥 내려놓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이는 매우 현대적인 시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천하에 지존은 단 한 명뿐이어야 하는게 철칙이었다. 아무리 아비와 아들이라 해도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는 없다. 여기서 세습제 군주정의 문제가 돌출되는데, 아무리 아들이 현직 군주라고 해도 아비는 전직 군주에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위상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인세이에서 알 수 있듯 결국 상왕이 존재하는 순간 권력은 분리되기 마련이고, 분리된 권력은 그 순간부터 절대 권력이 아니다.[15] 조선 태종이 '양위'와 관련해 엄청난 미덕을 남겼음에도, 이후 조선에는 이와 같은 정상적 양위가 없었고, 신하들도 '과거의 빛나는 선례'임을 들어 양위를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조선 선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오히려 현직 군주의 양위 파동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에 이용되곤 하였다.[16]

여튼, 천하의 강희제조차 말년에 퇴직하는 신하를 보고, '신하는 사직하고 물러날 수도 있지만 천자인 짐은 그럴 수도 없다.'라고 하기도 했다는데, 일단 왕이 한 번 되면 바로 기호지세가 되어[17] 죽을 때까지 왕 노릇을 해야 했다. 이는 격무에 치이고 나이를 먹어 노쇠해 진 상태에서도 그 험난한 국정을 운영해야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년에 군주가 정치에 뜻을 잃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 조선 순조 말년처럼 권신과 탐관오리가 들끓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곤 했다.

5. 유형

세습의 유형은 어떤 것을 세습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크게 보면 재산을 세습하는 유형과 직업, 권력 등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왕위 등 정치적 권력을 세습하는 유형과 기업의 경영자 직위를 세습하는 유형, 토지나 건물을 세습하는 유형 등이 있다.

5.1. 정치적 권력의 세습

정치적 권력을 세습하는 경우, 정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정책 등과 상관없이 권력이 분배되기 때문에 각종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과 같은 국가의 최고 통치자라는 자리를 자질이 부족한 후계자에게 세습한다면 국가의 운명이 기울어질 수 있다. 정치적 권력 세습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북한의 3대 세습을 꼽을 수 있다.

군주의 지위를 세습하는 제도를 세습군주제(世襲君主制)라고 하며, 이 중 왕권을 세습하는 것을 왕위 세습(王位世襲)이라고 하며, 왕위 세습을 통해 왕권을 강화할 수 있다. 이렇게 군주의 지위가 계속 세습되는 나라를 세습 군주국(世襲君主國)이라고 한다. 의원의 지위를 세습으로 취득하는 경우, 이 의원을 세습 의원(世襲議員)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세습이 꼭 군주제나 귀족제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군주나 귀족이 존재하지 않는 공화국에서도 정치권력의 세습이 이루어지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북한의 3대 세습처럼 정치세습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전부 독재정권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정치인을 선거로 뽑는 민주주의 국가에도 박근혜조지 부시 2세 같은 유력 정치인의 2세나 친족들이 가족의 후광에 힘입어 일반인보다 수월하게 정치에 입문하고 대를 이어 정치를 하는 사례는 충분히 존재한다.[18] 자세한 내용은 독재자/세습, 정치인 가문 문서 참조.

5.1.1. 정치인의 후광, 정치권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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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경제적 재력의 세습

정치 분야와는 달리 오늘날에 재력은 상속을 통해 합법적으로 세습된다. 특히 기업의 지분과 같은 거액의 부를 세습하여 기업을 운영할 권리를 얻은 일가를 재벌이라고 한다.

경제적 재력을 세습하는 경우, 기존에 부유층이었던 가문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세습을 통해 그 부를 이어 나갈 수 있지만 빈곤층이었던 가문에서는 가난을 물려받은 후계자 역시 자수성가하지 않는 한 빈곤층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세습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으므로 부의 세습이 많이 이루어지는 국가일수록 경제적 지위를 역전시키는 것은 힘들다고 할 수 있으며, 수저 계급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고려에서처럼 토지를 세습하는 경우가 있다. 관리들이 국가 또는 봉건 영주로부터 세습받은 토지를 세습 영지(世襲領地)라고 한다.

현대의 자본주의를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라고 하기도 하는데, 경제적 재력을 세습받은 사람들이 자수성가한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경제적 지위를 누리는 사회를 말한다. 프랑스의 파리 경제학교 교수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통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재산이 세습되기는 하지만 후계자들이 자유롭게 처분하는 것이 제한되는 경우, 이를 세습재산(世襲財産)이라고 하며, 근대법에서는 이를 잘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연금의 세습이 이루어지는 경우, 이를 세습연금(世襲年金)이라고 한다.

5.2.1. 기업의 소유권, 경영권 세습

기업회장 직위를 세습하여 그 소유권과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습하는 사람과 세습받는 사람이 부자(父子) 관계 같은 가족 또는 친척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후계자가 그 전에 기업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세습 직전에는 그 기업의 현재 상황 또는 경영 철학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통해 전략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표적으로 x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맛집들을 들 수 있다. 수십년째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 맛집들의 상당수가 극소수의 가족에게만 그 소유권, 경영권 및 업무의 핵심 노하우를 세습하고있다. 즉, 기업이 하나의 작은 왕국인 셈이다.

그러나 후계자의 경영 실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기업의 미래가 불확실해진다는 단점이 있고 더불어 형제의 난이나 왕자의 난 같은 경우처럼 서로 후계자가 되려는 싸움을 하다 정작 기업경영은 도외시하여 기업경영이 악화되거나, 아예 기업이 분할되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실 기업을 미성년자 같이 경영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세습한다고 하더라도 그 세습자의 개인회사거나 회사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졌거나, 주주들을 잘 설득해 동의를 얻어 합법적으로 경영권을 받는다면 재산권의 자유처분을 인정하는 대한민국에서 법적 도덕적으로도 막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특히 한국의 재벌 상당수가 순환출자로 적은 주식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라서 대부분의 재벌들은 승계를 할 정도의 주식이나 지지가 모자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들이 억지로 세습을 해주려고 오만 불법행위들이 벌어진다.

회사의 경영자 직위를 세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계자에게 상당한 부가 축적될 것이고, 그렇다는 보장이 없는 경우라도 회사 자체를 재산으로 볼 수 있으므로 부의 세습의 한 가지 유형으로 볼 수도 있다.

경영권 세습에 대해 논하는 '재벌의 경영권세습에 관한 회사법적 연구'(A study on the succession of management power of chaebol in a context of corporate law)라는 제목의 논문(2005년 발행)도 있다. 네이버 전문정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5.3. 직업 세습

자녀들은 부모의 직업에 대해 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거나 호기심이나 흥미,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고 부모의 직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쉬우며, 부모가 업계에서 인맥이 있다면 취업도 용이할 수 있으니 자발적으로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기업 생산직 및 기술직이 끝판왕인데, 2021년 10월 기준 현재까지도 대기업 생산직 및 기술직의 경우 퇴직을 앞둔 부모의 인맥 덕분에 자녀들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기업 역시 개인의 경제적 소유물로서 상속이 가능하며, 채용에 있어서도 개인적인 권한을 발휘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5.3.1. 정치인의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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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운동선수의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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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 연예인의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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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기타

그렇다면 학벌은 어떨까? 학벌은 대학 입학을 위한 노력에 의하여 결정되고, 이러한 노력의 의지는 세습되지 않기에 세습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벌 역시 세습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의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것은 "부유한 가문에서는 서류 조작이나 뇌물, 기여입학제, 돈을 쏟아부은 사교육 등을 통해 상위 대학에 입학할 수 있으며, 부가 세습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해당 가문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부의 세습이 학벌의 세습을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일부 대학에는 동문 자녀의 입학 가능성을 높여 주는 제도인 '동문특혜' 제도도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학벌을 진짜로 세습시키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하는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2010)라는 책도 있다.

한겨레 기사에서는 여러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실력주의의 문제점을 학벌주의의 문제점으로 오판하였고, 이로 인한 잘못된 대처의 결과로 우리 사회가 '신세습사회'로 가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을 들 수 있다.

신분제가 있는 경우 특정 신분이 세습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귀족 신분이 세습되어 대대손손 부를 누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노비 신분이 세습되어 대대손손 노비로 사는 경우도 있다. 신분제를 통해 신분이 계속 세습되면 낮은 신분인 사람의 경우 후손들이 신분제에 따른 제약을 피할 수 없게 되므로, 평등사회를 이루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조선시대에는 노비 신분이 계속 세습되도록 하는 노비세습제(奴婢世襲制)가 있었는데, 1886년(고종 23년)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신분제도 문서로.

한국 개신교에서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자신의 담임목사 지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교회 세습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개신교계의 대형교회 세습 사례는 1995년 충현교회를 시작으로 2000년대부터 유사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2010년대를 기점으로 우후죽순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는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명성교회 세습 논란도 이 시기에 발생했다. 다만 대놓고 물려주기는 어려운 사회 분위기이니 형식상 교회 당회가 현 담임목사의 아들이나 사위를 청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6. 세습 제도 및 법률

세습에 관한 제도 또는 법률이 있는 국가도 있는데, 이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6.1. 조선에서

경국대전 예전편(禮典篇)의 노비토전사패식조(奴婢土田賜牌式條)에서는 다음과 같이 법으로 규정하여 특정 가문에서의 노비, 토지 세습을 허용하였다.
그대 아무개는 아무 공(功)이 있어 장획(藏獲:사내 종과 계집 종) 몇 구(口)와 토지 몇 결(結)을 특별히 그대에게 상을 주어 영구히 세전(世傳)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같은 예전편의 향리면역사패식조(鄕吏免役賜牌式條)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특정 가문의 권력 세습을 허용하였다.
그대 아무 도(道) 아무 읍(邑) 향리 아무개는 아무 공이 있어 너의 향역을 면제하여 영세에 미치도록 특별히 명한다.
조선의 또 다른 법전인 속대전의 공장조(工匠條)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사기 장인의 직업을 계승하도록 하였다.
사옹원(司饔院) 사기장인(沙器匠人)의 아들은 다른 일에 취역시킬 수 없다.

6.2.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 시행되었던 법률 중 '조선귀족세습재산령'(조선총독부제령 제3호, 1927.2.10 공포, 1928.1.1 시행)이 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이 법률을 통해 당시 귀족의 재산 세습에 대하여 규정하였다. 이 외에도 왕·공가궤범(조선총독부황실령 제17호, 1926.12.1 제정, 1926.12.9 시행)을 통해 왕계 및 공계의 세습에 관하여 규정하였다.

7. 사례

7.1. 현실에서

7.2. 대중 매체에서

8. 세습을 없애기 위한 노력

9. 기타

10. 관련 문서


[1] '세습' 외에 '유전'이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 파생된 형용사로 'Hereditary'(세습되는)가 있다. '세습하다'는 'Pass on power to ~'라고 한다. 예를 들어 '그의 아들에게 세습하다'는 'Pass on power to his son'이라고 한다.[2] 정확히는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주술사 정도로 보면 된다.[3] 다만 자신의 소유라고 인식한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효율성으로 이어지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며, 공적 분야에서는 이러한 강한 사적 결속이 도리어 공과 사의 구별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4] 실질적인 여러 여건들을 고려하자면 장남 상속제라는 것은 "장자만 상속 가능하다" 식보다는 "장자 우선 상속" 식으로 기능할 때가 많다. 전자 식으로 운영하면 장자가 갑자기 사망한 경우의 혼란을 피할 수 없다.[5] 동아시아, 유럽과 달리 장자 상속 원칙이 없었던 중동에서는 매 세대마다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다가 오스만 제국은 초창기에는 술탄이 바뀔 때마다 수십명의 형제들이 몰살당하고 나서 계승자 이외에 계승권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모든 왕자는 어릴 적부터 '새장'에서 생활해야 했다.[6] 몇몇 지역에서는 항시적으로, 혹은 왕조의 단절 시기에 귀족들의 선거로 군주를 선출하는 선거군주제를 운용하였다.[7] 조위가 점차 망가지며, 이후 사마씨에게 찬탈당한 이유를 조앙의 전사로 인해 발생하여 이후 계속 이어진 후계자의 정통성 부족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8]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헬레니즘 제국의 붕괴가 대표적이다.[9] 대표적인 사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일단 도요토미 츠루마츠, 도요토미 히데요리라는 후사가 있긴 했지만, 여자 좋아하는 히데요시가 이미 출산 경험 있는 유부녀까지 데리고 그렇게 놀아제꼈는데 오직 요도도노 한 사람만 후사를 봤다는 것에서 히데요시는 고자였고, 요도도노가 바람을 피웠다고 보는 것이 당대, 현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는 멸문지화를 겪는다.[10] 아무리 대리한다고 해도 본인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대 대한민국의 제도로 보자면 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을 대리하지만 통치 행위의 폭에는 제한이 큰 것과 같다.[11] 전염병 등에 취약했던 전근대 시대에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았다.[12] 이 특징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과 함께 혈통주의의 옹호 근거가 되곤 한다.[13] 이에 현직 군주는 "조상님의 행동은 옳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약간만 고치겠다", "백성을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식으로 정중하게 신하를 설득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피로가 누적되었다.[14] 기본적으로 절대 권력이라 함은 지도자의 명령이나 의도가 사회 하부까지 절대적으로 퍼져 이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쉴 새 없이 조직 전체를 지도하고, 감시해야 하는 한편, 자신의 명령이나 의도가 자아낼 결과를 최대한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자신이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특정 권력을 부하들에게 조금씩 이양하는 순간 절대 권력의 허상은 사라지며 권신이 종양처럼 들어선다. 아돌프 히틀러는 행정업무를 극히 혐오했는데, 그 과정에서 히틀러의 절대 권력에 기생한 마르틴 보어만이라는 권신이 생겨났다. 반대로 이오시프 스탈린은 온갖 노환에 시달리면서도 업무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절대 권력을 유지했다.[15] 비단 군주제뿐 아니라 삼권 분립 문서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명확히 영역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권력 분립은 매우 어렵다.[16] 때문에 권력을 지니지 않는 상징적 군주는 종종 양위를 하곤 한다. 어차피 실질적 권력이 없으니 권력의 분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일본 아키히토는 생전 퇴위를 한 바 있다.[17] 조선 태종이 한 말이다. 정확히는 '18년 동안이나 호랑이 등에 탔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고 하였다.[18] 물론 이런 경우는 국민의 투표로 정당하게 집권한 것이기 때문에 독재자는 당연히 아니다.[19] 다만 15세기경부터 신성 로마 제국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황위를 독점한 것과 같이, 형식상 선거군주제라도 실제로는 세습과 비슷한 경우가 꽤 있었다.[20] 더불어 구세군성공회 등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세습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교단도 있다. 이교단들은 교회를 개척하는 주체가 목회자가 아닌 교단에서 교단의 이름으로 건물을 구해서 목회자를 일종의 직원형식으로 데려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의 교회가 목회자의 소유가 아닌 교단의 소유이다. 거기에 목회자들이 죽을 때까지 한 교회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근무하는 교회를 옮기도록 하고 있는 교단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21] 물질에 욕심이 있으면 개척교회 목사를 하느니 그냥 취직이나 장사를 하는 게 훨씬 나은 일이니...[22] 예를 들어, 목사끼리 의형제를 맺고는 자신의 아들들을 서로 상대방 교회의 부목사(일명 세자 목사)로 넣은 뒤 그 교회를 세습시키는 방법이 있다. 물론, 그 목사들이 의형제 지간인지는 알 길이 없다. 또 다른 편법으로는 아버지 목사가 은퇴할 때 임시로 다른 목사를 세운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후에 임시로 세운 목사를 내보내고 아들 목사를 세우는 방법도 있다.[23] 물론 한국에서도 조윤형, 조순형, 유한열, 정대철, 김홍일, 남경필 등등처럼 지역구를 대물림하는 사례가 없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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