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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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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skyism

1. 개요2. 배경3. 이론
3.1. 연속혁명론3.2.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反-인민전선)3.3.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개념과 중요성3.4. 퇴보한 노동자 국가론3.5. 문화 이론3.6. 불균등 결합 발전3.7. 후기자본주의
3.7.1. 형성 원인
4. 국제조직
4.1. 한국 볼셰비키그룹
4.1.1. 상징4.1.2. 노선
4.1.2.1. 소련과 북한 등의 사회 성격에 대한 입장4.1.2.2.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
4.1.3. 활동
4.2. 중국
5. 수정주의 계열6. 한국에서의 입지와 영향력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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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사회주의, 공산주의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의 사상을 따르는 사회주의 운동 및 이념의 분파.

스탈린주의가 자칭 마르크스-레닌주의인 것처럼,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자칭은 '볼셰비키-레닌주의'이다. 트로츠키 본인이 스스로를 '볼셰비키-레닌주의자'라고 정체화했기 때문이다.

2. 배경

러시아 혁명은 세계 최초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 이행기 사회에 존재하는 노동자 국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몇 가지 갖춰야 할 필수요소들이 빠져 있었다.

첫째, 러시아는 생산력이 극도로 부족했다. 트로츠키 본인이 불균등 결합 발전이라 지칭한 독특한 경제 형태 때문에, 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최첨단 산업이 발달하고 공장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반면 국토의 대부분은 여전히 농업 중심의 후진적인 사회 구조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파이를 나누려고 해도 일단 나눌 파이 자체가 너무 작았다.[1]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면서 동시에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집중과 독점'으로 표현한) 내적 모순이 심화되어, 허경영 말처럼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인 수준에 도달해야 실현 가능하다. 그렇게 내재된 모순이 극에 달하여 버틸 수가 없게 될 때 자본주의 체제가 변증법적으로 해체되고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나라에 정말로 돈이 없는 상황에서는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그 때문에 먼저 파이를 키우기 위하여 신경제정책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생산력이 빵빵한 독일이나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같은 서유럽으로 혁명을 수출하고 확산시켜서 러시아 혁명을 유럽 혁명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볼셰비키의 궁극적 목표였다. 스탈린을 위시한 관료집단은 이걸 뒤엎어 버린 것이다.

둘째, 혁명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군사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신생 노동자 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봉쇄하여 말려 죽이려고 달려든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전쟁에서 죽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 귀농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야말로 적백내전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서유럽 선진 공업 국가들의 노동자들에게 SOS를 쳐서 혁명을 서유럽으로 확산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을 지도할 혁명적 노동자 전위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던 서유럽에서 혁명은 연거푸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핀란드, 영국 등에서 혁명적 노동자 운동이 점화되었고 독일 바이에른과 헝가리에서는 잠시나마 노동자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러시아 제국의 봉건 귀족들 가운데 일부가 은근슬쩍 공산당에 입당하여 관료집단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들을 깔끔하게 때려 죽이지 않고, 반성문 한 장 받고는 살려 주니까, 이들이 과거를 세탁하고는 공산당에 입당해서 당의 관료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중심에는 다름아닌 이오시프 스탈린이 있었다.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이 빠르게 성장하면 정말 큰일날 것을 레닌트로츠키는 잘 알고 있었다. 나라에 돈도 없는데, 새로운 도둑놈이 탄생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들 관료집단을 때려잡고 당에서 축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레닌은 1922년의 제 11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책임 있는 직위를 채우고 있는 4천 7백 명의 공산주의자들과 이 거대한 관료 기구, 이 엄청난 집단을 생각하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이 이 집단을 지도하고 있다고 진실로 말할 수 있을지 나는 크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레닌은 1923년 무렵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관료집단을 때려잡고자 다음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이들을 족칠 계획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해에 본인의 마지막 저작인 '소수정예가 더 좋다'에서는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전면전과 국가 감찰기구인 라브크린[2]의 축소를 주장하였다. 그러던 중인 1924년 1월에 레닌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3]

레닌 사후에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에 따라 트로츠키는 소련에서 축출되었고, 스탈린을 견제하지 못한 대가로 카메네프나 지노비예프, 부하린과 같은 고참 볼셰비키들은 숙청으로써 대가를 치렀다.

이렇게 스탈린과 관료 집단에 의하여 러시아 혁명의 산물인,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 중심의 노동자 민주주의, 원래 레닌이 의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붕괴되고, 그 이름만을 무단 도용하여 만들어진 스탈린의 짝퉁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실상 관료 독재 체제가 수립된 상황은 러시아 혁명에 있어서는 하나의 퇴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로 추방된 트로츠키에 의하여 원래 레닌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추구했던 사회주의의 이상을 사수하고자 정립된 사상이 바로 트로츠키주의이다.

3. 이론

3.1. 연속혁명론

연속혁명론[4]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어느 한 나라에서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 노동자 국가가 수립되더라도 그 노동자 혁명은 반드시 다른 나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나라는 노동자 국가를 말려 죽이려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봉쇄로 인해 무너지거나, 설령 무너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련의 경우를 보듯 관료적으로 퇴보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혁명은 반드시 해외로 수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연속혁명의 첫 번째 '연속'이 갖는 뜻이다.

특히 연속혁명은 러시아 그 자체나 중국, 베트남, 쿠바, 북한 등의 사례를 보듯 생산력이 부족하여 파이를 나누려고 해도 파이 자체가 너무 작은 후진국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

나눌 파이 자체가 작은 후진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고립되면 그 테크트리는 셋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소련과 동유럽처럼 시원하게 망해버리든가, 과거 중국의 대약진 운동이나 현재 북한의 속도전을 보듯이 파이를 키우기 위해 계속 인민을 갈아넣든가[5], 아니면 현재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를 보듯이 자본주의적 요소를 대거 도입하면서 혁명을 뒤로 후퇴시키든가. 북한이나 쿠바도 대놓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중이라서 그렇지, 음성적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들여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제한적인 시장경제 체계를 꼽을 수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적 요소를 계속해서 들여오다 보면 노동자 국가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요소를 들여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의 후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력과 과학력이 빵빵한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혁명을 수출하여 충분히 큰 파이도 확보하고 과학기술과 같은 생산력 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닌 생전에 트로츠키가 집권하던 당시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혁명의 수출이었다. 독일 바이에른, 헝가리, 핀란드에서 소비에트 공화국이 잠시 수립되었지만 이내 진압되었고, 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공장들이 노동자 평의회에 장악되었지만 이탈리아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은 불발되었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혁명적 노동자 운동이 불 붙었지만 마찬가지로 소비에트 공화국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많은 혁명들 중 하나만이라도 성공시키고자, 그래서 얘네들이 가진 충분히 큰 파이와 빵빵한 생산력에 도움을 받고자 사활을 걸었다. 물론 그 가운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은 당연하게도 세계 제일의 과학력을 자랑하던 독일이었다. 오죽하면 레닌은 '여기(러시아) 혁명은 실패해도 독일 혁명은 꼭 성공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했고, 트로츠키 본인은 독일에 가서 혁명을 성공시킬 생각까지 했겠는가.[6]

둘째, 어느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그 부르주아 정권이 새로운 억압자, 착취자가 되어 노동인민을 배신할 수밖에 없으므로,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그 뒤를 따라 일어나야만 완전한 혁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여 이윤을 축적해야만 하므로 결과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배신하게 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식민지나 이에 준하는 매판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부르주아 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를 실현할 역량이 없기 때문에 연속혁명의 중요성이 배가된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국제 볼셰비키그룹의 전신인 미국 스파르타쿠스 동맹에서 출판한 1973년도 팜플렛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트로츠키의 견해에 따르면 세계 경제의 불균등 결합 발전 양상 때문에 후진국 부르주아 계급은 봉건체제 및 제국주의의 이해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 계급은 정치 민주주의, 농업 혁명, 민족 해방 등 부르주아 혁명의 기본 과제들을 완수할 수 없다. 농민이 각성하고 노동계급이 투쟁으로 나서서 이 과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완수할 경우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는 바로 위험에 처할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는 농민과 노동계급의 동맹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
- 미국 스파르타쿠스 동맹, 남한 볼셰비키그룹[7] 옮김, 스탈린주의 vs 트로츠키주의, 2013, p. 7

이 '연속'의 과제는 앞에서 말한 혁명의 국제적 수출로서의 '연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위 팜플렛에서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최고 수준의 생산력을 해방시킨 결과이다. 물질적 결핍을 해소할 때만 계급을 철폐할 수 있다. 고립된 후진국에서 노동계급 독재가 수립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성취되려면 최소한 여러 선진국들의 협력이 성공해야 한다. 이 보완적 이유 때문에 노동계급 혁명은 확산되고 심화되지 않으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 위 팜플렛, p. 8

3.2.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反-인민전선)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조직을 유지해야 하며, 그 어떤 이유로도 부르주아 계급과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은 스탈린코민테른을 통하여 각국 공산당에 대해 부르주아 계급과 동맹을 맺으라는 지령[8]을 내린 데 대한 반발 차원에서 특히 부각되었다.

파시즘에 대한 대응에서도 스탈린은 '인민전선'이라 하여 각국 공산당이 부르주아 정치세력 가운데 파시즘에 비판적인 정파들과 손을 잡고서 파시스트를 물리쳐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반면, 트로츠키는 파시스트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 인민전선이 실패로 돌아가고 파시스트가 정권을 잡음에 따라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이 더욱 부각되게 되었다.[9]

20세기 후반에 들어 일부 트로츠키주의 집단은 혁명 과정에서 소유 토지 면적이 낮은 농민과의 연대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으나, 트로츠키주의 진영 내 주류 흐름은 아직 노동 계급의 주도성을 강조하며, 혁명에 동참할 수 있는 농민은 오로지 농업 프롤레타리아라고 할 수 있는 빈농 뿐임을 명시하고 있다. 순수한 노동 계급만이 프롤레타라이 혁명을 주도해야 한다는 경향을 총칭하여 ‘공동전선’이라고 한다.

레프 트로츠키도 또한 노동 계급만이 부르주아 혁명을 주도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 혁명의 경우는 순수한 노동자 집단만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음을 강조했다. 트로츠키는 1905년 러시아 전역에서 성립된 소비에트의 집단성과 실천성은 산업 사회 특유의 집단 노동의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연대성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동시에 농민 문제에 관한 언급을 통하여 농민 일반이 부르주아 혁명을 주도할 수 없음도 논하였다.

트로츠키는 영구 혁명 무대에서 농민을 빈농과, 빈농이 아닌 농민으로 분류한다. 빈농이 아닌 농민은 부르주아이며, 이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을 뿐더러 본질적으로 노동 계급의 이해와 반대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트로츠키는 또한 농민이 부르주아 혁명을 주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부르주아가 부르주아 혁명을 주도할 수 없는 이유와 비슷한 이유인데, 봉건 시기 자영농민은 그들 스스로가 빈농을 고용하거나 소작료를 거둬들이는 주체라는 점에서 소작제도에서 상당 부분의 이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이러한 입장을 가짐으로써 레닌의 노농동맹 노선과 자주 마찰을 빚어야 했다. 레닌은 트로츠키가 주장한 자영농민이 실제 소부르주아 농민 중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고 했고 당시 러시아의 상황상 레닌의 말이 맞았다. 봉건 사회 소작제도하에서 일반적인 농민은 자유로운 토지 소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없기에 농민이 자유주의 혁명의 동참자로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토지 개혁이 수행되어 토지를 분배받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수의 빈농과 영세농을 만들어내기에 역시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노동 계급의 동맹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1920년 8월 7일 코민테른 2차 대회의 레닌 문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스탈린이 빈농은 물론이고, 소농은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사회주의 농업 점조직으로 흡수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론을 내세웠지만, 트로츠키는 농업 프롤레타리아를 제외한 모든 농민은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되는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스탈린이 농민들을 때려잡으면서 폭력적인 공업화를 시행할때 트로츠키의 입장과 정확히 같은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가 되었다.

트로츠키는 영국이 17세기에 경험했던 류의 혁명이나, 프랑스가 1789년에 경험했던 류의 형태인 부르주아 혁명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혁명이 일반적인 부르주아 혁명의 경로를 거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트로츠키가 1906년에 작성한 『평가와 전망』(Итоги и перспективы)에서 그는 역사 경로를 상세하게 분석하여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동일선으로 비교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전자는 결코 프랑스 혁명과 동일선에 놓일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1789년 프랑스는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연합에 의한 부르주아 혁명을 경험하지만 이후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는 우리가 현재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취급하는 일련의 혁명 조치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 하였다. 가령,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여성은 참정권을 얻지 못 하였으며, 심지어 부분적으로 노예제도가 존재하고 있었고, 노동자의 파업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이것은 184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공화파 봉기에서 다시 재현됐다. 그리고 이 시기 부르주아는 더는 혁명을 주도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실제로 1848년 공화파 봉기는 프랑스 노동자 및 빈민 계층이 주도했으며 부르주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 하였으며 오히려 공화파 봉기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트로츠키는 19세기 후반 이후 각국 부르주아 혁명에 있어서 부르주아의 역할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보았다. 이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노동 계급이 주도하는 연합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며, 진보적인 부르주아만이 이 연합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러시아 2월 혁명도 마찬가지로 부르주아는 이 혁명에 사실상 동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차르 반동과 동맹을 맺었다. 2월 혁명도 또한 노동자와 빈농(농업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도한 것이다.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소유한 공장과 은행, 기타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정적인 파트너로서 차르 반동을 택한 것이며, 그들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경우 현실적으로 상당 부분의 권리를 노동자에게 양도해야 함(사회주의가 아닌, 자유주의가 명시하는 형식적인 선에서)을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트로츠키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부르주아에 의해 주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부르주아는 봉건적 반동 세력과 긴밀하게 연합되어있으며, 이것은 봉건 관료 및 봉건 영주들과의 끈끈한 유착과 협력 관계로 나타난다고도 했다. 또한 추가적으로 트로츠키는 후발 산업 국가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태를 통하여 위와 같은 관계도 성립될 수 있음도 논하였다. 후발 산업 국가는 정부 주도의 출자를 통하여 자본가를 성장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가는 봉건적 관료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3.3.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개념과 중요성

트로츠키스탈린의 비민주적인 관료독재 체제를 비판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노동자 평의회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소련이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것이 원래 레닌이 의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이지, 스탈린이 이름만 도용해 갖고 벌이는 짓거리는 사이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이다. 만일 노동자 평의회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 제도가 실현되지 못한다면, 소련은 비효율과 경제적 침체에 빠져들다가 결국은 바로 그 관료집단에 의해 자본주의로 복귀하고 말 것이라고 트로츠키는 경고했는데, 결국 그 말대로 소련에서 자본주의 반혁명이 일어나버렸다. 공산당의 노스트라다무스[10]

웃긴 점은, 트로츠키도 당내 권력투쟁에 패해 축출되어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기 전에는 스탈린과 별반 다를바 없는 사상을 가졌다는 점이다. 사실 트로츠키주의 자체가 스탈린과의 차별화를 위해 뒤늦게 정립된 사상이며, 원래는 트로츠키나 스탈린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서 트로츠키가 권력투쟁에서 패한 이후 소련에 남아있던 다수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 지지로 선회했다가 대숙청 크리를 맞는다.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소련이나 북한 같은 퇴보했거나 기형적인 노동자 국가의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니란 점이다.

관료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보면 집단농장의 경우를 보듯 노동자, 농민들이 자유롭게 경제적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설령 인센티브를 줄 만큼 준다고 해도 생산성 하락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둔화되면서 결국에는 노동자 국가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게 되므로, 노동자 국가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는 정치 혁명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여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이 존속하는 동안 트로츠키 본인과 소련 밖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고, 공산당 일당제가 아닌 다당제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소련이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11][12] 현재도 소련의 복사본이라 할 수 있는 중국, 베트남, 쿠바, 북한, 라오스에 대하여 그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3.4. 퇴보한 노동자 국가론

트로츠키소련이 비민주적인 관료 독재 체제로 변질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노동자 국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를 '퇴보한(degenerated) 노동자 국가'라 한다. 왜냐하면 여전히 경제국유화되어 있고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이 직접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권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노동계급이 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런 퇴보한 노동자 국가에서 관료집단을 타도하는 정치혁명이 일어나서 노동자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만 그 퇴보를 극복하고 다시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료집단의 성격에 대해서는 일종의 기생충 혹은 잡초 같은 존재로 취급을 했다. 노동자 국가에 기생하여 양분을 쫄쫄 빨아먹는 쓰레기들이란 것이다. 그러나 관료집단이 하나의 계급이라거나 새로운 지배계급이라는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의[13]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계급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계층이라는 것이 관료집단에 대한 트로츠키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트로츠키는 소련을 외부에서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에 대항하여 소련의 집산주의적 소유체제를 군사적으로 방어하는 동시에, 기생충이나 잡초와 같은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소비에트의 기능을 정상화하여 소련을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소련 내부에서의 정치 혁명을 고무하는 이중적 입장을 취했다.

트로츠키 사후 소련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하여 동유럽한반도 북부에 자기네 체제를 그대로 이식한 여러 위성 국가들을 세우고, 유고슬라비아(1945), 중국(1949), 쿠바(1959), 콩고(1970), 베트남(1975), 라오스(1975), 모잠비크(1975), 앙골라(1975), 베냉(1975) 등지에서는 소련 체제가 이식된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러한 국가들에 대해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기형적 노동자 국가'라는 입장을 취하며, 이들 나라를 소련과 마찬가지로 군사적으로 방어하는 동시에 내부에서의 정치혁명을 통한 정상화를 추구하였고, 지금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의 중국, 베트남, 라오스, 북한, 쿠바 역시 아직은 기형적 노동자 국가라고 여긴다. 따라서 정치혁명을 통해 관료집단을 퇴진시키고 민주적 노동자 권력을 수립하여[14] 이들 국가가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친중 성향을 강하게 띤다. 아무래도 5개의 기형적 노동자 국가들 가운데 가장 강한 국력을 자랑하고, 국제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중국이다 보니... 남한 한정으로 놓고 보면 운동권 가운데 가장 강한 친중 성향을 띠는 정파가 이쪽이다. 외교, 군사, 경제 등등 전 분야에서 중국의 편을 들다 보니, 이쪽 계열의 친중 성향은 스탈린주의 계열 PDNL이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다.[15] 왜냐하면 그쪽에서는 빠르게는 1978년 개혁개방, 늦게는 2007년 전인대에서의 물권법 통과[16]를 계기로 중국은 자본주의로 되돌아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스타'[17]계 PD나 NL의 친중 성향은 중국이 '비록 자본주의로 되돌아가긴 했지만 여전히 북조선의 든든한 서포터 역할을 해 주면서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인 반면, 이쪽 계열 PD의 친중 성향은 중국이 '사회혁명을 통해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에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3.5. 문화 이론

트로츠키의 문화 이론은 1924년 저술한 마르크스주의 문학 비평서인 <문학과 혁명>에서 구체화되었다. 이 책은 러시아 1905년 혁명과 1917년 혁명 사이의 러시아 문화의 다양한 경향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문학과 예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드러냈다.

그는 이 책에서 문화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항상 지배계급의 흔적을 남기며, 지배계급의 취향과 감수성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발달해 왔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생산양식이 변화하여 지배계급이 변화하면 상부구조도 변화하므로, 바뀐 지배계급의 취향에 따라 문화적 경향도 바뀐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이 책에서 당대에 유행했던 프롤레타리아 예술주의, 즉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만의 전위적, 혁명적 문화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혁명적 사고에 명백히 반대했다. 왜냐하면, 첫번째는 부르주아는 부르주아 혁명 이전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문화를 구체화할 역량이 있었지만 프롤레타리아는 피착취 계급이므로 그럴 만한 역량이 없었다고 보았고, 두번째로는 문화예술은 지배계급의 취향을 반영하는데 사회주의 혁명은 프롤레타리아가 지도적 위치를 차지해 모든 계급을 폐지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므로 프롤레타리아 예술을 만들겠다는 주장은 프롤레타리아를 지배계급으로 하는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보았다.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 문화예술은 과거의 모든 예술적 성취와 사조들을 포용하되, 이를 계급 철폐가 실현된 공산주의 사회를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다. 프롤레타리아 예술주의를 비판하고 부르주아 문화를 흡수해 프롤레타리아가 누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레닌처럼 트로츠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다만 부르주아 문화를 혁명적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다만), 문화적 자율성에 상대적으로 더 관용적인 편이었다.

3.6. 불균등 결합 발전

트로츠키주의 역사관의 핵심을 이루는 사상으로, 세계사에 대한 사적 유물론적 해석의 일종이다. 본래 이 이론은 트로츠키가 주장하기 전 일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된 상태였지만, 트로츠키는 이 이론을 제국주의 단계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에서 가장 주된 것으로 여겼으며, 곧 트로츠키주의 역사 이론의 핵심 요소가 됐다. 불균등 결합 발전에 따르면, 생산 및 소유 관계 발전에 따른 역사 발전은 한 국가 단위 내에서의 정량적 모순 중첩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산 및 소유 관계 요소의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 진행된다. 따라서, 이 이론은 스탈린의 단선적이며 정량적인 사적 유물론 해석에 대항하는 의미에서의 사적 유물론이라 할 수 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의 전(全) 과정을 이 불균등 결합 발전 법칙에 따라 설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자체만의 모순에 따른 촉발이라기보단, 세계 생산, 소유 구조의 일부이며 동시에 그러한 복합적인 양상의 결과로서 나타난 촉발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단일한 형태의 모순이 아닌, 세계적인 형태의 모순이다.

불균등 발전 법칙은 일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의 ‘국제혁명근거지론’과 같이 일부 국가의 공산주의 혁명 이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사적 유물론에 대한 정량적, 단선적 해석이 갖는 한계점이 지적되면서, 트로츠키주의의 불균등 결합 발전 원리에 따른 마르크스주의 사적 유물론 해석이 늘어가고 있다.

3.7. 후기자본주의

1차 대전 종전 후 1910년대 후반부터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일련의 복지주의, 비자본주의적 정책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정책과 자본주의적인 정책이 혼합된 상태로 경제를 운용했으며,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과는 다른 문화와 정책이 생겨나게 되었다. 후기자본주의 이론은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 선진국의 경제 체제를 단순히 '자본주의'라고 묘사하기 어려워지자, 트로츠키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에르네스트 만델이 1972년에 《후기자본주의》라는 저서를 통하여, 1910년대 후반 이후부터 실행된 자본주의 시대를 '후기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그는 191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시대를 설명하며, 이 시기를 과거 초기 자본주의 시대인 자본가 계층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것을 소유, 점거한 체제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통적인 자본가 계급에서 전문 노동자, 비자본가 엘리트라는 새로운 계급이 자본가의 역할을 대신하고있으며, 과거 자본주의와는 다른 고도의 복지 체계가 갖춰질 수 있거나, 그러한 것들에 대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묵살할 수도 있는 특이한 상태라고 보았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서며, 그로인해 통일된 체계로 이어진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이윤 생산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자본주의가 될 수도 있으며, 흔히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뜻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 나타난 비사회주의적 상태이기 때문에, 그 사회를 단순히 통일된 체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기자본주의 상태를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후기자본주의 상태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더 굳게 유지될 수 있는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거 자본주의와는 다른 수많은 문화들이 새로 나타난다. 이러한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관해서 문화인류학자인 프레드릭 제임스는 후기자본주의 문화 3단계론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위르겐 하버마스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유지에 관한 정당성에 대해 고찰했다. 몇몇 학자는 후기자본주의 상태로 넘어온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문화적 진화 발생'이라고 보기도 하며, 후기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철학 기조가 포스트모더니즘이고, 후기자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상호연관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 '후기자본주의'라는 개념과 유사한 것은 에르네스트 만델이 《후기자본주의》를 쓰기 전에 이미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인 《자본론》에 설명했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후기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는 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존재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설명하거나, 투쟁의 산물로써 착취 정도가 덜한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이 개념을 차용했을 뿐, 이 사회구성체 내부에서 기존 자본주의와 다른 문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지, 그것의 과정이 어떤 괄목할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에 대해서는 정립하지 않았다. 또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정도에 따라, 최후의 자본주의가 어떠한 형태로 남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정립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정립하지 못한 것을 만델이 뒤늦게 정립한 것이다.

세계 경제 체제이며, 자본주의적 소유, 생산 관계가 변하지 않은 상태이고 초기자본주의와 다른 모든 자본주의적인 상태는 후기자본주의에 속한다. 또한 후기자본주의로써 나타나는 여러 가지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제시하는 복지주의적 자본주의도 후기자본주의에 속하며, 국가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 현대화 된 독점자본주의도 이에 속한다.

3.7.1. 형성 원인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형성 원인은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핵심부 자본주의 국가(선진자본주의 국가를 지칭)의 형성 원인으로 나눌 수 있고, 둘의 내용은 다르다.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의 좌파적 후기자본주의화(주로 사민주의 체제)는 주로 반자본주의 세력이 핵심부 자본주의의 경제적 압력을 감수하는 상태로 그 급진성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권력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수정주의 그 위로의 반자본주의적 경향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며, 그와 다른 더 강력한 수준의 착취 자본주의로의 후기자본주의화는 주로 그 사회 엘리트들의 개발성장주의, 수직적 민족주의 선동의 결과로써 나타난다. 이러한 정책은 기존의 초기 자본주의와는 다른 복잡한 자본주의의 체제 형성을 낳는다. 핵심부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특유의 주기적 공황과 이윤생산으로 인한 빈부격차, 사회 불안을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후기자본주의로 진입한다. 핵심부 자본주의 국가의 후기자본주의화는 초기 자본주의보다 질적으로 높은 '개량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반면, 주변부 자본주의의 후기자본주의는 사실상 고도화 된 '착취' 사회로의 진입 형태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4. 국제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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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에 트로츠키 본인과 몇몇 동조자들에 의하여 국제조직인 제4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다. 스탈린에 의해 퇴보한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서서 조직 내부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원래 트로츠키의 사상에 부분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분파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로 인해 1963년 이후에는 완전히 사분오열되어 여러 조직으로 찢어지게 되었다. 개중에 어떤 경향은 아예 국가자본주의론으로 돌아섰고, 어떤 경향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노선으로 갈아탔다. 이에 따라 트로츠키주의 운동으로부터는 상당 부분 이탈하게 되었다.

현재 제4인터내셔널의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국제조직으로는 1987년에 창립된 국제볼셰비키그룹(International Bolshevik Tendency, IBT)가 있다. IBT는 1970년대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우경화를 비판하며 갈라져 나왔다. 이 IBT 산하에 한국 볼셰비키그룹이 소속되어 있었으나, 내부 갈등으로 인해 현재는 탈퇴하였다.

제4인터내셔널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경향들은 현재 한국 운동권에 들어와 있지 않다.[18]

4.1. 한국 볼셰비키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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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은 인류 해방을 위한 노동계급의 전위, 볼셰비키. 한국 운동권 내에서 유일하게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내세오고 있다. 한국에서 IBT의 지부로 활동하며 IBT 한국어 홈페이지도 관리해 오던 중, 2018년 IBT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반제국주의론에 대한 정통 트로츠키주의의 근본적인 강령을 왜곡하고 부정한다고 주장하며 IBT와의 관계를 끊고 독립한다.

4.1.1. 상징

파일:bolshevik_group_logo.jpg

한국 볼셰비키그룹은 제4인터내셔널 재건을 추구하기에 낫과 망치 위에 숫자 4를 겹쳐 놓은 로고를 사용하지만, 다른 4인터내셔널계 조직들과는 달리 낫과 망치의 방향은 망치 머리와 낫의 손잡이가 왼쪽을 향하고 있다. 이는 다른 IBT 계열의 조직들도 마찬가지다.

깃발은 빨간 바탕에 검은색으로 '인류 해방을 위한 노동계급의 전위'라고 작게 쓰고, 아랫줄에는 '볼셰비키'라고 크게 쓴 깃발이다. 소규모 사업장별 집회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다른 운동권 단위들의 깃발과 달리, 웬만큼 판이 큰 집회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소련 빨갱이나 마찬가지라...

4.1.2. 노선

정통 트로츠키주의 노선을 따르며, 국제적으로는 레프 트로츠키 본인이 만든 제4인터내셔널[19]의 재건을 추구하는 국제 볼셰비키 그룹(IBT)에 소속되어 있다. 트로츠키의 입장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에서 흔히 트로츠키주의라 오해받는 노동자연대와는 구분된다.[20] 노동자연대 이전의 IST 산하 조직이었고 비합법 노선이었던 ISSK보다 조금 늦은 1995년, 그러니까 스탈린주의가 몰락하고 트로츠키주의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때 창립되었으나, ISSK나 이후의[21] 민주노동당 학생그룹-다함께-노동자연대와 달리 대중적 기반을 넓게 확보하지는 못했고 현재도 소규모의 '의견 그룹'(본인들 스스로 이렇게 정체화한다)으로 머무르고 있다.

2010년 변혁당의 전신인 사노위에 합류하기도 하였으나, 사노위에 소속된 여러 정파들 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2012년에 사노위를 탈퇴하였고, 이후 사노위를 계승한 노계추로도 따라가지 않았다. 만일 사노위에 계속 남아서 노계추까지 따라갔더라면 지금쯤 변혁당 안에 속한 정파로 존재했을 것이다. 후술하듯 소련북한 등의 사회에 대한 입장이나, 페미니즘메갈에 대한 입장이 한국 운동권의 다른 단위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스탈린주의, 국가자본주의론, 노동자 경제주의, 페미니즘 이렇게 4가지 사상을 노동계급을 오도하여 패배로 이끄는 비과학적 사상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맞선 정치투쟁을 추구하고 있다. 각각에 대한 비판은 2011년에 사노위에 들어가 있을 때 공식적 입장으로 정리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스탈린주의: 스탈린주의는 제국주의의 군사적 압박으로 인해 정치적 공황 상태에 빠진 관료들의 세계관이다. 그들은 제국주의라는 당면한 위협에 질식되어, 노동계급의 장기적 · 국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안목을 상실하고, 관료 집단의 당면한 일국적 이익만을 도모한다. 이 스탈린주의는 관료집단의 사상을 레닌주의의 계승이라고 참칭하며, 혁명 소련을 정치적으로 퇴행시키고, 중국 · 스페인 · 인도네시아 · 칠레 등 각국의 노동계급과 혁명을 패배로 이끌었다.

국가자본주의론: 국가자본주의론은 스탈린주의 혐오증에 의지하여 노동계급과 피억압인민이 쟁취한 성과 방어를 거부하는 정치적 태도이다. 이 이론은 ‘사적소유가 철폐된 자본주의’라는 비(非)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내세우며, 소련동유럽 ·북한 · 중국 · 쿠바 · 베트남 등의 퇴보한 또는 기형적 노동자국가들의 방어를 거부해 왔다. 이 소위 ‘이론’은 대표적으로 카우츠키, 버넘, 색트먼, 클리프 등으로 이어지며(그리고 다른 한편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며), 러시아 혁명 직후, 2차 대전 시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폴란드 자유연대노조, 소련 자본주의 반혁명 등 격렬한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사안들에서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나 자본주의 반혁명의 편을 들어왔다. 우리는 과거의 성과를 지킬 것을 거부하지만 새로운 것을 성취하겠다는 모순된 주장을 펴는 이 국가자본주의론을 또 하나의 반동[22]적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노동자주의: 노동자주의는 ‘노동자의 지금의 즉자적 인식과 당장의 현실적 이해(임금, 고용 등)’에 노동계급의 대의를 굴종시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당장의 투쟁(보통 현장투쟁이라고 부르는)에만 매몰되어 혁명적 강령과 그에 기초한 혁명 지도부 수립이라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임무를 방기하게 한다. 이러한 사상으로는 혁명은 꿈도 꿀 수 없다. 자본주의에 신음하는 노동계급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사회적 지향과 만날 때에만 임금노예에서 벗어나 혁명적 지도계급이 되며, 당은 그 매개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개량 투쟁을 지지 옹호하되, 동시에 이행강령을 제시하며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페미니즘: 소련 붕괴 이후, 각종의 잡다한 자본의 사상이나 자본의 포로가 된 사상들이 노동계급에 침투하여 마르크스 · 레닌 · 트로츠키주의를 공격하며 노동계급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다. 여성주의(페미니즘이라고 일컬어지는)가 그 중 하나이다. 사회 계급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으로 근본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대전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의 근원이 되는 계급의 철폐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특히 남성)의 의식에 주로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제기한다. 물적 토대에 대한 개선보다는 그 물적 토대의 산물인 의식에 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계급과 피억압 여성을 오도하며, 때로 남녀 노동계급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선배 혁명가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그 의식과 제도 관행을 예민하게 비판하고 개선하면서, 동시에 그 물적 토대인 계급 사회 철폐를 위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페미니즘과 구별되는 여성해방운동이다.

- 4인터안 강령 소개, 사노위 서울지역신문, 2011. 4. 19. 링크[23]

트로츠키의 입장을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노동자연대보다 이쪽을 트로츠키주의 운동 단위라 지칭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4.1.2.1. 소련과 북한 등의 사회 성격에 대한 입장
이 부분에 있어 노동자연대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일반 대중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중적 입장이다. 퇴보한/기형적 노동자 국가로서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만,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한 내부에서의 정치 혁명을 지지한다.

이 조직에서는 구 소련과 현재의 북한, 중국, 베트남쿠바, 추가로 벨라루스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 과도기, 이행기에 있지만, 관료집단에 의해 그 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퇴보한 노동자 국가(degenerated workers' state)' 로 지칭한다.[24]

그렇기 때문에 이쪽에서는 북한에 대하여, 국가와 북한의 지배자들인 김씨 3대 일가 및 관료집단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이 단위의 입장에 따르면, 북한은 경제가 국유화된 기형적 노동자 국가이므로 그 존재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북한을 갖다가 박살내고 질식시키려 할 때는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단계에 있는 이 북한이라는 나라를 갖다가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지배자들인 김씨 3대 일가와 관료집단은 민주적 권리를 짓밟고 노동자 민주주의를 방해하여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이행을 방해하므로, 노동자 정치혁명을 통해 타도되어야 한다. 중국, 베트남, 쿠바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반면]

때문에 이 단위에서는 북한을 비롯한 스탈린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또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해서도 소부르주아적이라며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을 요약을 하자면,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는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이 갖추어져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에 있다. 그러나 아직 사회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는데, 이는 세계혁명 특히 선진자본주의 국가로의 혁명 미확산으로 인한 국제적 계급 역관계의 불리와 더불어 이런 과도기적인 생산 양식에 기생하는 관료집단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제대로 실현(완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혁명 확산과 더불어 정치혁명으로 관료집단을 끌어내리고 노동자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을 갖추고 있는 북한이나 다른 퇴보한/기형적 노동자 국가들을 갖다가 무너뜨리려 할 때는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핵폭탄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을 지지한다. 사회운동과 무관한 삶을 살아 온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정통 스탈린주의자들 일부조차도 이미 자본주의 사회로 되돌아갔다고 주장하는 중국, 베트남, 라오스 세 나라가 여전히 기형적 노동자 국가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관료집단이 자기네들 살아남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했지만 주요 산업은 여전히 국유화되어 있고, 부동산은 전면 국유화된 상태에서 개인에게 임대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 세 나라의 노동인민들도 정치혁명으로 관료집단을 몰아내고,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쪽에서는 재미있게도 벨라루스 공화국 역시 아직까지 국가소유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노동자국가라 주장한다. 벨라루스는 루카셴코가 정권을 잡음으로써 자본주의 반혁명으로부터 국가소유 체제를 지켜냈고, 현재까지도 소련의 하부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여긴다. 쉽게 말해 지금의 벨라루스 공화국은 구 벨라루스 SSR을 계승한 小련이란 이야기다(...). 따라서 시진핑 정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루카셴코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하면서도 방어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 단위의 보다 구체적인 입장은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소련 붕괴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 2015. 6. 4.
소련의 사회성격에 대하여, <레프트대구> 제 13호, 2017. 7.
소위 ‘현실 사회주의’ 국가 성격에 관한 Q & A, 2018. 2. 27.
4.1.2.2.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
앞서 소개했듯이, 페미니즘 자체를 여성 부르주아를 위한 지배 이념이자 노동계급에 대한 거짓 선전, 분열의 음모라 여기므로 거부하며, 성별과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초월하여 모든 노동인민의 단결을 통한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추구한다.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여성 부르주아의 지배 이념으로서, 여성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와 여성 노동인민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환상을 유포시키고, 노동인민을 성별에 따라 분열하도록 획책하는 거짓 선전, 분열의 음모이다. 따라서 이 단위에서는 이런 부르주아 페미니즘의 관념이나 이론들을 인정하지 않으며[26],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차원에서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추구한다.

이들이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추구하는 이유는 앞에서 열거한 여러 여성들 가운데 이언주의 명언(물론 나쁜 쪽으로)을 보면 알 수 있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밥 하는 아줌마인데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비하한 그것 말이다. 비록 같은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부르주아 계급에 속해 있기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한 여성들의 고용 안정에 관한 문제는 이언주에겐 아오안인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들이 계급에 상관없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선전하면서, 모든 남성들이 여성들로부터 빼앗아서 독점하고 있는 특권을 빼앗아 오고 전복시켜야 한다고 거짓 선전을 하여, 결국에는 노동계급 여성들을 낚아서 이용만 해 먹고 팽개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이 단위에서 말하는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은 결코 여성해방의 과제를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유보하거나 사회주의 혁명 이전에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여성해방의 과제를 부분적으로라도 성취하려는 시도를 기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점은 이 단위의 강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강령을 보면...
* 임금 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모든 실업의 해소
* 동일임금 및 비정규직정규직
* 고용과 직장 그리고 가정에서 모든 여성 차별의 철폐
* 성노동자의 단결권 보장과 사회 복지의 실현을 통한 매춘의 종식
* 동성애매춘 등을 포함하여 합의 성행위에 대한 국가의 모든 개입에 대한 저지
* 임신여성의 요구에 따른 무료 낙태
* 무료 출산, 양육, 교육, 의료, 노인 부양
* 모든 가사 노동의 사회화

...와 같은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혁명을 전제하지 않아도 되는 요구들이다.

2016년 7월에는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 논평을 발표하였다.
억울함을 낳는 차별과 그 사회적 원인을 차근차근 따져보지 않고, 즉자적 울분에 빠져 성, 인종, 지역, 나이, 학벌 등으로 쉽게 구별되는 손쉬운 화풀이 대상을 향해 그 분노와 적개심을 쏟도록 부추기는 ‘운동’은 역사적으로 줄곧 있어왔다. 물론 그러한 ‘운동’은 노동계급을 비롯한 피억압인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운동’이 아니다. 메갈리아 운동 역시 그러하다. ...

메갈리아는 피억압 남성 ‘일반’을 적이라고 간주하고 서로의 적개심을 부추겨왔다. 그 과정에서 지배계급 여성과의 단결을 도모하여 계급적 자각을 가로막고, 정작 ‘가사노동의 사회화’나 ‘사회보장의 확대’ 등 피억압 여성들의 현실적 삶의 개선은 도외시해 왔다. ...

인권향상은 상대 인권에 대한 존중이 마땅히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메갈리아는 ... 자신의 상처를 상대의 상처로 보상 받으려는 방식[27]으로 운동을 전개했다. 그런 점에서 메갈리아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운동이다. 또한 사회 상층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반면, 각종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회 하층의 아픔을 후벼 파면서 만족을 느끼는 반동적인 운동이다.[28] ...

다른 사람의 인권과 인격을 함부로 짓밟고 각종 범죄적 게시물이 거의 아무런 제재 없이 통용되는 메갈리아는 이미 자정기능을 잃었다. 자정되기는 커녕, 자칭 ‘진보’를 내세우는 일부 인사와 조직들의 방조와 부추김으로 인해, 피억압인민의 저항 전체가 오염되려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 차라리 옳은 진단일 것이다. ...

현실의 여성 비하와 차별에 분노한 ‘미러링(반사하기)’이라고 하지만, ‘범죄 모방’에 가깝다. 지배계급에 오도되어 사회 불만이 기형적으로 응고된 일베처럼, 메갈리아의 목소리는 여성 일반의 목소리로 간주할 수 없다. 더군다나 피지배계급 여성의 목소리는 결코 아니다. 피억압인민의 진보운동은 결코 자신이 당한 억울한 차별을 근거로 다른 사람에게 억울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 볼셰비키그룹, 메갈리아와 여성해방에 대한 우리의 입장, 2016. 7. 30. 링크[29]

이후로도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성 적대 페미니즘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회 하층끼리의 '이이제이' 싸움과 그에 몰입케 하는 소위 '좌파' '진보'에 대하여, 2016. 10. 27.
착란적 사상 '남녀적대주의'와 그 복무자들, 2017. 11. 11.

2018년 3월에는 앞서서 영국의 자매 조직에서 발표한 서구의 미투 운동에 관한 비판적 논평을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한국을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 열풍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것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문제제기를 무시하거나 그 해결이라는 과제를 기각 내지는 유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30]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포함하여 삶의 모든 측면을 조절하는 사회관계의 심층구조는 개인적 차원이나 여성을 남성에 맞서 싸움붙이는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성희롱, 성폭력 및 남성과 여성 개인 간의 불평등은 권력, 지위 및 경제적 자원의 심각한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사회적 억압을 반영한다. ...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단순히 남성들을 재교육함으로써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권력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성에 권력 부여를 목표로 하는 ‘미투 운동’은 우리가 겪은 성적 모욕과 범죄적 폭력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성행위를 거부하길 원하는 사람들성적행위가 여성에게 위험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손에 농락당하기 쉽다. 마르크스주의자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페미니스트 역시[31], 이것을 거부한다. 그 대신, 모든 사람들이 법적·경제적 강제 없이 완전히 합의된 방식으로 자신의 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기를 원한다. ...

모든 고발이 믿을 만한 것이라고 단정하거나 ‘미디어에 의한 재판’ 풍조 조성은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보장하지 못하며 무죄자의 삶과 사회생활을 파괴할 수 있다. ‘정당한 절차’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노동 여성과 남성에게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특히 지배계급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이를테면 여성 고용인 복지에 관심이 없는 사용자들은 노조투사를 해고하려는 핑계로 입증되지 않은 혐의를 씌울 수 있어 아주 좋아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종류의 비난이 좌익과 위험하거나 껄끄러운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가해진 흑인 남성에 대한 린치는 백인 여성의 순결을 침해했다는 주장으로 인해 종종 발생했다. 여성을 폭행하거나 강간한 남성은 엄중한 대가를 물론 치러야하지만, 국가나 고용주의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박해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쟁취해 낸 제한적 보호장치(무죄추정의 원칙 등)는 적극 방어되어야 한다.

- 록산느 베이커(Roxanne Baker),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미투 운동’>, 2018. 2. 17. 링크 녹취파일

이들은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안희정박원순에 대해 무죄추정을 주장하였다.

다만 앞서도 언급했듯 이들이 페미니즘 전체를 부정적으로 간주하며 '페미니즘은 부르주아가 만든 분열의 음모이다'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비판할 소지가 충분하다. 페미니즘 전체를 '노동대중을 성별에 따라 분열시키고 이들의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부르주아의 지배이념'이라고 일반화하여 깎아내릴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의 본질은 양성분리주의이며, 양성분리주의가 아니면 페미니즘이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이러한 규정 역시 자의적이라 볼 소지가 있다.

4.1.3. 활동

대중적 기반을 폭 넓게 확보하려는 단체는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나, 대규모 집회에 참가하는 빈도는 노동자연대나 노건투에 비해 낮다. 노동절 집회 때 깃발 띄우고 참석하는 정도. 박근혜 퇴진 운동 정국에서도 적극적으로 깃발 띄우고 신문과 소책자를 팔고 몇몇 활동가는 아예 사회까지 본 노동자연대와 달리, 여기는 기사나 논평 쓰고 소책자 출간하는 정도로, 크게 눈에 띄는 활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범(凡) 트로츠키주의 운동단위들과 마찬가지로 출판 활동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트로츠키의 책이나 소책자들을 굉장히 열성적으로 출판하고 있다.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를 비롯한 많은 저서들을 이쪽에서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볼셰비키그룹이 연관되어 정식으로 출판된 도서는 5권이 있으며, 도서출판 아고라에서 출간되었다. 도서출판 아고라는 '노동자/민중을 위한 출판'을 추구하는 대중 출판사로, 국내 최초로 레닌 전집을 펴내고 있다. 이 출판사에서 볼셰비키그룹의 책 몇 권이 출간됐던 탓에 간혹 볼셰비키그룹이 레닌 전집의 출간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레닌 전집과 볼셰비키그룹은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으며, 볼셰비키 그룹과 도서출판 아고라는 정치 성향도 크게 다르다. 이 출판사는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담은 책들의 출간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사회주의 진영 내 다양한 입장들이 출판되는 것이 이념적/사상적 기반을 넓힐 수 있다고 판단해 특정한 입장에 한정되지 않은 출판을 하고 있으며, 볼셰비키그룹의 책이 이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여기에서 트로츠키 저작들을 읽을 수 있다.

이 조직의 성격은 사회 운동 단체보다는 트로츠키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하나의 연구소, 연구 모임 개념에 더 가깝다. 이러한 연구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거나, 성공회대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맑스코뮤날레에 참가하여 강연을 통해 선전하고 있다. 물론 엄연히 여기도 좌파 운동권 단위인 만큼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지만, 주도적으로 집회를 조직화하고 운동을 이끌어 나는 것은 아니다. 정말 무지하게 큰 규모의, 그리고 조직노동이 주축이 되는 집회에서만 깃발 띄우고 나타나서 선전물 뿌리는 정도이다.

4.2. 중국

중국공산당의 창립자 중의 하나인 천두슈는 1930년대 즈음 중국공산당에서 쫓겨난 이후에 트로츠키주의로 전향했다. 하지만 소련의 영향을 받아 트로츠키파들은 거의 출당-숙청되었고, 중공당은 아예 마르크스-레닌주의대신 마오주의로 이념을 통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에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있었으나 마오쩌둥의 숙청으로 인하여 홍콩으로 피난해[32] 중국 혁명공산당이라는 정당으로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의외로 공산당이면서 민주파, 그리고 제4 인터내셔널에 속해있다. 그러나 현재는 별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며 10월 평론(十月评论)이라는 정치 잡지를 운영하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홍콩에는 사회주의행동이라는 순수 홍콩의 트로츠키주의 정당이 존재한다.

5. 수정주의 계열[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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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국에서의 입지와 영향력

한국 정치판에서 정통 트로츠키주의는 제4인터내셔널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정파들 가운데 딱 하나 IBT만 들어와 있...다가 그나마도 결별하였고, 그것도 조직 자체가 조그맣다 보니까 운동판에서 그다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고 있다. 노동자연대처럼 쪽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노건투나 노동전선이나 변혁당처럼 노동운동 현장에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 것도 아니니... 게다가 본인들이 대중 추수주의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이라 적극적으로 대중 추수에 나서지도 않는다.

북한에 대한 이중적 입장이 대중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확실하게 북한을 갖다가 잘근잘근 밟아 버리는 노동자연대나 기타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는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우에는 선명한 반북 성향 때문에 대중들에게 와닿기가 쉽지만, 북한에 대하여 대중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그리고 많고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볼셰비키그룹의 반제국주의 입장은 도저히 와닿기가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볼셰비키그룹은 6.25 전쟁을 반제 민족해방 및 계급해방 투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북한의 핵폭탄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도 지지한다. 사회 운동과 무관한 삶을 살아 온 일반적인 남한 대중들 가운데 이런 입장을 지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34]

그런 관계로 정통 트로츠키주의가 아닌 수정주의적 트로츠키주의 쪽이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술한 노동자연대는 항목에서 보듯이 한국 운동판에서 엄청난 쪽수와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다함께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2012년까지는 무려 원내정당(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내에서 일부 계파로 존재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노동자연대 지도부의 일원이며 기관지 발행인인 김인식이 2008년 총선에서 서울 중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사노련이 해체된 후 사노련 사수파에 의해 조직된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투쟁 위원회(노건투)도 노동운동 현장 내에서 상당히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으며,[35] 노건투 인원들 가운데 다수파의 인적 구성을 계승한 노동해방투쟁연대(노해투) 역시 운동 사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노련 탈퇴파와 노동자의 힘(노힘) 등 여러 정파들로 구성된 가운데, 수정주의적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정파도 다수 합류한 변혁당 역시 노동현장이든 학생사회에서든 나름대로 기반을 갖고 있다.[36]

결국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현재 군사적으로 남한과 대치 중인 기형적 노동자 국가 북한에 대해 대중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입장, 그리고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입장들 때문에, 트로츠키 본인의 삶이 그러했듯이 한국 운동판 내에서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들은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에 대해 명백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PD 계열 정파[37]가 이들을 옹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처음부터 페미니즘 자체를 부르주아 사상으로 여겨 반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갈리아가 한참 운동권 내에서 논란이 되던 2016년 여름 무렵에 분명하게 메갈리아 반대 입장을 밝힌 정파는 볼셰비키그룹 하나뿐이었다.[38] 나머지 정파들은 하나같이 메갈리아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옹호했고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온갖 음해에 시달리며 나름대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던 노동자연대조차도 '메갈리아는 페미니즘 운동의 일부이므로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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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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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주의는 경제성장 자체를 등한시하거나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충분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거의 완전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며,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집필할 때 말한 것처럼 '능력에 따라 일하고 기여한 만큼 차지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이상이다. 그걸 위해서 트로츠키주의는 국제혁명, 연속혁명을 강조하는 것이다.[2] 관료적 직권 남용을 억제하기 위하여 설립한 '노동자 농민의 감찰기구'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의장이 스탈린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스탈린의 사조직으로 변질되었다.[3] 타이밍이 하도 절묘했던 나머지 독살설이 나오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과로로 인해 뇌출혈로 죽었다.[4] '영구혁명론'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5] 물론 이렇게 인민을 갈아넣는다 해서 파이가 눈에 띨 만큼 커지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과학력과 기술력이 달리기 때문이다.[6] 레닌 생전에 혁명을 수출하여 성공시킨 나라는 탄누투바몽골 두 나라뿐이었다. 그나마도 여기는 초원 한가운데라 혁명을 수출시켜 봤자 크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7] 출판 당시 명칭은 '볼셰비키-레닌주의자'[8] 그 결과 유럽에서는 인민전선이, 중국에서는 국공합작이,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신간회가 성사되었다.[9] 물론 스탈린주의 측에서는 오히려 인민전선적 전략을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시켜 인민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동유럽북한의 경우 인민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없던 보수 정당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보수 정당을 장악하고 지도부를 말 잘 듣는 인원들로 교체하여 구색정당으로 만들 정도였다. 소련의 위성국으로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반제 게릴라전을 통해 자생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쟁취한 쿠바, 베트남, 라오스만 구색정당이 없는 공산당 1당제이다. 다만 베트남에는 1988년까지만 해도 베트남 사회당과 베트남 민주당이라는 구색정당이 존재했고, 현재 베트남 국회와 라오스 최고평의회에는 구색정당이 없는 대신 무소속 의원은 있다.[10] 스탈린주의 계열에서는 이것을 근거로 트로츠키가 소련 붕괴를 원해서 망하라고 악담을 퍼부었다는 식으로 곡해하는데, 트로츠키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소련을 방어하고자 했다. 소련을 내부에서 갉아먹는 관료집단을 몰아내야 소련이 건강한 노동자 국가로서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의사환자에게 담배를 안 끊으면 폐암 위험이 있다 말하는 것이 환자가 폐암 걸려 죽으라고 악담을 퍼붓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11] 인민민주주의의 다당제, 북한이나 중국 같은 형태로 구색정당들이 있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12] 이는 꽤나 흥미롭게도 레닌을 비판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나 다른 좌파공산주의 계열의 주장과 '약간' 들어맞는 점이 있는데, 트로츠키 생전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는지 트로츠키가 스탈린-부하린 연합에 의해 실각의 위기에 몰렸을 때 트로츠키와 손을 잡은 것은 소련 내의 좌익 반대파로, 이들은 크론시타트 수병반란의 생존자들이나 좌파공산주의자들로 노동조합의 국가통제 등을 거부하는 이들이었다. 레닌의 후계자들을 통틀어, 혹은 심하게 말하면 레닌까지 포함해서 당대 소비에트 러시아에 소비에트(평의회) 민주주의에 그나마 우호적이었던게 바로 트로츠키였다는 것이다.[13] 국가자본주의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단체가 노동자연대를 위시한 IST 계열이어서 국가자본주의론을 마치 IST의 창시자 토니 클리프가 최초로 주장한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 국가자본주의론의 원조는 다름아닌 카를 카우츠키이며, 트로츠키 생전에도 제임스 버넘(James Burnham)이나 막스 샤흐트먼(Max Shachtman) 같은 미국인 사회주의자들이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트로츠키와 대립하기도 했다. 토니 클리프는 이들의 국가자본주의론을 계승하여 현재와 같은 국가자본주의론을 정립한 것이다.[14] 중국공산당, 베트남 공산당, 라오 인민혁명당, 조선로동당, 쿠바 공산당 자체의 리더십 교체와 동시에, 다른 노동계급 정당의 활동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들 다섯 개 국가에서는 집권당 외에 다른 노급정당의 활동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중국은 존재감 8개 군소정당전인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위성정당들이며, 북조선은 조선사회민주당천도교청우당이 최고인민회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심지어 이들 정당은 강령상으로는 노급계급 정당도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역시 조선로동당 위성정당들이다. 쿠바는 쿠바 공산당 이외의 다른 정당들은 선거 참여가 제한되어 있으며 인민회의 의석은 100% 공산당이 싹쓸이하고 있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베트남 공산당, 라오 인민혁명당 이외의 다른 정당은 활동이 금지되어 있고, 인민회의에는 집권당과 무소속만 존재한다.[15] 다만 노정협의 경우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보고 옹호하는 편이다. 다만 과거에는 노정협 역시 중국을 자본주의로 보았다.[16] 사유재산 보호가 명시된 2004년의 헌법개정을 계기로 볼 수도 있다.[17] 스탈린을 가리키는 80년대 운동권 은어. 마르크스는 M선생, 레닌은 L선생, 트로츠키는 트로였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제도권 여야 정당들로까지 진출해 우경화되었다.[18] 한때 노동자의 힘(노힘)이 제4인터내셔널 남한지부라는 소문이 운동판에 돌았으나, 노힘 측에서 스스로 아님을 인정하였다. 노힘은 2009년에 사노위(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에 합류하여 현재 변혁당(사회변혁노동자당)을 거쳐 노동당 까지 따라가고 있다.[19] 제4인터내셔널은 1963년 이후 완전히 와해되어, 여러 노선으로 사분오열되었다.[20] 이쪽은 트로츠키주의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자기네들은 그냥 '마르크스주의'라고 정체화를 한다. 트로츠키를 여러 혁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입장이다. 굳이 무슨 주의냐고 묻는다면 얘네는 '클리프주의'다.[21] 공식적으로 ISSK는 1999년에 해소하였다.[22] 앞에서 언급한 스탈린주의 역시 반동적 사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23] 인용문의 가운뎃점은 임의로 추가하였다.[24] 반면에 노동자연대에서는 이 단어를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번역한다. 이에 대해서는 degenerated냐 deformed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반면] 반면에 국가자본주의론을 따르는 노동자연대의 경우, 북한은 그냥 그 자체가 남한과 다를 바 없는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이라는 국가가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박살이 나건 말건 신경 쓸 바 아니며, 북한의 김씨 일가와 관료집단은 당연히 매우 부정적인 대상이다.[26] 특정한 정치적 떡밥에 대응하기 위해 정략적 목적에서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정치세력과 공동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을 노동계급의 여성해방 운동 쪽으로 견인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27] 미러링으로 추정[28] '반동'이란 말은 노동자 혁명을 저해하는 세력이라는 의미로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29] 한국 볼셰비키그룹의 경우에는 활동가 개인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모든 논평이나 선전물을 '볼셰비키그룹'이라는 단체명으로 내고 있다.[30] 해당 인용문의 원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의 여성의 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 사회평등의 물질적 기반이 달성되면 모든 사회적 수준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야만 행위, 특히 먹이사슬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 야만행위는 점차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크든 작든) 자본주의가 낳은 불평등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고, 동시에 계급사회가 낳는 끔찍한 일들을 최종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혁명운동을 적극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다."[31] 이 부분은 한국 독자가 보기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영국 페미니스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정말로 성행위를 거부하길 원하고 또 성적행위가 여성에게 위험하다고 여기는 페미니스트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여성가족부한국여성단체연합을 통하여 강력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온갖 문화 규제와 탄압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이기도 하다.[32] 망명이 아닌 피난으로 표기하는 이유는 이들도 홍콩을 엄연한 중국의 영토로 보기 때문이다.[33] 대중추수에 나서는 신좌파 계통의 트로츠키주의는 거의 다 수정주의 계열로 분류된다. 다만 모든 수정주의 계열 트로츠키주의가 신좌파는 아니다.[34] 물론 북한의 관료집단을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기형적 노동자 국가의 존재 자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전술했듯 북한의 관료집단을 타도하는 정치혁명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또 강조한다.[35] 2018년 2월 28일부로 해산을 결정함.[36] 다만 변혁당 학생위원회와 사회운동위원회는 사회주의 외에도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와 같은 이슈에도 관심을 보인다. 수정주의적 견해라고 할 수 있다.[37] 노동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이들에 대한 옹호 대열에서 이탈하는듯 보였으나 2019년 9기 지도부부터 도로 합류하였다.[38] 좌파공동체라는 단체도 메갈리아 비판 입장을 내놓긴 했지만, 여기는 실체가 불분명한 유령 조직이다.[39] 이들은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워마드 남아 낙태 인증 사건 모두를 옹호하는 그랜드슬램(...)을 찍으며 녹색당보다 더한 친메갈리아, 친워마드 성향을 갖게 되었다.[40] 다만 영국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무국적으로 살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