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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문서는 사회주의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 중심이 아니라 통시적 관점으로 서술되었다.2. 카를 마르크스 이전
2.1. 플라톤의 이상국가
플라톤이 쓴 책인 『국가』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에 대해서 나온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는 크게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 세 부류로 구성된다. 통치자 계급과 수호자 계급은 사유재산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며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한다. 플라톤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상류 계급의 사람들이 가족과 재산이 생기면 이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좌파적인 사회주의라기 보다는 우파적인 사회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민중계급이 사회의 주체가 아니며 큰 역할도 하지 않는다. 통치자 계급과 수호자 계급, 즉 철인왕(哲人王)과 귀족 계급이 사회의 주체다.2.2. 정전제와 왕전제
2.3. 초기 기독교 공동체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사도행전 2장 44~47절, 공동번역성서
사도행전 2장 44~47절, 공동번역성서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사도행전 4장 32절~35절, 공동번역)
기독교의 경우, 사도행전에 묘사된 서기 1세기경의 공동체 모습은 사회주의적인 면이 많다. 특히 기독교가 서양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사유재산이 없는 이러한 초기 공동체의 모습은 이후 유럽인들에게 "와.. 겁나 훈훈하게 살았네"라는 식의 이상향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현재도 많은 수의 그리스도교 수도회가 재산의 공동 소유 또는 제한적 소유만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마냥 훈훈한 것만은 아니었다. 횡령하다가 베드로에게 딱 걸려서 신벌을 받아 죽는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울러 공동체 내에 거듭된 분열과 반목은 신약성서 내내 나온다.[1]
현대에는 '기독교 사회주의'가 이런 정신을 계승한다.
2.4.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모어의 저서인 『유토피아』에서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다(ou)" 혹은 "최선의(eu)"라는 의미로 그가 만든 말이다.제1권은 저자 모어, 베타 힐테스, 라파엘 퓨트로에우스 등 3자의 대담으로 당시 영국 사회의 악폐를 지적한다. 즉 사회의 현실에 맞지 않는 엄격한 법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다수의 귀족, 전쟁을 좋아하는 군주, 양털 값이 올라가 밭과 땅과 목장까지 넓혀 가는 지주 및 사유재산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제2권에서는 라파엘이 여행 중에 본 이상국과 '유토피아'섬의 도시ㆍ인간ㆍ풍습ㆍ제도ㆍ법률 등이 씌어 있다.
이 나라의 기본은 농업이고 이것에 모두가 종사한다. 게으른 자는 추방된다. 노동시간은 6시간이고 여가는 각자의 자유이나 대부분은 학문이나 음악 등으로 보낸다. 화폐는 다른 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금은 경멸되어 변기나 노예의 족쇄, 전과자의 귀에다는 귀걸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 결혼은 여자 18세, 남자 22세에 달하지 않으면 허가가 안 되며, 이혼은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공유이며, 법률의 조문은 매우 적고 변호사는 추방된다. 타국에서 전쟁을 걸어오지 않는 한 전쟁을 피하며 자국이 침략당하지 않는 한 출병하지 않는다.
2.5. 장 자크 루소의 이상사회
루소는 빈부의 차이가 거의 없는 소농으로 구성된 공동체에 의한, 직접민주주의 사회를 주장하였다.2.6. 프랑스 혁명기의 사상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 자크 르네 에베르 |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 |
1. 자연은 모든 각 개인에게 재산을 향유할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2. 사회의 목적은 자연상태에서 강하고 사악한 자들에게 종종 공격당하는 그러한 평등을 지키기 위함이요, 모두의 협력을 통해 전체의 복지를 증대하기 위함이다.
3. 자연은 모든 각 개인에게 일할 의무를 부과했다. 자기 몫의 노동을 회피하는 자는 누구나 범죄자이다.
5. 어떤 사람은 노동에 지치고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은 전혀 일하지 않고 사치스럽게 사는 곳에 압제가 있다.
7. 진정한 사회에서라면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어야 한다.
8. 가난한 자를 위해 자신의 잉여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부자는 인민의 적이다.
10. 프랑스 혁명의 목적은 불평등을 깨뜨리고 전체의 복지를 재건설하는 것이다.
바뵈프의 원칙(Doctrine of Babeuf), 1796년
2. 사회의 목적은 자연상태에서 강하고 사악한 자들에게 종종 공격당하는 그러한 평등을 지키기 위함이요, 모두의 협력을 통해 전체의 복지를 증대하기 위함이다.
3. 자연은 모든 각 개인에게 일할 의무를 부과했다. 자기 몫의 노동을 회피하는 자는 누구나 범죄자이다.
5. 어떤 사람은 노동에 지치고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은 전혀 일하지 않고 사치스럽게 사는 곳에 압제가 있다.
7. 진정한 사회에서라면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어야 한다.
8. 가난한 자를 위해 자신의 잉여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부자는 인민의 적이다.
10. 프랑스 혁명의 목적은 불평등을 깨뜨리고 전체의 복지를 재건설하는 것이다.
바뵈프의 원칙(Doctrine of Babeuf), 1796년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 |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 미하일 바쿠닌 |
"모든 재산은 도둑질한 것이다."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 소유란 무엇인가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 소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사회주의없는 자유는 특권이자 불의이며 자유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제이자 야만이라고 굳게 확신한다.
미하일 바쿠닌 - 국가없는 사회: 아나키즘
미하일 바쿠닌 - 국가없는 사회: 아나키즘
프랑스 혁명과 1차 인터내셔널 그리고 그 이후는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를 분리하는 중요한 기점으로 작용하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관한 논쟁이 사회주의사에 중요 논제로 등장하였으며 마르크스와 바쿠닌은 이로인해 서로 결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7. 공상적 사회주의
생시몽 | 샤를 푸리에 | 로버트 오언 |
"인간의 행복은 주로 자신의 감정, 품성, 그리고 주위 환경에 따라 정해진다."
로버트 오언
로버트 오언
3. 모색과 도래
3.1. 과학적 사회주의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 공산당 선언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세계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 中, 카를 마르크스, 1848년
마르크스의 등장으로 우리가 부르는 사회주의, 유물론적 사회주의가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뚜렷한 이론 없이 자신들의 이상을 말하는 프루동, 블랑키, 생시몽등을 비난하며 자신들을 사회과학 원리로 입증된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첫 결실이 앞에서도 언급된 1차 인터내셔널이다. 그러나 1차 인터내셔널은 국가의 철폐를 주장하는 아나키즘과 국가의 자연스러운 해소를 주장하는 공산주의로 의견 차가 좁혀지지 못하고 해산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추방과 망명 속에서도 점차 자신들의 지지자를 모으게되고 48년 혁명과 파리 코뮌을 거치면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을 완성한다.[3] 그리고 독일 사회민주당과 제2인터내셔널로 사회주의는 좌파사상의 뿌리가 된다."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세계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 中, 카를 마르크스, 1848년
3.2. 수정주의 논쟁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 카를 카우츠키 | 로자 룩셈부르크 |
"내 견해의 최종 결과는 이것이다. 즉 사회주의는 커다란 정치적 결전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영역에서 노동 운동이 거둔 전체적인 경제적, 정치적 승리의 결과로 온다. 나는 사회주의 사회가 카오스에서 생겨난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 사회주의 사회는 자유 경제 영역에서의 노동자의 조직적 창조물과,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투쟁적인 민주주의의 창조물과 획득물이 결합됨으로써 온다고 생각한다. 온갖 급변과 반동 세력들의 온갖 교묘한 기도에서 불구하고 이를 넘어 계급투쟁 자체가 점점 더 문명화된 형태를 갖게 되는 것을 나는 본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1918년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1918년
사회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개혁을 반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사회 개혁과 사회 혁명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 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 관계는 점점 더 사회주의적인 것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법적 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 사이에 더 높은 벽을 세운다. 이 벽은 사회가 개량됨으로써도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서도 약화될 수 없으며 반대로 더울 강화되고 높아질 뿐이다. 따라서 이 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오로지 혁명의 망치질, 즉 프롤레타리아가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뿐이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로자 룩셈부르크, 1899년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로자 룩셈부르크, 1899년
제2인터내셔널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노선으로 인해 큰 분열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 모두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을 기반으로 그들의 사상을 넓혀왔다. 그러나 베른슈타인은 잉여가치론을 폐기하며 수정주의를 주장했다. 이것이 왜 큰 문제냐면 잉여가치론은 왜 자본가가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지 설명하는 이론이었는데 이를 제거한다면 계급투쟁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이 되며 자본가와의 계급협조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은 폭력혁명은 지양하였으나 언젠가 자본가 계급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보았는데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점진적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카우츠키와 룩셈부르크는 격렬히 반발하며 반박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현실적인 베른슈타인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된다.
3.3. 초기 사회주의 운동
파리 코뮌 |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4. 전파와 성장
4.1. 러시아 혁명
4.1.1. 소비에트의 승리와 시련
블라디미르 레닌 | 볼셰비키의 지도자들 | 1920년 코민테른 집회 | 멘셰비키의 지도자 율리 마르토프 |
"소비에트 권력이란 무엇인가? 국민 대다수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 새로운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점점 더 노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 권력의 본질은 부자들과 자본가들이 독점하던 국가 경영이 이제는 처음으로 억압받고 박해당하던 계급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연설 中
블라디미르 레닌의 연설 中
4.1.2. 권력투쟁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권
이오시프 스탈린 | 니콜라이 부하린 | 레프 트로츠키 |
인민 대중을 통제하고, 잠에 빠지게 만들고, 분열시켜 약화시키고, 무제한 지배하기 위해 이들에 대해 새빨간 거짓말을 자행하는 등 소련의 관료지배층은 대단한 경험을 축적하였다. 이 측면에 대해 관료집단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이들은 대중을 혁명적으로 교육시킬 모든 능력을 상실했다. 국내 기층 인민의 독립성과 주도성을 목 졸라 죽인 관료집단은 대중으로부터 비판적 사고를 끌어낼 수도 없으며 세계 차윈에서 혁명을 수행할 용기를 이들에게 북돋을 수도 없다. 더욱이 특권 지배층이므로 자신과 사회적 성격이 유사한 서방의 부르주아 급진주의자, 개량주의 의회지도자, 노동조합 관료 등의 지원과 우정을 한없이 귀중히 여긴다. 대신 이들과 절연한 노동자들과는 상대적으로 친화력이 더 적다. 코민테른의 지도부인 소련 관료집단의 일국적 시야, 보수성, 무식, 무책임 등은 세계노동계급에게 불행만을 안겨다 주었다. 마치 역사에도 정의가 실현되는 것처럼 현재 소련의 국제적 지위는 고립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성공보다 세계노동계급의 패배에 의해 훨씬 더 크게 결정된다.
「배반당한 혁명」, 레프 트로츠키, 1936년
「배반당한 혁명」, 레프 트로츠키, 1936년
4.2. 근대 서구의 사회주의
4.2.1. 사회민주주의 VS 공산주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 스파르타쿠스 봉기 당시 봉기군 | 카를 리프크네히트 |
4.2.2.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스웨덴 총리 페르 알빈 한손 |
"가정의 기초는 공동성과 공동의 감정이다. 좋은 가정에서는 그 누구도 특권을 인정받지 않으며 소외되지도 않는다. 또 편애 받는 사람도 없고 따돌림 받는 사람도 없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희생에 기초하여 이득을 보고자 하지 않으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거나 수탈하지 않는다. 좋은 가정에서는 평등, 배려, 협력, 도움주기가 지배한다. 커다란 인민의 그리고 국민의 가정에 적용한다면 이는 현재 국민을 특권층과 소외층, 지배자와 신민, 수탈자와 피수탈자로 나누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장벽의 철폐를 의미한다.
페르 알빈 한손이 주창한 '국민의 집'
페르 알빈 한손이 주창한 '국민의 집'
스웨덴 총리 올로프 팔메 |
"복지는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이며 그것을 국가가 도와주는 것이다."
올로프 팔메이 말하는 복지
올로프 팔메이 말하는 복지
4.2.3.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
레옹 블룸 | 장 조레스 |
헤르만 뮐러 | 독일 사회민주당 선거 포스터 | 독일 공산당 선거 포스터 |
4.2.4. 미국의 사회주의
유진 데브스 | 세계산업노동자연맹 로고 |
"나는 노동자들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나나 또 다른 이의 뒤를 따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본주의의 황야에서 여러분을 해방시킬 모세를 찾고 있다면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리와 손을 사용해 스스로가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야 합니다."
미국 사회당 당수 유진 데브스의 연설, 1906년
미국 사회당 당수 유진 데브스의 연설, 1906년
우리는 생산자들에 의해, 공통선을 위하여 운영되는 정상적인 세계를 쟁취할 수 있고, 쟁취해야 한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은 이를 쟁취하기 위한 형태의 노동운동을 건설하고자 한다. 사실, 세계의 문제는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거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그것은 노동계급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에는 너무 미조직되어있다는 것이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싫은 일이지만, 해답의 일부가 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어느 쪽에 서겠는가?
IWW - 원 빅 유니온
IWW - 원 빅 유니온
4.3. 반파시즘 투쟁
4.3.1. 스페인 내전
스페인 공화파 소속 국제여단 병사들 | 총에 맞아 쓰러지는 공화파 병사 |
검은 폭풍우가 대기를 흔들고 / 짙은 구름이 우리를 가리네 / 고통과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지만 / 대적의 의무가 우리를 부른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니 / 우리는 신념과 용기를 다해 지켜야 하리 / 위정자의 능멸 없는 승리의 깃발을 올려라 / 노동자여, 일어나라 전장으로! / 반동은 격퇴되어야 할지니 / 바리케이드로! 바리케이드로! / 조합의 승리를 위하여!
공화파 군가 《바리케이드를 향해》 가사
공화파 군가 《바리케이드를 향해》 가사
4.3.2. 독일
독일 사회민주당의 선거 포스터 | 준군사조직 국기단의 깃발 | 에른스트 텔만 |
4.3.3. 이탈리아
안토니오 그람시 |
4.3.4. 제2차 세계 대전
프랑스 레지스탕스 |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선전 포스터 |
4.4.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
4.4.1. 유럽
4.4.2. 아시아
담딘 수흐바타르 | 동북항일연군 |
4.4.3. 아프리카
4.4.4. 라틴아메리카
판초 비야 | 에밀리아노 사파타 | 산디노 |
4.5. 전후 유럽 사회주의의 향방
4.5.1. 서유럽: 집권과 실각 사이
영국 62대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 | 베버리지 보고서 |
쿠르트 슈마허 | 고데스베르크 강령 | 독일의 과거사를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
장폴 사르트르 | 프랑수아 미테랑 |
4.5.2.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전진
페르 알빈 한손 | 타게 엘란데르 | 올로프 팔메 |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 |
4.5.3. 동유럽: 새로운 도전과 실패
알렉산데르 둡체크 | 너지 임레 | 요시프 브로즈 티토 |
4.5.4. 신좌파의 등장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
생태주의 정당의 대표, 독일 녹색당 |
4.6. 전후 비(非)유럽 세계의 사회주의
4.6.1. 라틴아메리카
아르벤스 구스만 | 피델 카스트로 | 체 게바라 |
살바도르 아옌데 |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전사 | 부사령관 마르코스 |
"정부를 지켜낼 것입니다. 혁명을 지켜낼 것입니다. 칠레 인민이 제게 부여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저들이 저를 죽인다 해도, 인민들이 그 길을 이어갈 것입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폭력이 난무할 수도 있습니다. 저들이 무슨 짓이든 거리낌 없이 저지를 게 분명하고 객관적인 교훈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도자 1명이 사라진다고, 사회적 변혁 과정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장기간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중단할 수 없습니다."
살바도르 아옌데의 연설
살바도르 아옌데의 연설
중남미에서의 사회, 공산주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던 미국 세력에게 크게 위협받고 있었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와 같은 혁명가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중남미의 여러 대륙을 뛰어다니며 혁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며 아옌데 같은 온건 민주사회주의자 같은 자들은 선거를 통해 직접 정부 권력을 얻기도 했지만, 미국은 그런 이들에게 경제적 압박, 쿠데타 사주[4]를 했으며 이 때문에 다시 우경화되었다.
결국 경제적 압박을 못 견뎌 소련과 손을 잡게 되었다.
4.6.2. 아시아
여운형 | 박헌영 | 조봉암 |
가타야마 데츠 | 도쿄 찌르기 사건 | 무라야마 도미이치 |
4.6.3. 아프리카
토마스 상카라 |
5. 위기와 재도전
5.1. 동유럽 혁명
동유럽 혁명 당시 끌어내려진 레닌 동상 |
5.2. 현재의 사회주의
월가 점령 시위 |
슬라보예 지젝 |
제러미 코빈 | 버니 샌더스 | 마르틴 슐츠 |
사회주의 국가/목록, 사회주의/분파, 공산당, 사회민주주의등의 문서 참조.
6. 관련 문서
[1] 우파 기독교에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강제성으로 이러한 공동소유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신벌(천벌)을 받았다는 서술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초기 공동체에서 강제적인 소유권 포기와 재물 공유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복음보다는 보수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그들의 주장은, (i) 그러나 1세기 초대교회에서 보여지는 서로 물건을 통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었다. (ii) 사도행전 초기 사회주의 공동체가 매우 독특했고 역사 보편적일 수 없다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승리'는 초기기독교에 대한 무지일 뿐 아니라, 가진것을 모두 팔라,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 등 예수의 본 가르침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기독교 발전의 역사를 보면 초기 사도행전 공동체에 대한 기독교사회주의적 이해는 서방교회에서 흔히 통용되었던 이해방식이었다. 종교개혁 과정에서 개신교는 가톨릭으로부터의 탄압을 피해 자본주의 국가주의 세력의 보호를 추구하였다. 사도행전 공동체에 대한 개신교의 왜곡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상처)와 같은 궤에서 이해해야 한다. 개신교가 초기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절대왕권에 대한 옹호와 민족국가로의 충성 ('하늘의시민권'을 골자로 하는 바울로 신학의 축소), 그리고 신흥 자본가로의 경제적 예속 (사회주의적 성경이해의 약화) 등은 어쩔 수 없는 수정적 과정이었을 것이다.[2] 여담이지만 루소는 여러 곳에서 여러 사상으로 분리된다. 누구는 아나키즘의 시초 누구는 전체주의의 시초라고도 한다.[3] 여기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견 차이가 생겼는데 마르크스는 기존의 자코뱅주의와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파리 코뮌을 미완으로 보았는데 엥겔스는 자본주의 철폐에 걸맞은 과도기적 혁명 체제라면서 이런 사회야 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면서 극찬했다.[4] 아옌데가 대표적이며 현재도 좌파들 사이에서 미제국주의의 주된 사유로 베트남전과 함께 주로 까이는 소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