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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4 18:51:16

땡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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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추의 예시[1]

1. 개요2. 상세3. 어원과 역사적 배경4. 땡추 속성을 지닌 캐릭터

1. 개요

타락한 승려를 욕하는 말로, 땡추중의 줄임말이다. 땡중이나 돌중, 땡초, 스새끼, 스놈, 중새끼, 중놈이라고 하기도 하며, 이 중 '땡중'이 가장 많이 쓰인다.

2. 상세

파계승과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는 살짝 다른데, 땡추는 단순히 계율만 어겼다는 의미지만, 파계승은 그로 인해 승적을 아예 박탈당해서 이제는 불교와는 하등 관련 없는 사람이 된 인사[2]를 뜻한다. 그리고 파계승은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어휘인 반면 땡중은 하술하듯 대놓고 멸칭이다.

파계(破戒)란 말은 '계율을 깨뜨렸다.'는 뜻으로, 범계(犯戒)라고도 부른다. 승려가 지켜야 할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계율을 어긴 것을 말한다. 특히 '살생하지 마라.' 같은 중대한 계율을 깨트린 경우는 바라이죄(波羅夷罪)라고 하여 계율을 어긴 시점에서 즉각 승단을 떠나야 한다. 동료 승려가 바라이죄를 범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대충 덮고 넘어간 것도 중대한 계율 위반으로 본다. 바라이죄를 범한 파계승은 죽어서 인간으로 환생하기 전까지 다시는 승려가 될 수 없다. 그나마 중간에 복권돼서 다시 정식 승려가 되기도 하지만[3] 드물다.

땡중이니 땡초니 하는 단어의 실제 사용례는 스님들끼리 사석에서 농담 삼아서 혹은 친근감 있게 낮춰서 서로를 부를 때 쓰는 경우가 더 잦지만, 그래도 땡초는 엄연한 욕이자 멸칭이다. 따라서 평신도나 일반인은 절대로 승려의 면전에서 대놓고 이런 말을 쓰면 안 된다. 개신교목사가톨릭신부에게 면전 앞에서 대놓고 먹사·예수쟁이·개독·교회꾼이라고 부르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마치 흑인들은 서로를 사석에서도 친근하게 니가(깜둥이)라고 칭하지만, 타인종은 흑인더러 니가라고 부르면 절대로 안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외에도 경찰짭새·똥파리, 견찰이라고 부른다든가[4], 군인군바리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것도 이와 같다. 가끔 한국 사극이나 무협지 등에서 득도한 스님이 자신을 스스로 땡추라고 낮추어 칭하는 경우가 있다.[5] 실제 성철 스님도 생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마 땡초가 좋은 중 될라 안 카나?"[6]라는 말을 했다. 아무튼 본질은 수위 높은 욕이다.

사실 이 정도 범계는 애교고, 요즘은 이런 소소한 범계보다는 먼저 후배 승려들과 신도들에게 무조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큰스님쯤 되는 고위층 승려들이 부정부패를 벌이는 게 문제다. 오죽 이렇게 썩어빠진 양반들이 많으면 사건사고 없이 단 한 가지에만 매진하는 올바른 승려들까지 죄다 땡중으로 매도돼서 괜히 땡중이네 뭐네 하면서 욕을 먹을 지경이며, 이는 절들과 그 사찰의 신도들도 마찬가지다.

조직폭력배들이 개심한다면서 도피하는 루트이기도 하다. 이런 양반들이 로 숨어들어 스님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옛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7][8] 아직도 거대 사찰 이권 다툼이나 분규 시 덩치 좋고 험상궂은 스님들이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하거나 각목이나 목검 혹은 야구방망이 들고 서로 쌈박질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는데, 이들 대부분이 바로 악명높았던 과거 주먹패들이 법망을 피해 승려로 위장한 사기꾼들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마치 중세 일본에서 낭인들을 머리만 깎고 승려라 위장해 소헤이로 부렸듯이 유서깊은 방식이다.

현시대 한국에서는 주로 개신교 대형교회 목사들이 국가조찬기도회같은 행사를 주관하며 권력자의 주변에 붙어서 비밀리에 로비나 인사청탁을 하는 관행이 많이 알려졌지만, 불교 역시 대한민국의 거대 종교이고 신도수가 많아 신도들이 선거에서 움직이면 힘이 생기기 때문에 조계종 총무원의 고위 승려들이 목사들처럼 정치권과 연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불교는 조계종 직할 사찰에 속한 국보급 문화재가 엄청나게 많고 사찰에 속한 땅 자체가 많아 순수 자산만 치면 조계종 단일 교단은 웬만한 10대 재벌그룹 못지 않은 수준이다. 거기다 이런 문화재는 국가관리 대상이라 문화재청에서 관리비용과 관광수익등을 소유 사찰이 가져갈 수 있어서 그 수익도 매우 크다. 그걸 노리고 들어오는 부패 정치인들과 정치 승려들의 결탁으로 조계종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내부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에서는 '나마구사보즈'(生臭坊主)나 '쿠소보즈'(くそ坊主)가 한국어 땡추와 의미나 어감이 비슷하다. '나마구사(生臭)'는 비린내가 난다는 의미로, 허구한 날 고기를 구워 먹어서 몸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가 승병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내건 명분이 "그들은 온갖 짐승들의 더러운 고기를 먹는 사악한 자들이다."였다.

3. 어원과 역사적 배경

어원은 조선 중기에 유교 국가를 타도하고 불교 국가의 부활을 위해 암약했던 승려로 구성된 비밀 조직 당취(當聚)다. 지리산금강산의 하급 승려 위주로 결성하였다. 무력으로 조선 왕실을 전복하려 했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당연히 무술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음주와 살생을 하게 되었다. 힘쓰는 인원을 확보하기 위해 떠돌이 건달이나 걸인을 머리만 깎이고 가입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조직 전체의 질과 기강이 해이해져서 유생들이 이걸 보고 승려들이 타락해서 계집질이나 하고 있다며 비난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9][10] 이들은 삼보를 어겨 타락한 중들을 응징함과 동시에 절과 마을에 약탈과 방화를 일삼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정여립의 난휴정이 역모 혐의로 붙잡혔으나 조사 과정에서 풀려났고, 야사에 따르면 이때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그림을 받았단다. 하지만 휴정과 유정이 땡추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주장 중 하나일 뿐이므로 다짜고짜 일반화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런 주장을 담은 대표적인 책 '서산, 조선을 뒤엎으려 하다' 자체가 근거에 비해 비약이 다소 심한 경향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숙종 때 장길산과 역모를 꾸몄다는 운부도 당취와 연관 설이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시대는 불교가 동네북 취급을 받던 시절이다.[11] 오죽했으면 조선시대보다는 일제강점기가 차라리 한국 불교에 대한 대접이 더 나았다고까지 평가되었을까? 다만 불교가 조선왕조 500년 내내 박대당한 건 아니어서[12] 조선 후기까지도 불교는 정치 권력 및 유학자들과 서로 연계하며 민중들과 그럭저럭 잘 지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불교 우대 정책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전향한 중들이 늘어난 점은 (신사참배 찬성을 교계로 밀어붙였던) 한국 개신교에서처럼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꼽힌다.[13][14]

당시 유교를 숭상하던 양반층도 자신들의 글에 불교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승려 박대는 기본에 심지어는 에 가서 깽판까지 치고 올 정도였으니[15] 전술한 승려 비밀 조직이 있었다는 문헌도 사실 비약적인 면이 클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문정왕후는 승려들에게 사대부와 같은 권한을 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과거에 세종대왕도 실시하던 승과 부활시키고 사대부들이 가서 깽판 치는 것 좀 못하게 했다고 욕을 먹었을 정도고, 율곡 이이는 과거에 불교에 심취한 일 때문에 소승이니 중놈이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성균관에서 독고다이 신세였다. 허균도 불경을 섭렵하고 불교를 신봉했는데, 이 문제로 인해 탄핵을 받았다.[16]

임진왜란 때 당취의 일원이던 무술스님들이 승병으로 활약하고 조선 정부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대부분 양지로 나오게 되었으나, 숭유억불 기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열반이 코앞이던 사명대사에게는 약까지 보내주는 등 처우가 다소나마 나아졌다. 다만 승려에게 과도한 부역을 부과하는 것은 여전했기에 일부는 음지로 숨어들어 겉보기엔 진짜 스님인 척 하면서 실상은 단순히 승복만 걸친 산적이 되거나 환속 후 거사(속세승)를 자칭하며 유민(流民, 난민 집단) 일파에 들어가 지배층의 재산을 강탈하거나 민란을 주도하거나 하는 일이 있어 땡추라는 단어에 비난의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불교 박해의 영향인지 승려가 등장하는 속담들은 굉장히 부정적인 것들이 많으며, '스님'보다 '중' 또는 '중놈'이 들어간 속담이 압도적으로 많다. '중놈 장에 가서 성내기'[17], '비 맞은 중놈 중얼거리듯'[18], '산골 중놈 같다'[19] 등.

4. 땡추 속성을 지닌 캐릭터

창작물에서는 몇가지의 유형으로 나뉜다.
파계승 문서에 이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나와 있다.

[1] 2013년 11월 28일 충청남도 공주시의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찍힌 조계종 승려들의 모습이다. '승려의 식사' 하면 떠오르는 기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탁상에 갖가지 술로 가득한 광경을 담았다.[2] 예를 들면 석용산. 그는 여신도와의 염문 문제로 불교계에서 영구제명되었다.[3] 예를 들면 성호.[4] 이것들은 경찰 → 경찰 쪽이기보다는 범죄자가 경찰을 부를 때 더 많이 쓰이는 편이다.[5] 무협지에선 스님과 비슷한 실력의 초고수이며 무림에서 입지도 똑같이 웃어른인 도사가 같이 등장할 때도 있는데, 이 때 스님과 도사는 서로를 말코, 땡추라 부르는 게 하나의 클리셰.[6] 성철 스님은 매우 카랑카랑한 동남 방언이 특징이었다.[7] 이 때문에 창작물에서는 조직폭력배의 장례식은 절에서 진행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8] 물론 개신교가 강세가 된지 꽤 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조양은이나 이성순처럼 개신교 장로목사, 선교사, 전도사 등으로 전직하기도 한다.[9]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이런 양반들의 인식을 반영한 대사가 나온다. 조윤이 승려들을 가리켜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산속 절에 공양하러 간 부인들이 임신을 해서 돌아오는 이유가 뭐겠냐?"며 땡추를 도발한다.[10] 심지어 조선시대 야담집 금계필담(金溪筆談)에서는 승려가 가마 속에 앉아 있던 여인을 희롱하며 괴롭히다가 분노한 장사한테 맞아죽는 야담도 실려 있다(...).# 그만큼 조선시대에 타락하여 횡포를 부리는 승려들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을 대변해 주는 사례다.[11] 그러나 불교측이라고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중세 유럽에서 가톨릭이 그랬던 것처럼 숭불 국가에 승려 집단의 권한과 사회적 지위가 무척 컸던 고려에서 대형 사찰이 큰 땅을 소유하고 이권사업을 벌이는 등 개판오분전 상황을 보였다. 심지어 최씨 무신 정권 시기에는 아예 2대 최고권력자 최우의 아들들이 승려가 되어 백성들을 상대로 강제로 쌀을 빌려주고서 추수 때가 되면 그 빌려준 쌀의 5배나 되는 더 많은 쌀을 뜯어낼 만큼 고리대금업에 몰두했고, 그래서 백성들의 큰 원성을 샀다.[12] 태조는 애초부터 불자였기 때문에 무학대사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말년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씻고자 불교에 깊이 의지하였다. 그의 차남 정종 또한 독실한 불자였다. 철저한 성리학자 세종조차도 말년에는 훈민정음으로 불교 서적을 짓는 등 불경에 관심을 보였으며, 세조는 역대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도 특별히 불교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다.[13] 부산대학교 교수를 지냈던 요산 김정한 작가의 단편 소설 '사하촌'과 '모래톱 이야기'의 경우는 이 작품들을 발표한 후 범어사의 일부 중들이 그를 직접 찾아가서 "저놈 죽여버린다"고 노골적으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14] 물론 백용성이나 한용운, 김법린만공처럼 대처승 같은 조선 불교의 '왜색화'를 거부하며 조선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도 없지는 않았다.[15] 물론 이것도 후대에 가면 상황이 바뀌어서 봉선사용주사처럼 선대 왕릉을 지키는 원찰이 되거나 파계사처럼 왕실과의 커넥션을 형성하고 경내에 역대 국왕의 위패를 모심으로써 유생들의 행패를 사전에 차단시키는 사찰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유학자랍시고 절을 때려 부수고 깽판 치는 작태를 유학자들이라고 마냥 잘 한다고 환호해 주기만 한 것은 또 아니어서 천예록의 저자 임방은 "정자(程子) 같은 성리학자도 불상 앞에서 불상을 등지고 앉지는 않으려 했다. 절에서 깽판 치고 불상 때려 부수는 그런 막 나가는 방법 써야만 유학자고 그렇게 해야만 선비다운 행동이라더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16] 물론 이것도 공석에서의 얘기고 사석으로 나오면 개인적으로는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정약용은 대흥사의 승려 초의선사와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고, 김정희는 선운사의 백파선사와 교유하며 아예 스스로를 '묵소거사(黙笑居士)'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초의선사가 교유한 당대 인사들 가운데에는 영의정에까지 오른 권돈인이나 순조의 장인으로 안동 김씨 세도정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영안부원군 김조순도 있었다. #[17]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면서 안 보는 데서만 기를 올리거나 뒷말을 함을 이르는 말.[18] 남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낮은 소리로 불평 섞인 말을 중얼거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19] 의뭉스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20] 원효 대사 스스로의 행동가지가 완전히 땡추였던 이유는 그만큼 민중에 가까이 다가서, 좀 더 친근하고 좀 더 쉽게 불교에 다가가게 만들고, 깨달음을 널리 퍼뜨리기 위함이었다. 무엇보다도 대사는 불교에 정통하였고, 숱한 저서들을 남겼으며, 이들은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21] 전설의 고향의 한 에피소드는 이 클리세를 역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속세를 등진 선비가 술과 고기를 게걸스레 먹는 승려를 만났는데 오히려 득도한 고승들이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니 내 고민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며 상담하는데 사실 그 승려는 속세에서 강간 살인을 저지르고 산으로 도망쳐 스님 행세를 하는 진짜배기 악질 땡추였고 이에 격분한 선비는 절벽 밑으로 걷어차 버린다.This is Joseon![22] 하는 짓만 보면 진성 땡중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깨달음을 얻고 열반한다. 다만 노지심은 절에서 쫓겨난 인물은 맞지만 다른 절로 쫓겨나간 것일 뿐 정식으로 파계를 당하지는 않았다. 수호전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노지심이 출가할 당시 오대산 문수원의 지진장로는 지금은 저래도 언젠가는 도를 깨달을 사람이라며 받아주었다. 처음부터 파계할 생각은 없었다는 뜻.[23] 배여해는 양웅의 아내 반교운과 바람을 피우다 양웅의 의형제 석수에게 들켜서 반교운과 함께 살해당한다. 이쪽은 진짜로 땡중에 악인.[24] 엉덩국이 그린 만화.[25] 초반부부터 여자들을 꼬시고 다닌다.[26] 74세에서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이 있다. 다른 스님들은 모르는 듯.[27] 원래 스님들의 은어로는 술이 곡차이지만 여기서는 일반인들이 곡차라고 하면 잘 못알아들을 거 같아 곡주로 대사를 바꾼 듯하다.[28] 실제로도 한용운 선생은 자신의 논문 불교유신론을 통해 승려들이 계율에 얽매이지 말 것을 주장하여, 대처승을 인정할 것과 더불어, 제한적인 육식과 음주, 승려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허용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29] 여자 밝히는건 미로쿠네 집안의 나쁜 버릇인듯 하다. 풍혈의 저주 생긴 동기부터 미로쿠네 조부가 미녀로 변신한 나라쿠에 낚여 그리 된것이라...[30] 그 때문에 자살하려 했는데도 총알이 없어 실패하자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며 자신을 비웃었다.[31] 타락 이전엔 생불에 가까운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서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 태봉의 왕이 되어 타락하기 이전부터 양길의 부하로서 군대를 이끌고 각지를 정벌해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되레 대장인 본인이 어기고 다니는 훌륭한 땡추였고, 타락한 이후엔 다들 알다시피 관심법하는데 기침했다고 죽이기까지 하는 미치광이 살인귀가 되고 말았다.[32] 석총과 허월은 서로를 땡초라고 부르며 곡차를 좋아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석총은 법상종의 고승으로 추앙받는 큰스님이자 세상과 백성을 구하기 위해선 본인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고결하고 곧은 인물이다. 그리고 허월은 권력의 허망함을 느끼고 속세를 버린 인물이자 세상과 인물 보는 눈이 밝은 현자이다.[33] 본래는 그냥 평범한 스님이었으나 나주 전투 당시 후백제 능창 휘하에 있던 형제들이 모두 전사한 이후 복수귀가 되었고, 태봉국의 관리 임춘길에게 지나가는 스님인 척 잠입하여 왕건을 상대로 여러 모략을 꾸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