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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창(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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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능창의 모습[1]

1. 개요2. 극중 행적3. 전투력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김시원.

배우는 90년대~2000년대 주요 사극의 조연, 특히 맹장 역할로 맹활약했다. 대표적인 배역이 <용의 눈물>의 배극렴, <무인시대>의 김자격, <연개소문>의 강이식.

2. 극중 행적

드라마 초반에는 본명인 '능창'으로 등장하지만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완전히 익숙해졌을 무렵에는 본명 대신 별명이던 '수달'로만 불리기 시작[2]했으며 견훤의형제 사이로 각색되었다. 본래 서남해 일대를 장악한 해적 두목이자 호족들의 우두머리였다. 드라마 극초반부는 견훤의 후백제 건국에 중점을 두었으며[3] 능창과 싸울 때는 겨우 수십~수백 명의 병사나 부리던 견훤이 능창이 항복한 이후 수천 명이 넘어가는 대병력을 꾸릴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상 1라운드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신라의 군관으로서 서남해에 파견된 견훤은 지역의 주도권을 가지고 군세를 불리고자 하였는데 당연히 능창은 자신의 세력을 무력화하려는 견훤을 마음에 들어할 리가 없었기에 견훤과 대립한다. 능창과 호족들은 중국과의 밀무역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는데 견훤군은 무역품을 수송하던 능창의 부하들을 습격하여 무역품을 빼앗아 백성들과 군사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에 분노한 능창은 술자리를 빙자하여 견훤을 암살하고자 하는데 견훤은 이를 알고도 부장들만 데리고 술자리에 참석한다. 수달의 부하들이 덤벼들었으나 견훤과 능환이 맨 몸으로 이를 모조리 때려잡아 버리고 견훤의 힘에 공포를 느낀 수달이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다가 붙들려서 부하들을 철수시키는 굴욕을 겪게 된다. 수달 측이 숫자가 많기는 했으나 견훤이 수백 근 청동 향로도 막 들어던지는 괴물이다 보니 당해낼 수가 없었고, 밖에 있던 병사들은 추허조김총에게 박살나버린 상태였던 것. 이런 굴욕까지 당한 데다 막대한 세금까지 내야할 판인지라 마지막으로 병사들을 긁어모아 관청으로 쳐들어가는데 이미 수달이 공격해올 것을 예측한 견훤 측은 일부러 관청을 내어준 다음 자만한 수달이 골짜기까지 쫓아오도록 유인한 다음 역으로 포위하여 박살내 버린다.

포로로 잡힌 수달은 처형당하기보다는 스스로 죽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견훤은 승패를 인정하지 않고 죽음으로 얼버무리려는 게 더욱 비겁한 행동이라며 일갈한다. 결국 수달은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해 견훤과 의형제의 연을 맺는다(12회). 자존심이 높은 인물로 설정된 만큼 한두번 졌다 해서 쉽게 머리를 숙이지는 않는데 견훤에게 여러 번 덤볐지만 모조리 패하다 보니 진정으로 인정하고 수하가 된 것. 드라마에서는 능환과 추허조의 동생으로 들어가지만, 소설판에서는 추허조나 능환은 물론 견훤보다도 10년 연상이라 둘째가 되었고, 견훤은 수달의 기반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어 서남해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제2차 나주 전투 당시 수달이 포로가 되어 철원으로 끌려가자 견훤은 철원을 공격하겠다면서 펄펄 뛰고, 나중에 수달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아우야!"라며 비통하게 한탄하는 등 두 사람의 우정은 매우 깊은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후 견훤이 대야성을 우회하여 서라벌을 직접 침공하려고 했을 때 후방에 남겨져 금성을 지키게 되었는데 최승우와 견훤이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고려군이 쳐들어올 리가 없다며 방심하는 모습을 보였고, 종례와 오다련이 고려와 내통할 줄은 더더욱 모르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왕건이 지휘하는 고려군의 침공을 받아 분전했지만 패하여 금성을 잃는다.

이후 몇 번이고 금성을 수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4] 금성 탈환의 선봉을 자청하는 애술신덕, 최필을 꾸짖으며 자신이 선봉이 될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견훤이 직접 참전한 제2차 나주 전투에서 남동풍을 이용한 화공에 당해 패퇴하고 후퇴하던 중 능산의 기습을 받아 견훤을 엄호하다가 구덩이 함정에 빠져 포로로 잡혔다(91화). 91~92화에서 왕건,[5] 신숭겸, 심지어 병졸까지 귀순과 식사를 권하나 거부하고, 93화 마지막 대목에 철원으로 끌려가 궁예에게 심문받기 시작한다.

궁예에게 심문받을 때는 "기름동이를 뒤집어쓰고 불 속에 들어가서 죽겠느냐, 아니면 내게 절을 하고 살겠느냐?"라는 궁예의 질문에 기름을 뒤집어쓰고도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참으로 고맙소이다. 오래 욕보이지 않고 죽어서 사내 지조를 지키게 해 준다니"라고 말한다. 옛날 같았으면 궁예의 호감을 샀을 기개였지만, 하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광인이 된 궁예는 이러한 수달의 모습을 괘씸히 여겨 수달을 기어이 태워죽이겠다고 날뛰면서 실제 역사 기록에서처럼 능창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모욕을 가했다. 결국 모든 회유를 거부하고 죽기로 자청한 수달은 서남쪽을 향해 절을 하며 끝까지 궁예를 비웃었지만[6] 왕건 앞을 지나갈 때에는 자신이 포로로 있을 동안 베풀어 준 호의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당신은 진정한 영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후 온 몸에 기름을 뒤집어쓴 채 웃으면서 불 속으로 직접 걸어서 들어가며 생을 마친다.[7][8]

이미 궁예에게 포로로 잡힌 이상 살아 돌아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설마 화형이라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죽일 줄은 몰랐던 견훤은 무진주 성에서 수달이 화형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졌고, 이후 직접 선봉에 서서 금성산성을 공격하는 무모한 작전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것은 삼년산성 전투가 끝난 직후로 유금필의 무용을 들은 견훤이 왕건이 좋은 아우들을 두었고 자신도 그랬지만 자신의 아우들은(수달과 추허조) 다 죽어버렸다면서 씁쓸해 하는 장면에서다.

3. 전투력

무력으로는 최강급인 견훤의 의형제답게 맹장으로 묘사되는데 그야말로 괴물인 견훤이나 그와 일기토를 펼친 극 초반부의 궁예, 주인공인 왕건[9] 등 창업 군주격의 인물들을 제외한다면 드라마 내에서는 유금필, 추허조와 함께 정상급이다. 나주에서 왕건의 군대와 싸울 때는 첫 등장 이래로 웬만한 상대는 싱겁게 처리해 온 박술희를 이겼고, 홍유를 가볍게 제압했으며, 배현경김락이 2:1로 덤볐음에도 간단히 물리쳤다. 홍유는 낙마하고선 말발굽과 언월도를 피해 바닥과 수로를 데굴데굴 구르는 굴욕을 당했고, 배현경은 수달이 자신의 투구에 붙었던 뿔 하나를 날려버리자 쫄기까지 했다. 지켜보던 왕건, 유금필, 신숭겸, 환선길 등은 할 말을 잃었으며, 그런 수달조차 견훤에게 3번이나 패한 후, 수하로 들어갔다는 말에 더더욱 경악한다.

수달이 처형되고 추허조가 전사[10]하면서 백제의 무장들 수준은 현저히 낮아졌는데 실제로 이후 후백제에서 주로 활약하는 무장은 신덕과 애술이지만 신덕은 배현경과 비등비등했고, 애술은 박술희보다 살짝 밀리는 수준에 유금필을 상대로는 완전히 패하고는 "저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다!"라며 도망을 쳤다.

극 중에서 마지막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장면은 승려 출신의 첩자 도우가 파견되는 대목인데 아지태 역모 사건 이후 궁예는 인간 불신이 더욱 심해졌고, 이에 최승우는 태봉 내부를 뒤흔들고자 첩자를 파견했다. 도우는 떠돌이 승려였는데 그의 3형제가 모두 수달의 부장들로 마진의 나주 정복 당시에 전사했고, 도우 역시 수달을 존경하고 있었다. 첩자가 된 것도 스스로 자원한 것이었는데 이후 정치적으로 몰린 상태였던 임춘길을 도와주는 척 하며 여러 번 왕건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마지막에 발각당하여 붙잡히자 그제서야 본색을 드러내 그를 철석같이 믿던 임춘길은 망연자실해한다.

다만 무력과는 반대로 지략이 부족하여 전적은 썩 좋지 못한데 나서는 싸움마다 대부분 패배했다. 첫 등장부터 견훤을 얕보다가 패하고, 관청을 점령한 것에 고무되어 무리하게 추격하다 매복에 걸려 사로잡혀서 부하가 되었고, 금성을 지킬 당시에는 견훤과 최승우가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방심하다가 왕건에게 금성(나주)을 뺏기고 만다.[11] 그리고 결국 2차 나주 공방전에서 왕건에게 사로잡혀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작품에서의 위치 자체가 왕건이 상대하여 넘어서야 할 강적이기 때문에 무력이 강하게 설정되었고, 그럼에도 필연적으로 패배하는 것이다.


[1] 하단 두번째 사진은 나주 공방전에서 왕건의 군대가 기습하자 급하게 군사를 소집하고 방어전에 돌입하는 모습이다.[2] 그래도 자막에는 상단 이미지처럼 '능창(일명 수달)'이라고 표시했다.[3] 이때 왕건은 아직 소년이었고 궁예는 기훤 밑에 들어가 의원 노릇이나 하던 상황이었다.[4] 견훤의 말에 따르면 금성을 잃은 후, 많이 의기소침해졌다는데 실제로 매우 자존심이 강한 성격임에도 회의에서 최승우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5] 포박을 풀어주려고도 하고, 감옥 안에까지 들어가서 회유했지만 "호의는 고마우나, 제 주인을 배신한 사내는 사내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 부탁이니 내 목을 베고, 견훤이 있는 서남해를 보게 해 달라."고 거절한다.[6] 대놓고 교만한 마진의 왕이라고 지칭한다.[7] 불에 타는 모습이 화면에 잠깐 잡히고 비명 소리만 짧게 들리니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실제 화형은 짧아도 몇 분에서 길면 몇십 분 동안 극도의 고통을 받게 하는 처형법이다. 심의 때문에 순화하여 연출한 것으로 죽음을 각오한 수달도 "죽이는 방법이 참으로 가혹하시구려"라고 했을 정도였고, 견훤도 "궁예 왕 그 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달이를 그렇게 참혹하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라고 경악한다. 다만 오래 태워죽이는 화형은 일부러 고통을 주기 위해 불꽃 위에 처형자를 묶어두고 서서히 태우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수달처럼 기름을 끼얹고 불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경우에는 그나마 빨리 죽게 된다.[8] 소설에서는 너무 끔찍한 처사라며 아량을 베풀라고 간청하는 신하들이 왕건말고도 한둘이 아니었으며 그 중에는 아지태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궁예가 얼마나 끔찍한 처형을 했는지 짐작케 한다. 이는 더 나아가 궁예가 본격적으로 타락하는 이후의 내용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기도 했다.[9] 왕건 역시 수달의 무용이 마치 삼국지의 여포 같다고 했으나, 막상 박술희가 수달에게 패하자 즉시 스스로 달려나가 수달과 겨뤄 승리한다.[10] 추허조는 실제로는 927년에 대야성을 지키다 사로잡혔으나 본작에서는 11년 이른 916년에 전사하는 걸로 각색된다. 견훤을 연기한 서인석과 추허조를 연기한 강재일이 술김에 말다툼을 했는데 똑같이 한 성깔 하다 보니 먼저 폭발한 강재일이 밤에 자고 있던 서인석의 방에 쳐들어가 발길질까지 하는 바람에 조기 하차를 하고 말았으며 강재일은 한동안 방송에 못 나왔다.[11] 그래도 금성산성에서 불과 오백여 명으로 수천 명의 고려군을 한 번 격퇴하여 쉬운 함락을 예상했던 고려 측 장수들이 기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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