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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의 대표곡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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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ium> 너바나 (1991) | <Black Hole Sun> 사운드가든 (1994) | ||
<Touch Me I'm Sick> 머드허니 (1988) | 펄 잼 (1991) |
그런지 Grunge | |
<colbgcolor=#e1c77e><colcolor=#fff> 기원 | 장르 얼터너티브 록, 펑크 록, 노이즈 록, 하드코어 펑크, 헤비 메탈, 하드 록 |
지역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워싱턴주 시애틀 | |
등장 시기 | 1980년대 중기 |
시초작 | Come On Down (1985, 그린 리버) |
시대 | 1985년 - 현재 전성기 1991년 - 1997년 |
파생 장르 | 포스트 그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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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0년대 초반·중반 시애틀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락 씬을 완전히 싹쓸이했던 장르.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이며 또한 그 중심에 섰던 록 음악을 말한다. 하드코어 펑크와 헤비메탈의 특징이 섞인 게 특징이지만, 이런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스래시 메탈과는 다르게[1] 연주 테크닉이 단순하고 속도가 중박인 편. 미국보다는 영국에서 먼저 주목하였는데, 동시대의 영국에선 슈게이징이 유행하고 있었다.[2] 이후, 너바나를 필두로 미국 락 씬을 점령했다.9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 그런지라는 장르로 발전, 특유의 패배주의적 감성에 메탈적인 감성과 멜로디컬하고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좀 더 추가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2010년까지 수명을 이어나갔던 장르이다.
사실 그런지가 무엇인지는 포스트 그런지가 나온 후에야 정립되었는데, 그 이유는 위에도 서술되었듯이 음악적 구분이 매우 모호하였기 때문이다. 메탈 특유의 하이비트 드럼이 배제되고(그렇다고 느리단 건 아니다) 기타의 드라이브 톤이 좀 더 강조된, 메탈도 펑크도 아니고 비교적 단순한 A-B-A-B-C-A-B 타입의 팝의 형태를 가진 단순한 록 음악이 유행하고[3] 그와 유사한 성향이었던 시애틀 중심의 얼터너티브 락이 그런지로 규정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에서 활동하거나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 메탈이라기엔 좀 약하고 하드락/블루스라기엔 끈적함이 없고 전반적인 정서가 우울하고 90년대부터 유행했다 싶은 스타일이 그런지, 그런지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게 MTV화된 게 포스트 그런지다.[4] 크리드가 제일 대표적이며, 니켈백이 그 뒤를 잇는다. 이들을 포함한 포스트그런지는 특히 미국에서 록과 팝에 걸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
사실 그런지라는 장르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너바나를 펑크, 앨리스 인 체인스를 메탈로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을 좋아하는 평론가가 있을만큼 장르의 이론적 공통점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고 특유의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기타 사운드, 일부러 단순하게 치는 듯한 연주력과 루저 분위기가 어느정도 특징이 될 수는 있다.[5]
이러한 모호한 음악적 특징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장르가 아니다", "시대적인 용어다"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사실 그런지만큼이나 특징이 모호하고 광범위한 장르도 많고, 오히려 그런지 자체는 음악 장르 중에서도 발원지, 용어의 근원, 등장 시기 등이 모두 상세하게 밝혀져 있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그런지에 특징이 없다, 시대적 용어이다는 등의 의견은 국내 평론가들의 80년대 미국 인디 록에 대한 무지로 인한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6] 다만 그런지의 성공 이후 장르가 지나치게 상업화되자 많은 밴드들이 그런지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의 영향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런지로 분류되는 밴드는 80년대 초반의 뱀 뱀(Bam Bam), 80년대 중반부터는 그린 리버(Green River), 멜빈스(Melvins), 사운드가든과 80년대 후반부터 결성하고 활동한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 머드허니(Mudhoney),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펄 잼, 스톤 템플 파일럿츠 등이 있다.[7] 이들 중 이른바 시애틀 4인방, Big 4라고 불리는 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은 그런지 록 밴드로서 크게 인기를 얻었지만 사실 원래 그런지 사운드와는 좀 차이가 있다.[8] 본래의 그런지 음악은 80년대 초기 그런지 밴드들이나 초창기 음악성을 그대로 이어나간 머드허니 등의 밴드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다만, 그런지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밴드들이 Big 4 밴드들은 맞다.
포스트 그런지 밴드라고 하면 넓게 말하면 그런지의 영향을 받은 밴드들, 푸 파이터스나 오디오슬레이브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포스트 그런지의 주축은 역시 크리드와 니켈백이다. 니켈백 이후로는 도트리와 같은 인기 밴드들이 있으며, 이런 수많은 인기 밴드들은 얼터너티브 록과 뉴 메탈과 얼터너티브 메탈과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여담으로 커트 코베인, 레인 스테일리, 크리스 코넬은 모두 헤로인 중독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서 허무하게 사망하였다. 그런지 장르의 빅4 중 펄 잼만 빼놓고는 모두 보컬이 제 명을 못 다한 셈이다. 덤으로 스캇 웨일랜드까지 요절했으니...
그리고 헤비메탈 팬들 중에는 그런지 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 Nevermind의 성공은 80년대 헤비메탈에게는 몰락의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2. 역사
그런지의 뿌리는 1970년대 후반 등장한 하드코어 펑크이다. 그런지의 창시자로는 미국 흑인인 Tina Bell이 거론된다. 당시 미국 인디 신에서는 하드코어 펑크 열풍이 불었고 미 전역의 도시에서 펑크 밴드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는 시애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애틀은 당시 하드코어 펑크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뉴욕 등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근처에 자체적인 인디 신이 등장할 만큼의 대도시도 없던 외딴 곳이었다. 이로 인해 시애틀의 하드코어 밴드들은 타 지역의 하드코어 신과는 전혀 다른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와중에 발매된 블랙 플래그의 1984년작 My War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앨범의 '헤비하고 느릿하게 연주된 하드코어 펑크' 사운드는 그런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1980년대에 들어서자 그린 리버(Green River), U-멘(U-Men), 멜빈스(Melvins), 사운드가든 등의 밴드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하드코어 펑크에 기반했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에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거친 기타 사운드, 우울한 분위기 등 타 지역의 밴드들과는 확연히 다른 고유의 음악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그 특유의 음악성으로 서서히 로컬 신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음반사에서도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 그린 리버가 EP 'Come On Down'을 내놓으며 최초로 음악계에 입성, 다른 시애틀 밴드들 역시 연이어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반이 1986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Deep Six'와 'Sub Pop 100'으로, 그린 리버를 위시한 당시 시애틀 인디 밴드들의 주요 곡들을 담고 있으며 초기 그런지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시애틀에 위치한 음반사 서브 팝 레코드 레이블[9]에서는 이 새로운 음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으며 이들이 그린 리버의 1987년 EP 'Dry as a Bone'를 홍보할 때 사용한 그런지(Grunge)라는 단어가 곧 이 새로운 장르의 이름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80년대 후반이 되자 장르의 형상이 제법 뚜렷해졌다. 새로운 그런지 밴드들이 제법 인기를 몰고 있었고 이들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밴드들도 여럿 등장했다. 최초의 그런지 밴드였던 그린 리버는 해체 뒤 각각 머드허니와 펄 잼으로 분리되었다. 그 외에도 앨리스 인 체인스, 스크리밍 트리스, 마더 러브 본, 태드, 브래드, 그리고 너바나까지 다양한 그런지 밴드들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시애틀 인디 신에서 서로 상부상조하며 그런지 장르를 확립해 나갔다. 서브 팝의 노력도 빛을 발해 영국에서 주목받은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대중음악계에 그런지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그런지'라는 용어도 장르의 이름으로 거부감 없이 사용되었다. 1990년의 너바나 인터뷰, 커트 코베인이 밴드를 '그런지 록 밴드'라고 지칭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991년 너바나의 Nevermind가 대성공하고, 이어서 펄 잼의 Ten도 대성공을 거두며 그런지는 단숨에 메인스트림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런지는 90년대 초중반의 미국 록 음악을 완전히 점령하다시피 했으며, 수많은 그런지 밴드들이 이 붐을 타고 메이저로 진출했다. 기성 록 밴드들이 그런지의 요소들을 차용하기도 했고, 샌디에이고의 스톤 템플 파일럿츠를 비롯해 미국 각지에서, 심지어 영국 출신의 부시나 호주 출신의 캔들박스까지 시애틀이 아닌 다양한 곳에서 그런지 록을 하는 밴드가 여럿 등장했다. 그런지는 당시 청년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지만, 그 유명세가 붙으며 그런지라는 용어는 급격하게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마크 제이콥스가 그런지 패션을 창안했지만 그런지 뮤지션들은 멋이나 스타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별 생각 없이 지갑 사정이 넉넉치 않았기에 아무 옷이나 골라 입은 것 뿐이었다. MTV를 비롯한 언론 매체에서는 연일 그런지 열풍을 보도했고, 뉴욕 타임즈에서는 그런지게이트라는 대형 오보를 내기도 했다.[10] 기존 그런지 음악가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물건들이 그런지 이름을 달고 팔려나갔고,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그런지라는 명목 하에 각종 기행을 저질렀다. 한편 기존 시애틀 인디 음악계에서는 신예 그런지 밴드들이 사멸해 버렸고, 아예 그런지라는 단어 자체가 비웃음거리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기존 그런지 밴드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이에 메이저에 오른 많은 밴드들은 그런지 음악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자신들을 그런지라는 장르 아래로 묶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커트 코베인의 자살 이후 그런지 음악은 점차 유행에서 벗어났다. 많은 밴드들이 성공 후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약물 중독이나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졌으며, 그런지 자체가 지나치게 대중에게 노출되며 이미지가 빠르게 소모된 것도 있다. 이후 빈 자리는 포스트 그런지의 인기가 이어받게 된다.
2.1. 그런지 밴드 목록
- 머드허니 (Mudhoney) : 초창기 그런지 록의 개척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그린 리버 Green River"의 보컬을 맡았던 마크 암 Mark Arm과 기타리스트 스티브 터너 Steve Turner를 주축으로 1988년 결성된 밴드로 그린리버의 후신격에 가까운 밴드이다.[11] 시애틀 그런지 씬의 최고참 뮤지션들이 주축이 된 밴드인 만큼 이들 역시 시애틀 그런지 씬에 꽤나 많은 영향을 준 밴드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애틀 그런지 4인방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영화의 세계에 로저 코먼이 있다면 시애틀 그런지의 세계에는 머드허니가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B급 정서의 제왕' 같은 밴드, 즉 그런지의 중요한 정서 혹은 특징의 하나일 '뭔가 루저하고 찌질하면서도 공격적인'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밴드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표곡으로는 1988년작 데뷔 EP "Superfuzz Bigmuff"에 수록곡 "Touch I'm Sick"과 1992년 발표된 세번째 앨범 "Piece of Cake"에 수록된 "Suck You Dry" 등이 잘 알려져 있다.
- 스크리밍 트리스 (Screaming trees) : 워싱턴주 엘렌스버그에서 결성하여 1985년부터 활동했다. 메이저 데뷔 음반은 1991년 Epic에서 발매한 Sweet Oblivion. 시애틀 4인방 다음으로 알려진 밴드이지만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1990년대 초까지도 대체로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록)을 중심으로 록을 수용해 온 국내 록팬들의 취향에선 미묘하게 지식 범위 밖이던 '미국스런' 감각에[12], 거기에 더해 역시 그 때까지 국내에서는 중요도에 비해 영 대우가 좋지 않았던 사이키델릭 록 취향도 섞여있던 덕분[13][14] 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런지가 국내 록 팬(및 뮤지션 까지)끼친 가장 큰 영향의 하나가 (역시나 그런지가 소개 될 때 까지, 록 음악에 끼친 영향의 중요성에 비해 국내에서 관심이나 대우가 좋지 못했던)펑크를 뒤늦게 열공[15]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이 밴드가 재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붐이 일던 1990년대스런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밴드의 하나로, (특히 대표적인 히트곡인 "Nearly Lost You" 같은 곡은) 아무 설명없이 듣기만 해도 '아~ (좋았던) 90년대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음악이다.
대표곡은, 앞서 언급한,1992년 "Sweet Oblivion" 앨범의 수록곡이자 영화 "싱글즈 Singles (1992)"[16]의 수록곡으로도 꽤 흥행했던 "Nearly Lost You"(1992)와 1996년작 "Dust" 앨범의 "Look At You" 그리고, 리더인 마크 레너건은 커트 코베인과 생전에 친분을 유지하며 편지를 주고 받았을 정도로 돈독했던 사이였다.
- 캔들박스 (Candlebox)
- 디쉬왈라 (Dishwalla)
- 컬렉티브 소울 (Collective Soul)
- 댄덜라이언 (Dandelion)
- 스킨 야드 (Skin Yard) : 이들 또한 시애틀 출신이다. 기타리스트인 잭 엔디노는 너바나의 Bleach 앨범의 녹음을 도와주었으며 펄 잼과 사운드가든의 드러머인 맷 캐머런 또한 이 밴드의 출신이다. [18]
- 태드 (Tad)
2.2. 포스트 그런지 밴드 목록
- 크리드 (Creed) : 제일 대표적인 밴드. 선대 그런지 밴드들의 음악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들의 개성을 잘 살린 밴드로 평가 받는다. 데뷔앨범 My Own Prison(97)은 기존 그런지의 어두운 느낌이 강한편으로, 메인스트림 락 챠트에서 기록적인 히트를 했고, 2집 앨범 Human Clay(99)와 3집 Weathered(01)는 밝아진 분위기와 함께 팝적으로도 성공했다.[19] 다만, 3집인 Weathered의 경우 대중적으로 인기는 여전했지만 1집과 2집에 비해 발전된 음악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단에게선 호불호가 갈리는 편. 이후 멤버 간의 불화[20]로 보컬 스콧 스탭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새로운 보컬 마일스 케네디와 함께 얼터 브릿지(Alter Bridg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에 재결합하여 Full Circle이라는 앨범을 발매 했지만, 그 이후 다시 얼터 브릿지로 돌아갔다.
- 니켈백 (Nickelback) : 크리드가 비교적 전성기가 짧았던 반면 니켈백은 2001년부터 10년 정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2015년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중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라이프 하우스 (Lifehouse) : CCM 성향의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음악성으로 인기를 얻었던 밴드이다. 1집 No Name Face가 엄청나게 히트했으나, 이후에 발매된 2집 Stanley Climbfall이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면서[21] 멤버들이 교체되었고 사실상 리더인 제이슨 웨이드 혼자 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2집 이후로는 팝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음악으로 활동 중이다.[22]
- 퍼들 오브 머드 (Puddle of mudd) : 1집에 수록된 Blurry와 She hates me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던 밴드이다.[23] 다만, 1집 이후로 현재까지 1집에 비견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 스테인드 (Staind)
- 후바스탱크 (Hoobastank)
- 식 퍼피스 (Sick Puppies)
- 쓰리 도어스 다운 (3 Doors Down)
씨어리 오브 어 데드맨 (Theory of A Deadman)[24]
2.3. 포스트 그런지 - 얼터너티브 메탈
2000년대 빌보드 얼터너티브 송·빌보드 메인스트림 록부문 챠트를 이끌었던 핵심 밴드들이다. 2015년부터 A7X를 비롯한 정통메탈 성향이 강한 밴드들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챠트에서 호성적을 내고 있으며 동시에 트랜스코어 장르의 부상으로 세가 커지고 있지만 얼터너티브 메탈 씬들의 인기에는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아래 서술한 밴드들 상당수가 과거의 음악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중.2020년 현재에는, '포스트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메탈' 인기 밴드들은 이제 아재 취급을 받으며, 빌보드 'Hot Hard Rock Songs'차트나 'Mainstream Rock Charts'차트에서 1위와 상위권을 하고 있다.
- Alter Bridge : 위에 언급 했던 크리드의 보컬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들이 모여 결성한 밴드. 보컬인 마일스 케네디가 슬래시의 솔로앨범의 보컬로 참여함에 따라 덩달아 국내에서도 약간의 인지도를 얻는데 성공했다. 슬래시도 케네디를 전속 보컬로 쓰고 싶지만 이미 메여 있는 몸이라, 어쩔 수 없이 세션으로 쓸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크리드 때와는 다르게, 유럽 쪽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밴드이다.
- 헤일스톰 (Halestorm)
- 브레이킹 벤저민 (Breaking Benjamin)
- 크로스페이드 (Crossfade)
- 파파 로치
- 레드 (Red, 또는 R3D)
- 시더 (Seether)
- 샤인다운 (Shinedown)
- Skillet
- 스테인드 (Staind)
- 스톤 사워 (Stone Sour)
- 쓰리 데이즈 그레이스 (Three Days Grace)
- 트랩트 (TRAPT)
3. 기타
롤링 스톤 선정 그런지 50대 명반 목록4. 패션의 일종
5. 둘러보기
[1] 일부 그런지 밴드들은 스래시 메탈의 영향을 받았다.[2] 단적으로 1991년 펄 잼이 데뷔하고 싱글들을 발매했을 때 싱글들이 영국 내에서 차트 상위권에 계속 진입했지만 정작 미국 빌보드 차트 내에선 반응이 상대적으로 미적지근했었다. 다만, 펄 잼은 'Ten' 앨범부터 미국에서 매우 높은 인기를 끌었다.[3] 이런 스타일은 그런지라는 용어가 정착한 이후 시대에는 포스트 그런지라고 명명된다.[4] 그래서 포스트 그런지에 가면 크리드 같은 기독교 락밴드(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보컬이 크리드 해체 후 내 놓은 앨범을 보면...)가 나온다. 시애틀 그런지 시절이었다면 맥주병이 날아왔을 상황. 크리드만 해도 1집과 2집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데뷔곡인 My Own Prison은 지옥의 불길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 (하나님 앞에) 모든 걸 처절하게 내려놓는 내용이라면, 2집 대표곡 Higher는 꿈과 희망, 기적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크리드는 1집~3집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5] 이 특유의 분위기가 그런지의 대박 히트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당시 미국의 경제적 상황이 겹쳐 80년대의 화려하고 가벼운 팝 메탈, 속주적인 스래쉬 메탈을 수용하려니 아무래도 현실과의 괴리를 많이 느낀 젊은이들은 그런지를 통해 현실의 자신의 패배자적인 면을 다시 보게 되면서 그런지로 대부분 갈아타버린다. 모더니즘과 비슷한 면이 있다. 또한 힙합도 샘플 클리어링을 둘러싼 대규모 법적 트러블과 더불어, 그런지의 유행으로 잠시 주춤했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JAY-Z가 직접 언급한 것.[6] 한국 음악 팬덤, 평론가들은 80년대 미국 인디 음악에 대한 지식이 기묘할 정도로 부족하다. 당장 이 나무위키도 R.E.M., 소닉 유스, 픽시즈, 다이노소어 주니어 등의 80년대 미국 인디 록 거물들의 문서는 본토에서의 위상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 심지어 미트 퍼펫츠, 허스커 두, 갤럭시 500은 각각 얼터너티브 컨트리, 포스트 하드코어, 드림 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밴드들임에도 문서조차 없다. 더 스미스를 비롯해 에코 앤 더 버니멘, 더 큐어 등 동시대 영국 인디는 제법 유명한 것에 비해 대조적.[7] 록의 역사를 논할 때 이 밴드들과 함께 언급되는 스매싱 펌킨스는 얼터너티브 록에는 해당되지만, 절대로 그런지 밴드가 아니다.[8] 너바나는 펑크 록적 면모와 멜로디컬한 성향, 펄 잼은 마찬가지로 멜로디컬한 성향에 고전 아메리칸 하드 록을 결합, 사운드가든과 앨리스 인 체인스는 메탈 방법론의 도입 등으로 기존 그런지 밴드와 차별화되었다.[9] 그런지 음악의 성공으로 미국 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인디 레이블로 부상한다.[10] 1992년 뉴욕 타임즈에서 시애틀의 그런지 신을 취재하여 이들의 생활, 패션, 인생 철학 등을 소개했지만, 사실은 시애틀 근처에 간 적도 없었고 다 지어낸 뻥이었다.[11] 머드허니 외의 또 다른 그린리버의 후신밴드들로는 "Mother Love Bone"과 "Temple of the Dog", 그리고 "펄 잼"이 있다.[12] 즉, 거꾸로 말해 요즘의 포스트 그런지, 특히 그 중 가장 메이저한 인기 록 음악들을 들으면 느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13] 이들의 출세작이었던 1992년작 앨범 "Sweet Oblivion"의 수록곡 중 하나인 "Butterfly" 같은 곡에서 좀 더 잘 나타난다.[14] 그리고 이런 사이키델릭 성향 때문에 보컬이었던 Mark Lanegan 등은 이후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등과의 공동 작업도 여러차례 했다.[15] 뭔가를 뒤늦게 열공하게 되면 대체로 '정통'을 찾는데 몰입하는 경향이 있는지라...[16] TV에는 프렌즈가 있었다면 영화에는 'Singles'가 있었다고 할 만큼, 위노나 라이더가 출연한 "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1994)와 더불어1990년대 소위 X세대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영화의 하나이다. 심지어 무대가 다름아니라 시애틀이고, 주요 캐릭터 중에 인디 밴드 멤버에, 아예 에디 베더, 크리스 코넬 같은 시애틀 그런지 뮤지션들이 카메오 출연을 하기까지 했다. 다만 국내에선 안타깝게도 (한참 후일) 2003년에 만들어진 한국영화 싱글즈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클럽 싱글즈'로 창씨개명당하는 수모를 겪었다(...)밴드도 영화도 어째선지 한국과는 상성이 좋지 않은 듯 하다[17] 여타 그런지나 얼터너티브 밴드가 미국 밴드인데 반해 부시는 영국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18] 스크리밍 트리스의 드러머인 배럿 마틴 또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하며 그들의 1000 Smiling Knuckles 앨범에 참여하였다[19] 미국에서만 1집과 3집은 700만장 이상, 2집은 1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20] 보컬 스콧 스탭의 알콜 중독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여진다.[21] 1집 No Name Face가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한데 비해 2집은 40만장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하여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처참하게(...) 망했다.[22] 사실 음악의 스타일을 말하면 그냥 모던 록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1집에서 여과없이 나타난 루저적 성향을 보면 상관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You and me로 기억 되는 러브송 밴드가 된 것 같다.[23] 당시 프레드 더스트의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었어서 뮤직비디오감독 및 프로모션에 프레드 더스트가 나선 도움도 있었다.[24] 6집 이후로 탈(脫) 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