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윤금이 씨.
가해자 케네스 마클 이병.
1. 개요
Murder of Yun Geum-i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에서 케네스 마클 미합중국 육군 이병[1](20)이 민간인 여성 윤금이(26) 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대학가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시위가 일어났으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주한미군 사법처리 문제를 환기시킨 대표적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 사건 내용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번지에서 윤금이 씨[2]의 참혹한 시신이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당시 윤금이 씨의 항문에는 우산대가 꽂혀 있었는데 직장까지 약 26센티나 들어가 있었으며 음부에는 코카콜라 병이 꽂혀 있었고 입에는 성냥개비가 물려 있었으며 온 몸에는 분말세제가 흩뿌려져 있었다. 직접사인은 코카콜라 병으로 인한 얼굴 전면부의 외상 및 출혈로, 마클이 휘두른 콜라병에 맞아서 얼굴이 깨져 죽은 것이다. 가해자는 미 육군 제2보병사단 제20보병연대 5대대 본부중대 의무대 소속 케네스 마클(Kenneth Lee Markle Ⅲ)[3] 이병으로, 사건 이후 미 육군 범죄수사사령부(현 미합중국 육군범죄수사국)와 경기도북부경찰청 의정부경찰서[4]가 수사에 나섰다. 이에 목격자들의 진술 및 제보로 신원이 밝혀져 잡혀갔고 얼마 안 가 미 육군 군사경찰대로 신병이 인도됐다.엽기적인 범행도 세간에 충격을 줬지만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한미관계의 불평등에 분노한 전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윤금이공대위)'[5]를 수립하여 시위를 시작하였으며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의 '미군 승차 거부 운동', 상인들의 '미군 손님 안 받기 운동' 등이 이어졌고 공대위도 <피의자 케네스 마클 구속 및 엄중한 처벌과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란 성명서를 2사단에 제출했으며 시위는 동두천을 넘어 전국에까지 파급됐고 더 나아가 SOFA 개정 요구도 힘을 얻었다. 다만 공무원이나 일부 우익 성향의 시민, 경찰 등은 "양공주 하나 죽었다고 세상이 이리 시끄럽냐, 하찮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한미관계에 금 가게 할 순 없다."는 식으로 시위를 비난하면서 피해자를 모욕했다.
게다가 윤금이씨의 시체 사진이 대학가 등 집회장에 공개되면서 반미 감정이 더욱 강해졌다. 엽기적인 살인 현장의 모습에 나라 전체가 뒤숭숭해진 것은 물론이다. 다만 윤금이공대위 내부에서도 시신 공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가해자인 마클 이병은 재판 내내 관련 혐의를 부인한 채 시신 훼손은 자신을 질투한 제이슨 램버트 육군 상등병이 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마클의 아버지도 아들이 한국 교도소로 이감되지 않길 바라며 1994년 미국 연방대법원에 탄원서를 냈으나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은 이를 기각했다.
결국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993년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전 윤금이의 유가족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민사상 배상금 7,100만 원을 받았는데 이것이 2심 선고에 영향을 끼쳤다. 1994년 대법원도 2심과 동일한 판결을 내리면서 천안소년교도소에서 복역했으며 1995년 어린이날에는 교도소 복역 중에도 수감 동료인 미 육군 병사와 난동을 부리고 수감 중에 교도관에게 욕설과 폭행을 일삼아 벌금 200만원이 선고되었으나 이를 납부하지 않아 노역 100일이 추가되기도 하는 등 수감 생활 역시 불량했다.# 2006년 8월 가석방되었는데 즉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사실은 두 달 뒤에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자료 요청을 해서 알려졌는데 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 범죄자는 석방 뒤 한국 감독권에서 자동적으로 벗어나 미국 정부의 관리를 받지만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소재지 및 생활태도 등 기초적 정보를 공지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현지에선 사면된다. 이와 별개로 마클 이등병은 형 확정 즉시 미 육군에서 불명예 전역 처리되어 제적되었다.
정치인 이정희가 한미관계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이 사건이었다. 여성학자 정희진에 의하면 원래 두레방 등 여성운동 그룹이 해당 투쟁의 주체였으나 기지촌 여성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성노동자 여성들의 부정적인 사회적 낙인 때문에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자 당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던 NL 운동권의 힘을 빌려야 했으며, 이에 따라 투쟁의 초점이 여성인권에서 멀어지는 한계점도 있었다.
이 사건의 실질적인 해결과 후속조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처음부터 참여했던 '두레방'으로 대표되는 개신교 운동 세력이었는데 이들은 미국이 윤금이 유가족들에게 배상금을 내게 하도록 협상력을 발휘했고 국민일보도 여느 신문보다 시리즈 등을 중심으로 해당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사건 이후에도 한미 양국이 SOFA 개정에 손을 대지 않아 미군 범죄는 연속으로 발생했고 2000년 이태원 접대부 살인사건을 계기로 SOFA 개정 운동이 전개되어 2001년부터 미군 범죄자를 기소 시점부터 한국 정부가 인도하는 쪽으로 SOFA 규정이 개정되었다.
3. 여담
- 자우림의 2집 수록곡인 '동두천 Charlie'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제목이 범인의 실명인 Markle이 아닌 Charlie인 이유는 당시 그의 진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생각나는 아무 영어 이름으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군 쪽에서 찰리라고 하면 동양인을 가리키는 뉘앙스가 있다.[6]
- 이 사건의 범인인 케네스 마클은 갱생이 안 되었는지 미국 귀국 후에도 현지에서 사고를 계속 쳤다. 미국 법무부 성범죄자 데이터베이스(http://www.nsopw.gov)에선 조회가 안 되지만 미국에서 음주운전 등 잦은 범죄로 꾸준히 머그샷이 찍혔기 때문에 근황을 알 수 있다.
2015년 머그샷 |
(페이스북, 2015년, 2018년 1월, 2019년 2월, 2019년 10월 모습이다. 나이, 이름, 외모, 그리고 거주지로 봤을 때 동일 인물인 것이 확실하다. #)[7] 마클은 2000년 8월 21일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 독자투고란에 시민사회단체의 SOFA 개정운동을 비난하는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8]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ROK Drop라는 한국 관련 이슈를 다루는 블로그에 케네스 마클과 같은 육군 소대에 있었다는 스티븐 마크스(Stephen Marks)라는 이의 증언이 댓글로 올라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클 일병과 마크스 본인은 1991년 켄터키 주 포트 녹스에서 같은 소대에 소속되어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았던 사이인데 당시 마클이 자신의 전화 카드를 절도해서 500달러 어치의 장거리 통화를 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그 사실이 적발되어 마클은 다른 소대로 전출됨과 동시에 군사훈련을 처음부터 다시 받고 전화 카드 비용을 전액 배상하는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마클이 나중에 윤금이 씨를 살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도 않았으며 마클에 대해서는 '거만하고 시끄러운 사고뭉치였고 상습적인 거짓말쟁이였던데다 조국과 지휘관, 동료 사병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여성에 대한 존중심도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고 평했고 마클이 자신의 전화 카드를 훔친 것을 발각당했을 때 무른 처분이 아닌 불명예 제대를 받았더라면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말하며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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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과는 의무병.[2] 1966년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출생했다. 17세 때부터 생계를 위해 공장을 전전하다가 평택 등지의 유흥업소를 거치면서 주로 주한미군들을 상대하는 종업원으로 근무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동두천으로 이사해 거리에서 꽃을 팔기도 했다.[3] 1972년 6월 7일생이며 웨스트버지니아 주 카이저 시 출신. 미국에서도 짜잘한 범죄를 계속 저지르다가 2023년에 사망했다.[4] 당시 경기도지방경찰청.[5] 1993년에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출범했다.[6]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교전한 베트콩(Viet Cong)을 Victor Charlie라는 통신 용어로 부르다가 Charlie 부분만 자주 사용되면서 굳어진 것이다.[7] 그러나 후술할 <한겨레21> 보도에 의하면 마클의 근황을 찾아내기 위해 화이트페이지 등지를 찾아 전화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8] 해당 독자투고글은 저녁판부터 삭제되었다.[9] 실제 수사에 참여한 형사 두 명이 출연하여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