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고재봉(高在奉)
1938년 ~ 1964년 3월 10일 (향년 26세)
1. 개요
대한뉴스 제443호-살인귀 '고재봉' 체포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 195번지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 피해자와 범인이 모두 군 관련 인물이다.
2. 상세
2.1. 범인 고재봉
고재봉(高在奉)은 1938년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1리 동산마을 128번지에서 아버지 고광식(高光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사건 당시 장흥군에 누나 한 명과 여동생 고살금(당시 22세)을 비롯한 여러 친척이 살고 있었고, 후술하는 것처럼 사촌 형 고재우(高在宇)가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에, 사촌 형 고재호(高在浩)와 사촌 매형 김인녕(金仁寧)이 각각 성동구 금호동에, 종로구 종로5가에 외사촌 동생 김용구(金容九) 등이 살고 있었다.1946년 유치국민학교 2학년 때 중퇴하였다. 1947년 10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6.25 전쟁 중에 누나 한 명이 행방불명되었다. 1952년 15살 때 아버지가 정신이상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친척의 도움을 받아 밑천을 마련해 전라남도 여수시와 경상남도 부산시를 연결하는 연락선에서 담배 장사를 하며 돈을 벌었다.
1955년 18살 때 12살 난 누이동생을 데리고 상경해 며칠간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2가 서울역 앞에서 노숙하였고, 사창가에서 매춘을 알선하는 뚜쟁이로 일하다가 중구 충무로1가 동화백화점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직업소년학교를 1년간 다녔다. 이때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7번지를 주소지로, 경기도 양주군을 본적지로 하는 가호적을 만들어 주민등록을 했다. 이후 양주군 이담면 동두천리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를 하였고, 이때 알게 된 미군 병사를 통해 세차장 인부로 1년간 일했다. 그 뒤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생활하다가 서울특별시 중구 오장동 어느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배달하였고, 이후에는 중구 장충동2가 장충단공원에서 빵 장사와 행상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삼복 더위에도 신사복 차림에 조끼를 입고, 겨울에도 밀짚모자에 빨간색을 칠해서 쓰고 다니는 등 다소 이상한 행동을 보여 친척들은 고재봉을 백치로 보고 자신들의 집에 들르는 것을 꺼려왔다고 한다.[1]
그러던 1961년 10월 26일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뒤 12월 29일 제1106야전공병단 제101대대 1중대에 배속되었다.[2]
2.2. 사건 타임라인
흔히 고재봉(高在奉) 상병은 박병희(朴炳熙) 중령의 공관병으로 박병희의 가족들이 고재봉을 머슴처럼 부려먹었고 이에 앙심을 품은 고재봉이 범죄를 일으켰다고 알려졌다.그러나 실제 고재봉은 대한민국 육군 제1106야전공병단 제101대대 1중대 소속이고 박병희 중령은 제301병기대대 소속으로, 애당초 같은 부대 소속도 아니었다. 즉, 기레기들의 오보 때문에 애꿎은 박병희 중령만 욕먹은 것이다.
- 1962년 12월 29일, 당시 26세였던 고재봉은 옆 부대 박병희 중령의 관사에 침입해 명태와 구두 두 켤레를 훔쳤다. 박병희는 처음에 명태 한 마리만 훔친 것으로 알고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신발까지 훔쳐가는 바람에 제대로 출근까지 못하자 분노한다. 여기에 윗집에 사는 국민학교 교사의 옷가지도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부관을 시켜 신남지서에 신고했다. 고재봉은 어론리 마을에서 박병희의 부관과 순경을 보고 그대로 산속으로 도망갔으나 결국 체포되어 절도죄로 7개월 동안 복역했다.
- 1963년 7월 20일: 출소 후 제1109야전공병단으로 재배속되었다.
- 1963년 9월 1일: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탈영하였다.
- 1963년 9월 초: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4가 국도극장 앞에서 애인인 최기숙(崔基淑)을 만났으나 그녀는 그가 범죄자라 냉대하며 결별을 통보해 버렸다.[3] 고재봉은 이 모든 게 박병희 중령 때문이라고 생각해 박병희 중령이 살던 집 근처에 가서 살펴 본 결과, 대대장이 타는 지프차가 집에 드나드는 걸 보았다.
- 1963년 10월 10일: 박병희 중령을 죽이기 위해 인제군으로 가 절골산 등을 다니며 강냉이 등으로 연명하며 몸을 숨기고 노숙하였다.
- 10월 12일~10월 18일: 인제군 남면 어론리 류중석(柳重錫)의 집에서 도끼 한 자루를 훔치고 남면 신풍리 어느 민가에서 식칼 한 자루를 훔친 뒤 남면 어론리 박병희 중령의 집 뒷산 낙엽 속에 숨겼다. 이날 밤부터 일주일간 매일 밤 박병희 중령의 집에 가서 문고리까지 잡기도 했으나 차마 결행하지 못하고 뒤돌아서기를 반복했다.
- 10월 18일 오후: 마을의 탈곡 작업장에서 술을 얻어 마신 후 술기운을 빌려 범행을 저지르기로 결심하며 밤 10시에 산에서 내려와 관사로 갔다. 마침 박 중령이 술에 만취해서 구토하고, 이 때문에 부부싸움을 한 뒤 혼자 잠을 잤음을 알게 되었다.
- 10월 19일 새벽 1시 30분: 관사 뒷 문으로 침입해, 만년필형 전지로 중령의 위치를 확인 후 도끼로 내리쳐 살해했다. 고재봉은 방 안의 불을 켠 후 주전자 속 술을 마시고 권총을 찾기 위해 옷장을 뒤졌다.[4] 뒤이어 중령의 방에 들어온 중령의 부인 김재옥 역시 도끼로 살인하고 아랫방으로 가서 식모 옥(玉)모(당시 15세)와 중령의 장녀 이경숙(당시 9세), 차녀 이진숙(당시 5세), 차남 이용(당시 3세)을 살해했다. 고재봉은 중령을 비롯한 일가족 5명과 식모까지 몰살하고 중령의 '보마' 손목시계와 중령 부인의 백금다이아 반지, 현금 10원, 야전 점퍼, 작업바지, 군무복, 군화 등을 훔쳐 달아났다. 다만 방 안에 있던 금고는 금고 문을 열지 못해 포기했다.
- 그 후 먼저 사건 현장에서 40m 쯤 떨어진 어론교 밑에 중령의 옷과 구두 한 켤레를 숨겼고 다시 홍천군 두촌면 어느 산속으로 가 범행 당시 입었던 작업복 하의와 중령의 신분증을 숨겼다.
- 새벽 3시 30분: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 제11보병사단 소속 김창수 병장 등 2명으로부터 불심검문을 받았다. 이때 군인들은 고재봉에게서 손목시계와 반지, 현금 580원을 강탈하고 그대로 풀어줬다. 이후 고재봉은 홍천군 홍천읍 읍내까지 걸어가 하룻밤을 노숙하였다.
- 10월 20일: 오후 8시에 버스를 타고 횡성군을 거쳐 오후 4시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에 살고 있던 사촌 형 고재우(高在宇)의 집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3일을 묵었다.
- 10월 23일: 저녁 7시 30분에 고재우의 집을 떠나 그날 밤 성동구 금호동의 다른 사촌 형 고재호(高在浩)의 집으로 가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이 날 신문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죽인 사람이 박병희 중령이 아니라 새로 부임해 온 이득주 중령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고재봉은 일주일간 관사의 동태를 지켜봤으며 범행 때는 전지로 상대를 확인했고 범행 후에는 이 중령의 신분증을 훔치기까지 했는데, 과연 자신이 죽인 사람이 박병희가 아니라 이득주인 것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고재봉이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단순한 원한이라기보다는 강도가 목적일 수 있다는 설도 있다.
- 10월 24일: 낮 12시에 고재호의 집을 나와 금호동에 있던 4촌 매형 김인녕(金仁寧)의 집을 잠시 들렀다가 오후 1시에 마장동에 있던 사촌 형 고재우의 집으로 돌아갔다.
- 10월 25일: 박 중령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제군으로 다시 가서 그가 제6보병사단으로 전출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산속에서 하룻밤을 잤다. 한편, 같은 날 군경합동수사대가 범인을 고재봉으로 확정하고 전국 지명수배를 내렸으며 육군본부 헌병감실과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고재봉에 현상금 3만 원을 내걸었다.
- 10월 26일: 저녁 7시 50분에 고재봉은 서울특별시로 돌아와 마장동 사촌 형 고재우의 집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박 중령을 죽이고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동대문시장으로 가서 60원을 주고 과도 3개를 샀다.
- 고재봉은 군경의 추적을 피해 도보와 버스를 이용해 경기도 시흥군, 시흥군 안양읍, 수원군을 거쳐 평택군 송탄읍 서정리에 도착했다.
- 10월 27일: 산속에 계속 숨어 있다가 저녁에 서정리 비행장 부근 모래밭에 토굴을 파고 16일간 노숙하였다. 낮에는 근처 들판을 헤매었고, 토굴에서 600~700m 떨어진 민가에 가서 밥을 훔쳐다 먹으며 연명했다.
- 11월 6일: 민가에서 자전거 1대를 훔쳐 타고 과도 3개 등을 챙긴 뒤 6일 동안 이동해 서울특별시에 도착했다. 고재봉은 박 중령이 전출간 강원도 철원군까지 갈 여비가 없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에서 행상을 하던 외사촌 동생 김용구(金容九)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대신 외사촌 동생과 함께 사는 땅콩장수 김복수(金福洙, 당시 20세)를 만났다. 김복수는 고재봉을 만난 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이미 경찰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가 지명수배 중이던 것을 알고 있었다. 김복수는 고재봉에게 리어카 보관소에 가 보라고 말한 후 미행했다. 그리고 보관소 직원에게 경찰신고를 부탁했지만 신고되지 않았다. 고재봉은 보관소에서 사촌 동생을 만나지 못하자 청계천변을 따라 걸었고 김복수는 다른 행상인들에게 저자가 고재봉이니 같이 잡자고 부탁했지만 그들은 모두 달아나 버렸다. 이 때 양말 장수인 김성(金星, 당시 26세)이 김복수의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오후 6시 20분부터 청계천을 통제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재봉은 동대문시장 입구에서 경찰들에게 체포당했다.
- 고재봉 체포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김복수와 경찰에 신고한 김성은 표창장과 현상금, 2박 3일 관광여행 상품을 받아 1963년 11월 15일 아침 10시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경찰비행기를 타고 내무부 치안국 공보계장의 안내하에 부산시 동래구 해운대, 경상북도 경주시·대구시 등을 거쳐 11월 17일 오후에 돌아오기도 하였다.[5] 한편, 고재봉은 미국 육군범죄수사단(현 미국 육군범죄수사국)에서 수사받으면서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며 순순히 자백했다.
3. 재판
1963년 12월 12일 고재봉은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죄수번호 5000번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고재봉은 강도살인, 상관살해, 예비강도 등 8개 혐의로 기소됐으나 재판 도중 자신은 강도살인이 아니라 살인강도라고 주장했다. 즉, 자신은 강도질을 하기 위해 관사에 침입해 이득주 중령을 살해한 게 아니라 이득주 중령을 살해하기 위해 관사에 침입했고 살인을 저지른 김에 강도질도 했다는 궤변이었다. 방송 카메라가 고재봉의 가족들을 비추자 고재봉은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12월 19일 사형 판결을 받았고 고재봉은 항소를 포기하면서 확정되었다. 사형수로 복역하던 중 목사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사형 선고 다음 해인 1964년 3월 10일 경기도 인천시 부평 근교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고재봉의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4. 여담
- 당시 유명한 사건이라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서인지 30년 가까이 지난 후 어느 중학교 교감 선생이 퇴임식 때 "도끼 그만둡니다." 라고 말한 사례가 있다. 하필 이름이 고재봉이라 이 사건의 도끼와 얽혀 학교에서 별명이 도끼 선생이었다고.
- 고재봉에 대하여 다룬 박삼중 스님의 책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겐 죄가 되어 죽습니다》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책에는 고재봉은 1960년대 당시 후진국이던 시절 가난하게 자라 와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희생자인 이득주 중령의 아내 김재옥은 6.25 전쟁 초기 동락리 전투에서 열세였던 국군에게 북한군의 동향을 알려주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드물디 드문 여성 민간인 전쟁 영웅으로, 이 공로로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받았다. 당시 소위였던 이득주와 결혼한 것도 이 때의 인연이었다.
- 이득주 중령의 장남인 이훈(李薰)은 당시 서울특별시 중구 오장동 204-1번지에 있던 큰집에서 큰아버지 이관주(李觀周), 할머니 김용화(金用化) 등과 함께 살며 성동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기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6]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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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3년 10월 29일 조선일보 기사[2] 1963년 11월 14일 조선일보 기사[3] 1963년 11월 13일 경향신문 기사[4] 하지만 군인이 자신의 권총을 옷장에 보관할 리가 만무하기에 실제로는 금품을 훔치기 위해 뒤진 것으로 보인다.[5] 1963년 11월 16일 조선일보 기사[6] 1963년 11월 13일 경향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