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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colcolor=#fff> 개원일 | 1919년 | |||
면적 | 29만 7000㎡ | |||
개방 기간 | 연중무휴 | |||
개방 시간 | 항시 개방 | |||
이용료 | 무료 | |||
소유자 | 서울특별시 | |||
관리·운영 | 서울특별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
<colbgcolor=#ae1932> 장충단공원 입구 표지[A] |
TBS에서 제작한 장충단공원 관련 영상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장충동2가)에 있는 공원이다. 남산의 동북쪽 기슭에 있다.2. 역사
<colbgcolor=#ae1932> 일제강점기 장충단공원의 모습을 담은 엽서[2] |
장충단에서의 제사는 1908년(융희 2년)까지는 지낸 것으로 보이나 이 해에 향사이정(享祀釐正)의 칙령이 내려지면서 나라의 제사 제도가 통폐합되면서 중단되었다. 그 다음 해인 1909년(융희 3년), 이토 히로부미가 죽자 일제는 국장을 선포하고 그를 추모하는 소위 국민대추도회라는 행사를 장충단에서 열었다. 이는 장충단의 건립 의의를 능멸하는 행위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자신들의 흑역사를 나타내는 장충단을 폐사시켜 제단을 비롯한 여러 시설들을 훼손했고 1919년에는 이곳을 아예 공원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의도였다. 벚나무 수천 그루를 심고 제1차 상하이 사변 때 전사한 일본 군인들, 소위 폭탄 3용사의 동상을 세우는 등 완벽한 일본식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2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932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찰인 박문사를 지었다.
8.15 광복 이후 서울시에서 일본풍이 짙은 시설들을 전부 철거했는데 공원으로는 계속 기능했다. 1950년에는 6.25 전쟁으로 일부 시설들이 파괴당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정치 유세 현장으로도 많이 쓰였다. 대표적으로 1957년에 있었던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과 1971년에 있었던 제7대 대통령 선거 유세 등이 있다.
1960년대부터 장충단공원 영역에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1984년 9월 22일에 건설부에서 장충단공원 근린공원을 남산공원의 일부로 합병했다.[3]
시간이 지나면서 공원 내 건물들도 낡아졌고, 체육시설도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에 따라 2009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장충단공원을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수립했고 공사에 들어갔다. 노후화된 건물 철거와 기념비 및 조형물 주변을 정비했고, 나무 및 잔디를 심었으며 지하수를 활용하여 인공 폭포, 연못, 실개천을 조성하는 등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2010년 5월 4일에 재개장하여 오늘에 이른다.#
3. 공원 내부 시설
<colbgcolor=#ae1932> 장충단공원 안내도 |
3.1. 역사 관련 시설
3.1.1. 장충단비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번호 시작 | ← | 1호 | → | 2호 |
장충단비 | 봉황각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 | |
장충단비 獎忠壇碑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장충동2가 197번지)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수량 / 면적 | 석비 1基, 토지 1㎡ |
지정연도 | 1969년 9월 18일 |
건축시기 | 광무 4년 (1900년) |
<colbgcolor=#ae1932> 장충단비[A] |
장충단비 주변의 석물[A] |
장충단을 건립할 때 같이 만들었다. 원래는 사당과 함께 현재의 서울신라호텔 자리에 있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가 장충단을 폐단시키면서 장충단비도 뽑아서 버렸다. 8.15 광복 후 장충단비를 다시 찾아 본래 자리인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세웠고 1969년에 지금의 자리인 수표교 서쪽에 옮겨놓았다.
높이 183㎝, 너비 68㎝, 두께 35㎝ 규모의 비석이다.# 앞면에 새긴 장충단 글자는 황태자 시절의 순종이 직접 쓴 것이다. 뒤의 비문은 민영환이 지었다. 총 143자로, 장충단을 세운 내력과 의미를 기리는 글이다.
3.1.2. 남소문동천
<colbgcolor=#ae1932> 장충단공원 경내를 흐르는 남소문동천 |
원래 남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던 하천이었다. 그러니까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렀다. 광희문 인근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한 물줄기는 지금의 동대문 패션타운 인근에서 청계천과 합류했고, 다른 물줄기는 창신동 인근에서 청계천과 만났다.
현재는 장충단공원에 일부 구간이 드러나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복개되었다.
장충단공원 구간은 휴게소 다담에뜰 인근부터, 공원 북쪽 입구 근처까지 약 234m 정도 거리이다. 다담에뜰 동편에 만들어놓은 인공폭포를 통해 물이 나오며 입구 근처에서 물은 도로 밑으로 흘러들어간다. 장충단비 근처 구간에는 수표교가 놓여있다.
3.1.3. 수표교
<colbgcolor=#ae1932> 수표교[6] |
3.1.4. 사명대사 동상
3.1.5. 이준 열사 동상
<colbgcolor=#ae1932> 이준 열사 동상 | <colbgcolor=#ae1932> 이준 열사 동상 안내판 |
동상 기단부 정면 가운데에 '一醒李儁烈士之像(일성이준열사지상)'이라 적힌 판이 있으며, 동상 왼편에 이준 열사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있다.
3.1.6. 이한응 선생 기념비
<colbgcolor=#ae1932> 이한응 선생 기념비[8] |
거북 형상 받침돌 위에 사각형 비신(碑身)이 있고, 비신 위에 용 두마리를 새긴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비신 전면에 '殉國烈士李漢應先生紀念碑(순국열사 이한응 선생 기념비)'라 새겨져있고 나머지 3면에는 이한응 선생의 일생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있다. 박종화가 글을 짓고 김충현이 글씨를 썼다.
3.1.7. 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 비
<colbgcolor=#ae1932> 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 장서 비(왼쪽)와 안내판(오른쪽) |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난 후 유림 대표 137명이 파리 강화 회의에 장문의 한국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자세한 내용은 파리 장서 사건 문서 참조.
비석 형태는 3단 기단 위에 사각형 받침돌, 비신, 사모지붕을 한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머릿돌 제일 위에는 꽃봉오리같은 장식 돌이 있다. 비신 전면에 '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 라 적혀있으며 받침돌 전면에 파리 장서 사건과 비석 설립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있다.
3.2. 기타 시설
3.2.1. 장충정
<colbgcolor=#ae1932> 장충정[9] |
3.2.2. 공원장충경로당 · 장충단 기억의 공간
<colbgcolor=#ae1932> 장충경로당 · 장충단 기억의 공간[10] |
경로당 건물 지하 1층에 '장충단 기억의 공간'이란 상설 전시관이 있다. 서울 중구청에서 대한제국 이후 장충단과 남산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2017년 12월 20일에 개관했다. 전시 주제는 '장충단과 남산이 들려주는 역사이야기'이며, 공원 옆에 있는 동국대학교 내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소장에게 여러 차례 자문과 자료 감수를 받아 전시 콘텐츠를 채웠다.# 전시실을 A존과 B존으로 나누어 A존에서는 장충단 중심 역사를 전시하고, B존에서는 도보탐방코스(장충단 호국의 길, 남산 기억로) 및 관련 사진을 갤러리 형식으로 전시해두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관련 문의는 중구청 관광정책팀(02-3396-4623)으로 하면 된다.
3.2.3. 게이트볼장
3.2.4. 다담에뜰
4. 교통
4.1. 지하철
- 서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도보 1분)
- 서울 지하철 3 · 6호선 약수역 10번 출구 (도보 12분)
- 서울 지하철 2 ·4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 (도보 13분)
4.2. 버스
5. 주변 정보
<colbgcolor=#ae1932> 장충단공원에서 바라본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의 경영관, 학술관, 문화관 일부 |
6. 대중문화에서
<colbgcolor=#ae1932> 배호가 부른 〈안개낀 장충단 공원〉의 全 버전 모음집 |
<colbgcolor=#ae1932> 〈야인시대〉 39화에 나온 장충단공원 결투 |
<colbgcolor=#ae1932> 〈야인시대〉 116화에 나온 장충단집회 방해사건 |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초반에 치히로의 부모님들이 음식을 먹었던, 음식이 가득 쌓여있는 골목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장충단공원의 족발 골목에서 모티브를 받았다고 한다.
[A] 사진 출처 - 공공누리: 〈장충단공원〉.[2] 사진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3] 건설부고시 제 374호.[A] [A] [6] 사진 출처 - 서울역사편찬원.[7] 일성(一醒)은 이준 열사의 호로, 이준 열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단체이다.[8] 사진 출처 - 서울특별시 문화자료실 디자인, 도심 속 공공미술 산책: 〈이한응선생비〉.[9] 사진 출처 - 네이버 지도[10] 사진 출처 - 서울정보소통광장 - 서울이야기: 〈서울 산책 가볼까? 남산공원에서 장충단공원까지〉, 박우영.[11] 네이버 지도 기준으로, 도보로 11분, 자동차로 6분 걸리는 거리이다.